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노 루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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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추첨마 출신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쓴 말. 토카이 테이오 등과 동기이고 1991년 암말 클래식 전선에서 시스터 토쇼, 스칼렛 부케[1] 등과 경쟁했다.
2. 혈통[편집]
부마 러시안 루블은 미국 경주마로 7전 2승, 모마 키티 테스코는 5전 0승의 현역을 거둔 평범한 말이지만 모두 혈통은 좋았다.
3. 생애[편집]
3.1. 데뷔 전[편집]
1956년 개업한 홋카이도 우라카와초의 노토 목장은 목장주 노토 다케노리와 아내, 장인, 장모 4명의 가족경영으로 소도 키우고 쌀농사도 하던 작은 농장으로 시작해 1965년에는 경주마 생산만으로도 경영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며 자신 소유의 번식 암말을 늘려갔고 그 중 키티 온워드와 키티 테스코 모녀가 있었다. 일전에 러시안 루블의 자마가 셀렉트 세일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걸 본 목장주는 러시안 루블과 키티 테스코를 교배시켜 암말이 태어났다. 그러나 영세목장 출신에 몸집이 작고 부모가 혈통은 좋지만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2세(현 1세) 봄까지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6월 JRA의 특별 시장에서 시장 설정 최저가인 500만엔에 추첨마[2] 용도로 JRA에서 구매했다.
JRA 히다카 육성 목장에서 육성이 실시되었고 기성이 거칠었지만 동기인 수말과 암말이 같이 훈련할 때 보통 수말이 흥분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훈련에서 먼저 출발 시키는데 이를 쫓아가 몇 마리의 수말들을 제쳐내며 실력을 드러내었다. 추첨을 통해 이소노 관명의 이소노 토시오의 소유가 되면서 이소노 루블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3.2. 커리어[편집]
조교사 시미즈 히사오, 기수 이가라시 타다오로 1990년 8월 데뷔전에서 레코드로 우승했지만 이 후 약간의 부상으로 조교를 쉬며 다음 경기는 부상방지를 위해 더트경기에 출전해 여유있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 후 중상 첫 경기로 라디오단파배 3세 암말특별에 16마리 중 8번인기로 나가 이미 중상 우승마였던 스칼렛 부케의 추격을 뿌리치고 3마신 반차로 승리하며 첫 중상 우승과 3전 3승으로 데뷔 시즌을 마쳤다.
1991년 4세 시즌의 첫 경기도 이겼지만 기수 이가라시 타다오가 슬로우 페이스로 쫓아가는 중 고삐를 늦췄다는 이유로 강판되고 마츠나가 미키오로 기수가 변경되었다. 3월 오카상 트라이얼 경주인 호치배 4세 암말 특별에서 도주로 3마신 반차로 우승하면서 무패로 오카상에 나가게 되었다.
4월 7일 오카상에 단승 2.8배의 1번 인기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게이트로 향하던 중 관중들의 환호에 놀라 왼쪽 앞다리의 편자가 빠져버렸고 장제사가 다시 장착하려 했지만 이소노 루블이 격렬히 저항했다. 담당 구무원과 조교조수는 이소노 루블은 예민한 성격이라 마구간에서만 편자를 끼울 수 있기 때문에 경기 전 대기하는 마구간에 돌아가서 편자를 장착하고자 했지만 대회 운영진이 거부해 결국 장착을 포기, 예정 시간이 11분 지난 후에 열린 경기에서는 1위에 9마신차의 5착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사건에 관해 편자가 떨어졌다는 사실은 경마장 내 방송으로 고지되었지만 편자를 장착하지 못하고 나온 사실은 고지되지 않았고 다음날 신문으로 이 내용을 알게 된 1번 인기 이소노 루블의 마권을 산 사람들이 분노해 JRA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에서 장제 실패를 고지하지 않은 채 경주를 해도 경마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편자를 장착하지 않는 것이 경주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이 후 JRA는 경마장에 배포되는 팜플렛 레이싱 프로그램에 "재장착이 불가능한 경우는 그대로 발주시키는 경우가 있다" 라는 기술을 추가했다. 한편 이소노 루블은 추첨마 출신이라는 스토리에 신발(편자)을 신지 않고 경기에 나선 것으로 맨발의 신데렐라(裸足のシンデレラ)라는 별명을 얻었다.
5월 19일 오크스에서는 컨디션 불량설이 돌고 20마리 중 20번의 최외곽 번호로 4번 인기까지 떨어졌다. 진영은 지난 경기 팬들의 환호에 놀란 것의 대책으로 멘코를 2중으로 씌우고 블링커(안대)까지 착용시켜 대비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최외곽에서 달려 선행 포지션을 잡았고 마지막 직선에서 스칼렛 부케와 트윈 보이스를 뿌리쳤지만 오카상 우승마 시스터 토쇼가 바깥에서 쫓아오며 결승선을 나란히 통과했다. 사진판정 끝에 이소노 루블의 승리가 확정되며 첫 G1 우승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교토[3] 에서 잃은 신발을 도쿄에서 되찾은 신데렐라 아가씨(京都で忘れた靴を東京でとりもどしたシンデレラ娘)라고 불리게 되었다
11월 10일 엘리자베스 여왕배에 직행해 초반 2위권으로 나갔지만 직선에서 실속하며 16착, 다음날 오른쪽 앞다리 종자골 인대염으로 판명되었고 복귀를 위해 휴양했지만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3.3. 번식마 생활[편집]
은퇴 후 홋카이도 우라카와초의 무라시타 농장에서 번식마 생활을 하며 11마리를 낳았지만 중상마는 나오지 않았다. 2011년 번식마에서 은퇴하고도 쭉 무라시타 농장에서 공로마로 지냈고 2013년 12월에 노쇠로 죽었다.
4.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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