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숙첨 (문단 편집) == 생애 == 1206년에 좌승선을 지내면서 책명 의식을 거행할 장소를 논의하기 위해 금나라의 사신에게 파견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해 추밀원지주사가 되었으며, 고종 초에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대요수국의 난]] 당시 행영중군원수에 임명되어 토벌군 총사로서 대군을 인솔하여 출정했으나, 군사들이 달아나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아 부대에 기강과 군율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원망했다.[* 이는 최충헌의 탓이 컸다. 용맹한 사람들은 모두 최충헌의 사병들이었고, 나가 싸우겠다고 하면 모두 귀양보냈기 때문. 군대에 동원된 사람들은 모두 어린이, 노약자들이었다.] 개경에서 일어난 승려들의 반란과 연계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송환되었으며, 1211년에 [[희종(고려)|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 했고, 김약진과 함께 중방에 있다고 사태가 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궁궐로 들어가 최충헌을 데리고 나갔다. 최우를 사위로 삼고서는 세력을 믿고 교만하게 굴어 최충헌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이라는 책에서는 정숙첨이 최충헌 자신이 외적을 끌어들여 놓고 자기보고 적을 막으라고 했다면서 불평했다고 나왔다.] 최충헌이 죽이려 했지만, 최우가 힘써 구해준 덕에 하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최우가 집권하자 풀려나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그의 형인 정진이 윤세유와 사이가 나빠서 윤세유로부터 정진과 함께 역모를 꾸민다는 무고를 받기도 했지만, 도리어 최충헌이 윤세유를 붙잡아 국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