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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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任濡
(1149~1212)
고려의 문신.
2. 생애[편집]
척신 임원후의 아들로 초명은 임극인(任克仁)이었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는데 형 임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종 때는 외척으로 견제를 받다 왕이 바뀌고 무신정권이 들어선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종 16년(1186) 예부시랑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금나라에서 횡선사를 보낸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16년간 지제고를 맡아 중요한 공문서를 취급했고 관직은 명종 말에 참지정사까지 오른다. 신종 즉위년(1197)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되고 희종 즉위 전후로 수태부 문하시랑평장사로 승진한다. 신종과 희종 대에 임유는 과거를 4번이나 주관해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 인재를 선발한다. 말년의 임유는 전보다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는데 금으로 대장경을 쓰기 시작해(금자대장경) 반 정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희종 7년(1211) 사돈 최충헌이 왕을 폐위시킬 때 임유는 최우와 함께 한남공 왕정의 사저로 가서 한남공을 강안전으로 옮긴 뒤에 새 왕으로 받드는데 그가 바로 강종. 강종 원년(1212) 64세의 나이로 죽는데 사후 양숙(良淑)의 시호를 받으며 희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3. 가족관계[편집]
아들 중 하나가 최충헌의 딸과 혼인해 사돈 관계에 있었다.[1]
- 부: 임원후
- 본인: 임유
- 아들: 임경숙(任景肅) - 동중서문하 평장사 수문전 대학사 판이부사(同中書門下 平章事 修文殿 大學士 判吏部事)
- 아들: 임경겸(任景謙) - 동지추밀사 한림학사 승지(同知樞密事 翰林學士 承旨)
- 손자: 임익(任翊) - 첨의시랑 찬성사(僉議侍郞 贊成事)
- 아들: 임효순(任孝順) - 추밀부사(樞密副使)
- 아들: 임경순(任景恂 - 판사재사(判司宰事)
- 본인: 임유
4. 기타[편집]
- 성품은 욕심이 없고 자비로우며 온화했다. 가문의 권세를 믿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으며 노비나 천인에게도 꾸짖거나 욕함이 없었다.
- <보한집>에서 소개하기를 문정공 조충, 문안공 유승단, 문순공 이규보와 추밀원의 한광연, 진식, 유충기, 윤우일 등이 모두 양숙공 임유의 문하생으로 임유가 주관한 4번의 과거에 급제했다. 그 중 조충이 스승 임유와 마찬가지로 좌주가 돼서 문생들을 거느렸다. 과거에 합격한 문생이 좌주를 부모보다 먼저 찾아뵙는 관습이 있었는데 조충은 좌주로서 자기 문생들을 데리고 본인의 좌주 임유의 집을 방문하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이인로가 지은 시가 <파한집>, <보한집>, <동문선> 등에 전해 내려온다.
十年黃閣佐昇平, 三闢春闈獨擅盟 10년동안 정승으로 태평성대를 돕고 세 번 과거시험에 홀로 맹세하네
國士從來酬國士, 門生今復得門生 국사는 전부터 국사에게 보답하니 문생이 지금 다시 문생을 얻었구나
風雲變化鯤鵬擊, 布葛繽紛鵠鷺明 풍운이 변화하니 곤이와 붕새가 치고 베와 칡[2]
분분한데 고니와 해오라기 분명하다金液一盃公萬壽, 玉笙宣明喜遷鶯 귀한 술 한 잔으로 공의 만수를 기원하며 옥 생황으로 희천앵을 크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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