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라이덴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이자 종마. 비젠 니시키가 은퇴한 이후 황제 심볼리 루돌프에게 비벼볼 수 있는 자질을 그나마 갖추고 있던 몇 없는 동기였지만, 역대 최악의 사행벽으로 자폭을 일삼으며 결국 GII 4승에 만족해야 했던 말이다.
2. 혈통[편집]
아비인 다이 코터는 1965년 사츠키상과 더비 2착에 그쳤지만 결국 킷카상은 따 낸 강호이자 "돈으로는 더비를 못 산다"라는 격언을 만들어 낸 말이다.[1][2] 덤으로, 단 한 번의 최강으로 아리마 기념을 따 낸 다이유우사쿠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어미인 미스 호마레 시로는 경주 성적은 없이 순수한 종빈마로 길러진 말로,(같은 혈통의 오빠로 천황상 우승마가 나오는 등 꽤 기대받는 혈통이라고.) 니시노 라이덴이 첫 산구였다.
3. 생애[편집]
데뷔는 늦은 시기인 4살(현 3살) 시즌에 치뤘는데 신마전에선 우승, 이후 2연패를 하지만 다시 2연승을 거두며 양혈마임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클래식 유력마 중 한마리로 올라선다.
하지만 드디어 출전한 첫 GI인 사츠키상에선 무패로 클래식에 도전하는 심볼리 루돌프와, 그 루돌프에게 한번 진 걸 제외하면 역시 전승으로 도전하는 비젠 니시키의 격돌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고 6착, NHK배에선 비젠 니시키에게 패배하며 4착, 일본 더비에선 다시 루돌프의 우승을 바라보며 5착으로 패퇴한다.
그럼에도 이후 고마들과 섞여 달리면서 점차 능력을 개화하더니 고베신문배 2착에 이어 교토신문배에서 드디어 중상 첫 승리를 달성한다.
킷카상에선 스퍼트를 너무 일찍 하는 바람에 루돌프와 골드 웨이에게 제쳐지며 3착에 머물렀지만, 비젠 니시키가 은퇴한 상황에서 다들 루돌프에게 견줄 말은 더 이상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2착마 골드 웨이와 함께 정면에서 루돌프를 대적하는 모습에 당시 중계를 맡았던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가 극찬을 하기도 했을 만큼 건투를 했다.
이 때 무리를 했던건지[3] 연말 경기인 아이치배에선 8착으로 대패하지만 5살(현 4살) 시즌 첫 경기인 나루오배를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드디어 슬슬 본격화가 시작되었나 싶었지만 오사카배에선 7착, 봄의 천황상에선 다시 루돌프의 우승을 바라보며 4착에 그친다.
아무래도 너무 쉬지 않고 달렸던 것이 문제라 생각했는지 진영측은 5개월간의 장기 휴양에 들어가고 9월의 아사히 챌린지 컵을 복귀 무대로 삼게 되는데, 이 경기를 시작으로 니시노 라이덴의 서행전설이 시작된다(...)
3.1. 희대의 악벽마 탄생[편집]
아사히 챌리진 컵에서 무지막지한 서행을 보이면서도 1착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에코 프렌치란 말의 진로를 방해하면서 실격당하며 2착이었던 와카오 라이덴에게 승리를 넘겨주게 된다. 그렇게 진로방해를 당했음에도 에코 프렌치가 3착으로 들어온 것을 보면 서행이 없었다 해도 우승이 가능했을지 의아할 정도긴 했지만 어쨌든 1착임에도 실격이라는 처벌을 당했고, 기수마저 기승정지 처분을 당하게 만든다.
이후 타바라 세이키로 기수가 바뀌어 교토 대상전에선 당대의 여걸 야마노 시라기쿠[4] 에 뒤진 2착을 하며 회복세에 드나 싶었지만 가을 천황상에선 갤럽 다이나에게 심볼리 루돌프가 일격을 맞으며 생에 몇 없던 패배를 당하는 와중에 12착으로 대패한다.
원래의 기수인 이토가 다시 기승한 후에는 한신 대상전에서 중상 3승째를 올리고, 아리마 기념에선 루돌프와 미호 신잔에 이은 3착으로 다시 컨디션이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6살(현 5세) 시즌에는 닛케이 신춘배에서 4착으로 패배한데다 부상까지 입어 버린다. 당시 심볼리 루돌프는 해외 원정을 떠났고 미호 신잔은 부상으로 휴양중이었기에 계속 출장만 했다면 염원하던 GI을 딸 가능성이 있었으나 1년 2개월의 기나긴 휴양에 들어가게 되 버린다.
7살(현 6세) 시즌에 복귀하지만 한신대상전에선 8착으로 패배한데다 주전기수 이토가 이혼 등의 개인사유로 스트레스를 엉뚱한데 풀다가 마방으로 부터 파문처분을 받고 이후 해당 마방과 마주의 말에는 타지 못하게 되는 사고를 치는 등 개운치 않은 스타트를 보인다.
하지만 다시 타바라 세이키와 콤비를 이뤄 2년전에 패했던 오사카배에서 우승하며 중상 4승째를 거두며 부활한다.
그리고 맞이한 봄의 천황상에선 먼저 복귀했던 미호 신잔이 누가봐도 컨디션 불량이었기에 "드디어 미호 신잔마저 이기며 GI을 딸 수 있다!"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지만 본 경기에선 사진판정을 통해 코차이로 2착에 그친데다, 1착 사진판정보다 더 오래 걸린 심의에서 3착마 아사히 엠페러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을 당하는데, 이는 JRA 사상 최초로 GI 2착마가 사행에 의한 실격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골 직전까지는 라이덴쪽이 유리해 보였기에 "사행을 안했다면 니시노 라이덴이 이겼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작 기수인 타바라 세이키가 "이 녀석은 어째 똑바로 달릴 때보다 사행을 해야 상태가 좋았다"라고, 사행을 했기에 그 속도가 나온 것이라 인증을 해 버리며 이 의견을 부정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실격으로 인해 타바라 세이키는 기승정지 처분을 당하고 당시 주전이었던 맥스 뷰티와 프레쉬 보이스에도 한동안 못 탔는데, 이 시기 두 말이 출전한 중상 2경기에서 모두 우승했기 때문에 타바라 역시 중상 2개를 손해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GI인 타카라즈카 기념에 도전하지만, 이번엔 서로 승패를 주고받던 동기이자 노장인 스즈 퍼레이드에게 패하며 3착, 여기에 부상까지 입어 결국 은퇴하게 된다.
4. 은퇴 후[편집]
혈통에 비해 성적도 아주 좋다고는 하기 힘든데다[5] 고쳐지지 않는 사행벽 때문에 종마로서의 수요는 크게 기대받지 못했지만, 마주가 워낙 호인으로 유명한 니시야마 마사유키씨였던 지라(세이운 스카이와 니시노 플라워의 마주로 유명하다. 이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면 항목 참조) 자신의 소유마 등을 통해 종마로 데뷔시키지만 딱히 좋은 성적을 올린 말도 없는데다 아비를 닮아 성격도 더러운 말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데뷔도 못한 말들이 수두룩 했다고 한다(...)
5. 기타[편집]
- 실격 횟수는 2회지만, 경기중 누가 봐도 저거 위험한 거 아니냐 싶었던 사행 횟수는 총 6회였다고 한다. 다른 경기에선 패배했기 때문에 실격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 은퇴 경기가 되버린 타카라즈카 기념에선, 갑작스런 부상에 놀란 마주 부자를 경기 진행위원이 불러 사진을 보여주며 "스타트 직후에 코스에 비친 그림자에 놀라 점프를 한 것이 부상의 원인 같습니다"란 말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진행위원은 천황상 당시 실격을 알려준 사람이었다고(...)
- 천황상 실격 당시, 시바타 마사토는 "아마 아사히 엠페러의 생김새와 승부복이 미호 신잔과 닮았기 때문에, 아사히 엠페러를 본 니시노 라이덴이 착각해서 견제를 한다고 일부러 몸을 부딪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2회의 실격 처분에 대해, "경기 방해 등의 이유로 처분을 받는다 해도, 상위에 든 말이라면 그 말이 보인 성적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고려를 해야하지 않겠는가?"라는 여론이 생겼다. JRA측에서는 여론을 받아들여 무조건 실격 대신 당시 서구 경마에서 도입하던, 피해 입은 말 아래 순위로 내리는 강착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덕분에 니시노 라이덴은 "강착 제도 도입의 아버지"라는 반 비아냥 섞인 별명을 얻게 되었다.[6]
- 위의 부상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겁이 많은데, 덕분에 커리어 내내 섀도 롤을 착용하고 달렸다. 게다가 그 섀도 롤이 새하얀 색에 푹신해 보이는 털 섀도 롤이라 눈에 쉽게 띄이는 타입이다 보니 "섀도 롤의 괴물" 나리타 브라이언이 등장하기 전까진 섀도 롤 하면 떠오르는 말이었다.
6. 경주 성적[편집]
[1] 원래는 신마 신잔의 마주인 하시모토 키치요시 소유의 말이었는데 비록 불의의 일격을 맞고 사츠키상은 내 주었지만 더비 유력마로 꼽혔던지라 더비 우승 경험이 없던 "큐슈의 석탄왕" 우에다 세이지로(上田 清次郎)가 무려 2500만엔이란 거금(다이 코터의 구입금액이 800만엔, 당시 더비 우승 금액이 1000만엔이었다. 말 그대로 돈 따윈 어찌돼든 상관 없으니 더비 우승이란 영광이 필요하다는 의지였다).을 들여 시즌중에 말을 사 왔지만 결국 우승을 놓치면서 생긴 말이다. "사츠키는 가장 빠른 말이, 더비는 가장 운이 좋은 말이, 킷카상은 가장 강한 말이 우승한다"라는 겪언 대로 다이 코터는 당시 가장 강한 말이었지만, 하필 더비 당일 내린 비로 중마장 상태가 되어 일격을 얻어 맞은 것인데, 아무리 강해도 결국 더비는 실력과 운을 겸비한 말이 우승한다는 전통을 여실히 보여준 셈.[2] 여담이지만, 원래는 팔지 않으려던 하시모토에게 "당신은 작년에 (신잔의 우승으로) 더비의 맛을 보지 않았나? 나는 아직 더비를 모른다"라며 설득하자 할 말이 없어진 하시모토가 결국은 넘겼다고 하는데 이 우에다씨는 이후 아예 우에다 목장이란 자목장 까지 세워 오너 브리더에까지 도전했지만, 2022년 현재까지도 더비마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한다.[3] 사실 이 시점까지 12전을 치른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3살 시즌마가 8~10경기 정도를 뛴다는 걸 생각하면 꽤 무리를 한 편.[4] 당시 존재하던 전 10개 경마장의 중상경기에 모두 출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5] GII 4승이면 나쁘지 않은, 오히려 괜찮은 성적이긴 한데 혈통을 생각하면 GI 1승 정도는 올렸어야 할 말이라는 평이었기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편이다. [6] 강착 제도는 1991년부터 실시 되었는데 기수들이 신규 도입된 강착 제도를 적응하지 못하고 사행으로 실격되는 사례가 매우 많이 나왔으며, 결국 강착 제도 도입 첫해 G1 우승마의 강착이 이루어 지는데 그게 메지로 맥퀸이 18착으로 강착된 천황상 가을이다.[7] 2착으로 들어왔으나 진로방해 혐의로 실격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17:17:04에 나무위키 니시노 라이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