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노 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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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브라이언스 타임은 마야노 탑건과 후술할 나리타 브라이언을 비롯해 일본에서 총 15필의 G1 산구를 배출한 명종마이다.
모마 알프 미 플리즈는 미출주마로 미국에서 번식암말로 활동하다 1988년 일본 하야타 목장에 수입되어 3번째 새끼말을 낳았고 다음해에 카와카미 에츠오[2] 가 구입해 카와카미의 목장으로 옮겨져 6번째 새끼말로 마야노 탑건을 낳았다. 이 후 카와카미 목장이 경영 부진에 빠진 1997년에 다른 목장으로 갔으나 직후에 출산 중 목숨을 잃었다.
1992년 태어난 알프 미 플리즈의 6번째 새끼 말은 목장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3년 사츠키상 우승마는 목장 생산마인 나리타 타이신이었기에 목장에 기자들이 취재를 왔고 나리타 타이신의 뒤를 잇는 기대주가 있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카와카미 에츠오는 알프 미 플리즈의 6번째 새끼 말이라고 답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사카구치 마사히로 조교사 담당으로 정해져 있었다. 마주 타도코로 유는 병원 원장으로 비행기 타는 것을 어려워해 홋카이도에 가지 않고 본인의 경주마 선택은 사카구치 조교사에게 일임했다. 경주마명은 관명 마야노에 영화 탑건의 팬이었던 병원 사무직 직원의 제안으로 마야노 탑건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1994년 3월 사카구치의 마사에 들어온 마야노 탑건은 조교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골류를 일으켜 홋카이도 몬베츠초 클로버 팜에서 휴양하며 다리를 강에 담가 식히며 치유했다. 가을에 다시 마사로 돌아온 후에는 다리에 부담이 적은 수영장 조교로 단련했다.
다리 치유로 인해 늦어져 1995년 4세(현 3세) 1월에 데뷔, 한동안은 다리에 부담이 적은 더트 경기를 뛰며 7경기에서 2승을 기록했다. 다리가 안정된 6월 잔디로 전향, 첫 경기는 3착을 기록했지만 이어진 야마유리 스테이크스에서 승리하며 사카구치 조교사는 킷카상[3] 을 바라보게 되었다.
첫 중상 도전이었던 고베신문배에서는 1번 인기의 더비마 타야스 츠요시의 추격을 뿌리쳤으나 7번 인기 타니노 크리에이트에 추월당하며 머리 차 2착을 기록했다. 2착으로 킷카상 우선출주권을 얻었지만 거리연장을 위해 나간 교토신문배에서 다시 머리 차 2착을 기록한다.
1995년 킷카상은 사츠키상마 제뉴인은 천황상 가을 노선으로, 더비마 타야스 츠요시는 부진이 이어지면서 혼전이 예상되었고 18년만에 킷카상에 도전한 암말인 댄스 파트너가 1번 인기를 받았고 교토신문배 우승마 나리타 킹 오가 2번 인기, 마야노 탑건은 3번 인기를 받고 출주하게 되었다. 최종 코너를 돌며 선두에 선 마야노 탑건은 다른 말들의 추격을 버텨내며 1 1/4마신 차 레코드 승리, 첫 중상 승리로 클래식 G1을 제패하게 되었다. 괴짜 기수 타바라 세이키는 1995년 개선문상에서 람타라를 타고 우승한 기수 란프랑코 데토리의 퍼포먼스를 따라하며 결승선 통과 직후 성호를 긋고 관중들에게 키스를 날리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이 해 벌써 12경기에 나왔고 사카구치 조교사는 많은 경주로 소모되었지만 체면이 서는 5착 이내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리마 기념 출주를 결정했다. 경마팬들은 암말이 1번 인기를 받은 킷카상의 우승마 마야노 탑건을 저평가 했기에 6번 인기에 머물렀고 작년 1, 2위인 나리타 브라이언, 히시 아마존이 1, 2번 인기를 받았다. 특별한 도주마가 없는 상황에서 타이키 블리자드가 선두 자리에 설 것이 예상되었지만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이 레이스를 주도하는 쪽이 좋다고 판단해 도주에 나섰고 슬로우 페이스로 도주마에 유리한 전개를 이끈다.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나리타 브라이언은 직선 주로에서 실속했고 마야노 탑건은 독주상태로 2마신 차 승리, 단숨에 G1 2연승을 달성했다.
이 해 G1 2승마는 마야노 탑건이 유일했고 압도적인 차이로 JRA 연도대표마와 최우수 4세 수말로 선정되었다.
지난해 13경기를 치른 만큼 1996년 초반에는 피로 회복에 전념했고 타바라의 제의로 예정보다 더 늦은 3월의 한신대상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리타 브라이언 역시 한신대상전에서 이 해를 시작하게 되면서 두 연도대표마가 G2 경기에서 맞붙게 되었다.
3코너 시작 지점부터 마야노 탑건이 롱 스퍼트를 걸자 나리타 브라이언도 이에 호응, 직선주로에서는 둘만의 매치 레이스가 펼쳐지며 역대급 명경기가 펼쳐졌고 둘이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3착마와는 9마신의 차이가 있었다. 사진판정 후 나리타 브라이언의 승리가 결정되었고 이 후 나리타 브라이언이 부활했다고 생각한 경마팬들은 이어진 천황상 봄에서 둘의 인기 순위가 바뀌어 나리타 브라이언이 1번, 마야노 탑건이 2번 인기를 받는 가운데 1년 이상의 공백 후 나카야마 기념을 우승하고 온 사쿠라 로렐이 격차가 큰 3번 인기를 받았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직선 주로에서 실속하며 5착으로 패배한다.
사카구치 조교사는 너무 많은 조교로 마야노 탑건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을 패인으로 보고 이시카와현 코마츠시의 온천목장에서 단기 휴양을 가진 후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주한다. 나리타 브라이언이 부상, 사쿠라 로렐은 휴양으로 회피하고 다른 출주 G1 우승마들도 부진하며 출주 라인업의 평가는 높지 않았고 마야노 탑건은 큰 경쟁없이 1.5마신 차로 승리하며 G1 3승째를 올렸다. 코마츠시의 온천목장에서 다시 휴양한 후 가을 첫 경기 올커머에서 1번 인기를 받고 사쿠라 로렐과 맞붙었으나 직선주로에서 힘을 내지 못하고 4착으로 패배한다.
이어진 천황상 가을에서는 마블러스 선데이가 합류하며 처음으로 3강이 모두 참전하게 되었으나 사쿠라 로렐, 마블러스 선데이가 1, 2 번 인기를 받는 가운데 마야노 탑건은 4세마 버블껌 펠로우에게도 밀리며 4번 인기를 받는 굴욕을 받았다. 그래도 마야노 탑건은 만전 상태였고 타바라 세이키도 자신있게 나섰으나 버블껌 펠로우와의 선두 경쟁에서 아깝게 반마신 차로 패하며 2착을 기록한다. 타바라 세이키는 만약 두 말의 게이트 번호가 바뀌었다면 틀림없이 주도권을 잡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연패에 도전한 아리마 기념에서는 직선주로에서 실속하며 7착으로 부진한다.
1997년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하고 봄의 최대 목표인 봄 천황상의 전초전으로 한신대상전에 출주하게 되었다. 타바라 세이키는 그간 마야노 탑건이 기복이 심했던 것은 억지로 선행을 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5세 이 후의 마야노 탑건은 선행의 정신 상태에 맞지 않았는데 그간의 경주 스타일을 유지하다 패배가 이어졌다고 생각했고 마야노 탑건의 기분대로 경주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추입으로 나선 한신대상전에서 3.5마신 차로 승리하면서 8개월만에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추입 승리는 한번의 기책일 뿐 실전인 봄 천황상에서는 정공법으로 나올 거라 보는 의견이 많았고 사카구치 조교사 역시 선행을 지시했다. 각오가 이미 정해진 타바라는 반론을 내며 선행책을 부정했고 기자들이 천황상 전략을 물어 볼 때에는 평소 너무 직설적인 인터뷰를 많이 하는 타바라였지만 횡설수설하며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4]
천황상 (봄) 경기에는 3강이 모두 모여 1996년 천황상 가을과 아리마 기념에 이어 3번째 3강 대결이 성사되었다.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의 기분에 맞춰 추입으로 시작, 사쿠라 로렐과 마블러스 선데이는 보다 앞선 중단에 위치한다. 3코너에서 사쿠라 로렐과 마블러스 선데이가 차례로 스퍼트를 걸기 시작했지만 꾹 참고 기다린 마야노 탑건은 직선 주로에서 바깥으로 나와 말각을 발휘해 사쿠라 로렐을 1 1/4마신 차로 꺾고 일본 레코드를 세우며 승리, G1 4승째를 올린다. 마야노 탑건의 레코드는 기존 1993년 라이스 샤워의 기록을 2.7초나 갱신했으며 3200m 경주로는 1993년 도쿄경마장의 다이아몬드 스테이크스에서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세운 기록에도 2.4초나 앞선 기록이었다. 이 레코드는 이후 10년 가까이 일본 레코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갱신 당시에는 잔디 3200m 월드 레코드이기도 했다.
이 후 휴양에 들어가며 가을 천황상과 재팬 컵 노선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9월 25일 굴건염이 판명되어 은퇴가 결정되었고 11월 30일 한신경마장에서 은퇴식이 열렸다.
1996~97년에 걸쳐 사쿠라 로렐, 마블러스 선데이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했으며 통산 G1 4승을 기록했다. 네 번의 G1 승리를 거두는 동안 달리는 패턴이 선입, 도주, 선행, 추입으로 모두 제각각이라 자유자재의 각질을 가진 말이라 알려졌으나 사실은 지독한 기분파에 마이페이스인 말이라 각질을 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실전에서 임기응변으로 수습했던 건 항상 기수의 몫이었다. 다행히 주전 기수인 타바라 세이키가 언행에는 문제가 많은 기수였지만, 전성기 때의 실력은 타케 유타카와 비견될 정도의 천재 기수로 유명했기에 이를 커버할 수 있었다. 주전 기수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대해 "사전에 작전을 정하지 않고 스타트 후에 포지션을 잡았고, 탑건이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대로 탔다"고 했을 정도다.[5] 하지만 킷카상과 천황상의 레이스 레코드를 갈아치우며 우승했던 것을 보면 본연의 능력은 확실했던 경주마이다.
홋카이도 유슌 스탤리온 스테이션에서 17년 간 종마로 활동하며 1116마리의 자마가 등록되었고 이 중 중상 승리마 15마리를 배출했다. BMS 자마로는 2021년 재팬 더트 더비 우승마인 캐슬 탑이 대표적이다.
2015년을 끝으로 씨수말 생활을 마치고 같은 곳에서 공로마로 여생을 보내다, 2019년 11월 3일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주전 기수 타바라 세이키(田原成貴)는 숱한 기행을 벌인 풍운아로 이름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이며 이름의 유래는 영화 탑건.
2. 혈통[편집]
아버지 브라이언스 타임은 마야노 탑건과 후술할 나리타 브라이언을 비롯해 일본에서 총 15필의 G1 산구를 배출한 명종마이다.
모마 알프 미 플리즈는 미출주마로 미국에서 번식암말로 활동하다 1988년 일본 하야타 목장에 수입되어 3번째 새끼말을 낳았고 다음해에 카와카미 에츠오[2] 가 구입해 카와카미의 목장으로 옮겨져 6번째 새끼말로 마야노 탑건을 낳았다. 이 후 카와카미 목장이 경영 부진에 빠진 1997년에 다른 목장으로 갔으나 직후에 출산 중 목숨을 잃었다.
3. 생애[편집]
3.1. 데뷔 전[편집]
1992년 태어난 알프 미 플리즈의 6번째 새끼 말은 목장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3년 사츠키상 우승마는 목장 생산마인 나리타 타이신이었기에 목장에 기자들이 취재를 왔고 나리타 타이신의 뒤를 잇는 기대주가 있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카와카미 에츠오는 알프 미 플리즈의 6번째 새끼 말이라고 답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사카구치 마사히로 조교사 담당으로 정해져 있었다. 마주 타도코로 유는 병원 원장으로 비행기 타는 것을 어려워해 홋카이도에 가지 않고 본인의 경주마 선택은 사카구치 조교사에게 일임했다. 경주마명은 관명 마야노에 영화 탑건의 팬이었던 병원 사무직 직원의 제안으로 마야노 탑건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1994년 3월 사카구치의 마사에 들어온 마야노 탑건은 조교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골류를 일으켜 홋카이도 몬베츠초 클로버 팜에서 휴양하며 다리를 강에 담가 식히며 치유했다. 가을에 다시 마사로 돌아온 후에는 다리에 부담이 적은 수영장 조교로 단련했다.
3.2. 1995년[편집]
다리 치유로 인해 늦어져 1995년 4세(현 3세) 1월에 데뷔, 한동안은 다리에 부담이 적은 더트 경기를 뛰며 7경기에서 2승을 기록했다. 다리가 안정된 6월 잔디로 전향, 첫 경기는 3착을 기록했지만 이어진 야마유리 스테이크스에서 승리하며 사카구치 조교사는 킷카상[3] 을 바라보게 되었다.
첫 중상 도전이었던 고베신문배에서는 1번 인기의 더비마 타야스 츠요시의 추격을 뿌리쳤으나 7번 인기 타니노 크리에이트에 추월당하며 머리 차 2착을 기록했다. 2착으로 킷카상 우선출주권을 얻었지만 거리연장을 위해 나간 교토신문배에서 다시 머리 차 2착을 기록한다.
1995년 킷카상은 사츠키상마 제뉴인은 천황상 가을 노선으로, 더비마 타야스 츠요시는 부진이 이어지면서 혼전이 예상되었고 18년만에 킷카상에 도전한 암말인 댄스 파트너가 1번 인기를 받았고 교토신문배 우승마 나리타 킹 오가 2번 인기, 마야노 탑건은 3번 인기를 받고 출주하게 되었다. 최종 코너를 돌며 선두에 선 마야노 탑건은 다른 말들의 추격을 버텨내며 1 1/4마신 차 레코드 승리, 첫 중상 승리로 클래식 G1을 제패하게 되었다. 괴짜 기수 타바라 세이키는 1995년 개선문상에서 람타라를 타고 우승한 기수 란프랑코 데토리의 퍼포먼스를 따라하며 결승선 통과 직후 성호를 긋고 관중들에게 키스를 날리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이 해 벌써 12경기에 나왔고 사카구치 조교사는 많은 경주로 소모되었지만 체면이 서는 5착 이내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리마 기념 출주를 결정했다. 경마팬들은 암말이 1번 인기를 받은 킷카상의 우승마 마야노 탑건을 저평가 했기에 6번 인기에 머물렀고 작년 1, 2위인 나리타 브라이언, 히시 아마존이 1, 2번 인기를 받았다. 특별한 도주마가 없는 상황에서 타이키 블리자드가 선두 자리에 설 것이 예상되었지만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이 레이스를 주도하는 쪽이 좋다고 판단해 도주에 나섰고 슬로우 페이스로 도주마에 유리한 전개를 이끈다.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나리타 브라이언은 직선 주로에서 실속했고 마야노 탑건은 독주상태로 2마신 차 승리, 단숨에 G1 2연승을 달성했다.
이 해 G1 2승마는 마야노 탑건이 유일했고 압도적인 차이로 JRA 연도대표마와 최우수 4세 수말로 선정되었다.
3.3. 1996년[편집]
지난해 13경기를 치른 만큼 1996년 초반에는 피로 회복에 전념했고 타바라의 제의로 예정보다 더 늦은 3월의 한신대상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리타 브라이언 역시 한신대상전에서 이 해를 시작하게 되면서 두 연도대표마가 G2 경기에서 맞붙게 되었다.
3코너 시작 지점부터 마야노 탑건이 롱 스퍼트를 걸자 나리타 브라이언도 이에 호응, 직선주로에서는 둘만의 매치 레이스가 펼쳐지며 역대급 명경기가 펼쳐졌고 둘이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3착마와는 9마신의 차이가 있었다. 사진판정 후 나리타 브라이언의 승리가 결정되었고 이 후 나리타 브라이언이 부활했다고 생각한 경마팬들은 이어진 천황상 봄에서 둘의 인기 순위가 바뀌어 나리타 브라이언이 1번, 마야노 탑건이 2번 인기를 받는 가운데 1년 이상의 공백 후 나카야마 기념을 우승하고 온 사쿠라 로렐이 격차가 큰 3번 인기를 받았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직선 주로에서 실속하며 5착으로 패배한다.
사카구치 조교사는 너무 많은 조교로 마야노 탑건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을 패인으로 보고 이시카와현 코마츠시의 온천목장에서 단기 휴양을 가진 후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주한다. 나리타 브라이언이 부상, 사쿠라 로렐은 휴양으로 회피하고 다른 출주 G1 우승마들도 부진하며 출주 라인업의 평가는 높지 않았고 마야노 탑건은 큰 경쟁없이 1.5마신 차로 승리하며 G1 3승째를 올렸다. 코마츠시의 온천목장에서 다시 휴양한 후 가을 첫 경기 올커머에서 1번 인기를 받고 사쿠라 로렐과 맞붙었으나 직선주로에서 힘을 내지 못하고 4착으로 패배한다.
이어진 천황상 가을에서는 마블러스 선데이가 합류하며 처음으로 3강이 모두 참전하게 되었으나 사쿠라 로렐, 마블러스 선데이가 1, 2 번 인기를 받는 가운데 마야노 탑건은 4세마 버블껌 펠로우에게도 밀리며 4번 인기를 받는 굴욕을 받았다. 그래도 마야노 탑건은 만전 상태였고 타바라 세이키도 자신있게 나섰으나 버블껌 펠로우와의 선두 경쟁에서 아깝게 반마신 차로 패하며 2착을 기록한다. 타바라 세이키는 만약 두 말의 게이트 번호가 바뀌었다면 틀림없이 주도권을 잡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연패에 도전한 아리마 기념에서는 직선주로에서 실속하며 7착으로 부진한다.
3.4. 1997년[편집]
1997년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하고 봄의 최대 목표인 봄 천황상의 전초전으로 한신대상전에 출주하게 되었다. 타바라 세이키는 그간 마야노 탑건이 기복이 심했던 것은 억지로 선행을 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5세 이 후의 마야노 탑건은 선행의 정신 상태에 맞지 않았는데 그간의 경주 스타일을 유지하다 패배가 이어졌다고 생각했고 마야노 탑건의 기분대로 경주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추입으로 나선 한신대상전에서 3.5마신 차로 승리하면서 8개월만에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추입 승리는 한번의 기책일 뿐 실전인 봄 천황상에서는 정공법으로 나올 거라 보는 의견이 많았고 사카구치 조교사 역시 선행을 지시했다. 각오가 이미 정해진 타바라는 반론을 내며 선행책을 부정했고 기자들이 천황상 전략을 물어 볼 때에는 평소 너무 직설적인 인터뷰를 많이 하는 타바라였지만 횡설수설하며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4]
천황상 (봄) 경기에는 3강이 모두 모여 1996년 천황상 가을과 아리마 기념에 이어 3번째 3강 대결이 성사되었다.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의 기분에 맞춰 추입으로 시작, 사쿠라 로렐과 마블러스 선데이는 보다 앞선 중단에 위치한다. 3코너에서 사쿠라 로렐과 마블러스 선데이가 차례로 스퍼트를 걸기 시작했지만 꾹 참고 기다린 마야노 탑건은 직선 주로에서 바깥으로 나와 말각을 발휘해 사쿠라 로렐을 1 1/4마신 차로 꺾고 일본 레코드를 세우며 승리, G1 4승째를 올린다. 마야노 탑건의 레코드는 기존 1993년 라이스 샤워의 기록을 2.7초나 갱신했으며 3200m 경주로는 1993년 도쿄경마장의 다이아몬드 스테이크스에서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세운 기록에도 2.4초나 앞선 기록이었다. 이 레코드는 이후 10년 가까이 일본 레코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갱신 당시에는 잔디 3200m 월드 레코드이기도 했다.
이 후 휴양에 들어가며 가을 천황상과 재팬 컵 노선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9월 25일 굴건염이 판명되어 은퇴가 결정되었고 11월 30일 한신경마장에서 은퇴식이 열렸다.
1996~97년에 걸쳐 사쿠라 로렐, 마블러스 선데이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했으며 통산 G1 4승을 기록했다. 네 번의 G1 승리를 거두는 동안 달리는 패턴이 선입, 도주, 선행, 추입으로 모두 제각각이라 자유자재의 각질을 가진 말이라 알려졌으나 사실은 지독한 기분파에 마이페이스인 말이라 각질을 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실전에서 임기응변으로 수습했던 건 항상 기수의 몫이었다. 다행히 주전 기수인 타바라 세이키가 언행에는 문제가 많은 기수였지만, 전성기 때의 실력은 타케 유타카와 비견될 정도의 천재 기수로 유명했기에 이를 커버할 수 있었다. 주전 기수 타바라 세이키는 마야노 탑건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대해 "사전에 작전을 정하지 않고 스타트 후에 포지션을 잡았고, 탑건이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대로 탔다"고 했을 정도다.[5] 하지만 킷카상과 천황상의 레이스 레코드를 갈아치우며 우승했던 것을 보면 본연의 능력은 확실했던 경주마이다.
3.5. 종마 생활[편집]
홋카이도 유슌 스탤리온 스테이션에서 17년 간 종마로 활동하며 1116마리의 자마가 등록되었고 이 중 중상 승리마 15마리를 배출했다. BMS 자마로는 2021년 재팬 더트 더비 우승마인 캐슬 탑이 대표적이다.
2015년을 끝으로 씨수말 생활을 마치고 같은 곳에서 공로마로 여생을 보내다, 2019년 11월 3일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4. 주전 기수 타바라 세이키[편집]
주전 기수 타바라 세이키(田原成貴)는 숱한 기행을 벌인 풍운아로 이름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5. 기타[편집]
- 마주 타도코로 유(田所祐, 1924~ 2005)는 의사로 고베시에서 종합병원 타도코로 병원의 원장이었고 맥스, 마야노의 관명을 쓰며 맥스 뷰티의 마주이기도 하다. 마야노 탑건이 아직 활약하기 전인 4세(현 3세) 1월에 고베대지진이 일어나 타도코로의 동생 부부가 사망하고 병원이 영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런 슬픔 속에 마야노 탑건의 활약이 타도코로에게 큰 위로가 되어 킷카상과 아리마 기념을 연이어 제패했을 때에 동생이 저 세상에서 밀어 준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1996년에 지진 부흥 기원 경주란 부제로 열린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마야노 탑건이 우승했을 때에도 특별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 11전 3승, 1992년 신잔 기념 우승마 마야노 페트뤼스(マヤノペトリュース)는 생산자, 마주, 조교사, 주전 기수가 모두 마야노 탑건과 같다. 마야노 페트뤼스는 미호노 부르봉과 같은 세대로 사츠키상 5착, 더비 3착을 기록하고 더비 후에 부상으로 은퇴한 후 교토경마장에서 유도마로 활동했는데 마야노 탑건이 킷카상을 우승할 때에도 유도마로 나왔다.
- 우마무스메 출시 직후 넷케이바 인기 순위에서 1위를 마야노 탑건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순위는 비정상적인 유입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이 경마 팬들의 중론이다. 넷케이바 마야노 탑건 게시판은 우마무스메를 옹호하는 팬과 경마 팬이 뒤엉켜 전쟁터가 되었다. 비정상적으로 주목을 받는 편이라 마야노 탑건의 현역 시절을 응원하는 사람도 많이 유입된다. 마야노 탑건 혈통의 말이 신마전에서 우승을 거두었을때는 일시적으로 휴전하고 말의 승리를 한마음으로 축하하기도 했다.
6. 경주 성적[편집]
[1] 현 JRA상 최우수 3세 수말.[2] 홋카이도 히다카초의 카와카미 목장 대표로 주요 생산마로는 나리타 타이신, 마야노 탑건, 1999년 최우수 장애물마인 갓 스피드(ゴッドスピード), G1/JPN1 7승을 기록하고 2006년 NAR 특별 표창마에 오른 블루 콩코르드(ブルーコンコルド)등이 있다.[3] 뱀부 비긴이 야마유리 스테이크스를 우승하고 킷카상을 제패했기 때문에 의식했다고 한다.[4] 타바라 세이키는 이 때 자의식을 버리고 무의식적으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알 파치노의 연기를 보고 공부했다고 한다.[5] 기수는 경주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각질 및 경주의 진행 등을 시뮬레이션 하고 작전을 세우기 때문에 모든 각질을 사용할 수 있는 말과 경주 도중 제멋대로 뛰는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경마에 만약은 없지만, 마야노 탑건이 각질을 정하고 안정적인 레이스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말이었다면 지금보다 성적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6] 1995년 오카상 우승마다.[레코드] A B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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