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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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댄스 3남매 중 첫째이자, 엘리자베스 여왕배가 4세 이상 암말도 참여 가능한 시니어 암말 대회로 바뀐 뒤에 최초로 우승한 암말이다.[6]
2. 혈통[편집]
어미 댄싱 키는 니진스키의 딸로 중상마 4마리, 그중에서도 G1마를 3마리나 배출한 명 암말로 꼽힌다. 댄스 파트너의 반형제 오빠인 토니 빈 자마 에어 더블린은 G3 3승마이며[7] , 전형제 남동생인 1993년생 댄스 인 더 다크는 1996년 킷카상을 우승했고, 전형제 여동생인 2001년생 댄스 인 더 무드는 2004년 오카상과 2006년 빅토리아 마일에서 우승 경력이 있다.
댄스 남매 이외에도 선데이 사일런스X니진스키계 암말 조합으로 태어난 말이 있는데, 바로 니진스키의 손녀 캠페인 걸을 어미로 둔 스페셜 위크다.
여담으로 어미 댄싱 키는 샤다이가 89년의 켄터키 세일에서 사들여 전적 없이 일본에서 곧바로 번식 활동에 들어갔고 조교사 시라이 토시아키도 그 과정에 함께하고 있었다. 이후 세일 직관을 마친 시라이는 당해 브리더스 컵도 관람했는데, 그때의 우승마가 선데이 사일런스. 즉 우연히도 미국에서 유심히 본 두 마필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자손이 자신의 첫 G1 승리를 만들어준 것. 두 마필이 배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시라이는 댄스 파트너를 자신의 관리하로 들이고 싶다고 어필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3. 커리어[편집]
4. 번식마 생활[편집]
[1] 스페셜 위크, 아그네스 디지털 등의 조교사.[중앙] A B [HKG] [FR] A B [2] 현 JRA상 최우수 3세 암말.[3] 현 JRA상 최우수 4세 이상 암말.[4] 부마가 미국 삼관마 아메리칸 패로아의 조부이자 라온더파이터의 BMS이기도 한 엠파이어 메이커이며, 2012년 G2대회인 나카야마 기념 우승마이다, 은퇴 이후 하쿠바 스탈리온에서 종마 생활을 하던 도중, 2014년 7월부터 한국으로 넘어가 금악목장에서 괜찮은 자마들을 배출하면서 종마 생활을 하던 중, 안타깝게도 사고로 인해 2021년 8월 30일, 14세의 나이로 폐사되었다고 한다.[5] 오른쪽 바깥의 2착마는 히시 아마존인데, 후에 사행으로 인해 7착으로 강착되었다.[6] 기존의 가을 암말 클래식 대회는 새로 창설된 슈카상이 이어받았다.[A] A B 중상마만 서술, 볼드 표시는 G1/Jpn1 우승마.[7] 럭키 필드 소유의 말로 1994년 클래식 경주에서 나리타 브라이언과 경쟁했으나 더비에서는 2착, 킷카상에서는 3착으로 들어왔으며 고마 시절에도 G1 우승을 따내는 데 끝내 실패했다. 2003년 일본에서의 자식 농사가 망한 후 한국으로 들어와 씨수말 생활을 했으나 역시 별 두각을 드러내는 자마는 없었고 목장 내 승용마로 살다가 2016년 죽었다.[8] 타나카 미치오 (니시와키)
→ 타나카 츠요시 (미호)
→ 모리모토 노부하루 (니시와키)
→ 쿠도 유코 (이와테)
→ 타지마 주이치 (카와사키)
→ 마토바 나오유키 (오이)
→ 도이 미치타카(사가)[9] 하야시 카즈히로 (홋카이도)
→ 토다 히로후미 (미호)
→ 하야시 카즈히로 (홋카이도)
→ 와타세 히로아키 (니시와키)
→ 마시마 모토노리 (사가)
→ 타나카 츠요시 (미호)
→ 모리모토 노부하루 (니시와키)
→ 쿠도 유코 (이와테)
→ 타지마 주이치 (카와사키)
→ 마토바 나오유키 (오이)
→ 도이 미치타카(사가)[9] 하야시 카즈히로 (홋카이도)
→ 토다 히로후미 (미호)
→ 하야시 카즈히로 (홋카이도)
→ 와타세 히로아키 (니시와키)
→ 마시마 모토노리 (사가)
5. 여담[편집]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1997년 타카라즈카 기념을 모티브로 한 마블러스 선데이의 서포트 카드에 버블껌 펠로우로 추정되는 캐릭터와 함께 살짝 등장하였다.
- 조교사였던 시라이 토시아키가 밝힌 바로는 선데이 사일런스의 자마답게 기성이 거친 편이었다. 커리어 중 발정을 일으켜 성적을 말아먹는 다른 암말들과 다르게 커리어 후반까지도 투지를 잃지 않고 마방에 가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고. 일반적인 암말이 일정 시점에는 정신적으로 엄마가 될 준비에 들어가는 데 비해 댄스 파트너는 커리어 중 번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조교사는 달리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경주족'으로 불렀다고 한다.#
- 클래식 때까지 발주기에서 늦출발하는 악벽이 있었다. 때문에 조교할 때 오랫동안 발주기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식으로 게이트가 열리면 빠르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 현역 때는 430kg대로 덩치가 작은 편이어서 관계자들은 제대로 달릴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반면 아들 페더럴리스트는 부계의 영향을 받아 덩치가 큰 편에 속했다.[10]
6.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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