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노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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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마 기수. 아버지인 요코야마 토미오는 8대경주 7승을 기록한 기수였으며[2] , 현재는 아들 둘이 현역 기수로 활약하는 등 3대가 기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중앙 2,877승, 지방 56승을 기록하고 있다.
2. 경력[편집]
1986년 3월 1일 기수로 데뷔해 다해 4월 29일 첫 승을 기록했고 1988년 토카이 스테이크스에서 첫 중상 우승을, 1990년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 쿄에이 탭에 기승해 첫 G1 우승을 달성했다. 아버지 토미오의 메지로 목장과의 인연으로 데뷔 시절부터 메지로 관명 말들을 타왔으며 메지로 라이언으로 그 빛을 밝혔다.[3]
2023년 9월 9일 나카야마 11R G2 시온 스테이크스에서 모리아나로
3. 주요 기승마 목록[편집]
굵은 글씨는 G1 또는 Jpn1 우승 경력이다.
- 쿄에이 탭 - 엘리자베스 여왕배(1990)
- 메지로 라이언 - 타카라즈카 기념(1991)
- 트로트 썬더 - 마일 챔피언십(1995), 야스다 기념(1996)
- 호쿠토 베가 - 엠프레스배(1995, 1996), 카와사키 기념(1996, 1997), 페브러리 스테이크스(1996), 다이올라이트 기념(1996), 제왕상(1996), 우라와 기념(1996)
- 사쿠라 로렐 - 천황상·春(1996), 아리마 기념(1996)
- 타이키 셔틀 - 마일 챔피언십(1997)
- 타이키 샤록 -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1997)
- 세이운 스카이 - 사츠키상(1998), 킷카상(1998)
- 스팅거 - 한신 3세 암말 스테이크스(1998)
- 심볼리 인디 - NHK 마일 컵(1999)
- 블랙 호크 -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1999), 야스다 기념(2001)
- 메지로 베일리 - 아사히배 퓨처리티 스테이크스(2000)
- 인그란디어 - 천황상·春(2004)
- 유토피아 -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2004)
- 필드 루주 -카와사키 기념(2008)
- 석세스 브로켄 - 재팬 더트 더비 (2008)
- 로지 유니버스 - 일본 더비(2009)
- 컴퍼니 - 천황상·秋(2009), 마일 챔피언십(2009)
- 부에나 비스타 - 빅토리아 마일(2010)
- 생테밀리옹 - 오크스(2010)[4]
- 그레이프 브랜디 - 재팬 더트 더비 (2011)
- 웨일 캡처 - 빅토리아 마일(2012)
- 골드 쉽 - 타카라즈카 기념(2014)[5] , 천황상·春(2015)
- 원 앤 온리 - 일본 더비(2014)
- 클래리티 스카이 - NHK 마일 컵(2015)
- 아에롤리트 - NHK 마일 컵(2017)
- 니시켄 모노노후 - JBC 스프린트(2018)
- 앙쥬 데질 - JBC 레이디스 클래식(2019)
4. 여담[편집]
- 장애물 경마 면허를 취득해 장애물 경마에도 출전, 12전 1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현재 장애물 면허는 반납.
- 삼남 요코야마 타케시가 타이틀홀더로 2021년 킷카상을 우승하며 부자 킷카상 제패, 에프포리아로 2021년 천황상(가을)을 우승하며 3대 천황상(가을) 제패를 달성했다.[7] 이듬해인 2022년에는 장남 요코야마 카즈오가 타이틀홀더로 천황상 봄 대회를 제패하며 부자 천황상(봄) 제패를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전년도 가을 대회를 제패한 동생 타케시와 함께 형제가 천황상 춘추연패를 달성했다. 또 타카라즈카 기념을 우승을 하며 타카라즈카 기념도 부자 3대 제패를 달성했다.
- 한편 두 아들이 기수로서 활약할 때마다 일본경마의 리딩 사이어[6] 라는 드립이 나오기도한다.
- 선배인 시바타 마사토나 카와치 히로시 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성공적인 커리어에 비해 오랫동안 더비 우승이 없는 기수였는데, 2009년 로지 유니버스로 더비를 우승하며 데뷔 23년 만에 꿈을 이루었다.
-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달리 사석에서는 과묵하고 엄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겉멋만 들었다며 선배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던 1년 후배 타케 유타카가 젊은 시절 가장 무서워하던 선배였고, 두 아들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는 "늘 무서워서 말도 잘 못 붙였다"고 음해를 당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는 과거의 이야기인듯.
- 원래는 과감한 판단도 서슴치 않는 터프한 기승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나, 호쿠토 베가의 사망을 기점으로 기승 스타일이 말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마군 최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한번에 치고 나와서 우승하거나, 초반부터 도주로 치고 나가는 방식인데, 말이 할 마음이 없다면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경우도 많아 원성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말의 능력이 된다면 여전히 과감한 기승을 하기도 하는데, 마군 정중앙을 제일 먼저 뚫고 나와 마군을 늦게 탈출한 보드카를 이기고 우승한 컴퍼니의 천황상(가을)의 기승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애초에 요코야마 노리히로의 전성기는 호쿠토 베가가 죽은 이후인 90년대 말~2000년대 말까지다.
- 오랫동안 자동차 면허증이 없었으며, 대신 자전거로 통근했다. 때문에 2001년 진행된 설문에서는 "애차" 란에 세이운 스카이를 적기도 했다. 이후 2013년 자동차 면허를 취득했다.
[1] 경마 업계인이 아닌 일반인이라 비공개. 2ch등의 소문에서는 미츠이스미토모 계통의 엘리트 샐러리맨이라고 한다.[2] 타카라즈카 기념도 우승하였으며 천황상 봄과 가을 3200m를 제패하였다.[3] 현역 시절 기성이 거친 편이었던 메지로 라이언이 요코야마가 쓰다듬을 땐 얌전히 손길을 받았으며 요코야마도 라이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며 라이언과의 우정을 특별히 여겼다. 라이언이 죽은 후엔 사비를 털어 묘비를 만들고 '이 말이 나를 남자로 만들었다.'는 문구를 새겨넣었을 정도.[4] 아파파네와 동착. 일본 클래식 G1 역사상 유일한 동착 우승 기록이다.[5] 이듬해인 2015년 타카라즈카 기념에도 기승했지만 이 날 골드 쉽이 역대급 대형 사고를 치며 침몰했다.[6] 원래는 자식마들의 성적이 가장 우수한 종마에게 붙는 칭호[7] 부친인 요코야마 토미오는 메지로 타이요로 1969년 우승, 본인은 2009년 컴퍼니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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