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3년 상반기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상세
2.1. 368회
2.2. 369회
2.3. 370회
2.4. 371회
2.5. 372회
2.6. 373회
2.7. 374회
2.8. 375회
2.9. 376회
2.10. 377회
2.11. 378회
2.12. 379회
2.13. 380회
2.14. 381회
2.15. 382회
2.16. 383회
2.17. 384회
2.18. 385회
2.19. 386회
2.20. 387회
2.21. 388회
2.22. 389회
2.23. 390회
2.24. 391회
2.25. 392회


1. 개요[편집]


본 문서는 이웃집 찰스2023년 상반기 외국인 신입생 목록이다.


2. 상세[편집]



2.1. 368회[편집]


옛날 옛날

동화 속 같은 예쁜 집

마크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부부

가족은 행복(오순도순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가족에게 숨겨진 이야기

비밀을 간직한 아이 하리

난관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함꼐하고 사랑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새기는 가족

괜찮아, 가족이야 영국 마크

- 프롤로그


  • 마크: 본명은 마크 앤클리프. 영국 출신. 2005년에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유학온 한 한국 여성[1]을 만나 사귀기 시작했으며[2], 혼인 이후 2007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자녀 2명을 두었다, 출연 당시 경기도 파주시 야당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2010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심캠퍼스에서 물리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아카이브). 오전 6시가 되자 사례자가 방에서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작성했으며, 1시간 뒤에 배우자를 깨웠다. 자녀들까지 깨운 다음 식사를 하고 학교로 갔다. 오후 4시에 자녀들이 야당역 3번 출입구[3]로 나와서 집으로 걸어갔는데, 오빠가 동생의 가방을 대신 매고 갔다. 이유는 동생이 촬영 도중 팔을 다쳤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미시시피 머드파이를 만들었는데, 믹서를 쓰다 반죽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불만을 제기했다. 결국 반죽을 엎지르고 만 아들은 갑자기 슬퍼하고 마는데, 이유는 그가 장애인이라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난산을 겪다 2010년에야 아들을 낳았고 4살 때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성장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5살 때 유치원 수업 도중 교실을 돌아다니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고 이로 인해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배우자는 그를 위해 아로마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고 사례자는 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사례자가 부천시 역곡동에 위치한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물리학을 좋아해서 여행지에서까지 관련 도서를 읽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에이레벨에서 수학 성적이 전국 기준으로 5위권에 들었을 정도였고 26살이 되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배우자와 혼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같은 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자 러시아 출신 정보통신전자공학부 소속 바실리 교수(아카이브)를 만난 다음 써브웨이 매장에서 산 음식으로 식사하고 ???: 나랑 똑같은 거 좋아하네. 를 타고 먼길을 떠났는데[4], 이들의 목적지는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 위치한 한 공사장. 그는 2021년 말에 이 부지를 매입한 다음 2022년 4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지반 공사부터 골조 공사를 마치기까지 6개월이 걸렸고 촬영 당시에는 내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집은 2층 규모로 방 4개를 갖추었으며, 자녀들의 설계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바실리 교수가 사례자와 동행한 것도 그가 자국내에서 집 세 채를 지은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가족이 거처를 옮기려 한 이유는 부부가 바쁜 일상 때문에 자녀들에게 소홀해지려는 태도를 바꾸려 했기 때문인데, 사례자는 이를 위해 교수직을 그만 둘 거라고 밝혔다. 밤이 되자 일행이 대학 동문들과 함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다음날 오전에 일가족이 명호초등학교를 방문해 교무진로부장[5]을 만나 교실을 살펴본 다음 운동장에서 놀았다. 부부가 북곡리에 위치한 청량사로 가서 음료를 마신 다음 가족 계획을 논의했다.

행복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 달라이 라마


사례자가 학교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6] 일가족이 식사를 했으며, 자국내에 있는 사례자의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다.

마크는 한국인됐다.

진옥은 과거의 자신 같은

느린 아이 엄마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한나는 새로운 꿈을 찾았다.

그리고 하리는 계속 도전 중이다[7]

.

엄마, 나 성공했어!

- 에필로그



2.2. 369회[편집]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삶의 기쁨슬픔

어김없이 새롭게 품은 기대와 설렘

당신은 어떤 소망을 품고 있나요?

* 여아: 엄마랑 같이 놀고 싶은데 일도 해야 하고 유치원 가야 해서 못 해요.

* PD: 그래서 엄마랑 더 많이 놀고 싶어요?

* 여아: 네.

* 여성 2: 언제나 행복하기.

* 여성 1: 나도.

* 여성 2: 언제나 행복하기.

* 여성 1: 언제나 행복하기. 얘랑 계속 친구했으면.

정말 이루고 싶은 새해 소원이 있다면?

* 남성 2: 친구들 모두 재수 안 했으면 좋겠어요.

* 남성 1: 저희 지금 고3이에요, 고3.

* 남성 3: 고3입니다, 고3.

* 남성 4: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 남성 5: 내년에도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2022년에 사건·사고가 많았으니까 그런 많은 일들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

- 프롤로그


  • 하비에르 · 제임스 형제: 본명은 아룰 하비에르와 아룰 제임스. 인도 출신. 일가족이 천주교 집안이었기에[8] 2010년에 자국에서 수도회 창립자를 만난 다음 수도회에 가입했으며, 2013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다음 2015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9]를 다닌 다음 사제로 입문했다. 출연 당시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프란치스코전도봉사수도회[10] 소속 신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형제가 한 미용실로 가서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미용사는 30여 년간 일하면서 신부님의 머리를 만진 것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제임스가 왼쪽 이마에 점이 있는 점과 하비에르가 제비추리를 가지고 있는 점으로 구별하고 있다. 형제가 공동체로 돌아왔는데, 동생은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면 이곳에서 살면서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103호)은 봉쇄 구역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음을 밝혔다. 대신 접견실(101호)를 보여줬는데, 토요일 저녁에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2층에도 신부들의 방과 회의실이 있고 4층으로 올라가면 경당이 있다. 이곳에서 하루에 4번씩 기도를 한다.

* 하비에르: 한국전쟁이나 IMF 때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도와주고자 생겨난 수도회로 지금도 창립자 수녀님의 카리스마와 정신을 이어가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는 수도회입니다.

신부가 수도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데, 성 프란치스코가 부자였음에도 가난한 농부의 옷을 입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그리고 매듭 세 개는 서원을 상징하는데, 각각 청빈, 정결, 순명을 의미한다.

자신의 것을

자신의 애정을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평생을 살겠다 결심한 삶

검은 수도복을 입고 기도하며

사제로서의 삶을 채워갑니다.

저녁이 되자 신부들이 모여서 식사를 했는데, 제임스는 수도원 공동체 생활은 같이 기도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활동하는 게 교구 신부들과 다른 점이라고 밝혔다.

모든 것을 함꼐 하는 수도원의 삶

이강민 베네딕토 수사는 두 사례자가 꾸준하게 바른 사람들이라며 차분하고 유쾌하고 웃음이 많고 유머 욕심이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승훈 레오 원장 신부도 이들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면서 보석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 PD: 쌍둥이에게 수도원 형제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제임스: 저희가 이 공동체에 속해 있잖아요. 한 식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유학생들처럼 혼자 살았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저희가 수도회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같이 하는 게 기본이에요. 같이 기도하고 같이 밥 먹고 모든 걸 같이 하는데 물론 같이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서로 안 맞는 부분도 있는데 형제들이 같이 있어줬기 때문에 저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하비에르: 물고기가 헤엄치고 살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바다와 물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저한테는 우리 공동체가 그런 공간이에요. 제가 존재할 수 있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 형제애입니다.

형제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위치한 천주교 순성교회를 방문해 김택민 마테오 주임 신부를 만난 다음 를 타고 아찬리[11]면천면에 있는 농가들을 방문해 신도들에게 봉성체를 했는데, 이들은 성당에 갈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간다는 설명과 함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마음을 드리고자 누군가가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한 농민은 신부가 온다고 하면 달력에 별을 3개나 표시한다면서 집안을 청소한 다음 엄마의 몸을 씻어줄 정도로 철저히 준비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기다림이 부르는 곳으로...

형제가 음식을 준비한 다음 대건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는데, 제임스는 요즘 아이들을 보는 게 힘들다며 한 곳에서 보기 힘든 아이들이 같이 어울려 노는 게 신기하다고 밝혔다.

사실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는
바로 따뜻한 한 끼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 제임스: 우리 수도원에서 대전밀레마니문화영성센터를 운영하는데 제가 운영 담당자입니다. 거기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어려운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위해서 학비나 여성용품들을 지원하거든요. 오늘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센터 수익금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짦은 만남, 찰나의 손길

평범했던 어느 하루에도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신도들이 순성성당에 모이자 하비에르가 복장을 준비한 다음[12] 미사를 진행했다.

* 하비에르: 우리가 무엇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고 무엇을 향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나의 꿈이 아닌 다른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위해 거룩한 기도를 올리는 쌍둥이 신부님


형제가 를 타고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위치한 한 음식점으로 가서 대학 동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형제는 2021년 12월 8일에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에서 사제 서품[13]을 받았다. 동문들은 부복 기도[14]를 한 소감을 묻는 PD의 말에 끝까지 사제로 죽을 수 있도록, 첫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살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나 누군가에게 도움이되고 누군가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어 나도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형제가 중구 대흥동 대전가톨릭문화회관[15]에 있는 후원회 사무실로 가서 상담실 설치 계획을 세웠는데, 제임스는 성심당으능정이 문화의거리가 있는 이 지역에 청년들이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걸 알게 되어 상담실을 세우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하비에르는 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할 예정이고 이에 앞서 2023년 2월에 잠비아로 건너가 낙후된 지역마다 학교를 짓는 사업에 동참할 예정임을 언급했다. 2022년 12월 3일이 되자 동료들이 하비에르의 축일[16]을 기념했다.

제임스와 하비에르는 난생 처음 이별을 앞두고 있다.

쌍둥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각자의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 PD: 보통 제임스 신부님을 뭐라고 부르세요?

* 하비에르: 제임스요.

* PD: 이름만 나와도 웃음이 나오세요?

* 하비에르: 네. 제임스야, 지금까지 나랑 같이 손잡고 걸어온 그 길 안에서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을 같이 나눴는데 앞으로도 장소는 다르겠지만 늘 마음소긍로는 서로 형제, 쌍둥이, 친구라는 것을 잊지 않고 행복하게 걸어가자. 사랑합니다♡. 하비에르, 멀리서도 늘 마음 안에는 함꼐 있는 쌍둥이라는 걸 잊지 말고 서로를 응원해주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실수하면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런 우리의 우정이 되길.

* PD: 어떤 신부님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 하비에르: 웃음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여담

촬영에 협조해주신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도회에 감사드립니다.


2.3. 370회[편집]


  • 오스틴 강: 본명은 강민주. 미국 출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20여 년간 살아온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 IT 기업에 입사했으나 하루에 16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2달만에 그만 둔 다음 2012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각종 일을 했다[17]. 한 멕시코 음식점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2016년에 방송된 CJ ENM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리즈[18]에 출연했고, 모델 활동도 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 3가에서 살고 있었으며,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신사동에 위치한 알마미고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 위치한 한 기업의 연구소를 방문해 족발김치 등으로 김치찜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부모와 조상의 조국이 궁금해서 한식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일어나서 뭔가를 꺼냈는데, 알고 보니 자연산 홍삼환이었고, 이 것말고도 수십 가지 건강기능식품을 먹었다. 모 중견 배우와 도긴개긴이다. 이후 계란 프라이, 식빵, 토마토로 식사를 한 다음 를 타고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양식집으로 가서 일을 했다. 저녁이 되자 신사동에 있는 한 멕시코 음식점[19]으로 가서 일을 했으며, 자정이 되자 뒷정리를 하고 송파구 가락동 가락몰에 있는 한 수산물 상인을 찾아 킹크랩을 샀으며, 한 식자재 매장[20] 앞에 이를 두고 들어간 다음 각종 자재들을 사고 나왔다. 그럼에도 매장 앞에 둔 킹크랩이 그대로 있었다[21]. 새벽 2시가 돼서야 자택으로 돌아온 다음 메뉴 개발 계획을 구상했다. 새벽 3시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는데, 알고 보니 사례자의 어머니가 사례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6시 내고향[22]출연하기 위해[23]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관포리에 위치한 관포항으로 가서 기성 앤더슨을 만난 다음 어선을 타고 대구를 잡으러 갔다. 어선에서 사례자가 기성 앤더슨에게 자신의 사연을 설명했는데, 한국으로 건너온 뒤에 가진 돈이 20만 원에 불과해 친구 집에서 산 적이 있었고 참치김밥이나 햄버거를 먹고 산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강공원에서 햄버거 장사도 했으나 태풍 피해를 입어 실패했다고.

어둠이 걷힌 자리에

눈부신 해가 떠오르듯이

힘든 시기를 겪어왔기에

더 감사한 지금 이 순간

제주도에 있는 기업 연구소를 다시 찾아 각종 장류들을 살펴본 다음 촬영 시점 기준으로 126년씨간장[24]을 살펴봤다. 형과 함께 귤농장에 가서 을 수확하다 형이 사례자가 왜 예능 활동을 하냐고 묻자 사례자가 사람들이 방송 출연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전술했듯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식을 배우게 된 것인데, 바로 식당을 운영하면 예의에 어긋난다면서 준비를 마치고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한식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혼자 방파제를 찾아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제주도를 찾으면 자신의 과거가 생각난다는데, 해안에서 살다 보니 삶의 원동력은 힘들었던 시절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다며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 뭐라도 하는 게 좋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냐에 고민하기도 했다.

정신없던 2022년이 가고

어느덧 새해가 밝았는데

사례자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 체육시설을 방문해 퍼스널 트레이딩을 지도받았는데, 앞으로 영양제를 먹지 않고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 트레이너가 인종차별을 당했던 사실을 언급했는데, 사례자도 수영 선수(정확히 말하면 수구.)로 활동했을 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동양인들이 미국에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차별당하지 않으려는 것. 1주일 뒤에 제주도 소재 기업 연구소를 또 다시 찾아서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4. 371회[편집]


*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도에서 온 선저이 쿠마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 정장 쫙 빼고 출근하는 선저이(3년차 K-직장인
(놀 땐대로 놀 줄 아는 흥 부자
반전(양파 같은 매력남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에서 힘을 얻는 사람 부자
그런 선저이의 시간을 멈추게 한 그 날
* 교통이 완전 마비된 상태를 제가 봤어요.
이태원 참사 그 날의 기억
* 그렇게까지 혼란스러운 모습을 한국에서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고요.
그 아픔을 끝까지 지켜봐 온 이태원 사람 이야기
선저이 Times

- 프롤로그

  • 선저이: 본명은 선저이 쿠마르. 인도 출신. 비하르주 부다가야에서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하려다 공무원이 되는 걸 바랐던 아버지 때문에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일본어학과에서 역사를 배우다 한국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일제 강점기인도 제국 시절 역사의 공통점을 이해한 것. 교수가 되기 위해 2008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우고 정부 초청 장학생이 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건설사 인사팀과 연구원으로 재직해왔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2020년부터 후암동에 위치한 헤럴드에서 외교 분야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중구 장충동2가에 위치한 서울신라호텔을 방문해 주한 카타르 대사와 이탈리아 대사, 방글라데시 대사, 그 밖의 고위 인사들과 인사를 한 다음 카타르 국경일 행사를 취재했다. 그는 기사를 100건 이상 작성했고 해외에서 두 번이나 국제 기자상을 받은 인재였다. 행사에 참석한 외교 사절들은 사례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외교관들에게 사례자와 같은 친구가 필요하다. 사례자와의 관계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메샬 사드 알 쿠와리 주한 카타르대사관 1등 서기관

항상 전문성 있고 협력적이고 먼저 다가와 준다.
-아리스 비간츠 주한 라트비아 대사

지금처럼 계속 하면 된다. 사람 사이 교류도 잘하고 매우 사교적이다.
- 알리 모하메드 마가시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

매우 좋은 사람이고 각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 페르난도 두아르치 바로스 헤이스 주한 교황 대사관 1등 서기관

분명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을 우호적인 곳으로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나아간다면 미래는 밝기만 할 것이다.
- 므웬데 므윈지 주한 케냐 대사
행사장에서 나온 사례자는 '소식통은 하늘에서 나오지 않고 이 땅에서 나오니 이런 곳을 찾아오면 여러 가지 소식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이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피곤해도 보람이 있으니까 괜찮다.'며 자신의 업무를 평가했다.
휴가를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가방에서 자국 상품들을 꺼냈는데, 코코넛 디저트, 우유로 만든 패라, 건과일 주먹밥, 허브 기름, 아몬드 기름, 아말라 오일 등등을 가지고 왔다. 그가 자국으로 휴가를 갔을 때 가족이 사는 집에서 식사를 하고 여자 친구[25]도 만나고 친구가 혼인하자 길거리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다. 직업이 기자라서 여행가는 동안 동영상을 찍었는데, 부다가야에 있는 묘비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축복 의식을 했다. 아침이 되자 밀크티를 마신 다음 복장을 준비하고 버스 정류소로 가서 마을버스를 탔는데, 대중교통을 좋아해서 자가용을 마련하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2017년부터 용산에서 살아왔기에 이태원을 지나서 통근하는데, 이태원 압사 사고가 일어난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심정을 전했다(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내용을 참조할 것.). 용산02번을 타고 용산고등학교 에서 내린 다음 본사 편집국으로 출근했는데, 자신이 보안 요원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신임 정치사회부장과 각 직원들과 인사를 한 다음 편집국장이 주도한 회의에 참석했다. 2층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자국산 상품을 증정했고 남직원들에게 허브꽃 오일을 증정했다. 마케팅 팀 부장을 만나 자신이 휴가를 다녀왔을 때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 부장은 '친화력과 친화성이 정말 좋아서 내국인들보다 더 좋았고 앞으로 자신은 사례자가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퇴직한 뒤에도 같이 살고 싶다'는 심정을 전했다.
사례자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를 방문했는데, 소양강 처녀 동상에서 그가 말하길 자신이 한국어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동양 철학으로 한국을 이해하려고 유학 생활을 했다는 것.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동양철학과 유성선 교수를 만난 다음 효자동에 위치한 한 노래 연습장 앞을 찾았는데, 그는 대학원 시절에 이곳을 찾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전국 노래자랑 추석 특집 방송과 우리말 겨루기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었고 모 유튜버의 작품에도 출연했다고. 심지어 직장에서 워크숍을 개최했을 때 노브레인이 축하 공연을 하러 왔다 사례자를 알아본 적도 있었다. 이를 통해 저명성을 쌓아온 그는 2020년부터 2년 동안 용산구 외국인 명예 통장[26]으로 활동해왔다. 사례자에게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이 최고의 부자라는 것. 이태원동에 있는 한 인도음식점을 찾아 사업주와 중국계 여성을 만나서 식사를 했다. 하지만, 이들을 빼면 손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례자는 자택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다음 10시 30분에 이곳으로 나와봤더니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거리를 가득 메운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이 사고를 직접 보고 현장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을 정도로 동업자 정신을 실천했다[27]. 직장에서 사례자에게 대사관마다 외국인들이 몇 명이나 죽었는지 파악해달라고 요청하자 직접 대사관에 사망자 현황을 문의했다. 희생자 중에는 그의 지인인 스리랑카 출신 남성 지나트도 있었다. 사례자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코리아 헤럴드 영문판에 그의 사연을 작성한 기사를 실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He had married his wife, Fatima, in July. It was a love match, and they had struggled for eight years to win the approval of their parents.

Finally, after Jinath came to Korea, both families accepted the marriage, and they were expecting a child.

지나트는 아내 파티마와 (지난) 7월에 결혼했다. 그들은 8년 동안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지나트가 한국에 온 뒤에 그들의 부모는 결혼을 허락했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Jinath wanted Fatima to come to Korea for studies, live there with him. She was preparing documents for admission in to a Korean university recently, however, all those dreams have been shattered,” Ifham said.

지나트는 아내가 한국에 와서 함께 살며 공부하길 바랐다. 최근 그의 아내는 한국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서류들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 스리랑카에서 온 신혼부부에게 닥친 비극(Tragedy hits newlywed couple from Sri Lanka), 2022년 11월 1일.
두 나라가 협조해도 희생자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주기 힘든데[28] 자신이 외교관들을 직접 만나서 어떤 이주민에게도, 어떤 국민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이런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고 심정을 밝혔다. 물론 참사 이후 해밀톤호텔 옆 골목으로 지나가지 않으려 했으나 기자라면 직접 지나가봐야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태원을 살아가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상처로 남은 참사
대한민국 다문화의 상징인 이태원에서 떠나간 26명의 외국인 희생자들
친구 혹은 가족을 떠나보냈을 이들 그 마음을 헤아렸던 선저이
* 사람들의 슬픔이었죠. 그 슬픔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부모나 유가족들은 우리와 다른 분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르게 볼 필요가 없어요.
동일한 마음으로 슬픔을 받아들이고 나누어야 합니다.
얼마 뒤에 이태원역 1번 출입구 앞에서 유가족과 상인회원들이 추모 공간을 재단장하기 시작했고 사례자는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동빙고동 주한카자흐스탄대사관에서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려 사례자가 직접 참관했는데, 자신도 그 나라를 두 번 찾아간 적이 있다 보니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밝혔다. 바킷 듀센바예프 대사는 사례자가 전문성을 가진 기자라면서 대사관 뿐만 아니라 자국의 친구이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업무를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치킨 커리를 만든 다음 친구들이 찾아오자 함께 식사를 했다.
저는 앞으로 외국인 대상 사이버 범죄나 외국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들 그런 일들 관련해서 기사를 쓰고 싶고요, 한국과 전 세계를 연결하며 그런 성과들이 있을 수 있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죠.

점점 더 복잡해지는 한국 사회 혼자 맞서기엔 버거운 문제들 그러나 선저이는 혼자가 아니다.
선저이 옆엔 항상 사람이 있고 사람과 함께하며 사람이 찾아왔다.
사람이란 가장 큰 '재산'을 잘 지켜낸다면 기자로서도 사람으로서도 항상 답을 찾을 것이다.

* 사람답게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고 기쁘게 살고 싶고 제 인생 철학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고 최고의 행복일 것 같아요. 그것이 저의 꿈이고 오늘의 봄이고 내일의 봄입니다. 내 인생의 봄은 지금 한국에 있다.

선저이는 지금도 선저이의 시간을 살고 있다.


2.5. 372회[편집]


  • 크리스나: 본명은 아디카리 크리스나 프라사드. 네팔 출신. 남부 지방에 있는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푸르반찰 대학교에 다니다 개인사업자가 되기도 했으며, 2011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8년 동안 한 산업체에서 근무해왔다[29]. 이후 자국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한 여성과 혼인하고 자녀로 딸 1명을 두게 되었다. 출연 당시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2019년부터 테라젬지놈케어에서 AI 기반 의료 연구팀 소속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2022년 4월에 배우자가 시마라공항을 통해 자국을 방문해 자신의 딸을 만났으며, 차를 타고 처티원 타디에 위치한 고향집으로 갔다. 딸은 생후 5개월이 되던 해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1주일만에 병원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음에도 사례자가 일터를 벗어날 수 없었던 탓에 자국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사원으로 가서 드루가 여신을 향해 기도를 했고 6월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때 사례자의 동생도 함께 공항으로 찾아가서 모녀와 외할머니 가족의 입국을 맞이했다. 이후 이들은 여행을 다녀온 다음 외할머니 가족이 자국으로 돌아갔다. 6개월 뒤에 사례자의 자택을 찾았더니 사례자가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있었는데, 딸이 집에 왔으니 직접 하는 거라고 밝혔다. 딸은 한국으로 건너왔을 때 한국어를 구사할 줄 몰랐으나 촬영 당시에는 광속으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어린이집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2023년 3월이 되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거라는데, 이미 자국내에서 2년간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부모가 자녀들의 나이와 상관 없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 자국내에서 쓰이는 교과서를 보여줬더니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나.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방과후에 숙제를 했다. 일요일이 되자 부녀가 한 교회를 방문해 한국어를 지도받았는데, 초등학교 교사라 밝힌 자원봉사자[30]는 사례자의 딸이 높은 이해력으로 한국어를 빠르게 받아들였다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 사례자의 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보면 학교 생활을 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저녁이 되자 부부가 식사를 준비한 다음 상다리를 폈는데 고정되지 않아서 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다. 아침이 되자 사례자가 를 타고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 위치한 사업장으로 가서 일을 했는데, 일반 사용자용 웹서비스를 개발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갑자기 대표자가 부르길래 찾아갔더니 개발품 피드백이 어떠냐고 묻자 결과지를 수정했다고 대답했다. 대표[31]는 다들 똑같은 일을 해도 사례자는 제안한 다음 그 결과를 가지고 논의할 정도로 영리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내부에서 쓰이는 웹서버의 관리는 물론 소스코드의 작성까지 지도한다고.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실장의 말에 따르면 본사가 사례자를 뽑았을 때 자신을 뺀 모두가 반대했으나 이력서를 인포그래픽으로 작성한 것 때문에 경영학 전공자임에도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도면 두곡리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32]을 찾았는데, 그는 이곳에서 안전망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이를 통해 2017년에 거주 자격을 받은 다음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BT 기업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원래 5년간 살고 귀국하던 계획이었으나 영주권을 받은 만큼 한국에 눌러앉게 된 것. 사업장 내부를 살펴보다 자신이 쓴 글을 발견했고 동료도 만났다. 그는 사례자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3년 동안 함께 살아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사례자의 동생도 외국인 근로자(E9)로 한국을 찾았고 방송 당시에는 숙련 기능 인력(E7)으로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주 비자(F2)를 받으려다 2020년 12월에 개정된 법률에 따라 공장에서만 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연간 소득이 가족까지 합쳐서 전년도 1인당 국민 총소득(4048만 원)을 넘어야 하고 자산도 3000만 원 이상을 6개월 동안 유지하고 있어야하는 규정에 미달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일가족이 한 커피 전문점을 방문해서 사업주를 만났는데, 사례자의 배우자가 둘쨰를 임신한 지 6개월이 지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 사업주는 사례자에게 한국어를 지도한 것을 계기로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그가 일정한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누구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 스티브 잡스
얼마 뒤에 향남읍 행정리에 위치한 자원봉사센터를 찾아 김장에 동참했는데, 그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자 마자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수원시의회가 준 표창장을 받았다. 활동 도중 같은 학과 동문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김치 6톤 분량을 완성한 다음 인근의 한 독거 여성이 사는 집으로 가서 김치 2상자를 기증했다. 휴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시장에 다녀온 사례자가 집으로 돌아와서 향토 음식을 만들었으며, 손님들이 찾아오자[33] 전통 의상을 입고 의식을 진행한 다음 식사를 했다.


2.6. 373회[편집]


  • 다니엘: 본명은 다니엘 텐들러. 독일 출신. 정형외과 의사 페터 렌드러와 한국에서 건너온 간호사 김순복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2010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재직했다. 하지만 자신의 업무에 회의를 갖게 되자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건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강북구 송중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중구 을지로4가에 위치한 어번디테일에서 건축가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조정구 소장과 함께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에 위치한 한 한옥을 방문해 건물주를 만난 다음 내부를 살펴봤는데, 건물주는 여름에 매우 시원하다며 극찬했다. 이 건물은 2층집으로 지었고 2022년에 정다운집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해 서울시청의 우수 한옥 인증을 받기도 했다[34]. 사례자의 말에 따르면 설계 과정에서 소파를 놓을지 고심하다 마루를 높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아침에 자신의 직장으로 가서 동료들이 만든 모형으로 회의를 했는데, 그는 본사가 원래 한옥 건축만 취급하는 업체가 아니라며 현대 건축도 취급하지만 전체 의뢰 횟수의 3분의 2가 한옥 건축이라고 밝혔다. 블로그에 체부동 한옥이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에서 우수 한옥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을 비공개로 게시한 적도 있었다[35]. 삼양동에 위치한 한 공사장을 방문해 상황을 살펴봤는데, 자신의 부모가 자국내에서 살던 집을 팔고[36] 한국으로 건너오면 함께 살기 위해서 양옥을 한옥으로 마개조하는 거라고 밝혔다. 건설 업체 관계자에게 2층에도 수도관을 달아주라는 요구 등을 했으며, 자재가 도착하자 내부로 직접 옮기기도 했다. 자국에 있는 부모와 영상통화를 한 다음 직장으로 돌아와서 한 업체가 맥주 제조 시설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동료는 근린생활시설을 현대 건축 기법으로 짓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전직원이 설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례자와 동료가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에 위치한 한 주류 전문점을 방문해 사업주에게 모형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건설 개요를 설명했다. 사례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PD 두 명에게 문을 닫아달라고 요구했는데, 알고 보니 집안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던 것. 과거에 키우던 고양이가 갑자기 가출하다 폐사한 적이 있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고.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유통기한이 2022년 12월까지인 음식들이 발견되었고[37] 정체 불명의 반찬[38]도 보였다. 그는 혼자 살면 이것저것 먹고 싶다 보니 재료가 자주 상하게 된다고 밝혔다. 결국 된장찌개를 먹기 위해 된장을 사러 나갔다 돌아왔으며, 된장찌개를 만들어서 식사를 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스프링클러까지 갖추고 물을 줬는데, 그는 식물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사진
이게 부모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두 달 정도 일찍 태어났는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얼마 못 살 거라고 했다.
석 달 지나서 나는 건강해지고
수술 없이 정상이 되었다고 한다.
밤이 되자 가족 사진을 살펴봤는데, 자신은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고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석 달 동안 그 누구보다
다니엘을 걱정했을 부모님
나는 다시 건강해졌고
하고 싶은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부모님 덕분이다.
사례자가 삼양동 공사장에서 쌓인 눈을 치웠는데, 그는 할머니들이 추워할까봐 의자를 놓으려 했다고 밝혔다. 할머니 두 명이 공사장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는데, 대문에 문턱이 놓인 게 반 세기 전의 일이었다고 밝혔다. 사례자는 대문의 위치를 옮긴 다음 휴식 공간을 설치할 것임을 약속했다. 사례자가 한 친척의 집[39]으로 가서 홍어 등으로 식사를 했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 위치한 한 목재 가공 업체로 가서 종업원들을 만난 다음 목재 생산 현황을 살펴봤으며, 도담종합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가평 덕현리에서 맥주 제조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2.7. 374회[편집]


  • 나비: 본명은 나비 니마 존. 이란계 미국인.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어 뉴욕 대학교 생물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흉부외과를 전공했으나 현대 의학의 단점을 알게 되어 한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40] 2015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41]. 출연 당시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한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에 학교로 간 사례자가 복장을 준비한 다음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한방병원으로 가서 회진 실습을 했다. 학생들이 계단으로 이동한 것은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들이 진료하는 모습을 기록하자 교수가 잘 지켜보고 있는지 물었다. 황만석 교수는 사례자가 한국어판 교재로 공부해서 MEET에 합격한 것이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양기영 교수의 지도를 받아 침술 지도를 받았는데, 장침 실습을 위해 한 학생이 마루타로 참여했다. 쉬는 시간에 학우들이 말하길 교수가 학생들에게 사례자처럼 행동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유가 뭔가 했더니 내국인들보다 한국어를 더 잘한다는 것. 사례자가 무용실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춤 동아리 회장으로 참여하고 있었다고. 교수 연구실로 가서 교수와 강의 내용을 논의한 다음 한방병원에서 황 교수가 진료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추나 실습을 했다. 저녁에 강의실로 가서 자습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25가지 잡곡과 채소 등으로 닭갈비를 만들어서 식사했다. 사례자가 말하길 한의학을 배우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는데, 이를 알지 못 하면 유급#대학 처분된다고. 휴일을 맞아 학우와 함께 한 음식점을 찾아 묵은지 고등어찜으로 식사를 했으며[42], 사업자가 준 깍두기와 백김치를 받았다.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구포시장에 있는 한약재 전문점으로 가서 숙지황, 당귀, 황기, 천궁을 샀는데, 사업주가 자신의 딸도 사례자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비수리까지 받아서 집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쌍화탕을 만들었으며,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43]무용학원으로 가서 바차타를 배웠다. 이 때 수강생들이 사례자가 만든 쌍화탕을 마셨는데, 한 남학생은 이전에 사약 같았던 게 지금은 맛있게 만들었다며 평가했고 여학생은 계란을 안 띄우냐고 물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가서 아버지와 친척 2명의 입국을 맞이했으며, 가까운 김해국제공항을 놔두고 왜 인천국제공항으로 간 거지[44]? 사례자의 집으로 들어간 아버지와 친척들이 방문에서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것에 놀라워했다. 사례자가 창밖으로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보인다고 소개하자 아버지가 사례자에게 장미꽃잎 잼과 줄비아, 바미에, 포스트 시리얼 등을 줬다. 포스트는 한국에서도 팔고 있어요[45]. 잘 보면 뒤로 코카콜라펩시, 칠성사이다도 보인다. 아버지와 친척 두 명이 사례자가 만든 쌍화탕을 마셨는데, 사례자는 세 명이 한의학을 처음으로 접했다고 밝혔다. 사례자가 아버지와 친척들을 데리고 경상북도 경주시로 여행을 갔으며, 진현동 불국사를 먼저 방문한 다음 교동 교촌한옥마을에 있는 의상실에서 한옥을 입었다. 한 한식 카페에서 종업원이 떡을 만드는 걸 보고 아버지와 친척들도 떡을 만들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대한한의사협회를 찾은 사례자가[46] 아버지와 친척들에게 45분 뒤에 나오겠다고 말한 다음 황만기 부회장[47]을 만나 유튜브 채널에 연재할 목적으로 기획한 인터뷰를 진행했다[48]. 그는 비무장지대에 한의원을 세우는 포부를 밝혔는데, 이유는 통일 한국에서 한국인슬픈 역사를 치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에 위치한 임진각국민관광지를 찾아 케이블카를 타고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살펴봤으며, 장단역 증기기관차 옆에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웃집 찰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애도 자막.jpg}}} ||

여담으로, 이전 회차의 방송을 하루 앞두고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오프닝이 끝나자 마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애도하는 자막을 고지했다.


2.8. 375회[편집]


안녕하세요?
저희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음악가 부부랍니다.
평생을 악기와 함꼐한 만큼
시청자분들께 연주로 첫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이 곡 만큼 아름다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저희의 어느 멋진 날 함께 보러 가볼까요?

- 프롤로그

  • 타냐·샤샤 부부: 본명은 각각 스키바 테티아나와 코냐힌 알렉산드로. 우크라이나 출신. 둘은 자국에 있는 한 학교를 다니다 샤샤가 타냐에게 청혼했고 1998년에 혼인했다. 샤샤가 2002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군산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갔고 타냐도 남편의 권유를 받아들여 한국으로 건너와서 악단에 들어갔다. 출연 당시 전라북도 군산시 나운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 4명을 두고 있었다. 자택에서 나온 부부가 를 타고 동흥남동에 위치한 한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해 공연 활동을 했다. 센터장은 어르신들이 문화 공연 관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몸과 마음이 안 좋은데 사례자 부부가 정서적으로 지원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부인이 나운동에 있는 한 음식점으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에 자택에서 부인과 시어머니가 식사를 만들었고 자녀들이 일어나자 일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자녀들이 학교에 가자 시어머니가 초콜릿을 먹었다. 시어머니는 러시아군이 자국을 침공하자[49] 아들이 보낸 초대장을 받고 첫째 자녀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받은 끝에 한국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하지만 부인의 어머니는 2018년에 뇌졸중 진단을 받은 상태라 아버지가 직접 병간호를 하고 있었기에 한국으로 데려올 수 없었다고 한다[50]. 부부가 지곡동에 위치한 군산예술의전당에서 연습을 했는데, 둘은 오랜 기간 공연단에서 활동한 공로로 2010년문동신 시장이 준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이명진 지휘자는 둘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연주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남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걸 좋아하므로 지역 사회에 밝은 에너지를 낸다고 밝혔다. 아침이 되자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이 복장을 준비한 다음 언어심리센터를 방문했는데, 알고 보니 둘은 청력에 이상이 발견되어 셋째만 인공와우를 이식받았다는 것. 나중에 넷째도 수술을 받아서 어음 처리기를 사용하고 있었다[51]. 셋째는 최소한의 청력이 남아 있어서 보청기를 사용한다고. 둘은 출연 당시 언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언어재활사는 자국의 아이가 인공와우를 써서 저 정도 수준로 들었으면 치료를 그만 둘 수 있었으나 사례자 부부의 두 아들은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유창하지 않아서 어휘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미 한 달 전에 부인이 셋째 아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2가에 위치한 한 보조기구 업체를 방문해 새로 나온 인공와우를 착용했으나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가격이 한 짝에 2000만 원이나 된다고. 자택에서 셋째 아들이 갑자기 에그타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는 제빵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성당에 취업하라. 둘째 아들과 할머니, 넷째 아들에게 자신이 만든 걸 직접 줬고 PD들에게 까지 봉지째로 증정했다. 첫째 아들이 조촌동에 위치한 군산시청을 방문했는데, 그는 이곳에서 인턴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다자녀 가구 버프를 받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시청에서 재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자재를 정리한 다음 방문객들에게 문서 작성을 안내했는데, 주무관은 사례자의 첫째 아들이 외모가 다른 점 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5살 때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는데, 그는 초등학생 때 자신을 다르게 상대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부모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주무관은 외모와 이름이 달라도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며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저녁이 되자 첫째 아들이 할머니와 함께 군산예술의전당을 방문해 부모가 출연한 공연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참사
더 큰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여담으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을 애도하는 내용이 2주 연속으로 방송되었는데, 초반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고지한 이전 회차와 달리 출연자들이 방송 종료 직전에 직접 애도를 전했다.


2.9. 376회[편집]


  • 가넴: 본명은 가넴 마타르 이브라힘 사우둔 알가히티 알샤마리.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2015년제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52] 대구에서 살다 한 내국인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영등포구 양평동5가에 위치한 현대엔지니어링[53]에서 재직하고 있었다. 밤에 사례자가 남자친구와 함께 용산2가동에 위치한 한 동향민들의 자택을 방문했는데, 이들은 정유 업체[54] 직원, 치과 의사, 성형외과 의사 등등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양고기로 음식을 만들어서 식사했는데,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국의 문화에 따라 커피와 단 음식을 먼저 준 다음 식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례자가 귀가 도중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한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서 사업주를 만난 다음 한 분식집으로 가서 사업주를 만났으며, 마트 사업주까지 만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나 싶었다. 하지만, 한 카페로 가서 종업원들을 만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한 그가 복장을 준비한 다음 집으로 나와[55] 시내버스를 타고 양평동에 있는 직장으로 가서 업무를 수행했다. 밤에 카페를 찾아서 청소와 설거지를 도왔는데, 그는 자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유가 뭔가 했더니 자국내에서 커피와 대추야자만 먹던 문화에서 서양식 디저트를 먹을 정도로 문화가 개방적으로 변했기 때문. 업무 특성상 자국에서 근무해야 하면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고 가겠다는 것[56]. 관악구 봉천동 한 편의점 에서 한 지인을 만난 다음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해 지인이 살 수 있는 집들을 알아보았다. 이 내리는 어느 날 공덕동에 위치한 한 이발소[57] 자신의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다음 면도까지 했다. 휴일에 카페로 가서 수납장을 고치려고 전동 드라이버를 꺼냈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인테리어 업체에 도움을 청했다. 사업주가 카페로 가서 수납장을 고쳤는데, 원래 자신이 찾아가서 고치면 5만 원을 받는다고 하나 사례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무상 수리를 해줬다고 밝혔다. 사례자가 인테리어 업체에서 사업주의 지도에 따라 수납장을 만든 다음 식사를 했다.


2.10. 377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2년 상반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2년 하반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월을 맞이하여 레스 부부와 카일리 부부의 사연을 결산한 다음 이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송되었다.


2.11. 378회[편집]


본 에피소드는 미라클 작전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출신 특별 기여자 157명이 울산광역시에서 정착한 지 1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에피소드이다. 본 에피소드의 해설은 박소현 아나운서가 담당했다.

* 여성: 제가 행복해요. 여기에선 놀 수 있어요. 웃을 수 있어요. 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마 못 했을 거에요.

2021년 8월

탈레반이 돌아왔다.

일상이 된 폭력과

여성이 지워진 거리

* 카불 시민(민병대원): 타락한 자, 외세에 부역한 자, 남의 것을 탐한 자는 단죄 받길 원해요.

이후 이어진 생을 건 탈출

한국인과 일했단 이유만으로

탈레반의 표적이 된 사람들

'기적'이라 불린 수송작전 끝에

391명의 가족이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여성: 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기뻤어요, 힘들어도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도착한

낮선 한국땅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 여성: 우리 지금 울산에 살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한반도 동남쪽의 끝 넓은 동해 바다를 품은 동네 울산 동구 서부동. 동네 한복판 야트막한 언덕 위에 주민들조차 존재를 잘 모르는 아파트 한 동이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평화로운 주말 오후에 트럭 한 대가 아파트로 들어왔다.

인도식 쌀에 각종 향신료까지 이국적인 식재료가 한가득이다.

* PD: 뭐 사셨어요?

* 남성: 할랄 고기 샀어요. 근처 마트에선 할랄 고기를 팔지 않아요.


이 아파트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을 위해 이곳에선 일주일에 한 번 간이시장이 열린다.

* 남성: 이건 얼마예요?

* 우마르(상인): 3개에 2천 원이에요. 6킬로그램이에요.

* 남성: 이건 씨앗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 우마르: 그게 안 되면 이걸로 해요.

* PD: 장을 다 남자분들이 봐요?

* 우마르: 예. 남자들은 재료를 준비하고 여자들은 요리해요. 바깥일은 남자가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해요.


남녀가 유별하던 문화 때문에 주말 장보기는 남자들의 몫. 신중하게 시금치를 고르는 앳된 얼굴의 소년들도 보인다.

* 무스타파: 세 개. 대추야자, 바나나, 시금치. 야채 샀어요. 바나나, 그리고 이게 뭐지?

* 압둘라: 이거 차 마실 때 같이 먹으면 맛있어요.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아들들이 대신 장보러 왔어요.


* 압둘라: 누나, 3만 2천 원.

* 조흐라: 감사합니다. 고마워.

* PD: 동생들이 이거 사 온 거예요?

* 조흐라: 네.

* PD: 동생들이 잘 사온 것 같아요?

* 조흐라: 잘 사온 게 아니에요. 지금 보면 노란색 잎이 조금 있어요.


칭찬을 기대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영 머쓱합니다.

* PD: 맛있어요?

* 압둘라: 맛있어요.


한 살 터울 누나는 그런 동생이 귀엽기만 하다. 장 보는 건 좀 서툴러도 운동은 수준급이라는 형제. 귀여운 막내까지 나섰다. 카메라 앞이라고 안간힘을 쓰는 삼 형제의 모습이 엄마와 누나들은 그저 재밌다.

* PD: 조흐라는 왜 안 해요?

* 조흐라: 저는 힘이 없어요.

* PD: 힘이 없어요?

* 조흐라: 네. 힘이 없어요.


한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나 다를까요? 동생들은 힘이 뻗치나 보다. 병원에 갔던 아빠가 돌아왔다. 이 집 남자들 다 아빠를 닮았던 것이었다. 돌아온 아빠를 향해 앞다투어 근육을 자랑하는 아들들.

* PD: 든든하시겠어요. 아들들이 힘이 세서.

* 아버지: 조금.

* PD: 많이가 아니고요?

* 아버지: 많이 아니에요.


여느 집과 다름없는 소소한 일상.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 조흐라: 아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간호사로 일했어요. 바그람 한국병원에서요.


아프가니스탄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됐던 바그람 한국병원. 45명의 현지 의료인과 직원들이 한국에서 파견된 의료진과 함께 일했다.

* 조흐라: 제가 자랑스러웠어요. 아빠는 가난한 사람 많이 도와줬어요.


하지만 자랑스러웠던 아빠의 직장이 단란했던 가족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거리엔 총성이 빗발쳤고 생을 갈망하는 절규가 온 도시를 채웠습니다.

* 아동: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특히 한국인과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조흐라의 아빠와 동료들은 탈레반의 보급 공격 대상 1순위였다.

* 조흐라: 너무 무서웠어요. 가족들과 아이들, 어머니, 오빠 동생도 죽을 수 있었어요.


삶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누구보다 가슴 아픈 건 아마도 땅에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 조흐라: 우리 아프가니스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저도 몰라요. 죄송합니다.


작전은 긴박하게 진행됐다. 한국 정부는 아프간 협력사업에 함께 했던 현지 직원과 그들의 가족 391명을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라 명명해 구출에 나섰다.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된 지 정확히 열흘째 되던 날 그들은 배낭 하나 둘러맨 채 일생을 살아온 고국을 떠나야 했다.

* 조흐라: 가장 기억 나는 날이에요. 잊을 수 없어요. 너무 기뻤어요. 힘들어도요.


사선을 넘어온 한국땅. 이제 이 나라는 삶의 터전이 됐다.

* 조흐라: 제게 한국의 의미는 곧 '삶'이에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이 땅에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2022년 2월에 전체 가구의 약 40%인 29가구가 울산에 정착했다. 6개월간의 초기 정착 교육이 끝나고 울산의 한 조선소[58]에서는 일자리를 제안했다. 회사에서 그들을 위해 2년 후에 재개발하기 위해 비워둔 작은 사택 한 동을 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부동 주민이 되었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떠나온 후에야 보통의 일상을 찾았다.

* PD: 이건 뭐예요?

* 후세인의 부인: 무스타파의 사원증이에요.


지난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무스타파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후세인: 안녕하세요?

* 후세인의 동료: 안녕하세요?


침묵이 흐르는 두 사람의 출근길. 부자 사이에 대화가 없는 건 국적 불문인가 보다.

* PD: 무스타파가 혼자 빨리 가네요?

* 후세인: 빨리빨리 가요. 무스타파는 젊으니까요.

* PD: 아빠는 힘들어요?

* 후세인: 조금 힘들어요.


매일 다니는 이 길이 익숙해지는 데까지만 한참이 걸렸다. 그래도 이젠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도 생겼다. 조선소 내에는 140 여 개의 협력업체가 있습니다. 그중 열두 개 업체에서 28명의 아프가니스탄 가장들이 일을 하고 있다.

* 직원들: 안전벨트 착용 좋은가[몬더그린]

? 안전벨트 좋아[몬더그린]. 지키자! 지키자! 지키자!


* 후세인: 일이 조금 힘들기는 해요. 왜냐하면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서요. 처음 해보는 일이에요.


선박용 대형 엔진 조립을 맡고 있는 후세인 씨. 50이 넘어 처음 시작한 일은 좀처럼 몸에 익질 않는다.

* 후세인: 어떤 날엔 손을 다치고, 어떤 날엔 팔을, 또 어떤 날엔 머리를 다쳐요. 그래도 좋은 나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며 일도 하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기뻐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년에게도 익숙지는 않은 일이다.

* PD: 처음 하는 일인데 어렵지는 않아요?

* 무스타파: 조금 어려워요. 그래도 아빠와 같이 있어서 괜찮아요.


가운 대신 작업복을 입고 주사기 대신 공구를 든 아빠의 모습이 아들은 낯설기만 하다.

* 무스타파: 우리 아빠 아들 밥 먹어요. 옷 입어요. 돈 없어요. 이렇게 나도 일해요. 아빠 같이 도와줘요.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일상. 기적의 구출 뒤에도 삶은 이어진다. 또 다른 협력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지아우딘 씨. 그는 선박에 들어가는 프로펠러의 세척을 담당하고 있다.

* 최해정(여직원): 땡큐, 감사합니다.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통역사로 일했던 그는 쉬는 시간마다 분주하다.

* 지아우딘: 네, 감사합니다.

* 최해정: 감사합니다.


* 최해정: 조각. 조각. 차이는 여러 가지 차이. 그리고 뭐 책임. 본인이 가족을 책임져야 하잖아. 그러니까 책임 그게 책임이야.

* 지아우딘: 책임이 많이 있어요.

* 최해정: 그렇지.

* 김태욱 팀장: 우딘이는 한국어를 확실하게 배우네.

* 지아우딘: 제 선생님, 한국어 선생님이에요. 보통 남자들은 이야기를 조금 해요. 우리 누나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저도 공부하려고 누나랑 이야기 많이 해요.

* 최해정: 처음엔 저도 조금 꺼려지긴 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왔으니까요. 저희가 이슬람 국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잖아요. 근데 겪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얘기도 해보고 하니까요.

* 김태욱 팀장: 실제로 보면 우딘이가 여러 가지 일을 만능으로 잘해요. 출근하자마자 공부도 하고 일할 떈 일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부지런한 지아우딘 씨의 하루. 그에게 삶을 열심히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2017년 10월 카불의 외교 공관 지역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날의 현장에 지아우딘 씨도 있었다.

* 지아우딘: 저와 남동생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어요. 갑자기 엄청 큰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동생을 보니 매우 크게 다쳐있었어요.


공무원이었던 동생은 그 길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지아우딘 씨도 크게 다친 건 마찬가지.

* 지아우딘: 어떨 땐 손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요. 왜냐하면 신경계문제가 생겼거든요. 잡을 수 없어요.


그는 불편한 몸으로 고향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작은 수첩엔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인생이 있었다.

* 지아우딘: 요즘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한국에서 요즘은. 저는 굳게 믿어요. 더 평화롭고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요. 우리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수송기에 태워졌던 막내는 조잘조잘하고 싶은 말이 많은 수다쟁이가 되었다. 열심히 산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아내는 제작진이 먹을 음식까지 넉넉히 차렸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찾기 위해 참 멀리도 왔다.

* 지아우딘: 마리암, 오늘 하루는 어땠어?

* 마리암: 오늘 친구 생일이라 파티했어요.

* 아딥: 저는 놀이터에서 놀았어요.

* 자이납: 친구 집에 놀러 갔어요.


여섯 식구의 무사한 하루하루가 아빠는 그저 고맙다. 모든 게 빠른 아이들은 한국 문화도 스펀지처럼 쑥쑥 흡수했다. 윷놀이를 좋아하는 셋째는 종일 아빠만 기다렸다. 그런데, 둘째딸의 표정이 심상태 않다.

* PD: 자이납은 같이 안 해요?

* 자이납: 몰라요.

* PD: 기분이 안 좋아요, 지금?

* 자이납: 몰라요.

* 지아우딘: 자이납은 기분이 조금 안 좋아요.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제 생각에는 자이납에게 스트레스가 있는 것 같아요. 고향에선 괜찮았어요. 친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여기에 와서 조금 바뀌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빠가 야속한 자이납. 급기야 자리를 떠나버린다. 애쓰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나 보다. 안전하고 아름답지만 낯선 한국 땅. 아이들을 위해 떠나온 결정이 도리어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이 낯선 땅을 익숙한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일. 서부동 사람들의 진짜 이웃이 되기 위해 아프간 아버지들은 매주 토요일 밤 동네 주민들과 방범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1년째 함께하고 있는 이웃들.

* 정영완(방범대원): 커피가 아니라서 맛있어.

* 남성: 이거 뭐예요?

* 박원철(방범대장): 건강음료에요.

* 남성: 한국 차예요?

* 김봉수(방범대원): 나쁜 거 줄까 봐서 그래? 사랑합니다.

* 박원철: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 조수호: 일부 주민들이 예전에 아프간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반대했었죠.

* 박원철: 연락이 와서는 봉사활동을 같이 하면서 적응해나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3명씩 계속 오고 계세요.

* 김봉수: 빠지지도 않고 꾸준하게 잘 나와요. 춥거나 덥거나 비가 와도 계속 나오는데요.

* 정영완: 요즘 이렇게 자주 만나고 하니까 100% 의사소통은 어려워도 서로 통하고 좋아요.


다음날 아파트에선 자이납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언니들이 모였다. 버스까지 타고 어딜 가는 것일까? 오랜만에 외출해 신난 아이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 모습이 여느 소녀들과 다르지 않다. 정착 초기부터 함께 했던 통역사 선생님도 오랜만에 이들을 만나러 왔다. 좋아하는 언니들과의 외출에 자이납의 얼굴에도 조금씩 미소가 번진다. 오늘의 메뉴는 바로 떡볶이. 아프간 소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다.

* 김호산나(통역사): 한국에 온 지 1년 됐잖아요. 한국에 와서 힘든 건 없었나요?

* 여아 1: 수업이요. 한국어를 배우는 게 어려웠어요.

* 여아 2: 사람들은 처음에 히잡을 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봤어요.

* 김호산나: 안 좋게 봤어?

* 여아 3: 그건 아니고 어디서 왔냐고 다들 물어봤어요.

* 김호산나: 다들 궁금해했구나.


같은 시간을 보낸 소녀들. 그렇기에 서로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 김호산나: 아프가니스탄이 그립지 않아요?

* 여아들: 엄청요. 많이 그리워요.

* 김호산나: 뭐가 제일 그리워요?

* 여아들: 친구들, 가족들, 삼촌하고 고모.

* 여아 1: 저는 가족들 보고 싶어요. 가족들 봐요.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요.

* 김호산나: 가족들 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거야?

* 여아 1: BTS 없어요. 블랙핑크 없고.


자이납의 엉뚱한 대답에 웃음이 터진 언니들. 어쩌면 어른들의 걱정 뒤로 자이납은 자기만의 단단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 자이납: 기분 좋게 살고 싶어요.

* PD: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을까요?

* 자이납: 가족들이랑 같이 있으면요.

* PD: 자이납의 가족이 소중해요?

* 자이납: 네.


조흐라도 수많은 인생의 항로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 PD: 지금 어디 가요>

* 조흐라: 지금 학교 가요. 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싶어요. 겨울방학에도 학교에 갔어요.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는 새로운 꿈도 자랐다.

* 조흐라: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 알았어요. 한국에서 오랫동안은 살고 싶어요.


만 19세에 한국에 들어온 조흐라. 대학에 갔어야 할 나이지만 한국 적응을 위해 지난 1년을 고등학교에서 보냈다. 하루 네 시간 조흐라는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낯선 언어를 익혔다. 두 명의 아프간 친구들도 함께 했다.

* 조흐라: 100그램에 천 원이에요. 그럼 이거 삼천 원 어치 주세요.

* 정영은(교사): 네. 여기 있어요.

* 조흐라: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 정영은: 우와, 잘했네요.


언어를 배우며 막연했던 이 땅에서의 삶도 조금씩 선명해졌다.

* 정영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뭘까?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 여학생 3: 밥 있어요. 안 먹어요. 그릇에 넣어요.

* 정영은: 애들이 서로서로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엄청 크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그래서 맞춰가려고 하는 것처럼 다들 열심히 했어요. 이제 이번 주가 마지막 수업이에요.

* 여학생들: 너무 슬퍼요.

* 정영은: 대학 생활하면서 마주치게 됐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친구들을 좀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한국어가 더 쉬워지고 아이들도 더 즐거울 것 같아요.


때로는 인생의 가파른 계단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치열했던 고등학교에서의 1년을 마무리하고 올해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

* 조흐라: 제 자리 저기예요.


이 교실은 막막한 일상의 위로였다.

* 아이샤: 영어 교실이에요.

* PD: 재미있었어요? 안 어려웠어요?

* 조흐라: 괜찮았어요.

* 아이샤: 친한 선생님들이 있었어요. 친구들도 있었어요.

* PD: 생각날 것 같아요?

* 아이샤: 네. 친구들이랑은 조금밖에 이야기를 못 했어요. 많이는 못 했어요. 학교에 와요. 공부해요. 한국어 수업 때문에 또 다른 교실에 가요.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I miss my friends and my kind teacher.

친구들이 그리워요. 친절한 선생님도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속했던 공간. 그렇기에 아쉬운 것도 오래도록 기억날 일도 많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듣고 또 한 발 나아갈 준비를 해본다.

101호 생활지원센터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난 1년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 전반을 도와온 구청 산하지원사업팀.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 놀란 학생과 학부모가 모였다. 아프간에서 대학교육이 무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 김지수(사회복지사): 한국의 대학교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어요. 대학에 드는 비용은 집에서 내야 하는 게 원래 맞아요. 한국에서는. 320만 원 단액이 너무 부담이 되실 거예요. 일단 대출이 어렵다고 불가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 자말: 지금 여기 아이들에게도 물어보면 아무도 처음에 대학 교육을 받을 때 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대요.


200만 원 남짓되는 월급으로 온 가족이 생활하는 이들에게 300만 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은 제법 큰 부담이다.

* 김재현(통역사): 지금 상황에서 학비를 감면받을 방법은 한 가지예요.

* 김지수: 여러분이 한국어 성적을 잘 받는 거예요. 사회통합 프로그램 또는 토픽 성적을 잘 받아야 그 점수를 제출했을 때 학비 감면이 많이 돼요.


꿈 뒤에 놓인 현실의 무게가 조금 버겁다.

* 조흐라: 저는 걱정해요. 돈 때문에. 아빠는 돈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세요. 우리 아들, 딸 공부할 수 있어서 아빠는 괜찮대요. 우리 생각에는 아빠가 우리 기분 좋아지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아빠는 회사에서 매우 힘들 거에요. 우리는 아빠 걱정을 해요.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걱정하느라 바쁜 밤이 지나간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아빠들은 어김없이 출근을 한다.

* 자리프: 지금 저는 출근해요. 아직 우리 아이들은 자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PD: 네.

* 자리프: 네. 안녕히가세요.


이 새벽에 분리 배출까지 하는 아버지. 아빠라는 이름으로 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

* 남성: 일하러 가요.


* PD: 피곤하지 않으세요?

* 마루프: 조금이요. 괜찮아요.

* 쉬르잔: 우리는 이 일을 해야만 해요. 돈이 필요하니까요. 나한테는 가족들이 있거든요.


이제는 익숙해진 작업복을 입고 아빠는 바삐 발걸음을 청한다.

* PD: 아이샤, 어디 가요?

* 아이샤의 어머니: 유치원에 가요. 아이샤는 한국어를 많이 잘해요.


아빠들이 출근을 마치면 아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 모습이 우리네 엄마들과 꼭 닮았다. 아빠와 동생들이 떠나면 이제는 초등학생들의 차례이다.

* 남아: 어제는 수학 공부를 했어요.

* PD: 우와, 잘했다.

* 남아: 쉬워요.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건 엄마들의 몫. 오늘의 당번은 사지아 씨이다. 사지아 씨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누구보다 반갑다.

* 사지아: 줄을 서서 오렴. 빨리 건너고. 많이 웃어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올 때 늘 웃어요. 많이 재미있어해요.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왔어요. 한국 아이들 때문에.


엄마는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

한자리에 모인 엄마들. 아빠와 아이들이 떠난 집을 엄마들은 바느질과 담소로 채운다.

* 여성: 배워두면 언젠가 필요할 거야.

* 칼리다: 바지 입어요. 그 위에 이 옷 입어요.


손재주가 좋은 아프간 여성들.

* PD: 정말 예뻐요.

* 여성: 예.

* PD: 직접 만든 거예요?

* 여성: 네.


알록달록 화려한 빛깔이 아프간 여성들의 웃음과 꼭 닮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틀림없는 기쁨이지만 속에도 고민은 자리 잡고 있다.

* 사지아: 집에서 생각해요. 여자들 같이 이렇게 일해요. 그러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일주일 내내 일하고 싶어요.


작지만 어쩌면 너무나 큰 소망. 엄마는 용기를 냈다.

* 사지아: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하고 싶어요. 이렇게 일할 수 있어요?

* 편의점 주인: 아르바이트요?

* 사지아: 네.

* 편의점 주인: 구했어요.

* 사지아: 네. 감사합니다.


* 사지아: 안녕하세요? 저는 아르바이트하고 싶어요. 일할 수 있어요?

* 슈퍼마켓 주인: 자리가 없어요.

* 사지아: 없어요?

* 슈퍼마켓 주인: 네.

* 사지아: 네. 감사합니다.

* 슈퍼마켓 주인: 안녕하 가세요.

* 사지아: 네.


* 사지아: 편의점, 빵집, 마트에 가요. 일하고 싶다고 말해요. '안 돼요. 일 없어요.'라고 대답해요. 다음에 한국어 공부 많이 많이 해요. 말하기 더 잘하게 되면 다음에 또 갈 거에요.


그날 저녁에 남편 자말 씨가 일터에서 돌아왔다.

* 사지아: 잘 왔어요.


초등학생 자녀 둘에 대학 입학을 앞둔 큰아들까지 총 다섯 식구가 함께 사는 사지아 씨네. 성실하고 강인한 아빠도 어쩐지 요즘은 부쩍 힘에 부쳐 보인다. 소박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저녁시간.

* 자말: 마트에 갔는데 1+1 제품 때문에 조금 늦었어. 1+1 제품이 9천 원이었는데 나는 1개를 9천 원에 샀어.

* 첫째 아들: 만약에 진짜 1+1 제품이면 계산할 때 알림이 떠요.

* 자말: 안 그대로 마트 사무실에 가면 프로그램 설치해주겠다고 하더라.

* 둘째 아들: 프로그램으로 구매하면 할인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10만 원짜리를 5만 원에도 살 수 있어요.

* 자말: 그래. 그걸로 하면 할인 많이 받을 수 있더라.

* 둘째 아들: 그렇죠. 생각보다 할인을 많이 해줘요.


아이들은 걱정보다 더 똘똘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엄마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 사지아: 저는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해요. 공부 이 재밌어요. 다음에 일하면 돼요. 괜찮아요.


걱정 대신 희망을 품는 밤. 세상엔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환한 빛도 있다.

아파트 사람들이 대청소에 나섰다. 아이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 소로쉬: 오늘 파티 있어요. 그래서 예쁘게 해요.

* 다우드: 아프간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 같이 파티해요.


하나 둘 도착하는 손님들. 오늘은 아프던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다. 울산 정착 1주년을 맞아 고마운 한국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

* 진정화(한국어 강사): 하피즈 씨가 전에부터 집에 초대하겠다고 오라고 하셨는데 드디어 왔네요.


집안에선 자말 씨가 실력 발휘하고 있다. 카볼리라는 아프가니스탄 볶음밥도 손님상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 사지아: 아프간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많이 좋아요. 음식을 많이 해서 같이 나눠 먹으면 많이 많이 기분이 좋아요.


집에 온 손님과 음식을 나누는 건 곧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 믿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 남자 1: 먼저 가.

* 남자 2: 아냐. 너 먼저 가.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회사 동료부터 한국어 선생님까지 손님들이 차례로 들어온다.

* 자말: 잘 지냈어요?

* 남성: 좋습니다.

* 자말: SNS로 잘 보고 있어요. 활발하던데요. 아이들은 어때요?

* 남성: 좋습니다.

* 주민 1: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이에요.

* 주민 2: 한국말로 말하는 거 잘해요. 듣는 것도 잘해요.

* 진정화: 숙제했어요?


전날 밤부터 준비했다는 정성 가득한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각종 채소부터 빵과 고기 디저트까지 손수 만들었다.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프간의 식문화. 낯설 법도 한데 한국 손님들도 그 정성을 맛있게 즐긴다.

* 남성: 이거 디저트 맞아요?

* 주민 1: 옥수숫가루와 설탕을 같이 섞어요.

* 남성: 설탕 많이?

* 주민 2: 우리 같이 공부해요.

* 주민 3: 한국어 공부해요. 많이 어려워요.


낯선 땅에서의 1년을 살아낸 그들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오늘. 그 사이 한편에서 은밀한 봉투가 오간다.

* PD: 선생님, 이건 뭐예요?

* 남성: 러브 레터.

* PD: 러브 레터?

* 주민: 시크릿.


1년을 함께해 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감사의 편지를 준비했다. 설렘 가득했던 이삿날, 막막했던 첫 출근, 마침내 시작된 아이들의 등교. 그 순간을 함께해 준 사람들 덕에 낯선 땅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김병수 책임님께

지난 1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가족과

아이들을 챙겨줘서 고맙습니다.


함께 했기에 나눌 수 있는 서로의 지난 1년이 그래서 더 고맙다.

* 김창유(회사 지원팀): 저희가 1년 됐죠. 갑자기 159명의 가족들이 울산에 오면서 자녀들만 100명이 넘었거든요. 예방접종부터 시작해 교복 맞추기까지. 기타 등등 많은 힘든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러 자녀분들이 학교 잘 가고 지금 대학 진학도 한 분도 있으니까.

* 남성 1: 오늘이 저희 둘한테는 되게 기쁜 날입니다. 왜 울어 짜증나!

* 남성 2: 감수성 이상해.


그 눈물의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다.

* 지아우딘: 정착 초기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고 있을 때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와서 함께 놀게 했어요. 아이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덜 그리워하도록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해요.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

* 김창유: 1년 전만 해도 의사소통도 잘 안 됐고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인데 1년이 지나고 이제 아이들도 이렇게 잘 뛰어놀고 하니까 정말 좋습니다. 김병수 책임님도 그럴 거에요. 자녀들도 부인들도 한국 생활 잘 적응해서 우리 같이 울산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 여성들: 나는 집을 잃었어요. 나는 집집을 떠돌아다녔어요. 나의 하나뿐인 사랑이여 당신에게서 나는 의미를 찾아요. 나의 터전이여 수난 속에서 절망에 빠진 나의 터전이여 나의 터전이여 나의 터전이여.


* 주민: 고향 노래에요.

* 여성: 아, 고향 노래에요?


기쁘고 좋은 날엔 어김없이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 조흐라: 저는 제 조국을 사랑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것이 자랑스러워요.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항상 전쟁이 일어나고 좋은 지도자가 없는 것을 보면 너무 슬프고 화가 나요. 한국의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오랫동안 한국에 살고 싶어요.


울산에서 맞는 두 번째 봄.

* 지아우딘: 우리 이전에도 여기 왔었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자이납. 딸의 곁엔 아빠가 함께합니다.

고향에선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 지아우딘의 부인: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 남성: 네. 건강히 잘 지내죠?

* 지아우딘의 부인: 감사해요. 우리는 모두 잘 있어요.

* 지아우딘: 병원은 잘 다니고 있어?

* 남성: 수요일에 다녀왔어요.

* 지아우딘: 수요일에 갔다고?

* 남성: 네.

* 아딥: 삼촌, 저 이 빠졌어요.

* 지아우딘: 보여줘봐. 여기 보여요? 이가 빠졌어요.

* 남성: 와, 이제 어른이 됐네요.

* 지아우딘: 이가 좀 전에 빠졌어. 이제 7살이야.

* 남성: 여긴 이제 꽃들이 피기 시작했어요.

* 지아우딘: 아주 좋은 계절이 오겠네.


* 지아우딘: 제가 힘이 들 때면 우리가 처음 한국에 온 날을 떠올려요. 괜찮아, 다 괜찮아. 그 날을 잊지 말자. 여기 사는 동안은 꼭 기억하자. 행복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미래에도, 앞으로도.


아프가니스탄에선 새로운 나를 뜻하는 3월. 조흐라에게도 오늘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

* 조흐라: 대학교 가려고 준비해요.

* PD: 떨려요?

* 조흐라: 조금 떨려요.


* 김재현(통역사): 나도 한국에 왔을 때 도착하자마자 다른 한국인이랑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 잘 배우고 다른 사람한테 전달해야 해요. 입학 축하해요.

* 조흐라: 감사합니다.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아프간 학생들. 반액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등록을 마쳤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새내기가 된 기쁨을 마음껏 즐긴다. 기적 뒤에 놓인 현실을 참으로 씩씩하게 살아왔다. 앞으로의 시간은 또 어떤 모습일까?

* 조흐라: 내년에 제 삶의 모습이 어떨지 지금은 잘 몰라요. 앞으로 1년, 혹은 1년 이상 걸리겠지만 제가 원하는 것들을, 제 꿈을 이루게 되면 좋겠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이 노력할 거에요. 우리 처음에 울산에 왔을 때 저는 행복했어요. 지금도 저는 행복해요. 그날처럼.


* PD: 학교 가는 거 재밌어요.

* 여학생들: 네.

* PD: 어렵진 않아요?

* 여학생들: 아니요.


* 여성 1: 재밌어요.

* 여성 2: 어려워도 재밌어요.


높고 단단한 용기로 오늘을 살아가는 특별한 이웃들

그리고 그들에게 곁을 내어준 서부동 사람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에필로그



2.12. 379회[편집]


평화롭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세계 각국 구조대원들의 필사의 노력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를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튀르키예·시리아 지역에서
5만 명 넘는 사망자 발생
6000번이 넘는 여진으로
20만여 채의 건물이 파손되고
200만 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 굑체: 아빠! 엄마와 유미(고양이)는 어때요?
* 굑체의 아버지: 우리는 괜찮고 유미도 괜찮아.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아주 심각한 문제들이 있어.
같이 일하는 공무원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자녀 2명이
지진 잔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어.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지진 피해자야.
* 굑체의 친구: 처음 지진이 나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지진이 났을 때 환자들이 벗어나기 위해
병원을 기어서 도망간 사람도 있었대.
건물이 무너질까 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자원봉사에 동참한 부부
* 남성: 이거는 봄옷 같은데, 이것도 쓸 수 있나요?
* 굑체: 네네. 괜찮아요. 이거 진짜 괜찮을 거예요.
강진 다발 지역에 위치한 튀르키예
굑체의 생활 곳곳에 스며든 지진의 트라우마
본국을 돕는 모습에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고
* 굑체: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튀르키예 굑체 고향의 봄을 기다리며
- 프롤로그

  • 굑체: 본명은 굑체[59] 알툰. 튀르키예 출신[60].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K팝과 드라마로 한국에 관심을 가져 2017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에서 의과대학 인턴십 과정을 이수했다. 취업 이후 지인의 소개로 한 한국 남성과 사귀게 되었고 2022년에 혼인 신고를 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부광약품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부부가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전라남도 목포시 호남동 목포역에서 내린 다음 옥암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친척들과 만나 식사를 한 다음 죽교동 유달유원지로 갔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위치한 한 전원주택을 방문해 낚시하는 시민연합과 함께 자국으로 보낼 구호물품들을 선별했다. 이들이 보낼 물품들은 인천항에서 튀르키예로 가는 배에 실릴 거라고 한다.

사례자가 자신과 함께 대학을 다닌 차으르 아크데미르와 영상통화를 했는데, 그는 지진 이후 응급 환자들을 치료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 굑체: 절친, 뭐 해?
* 차으르 아크데미르: 무슨 일이야? 병원에 있었는데 나 상 받았어.
* 굑체: 무슨 상이야?
* 차으르: 지진 난 곳에 갔었잖아. 그런 거.
* 굑체: 가보니까 어땠어? 가서 뭐 했어?
* 차으르: 지진 발생 후 48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어.
환자들을 이송한 후에 조금씩 치료해줬어.
* 굑체: 그럼 응급 환자는 어떻게 응급 처치를 한 거야?
* 차으르: 다 응급 환자였어. 간호사도 없었고.
우리는 힘들지 않았지만 그들이 더 많이 힘들 거야.
지금은 많이 추운 것도 문제야. 많이 추웠거든.

알고 보니 1999년에도 이즈미트에서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국민이 많이 있다는 것. 집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유튜브에 접속해서 자국 소식을 확인했는데, 그녀는 가족들이 걱정돼서 아침마다 뉴스를 본다고 밝혔다. 스튜디오 촬영을 앞두고 아버지가 사는 곳에도 지진이 일어났으나 크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이 때 아버지가 사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굑체: 잘 지내시죠?
* 바키 알툰: 응, 잘 지내고 있지. 너는?
* 굑체: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아빠, 엄마는 어때요? 유미는요?
* 바키: 우리는 괜찮아. 유미도 괜찮고.
* 굑체: 튀르키예 지진 상황이 어때요?
* 바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아주 심각한 문제들이 있어.
같이 일하는 공무원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자녀 2명이
지진 잔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어.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지진 피해자야.
* 굑체: 한국 구조대가 거기로 갔는데 뉴스에 나왔어요?
* 바키: 그럼. 한국 구조대가 와서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줬지.
온 세계에서 도와주러 왔었고 다 방송에 나왔지.
한국도 그렇고 많은 나라에서 구조대원이 많이 왔었어.
많은 사람들이 구조됐지.
* 굑체: 그래요. 그럼 아빠 다음에 봐요.
* 바키: 그래. 그럼 잘 있어.

배우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소갈비로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신이문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방역에서 내렸으나 막장 환승 때문에 신림선 열차를 놓쳤다. 사례자는 근무지가 보안 시설인 관계로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음을 밝힌 다음 제작 장비를 PD에게 넘기고 본사로 들어갔다. 배우자도 를 타고 근무지로 향했는데, 그는 현재 거주지로 주소를 옮기기 전까지 근무지에서 10분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며 지금은 차를 타고 가도 1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가 목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40만 원으로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다 8달 동안 월급을 모아서 반지하방으로 주소를 옮겼다고 한다.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재규어·랜드로버 전시장으로 가서 전시된 차량을 청소한 다음 손님들과 비대면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손님들이 높은 금리로 인해 1년에서 1년 반 전에 구매하고도 차량이 한국에 들어온 뒤에 안 받으려고 한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밝혔다. 이네오스그레나디어를 출시하면 긴장해야 할지 모른다. 사례자는 지사장이 촬영을 허락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신약을 개발한 다음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게 그녀가 담당하는 업무라고. 업무를 마친 부부가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했는데, 이곳을 운영하는 한 남성이 2022년 1월에 사례자의 배우자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던 도중 사례자를 만났고 둘이 사귈 수 있게 도와줬다는 것.

처음 만난 을왕리에서
첫 눈에 반한 두 사람
뜨겁다 못해 불타는 연애를 하고
교제 9개월 만에 저희 부부 됐어요.

사례자가 갑작스럽게 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임상 연구를 하러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들은 의사의 조언에 따라 퇴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후에 PC 게임을 한 다음 식사를 하고 인터넷 생방송과 운동까지 했다. 주말을 맞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위치한 한 가전·가구 매장을 방문해 가구를 살펴본 다음 냉장고를 살펴봤는데, 휴대전화 길이로 냉장고의 길이가 90여 센티미터나 된다는 걸 예상했고 배우자가 인터넷으로 확인한 결과 91.3센티미터로 밝혀졌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여행사를 찾아 신혼여행지를 알아봤다. 둘은 9월 초에 혼인할 거라 배우자의 의지대로 몰디브에 다녀오려고 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여행비가 가장 비싼 지역이라[61] 발리[62]하와이로 다녀오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 나 앞으로 찾아오면 싸게 보내주마. 밤에 한 불멍카페를 찾아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13. 380회[편집]


이것은 《이웃집 찰스》인가? 《극한 직업》인가?
* PD: 큰일 났다.
제작진에게 닥친(찰스를 만나러 가는 길 불행
길 위에 버려진 제작진
먹고 살려면 걸어서라도 촬영장에 가야 한다.
이것은 비상식량.
이 길 끝에 우리의 찰스가 산다.
이것은 《이웃집 찰스》인가? 《극한 직업》인가?
자급자족(찰스 최초 산골 라이프
* 신화선:이 세상은 다 내 거야!
파키스탄 박현민
자연인 부부의 블루스

- 프롤로그

  • 박현민[63]: 본명은 무하마드 아밀. 파키스탄 출신. 16살 때 서울 올림픽을 접한 것을 계기로 1992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2005년에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2012년에 한 내국인 여성과 혼인했다[64]. 하지만, 고용주의 부당한 처우를 받아온데다 산업재해로 해고 처분을 당하자 산속에 있는 주택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출연 당시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2018년부터 농민 생활을 하다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반려동물들에게 사료를 준 다음 닭 2마리를 에 싣고 한 농가로 가서 주민에게 전달했다. 김시흥 이장이 응??? 사례자 부부에게 채소와 고구마를 주자 사례자 부부가 2년 뒤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부부가 2023년 4월부터 2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도구를 가지고 산속으로 갔는데, 야생동물들의 배설물이 있는 걸 발견했다.
경북 영양 자연인 신화선 씨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호환마마 같은 말을 남긴 채
더 깊은 산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PD: 산에 혼자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신화선: 산에 오는 게 좋아요. 칡을 캐서 끓여먹으면 혈관 청소도 되고 내 건강도 챙기고 남편 건강도 챙기면 좋아서 그래서 칡을 캐러 나온 거에요.

사례자가 칡을 캐고 있을 때 사례자가 마당에서 빨래를 말린 다음 자택에서 옷을 개고 있었다. 배우자는 이곳에서 살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신화선: 회사를 다니면서 아는 언니들한테 그랬거든요. 50세 넘기 전에 나는 시골 가서 오리, 키우고 즐기면서 살 거야라고 말했더니 돈도 안 되는 시골에 간다니 말을 말아라. [ruby(나는 자연이 좋아서,ruby=꺾이지 않는 마음)] 갈 거야라고 말했는데 진짜 남편하고 이렇게 와서 사니까 나는야 꿈속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자연인이다. 이 세상은 다 내 거야.

사례자가 밀크티를 만든 다음 배우자를 부르자 배우자가 집으로 돌아왔으며[65], 부부가 과자와 밀크티를 즐겼다.
부부가 차를 타고 서부리에 위치한 영양공설시장으로 가서 고등어를 산 다음 꽈배기 전문점으로 가서 꽈배기를 사먹었다. 반려견을 두고 있는 한 상인과 만났을 때 사례자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2021년에 안동성소병원[66]에서 협심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에 재발해서 뇌출혈로 이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사례자는 흡연과 음주를 한 적이 없음에도 이렇게 된 것을 슬퍼했다.

* 신화선: 협심증 시술 이후 가장 많이 바뀐 것이 이 인생은 같이 도전하고 항상 손잡으면서 "여보, 우리 행복하게 살자." 노후 생활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100세 시대인데 건강하게 살고 싶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게 다예요.

인생에 끝을 세우는 데 있어 늦은 때라고는 없다.

- 제임스 볼드윈

* 박현민: 집사람이 내가 아프고 난 다음에 일을 많이 하잖아요. 집에서 이불 속에서 앉아있을 수가 없어요. 누워 있을 수가 없잖아요. 당신한테 잘해주는 것 이 것도 내 마음이고 감사해요.

부부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소재 한 슈퍼마켓과 다세대 주택 사이에서 여행 전문가 임택을 만나 자동차로 세계일주를 한 사례를 살펴보았다[67][68]. 임 씨는 2014년에 퇴역한 마을버스를 매입한 다음 5개 대륙 48개국[69]을 일주한 바 있다. 차량에 보이는 글씨들 중에는 '나는 한국 사람과 혼인하고 싶다'는 글씨는 물론 딸이 쓴 글씨까지 볼 수 있었다.

* 박현민: 평택항에서 출발해서 베트남까지 갈 수 있어요?
* 임택: 당연하죠.
* 박현민: 캠핑카 가구에서 소리가 나요.
* 임택: 현민 씨가 고치면 되잖아요.
* 박현민: 운전하면 불안해요.
* 임택: 이렇게 걱정하면 여행 못 가요. 떠나야 할 이유보다 못 떠날 이유가 생겨요.

차량 내부는 맨 뒷 부분을 빼면 순정 상태를 유지했으며,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포함한 현지인들의 관심을 받았는지 각종 사진과 글씨들을 볼 수 있었다. 사례자의 배우자는 파나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경상남도 밀양시에 위치한 얼음골을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운 듯.

* 임택: 여행은 물 흐르는 대로 다녀야지 계획을 세우면 어긋나요. 여행은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닌 비우러 가는 것입니다.
* 박현민: 왜 마을버스로 세계 여행을 다녔어요?
* 임택: 제가 나이 50이 지나서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여행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 인생과 딱 닮은 물체인 마을버스를 발견한 거에요. 마을버스는 주어진 길만 돌다가 끝나는 거에요. 인생이.

임택 작가의 눈에 들어온 폐차를 앞두고 있던 마을버스.
정해진 길만 도는 마을버스 같은 우리의 인생.
너무도 닮은 모습에 시작된 도전.
반복되는 일상이라 해도 꿈을 잊어본 적은 없다.

* 임택: 왜 두 분은 세계 일주를 하려는 건가요?
* 박현민: 지금이 아니면 나갈 수가 없다. 나이도 있고 몸도 안 좋고 지금이 아니라면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사례자는 차량으로 스위스핀란드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부부가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으로 발길을 돌린 다음 전망대로 가서 서울 시내를 둘러보았다. 부부는 수도권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가지 못 한 곳을 이제야 찾았다고 밝혔다. 부부에게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는 사치일 뿐 부부가 자택에서 복장을 준비한 다음 캠핑카[70]를 타고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위치한 배우자 어머니의 자택을 찾았다. 배우자의 어머니는 지난 설날에 27만 원짜리 를 먹었다고 자랑했다. 사례자 부부가 배우자의 어머니에게 캠핑카를 보여준 다음 마산합포구 진동면 요장리에 위치한 광암해수욕장으로 갔다.

2년 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부부가 마당에서 고구마와 고등어를 구워먹은 다음 사례자의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다.

5년 전 이삿날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산골집
부부는 손수 살림살이를 날랐다.
* 신화선: 첫 날에 이 길을 걷는 기억.
우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구석구석 부부의 손길이 깃든
생애 첫 우리집.
내 집이 생긴 날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의 한 페이지

* 박현민: 내 집이라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고 좋고요. 이 집이 있어서 내가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신화선: 눈물이 난다. 둘이서 엄청 고생도 많이 하고 계약서 쓰면서 나도 집을 가질 수가 있네.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그렇게 많고 내 집을 갖고 나니 감사한 마음 뿐이에요.

* PD: 한국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고 있나요?
* 박현민: 내 꿈이 있기 때문에 무슨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성공할 때까지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아밀은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꿈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힘들지 않았다. 30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은 변했지만 무하마드 아밀이자 한국인 박현민은 오늘도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삶에 치여 마음 깊숙이 미뤄뒀던 각자의 꿈과 도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 여러분에게도 용기가 생기길 바랍니다.

- 강승화 아나운서

금보다 값진 경험을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 홍석천

여담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자 마자 진행자 3명이 사례자 부부의 캠핑카에 글씨를 남기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었다.
두 분의 도전에 박수를!!!

- 홍석천

할 수 있다!

- 강승화
건강하시고 좋은 추억 만들고 오세요.
LOVE PEACE

- 후지타 사유리

부부의 세계 일주 꿈을 이웃집 찰스도 응원합니다.

- 에필로그


2.14. 381회[편집]


  • 다니엘: 프랑스 출신. 니스 출신인 그녀는 케이팝에 관심을 갖게 되어 2016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웠으며, 언어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한 내국인 남성과 사귀고 2018년에 혼인했다. 시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성동구 성수동에서 살다 2022년 12월에 현재의 거주지로 옮겼다고 한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 1명[71]을 두고 있었다. 사례자가 딸과 함께 노점상에서 채소를 산 다음 집으로 돌아왔으며, 죽을 만들어서 시할머니[72]와 시아버지[73]에게 줬다. 아침 7시가 되자 딸이 일어났으며, 세수를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보낸 다음 요구르트에 땅콩 버터, 오트밀, 바나나를 넣어서 식사를 했다. 시아버지가 한의원으로 가자 사례자가 김치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아고 보니 시아버지의 지도로 김치볶음밥을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김치찌개에 고추장을 넣을 수 있냐고 물어보자 시어머니가 조금 넣어도 된다고 대답해서 고추장, 고춧가루, 고추, 대파를 넣었다. 시금치 나물무침까지 만들어서 시부모와 함께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딸을 데리고 귀가하다 에서 배우자를 만났다.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역 2번 출입구에서 나온 사례자가 한 학원으로 가서 프랑스어를 지도했으며, 집에서 시아버지가 딸과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사례자는 딸이 콘도그를 먹은 걸 알고 시아버지에게 과자를 많이 먹이지 말고 아이스크림도 영양 성분을 확인하고 먹이라고 면박했다. 알고 보니 프랑스에서 소아당뇨가 심각한 수준이라 자기 딸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것. 집에서 청소를 하고 옷까지 갠 사례자가 시어머니의 머리를 감긴 다음 말렸다. 저녁이 되자 족발막국수로 식사를 하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빨리 안마기를 쓰세요. 사례자와 시아버지가 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닌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일가족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 제부도를 방문했으며, 한 글램핑장에서 식사를 한 다음 딸의 생일을 축하했다. 이 때 시아버지가 사례자에게 선물을 준 다음 편지를 읽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15. 382회[편집]


  • 수하일리: 타지키스탄 출신. 자국이 한국과 많이 교류할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유학 생활을 시작한 그는 출연 당시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순천향대학교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신두리 안성팜랜드에서 사례자가 동물들에게 사료를 줬는데, 그는 자신의 부모가 사례자에게 일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사례자가 세 살 때부터 투병 생활을 하다 보니 왜소증 진단을 받았다는 듯. 축사를 청소한 뒤에 소를 관리했는데, 부모가 자신의 대학 진학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소를 판 일 때문에 부모 몰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삼은리에 위치한[74] 한 원예 업체를 방문해 유실수를 심은 다음 비료 표대를 옮겼다.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에 위치한 한 재봉틀 매장으로 가서 재봉틀을 알아봤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20만 원대에서 100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생계 목적으로 썼다는데, 결국 여름방학 때 고향으로 가지고 가겠다며 1대를 사갔다. 사례자가 자택에서 논문을 썼는데,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일하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여행사를 창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75].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한 다음 몸에 파스를 붙였다. 자택에서 나온 사례자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율금리에 위치한 한 의류 창고를 찾았는데, 학생이 이런 곳을 찾으면 보다 싸게 옷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점퍼 두 벌을 산 다음[76] 자택으로 돌아왔으며, ???: 우리 업체로 찾아오면 이보다 더 싸게 팔아줄게. 모로코 출신 남성 사드[77]가 사례자의 자택으로 찾아오자 사례자가 양구에 다녀오자고 제의했고 사드가 이를 받아들여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해안면 후리에 위치한 DMZ 펀치볼 둘레길 안내센터로 가서 숲길 등산 지도사를 만나 DMZ 펀치볼 둘레길을 탐방했다[78]. 지도사의 설명에 따르면 고도가 높은 곳이라서 5월 중순까지 이 내릴 때도 있다고 한다[79]. 그리고 등산로에 지뢰 위치가 표시된 철조망이 있는 이유는 일부 주민들이 풀을 캐러 가다 지뢰가 있는 곳을 밟는 사고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상으로 올라가다 보면 확산탄의 파편을 찾아볼 수 있다는데, 가칠봉에서 군사분계선까지 불과 700미터 떨어져 있다고 한다. 사례자는 자국도 1992년부터 5년간 내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장병들과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노력한 조상들의 얘기를 전해 들어도 전쟁을 겪지 않았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벙커를 살펴본 사례자는 한국이 겪었던 역사적인 부분들이 담겨진 장소라며 자신이 관광과 관련된 논문을 쓰고 있으니 더 좋은 여행 코스를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밝혔다. 송악면 역촌리에 위치한 한 건물을 방문해 강사의 지도를 받아 장구 연주를 배웠는데, 채가 장구를 관통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강사는 지도가 끝나자 마자 사례자에게 장구채를 증정했다. 자택에서 벽에 쿠션을 붙인 다음 발차기를 했는데, 그는 한국으로 건너온 뒤에 태권도를 알게 되어 배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수련했음에도 유단자가 될 수 있었다. 배방읍 공수리에 위치한 한 태권도장으로 가서 수련을 했는데, 수련생들이 격파 시범을 한 뒤에 사범의 지도를 받아 돌려차기를 배웠다. 유단자 주제에 돌려차기를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는지? 사드와 함께 양구군 동면 후곡리에 위치한 한 건물을 찾아 캠핑 전문가를 만난 다음 도끼 사용법을 배웠으며, 페더 스틱으로 불을 피웠다. 사드가 일하러 가야 한다며 먼저 귀가했으며, 사례자가 캠핑 전문가와 함께 파로호를 찾아서 카누를 타고 을 건넜으며, 나뭇가지로 텐트를 세우고 나무판으로 탁자를 만든 다음 불을 피우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16. 383회[편집]


구름 예쁘다.
하늘 보고 이렇게 자유롭게 숨 쉰 지
너무 오래됐어.
구름처럼 이렇게 떠다니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 속에 꼭꼭 새기자.
우린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거야.
조금 두렵긴 한데...
몽골 속담 중에 그런 말도 있잖아.
"두려우면 시작하지 말고
시작했으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이거 하러 온 거니까 잘해야지.
그래도 우리 셋이 온 게 정말 큰 힘이 돼. 그렇지?
맞아. 이제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니까
죽은 후에도 같은 곳에 묻혔으면.
우리 잘할 수 있어!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 프롤로그
  • 인쿠시, 사마[80], 아농거: 몽골 출신. 어릴 때부터 배구를 해온 인쿠시와 사마는 2022년에 선배인 염어르헝[81]한국의 프로 리그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농거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출연 당시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일정한 거주지 없이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배구부원들이 본교 동백관에서 훈련을 했다.

고단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나름의 보람과 기쁨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부원들이 자기소개서를 했으며, 인쿠시의 생일을 맞아 편지를 쓴 다음 케이크[82]를 준비해서 생일 잔치를 했다.
기댈 데라곤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던 세 사람

귀여운 내 친구
우리의 사랑을 받아라!
함께라면 우린 최강!

배구부 친구들을 만나며
세 사람의 세상은 그렇게 넓어져 갔습니다.
지구는 둥글어서
11명의 소녀는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부원들이 복장을 준비했는데, 아농거가 스마트폰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봤다[83]. 사마가 속한 반에서 한국사 수업을 진행했는데, 사마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업 시간에 원 간섭기삼별초의 난, 여몽전쟁이 나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인쿠시와 아농거가 속한 반에서는 일본어 수업을 진행했으며, 쉬는 시간에 자신이 쓴 글과 그림을 학우들에게 보여줬다. 학생들이 인근의 편의점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산 다음 본관으로 돌아왔다. 이들에게 맥랑시대를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후에 부원들이 체력 훈련을 했는데, 역기를 들었다 놓는 걸 반복한 다음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가는 걸 반복했다. 훈련이 끝난 뒤에 부원들이 2박 3일간 귀가했는데, 사례자들은 전술했듯 국내에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아 기숙사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이 때 주장이 사례자들에게 자신의 본거지로 가자는 제의를 했고 이를 받아들인 사례자들은 주장을 따라 목포종합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를 타고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로 가서 주장의 부모를 만났다. 주장은 강진군 옴천면 황막리에서 살고 있었고, 부모는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주장의 부모가 고기와 김치찌개를 준비한 다음 마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주장과 사례자들이 선수 생활과 관련한 대화를 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에서 외국 출신 선수가 1명만 나올 수 있다는 한국배구연맹의 규정 때문에 인쿠시가 주전으로 참가하는 일이 많았다고. 학교에서 부원들이 훈련복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했는데, 4월이 되면 리그가 시작되기 때문에 실전처럼 훈련을 한 것.

4월부터 시작된 정규 시합
'우승'이라는 결실을 위해 겨우내 흘려온 뜨거운 땀방울
이제 그 노력을 증명할 시간

목포과학대학교[84] 배구부원들과 연습 경기를 했는데, 초반에 실점하고도 연속으로 득점에 성공하다 실점이 이어졌다. 다행히 1세트를 25대 18로 이기자 2세트에서 아농거와 동료 2명이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85]. 2세트도 25대 16으로 이겼다. 여대생들이 여고생들에게 쳐발린 모습을 본 목포과학대학교 배구부 감독은 무슨 심정을 보였을까? 밤이 되자 기숙사에서 아농거가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한국에 온 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셋은 함께였다.
그리운 모든 걸 두고 찾아온 낯선 이곳에서
다양한 내일을 만난 지난 1년.
지치고 힘들 때 올려다 볼
파랗고 맑은 하늘은
여기에도 있었다.
* PD: 사마는 졸업 후에 어디에서 살고 싶어요?
* 사마: 한국에서요. 공부하고 배구도 하고 재밌는 게 있으면 괜찮아요. 행복해요. 그리고 딱 여기 있어서 나 그냥 여기 있어서 행복해요.
* 인쿠시: 여기 너무 좋았으니까 다시 돌아오고 싶을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친구들이랑 같이 살고 있잖아요. 잘 때도 같이, 운동할 때도 같이. 그런데, 이제 졸업하고 나면 혼자혼자 자기 하고 싶은 길로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엄청 슬플 것 같아요.
* 아농거: 몽골어로 그런 말이 있잖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잃으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고. 나한테 그런 잃으면 안 될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너희 둘이야. 너희랑 같이 한국 왔던 게 내가 살면서 했던 수많은 선택 중에서 가장 옳은 선택이라 생각해. 나를 도워줘서, 응원해줘서, 내 옆에 있어 줘서, 내가 울때 괜찮다고 말해줘서, 내가 웃을 때 같이 웃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사례자들이 휴일을 맞아 상동 평화광장으로 간 다음 자신의 진로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아직 나는 한참 더 커야 할 것 같은데
세상은 나에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나이.
별거 아닌 일로 꼬박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기도 하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열여덟
오늘의 내가 너무 어려워
내일의 나조차 알 수 없지만
울고 웃고 넘어지고 일어나며
나는 내가 되어 갑니다.
빛나는 이 모든 계절이 흐른 후
되돌아봤을 때
우리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 에필로그


2.17. 384회[편집]


  • 에밀리: 본명은 에밀리 슈나이더. 캐나다 출신. 원래 한 인디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다[86] 우울증 때문에 은퇴한 그녀는 2012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대구에서 한 내국인 남성[87]을 만나서 사귀다 혼인했다. 출연 당시 경기도 평택시 동삭동[88]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 3명[89]을 두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사례자가 볶음밥을 만든 다음 자녀들을 깨워서 식사를 했다. 이 때 사례자는 쿠팡친구 업무를 하고 있었으며, 하루에 수 백 건을 배송해야 한다고 밝혔다. 첫째가 등교를 앞두고 사례자에게 가정통신문을 보여줬으며, 사례자가 행정 정보의 공유 안내에 동의했다. 첫째와 둘째가 등교한 뒤에 셋째의 복장을 준비한 다음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세탁과 청소를 했다. 자녀들이 귀가한 뒤에 방에서 놀고 있을 때 사례자가 배우자에게 배달 업무 상황을 물어보고 배우자를 찾아가서 과일을 제공했다. 부부가 물품의 배송을 마친 뒤에 일가족이 [90]를 타고 세교동에 있는 어느 마트[91]로 갔으나, 길을 헤매는 바람에 10분대로 걸리는 거리를 1시간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고기와 음료, 채소, 유제품 등을 사고 13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했다. 1996년 가을 당시 배우자의 실종으로 인해 사실상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 된 어느 여성은 형편이 안 좋음에도 슈퍼마켓에서 56800원을 지불한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마트에서 산 음식들을 냉장고에 두어야 했는데, 이전에 산 음식들 때문에 둘 곳이 없어서 갈등을 일으켰다. 사례자가 파전을 만들어서 배우자에게 주었다. 이게 파전이야? 일가족이 짐을 챙겨서 차에 실었는데, 사례자가 가방 한 개를 엘리베이터에 두고 내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 가방이 그대로 있어서 찾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아산 공세리에서 아산만 방조제 방향으로 가야 함에도 직진하는 바람에[92] 차를 세운 다음 배우자가 직접 운전해서 예산군 광시면 장전리에 위치한 친척의 자택[93]으로 갔다. 사례자가 친척들과 함께 봄동을 무친 다음 일가족이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배우자의 정관수술(!!!)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한 비뇨기과 의원으로 가서 홍성우 전문의(일명 꽈추 형)를 만났다. 정액을 채취해서(!!!) 검사해보니 살아 있는 정자가 발견되었고, 전문의는 사례자가 피임약을 먹는 동안 배우자는 지금까지 무슨 노력을 했냐고 질책했다. 배우자는 정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내용을 등급 분류 없이 방송했다는 게 놀랍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알렉상드르 줄리앙
자택에서 일가족이 라볶이로 식사를 한 다음 사례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서 놀았으며, 배우자는 그 시간에 배송 업무를 수행했다.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에 위치한 한 딸기 농장[94]으로 가서 딸기를 수확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397회에서 근황이 소개되었는데, 방송 이후 정리정돈을 철저히 하게 되었고 한국에 온 뒤로 외로웠던 감정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배우자도 방송을 본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2.18. 385회[편집]


  • 브라이언: 본명은 브라이언 데이비스. 미국 출신. 출연 당시 나이는 55세[95]. 1988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2년간 선교사로 활동하다 귀국후 1992년에 한국을 다시 찾아 전라남도에서 영어 강사로 재직했다[96]. 1996년육군으로 입대한 이후 ROTC 과정을 거쳐 장교#미국로 임관했으며[97],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복무한 다음 2010년에 용산기지로 옮겨 정보장교로 복무를 시작했다고 한다[98]. 출연 당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캠프 험프리스[99]에서 대령#미군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일가족이 평택에서 살고 있고 사례자가 북아메리카 출신인 점과 자녀 3명을 두고 있는 점을 보면 지난 회에 나온 가족과 완전 비슷하다. 오전 4시 30분에 사례자가 일어나서 집으로 나온 다음 를 타고 영내에 있는 한 체력 단련실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난 뒤에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는데, 미군 기지답게 자국 화폐로 식권을 산 다음 동료와 함께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복무 장소로 들어갔을 때 배우자가 집에서 식사를 만든 다음 자녀들을 깨워서 식사한 다음 복장을 준비하고 통학버스가 있는 곳까지 보냈는데, 자녀들이 오전 7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2~30년 전 당시 고등학생들이 경험했던 걸 2020년대 초등학생이 경험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배우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고덕면 해창리에 있는 한 수영장으로 갔는데, 영내에 수영장이 있음에도 영외에 있는 민간 시설을 찾은 것은 한국어로 지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자녀들은 수영을 지도받았는데, 삼 형제가 각종 영법을 구사할 정도로 준수한 실력을 드러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면 자유형부터 할 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이 태어났을 때 안 좋은 사연이 있었는데, 배우자가 임신 테스트를 한 다음날에 사례자가 해외로 파병되었고 6개월 동안 아내 혼자 지내다가 27주만에 자녀들이 태어났다. 이후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다 첫째는 심장 질환과 안과 질환 때문에 수술을 두 번 받았고 둘째는 의료사고당해 죽을 뻔 했다[100]. 밤이 되자 사례자가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한 다음 분리배출과 욕실 청소를 했다. 일가족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앞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집한 다음 일주서로변에 있는 한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주말이 되자 사례자가 집안을 정리한 다음 배우자의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오자 로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배우자를 만나게 된 사연이 특별한데, 배우자가 국민학교 6학년생이었을 당시 한 학원에 다니다 영어를 지도하던 사례자를 만나게 되었고[101] 10여 년이 지난 2003년에 사례자가 정전 50주년 특집 청춘 신고합니다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고 여자와 사귀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 사례자는 방송 이후 배우자를 만났고 3년간 사귄 다음 혼인했다. 일가족이 를 타고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을 찾은 다음 배우자와 첫째 아들만 한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첫째 아들이 수영복 화보 촬영에 출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 사례자와 나머지 두 아들은 서울함 공원으로 가서 배우자와 첫째 아들을 기다리다 망원한강공원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삼각김밥을 사먹었다. 몇 시간 뒤에 배우자와 첫째 아들이 망원한강공원으로 오자 마포인트나루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산 고기 요리와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진라면 용기, 육개장 큰사발, 짜파게티 큰사발)[102]로 식사를 했는데, 사례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을 때 컵라면에 참치를 섞어 먺은 적이 있었고 동료들이 한 입만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397회에서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지역사회는 물론 부대에서 사례자 가족을 알아보게 되어 유명세를 얻었다는 후문이 알려졌다.


2.19. 386회[편집]


  • 스테파니아: 한국 이름은 한태리. 이탈리아 출신. 베네치아 출신인 그녀는 피겨 스케이팅[103] 선수로 활동하다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베네치아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 2015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다녔으며, 취업 이후 호텔 직원이었던 한 내국인 남성과 만나 사귀다 2023년 4월 23일에 혼인했다[104].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에서 살고 있었으며[105], 반려묘 1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혼인을 40일 앞두고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한 피트니스 업소에서 신체를 단련했는데, 이들은 2022년 12월에 신체적 특징이 부각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106]. 사례자가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숭례문수입상가를 찾아 배우자의 어머니에게 청첩장을 전달했는데, 배우자의 계좌번호만 작성되어 있는 걸 자신의 계좌번호까지 작성해서 완성했다는 것. 각 상인들에게 청첩장을 준 다음 배우자의 어머니가 준 그릇들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4일 뒤에 배우자가 욕실을 청소했으며, 6일 뒤에 부부가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한 결혼식장으로 가서 내부를 살펴보았다. 사례자가 배우자의 어머니와 함께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의상실로 가서 한복 제작을 의뢰했으며, 배우자의 친척들과 사례자의 동료들에게도 청첩장을 제공했다. 부부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청호동에 위치한 배우자의 외할머니 자택에 다녀왔으며, 사례자가 배우자의 어머니와 함께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마사지 업소를 방문한 다음 신사동에 위치한 한 사진관을 방문했다. 4월 3일에 사례자 부부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에 위치한 아들바위공원을 방문했는데, 어떤 사람이 소원을 빌고 바위를 향해 돌을 던지면 그것이 이뤄진다고 설명하자 배우자가 바위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한 부부와 함께 한 펜션[107]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홍은동에 위치한 배우자 부모의 자택으로 간 사례자가 배우자의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만든 다음 배우자의 아버지가 사례자에게 제삿상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사례자와 배우자 일가가 함께 식사를 한 다음 사례자가 배우자의 어머니에게 그릇을 증정했는데, 알고 보니 사례자가 한 공방에 가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 배우자도 그릇을 만든 다음 공원에서 영상통화로 사례자의 부모에게 자랑했다. 사례자의 어머니가 편지를 읽었으며, 4월 23일이 되자 사례자 부부가 혼인하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었다.


2.20. 387회[편집]


  • 아나벨: 본명은 아나벨 로페스. 에콰도르 출신. 2007년에 친구를 만나러 한국에 온 그녀는 2011년에 자신의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귀국했으나 2017년에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건너왔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살고 있었으며, 패션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었다. 주말에 한 연습실에서 모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지도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2005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이너 사업을 하고 있었고 미스 에콰도르 결승 진출자용 드레스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사례자가 종로구 종로6가에 위치한 동대문시장을 찾아 단추, 실, 망사를 샀으며, 집에서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패션쇼 홍보용 사진을 찍어야 하는 관계로 2주안에 의상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동구 사근동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로 간 사례자가 의류학과 강의에 출석했는데, 그녀는 가상 패션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 학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드레이핑[108] 실습으로 의상을 만든 다음 집으로 가서 패션쇼 의상 제작과 비대면 강의를 이어갔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 한 호텔에 있는 업소를 찾아서 시설을 살펴봤는데, 그녀는 5월에 이곳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제3자의 후원을 제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위치한 화엄사를 방문했는데, 패션쇼 준비로 인해 지친 심신을 안정화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밝혔다. 이곳을 찾아오는 외국인이 많다 보니 템플 스테이의 첫 과정부터 영어로 진행했으며, 식사를 한 다음 저녁 예불을 했다. 밤에 그녀가 자신이 영 좋지 않은 일을 경험했다고 증언했는데,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갇혀 있다 한 가게로 들어가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침에 자신이 만든 의상을 가지고 학교로 찾아가서 학우들과 함께 의상을 만든 다음 모델 에이전시 관계자들을 만나 모델 섭외를 논의했으며, 한 음식점에서 삼계탕으로 식사하고 학교로 돌아와서 비대면 강의에 출석했다.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한 남미 음식점으로 가서 여자친구와 함께 자국의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이촌한강공원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21. 388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2. 389회[편집]


6월을 맞아 오스틴 강과 다니엘 텐들러의 사연을 정리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해당 내용은 2.3번 문단2.6번 문단을 참조할 것.
여담으로, 이들의 근황을 소개하지 않은 대신 2022년 5월에 방송된 335회2023년에 개최된 세계 공영 텔레비전 총회에 출품되었다는 사실이 끝 부분에서 소개되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2년 상반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3. 390회[편집]


1907년에 시작한
가문의 양조장
대가 끊긴 가업을
부산에서 잇는다?
독일 수제 맥줏집 사장님
안드레아스
일도 장인어른도
* 안드레아스: 쉽지 않아요.
부산 사람들 너무너무 터프해요.
그렇지만 좋은 분들이에요.
마음이 따뜻하고요.
고향의 가족을 떠나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려가는
안드레아스의 이야기
맥줏집 막내아들 in 부산

- 프롤로그

  • 안드레아스: 독일 출신. 뮐도르프의 양조장[109]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15년중국 하얼빈공업대학으로 들어가 어학연수를 받았는데[110], 오리엔테이션 도중 한 한국 여성을 만나 5년간 사귀었다. 이후 사례자가 자국으로 돌아가서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배우자가 창업을 준비했으며, 이를 통해 양조장을 창업할 수 있었다. 출연 당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송정동에 위치한 맥주 전문점 툼브로이[111]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사하구 당리동에 위치한 한 채소가게로 가서 각종 채소들을 산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배우자가 방을 청소했으며, 배우자의 부모가 집으로 찾아오자 사례자가 피자를 만들어서 제공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 손님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의 맛을 물어보기도 했으며, 배우자가 사업장으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밤에 사례자가 맥아를 갈아서 맥주를 만든 다음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한 주점으로 가서 맥주 콘테스트의 심사 위원으로 참석했다.
* 라이언: 원래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지금은 부산에 살아요. 한 양조장의 수석 양조업자인데요, 여기서 제 입맛도 시험해보고 어떤 맥주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해요.
* 나승엽: 저는 대구에 사는 직장인데, 맥주를 좋아해서 집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거든요. 여기서 심사를 하기 위해 BJCP(맥주 심사 공인 프로그램)라는 자격증도 땄습니다. 내가 상상항 모든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수제 맥주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 대회는 맥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게 특징인데, 사례자는 한 참가자가 출품한 맥주를 마시다 발효 도중 문제가 발생해 탄산가스가 많이 생겼다는 지적을 했다. 이 대회에서 심사 기준대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대로 평가할 수 없다.
* 허정혁: 제가 이 분의 팬이에요. 이 분의 맥주를 좋아해서 만난 김에 한 수 배우고 있습니다.
* 사례자: 제 맥주를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동받았어요. 제 맥주를 마셔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건 좋은 일이에요. 하던 것을 계속 할지, 혹은 바꿔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니까요.
사례자는 대회가 끝난 뒤에 참가자들이 집에서 만든 맥주라서 품질 격차가 클 줄 알았으나 의외로 우수해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스튜디오에서 VCR을 본 배우자의 말에 따르면 사례자가 양조 서적을 오랜 시간 읽어보거나 자가다 갑자기 차를 타고 사업장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강서구 대저2동 김해국제공항에서 사례자의 부모를 기다렸는데, 2020년에 사례자 부부가 혼인 신고만 해놓고 혼례를 미루다 이제 와서야 혼례를 치르게 되어 한국으로 찾아온 것.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뮌헨에서 인천까지 11시간, 환승 대기에 3시간, 인천에서 김해까지 1시간 15분 합쳐서 15시간 15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사례자 부부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가서 맥주를 마셨으며, 서구 서대신동에 위치한 한 한식당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사례자의 배우자가 임신 사실을 밝혔다[112]. 이후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113] 중구 영주동 소재 한 호텔 예식장에서 혼례를 치뤘는데, 사례자는 자국에서 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찾아오지 않으나 한국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이 하객으로 찾아왔다며 한 자리에서 이 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 사례자: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사례자의 배우자: 저희는 서로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서로 돌봐주겠습니다.

- 혼인 선언문

* 사례자의 아버지: Alwas Be Happy(언제나 행복하렴.).

앞으로의 시간에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혼례가 끝나고 폐백을 했는데, 사례자의 아버지가 양반 다리를 불편하게 여겼으나 어머니와 함께 대추와 밤을 던지면서 사례자 부부의 득남과 득녀를 기원했다.

* 사례자: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야.
* 사례자의 배우자: 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고마운 이유는 너무 많아서... 나를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네가 없으면 난 살 수 없어.

우리가 살아갈 매일
쉽기만 한 일은 없지만
* 사례자의 배우자: 오늘 맥주 만들 때 문제 없었어?
* 사례자: 없었어.
이런 날도 있고요,
장인어른이 청소를 해주는 날도 있답니다.
* 사례자: 안 힘들어요?
* 배우자의 아버지: 안 힘들어! 괜찮아.
단단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 사례자: 저는 독일에서 왔고 그곳이 저의 고향이지만 한국도 제게 고향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2의 고향이 아니라 독일과 같은 수준의 고향이요. 시간 있을 때 부산에 오고 같이 놀자!


2.24. 391회[편집]


지중해 요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남자의 진심
그렇게 탄생하는 디저트.
그.러.나!
가오픈을 앞두고 벌어지는
험난한 상황들.
다치고 서툴고 너무 힘들다.
오고 또 오고
갑작스러운 손님 행렬에
실수 연발
진짜 나는 못 하겠다.
급기야 부부 싸움까지!
요리는 장인급, 장사는 초보급
아이든의(이란에서 온 맛있는 창업 이야기
- 프롤로그
  • 아이든: 이란 출신. 3대째 카이막을 만들어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튀르키예로 건너가 13년 동안 살다 한 한국 여성을 만나 혼인했고 2013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출연 당시 경기도 김포시 구래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중해 음식점 아이든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장에서 부부가 갑자기 멀쩡한 테이블을 해체했는데, 이유는 전 주인이 쓰던 8인용 테이블 대신 사례자 부부가 써야 할 4인용 테이블을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업장을 창업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사람들을 자택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다 카페를 창업해서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타일을 붙인 다음 2인용 테이블을 두기 위해 사이드 테이블을 철거했다. 하지만 전기톱이 필요하다는 배우자의 말에 사례자가 갑자기 공구매장으로 가서 그라인더[114]를 사왔는데, 이 때 한 커피 전문점 주인이 사례자 부부의 사업장으로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는 핸드드립 지도와 정수기, 피오에스 설치를 지원해줬다고 한다. 그라인더로 사이드 테이블을 철거했을 때 자녀들이 찾아와서 일을 도와주었다. 부부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튀르키예 요리 전문점들[115]을 찾아서 카이막[116]을 샀는데, 배우자는 카이막 전문점을 창업하기 위해 맛, 가격, 포장을 알아보려고 샀음을 밝혔다. 자택에서 일가족이 카이막을 먹었는데, 아들은 요구르트맛이 나고 끈적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했다. 배우자는 우유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진한 고소함이 있어야 진정한 카이막이라고 평가했다. 딸은 빵이 너무 질기다고 평가했다. 배우자의 설명에 따르면 튀르키예식 빵과 카이막을 먹어야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며 다른 나라식 빵과 카이막을 먹으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사례자도 본토의 맛이 아니라는 평가를 했다. 부부가 사업장으로 간 다음 우유로 카이막을 만들었는데, 거품이 많이 날 때까지 젓고 40분 ~ 45분 동안 국자로 부어주어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약한 불에 2시간 동안 끓인 다음 12시간 동안 냉장고에 보관하면 완성되는데, 이렇게 해서 만든 카이막은 전체 우유의 4%에 불과하다.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일 판매해야 할 카이막은 전일에 미리 만들 수밖에 없다. 부부가 튀르키예산 소품들을 배치해서 인테리어를 완성했으며, 배우자가 커피를 만드려고 뜨거운 물을 붓다 사례자의 손에 붓는 참사를 저지르고 말았다[117]. 철거한 8인용 테이블을 두 쪽 내서 4인용 테이블을 만들었으며, 자녀는 물론 배우자의 어머니까지 사업장으로 찾아와서 사업장을 살펴보았다. 배우자의 어머니는 테이블보를 여기저기에 붙이는 걸 반대한다며 고급 음식을 난전에서 파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시 개업을 10일 앞두고 연천군에 위치한 한 캠핑장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일가족이 사모바르[118]까지 가져온 다음 케밥을 만들어서 식사를 한 다음 배우자와 아들이 악기를 연주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고투몰을 찾은 배우자가 사라는 튀르키예식 소품을 안 사고 옷을 사려다 한 상점에서 바구니를 파는 걸 보려고 샀으나, 만 원대 제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다. 다른 상점에서는 카펫을 9만 5천 원에서 85만 원이라는 정신 나간 가격에 팔고 있었다. 배우자는 자신이 창업을 준비하는 동안 실업자 신세를 졌기에 수익이 없었고 사례자도 전 직장에서 임금체불을 당해 통장에 만 천 원밖에 남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 상점을 찾아[119] 열쇠고리 등을 샀는데, 배 그림을 보더니 한 구석이 깨진 모습이 보였다. 결국 상인이 이를 그냥 주었다. 사례자가 사업장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었는데, 튀르키예산 밀가루로 만들어야 튀르키예식 빵과 맛이 완전히 똑같다고 밝혔다. 그리고 카이막을 만들고 남은 우유를 써야 훨씬 더 푹신하고 부드러운 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배우자는 피데를 만들면 특유의 향이 나는데, 사람들이 향이 좋다고 말하는 건 이 향을 가리킨다고 밝혔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블랙커민 씨드[120]. 메네멘과 피데를 만든 다음 바닥에서 식사를 했으며, 카이막을 만들다 갈등을 일으키고 말았다. 부부가 개업을 준비하다 중고 매물이 올라오자 공영주차장 앞으로 가서 한 남성이 가지고 온 튀르키예식 접시를 인수했다. 일가족이 전단 배포를 논의한 다음 각 상권에 배포했으며, 오전 5시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한 다음 8시 25분에 배우자가 각종 재료들을 사왔다. 하지만 식기를 준비하지 못 해 아들에게 식기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심지어 올리브까지 안 사와서 배우자가 이를 사러 가야 했다. 9시가 되자 손님들이 찾아왔고 카이막과 메네멘 세트를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장사가 끝난 뒤에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25. 392회[편집]


  • 이브라힘: 본명은 이브라힘 코나테. 코트디부아르 출신.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프로 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유럽에도 진출한 적이 있는 젬베 연주자였다. 배우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한국 무용과 현대 무용까지 배우다 아프리카 댄스까지 접하게 되었다. 둘은 아비장공항에서 만난 다음 총 3년간 사귀다 2019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2020년에 혼인하고 자녀로 딸 2명을 갖게 되었다[121]. 출연 당시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2022년 7월부터 아프리카 음악 그룹 떼게레[122]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2주 연속으로 김포를 방문했다. ???: 우리 가게에도 찾아와 주세요. 사례자와 동료들이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한 다방에 모여서 공연을 하고 있는 동안 자택에서 배우자의 어머니가 두 딸에게 사과를 먹여주었다. 배우자가 공연장으로 가자 어머니가 자녀들을 돌봤으며, 배우자는 공연장에서 사례자와 동료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한 연습실에서 아메네[123] 구성원들과 함께 악기 연주를 연습했다. 아침 7시가 되자 사례자가 두 딸을 깨운 다음 몸을 씻어주고 복장까지 준비했는데, 부부는 자국에서 여자 아이들이 귀를 뚫어야 하는 관습이 있다고 밝혔다. 일가족은 2022년 12월에 사례자의 조국을 찾아 공연 활동을 한 다음 주민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는데, 심지어 돌잔치까지 했다고 한다.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는데, 배우자가 사례자에게 두 딸이 감기에 걸린 관계로 독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음을 전하라고 부탁했다. 사례자가 직접 어린이집으로 찾아가서 두 딸을 교사에게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오믈렛을 만들어서 배우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단지에 부속된 헬스장으로 가서 주민들을 만났는데, 한 할아버지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들었다. 운동을 하고 돌아온 사례자가 거실에 누워 있다 친구가 찾아오더니 악기를 가지고 와서 퓨전 음악을 연주했다. 작품명은 프로젝트 아프리크 코레. 코트디부아르의 음악과 진도의 씻김굿 음악조합했다는데, 응고니와 장구가 사용되었다. 사실 그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었는데, 원래 2008년에 유럽으로 진출한 다음 5년만에 일본에도 진출해서 활동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무형문화재급 음악가였던 것. 그래서 일본에 팬클럽이 많이 있고 자신도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랬던 그가 명예를 뒤로 하고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자국민들에게 한국을 알리고자 했다는 건데, 자국의 TV 프로그램에 나온 뒤로 현지인들이 사례자의 배우자가 한국인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가족이 를 타고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에 위치한 배우자 부모의 자택을 찾았는데, 사례자가 밭에서 시금치를 수확하고 잡초를 뽑았다. 두 딸과 배우자의 어머니와 함께 강화읍 갑곳리에 위치한 강화풍물시장으로 가서 닭고기와 채소 등을 산 다음 닭볶음탕을 만들어서 식사를 했다. 배우자의 아버지는 사례자의 아버지가 코트디부아르 내전[124]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5년 뒤에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며 이를 계기로 사례자의 친족들이 형제애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례자가 자택에서 갑자기 프라이팬을 들더니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고 배우자가 어딘가로 가자 햄버그 스테이크까지 만든 다음 어린이집으로 가서 두 딸을 데리고 놀이터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한 다음 놀다 씻고 잤다. 배우자가 연습실에서 아프리카 무용을 지도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08:26:17에 나무위키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3년 상반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사례자보다 6살 많다.[2] 불교 동아리 활동을 하다 만났다고 언급했다.[3] 영상에서 역명판이 흐림처리되었으나 오른쪽에 보이는 상가 건물의 간판을 통해 3번 출입구 앞에서 촬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4] 서해안고속도로 서서울요금소를 지나는 장면이 먼저 나오고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시흥하늘휴게소 5킬로미터 앞 구간을 지나는 장면이 다음에 나왔다.[5] 방영 당시 기준으로 학교 홈페이지(아카이브)에 게시된 교직원 현황에서 윤 씨 성을 가진 직원이 한 명밖에 없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었다.[6] 이 부분에서 서울 해방촌 일대 야경과 평택파주고속도로 사리현나들목을 지나는 장면이 나왔다.[7]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위치한 한 암벽등반장에서 촬영했다.[8] 인도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인구 대비 3%에 미치지 못 한다. 인도 문서의 종교 문단 참조.[9] 이름과 달리 대전광역시가 아닌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다.[10] 1995년에 결성된 천주교 대전교구 계열 종교단체이다.[11] 교회가 운영하는 공소가 있다.[12] 사제 서품식을 할 때 받았다고 밝혔다.[13] 주교로부터 성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정식 신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14] 가장 낮은 곳을 향한다는 의미로 사제 서품식에서 땅에 엎드리는 예식을 가리킨다.[15] 대전가톨릭평화방송도 이 건물에 있다.[16] 세례명을 의미하는 성인의 기일을 의미한다.[17] 인삼 농사, 영어 교육, 헬스 트레이닝 등에 종사했다.[18] TVN 스포츠(구 올리브)에서 방영했다.[19] 놀랍게도 라면도 팔고 있었다.[20] 방송일로부터 약 30년 전에는 지금의 가락시장역 8번 출입구 근방에 있었다(영상 참조).[21] 한 달 전에 방송된 365회에서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바 있다.[22] 여담으로 본 회차가 편성된 지 불과 2일 뒤에 방송된 7707회차에서 이상용카바레 발언을 한 게 화근이 되어 윤인구 아나운서가 사과한 다음 1시간만에 다시보기 게시를 중지한 사건이 일어났다.[23] 제7686회(2022년 12월 21일 방송.)[24] 2006년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에서 발견된 간장이 가장 오래된 간장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방송을 통해 그 기록이 넘사벽 수준으로 경신됐다.[25] 대학에서 IT 분야를 전공한 다음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26] 외국인 명예 통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57회와 358회를 참조할 것. 지역은 다르지만, 관내 거주 외국인들을 명예 통장으로 임명한 선구자이다.[27] 시사직격 제140회에서도 비슷한 증언을 한 바 있다(38분 24초부터 39분 32초까지.).[28] 2~3일 동안 법적 절차를 거쳐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29] 이유는 한국에서 5년 동안 일하면 자국에서 20년간 일한 것과 같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30] 본사 소속 기상캐스터와 동명이인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359회에서도 동명이인이 나온 적이 있다.[31] 2019년 7월에 부임했다.[32] 상호 자체가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에 해당한다.[33] 2년 전에 출연한 축구 선수 당기 머니스도 찾아왔다.[34] 인근에 있는 서희재도 2021년에 우수 한옥 인증을 받은 적이 있었으며, 바로 옆에 있는 은평한옥도 이 업체가 지은 건물이다.[35] 하지만,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이 게시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36] 부지가 넓어서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망시 재산을 상속해야 하는 문제를 피하려는 측면도 있다.[37] 촬영 시점이 2023년 1월이었던 것으로 보인다.[38] 고양이에게 먹일 사료였던 것으로 보인다.[39] 자막으로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다고 나왔으나, 영상은 전술한 가평군 상면 덕현리 켄싱턴리조트 앞에서 촬영한 영상과 은평구 진관동 189번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합쳐서 삽입했다.[40] 한의사의 초음파 검사의료법에 저촉되는지를 놓고 논란되었으나 2022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41] 아버지가 사례자의 한국행을 반대했는데, 한국이 지금도 최빈국에 분쟁 지역인 줄 알고 있었던데다 한의학을 배우면 미국으로 돌아가서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귀국한다 해도 현지에서 의사 면허만 받으면 한의사로 취업할 수 있다.[42] 메뉴판에 보이는 가격들을 죄다 흐림처리했다. 2022년 식량·에너지 위기 때문에 묵은지 요리 가격이 9000원인 걸 대놓고 보여줄 수 없었던 듯. 문제는 최소 4년 전부터 9000원을 유지했다는 점이다.[43] 영상에서 오른쪽으로 모 게임회사 간판이 보인다. 참고로 경쟁사서면역 3번, 5번 출입구와 7번 출입구 사이에 있다.[44] 김해국제공항에서 북아메리카로 가는 노선을 취급하지 않는다.[45] 허니 오즈고소한 아몬드 후레이크의 원형에 해당하는 제품이다.[46] 부지내에 허준박물관이 있으나 이곳을 방문하는 장면은 방송에서 통편집되었다.[47] 참고로, 2023년 2월에 각 라디오 채널마다 방송된 PR 광고에서 전술한 사건의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고 언급한 사람은 홍주의 회장임을 유의할 것.[48] 이 영상은 재방송 시점까지 게시되지 않았다.[49] 이 사건 때문에 촬영 일정이 1년 정도 중단되었다.[50] 다행히 부인의 부모가 사는 곳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51] 이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듀윌에서 발행한 정답 및 해설을 찾아볼 수 있다.[52] 2000년대 후반에 자신의 누나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으로 갈 것을 추천했다고 한다.[53]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본사가 아니다.[54] 정황상 아람코코리아 혹은 에쓰오일에서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55] 입구에 그래피티가 보인다.[56] 소득, 학력, 한국어 능력 등을 기준으로 발급 여부를 심사하며, 사회 통합 프로그램 점수가 60점을 넘어야 받을 수 있다.[57] 숨터와 1박 2일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이 업소는 1927년에 개업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58] 방송 이후에 상호가 바뀌었다.[몬더그린] A B 청각장애인용 폐쇄자막은 우선으로 잘못 표기되었다.[59] 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 괵체가 맞다. 누스레트 괵체 문서 참조.[60] 방송에서 소개되지 않았지만, 유튜버 활동도 한 적이 있었다.[61] 한 명이 한 번 다녀오는 데 100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62] 200만 원 정도 소요된다.[63] 2019년 12월에 방송된 인간극장에서 먼저 소개된 적이 있다.[64] 원래 배우자는 다른 남성과 혼인하고 자녀를 두었으나 사별한 이후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통역사로 재직했던 사례자와 재혼했다. 사례자도 다른 여성과 혼인했음에도 이혼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65] 산속에서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66] 자료화면으로 나온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67] 2016년에 방송된 다큐공감 제158회에서 소개된 바 있다.[68] 일명 빼빼 가족으로 알려진 한 가족도 2013년부터 1년간 차량으로 유라시아 일주를 한 바 있다. 다큐공감 제21회, 44회 참조. [69] 정확히 말하면 차를 타고 간 나라가 48곳이고, 임 씨가 도보 등으로 방문한 나라까지 포함하면 80곳이 넘는다고 직접 언급했다.[70] 서드 파티현대자동차 그랜드 스타렉스마개조한 차종이다.[71] 이름은 모 극장판 만화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른 만화영화의 등장인물은 물론 개그콘서트과거 코너와도 관련 없다.[72] 모 중견 배우(맥랑시대에서 체육 선생님으로 나온 배우가 맞다.)와 동명이인이다.[73] 출연 당시 택시 기사로 재직하고 있었다.[74] 자막은 아산시 배방읍으로 잘못 표기되었다.[75] 그가 구상하고 있는 여행 코스는 카자흐스탄을 출발해 자국을 거쳐 우즈베키스탄까지 가는 코스라고 한다.[76] 그가 본 의상 중에 예비군복도 있었다. 모자까지 쓰니 해병처럼 보인다.[77] 이름은 아랍어장벽 혹은 장애물을 의미한다. 카타르 프로 축구단 알 사드 SC도 그 뜻을 담고 있다. 여담으로 미군이 운용하는 종말 고고도 지역 방어 체계의 약칭이 이를 노린 중의적 표기라는 설이 있다.[78] 이름 그대로 비무장지대에 있기 때문에 이곳을 탐방하려면 지도사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79]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본방송을 이틀 앞두고 설악산 등지에서 많은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80] 일본어 존칭관련이 없다.[81] 본명은 체웬랍당 어르헝이며, 염혜선의 부모에게 입양되어 염어르헝으로 개명했다.[82] 상동 소재 모 제과점에서 구매했다.[83] 이 장면을 본 후지타 사유리자신의 아들이 출연한 분량을 봤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84] 영화중학교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다만, 영화중학교와 함께 영화학원 계열에 속해 있는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와 달리 목포과학대학교는 세한대학교와 함께 영신학원 계열에 속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영신학원과 영화학원은 원래 한 법인이었으나 영신학원에서 영화학원이 갈라져 나와 지금에 이른 것.[85] 이 때 강승화 아나운서가 세 명을 동시에 교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는데, 애초부터 배구는 선발 선수 전원을 예비 선수로 교체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선수 교체를 허용하고 있다.[86] 놀라운 사실은 사례자의 고조 할아버지인 존 메츠 슈나이더가 육가공품 업체 슈나이더 푸즈(2003년메이플 리프 푸즈로 매각되었다.)를 세운 사람이라는 점이다. [87] 출연 당시 쿠팡에서 근무하고 있었다.[88] KG모빌리티 본사 및 공장 소재지와 교차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89] 출연 당시 첫째와 둘째는 서재초등학교에 재학, 셋째는 삼육라이튼어린이집에 재학하고 있었다.[90] 평범한 가족이었음에도 하이 리무진 모델을 소유하고 있었다. 쿠팡 기사는 소득 수준이 높은 직업이었군.[91] 영화 카트의 배경으로 나온 마트와 이름이 같다.[92] 이 경우 두 번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간 다음 세원교차로에서 한 번 더 방향을 돌려 아산만 방향으로 가야 한다.[93] 원래 펜션으로 운영하다 매각하고 우측에 있는 주택만 자택으로 쓰고 있었다.[94] 의외로 한 지역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는 장소이다.[95] 2018년에 4주간 채널 A 육아 예능 아빠본색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이는 51세였다. [96] 첨언하자면 보건대 휴학 후 선교사 파견 전통이 있는 브리검 영 대학교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더해서 브리검 영 대학교 영어문학과는 굉장히 높은 입결을 가지고 있다. [97] 이렇게 된 계기는 대학생 시절에 장병들이 낙하 훈련을 하는 걸 직접 보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98] 이후 용산기지는 대부분이 평택으로 이전되었다.[99] 이곳은 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많이 있을 정도로 해외 미군 주둔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해당 문서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조할 것.[100] 미국의 살인적인 의료 비용 때문에 1인당 5억 원씩을 부담해야 했으나 사례자가 미군 장교였기에 저렴하게 처리되었다.[101] 사례자와 배우자는 12세 차이가 난다. [102] 자막은 한강라면으로 표기했으나,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첫 번째 정의에 부합하지 않다. 그래도 한강공원에서 먹은 것은 맞긴 하다.[103] 정확히 말하면 롤러스케이트의 하위 종목.[104] 8분쯤에 나오는 청첩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05] 2021년부터 함께 살고 있었다.[106] 사례자의 부모는 이 사진을 보고 보정된 사진으로 이해했다.[107] 촬영 당시를 기준으로 개업한 지 1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업소였다.[108] 마네킹 혹은 인체에 대고 원단을 자르는 방법을 말한다.[109]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후계자가 행방불명되면서 1969년에 폐업했고 지금은 문화재로 영구 보존하고 있다.[110] 이 때 자료화면으로 나온 학생증에 안드레아스를 안덕사(安德思)로 음차 표기했는데, 이는 영어식 표기인 앤더스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다. 참고로 안드레아스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안덕렬아사(安德烈亞斯) 혹은 안덕로(安德魯)이나, 사례자가 독일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앤드루의 음차 표기와 동일한 안덕로로 음차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111] 동해선 오시리아역 2번 출입구와 가깝다.[112] 사례자의 배우자가 스튜디오에서 밝히길 이 날이 어버이날이었다고.[113] 정황상 5월 13일로 추정된다.[114] 영상에서는 전기톱으로 나왔으나, 실제로는 그라인더가 맞다.[115] 영상에 나온 장소는 케르반, 술탄 케밥, 포지티브 미이다.[116] 우유를 가열한 뒤 생겨난 지방막으로 만드는 튀르키예의 전통 음식.[117] 배우자가 사례자를 상대로 과실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만, 제3자가 과실을 저질렀으면 과실치상죄가 적용될 수 있다.[118] 스스로 끓는 용기라는 의미.[119] 한 장면이 좌우반전된 상태로 나왔다.[120] 니겔라 사티바의 씨앗. 지중해의 검은 보석이자 이집트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121] 둘째의 이름이 코나테 미예인 이유는 가족관계 등록사무 제2호에 따라 자녀의 이름을 할머니의 이름과 같게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22] 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 테케레이며, 말링케어로 박수를 친다는 뜻이다. 패거리가 아니다. 떼거지도 아니다.[123] 시작한다 또는 밝힌다는 뜻이다.[124] 이와 관련한 일화는 디디에 드록바 문서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