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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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내용은 전국 노래자랑(영화) 문서
1. 개요[편집]
(딩~동~댕~동~댕~♪)
진행자: 전국~~~!
관객들: 노래자랑~!
-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 시그널 [7]
앞으로 전국 팔도 방방곡곡, 여러분을 만나게 될 일요일의 막내딸 김신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전국 하면, 여러분들은 노래자랑이라고 사랑을 주셨으면 합니다.
전국~ (노래자랑!)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곳 OOOO에 찾아주신 시/군/구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일요일의 막내딸[8]
김신영이 여러분들에게 큰 절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MC 송해의 오프닝 멘트(펼치기)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 OOOO[1]
을/를 가득 메워주신 시/군/구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전국~ 노래자랑 사회담당, 일요일의 남자[2]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크게) 안녕하세요~!![3]
[5] [6]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낮 12시 1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방영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TV 프로그램이다.[10]
본래 일본 NHK의 NHK 노래자랑의 포맷을 그대로 베낀 것에서 출발했다. 처음엔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이름이었다. 이때는 현재와 같은 일반인들의 장기자랑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학가요제와 마찬가지로 가수 또는 지망생들이 등장해 노래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 1971년 10월 16일 첫 방송했으며, 1977년 4월 2일을 마지막으로 종영하였다. 토요일 저녁에 방송.
이후 1980년 11월 9일에 전국노래자랑으로 방영되기 시작한다. 방송편성시간대 변경 및 라디오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국내에서는 KBS 무대가 제일 오래되었다. 심지어 뉴스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뉴스나 영화 방영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TV 프로그램은 1973년 시작된 장학퀴즈지만 이쪽은 중간에 잠깐 종영되었던 시기에 MBC에서 EBS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장학퀴즈는 EBS방영시기부터 새로 세고 있으며,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 방영된 시기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전국노래자랑 쪽이 1년 4개월이나 더 길어진다. 따라서 전국노래자랑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장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다른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시청자의 충성도 역시 압도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흥종교 송해교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SBS 인기가요, 뮤직뱅크 등 다른 프로그램은 특정 아이돌의 출연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오락가락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일반인(가끔 초대가수)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인데다 시청자 층도 50~60대가 기본이니 누가 나와도 기본 시청률은 뽑아준다. 사실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기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젊은 층의 참가자들도 많이 등장하는데다가 프로그램 특성상 어그로를 끄는 참가자가 많아서 오히려 동시간대의 SBS 인기가요보다 시청률 경쟁에서 더 우위에 서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80~90년대에는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였을 뿐만 아니라 20~30대 시청자들도 많았다.
전국 각 지방을 돌면서 주민이 참여하는 순회공연 형식이며, 공개 녹화 방식으로 녹화되고, 특정 시/군/자치구[11] , 즉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녹화를 한다. 다만, 2005년 봄에는 수원시 장안구에서 한 적도 있었고, 2019년 가을에는 용인시 처인구에서 한 적도 있었다. 가끔은 대전광역시 편이나 광주광역시 편처럼 한 광역시 자체를 뭉뚱그려서 녹화한 적도 있었다.[12]
예선을 거치고 선발된 지역 주민들이 노래나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방식이며, 물론 초대가수도 등장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도 등장하여(구청장이나 시장, 군수를 비롯한 정치인들) 지역 소개도 하고 일부 지자체장들은 본인의 애창곡을 무대에서 부르고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편집되며, 녹화 전날에는 지자체장들 비롯한 정치인들과 송해가 같이 식사를 하고나 술 한잔 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진행자와 출연자들 사이의 만담이 이어지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녹화 지역의 특산품이나 유명 음식을 가져와서 송해와 노래자랑 악단에게 권하는 장면도 이 대목에 나온다. 인기 많은 TV프로그램으로 전국 노래자랑 20주년 기념으로 모든 시군의 시장과 군수들이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다. 2011년에는 구제역 때문인지 군보다는 시와 구에서 녹화를 많이 하였었다.
2. 특징[편집]
1980년 11월 9일부터 2009년 3월 29일까지는 4:3 비율 SD로 제작하다가 2009년 4월 12일 방영분부터 16:9 비율 HD로 제작하기 시작한다.
전 국민이 다 알 만한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곡으로, 금영노래방에는 필통기기 전용으로 59768번으로 수록되어 있고, TJ미디어에는 60시리즈 이상 기종 적용으로 47417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와 연관된 이야기는 후술.
KBS 2TV의 과거 예능들인 청춘불패 시즌1 및 청춘불패 시즌2를 비롯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뭔 게임만 하려고 하면 장르 불문하고 나오는 노래도 전국노래자랑의 오프닝이다.
주로 노년층에서 인기가 많으며, 이 덕분에 지속적으로 10% 초중반 대의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다. TV쇼 진품명품 → KBS 정오 뉴스 → 전국노래자랑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연결도 강력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만화영화(주로 한국 애니메이션 재방), 스포츠 중계[13] 가 붙어서 편성된 1990년대에는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동시에 잡는 강력한 조합을 자랑했다.[14] 이런 조합은 오늘날에 토요일 도전 골든벨 재방송 이후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계승되었다. 일요일의 목욕탕과 찜질방 남탕, 버스터미널, 기차역, 고속버스, 식당 등등 대다수의 공공장소에서 십중팔구는 이것을 틀어놓는다.
2.1. 진행 방식[편집]
합격은 딩동댕동댕~, 불합격은 땡 ~하는[15] 글로켄슈필의 효과음으로 가끔 불합격 시 딩동댕동댕을 거꾸로 연주하여 '땡동댕동딩'~으로 칠 때도 있으며 김신영 체제 들어서는 땡을 2번 치거나 3번 치는 경우도 있다.[16] 이 효과음은 그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이고, 다른 방송의 노래자랑 관련 코너에서도 그대로 갖다 쓸 정도의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방송에선 '땡'을 치면 한번에 탈락하지만, 녹화 현장에서는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방송에서 탈락자는 기회 두 번 다 불합격된 것이다.[17] 땡은 대체적으로 30대 이상의 중장년층 및 노년층들이 많이 받는다. 10대는 딱 다섯 번 땡을 맞았으며, 대부분 성인에 가까운 18세 ~ 19세이다. 2009년 방송된 인천광역시 강화군 편에서 18세 소녀 참가자가 장윤정의 콩깍지를 부르다가 땡을 맞았는데, 이게 전국노래자랑 역사상 최연소 땡이였다. 이 외에도 동년 5월에 방송된 충청남도 태안군 편과 2011년 3월에 방송된 광주광역시 남구 편이 있다. 10대 초반도 땡을 받은 적이 있는데, 2002년 방송된 태안군 편에서는 11살 어린이가 이정현의 반을 부르다가 땡을 받았고, 2023년 1월에는 40대 후반 아빠와 같이 참여했던 12살 여학생이 땡을 받았는데, 초등학생으로써는 드물다.[18] 그리고 외국인은 2005년 6월 5일 방송된 경상북도 문경시 편에서 호주 출신 영어강사가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다가 땡을 받았었는데, 이것이 외국인 최초 땡이었다.[19] 대체적으로 삑사리가 발생하거나 첨부터 음정이 엉망진창이거나 박자를 놓치거나 가사[20] 를 틀렸을 경우 땡을 쳐버리며, 가끔은 저 3가지 중 하나가 아니더라도 너무 과한 주접으로 태도가 개판일 때도 땡을 쳐버리는 경우도 있다.
다만 미취학이나 저학년 아동 쯤의 참가자들은 못 불러도 합격을 하는 편인데, 땡 소리를 들으면 징징대거나 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자기 부모가 땡 받아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게다가 10대 출연자도 성인에 임박한 18 ~ 19세를 제외하면 못 불러도 어느 정도는 봐 준다. 한국말이 어설픈 경우가 많은 외국인들도 발음이 새는 정도는 봐 주는 편이지만, 유아기 ~ 어린이 쯤의 참가자들과 달리 음정, 박자, 가사 중 하나 이상이라도 틀리거나 태도가 안 좋으면 얄짤없이 땡이다.
여담이지만,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검은색 여의봉을 실로폰채로 사용했다.[21]
2016년 이후로는 참가자들이 상향 평준화가 된 탓인지 땡 소리를 듣기 힘들어진 편으로, 그와 함께 땡이 한 번도 없는 편이 상당히 많아졌고, 오히려 땡이 나온 편은 1년에 기껏 많아봐야 일곱에서 여덟번 정도다.[22] 1993년 5월 개편 이후부터 1994년 3월까지 초대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이 심사를 맡기도 하였다. 1999년 상반기 결선까지는 별관이나 신관공개홀에서 결선을 치렀으나[23] , 1999년 연말결선부터는 KBS홀에서 녹화한다. 한때 시간대를 다르게 방송했는데 1993년 연말결선까지 광고방송 때문에 저녁 시간대에 방송하였으나 광고방송 폐지 직후인 1994년 연말결선부터 동일하게 낮 12시 10분부터 방송하고 있다. 하지만 김신영 체제가 되면서 좀 늘어났다.
진행 방식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노래를 부르지만, 중간에 출연자들이 본인들이 준비해 온 갖은 물건들이나 특산품을 송해에게 선물로 주거나 노래 이외의 다른 장기자랑을 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옵션이 붙어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대본과는 아무 상관 없이 출연자들이 본인들 맘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야말로 생짜로 즉석으로 할 경우에는 방송사고의 우려도 있기 때문에 예선에서 연출가가 진출한 출연자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잡아줘서 출연자가 미리 준비해 오기는 한다. 전국노래자랑 제작진들은 이러한 행동들을 프로그램에 그대로 반영했다.
2.2. 특별편[편집]
설날, 추석 같은 명절에는 특집으로 방송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명절 당일날 생방송으로 특집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대부분 명절 장사 씨름 대회 중계방송과 패키지로 묶여서 진행된다. 낮 12시부터 체육관 내 특설무대에서 노래자랑을 생방송으로 1시간 반이나 2시간 가량 진행한 뒤 뒤이어 씨름 생중계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2004년 설날 노래자랑.
매년 12월 마지막주 일요일에는 연말결선 특집 방송을 한다. 대체적으로 KBS 여자 아나운서 1명과 함께 진행한다. 항상 KBS홀에서 진행되는 연말결선 특집은 일종의 왕중왕전으로, 1년 간 상 받은 사람들 중 자체 예심 통과자들이 총출동하여 거기서 우열을 가리는 거다. 2013년까지는 6월 마지막주 또는 7월 첫째주 일요일에 상반기 결선[24] 을 진행했고, 연말결선 특집을 통해 상반기결선 우승자와 연말결선 우승자가 대결을 펼쳐 그 해 최종 우승자를 결정했다. 최종 우승자는 정규방송에서의 최종 1등인 최우수상보다도 더 높은 대상을 받는다. 2014년부터는 상반기결선을 폐지하고 1년 방영분들을 다 뭉뚱그려서 연말결선으로만 하고 있다.[25]
1987년 리비아 아즈다비아 공사현장에서 임시 MC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현지녹화 한 걸 비롯해 1998년 로스앤젤레스 편 등처럼 미국이나 일본의 코리아 타운에서 녹화한 적도 있다. 가장 멀리 가서 한 녹화는 1995년 남미 특집 파라과이 편이다.
2003년에는 특별편으로 평양 노래자랑을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협력의 상징격으로 여러 번 추진되었으나, 진행자인 송해가 이북 출신 월남자인데다가 국군 출신이고, 또 KBS가 이전에 북한을 비난하는 보도를 했다 하여 아예 입경조차 금지되는 등 우여곡절이 상당히 많았다. 방영분 풀영상. 그래도 이산가족을 두신 어른들과 북쪽에 고향을 두신 어른들은 감명깊게 보셨다 카더라. 2009년 추석에는 중국 선양(풀영상), 2011년 설날에는 칭다오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 2015년 추석에는 전국 아이돌 노래자랑이 방영되었다. 2016년 추석에는 재외동포 특집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2.3. 밴드[편집]
시청자는 노년층의 비율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참가자는 20~30대 젊은층이 더 많아 보이며[26] , 10대 이하도 있으며 동시에 입상자들도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가 많다. 초대 가수도 대부분 트로트 가수이고, 실제로도 트로트 비율이 높긴 하지만 최근의 가요도 많이 보인다. 물론 이조차도 악단의 트로트풍 연주로 노인들의 귀에 딱 맞는다. 바꿔 말하자면, 장르를 불문하고 트로트와도 무리없이 이어지는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셈.
실제로 한 의사가 서태지의 'Live Wire'를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른 적이 있었고, 어떤 중학생들은 단체로 원더걸스의 'Nobody'를 부른 적이 있었으며, 초등학생들은 소녀시대의 'Gee'를 부른 적이 있었으며, 어느 주부들은 심지어 교복을 입고 카라의 'Pretty Girl'을 부른 적이 있었다. # 여대생들이 방탄소년단의 고민보다 go를 부른 사례까지 나왔다. 물론 위의 다섯 노래 역시 김인협 및 신재동 악단의 트로트풍 싱크로를 피할 수 없었다. 'Live Wire'를 들으며 노인들이 춤을 추기도 했다. 심지어 기타가 맡아야 할 초반 기타 리프 부분을 관악기로 완벽하게 연주해 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충청북도 옥천군 편에서는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부른 적도 있다. 아래 동영상 참고. 위의 초등학생과 교복 주부들은 아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경기도 안산시 편에 등장했다. 하지만 27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천 수만 수억 곡의 노래 반주를 해 온 그 내공과 연륜은 국내 대중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만하다. 사실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일반인이기 때문에 연주하는 곡도 원곡과 다를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로 만들어버리는 말 그대로 예술.
2011년 6월 말, 김인협 악단장에게 폐암 진단이 나왔다. 2011년 7월 24일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편을 끝으로 하차했으며, 동년 겨울 2011 연말결선에 중절모까지 쓰고 지휘를 하였는데, 그것이 영원한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쭉 투병 생활을 해 왔다. 2011년 가을 경부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나 네이버 지식인에 왜 악단장이 안 보이냐는 질문이 많았었다. 그런데 투병 중이었다. 그러다가 김인협 악단장은 2012년 9월 26일에 71세를 일기로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김인협 악단장의 후임은 베이시스트 신재동이 맡게 되었다. 참고로 신재동은 중견 트로트 작곡가로도 활동 중이다.[27] 2005년 발표곡으로 신재동이 작곡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최석준의 "꽃잎 사랑", 조항조의 "바람아" 등을 작곡했다. 신재동 악단장은 김인협 악단장 시절 코러스맨이 들어오기 전까지 서인수 기타리스트[28] 와 함께 2010년대 초반까지는 초대가수들의 코러스를 넣어줬다고 한다.[29] 그리고 트윈걸스를 데뷔시킨 장본인이기도 한다.
2022년 기준 김인협 악단장 시절부터 함께해온 악단원은 신재동 악단장을 포함해 6명이다. 나이 순으로 이평진, 신재동, 최재훈, 강재석, 송선호, 장재봉이다. 그 중 이평진 단원은 2013년 강원도 동해시편 이후 드럼에서 타악기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악단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고참 단원이고 키보드를 담당하는 송선호 단원은 가장 늦은 2006년에 합류했다. 그리고 강재석 단원은 악기관리자이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은 2022년 6월 10일 송해의 노제에서도 그의 운구차가 KBS 본관에 도착할 때 그를 떠나보내는 연주를 하였다. # 신재동 악단장은 지휘를 마친 뒤 눈물을 쏟았다.
2.4. 원조 음악방송/슈스케[편집]
2005년 5월 8일부터 2007년 8월 26일까지 KBS 2TV에서 일요일 낮 1시에 뮤직뱅크를 편성한 적이 있어서 뮤직뱅크와 시간이 겹치기도 하였다.[30] 그 당시 10대 특히 빠순이들은 이 프로보다 뮤직뱅크로 옮겨가자 그 덕분에 주 시청자인 노인들과 10대 빠순이들의 시청 전쟁이 벌어지는 일이 잦았지만, 금요일 저녁(녹화방송 시간) 여의도 신관까지 공개방청을 간 이들에겐 상관없었다. 이후 뮤직뱅크가 지금의 금요일 오후로 옮기면서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거 끝나고 나서 SBS에서는 SBS 인기가요를 방송했다. 마침내 2016년 10월 2일부터 드디어 동시간대 SBS 인기가요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다만, 2018년 9월 9일부터 SBS 인기가요는 다시 오후 3시 50분으로 돌아가면서 이 역시 또 옛날 얘기. 이렇게 타 음악 프로그램의 도전을 받아가면서도 음악 프로그램 중 부동의 시청률 1위[31] 를 차지하였으나, 2020년 들어서는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밀리는 등 위협을 받게 되었다. 다만 시간대가 다르다보니 전국노래자랑 시청층의 대다수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도 시청하면서 생긴 현상이라 보는 게 적절하다. 원래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가 시대 안 가리고 유행하는 장르이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박상철, 장윤정, 김혜연 등은 물론이고 별, 승희 등등 여러 장르의 가수들이 데뷔 전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거쳤다. 또 가수는 아니지만 김재욱, 조영구, 홍석천 등 여러 비가수 연예인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연예인이 되었다. 원조 슈스케라는 말이 마냥 농담만은 아닌 셈이다.
3. 방영 목록[편집]
4. 진행자[편집]
4.1. 역대 MC[편집]
4.1.1. 이한필[편집]
전국노래자랑의 초대 MC. 1980년 11월 9일부터 1985년 7월 9일까지 장정 4년 9개월을 MC를 맡았다. 본명 이한필 보다도 당시 '위키리'라는 예명으로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눈물을 감추고' 등의 노래로 유명했던 가수였으며 언론통폐합 전 TBC의 유명 프로그램 쇼쇼쇼의 진행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4.1.2. 이상용[편집]
1985년 ~ 1986년. 1년을 못 넘기는 기간 동안 진행하고 하차했으나 1989년 우정의 무대의 8년간 장기진행 덕분에 모든 세대들한테 인지도를 확고히 하여 송해 별세 이후 뽀빠이 이상용을 다시 MC로 하자는 말이 고령층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만 팔순이 다 된 상당히 많은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4.1.3. 최선규[편집]
1987년 4월 초부터 1988년 5월 8일까지 약 1년 2개월을 맡아왔다. 이한필 이후 송해 이전까지 최장기간 진행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리비아 아즈다비아 편 등 해외 촬영까지 진행했다.[41]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전형적인 아나운서 식의 깔끔한 진행을 선보였다. 전국노래자랑 스페셜에서도 4대 MC로 소개되었다. 참고로 전국노래자랑 87 연말 편에서는 이영미 아나운서와 잠깐 공동 진행을 맡았다. 역시 송해 별세 이후 최선규를 다시 MC로 하자는 말이 일부 고령층에서 나왔다고 한다. 송해와 다르게 전국노래자랑 방송 당시에 29살로, 최연소의 젊은 청년 MC였다.[42] 현재는 65세로, 어느덧 최선규조차도 전국노래자랑 초기의 송해와 나이가 같아졌다. 2022년에 임시 진행한 이호섭과 동갑이다. 전국노래자랑이 노년층에게 익숙한 프로인 것을 고려하면 최선규는 아직은 이상용보다는 그나마 젊고 중장년층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으므로 다시 진행해도 충분히 나쁘지는 않다. 다만 이 쪽은 지상파 프로 진행을 안 한 지가 꽤 돼서 현재 방송 트렌드부터 다시 익혀야 할지도 모르며, 또한 중장년층들과 달리 젊은 층들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4.1.4. 송해[편집]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 OOOO[43]
을/를 가득 메워주신 시/군/구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전국~ 노래자랑 사회담당, 일요일의 남자[44]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크게) 안녕하세요~!![45]
- MC 송해의 오프닝 멘트
송해는 1988년부터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30여년 이상 맡아왔지만, 중간에 사회자가 잠시 바뀐 적이 있다. 1994년 개편을 계기로[46] 당시 67세였던 송해가 물러나고, 김선동 아나운서로 진행자가 교체되었다. 개편 직전 방송.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워낙 안 좋았던 데다가 김선동 아나운서의 지역 발령이 났다.[47][48] 만약 김선동이 끝까지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았다면 1995년 전후로 종영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시청률이 폭락했다고 한다. 결국 불과 6개월 후 가을개편과 함께 송해가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22년 5월 15일까지 28년 간 송해가 그 자리를 지켜왔는데, 이 기간 동안 연출자만 자그마치 120여번이나 거쳐갔다.
참고로 송해는 1927년 생으로, 작고 전까지 대한민국 현역 연예인 중 최고령(향년 95세)이었다. 이보다 2년 앞서 출생한 영화배우 황정순(1925년)은 2014년, 연극배우 장민호(1927년[49] )와 백성희(1925년)는 2012년 및 2016년, 최고령 탤런트 최명수(1924년)도 2015년에 각각 세상을 떴고, 또래 코미디언 구봉서(1926년)도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가끔 건강이나 후속 문제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워낙 건강한 모습을 보여 이내 잊히곤 했다. 송해가 말하는 건강의 이유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은 걸 드시고 좋은 풍경도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한다. 송해 본인은 생전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다고 선언했으며, 결과적으로 본인 및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켜내고 눈을 감았다. 직전의 MC 최선규가 진행 당시 나이를 기준으로 최연소(28~29세)였지만 송해는 61세부터 95세까지 진행해서 최고령이 된다. 그리고 출생연도가 가장 늦은 김신영과는 56살 차이가 난다.
여자가 부를 때 송해의 칭호는 세 살부터 여든까지 나이 불문하고 오빠다. 아이들이 가끔 '할아버지'라고 부르긴 하지만, 오빠보다 빈도 수가 적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들과 여중고생들조차도 대놓고 오빠라고 부를 정도며 심지어는 송해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 참가자 일부도 오빠라고 부를 정도다. 또한 어떤 부모는 자기의 어린 딸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가르칠 정도다. 손녀가 할머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을 확률이 높다. 가히 국민 오빠다.[50] 이제는 외국인들도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표적으로 2005년 6월 5일 문경시 편에서 출연한 호주 출신 영어 강사가 '송해 형님' 이라고 불렀다. 또한 간혹 연예인들쪽에서도 오빠나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역대 MC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 두번째로 많은 MC는 초대 MC 이한필이다.
가끔씩 김인협 악단장한테 장난스럽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는 어린 출연자에게 "용돈 받아라", "과자 달라고 해라"하면서 김인협 악단장에게 보내거나 출연자가 가져온 그 지역의 유명음식을 먹고 앞에 가서 "용용 죽겠지" 하며 약올리는 것. 역으로 김인협 악단장이 송해한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었는데 가끔 본인이 용돈을 준 다음 송해한테 돌려보내서 더 받으라고 했다.# 물론 두 사람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었다. 참고로 김인협 악단장이 주는 세뱃돈은 전부 사비라고 한다. 송해는 2012년 9월 김인협 악단장이 작고한 이후 그 해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할 때 수상자 소개를 직접 했다. 김인협의 뒤를 이은 신재동 악단장도 이런 관행을 피해갈 수 없었다. 신재동 악단장으로 바뀐 초기에는 이렇게 장난스럽게 시비를 거는 일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뒤엔 예전에 김인협 악단장에게 하듯이 장난스럽게 시비를 거는 일이 많아졌다.[51]
2012년 9월, 감기로 휴식 진단을 받고 녹화를 며칠 동안 쉬었다. 본인은 아직 큰 걱정말라고 하지만 무리하게 녹화 말고도 콘서트도 뛰고 여러 모로 활동한게 좀 위험시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 괜히 실시간 검색어로 송해가 올라오면 괜시리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 곧이어 방영한 2012년 10월 7일 방영판도 이전에 녹화한 걸 방영했다. 크게 문제시 되진 않았지만, 연세도 많은 송해가 무더운 한여름에 햇볕도 가리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서서 녹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이 있었다.
이날 인천광역시 서구 편 녹화는 전국노래자랑 고정 심사위원인 이호섭이 맡았으며, 추석 외국인 특집은 허참이 진행했다. 허참도 역시 장수 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의 레전드이자 전국노래자랑 후계 사회자로 1순위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정작 허참도 1949년 생으로 이제는 칠순이 넘었다. 송해가 작고하거나 은퇴하여 맡으면 이 프로그램도 사라진다는 말도 있지만, KBS에서는 허참[52] 이나 다른 사람이 후계 사회자로 맡을 수 있으며, 장수 프로그램이기에 그렇게 갑자기 끝낸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허참은 2022년 설날 당일에 임종하면서 허참이 전국노래자랑을 대신 맡을 일은 없게 되었다.
사실 승승장구 송해 편이나 다른 신문에서 한 인터뷰를 보면 이수근을 후임 MC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근 역시 전국 노래자랑을 맡을 의향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도박으로 인해 방송에서 하차했다가 2015년 5월에나 복귀 시동을 걸었기 때문에 미래는 불투명하다.
2015년 9월 10일 송해 90수[53] 헌정공연 '웃자, 대한민국' 기자회견에서 진행을 맡은 임백천은 "송해 선생님을 뵈면 아버님이라고 한다. 저희 아버지보다 2살 위시다"고 운을 떼며, 이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던 사업을 물려준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며 송해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언급해 웃음을 자아냈다.
2019년 12월 31일, 급성 늑막염으로 입원했다. # 처음에는 폐렴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감기몸살로 보도되었다. 연합뉴스 이로 인해 2020년 1월 12일 진행된 설 특집 녹화는 대타 MC들인 이호섭과 임수민이 공동 진행하였다. 2020년 6월 26일, 감기몸살로 입원했다. MK스포츠 이로 인해 2020년 6월 27일 진행된 녹화는 대타 MC들인 이호섭과 임수민이 공동 진행하였다. 뉴스웨이.
2022년 5월 17일, 이데일리에 따르면 송해가 “더 이상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프로그램 제작진에 밝혔다고 한다. 고령의 나이와 코로나19 확진 후 체력 저하, 그리고 현재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만큼 건강 요건이 안 좋아져 그런 것 같다. 이에 제작진은 하차를 확정지은 것은 아니나 후임 MC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2022년 5월 23일 송해가 최고령 TV 음악 탤런트 쇼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인정받으며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인증서를 전달받은 송해는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덕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주 뒤인 2022년 6월 8일, 송해가 자택에서 사망하면서 전국노래자랑과의 34년간의 동행이 마무리되었다. #1 #2 #3 이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후임 MC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출연분 방송일이 사망일과 불과 2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데다 하차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라, 생전에 했던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다"라는 말을 지킨 셈이 되었다. 즉, 그가 눈 감은 날이 전국노래자랑 하차일이 되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송해가 첫 마이크를 잡은 1988년 5월의 첫 방송을 한 지역은 경상북도 성주군이었는데, 송해가 사망하기 직전, 즉 명목상 메인 MC 자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최후로 방영된 방영분 또한 2022년 6월 5일의 경상북도 성주군(스페셜) 편이었다.[54][55] 대장정의 시작과 끝을 모두 성주군에서 하게 된 것.
여담으로, 1998년까지는 안경을 안 쓰고 진행하였으나 1998년부터 안경을 착용하였다.[56]
일부 참가자들이 노래를 잘 못 부르는 경우 송해가 나와서 같이 불러주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무조건 딩동댕이다.[57]
생전에 송해는 평생 소원으로 전국노래자랑을 고향인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결국 이를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인 후임 MC는 미정이었으나 2022년 7월 10일부터 정규방송이 재개된 후로는 임시 MC였던 임수민 아나운서와 이호섭 작곡가가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임시로 진행을 맡았다.[58] 본방송 최초의 2인 MC 체제이기도 하다.[59] 동시에 임수민 아나운서는 정규 편성 첫 여성 진행자이기도 하다. 이후 10월 16일부터는 김신영이 단독으로 MC로 진행하고 있다.[60]
4.1.5. 김신영[편집]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오늘 두류공원 야외 음악당에 찾아와주신 우리 달서구민 그리고 대구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구의 딸 김신영이가 큰 절 올리겠습니다.
첫 녹화 멘트
5대 MC 김신영의 첫번째 전국노래자랑 녹화는 2022년 9월 3일에 진행되었으며, 전임 MC 송해의 뒤를 잇는 의미로 실향민이던 송해의 아내의 고향이자 본인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온 대구광역시 달서구 편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김신영 본인도 대구 출신이라 세대교체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지역이라는 평. 첫 녹화는 김신영의 첫 녹화라는 것이 알려진 영향인지 어마어마한 인파가 방문했다. 그 중 특히 젊은 층들의 방문이 눈에 띄어 김신영 효과를 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1983년 생으로 39세이며, 출생연도 기준으로는 최연소이며, 최초의 여성 MC이다.[61]
첫 방송분은 대구 달서구 편이 아닌 2주 후인 9월 17일에 녹화한 경기도 하남시 편이 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62][63] 그래서인지 하남시 편은 초대가수 라인업도 양희은, 박현빈, 박서진, 브레이브걸스, 에일리라는 색다른 준비를 하였다. 양희은의 장르는 트로트가 아닌 포크 음악인데도 초대가 되었고, 아이돌인 브레이브걸스, R&B 장르 가수인 에일리까지 비트로트 가수들이 초대가수로 섭외되었다. 물론 옛날에도 특집 방송 때는 이런 류의 비트로트 가수들이 섭외된 적은 있지만, 이번 회차는 김신영의 첫방이라는 데서 정규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양희은은 김신영과는 모친뻘 연예인인데도 불구하고 친분이 깊기로 유명하고 말이다. 그 외에도 김신영과 친분이 깊은 연예인들인 송은이, 이계인, 나비가 스페셜 게스트로 우정 출연해서 무대를 더 빛냈다는 평이다.[64]
첫 방송 이후 임시 진행자였던 이호섭, 임수민 아나운서 대의 6-8% 시청률을 극복하고 다시 송해 시대의 10%대에 근접한 9.2%의 시청률을 냈다. 송해 대의 전국노래자랑 역시 말기에는 7-9%대의 시청률이었으며 동시대의 음악방송 대부분이 1% 이하의 시청률인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한 성적이다. 다음 화 역시 7.6~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가구시청률 10위를 달성했다. 현장 반응 및 시청층의 반응이 좋은 편으로 언론 및 방송계에서는 '대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하지만 2023년 이후 전국노래자랑의 시청률은 평균적으로 6% 대에서 놀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또한 시청률이 항상 10%대 안팎이던 송해 때에 비해 화제성도 부쩍 저조해졌는데, 이 때문에 전국노래자랑 위기설이라는 제목과 내용의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어서 확실히 김신영 체제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못마땅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듯 하다.
또한 인터넷 이용자들 일각에서는 김신영의 과거 일부 구설수들과 전국노래자랑으로 게임광고를 찍었다며 비호감이니 어쩌니 등으로 비난을 하고 있으며, 전국노래자랑은 상대적으로 장노년층 시청자가 많이 시청하므로 MC도 노년층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인 김성환, 이상벽[65] , 이상용, 이용식, 이홍렬, 황기순 같은 사람들이 진행하여야 한다거나 그나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찬원이나 이수근[66] , 장윤정&도경완 부부[67] 야말로 이 프로와 더 잘 어울린다며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 등지에서 매번 왈가왈부가 잦으며, 또한 일부 사이버 렉카들에 의해 별별 말도 안 되고 근거도 없는 허위 정보들까지 나도는 등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은 편이다.[68]
4.2. 결선 진행자[편집]
아래는 상반기 결선, 연말 결선의 진행자이다. 송해와 KBS 여자 아나운서 1명이 함께 진행하며, 간혹 다른 분야 여자 연예인(주로 트로트 가수)이 진행을 맡기도 한다. 김신영으로 MC가 바뀐 이후에는 김신영 단독으로 진행한다.
4.2.1. 상반기결선[편집]
4.2.2. 연말결선[편집]
4.3. 특집 진행자[편집]
- 1994년
- 9월 20일 - 북미대륙 한국인 노래자랑 (이한필)
5. 역대 심사위원[편집]
6. 예선 과정[편집]
6.1. 신청[편집]
예선은 1차, 2차 총 2회에 걸쳐 치러진다. 예선 신청은 동사무소 신청, 인터넷 신청(구에 따라 다르다), 전화 신청, 현장 신청으로 나누어진다.
동사무소 신청이라 꼭 관할 시군구민만 신청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다. 거의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예선 신청 양식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본인이 부를 노래를 1~3개 정도 적으면 되는 양식이다.
6.2. 예선 진행[편집]
예선장은 대개 수용인원 규모 300~500명 정도 되는 강당에서 그 정도 인원[74] 의 관객이 보는 앞에서 진행된다.
1차 예선은 말그대로 무반주 미션. 마이크만 주어진 채로 아무 노래나 15~30초 정도 부르면 된다. PD와 구성작가로 구성된 2인 심사인단의 즉석 발표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나눠진다. 불합격했을 시 수고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합격 시 PD로부터 2차 예선 참가 신청서를 받을 수 있다.
2차 예선부터는 반주가 주어진다.[75] 이 때는 2차 예선 참가 신청서에 적었던 노래 3곡 중 하나를 부르면 된다. 이 때는 바로 결과가 발표 되지 않고 모든 2차 예선 참가자의 노래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서야, 방송에 나가는 본선 참가자가 발표된다.
1차 예선엔 보통 선지원자 300~400명에 현장 지원자 100여명 쯤 더해서 500명 좀 넘는 인원이 참가한다. 1시에 시작한 1차 예선은 5~6시 쯤 마친다. 제작진의 사정으로 인해 빨리 마칠 수도 늦게 마칠 수도 있다. 1차 예선 합격자는 방송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많아도 100명 이내이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 같은 장소에서 바로 2차 예선이 실시된다. 1차 예선보다 소수지만 반주가 깔리고, 경우에 따라 장기자랑도 보기 때문에 늦으면 10시까지도 진행될 수 있다. 2차 예선 결과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의 수는 대략 15명 정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므로 신청한 사람, 그 중에서도 본선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예선날 하루는 꼬박 잡아야 될 것이다.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예선 신청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
6.3. 본선 진출을 위한 팁[편집]
방송과는 달리 예선에 괴물들이 득실득실하다! 방송만을 보고 가볍게 생각하다가는 정말로 큰 코 다친다.[76]
대부분의 위키 사용자들이 10대 ~ 30대일 것을 가정하여 하는 말이지만, 전국노래자랑 본선 진출은 절대로 녹록지 않다. 방송의 주 시청자들이 50대 이상의 중장년 노년층이기 때문에 어르신 버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르신 버프가 없더라도 애초에 약 500명 남짓한 사람 중에서 15명을 뽑는 33:1 경쟁률을 뚫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단 본인이 참가를 원하는 20대인데 단독으로 나가는 거라면 본선진출은 반 접고 시작하길 바란다. 어떻게 보면 슈스케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20대의 참가자가 예선 1차에 합격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6.3.1. 선곡[편집]
- 트로트 선곡일 경우 - 프로그램 특성상 가장 합격 가능성이 높은 선곡이다.
- 일반 가요 선곡일 경우 - 최소한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선곡할 것.
- 느린 발라드 선곡일 경우 - 이걸로 전국노래자랑 예선을 뚫었다면 걍 가수 오디션을 봐라. 아무리 잘 불러도 1차 예선을 뚫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이 경우 잘 선곡하는 노래는 "박완규"(혹은 이영현 버전)의 천년의 사랑인데, 하도 많은 실력자들이 이 노래를 선곡한 덕에 이제는 핸디캡이 생겨버린 듯. 동영상 문단에 올라온 우승자처럼 불러야 본선에 나갈 수 있을 듯하다. 2010년 10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편에서는 초등학교 교사 남녀 두 명이 나와서 임재범&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불러서 우승까지 했었다.[78]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충 열다섯팀이라고 치면 다섯 자리 정도는 어르신 몫이고, 두어 자리는 어린이 몫이니 청년용으로 배정되는 건 7~8자리인데, 이 중에서도 절반 정도인 3~4자리는 복장에 안무까지 준비해 온 팀이다. 많아야 두명 정도만 발라드나 락으로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6.3.2. 운빨[편집]
사실 예선 1차는 운도 중요하다. 보통 예선 참가자는 최소 300명에서 많으면 500명까지도 이른다. 자기 소개+노래 등을 고려하면 한 참가자 당 평균 1분이 소모되다 보니, 심사위원도 지칠 수밖에 없다. 합격이 잘 나오는 순서가 있고, 이 때는 어중간한 실력으로도 잘 묻어갈 수 있다. 반면 뒷순번이거나 줄줄이 불합격이 나오는 분위기 속에서는 실력자조차도 암울한 분위기를 깨지 못하고 수고했다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위의 얘기는 청년에게 해당하는 얘기고, 어르신의 경우 예선 1차 합격은 본인이 적당한 박자감과 리듬감이 없지 않는 한 그다지 어렵진 않다.
6.3.3. 특기 준비[편집]
예선 1차에 합격한 참가자가 받는, 예선 2차 참가 신청서에는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 3곡을 적는 공간 외에도, 전국 노래자랑에 나오게 된 사연, 장기자랑(노래가 자신 없으면 장기자랑이라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1차는 합격해야 2차에 참가한다) 등을 적을 수 있다.
1차를 붙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기도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노래 후 대개는 그냥 다음 참가자가 호명되지만, 본선 진출이 유력한 참가자의 경우 장기자랑을 보여달라고 요구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노래를 잘 한다는 조건 하에, 재밌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면 없는 사람들보다 본선에 오를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6.3.4. 실력[편집]
위키 유저가 노래를 잘 불렀건 운이 좋았건 예선 1차에 통과했다면, 진정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예선 2차를 하게 된다. 2차부터는 키 조정이 가능한 반주가 주어지면서 진짜 실력자와 뽀록 합격자가 한 번에 구분된다. 특히 여기서는 어르신 버프로 올라온 어중간한 1차 합격자가 단숨에 걸러진다.
참가자 이름 호명과 함께 신청서에 적은 노래 중 어떤 것을 부를지 얘기하고 나면 반주가 나오고 보통 1절까지 부를 기회가 주어진다.
참고로 예선 1차는 참가자간 노래가 겹쳐도 상관없지만, 예선 2차는 중복 선곡에 대해 굉장히 불리한 핸디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본선에 나갈 노래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들끼리는 사실상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의 라이벌 미션처럼 한 사람밖에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유명한 노래를 고르되, 너무 많은 사람이 고를 만한 노래를 선곡하면 위험하다. 본인이 다른 사람은 다 묻어버릴 만큼 임팩트있게 노래할 자신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너무도 많은 이들이 뿐이고를 불렀으나 본선에 올라간 건 단 1명 뿐이다.
이 외엔 예선 2차에 대해선 별다른 팁이 없다. 본인의 실력을 유감 없이 뽐낼 좋은 선곡+적절한 몸짓+장기자랑 연마, 그것이 바로 본선 진출을 위한 왕도이다.
6.3.5. 기타[편집]
상기 내용들은 모두 개인 참가자에 해당하는 얘기다. 본인이 20대라도, 단체+분장+엽기 콘셉트라면, 부족한 가창력으로도 본선 진출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할 것이다.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한 만큼 연습은 빡세게 해야 한다.
남성의 경우 맨다리가 보이는 의상 반바지 등을 착용해선 안 되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다.
심사위원들이 매우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KBS광주의 유튜브 채널에서 2019년 9월 8일에 전남 여수시 편의 예심 현장을 생중계한 적이 있는데, 반말을 쫙쫙 내뱉거나 비아냥스럽고 불친절한 말투로 참가자들을 대해서 댓글로 폭풍 비판을 받았다.
7. 포상[편집]
수상자는 연말결선 출전 자격이 부여된다.[79] 참고로, 수상자들의 상품권 가격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각각의 상이 수상될 때마다 연주하는 악단의 팡파레도 백미 중 하나.[80]
시상은 대체적으로 시청자들과 현장을 방문한 방청객들도 납득할 만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어떤 출연자는 분명히 어떠한 조건에 부합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도 못 타거나 분명히 인기상이 3팀이 나올 법한 회차였는데도 꼴랑 2팀만 나오거나 하는 식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만 해도 이런 일이 다반사였지만, 요즘은 많이 없어졌다.
해당 상금은 2015년 7월 이후 기준으로 한다.
- 인기상: 상품권 70만원(2팀), 초대가수 시상
- 장려상: 상품권 80만원, 초대가수 시상
- 우수상: 상품권 100만원, 초대가수 시상
- 대상(연말결선 한정): 상금 500만원+트로피, KBS 사장 시상
8. 화제의 인물들[편집]
위 영상에는 전라남도 함평군 편의 벌 아저씨, 김영호 씨 / 전라남도 신안군 편에서 고꾸라지는 말 / 전라남도 여수시 편의 손고장난벽시 씨 등이 나온다.
- 추석특집 지구촌 노래자랑[85] 의 필리핀 빌리진 # 출연자의 '근황올림픽' 출연분. 빌리진도 빌리진인데 아래를 보다시피 팝핀을 지리게 추는 할머니가 엄청난 화제였다.
- 이후 '민폐 갑 벌아저씨' 라는 별명을 얻은 양봉업자 김영호 씨는 2021년에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에 출연해 근황을 알림과 동시에 본인의 다음 순서에 나왔다가 벌 때문에 세 번이나 땡을 맞은 당시 나산리 이장 김갑수 씨를 찾아가서 본의아니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를 했고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벌꿀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김갑수 씨는 그 때를 떠올리고 허허 웃으면서 사과를 받아줬다.
2019년 '사랑하는, 사랑했던' 을 발매하여 데뷔하였고, 2020년 <팬텀싱어 3>,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에 참가하였다. <싱어게인> 에서는 파이널까지 진출하여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정권 문서로.
- 2012년 4월 29일에 방영된 전라남도 나주시 편에서는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와 다비치의 사랑과 전쟁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부른 두 명의 참가자는 인기상을 탔고 사랑과 전쟁을 부른 두 명의 참가자는 장려상을 받았다! 다시보기 기준 '내가 제일 잘 나가'는 46분부터, '사랑과 전쟁'은 56분 30초부터 보면 된다.[89]
8.1. 연예인 출연[편집]
같은 방송국 혹은 타 방송국의 특정 프로그램 출연진이 특별출연한 경우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은 나중에 연예인으로 데뷔한 케이스지만, 무명 시절 초대 가수로 나왔는데 훗날 뜨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장르불문 톱스타 인기가수의 등용문[90] 자격이 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1박 2일 출연진이 경상남도 거창군 편(2008년 5월 4일 방송)의 녹화에 참여했다. 당시 두 프로그램의 녹화일과 지역이 딱 겹쳐서 출연진들이 한 번 나가볼까 하는 반 농담성으로 던진 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1박 2일 제작진이 녹화 전날 밤에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에게 연락, 출연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전날 3시간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맹연습을 한 뒤에 다음날 출연했다. 김C는 그 무렵에 부친상을 당해서 그 녹화는 불참했기 때문에 5명만 출연했다. 부른 노래는 박상철의 무조건. 한편, 1박 2일 팀은 특별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의 메인 상들은 공식적으로 예심을 통과하고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이 받았다. 1박 2일 팀은 정식으로 예심을 통과하지는 않았지만, 귀빈이나 다름없는 1박 2일 팀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기도 뭐하니 번외로 준 것으로 보인다. 해당 영상. 사실상 초대 가수와 같은 신분이기 때문에 예심이 없었다. 실제로도 당시 1박 2일 멤버 중 은지원, MC몽, 이승기는 가수가 본업인 사람들이다. 출연자 소개 자막도 전국노래자랑의 것이 아닌, 1박 2일 스타일의 자막을 색깔까지 맞춰서 썼다.
- 미녀들의 수다의 콜롬비아인 패널 안젤라 아라우호 마르티네스가 충청남도 아산시 편(2008년 6월 1일 방송) 녹화에 참가하였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모른 채 나간 것인지 MC 송해는 물론 당시 악단장 김인협도 전혀 몰랐으며, 아무런 상도 타지 못하였다. 게다가 노래 제목도 종이에 적어 온 것을 송해에게 보여준 뒤 노래[91] 를 불렀고, 또한 전체 가사도 다 외우지 못했는지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가사가 적힌 종이를 자주 꺼내보았다. 참고로 이 회차는 당시 여고생이던 김보경이 출연한 회차이기도 하며, 김보경은 이로부터 2년 뒤 슈퍼스타K2에 출연하였다. 영상.
- 3주 후인 2008년 6월 22일에 방송한 충청남도 예산군 편에서 당시 12살의 나이로 '청춘가'(민요)를 구성지게 불렀던 당시 예산덕산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송소희가 출연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예산군 편 풀영상. 딱 1주일 후 열린 상반기 결선에서도 우승했고, 6개월 후 열린 2008년 연말결선에서도 또 우승을 차지해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사실 이보다 4년 전에 8살이던 2004년 11월 28일에도 이미 한번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다만, 당시 출연 지역은 예산군이 아닌 충청남도 홍성군이었다. 영상. 사실상 송해가 발굴해 낸 스타인 송소희는 KT의 CF로 2014년부터 다시 대중 앞에 얼굴과 이름 석자를 알렸다.
- 가수 별이 1994년에 한 적 있던 충청남도 서산시 편에 출연해서 인기상을 수상했다. 당시에는 송해의 잠정 하차로 시청률이 뚝 떨어진 탓인지 2012년에 별이 밝히기 전까지는 네티즌들은 몰랐다고 한다. 영상.
- 박상철은 미용사로 일했을 때 1993년 7월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뒤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때 당시의 방송을 보게 되면 박상철도 흔한 동네 아재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송은이는 1998년 4월에 코미디 세상만사 출연 중에 참가했는데, 난 괜찮아를 부르다가 마이크에 머리를 찧어 땡을 맞았다. 이후 쓰러져 실려가면서 난 괜찮아라고 외치는 건 덤이다. 같은 날 유재석도 코미디 세상만사 촬영 중에 출전했다가 아파트를 불러야 하는데 둘리 노래를 불러서 땡을 두 번 맞았다.[92] 마지막에 송해에게 줬던 구두를 뺏고 뻐팅기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건 덤이다. 영상.[93]
- 오마이걸의 승희가 초등학생 시절 2007년 1월 7일에 방영된 강원도 인제군 편에 출연해 우수상을 받았다. 짜깁기 영상, 풀영상. 부른 곡은 자옥아. 같은 해 3월에 열린 스페셜 편인 팔도명물총집합 편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후에 말하기를, "한이 서려 있네요, 제가." 같은 해 상반기 결선에서도 역시 입상하였다. 2018년 12월 30일에 2018 연말결산편에 오마이걸 멤버들과 출연 하였다.
- 2013년 보이스 코리아2에 출연하고 현재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진행 중인 가수 송푸름이 2009년 경상북도 울진군 편과 2012년 경상북도 울진군 편에 출연했는데, 2009년에는 장려상을 수상했고[94] , 2012년에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95] .
- 2014년에 방송된 '14 연말결선에서 오렌지캬라멜이 나와서 아잉을 불렀다. 크레용팝과 마찬가지로 라이브 반주가 아니다.
- 2019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들인 강민정, 강민선 자매는 방송 후 KNN 골든마이크와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다. 현재는 트윈걸스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 2012년 충남 천안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한 오예중은 이듬해 JTBC 히든싱어 장윤정 편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민방 JTV 전주방송의 와글와글시장가요제라는 프로그램에서 장터 맛집을 소개하는 역할로 나왔다.
- 2006년 서울특별시 중구 편에서 최우수상을 탄 가수 김서영은 2009년에 '내 나이는 여자'라는 노래로 앨범을 내면서 30줄이 넘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고, 최근에는 선물이라는 노래로 활동 중이다.
- 2012년 추석특집 지구촌 노래자랑에서 일본 SDN48의 이와타 유키가 출연하였다.
-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흥행하면서 참가자들의 과거 전국노래자랑 참가 이력이 화제와 재조명이 되고 있다.
- 송가인은 2010년 12월 19일, 전라남도 진도군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어 연말결선에서도 우수상을 받았다. 한 술 더 떠서 나중엔 초대가수로 출연한 적도 있다. 송가인 편집 영상, 송가인 출연분 풀영상. 이땐 미스트롯 출연 전이라 본명인 '조은심'으로 나왔다. 송해가 '정말 반가운 이름'이라고 언급한 걸 봐선 송해도 송가인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공교롭게도 그녀의 어머니도 1993년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편집 영상, 풀영상.
- 정미애도 출연한 적이 있다. 2005년 5월 8일 대구광역시 북구 편[96] , 한달 뒤 상반기결선, 당해 겨울 연말결선까지 2005년에만 3번이나 출연했다. 편집본 1, 편집본 2.
- 이찬원은 초등학생이던 2008년, 대구 중구 편에서 우수상을 타서 연말결선에도 출연했고, 고등학생이던 2013년, 대구 서구 편에서 인기상, 대학생이던 2019년 경북 상주시 편에도 출연해 최우수상을 탔다.
- 홍잠언
9. 사건사고[편집]
- 1989년 6월 11일에는 전라남도 담양군 편이 방송되었는데, 참가자 중에 5개월 전에 특수 절도 혐의로 기소 중지 상태인 수배자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다가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던 담양의 모 파출소에 근무하던 김용선 순경에 의해 범인이 덜미를 잡혀 결국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녹화현장에서 잡히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탄 이후로 동네 유명인사가 된 뒤로도 계속 같은 업체에 근무했다가 결국 감방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전국적으로 얼굴을 널리 알렸으니 구속당해도 할말이 없었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MBC의 재연 프로그램이었던 타임머신(39회, 2002년 9월 15일 방송분 -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다면" 편.)에서 재연해 방송된 적이 있었다.
- 2012년 10월 7일 충청북도 괴산군 편에서 안모 노인이 당시 2012년 기준으로 97세(1915년 1월 15일생)의 노익장을 발휘하며 인기상까지 타고 2012년 12월 30일 연말결선에서도 인기상을 탔다. 그런데 이듬해 보니까 2013년 기준으로 60세(1953년생)였다고 한다. 한참 형님인 송해한테 아우라고 부르며 막 대했는데[99] 60세라는 걸 알자 충격먹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외모만 봐서는 정말 90대의 외모인데 알고 보니 환갑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충격받은 사람들이 있다. 어려서부터 고생했는지 푹 삭았는데 이 점이 사기에 유리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그 후 신분 세탁에 복권 위조까지 한 범죄자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관련 기사. 게다가 2018년에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관련 기사. 문제가 터진 이후 그 자의 출연 회차들의 다시보기는 전격 중단되었다[100] .
- 2017년에는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졌다. 그 이유는 남자 아이가 여자 노래를 잘 부르길래 고추가 달렸나 하고 좀 만져본 거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품위유지 위반' 권고를 내렸다. 일단 진행자 송해의 나이를 생각하면 성추행이라는 인식없이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에서는 성기가 컸나 안 컸나 확인한다며 남자아이들의 성기를 만지는 일이 흔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들이 어린 남자아이에게 '고추가 잘 익었나~고추 따먹자'하는 장난 등. 송해가 어렸을 때는 남자 어린이들은 하반신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해당 어린이가 큰 불쾌감과 수치심을 분명히 느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진행자 송해의 나이대와 살아온 시대상을 참작해 경고가 아닌 권고를 받은 듯. 만약 미국이었다면 나라 전체가 뒤집어질 대사건이다.[101]
9.1. 방영 연기[편집]
- 2009년 하반기에 방영할 예정이었던 전라북도 순창군 편은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취소되었고 3년 후인 2012년 순창장류축제 행사 때 다시 녹화를 했는데, 방영은 2013년 3월에 방영되었다.
-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로 대전광역시 대덕구 편은 1년 4개월 늦게 방영하였고, 전라남도 고흥군 편은 5~6주 늦게, 경기도 부천시 편과 충청남도 부여군 편은 2달 늦게 방영되었다.
- 2012년 7월에 전라북도 진안군 편을 방영했는데, 방영 전에 서울 구로구 편 노래자랑 편에서 2012년 4월 말에 녹화를 한다고 공지했고, 지역 매체에서도 초대가수로 박상철과 설운도, 장윤정이 출연한다고 소개했으나, 방영 당시에는 초대가수가 장윤정에서 윙크로 바뀌었고, 덤으로 녹화도 두 달 늦어졌다.
- 2014년 5월 방영 예정이었던 전라북도 부안군 편과 부산광역시 수영구 편, 그리고 강원도 영월군 편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하여 제작이 중단되었다. 이후 전라북도 부안군 편은 이듬해인 2015년 6월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은 2016년 4월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편은 2017년 5월에, 강원도 영월군 편은 2014년 8월에 뒤늦게 제각기 새로이 예심과 녹화를 하고 방영되었다. 여담으로, 2014년에 할 예정이었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에서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2014년 4월 19일에 녹화를 할 예정이었는데, 진선미, 이완영, 김을동 3명이 신청을 해서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녹화를 사흘 앞두고 세월호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녹화는 취소되어버렸고, 자연히 이들의 출전도 무산되었다.
- 2014년 10월 전북의 한 매체에서 임실군 편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한다고 보도했는데 결국 1년 늦어졌고, 방송도 두 달 늦은 2016년 1월에 방송했다.
- 2015년에 한 것들인 서울특별시 중랑구, 경상북도 경주시, 전라남도 강진군 편은 메르스로 인해 적게는 한 달, 길게는 3개월 가량 연기되었다.
- 2017년 8월 방영분 중 하나는 2017년 6월에 녹화되었다. 당시에는 폭염에 대비해서 2017년 9월 전라북도 무주군 편부터 2018년 3월 광주광역시 남구 편까지의 방영분들은 KBS 노조 총파업에 대비해 미리 찍어둔 것들이다.
- 2018년 8월 26일 방영 예정이었던 광주광역시 서구 편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중계 방송으로 결방되었고, 한 주 뒤에 방영되었다.
- 2019년 6월 30일 방송 예정이었던 서울특별시 광진구 편과 6월 녹화 8월 방영분은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으로 1주일 연기되었다.
- 2022년 10월 30일 방송 예정이었던 충청북도 영동군 편은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된 KBS 뉴스특보 연속방송으로 1주일 연기되었다.
10. 기록[편집]
- 경상남도 창원시 편은 2018년 12월 16일에 방영했는데, 이로부터 4개월 뒤인 2019년 4월 28일에 단 4개월 만에 또 방송하였다.[102] 참고로, 지역 순환 주기는 보통 2년 이상이나, 아주 가끔은 1년 만에 특정 지역에서 다시 하는 등의 예외도 있다. 2014년 1월에 한 번 방송하였다가 1년 2개월 만인 2015년 3월에 다시 방송한 바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 편이 그 예이다. 사실 지금이야 이런 경우는 덜 하지만, 90년대까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경우에는 몇 개월도 아니고 2주 연짝으로 같은 도시에서 개최한 적도 있다.[103]
- 2007년 - 경기도 성남시
- 2008년 - 전라북도 익산시
- 2009년 - 부산광역시 사하구
- 2010년 - 경상북도 영양군, 경상북도 청도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2011년 - 서울특별시 동작구, 부산광역시 강서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대전광역시 유성구
- 2012년 - 서울특별시 강북구, 서울특별시 송파구[104] , 서울특별시 용산구, 경기도 고양시,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남도 함안군
- 2013년 - 서울특별시 강서구, 인천광역시 계양구, 강원도 속초시, 충청북도 보은군, 전라북도 전주시, 전라북도 순창군
- 또한 엄청 오랜만에 재개최한 경우도 있다.
- 2000년 → 2015년 - 강원도 양양군 (15년)
- 2003년 → 2018년 - 대구광역시 동구 (15년)
- 1990년 → 2004년 - 서울특별시 성북구 (14년)
- 1997년 → 2011년 - 인천광역시 옹진군 (14년)
- 1999년 → 2013년 → 2023년 - 부산광역시 영도구 (14년 → 10년)
- 1999년 → 2013년 - 인천광역시 계양구 (14년)
- 1999년 → 2012년 - 부산광역시 남구 (13년)
- 2009년 → 2022년 - 전라북도 완주군 (13년)
- 2010년 → 2023년 - 부산광역시 북구 (13년)
- 2001년 → 2013년 - 울산광역시 북구 (12년)
- 2002년 → 2014년 - 대전광역시 중구 (12년)
- 1995년 → 2006년 - 충청북도 단양군 (11년)
- 1996년 → 2007년 - 인천광역시 강화군 (11년)
- 2001년 → 2012년 - 강원도 평창군 (11년)
- 2005년 → 2016년 - 대전광역시 서구 (11년)
- 2007년 → 2018년 - 경기도 과천시 (11년)
- 1998년 → 2011년 → 2022년 - 경기도 양주시 (13년 → 11년)
- 2012년 → 2023년 - 강원도 철원군 (11년)
- 2012년 → 2023년 - 전라북도 진안군 (11년)
- 1999년 → 2009년 - 부산광역시 사하구 (10년)
- 2001년 → 2011년 - 서울특별시 동작구 (10년)
- 2003년 → 2013년 → 2023년 - 대전광역시 동구 (10년 → 10년)
- 2003년 → 2013년 - 강원도 화천군 (10년)
- 2003년 → 2013년 - 충청북도 증평군 (10년)
- 2005년 → 2015년 - 대구광역시 북구 (10년)
- 2005년 → 2015년 - 인천광역시 동구 (10년)
- 2007년 → 2017년 - 서울특별시 서초구 (10년)
- 2013년 → 2023년 - 경기도 부천시 (10년)
- 2013년 → 2023년 - 전라북도 군산시 (10년)
- 2014년 2월 2일 경기도 양평군 편에서는 115세(1900년 생, 19세기 출생) 할머니와 22살 증손자가 함께 출연했다. 2016년 현재 정식 인정된, 전세계에서 19세기에 태어난 인물은 미국과 이탈리아에 각 1명이다. 물론 이 할머니가 115세(1900년생)라는 증거는 없으며, 간혹 국내에도 110세 넘는 노인이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데 증거가 모두 주민번호 앞자리다. 실제로 110세 이상 할머니가 90세 아들과 투표하러 온 사례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있었다. 근데 이 앞자리의 경우, 40년대 이전 출생자 중에서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출생신고를 늦게 하거나 증명서가 없어 실제보다 몇년 늦게 기록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본인의 손윗형제나 심하면 자기 부모나 부모 형제의 호적을 물려받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몇년 전 실제로 국내 고령인 조사를 하던 중,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전산을 통한 110세 노인들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는데 모두가 실제 나이는 90대 전후였고 모두 손윗형제나 부모의 호적을 태어날 때 물려받아 살아간 것이었다. 신분증을 통한 검증이 실효성이 없는 건 국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행정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신분상으로 1850 ~ 1870년 생인 사람이 살아 있어 매년 140 ~ 150세 노인이 기네스에 최고령인으로 도전한다는 뉴스가 매우 많고, 심지어 우리보다 행정 체계가 더 잘 잡힌 캐나다나 영국 같은 선진국도 1890년대 이전 출생으로 나와 있는 생존자들이 꽤 존재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100세 인구는 2016년 통계청 전국민 전수조사를 통해 밝힌 바 총 4000명 내외였다. 자세한 건 장수 문서 참조.
- 2015년 10월 11일 전라남도 여수시 편에서는 손고장난벽시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원래는 '손고장난벽시계'로 개명하려 했지만, 6음절 이름 제한으로 인해서 글자수가 초과되어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손고장난벽시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적절하게도 부른 노래는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로, '땡'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이름 덕에 인기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나중에 이름을 '손대동령'으로 바꿨다는데, 손대통령으로 하려다 할 수 없이 이렇게 바꿨다고 한다.
- 심사위원 최저 출연자는 작곡가 정의송이다. 대표적으로 2011년 경상북도 경주시, 부산광역시 강서구 편과 2012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은평구, 경상북도 칠곡군 편 등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 위키백과와 후술할 역대 방영 목록 연도별 문서로 들어가 보면 전라북도 임실군 편은 21세기 이후로 무려 6번이나 방영되었다. 2003년 12월과 2006년 6월, 2008년 12월, 2011년 10월, 2016년 1월, 2018년 11월에 방영되었다. 최저 방문지는 부산광역시 수영구/사하구(수영구는 1998년, 2005년, 2008년, 2017년, 사하구는 1999년, 2009년 방영), 대전광역시 유성구(2011년, 2005년 방영), 인천광역시 계양구(2013년, 1999년 방영) 등이 있다. 참고로 이것도 21세기 이후 한정이며, 20세기 이전에는 이보다 좀 더 많이 방영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80년대 방영분들은 데이터가 많이 없어서 빠진 탓에 제대로 못 찾게 된 것들도 꽤 있어서...
- 2013년 인천 계양구 편은 계양구민의 날을 맞아서 경인교대 운동장에서 녹화했다.
- 2009년 인천광역시 강화군 편에서는 18세 참가자가 장윤정의 콩깍지를 부르다가 역대 최연소로 땡을 맞았다.
- 2011년 상반기와 2012년 상반기에는 서울특별시 방영분이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 방영분들 중 서울특별시의 자치구에서 방영한 것만 자그마치 8개나 되며, 이후 하반기이던 2011년 9월과 동년 12월에 성동구와 관악구에서 각각 방송하였다. 2012년에는 1월에 서대문구를 찾아간 것을 시작으로 2월에 강북구와 성북구를, 3월 방영분은 3월 4일 방영분[106] 을 제외하고 이후 방영분들은 전부 서울에서만 3번 방송하였다. 순서대로 용산구, 은평구, 구로구. 이 6번을 끝으로 서울 녹화분은 잠시 동안 없었다가 동년 여름인 6월, 송파구와 마포구 2곳을 찾아갔고, 하반기에는 서울에서 녹화한 것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참고로, 2010년과 2018년에는 서울에서 방영한 것이라곤 두 해 모두 달랑 하나였는데, 2010년의 경우에는 1월의 동대문구밖에 없었고, 2018년의 경우에는 4월의 구로구밖에 없었다. 한편 코로나 사태 발발 전까지 전국노래자랑이 서울을 찾은 회차는 2019년 10월 13일의 서울특별시 관악구가 마지막이었으며, 2022년 7월 전국노래자랑 정규방송 재개 이후 한동안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에서는 녹화한 적이 1번도 없었다가 2023년 4월, 관악구의 옆동네 금천구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서울 방문이 확정되었다. 대전광역시와 인천광역시 역시 동구와 강화군에서 2023년 4월에 녹화를 마쳤다. 충청남도[107][108] 도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가 2023년 7월에 서산시에서의 녹화가 확정되면서 1호 동네가 되었다.
11. 유사 프로그램[편집]
- SBS에서 2009년에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한 <쇼! 노래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으나,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 없이 방송하다가 시청률 부진으로 단 3개월만에 종영했다. 설운도와 김종국이 진행을 맡았으며, 전국노래자랑과 달리 토요일 낮 12시대에 방송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로...
- OBS에서도 전국노래자랑과 포맷이 비슷한 '도전 마이크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쇼! 노래하는 대한민국보다 오래 방영하긴 했고, 이후에도 비정기 편성을 한 적이 있긴 하다. 예전 경인방송에서 '열전 가수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도 있었다.
- JTBC는 매주 토요일 오후 '오 마이 스타'를 방영 한 적이 있었으며, MC는 허참이었다. 2013년 9월 28일 시작해서 2013년 10월 19일 종영됐다.
- 일본의 NHK 노래자랑과 포맷이 같다. # 전국을 돌면서 일반인들의 노래 실력을 평가하며 심사 위원의 판단에 따라 노래를 중단시키는 방식까지 같다. 요일과 시간대까지 일치해서 NHK 노도지망의 경우 일요일 오후 12시 15분부터 45분간 방송 된다. 단, 전국노래자랑은 중간에 예능적 요소가 가미된 반면, NHK 노래자랑은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따라서 전국노래자랑은 정말 어이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합격이지만 NHK 노도지망은 조금만 시원찮아도 불합격을 때린다. 이외에도 KBS는 야외 녹화 방송이 기본인 반면 NHK는 실내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또한 추가로 전국노래자랑은 끼가 있고 노래만 잘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지만 NHK 노래자랑은 중학생 이상부터 참여할 수 있으며 초등학생까지는 참여를 할 수 없다.
- 지역민방 JTV 전주방송의 와글와글시장가요제 라는 프로그램은 코미디언 황기순이 진행을 맡고 전통시장의 장날에 녹화하는데, 참가자를 현장에서 즉석 출연시킨다고 하며 시장이 주무대라 그런지 객석도 대규모는 아니라고 한다. 인근 다른 지역에서 출전하는 참가자 때문에 일부 지역 시청자들의 불만이 있기도 하다. 매년 연말이 되면은 왕중왕전을 가리는데 포맷이 전국노래자랑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와는 비교불가다. 이외에도 케이블방송인 SK브로드밴드 전주방송(舊 티브로드 전주방송)과 KCN금강방송에서 이와 같은 유사 노래자랑 프로그램인 도전가요열전 KCN가요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난히 전북 지역에서 유사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전라북도 지역 지자체가 유독 다른 지역에 비해 전국노래자랑 개최가 오래 걸린다는 설이 있다.
- 지역민방 KNN 부산.경남방송에서 2022년 5월까지 제작했었던 '쇼! TV유랑극단'도 전국노래자랑과 유사한 프로그램이었다.
-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서 2023년 4월부터 방송하고 있는 노래하는 대한민국도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유사 프로그램이다. 진행은 김종국[110] 과 원플러스원이 맡고 있으며, 시간대는 일요일 저녁 8시대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대가 시간대라서 그런지 시청률은 잘 안 나오고 있고, 화제성도 덜하다.
12. 특별편[편집]
- 1995년 8월에는 파라과이까지 가서 교포 위문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추석 연휴에 <남미대륙 한국인 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방영했다. 송해의 말에 따르면 당시 가는 데만 3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2000년 2월에 오사카에서 노래자랑을 진행했다. #
- 2003년 광복절에 평양 모란봉 공원의 야외 무대에서 KBS와 조선중앙텔레비죤이 공동 제작한 《평양노래자랑》이라는 제목으로 평양 시민들의 노래 자랑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하였다. 링크.
- 2005년에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에서 노래자랑을 했다.
- 2007년 9월에는 뉴욕 아이젠하워 공원에서 녹화를 진행했는데, 14,000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였다. 번외편으로 이창명이 실로폰을 들고 뉴욕 거리를 누비며 거리 노래자랑을 진행했다. 링크.
- 2009년 9월 5일에는 중국 선양시 편 녹화를 위해 교민, 조선족, 한족을 포함해 900여명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방송은 2009년 추석연휴 중이었던 2009년 10월 4일에 하였다. 영상.
- 2011년 초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노래자랑을 했다. 방송은 2011년 설날 당일에 하였다. 영상.
- 2016년 2월 7일에 설 특집으로 '전국노래자랑 36년 인기상 총집합' 편이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윗 동네가 저지른 도발 때문에 일요일이 아닌 설 대체 공휴일인 2016년 2월 10일 수요일 낮 12시 10분에 방송되었다. 무려 1981년 수상자까지 나왔다. 영상.
- 2016년 3월 30일부터 동년 7월 13일까지는 이 프로그램의 속 내용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인 '동네스타 전국방송 내보내기'를 방영했다.
- 2019년 설 연휴 기간 중인 2월 3일에는 설날 특집으로 1020 전국노래자랑을 방송했다. 10~2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 특집은 2017년 설 연휴 기간 중에도 방영한 적이 있는 특집이다. 2022년 설날에도 1020 노래자랑을 방송했다.
- 2019년 3월 3일 방영된 공사창립특집 아나운서노래자랑은 방송일이 KBS의 공사창립기념일이었다. 자사 아나운서들끼리 하는 것이다보니 상에 대한 포상은 없었다.
- 2019년 8월 11일, 광복절 특집으로 경상북도 울릉군 편을 방영(1956회)했다. 이게 참 우연의 일치로 시기가 공교롭게 되었다. 녹화 자체는 2019년 6월 14일에 울릉도 일주도로 완공을 기념하는 의미로 진행했다. 그런데 이후 7월부터 한일 무역 분쟁과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으로 한일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그 와중에 광복절 특집으로 독도가 있는 울릉군 편을 방영하게 된 것. 참고로, 울릉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촬영한 것은 2010년 7월 31일(1523회) 촬영한 이후 9년만인데, 그 때도 우연히 방송 날짜가 광복절 당일이었다. 다만 2010년 때는 광복절 특집이 아닌 여름 특집이었다. 참고로, 이날 입상자는 모두 남자였다.
- 2020년 12월 13일 방송분부터 동년 12월 27일까지 연말특집으로 대한가수협회 주최로 가수들끼리 경연을 벌이는 '전국가수노래자랑'을 방송하였다. 코로나19로 대한가수협회의 고유사업인 '낭만콘서트' 대신 열리는 것이라고 한다.
13. 여담[편집]
하위 문서: 전국노래자랑/여담
14. 변천사[편집]
14.1. 초대가수 노래제목[편집]
14.2. 참가자 노래제목[편집]
파일:2004년노래자랑자막2.png
2004년 2월 8일부터 2005년 12월 18일, 2006년 2월 5일 방송분까지 사용된 자막.
음표 표시에서 별 표시로 변경되었다.
파일:2004년노래자랑자막1.png
2004년 2월 ~ 6월 일부 방송분 한정으로 사용되었는데 참가자가 부른 원곡 가수명이 표기되어 있다.
2004년 7월부터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자막이다.
[ 사용된 회차 ] - 2004년 상반기 방송분들은 안 올라온 것들이 많아서 업로드 할 때마다 수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