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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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와치 히로시(河内洋(かわち ひろし, Hiroshi Kawachi)
국적
일본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55년 2월 22일(69세), 오사카
신체
162cm, 51kg[1], A형
소속
일본중앙경마회
다케다 사쿠주로(武田作十郎)
→ 프리 중앙
데뷔
1974년 3월 (중앙)
은퇴
2003년 3월 1일(중앙)
성적
중상
141승
중앙 134승, 지방 6승, 해외 1승
통산
15106전 2140승
중앙14940전 2111승
지방 119전 24승
해외 47전 5승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주요 기승마 목록
4.1. 팔대경주/GI 우승마
5. 주요 조교마 목록
5.1. GI/JpnI 우승마



1. 개요[편집]


일본의 전 JRA 소속 기수, 현 조교사.


2. 생애[편집]


1955년 조교사인 카와치 노부하루(河内信治)의 차남으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도우며 경마와 연을 맺게 되는데, 중2 정도부터는 아예 아침에 일어나 조교중인 말에 기승해서 한바퀴 달린 후 등교하는게 일상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대선배 조교사인 타케다 사쿠쥬로(武田 作十郎)가 자신의 마방에 들어오지 못한 말을 카와치의 마방에 맡기러 찾아온 김에 "자네 두 아들 중 한명을 내게 맡기게"라고 제안하여 마침 지방경마 기수시험을 치르고 있던 형 코우지 대신 히로시가 타케다에게 맡겨지게 되고, 여기서 타케 쿠니히코(타케 유타카의 부친)의 사제 격이 되어 기수에 도전하게 된다.

체중 문제로 2번의 탈락을 겪은 끝에 1974년에 중앙경마에 데뷔해서 전국 18위(관서 7위)에 해당하는 26승을 올리며 관서 신인상을 탄다. 첫 중상 승리는 1975년으로 오구라 대상전을 승리하며 챙겼고, 이후 6년째가 되는 1979년에 베테랑 기수인 쿠보 토시후미(久保 敏文)가 기대주 말의 신마전에서 대패한 것을 계기로 카와치가 대신 기승해 우승한 후 주전 기수를 맡아 우준 빈마를 우승하며 첫 8대 경주[2] 승리를 이루는데 이 말이 바로 아그네스 레이디(더비마 아그네스 플라이트, 사츠키상 우승마 아그네스 타키온의 모마인 아그네스 플로라의 모마)로, 이후 카와치에게는 아그네스 레이디의 후손들이 다수 배정되며 많은 상을 안겨주게 되는 인연의 시작이기도 했다. 같은 해에 킷카상도 제압하며 8대경기 중 2승째를 챙긴다.

80년에는 약관 25세의 나이로 72승을 올리며 리딩 자키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후배인 타바라 세이키와 라이벌리를 형성하는데 83, 84년에 타바라가 리딩 자키에 오르자 바로 85, 86년에 리딩자키 자리를 빼앗아 오는 등 서로 업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였으며 서로 간에도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타바라군은 나보다 어림에도 같은 시기를 지내온 사이로서 자극을 느끼는 상대다" "기수로서 성장해야 할 시기에 가상적으로서 카와치 선배가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라며 서로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말을 타며 승리를 기록하며 활약하다 2003년 조교사 자격증을 따며 기수를 은퇴했다.


3. 기타[편집]


기승했던 말 중 니혼 필로 위너에 대해선 "사실 내 특기는 마일 거리인데, 이 녀석은 그런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통산 26전 16승 중 카와치와의 콤비로는 15전 11승을 올리는 등 자신의 선언에 걸맞는 성적을 냈다.

1986년에는 메지로 라모누를 타고 암말 삼관인 트리플 티아라를 획득하는데, 이 덕분에 카와치는 이후 "암말의 카와치"라고 불리며 암말 기승의 명수로 불리게 된다.

오구리 캡에도 총 7회 기승 했는데, 카사마츠 시절의 주전기수였던 안도 카츠미는 "카와치씨가 타던 때가 오구리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됐던 시기라고 생각된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그네스 레이디-아그네스 플로라-아그네스 플라이트[3]의 3대를 타며 연속으로 G1에서 승리하며 "3대 연속 클래식 제패"라는 최초의 기록을 달성, 특히 아그네스 플라이트는 카와치의 인생 최초의 더비 우승이었다고 하며 이 경기에서 신예 타케 유타카에게 제대로 베테랑의 관록을 보여준다.[4]

아직은 기수로서 힘이 남아있는 시기에 조교사로 전직한 것이라 팬들로부터도 "왜 벌서 은퇴하고 전직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현재로선 "기수였던 자가 조교사로 전직할 때는 시험 중 일부를 면제해 준다"라는 제도가 폐지될 예정에 처하자 카와치가 아직 여력이 있을 때(즉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나이대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은퇴시기를 앞당긴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그나마 설득력을 얻고 있을 뿐이다.


4. 주요 기승마 목록[편집]



4.1. 팔대경주/GI 우승마[편집]


  • 굵게 표시된 건 팔대경주/GI 경주.


5. 주요 조교마 목록[편집]



5.1. GI/JpnI 우승마[편집]


  • 굵게 표시된 건 GI/JpnI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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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케이바 기수 정보 [2] 그레이드제 도입 전이라 주요 레이스를 8대 경기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이 경기들이 대부분 그레이드제 도입 후 GI 으로 구분된다.[3] 아그네스 타키온 역시 플로라의 자마로 사츠키상 우승으로 3대 클래식 제패를 이루었다.[4] 카와치가 33세 3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1천승 기록을 세웠는데, 타케 유타카는 그걸 20대에 세웠다. 게다가 타케 유타카 등장 후에는 관서 넘버1은 타케 고정에 카와치와 타바라가 각각 2~3위를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다.[5] 당시에는 홍콩G1이었지만, 국제 등급은 G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