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볼리 크리스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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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볼리 목장은 80년대 초중반에 G1 7승마 '황제' 심볼리 루돌프와 시리우스 심볼리 등 명마들을 배출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총수 와다 토모히로의 지나친 고집[3] 으로 조교사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4] , 메지로 목장[5] 과 샤다이 그룹[6] 등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하며 경마계에서 입지를 잃었고 그 아들인 와다 타카히로가 대표에 취임할 때까지 G1마를 내지 못하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와다 타카히로는 미국산 말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정책을 취하고, 1999년 심볼리 인디(シンボリインディ)[7] 가 NHK 마일을 제패하는 등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선데이 사일런스를 대체할 수 있는 씨수말을 만들 생각으로 배합했다'[8] 라고 할 정도의 기대를 품고 태어난 말이 바로 이 심볼리 크리스 에스이다.[9]
미국에서 태어난 후 일본의 마방으로 이동, 540kg에 달하는 거체로 자라난 채 데뷔전을 승리했다. 하지만 데뷔전이 끝난 후 허리 피로로 3개월을 휴양하고, 이후 2착-3착-3착으로 아쉬운 패배를 계속하다가 4월에 2승, 이후 더비 트라이얼인 아오바상까지 승리를 거두며 더비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아오바상 때 대타로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고삐를 잡았던 타케 유타카는 경주 후 조교사에게 "이 말, 가을에는 틀림없이 강해집니다."는 덕담을 남겼다. 당장은 성과를 못 내나, 가을 들어서 성과를 낸다는 맥락의 말이다. 이 발언이 현실이 되었는지, 일본 더비에서는 아오바상 징크스[10] 를 이어가며 타케 유타카가 기승한 타니노 김렛에게 패배했다.
여름 휴양 후 킷카상 트라이얼인 고베 신문배에서 승리를 거두고, 클래식 삼관의 하나인 킷카상 대신 천황상·가을에 도전장을 내민다.[11] 도쿄 경마장이 개수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나카야마에서 열린 천황상·가을,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이 경주에서 티엠 오페라 오의 동기이자 오페라 오의 3착 담당(…)이었던 나리타 탑 로드를 누르고 승리하며 타케 유타카의 예언을 실현시켰다.[12] 이어서 역시 나카야마에서 2200m라는 변칙 거리로 개최된 재팬 컵에 도전하지만 게이트에서 난동을 부리다 늦게 출발, 외국마들에게 밀려 아쉬운 3착을 기록했다.
연말 그랑프리 아리마 기념에서는 무패 암말 파인 모션, 그리고 이후 커리어 최대 라이벌이 된 탭 댄스 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며 G1 2승을 거두고 연도대표마에 선정되었다.
원래부터 빠른 종마 생활을 할 예정이었던 말이었기에 더 뛸 이유는 없었으나 재팬 컵에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현역을 속행, 긴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던 도중 여름 그랑프리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전하지만 여기서 커리어 최초이자 최후의 5착 패배[13] 를 당했다.
조정을 거친 후 출전한 천황상·가을에서 승리, 최초의 아키텐 연패를 기록했다.[14] 그리고 전 해에 승리하지 못했던 재팬 컵에 도전하지만 이 해의 재팬 컵은 탭 댄스 시티가 엄청난 대도주를 선보이면서 승리,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또 다시 3착을 기록했다.
은퇴전으로 택한 연말 그랑프리 아리마 기념.
탭 댄스 시티, 젠노 롭 로이, 아그네스 디지털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출주한 이 레이스에서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다이유우사쿠가 보유하고 있던 아리마 기념의 레코드를 12년만에 갱신, 후속마들과 무려 9마신 차이[15] 라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며 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아리마 기념 9마신차 우승은 탭 댄스 시티의 재팬 컵 9마신차 우승과 함깨 일본 G1 경주 최대 마신차로 기록되고 있다.[16] 이 승리에 힘입어 심볼리 루돌프 이후 19년만의 2연속 연도대표마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화려한 마무리를 장식했다.
[출처]
샤다이 스탤리언 스테이션에서 종마 생활을 시작했다. 주요 자마로는 더트마로써 일본 더비에 도전했다가 마장적성 문제로 18착 대패를 당하고 컬트적 인기를 누렸던 더트 G1/Jpn1 3승마 석세스 브로켄, 그리고 스페셜 위크의 외손자로 킷카상과 재팬 컵 우승기록이 있으며 종마로도 성과를 내고 있는 에피파네이아가 있다. 에피파네이아는 2021년 8월 기준 리딩 사이어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대표 산구는 최초의 무패 암말 삼관마 데어링 택트와 21년 사츠키상 우승마 에프포리아이다.
2016년 브리더스 스탤리온 스테이션으로 이동. 2019년에 종마 생활을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심볼리 목장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해 12월 8일 제엽염이 발병하여 죽었다.
2005년산
2011년산
2015년산
2017년산
2019년산
2021년산
현역 당시 각질은 선행으로, 이른바 '요코즈나 스모'라 불리는 '5~6등에서 따라가다가 마지막 코너~직선에서의 스퍼트로 도주마를 제치고 승리'하는 선행 각질의 정석적인 승리패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같은 관명의 목장 출신에 레이스 스타일도 비슷했던 '황제' 심볼리 루돌프를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18]
98년 황금 세대와 05년 딥 임팩트 사이에 끼인 경마 암흑기 세대여서 그런지 G1 4승에 2연속 연도대표마, 아키텐 및 아리마 기념 2연패 등 굵직한 기록을 남겼음에도 인기는 뜨뜻미지근한 편.
종마생활을 위해 일찍 은퇴했을 말이었기 때문에, 설욕을 위해 현역을 1년 연장했으나 전년도의 커리어를 번복하는 다소 아쉬운 결과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우승한 G1 경기가 천황상(가을)과 아리마 기념으로 좁혀져 다재다능한 느낌을 받기 힘들며, 그런 면은 승리한 G1에서 보인 압도적 퍼포먼스[19] 에 반해 다른 경기에서 맥 없이 패한 것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별다른 라이벌도 없는 빈집털이라는 식의 평가절하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9마신차를 주고받은 탭 댄스 시티부터가 대표적인 라이벌이기에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이다.[20] 은퇴전인 아리마 기념에선 80년대 이후의 일본 경마 평지 G1의 최대 착차 기록인 9마신차 승리, 당시 주전 기수였던 올리비에 펠리에는[21] 아리마 기념 후 "(97년 개선문상 우승마인) 팽트르 셀레브르[22] 에 필적한다."는 평을 내리는 등, 경마의 인기가 떨어진 시대에 피해를 입었을뿐 강한 말임은 분명하다.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2002년, 2003년 JRA 연도대표마. 칠흑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이곳에 온 이유
왜 이곳에 있냐고
질문받은 젊은이는
상대에게 고함치려고 한다.
숙달된 스승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멈추지 않던 떨림이
저절로 가라앉아 간다.
그렇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가르쳐주면 된다.
그대가 이곳에 온
단 하나의 이유를.
JRA 명마의 초상
2. 혈통[편집]
조부인 로베르토는 선데이 사일런스의 조부 "헤일 투 리즌(Hail to Reason)"의 자마로서 일본 경마계에도 다수의 유력마를 남긴 혈통이며, 심볼리 크리스 에스 이전에도 이미 라이스 샤워, 나리타 브라이언, 마야노 탑건, 그래스 원더 등의 경주마가 이 혈통을 타고난 채로 활약한 바 있다. 어미 티 케이 역시 잔디 중상인 마사 워싱턴 스테이크스(G3)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어, 더트에서의 활약이 중요한 미국에서 생산되었음에도 잔디가 주가 되는 일본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게 배합된 혈통의 경주마이다.
3. 생애[편집]
심볼리 목장은 80년대 초중반에 G1 7승마 '황제' 심볼리 루돌프와 시리우스 심볼리 등 명마들을 배출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총수 와다 토모히로의 지나친 고집[3] 으로 조교사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4] , 메지로 목장[5] 과 샤다이 그룹[6] 등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하며 경마계에서 입지를 잃었고 그 아들인 와다 타카히로가 대표에 취임할 때까지 G1마를 내지 못하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와다 타카히로는 미국산 말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정책을 취하고, 1999년 심볼리 인디(シンボリインディ)[7] 가 NHK 마일을 제패하는 등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선데이 사일런스를 대체할 수 있는 씨수말을 만들 생각으로 배합했다'[8] 라고 할 정도의 기대를 품고 태어난 말이 바로 이 심볼리 크리스 에스이다.[9]
3.1. 2002년[편집]
미국에서 태어난 후 일본의 마방으로 이동, 540kg에 달하는 거체로 자라난 채 데뷔전을 승리했다. 하지만 데뷔전이 끝난 후 허리 피로로 3개월을 휴양하고, 이후 2착-3착-3착으로 아쉬운 패배를 계속하다가 4월에 2승, 이후 더비 트라이얼인 아오바상까지 승리를 거두며 더비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아오바상 때 대타로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고삐를 잡았던 타케 유타카는 경주 후 조교사에게 "이 말, 가을에는 틀림없이 강해집니다."는 덕담을 남겼다. 당장은 성과를 못 내나, 가을 들어서 성과를 낸다는 맥락의 말이다. 이 발언이 현실이 되었는지, 일본 더비에서는 아오바상 징크스[10] 를 이어가며 타케 유타카가 기승한 타니노 김렛에게 패배했다.
여름 휴양 후 킷카상 트라이얼인 고베 신문배에서 승리를 거두고, 클래식 삼관의 하나인 킷카상 대신 천황상·가을에 도전장을 내민다.[11] 도쿄 경마장이 개수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나카야마에서 열린 천황상·가을,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이 경주에서 티엠 오페라 오의 동기이자 오페라 오의 3착 담당(…)이었던 나리타 탑 로드를 누르고 승리하며 타케 유타카의 예언을 실현시켰다.[12] 이어서 역시 나카야마에서 2200m라는 변칙 거리로 개최된 재팬 컵에 도전하지만 게이트에서 난동을 부리다 늦게 출발, 외국마들에게 밀려 아쉬운 3착을 기록했다.
연말 그랑프리 아리마 기념에서는 무패 암말 파인 모션, 그리고 이후 커리어 최대 라이벌이 된 탭 댄스 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며 G1 2승을 거두고 연도대표마에 선정되었다.
3.2. 2003년[편집]
원래부터 빠른 종마 생활을 할 예정이었던 말이었기에 더 뛸 이유는 없었으나 재팬 컵에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현역을 속행, 긴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던 도중 여름 그랑프리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전하지만 여기서 커리어 최초이자 최후의 5착 패배[13] 를 당했다.
조정을 거친 후 출전한 천황상·가을에서 승리, 최초의 아키텐 연패를 기록했다.[14] 그리고 전 해에 승리하지 못했던 재팬 컵에 도전하지만 이 해의 재팬 컵은 탭 댄스 시티가 엄청난 대도주를 선보이면서 승리,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또 다시 3착을 기록했다.
은퇴전으로 택한 연말 그랑프리 아리마 기념.
탭 댄스 시티, 젠노 롭 로이, 아그네스 디지털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출주한 이 레이스에서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다이유우사쿠가 보유하고 있던 아리마 기념의 레코드를 12년만에 갱신, 후속마들과 무려 9마신 차이[15] 라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며 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아리마 기념 9마신차 우승은 탭 댄스 시티의 재팬 컵 9마신차 우승과 함깨 일본 G1 경주 최대 마신차로 기록되고 있다.[16] 이 승리에 힘입어 심볼리 루돌프 이후 19년만의 2연속 연도대표마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화려한 마무리를 장식했다.
4. 종마 생활[편집]
[1] 심볼리 목장의 소유주다. 심볼리 크리스 에스가 태어난 목장, 즉 와다가 심볼리 크리스 에스를 임신한 모마를 예탁한 목장은 미국의 밀 리지(Mill Ridge) 목장이다.[2] 역대 일본 타임폼 레이팅 순위 공동 4위[3] 그 대표적인 예가 '비운의 87년 클레식 세대'중 하나인 마테리얼로, '루돌프의 재래'를 바라며 휴양시에는 직접 본목장으로 불러들여 자기가 직접 조교를 하는 등 손수 관리를 했다. 문제는 마테리얼은 루돌프와는 달리 소심한 성격의 말이었기에 목장과 마방을 오가며 이중관리를 받는것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느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마방으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해 조교사가 기겁을 하기도 했다는 것. 무엇보다 루돌프의 재래를 바랐기 때문에 주로 중거리 레이스에 출주시켰고 가장 인상적인 승리에서 썼던 추입 전술을 주로 썼는데 실제 이 말은 마일 적성에 선행 각질의 말이었다. 결국 와다 토모히로가 실망해서 기대를 접은 후에야 조교사가 직접 관리하며 겨우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마지막 승리와 함께 골절상을 입어 사망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심볼리 루돌프의 기수였던 오카베 유키오가 "잘 키우면 루돌프에 상당히 근접한 실력을 보일 수 있겠다. 최소한 (당시 더비 우승마였던) 시리우스 심볼리보단 재능이 있다"라고 할 정도의 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주의 고집만 아니었으면 명 마일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말이 허무하게 간 셈.[4] 상기 각주에서 언급했듯, 일부 유력마에 대해서는 휴양을 시키면 본목장으로 데려가거나 조교에도 참견했고 출주 경기도 제멋대로 정하곤 했는데 조교사 입장에서는 자기 일에 참견하고 말도 망치는 것으로 보이니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마테리얼의 경우는 조교사가 자기가 마테리얼을 맡고 싶어 삼고초려한 입장이라 이런 총수의 갑질(?)에 반발하기 어려웠다고. 아무튼, 실제로 이런 육성 방침의 성공 사례라는 심볼리 루돌프조차도 총수의 의향만으로 무리하게 미국 원정을 추진했다가 부상과 함께 커리어가 끝났는데 루돌프만한 자질과 정신을 갖추지 못한 다른 말들은 이를 버텨내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5] 그러나 메지로 목장은 혈통배합을 주도하던 수의사 다케다 시게오의 이탈과 중거리 노선 전환의 실패, 잇다른 자연재해 등으로 해체된다.[6] 상술한 마테리얼이 활동했던 시점은 요시다 카츠미가 착실히 후계수업을 받고 있던 시점이었다. 샤다이는 창업주 요시다 젠야 말년에 토니 빈, 선데이 사일런스 등의 종마들을 들여왔고, 마침내 위닝 티켓, 에어 그루브, 후지 키세키, 스페셜 위크 등 자마들이 대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 경마계를 장악해나가게 되었다.[7] 1996년생. 미국의 대종마인 에이피 인디(A. P. Indy)의 자식으로 심볼리 목장으로선 오랜만에 배출한 G1마였으나, 2001년 G3 대회인 더비경 챌린지에서 게이트 탈주로 인해 오른쪽 뒷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예후불량 판정, 안락사되었다. 당시 기록영상 3분 16초 경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오른쪽 뒷다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8]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심볼리 목장은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종마 활동으로 큰 이득을 얻지 못했다.[9] 하지만 심볼리 크리스 에스가 심볼리 목장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건지 심볼리 크리스 에스를 마지막으로 중상 우승마가 나오지 않았고 지금은 마주 자격을 버리고 생산 목장으로서만 활동 중이다.[10] 아오바상을 승리한 말은 더비를 승리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11] 애초부터 종마 생활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 경마에서 인기가 없는 장거리인 킷카상을 거른 것으로 추정된다.[12] 이는 일본 경마 역사상 1937년의 해피 마이트, 1996년의 버블껌 펠로에 이어 3번째로 클래식 전선을 달려야 할 말이 천황상(가을)을 제패한 대기록이다.[13] 심볼리 크리스 에스는 이 경주를 제외하면 패배할 때도 한 번도 3착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14] 이후 아몬드 아이가 아키텐 연패를 추가했다.[15] 아리마 기념 최대 착차 기록이다. 2위 기록은 8마신 차 승리를 거둔 2013년 아리마 기념의 오르페브르가 보유하고 있다. 후지사와 카즈오(藤沢和雄) 조교사는 이전에 자신이 담당했던 타이키 셔틀이 은퇴전에서 3착으로 미끄러진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 마무리를 확실히 짓기 위해 끝까지 철저히 조교했다고 한다.[16] 마루젠스키나 테스코 가비 등의 경주마가 오카상과 아사히배에서 대차로 우승하였지만 그때는 그레이드 제도 도입 이전이었다.[A] A B C D 수태 확인 후[출생] A B 출생조건[수태] A B [B] 불출생시 환불
샤다이 스탤리언 스테이션에서 종마 생활을 시작했다. 주요 자마로는 더트마로써 일본 더비에 도전했다가 마장적성 문제로 18착 대패를 당하고 컬트적 인기를 누렸던 더트 G1/Jpn1 3승마 석세스 브로켄, 그리고 스페셜 위크의 외손자로 킷카상과 재팬 컵 우승기록이 있으며 종마로도 성과를 내고 있는 에피파네이아가 있다. 에피파네이아는 2021년 8월 기준 리딩 사이어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대표 산구는 최초의 무패 암말 삼관마 데어링 택트와 21년 사츠키상 우승마 에프포리아이다.
2016년 브리더스 스탤리온 스테이션으로 이동. 2019년에 종마 생활을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심볼리 목장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해 12월 8일 제엽염이 발병하여 죽었다.
4.1. GI/JpnI 경주 우승마[편집]
- 굵게 표시된 경기는 GI 경주
2005년산
- 석세스 브로켄 - 재팬 더트 더비(2008), 페브러리 스테이크스(2009), 도쿄대상전(2009)
- 스트롱 리턴 - 케이오배 스프링 컵(2011), 야스다 기념(2012)
- 알프레도 - 아사히배 퓨처리티 스테이크스(2011)
- 에피파네이아 - 라디오NIKKEI배 2세 스테이크스(2012), 고베신문배(2013), 킷카상(2013), 재팬 컵(2014)
- 르 방 스 레브 - 전일본 2세 우준(2017), 유니콘 스테이크스(2018), 재팬 더트 더비(2018),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2018), 챔피언스 컵(2018)
4.2. Broodmare Sire(BMS)산구[편집]
- 굵게 표시된 경기는 GI 경주
2011년산
- 오쥬 쵸산 (아버지 스테이 골드) - 나카야마 그랜드 점프(2016~2020, 2022), 나카야마 대장해(2016~2017, 2021), 도쿄 하이 점프(2016, 2017), 한신 스프링 점프(2017, 2019, 2020), 도쿄 점프 스테이크스(2016)
2015년산
2017년산
- 오소리티 (아버지 오르페브르) - 아오바상(2020), 아르헨티나 공화국배(2020, 2021), 네옴 터프 컵(2022)
- 아카이 이토 (아버지 키즈나) - 엘리자베스 여왕배(2021)
2019년산
- 송라인 (아버지 키즈나) - 후지 스테이크스(2021), 1351 터프 스프린트(2022), 야스다 기념(2022, 2023), 빅토리아 마일(2023)
- 서블라임 앤섬 (아버지 로드 카날로아) - 필리즈 레뷔(2022)
2021년산
- 이글 누아르 (아버지 브릭스 앤 모르타르) - 효고 주니어 그랑프리(2023)
5. 경주 스타일[편집]
현역 당시 각질은 선행으로, 이른바 '요코즈나 스모'라 불리는 '5~6등에서 따라가다가 마지막 코너~직선에서의 스퍼트로 도주마를 제치고 승리'하는 선행 각질의 정석적인 승리패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같은 관명의 목장 출신에 레이스 스타일도 비슷했던 '황제' 심볼리 루돌프를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18]
6. 평가[편집]
98년 황금 세대와 05년 딥 임팩트 사이에 끼인 경마 암흑기 세대여서 그런지 G1 4승에 2연속 연도대표마, 아키텐 및 아리마 기념 2연패 등 굵직한 기록을 남겼음에도 인기는 뜨뜻미지근한 편.
종마생활을 위해 일찍 은퇴했을 말이었기 때문에, 설욕을 위해 현역을 1년 연장했으나 전년도의 커리어를 번복하는 다소 아쉬운 결과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우승한 G1 경기가 천황상(가을)과 아리마 기념으로 좁혀져 다재다능한 느낌을 받기 힘들며, 그런 면은 승리한 G1에서 보인 압도적 퍼포먼스[19] 에 반해 다른 경기에서 맥 없이 패한 것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별다른 라이벌도 없는 빈집털이라는 식의 평가절하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9마신차를 주고받은 탭 댄스 시티부터가 대표적인 라이벌이기에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이다.[20] 은퇴전인 아리마 기념에선 80년대 이후의 일본 경마 평지 G1의 최대 착차 기록인 9마신차 승리, 당시 주전 기수였던 올리비에 펠리에는[21] 아리마 기념 후 "(97년 개선문상 우승마인) 팽트르 셀레브르[22] 에 필적한다."는 평을 내리는 등, 경마의 인기가 떨어진 시대에 피해를 입었을뿐 강한 말임은 분명하다.
7. 여담[편집]
- 현역 시절부터 500kg을 훌쩍 넘는 거구의 덩치를 자랑했으며, 그래서인지 심볼리 크리스 에스의 후손들 역시 이 덩치를 물려받아 체구가 좋은 말들이 많다.
- 마체가 멋지기로 유명했다. 담당 구무원의 말에 따르면 흑색 털에는 윤기가 흐르고 근육과 큰 골격이 균형있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체를 가졌다.
- 인간을 잘 따랐다고 한다. 라스트런이 된 아리마기념을 승리한 이후 담당 구무원에게 스스로 걸어갔다는 일화도 있으며 훈련에 임할 때도 반항없이 지시대로 행한 온화하고 똑똑한 말이었다고 한다.
8. 경주 성적[편집]
[출처] #[17] 당시 G2[18] 다만 혈연관계로 따지면 두 경주마는 4대 내에 겹치는 말이 하나도 없는 남남이다.[19] 2002년 아리마 기념은 혼자서만 탭 댄스 시티를 잡아내 격의 차이를 보였다. 2003년 천황상 가을은 훗날 2010년 커리어 하이의 부에나 비스타를 연상시키는 압승, 은퇴전 아리마 기념은 말할 것도 없다.[20] 탭 댄스 시티를 제외해도 링컨, 나리타 탑 로드, 정글 포켓, 히시 미라클, 파인 모션, 에이신 프레스턴, 츠루마루 보이, 젠노 롭 로이 등 꺾어버린 상대만 해도 걸출하다.[21] 1996년 엘리시오(Helissio), 1997년 팽트르 셀레브르(Peintre Celebre), 1998년 사가믹스(Sagamix)를 타고 3연속으로 개선문상에서 우승한 기수, 2012년에도 솔레미아(Solemia)를 타고 우승을 하나 추가했다. 오르페브르가 개선문 첫 도전에 2착에 그친 경기.[22] 그 개선문상이 단순 우승이 아니라 5마신차 레코드 우승이다. 2착마가 피우수트스키, 그 외 엘리시오(Helissio)나 스웨인(Swain)이 들어간 희대의 라인업이었기에 경기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때문에 심볼리 크리스 에스에게 남긴 평가가 역으로 립서비스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펠리에의 기수 인생에 길이 남을 마필에 빗댄 것은 그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23]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경주마. 재팬 컵에 참가할 당시에는 이탈리아 소속으로, 이탈리아 G1 2승을 한 상태였다. 2003년에는 영국으로 근거지를 옮겨서 G1 5승을 하고 그해 유럽 최우수 고마에 오른다. 통산 G1 8승.[레코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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