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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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コスモドリーム
Cosmo Dream
출생
1985년 6월 13일
죽음
2015년 (30세)
성별
암컷
털색
갈색 (鹿毛, 카게)
아비
부젠 다이오 (ブゼンダイオー)
어미
스위트 드림 (スイートドリーム)
외조부
럭키 소브린 (Lucky Soverign)
생산자
우에다 목장
마주
타나베 히로미(田邉廣己)
조교사
마츠다 히로요시 (릿토)
성적
13전 4승 (4-3-3-3)
총상금
1억 5650만 3300엔
주요
우승
GI
우준 빈마(1988)
레이팅
프리 핸디
59 (1988)
상세 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 JBIS

1. 개요
2. 혈통
3. 생애
3.1. 희극적인 탄생
3.2. 경주마 데뷔
3.3. 여왕 탄생
4. 은퇴 후
5. 기타
6. 경주 성적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이자 씨암말로 클래식 1승을 올린 후 별 활약 없이 저물어간 암말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생에 끼어든 온갖 요상한 에피소드들이 더 튀는 독특한 말이다.


2. 혈통[편집]


1대
2대
3대
부젠 다이오
ブゼンダイオー
1974
다이 코터
ダイコーター
1962
Hindostan
Dianne K.
앨런 버드
アランバード
1963
Admiral Byrd
Allandale
스위트 드림
スイートドリーム
1979
Lucky Sovereign
1974 파일:미국 국기.svg
Nijinsky
Sovereign
겔랑
ゲラン
1964
Solonaway
Miss Buzen
* Bois Roussel S4×S5 9.375%
* Pharos=Fairway 5×5 6.25%

우에다 세이지로(上田 清次郎, 1900~1987)은 일본의 탄광왕이라 불리던 사업가로 경마 마주로서는 호슈, 부젠 등의 관명을 쓰며 다이나나 호슈, 호슈 퀸[1](ホウシユウクイン), 미스 마사코[2](ミスマサコ)등의 마주였다. 1965년 도쿄 우준을 앞두고 염원의 더비 제패를 위해 사츠키상 2착마 다이 코터를 거액[3]에 사들였지만 더비에서 키스톤에 패하며 "더비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이 코터는 킷카상을 우승하고 상금으로 자신의 구매가를 넘기며 활약했다. 다이 코터는 은퇴 후 우에다가 세운 우에다 목장에서 종마가 되었다.


3. 생애[편집]



3.1. 희극적인 탄생[편집]


아비인 부젠 다이오는 10전 3승으로 조건전도 벗어나지 못했기에 종마가 될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원래 우에다 목장에서 종마가 될 예정이었던 3살 연상의 전형제 형인 호슈 미사일이 급사하는 바람에 대타로 종마가 된 케이스 였다. 하지만 성적이 안좋다보니 다른 목장에서의 교배 의뢰가 없어 주로 시정마 용도로 쓰였고 처음이거나 건강이 안좋은 번식 암말의 시험용 교배를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미인 스위트 드림은 미출주마로 전 마주의 미망인이 우에다 목장에 양도한 말이었다.[4] 어미말이고 아비말이고 전혀 종모마, 종빈마로서 아무도 기대 안하는 케이스였고, 애초에 이런 말들이 교배하는 상황 자체가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 힘든 일이 일어나고 만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원래 모마인 스위트 드림은 그래도 마주 겸 목장주가 나름 애착을 가지고 있던 말의 후손이었던지라 씨암말로 데뷔는 시켰는데, 다른 말이 뒤에 있으면 무조건 걷어차며 성질을 부리는 거친 기성으로 교배에 애를 먹게 된다.그래도 당대의 명 종마 중 하나였던 모가미[5]가 도전하지만 이렇게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제대로 수태가 되지 않았는지 유산으로 끝나고 만다. 목장 측에서는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성질머리를 죽여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교배 연습을 위해 다른 말을 붙여주기로 하는데 그게 바로 당시 시정마였던 부젠 다이오였다. 즉, 부젠 다이오는 스위트 드림에게 걷어차여 부상을 당해도 문제가 없을 말이라서 선택받은 것인데 부젠 다이오가 분투해서 결국 수태에 성공해 태어나게 된 것이 바로 코스모 드림이다.#[6] 코스모 드림의 생일이 6월로 꽤 늦은 시기인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3.2. 경주마 데뷔[편집]


평소엔 얌전하지만 그래도 어미를 닮아 성질부리기도 했던 이 말은 우에다 목장에서 자목장 소유로 데뷔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생겨 원래 준비했던 말들이 전부 데뷔할 수 없게 된 타나베 히로미가 급하게 목장에 부탁해서 코스모 드림을 구입, 타나베의 말로서 데뷔하게 된다.

늦게 태어나서인지 데뷔도 늦어서 4살(현 3살) 시즌에 데뷔하는데, 신마전에선 패배하지만 미승리전에선 2착과 대차(10마신 이상)승을 거두고 다음 조건전에서는 3착을 기록, 의외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전한 오카상 트라이얼인 튤립상에선 조교사가 "이 아이는 힘 주고 달리면 위험하니까, 스타트 직후엔 조금 편하게 시작한 후 중단부터 기합을 가하기 시작하라"고 기수에게 주문했으나 본전에서 제어에 실패해 기수가 낙마하면서 실격당하게 된다. 이 일로 기수는 당시 신인이던 오카 쥬이치로로 교체되며, 오카상은 건너뛰고 조건전에서 상금을 채우기로 해 2번 달려 1번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크스에 도전하게 되는데, 당시 오카상에 출전하려는 기수는 통산 31승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해 데뷔한 신인이었던 오카에게는 불가능한 성적이었던지라 원래 기수였던 쿠마자와 시게후미[7][8][9]가 기승하게 되는데, 쿠마자와 기수는 오크스가 열리는 도쿄 경마장에서 기승 경험은커녕 와 본 적도 없어서 가는 길조차 몰랐다. 게다가 당시에는 말이 경력자이지 1986년 데뷔 후 활약한지 2년밖에 되지않은 막 신인티를 벗은데다가 당시 나이도 20세 3개월로 어렸으며 암수 불문 클래식 GI 첫 출전에, 중상 최고 착순 4위가 전부였다. 덕분에 진영 측에선 "이러고 만약 이기면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자평을 할 정도였고 오히려 출주 두수 22두 중 10번 인기를 받자 "왜 이렇게 높아?"라고 의아해 할 정도였다.


3.3. 여왕 탄생[편집]




오크스 당일, 도쿄 경마장이 처음이었던 쿠마자와 기수는 길을 잃어서 지각했다. 진영 측에선 그런 쿠마자와에게 "도쿄 경마장은 직선이 기니까, 언덕을 다 올라갈 때까진 스퍼트 금지"라는 조언을 해 주고, 기수 본인은 "도쿄 경마장에 익숙한 카와치 씨를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각오를 다진다.


오카상 우승마인 인기 1위 아라 호토쿠, 2착마로 인기 2위였던 시요노 로망이 중단에서 기회를 노리는 중, 아무리 양마장이라지만 빗속이라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기수가 롱 스퍼트를 시도하며 상당히 빠른 시기에 승부를 걸게 된다. 하지만 쿠마자와는 조언대로 최대한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최후에 스퍼트를 걸었고 역시 최후에 스퍼트를 걸어 다른 말들을 제치며 맹추격하던 마루시게 아틀라스를 뿌리치고 1마신 반차의 승리를 거둔다.

그간 중상 승리도 없던 쿠마자와는 이 승리로 역대 15번째 '오크스 첫 출전에서 첫 우승을 이룬 기수', '사상 3번째 견습 기수[10]의 오크스 승리(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정하면 최초.)' 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11]

이후 당시 GII였던 타카마츠노미야배에 출주하지만 그 해 지방에서 이적한 후 돌풍을 일으키던 오구리 캡에게 5마신 이상의 차이로 3착, GIII 코쿠라 기념과 GII 교토대상전에서도 2착을 기록하며 승리하진 못하지만 당대의 수말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오크스 우승이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낸다. 하지만 교토대상전 이틀 후에 골절상을 입은 것이 확인되어 아쉽게도 엘리자베스 여왕배는 물론 그 해를 통째로 쉬게 되었고 이런 빠른 휴양 때문인지 4세 최우수 암말은 오카상 우승마인 아라 호토쿠에게 내주고 만다.

이후 7개월의 휴양을 끝낸 후 오픈 클래스인 오스트리아 트로피에선 쾌승을 거두지만, 다시 도전한 GI 타카라즈카 기념에선 5번 인기였지만 14착으로 참패. 그 뒤의 GII 타카마츠노미야배에서도 9착으로 대패하면서 그대로 은퇴를 결정한다.


4. 은퇴 후[편집]


번식암말로 전환되어 총 13두의 산구를 낳았지만 특출난 성적을 올린 말은 없었고 2007년의 불수태를 계기로 씨암말도 은퇴, 이후 2009년에 용도변경되어 잠시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이후 다른 목장으로 옮겨 여생을 보내다 2015년에 숨을 거둔 것이 확인되었다.


5. 기타[편집]



6. 경주 성적[편집]


경주일
경마장

경기명

그레이드

트랙

배당
인기
착순
기수
1착마
(2착마)
1988년 (4세, 현 3세)
1.1
교토
4세 신마
더트 1200m
2.3
1
3착
쿠마자와 시게후미
신코 엔젤
1.23
교토
4세 신마
더트 1800m
2.1
1
1착
(롱이치히메)
2.13
교토
바이카(梅花) 상
400만
더트 1800m
2.9
2
3착
원더 테이오
3.13
한신
튤립상
OP
잔디 1600m
13
6
중지
시요노 로망
3.27
한신
4세 400만 이하
잔디 2000m
2.9
2
2착
오카 준이치로
민트비거
4.16
한신
하나미즈키(はなみずき) 상
400만
잔디 2200m
6.9
4
1착
오카 준이치로
(민트비거)
5.22
도쿄
우준 빈마 (오크스)
GI
잔디 2400m
23.1
10
1착
쿠마자와 시게후미
(마루시게 아틀라스)
7.1
주쿄
타카마츠노미야배
GII
잔디 2000m
15.9
4
3착
오구리 캡
8.28
코쿠라
코쿠라 기념
GIII
잔디 2000m
2.4
1
2착
프레지던트 시티
10.9
교토
교토대상전
GII
잔디 2400m
2.2
1
2착
오카 준이치로
메이쇼 에이칸
1989년 (5세, 현 4세)
4.3
교토
오스트레일리아 트로피
OP
잔디 2200m
2.7
2
1착
쿠마자와 시게후미
(스카이 자이언트)
6.11
한신
타카라즈카 기념
GI
잔디 2200m
15.1
5
14착
이나리 원
7.9
주쿄
타카마츠노미야배
GII
잔디 2000m
11.9
5
9착
메지로 아르당
[1] 27전 14승, 1958년 오카상 우승마.[2] 31전 8승, 1963년 오카상 우승마.[3] 2400~ 2500만엔 정도로 예상된다. 당시 더비 우승 상금은 천만엔이었다.[4] 우에다 목장에서 이 말을 사 들인 이유는, 스위트 드림의 3대 위 할머니 말을 외국에서 사온 것이 바로 우에다 목장의 목장주이자 마주였기 때문. 말 그대로 그냥 인연이 있는 곳이라 받아준 수준이다.[5] モガミ. 주요 산구로 시리우스 심볼리, 메지로 라모누, 레거시 월드 등이 있다.[6] 이후 코스모 드림의 성공으로 부젠 다이오는 몇 번 더 교배할 수 있었지만 1승 클래스 말을 한 마리 배출한 것 외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해 다시 시정마로 돌아간다.[7] 경주마 스테이 골드의 주전기수였다. 그러나 쿠마자와가 주전기수를 맡는 동안 중상에서 2, 3착은 많이 했지만 우승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쿠마자와 기수가 스테이 골드의 주전 기수에서 내려오고 타케 유타카가 기승하게 되는데 그가 스테이 골드를 타자마자 바로 다음 중상 경주인 2000년 메구로 기념을 우승한다.[8] 그러나 그가 기수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1991년 아리마 기념에서 기념비적인 대회 신기록과 역배를 터뜨린 다이유우사쿠 주전기수로서 우승을 차지한 일이었다.[9] 이 문서에서와 각주에서의 쿠마자와 기수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단순히 기수 생활에 운이 따른 케이스로 보이기 쉽지만 쿠마자와 시게후미 기수는 G1 우승 성적은 다른 유명 기수에 비해 떨어지나 일본의 대다수 기수들이 넘볼 수 없는 일본 경마의 기록들을 다수 가지고 있다. 바로 코스모 드림 기승을 통해 획득한 최연소 오크스 우승 기록과 (20세 3개월) 후술되어 있는대로 일본 경마사상 세 번째 견습기수의 오크스 제패, 그리고 각기 다른 성질의 경기인 G1 평지 그랑프리 (1991년 아리마 기념, 다이유우사쿠)와 장애물 경주 그랑프리인 나카야마 대장해 (2012년, 마블러스 카이저)에 기승해 평지, 장애물 그랑프리 양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 경마 역사상 단 3명밖에 없는 기수 중의 한 명이며 심지어 1999년 장애물 경주에 그레이드제를 도입한 이후에는 쿠마자와 외에 이 기록을 달성한 기수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의 최후의 G1 승리는 2012년의 나카야마 대장해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또한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기수들은 평지와 장애물을 병행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활동을 하는데 비해 쿠마자와는 둘 다 가리지 않고 출주해 2015년에는 사상 최초로 평지 경마 기수로 데뷔해 장애물 경주에서 200승을 달성해 JRA 특별상 까지 수상했다. 또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수 중에서 80년대 데뷔한 기수 가운데 쇼와 시대와 헤이세이 시대 둘 다 G1 우승경력이 있는 기수는 쿠마자와 시게후미 외에 타케 유타카 밖에 없다. 타케 유타카는 말할것도 없는 일본의 레전드 기수이지만 장애물 경기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기수 생활을 하며 중상 승리는 많지 않지만 평지, 장애물 가리지 않고 경주에 출전해 1000승 이상을 달성하고 일본 JRA 장애물 경주 최다 승리기록을 가지고 있는 쿠마자와는 가늘지만 인상적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백전노장의 배테랑 중 한 명이다.[10] 데뷔 5년 이내이며 통산 100승 이하인 기수를 뜻한다.[11] 그러나 쿠마자와 시게후미 기수는 3년 뒤 일본 경마 역사상 대파란을 남길 기록을 세운다. 그건 바로 1991년 아리마 기념에서 12년간 깨지지 않을 신기록을 세울 말을 타고 통산 두 번째로 G1을 우승하는데 그 말은 바로 다이유우사쿠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우준 빈마|{{{#fff 우준 빈마 (오크스)

()
우승마]]''' {{{#!wiki style="margin:0 -11px -5px; 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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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아스테리 모어

1939
호시 호마레

1940
루넬라

1941
테츠 반자이

1942
록 스테이츠

1943
쿠리후지 ~~

1944 · 1945
없음~~

1946
미츠마사

1947
토키츠카제

1948
야시마 히메

1949
킹 나이트

1950
코마 미노루

1951
키요 후지

1952
스위 수

1953
지츠 호마레

1954
야마이치

1955
히로이치

1956
페어 만나

1957
미스 온워드

1958
미스 마루사

1959
오칸

1960
스타 로치

1961
치토세 호프

1962
오 하야부사

1963
아이티오

1964
카네 케야키

1965
베로나

1966
히로요시

1967
야마핏

1968
루피너스

1969
샤다이 타킨

1970
주피크

1971
카네 히무로

1972
타케 후부키

1973
나스노 치구사

1974
토코 엘자

1975
테스코 가비

1976
티타니아

1977
리니어 퀸

1978
파이브 호프

1979
아그네스 레이디

1980
케이 키로쿠

1981
텐몬

1982
샤다이 아이버

1983
다이나 칼

그레이드제 도입, 중앙 GI 지정 후


1984
토카이 로망

1985
노아노 하코부네

1986
메지로 라모누

1987
맥스 뷰티

1988
코스모 드림

1989
라이트 컬러

1990
에이신 서니

1991
이소노 루블

1992
아도라블

1993
베가

1994
초카이 캐럴

1995
댄스 파트너

1996
에어 그루브

1997
메지로 도베르

1998
에리모 엑셀

1999
우메노 파이버

2000
실크 프리마 돈나

2001
레이디 파스텔

2002
스마일 투모로우

2003
스틸 인 러브

2004
다이와 엘 시엘로

2005
세자리오

2006
카와카미 프린세스

2007
로브 데콜테

2008
톨 포피

2009
부에나 비스타

국제 GI 지정 후


2010
아파파네 · 생테밀리옹동착

2011
에린 코트

2012
젠틸돈나

2013
메이쇼 맘보

2014
누오보 레코르트

2015
미키 퀸

2016
신할라이트

2017
소울 스터링

2018
아몬드 아이

2019
러브즈 온리 유

2020
데어링 택트

2021
위버레번

2022
스타즈 온 어스

2023
리버티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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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