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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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 국왕은 영국의 군주로, 현 영국의 국가원수이다. 현임 국왕은 윈저 왕조의 찰스 3세.하느님의 은총으로 대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과 다른 왕국과 영토의 국왕, 영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OOO 폐하 (His/Her Majesty OOO,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is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칭호[3]
영국 국왕은 채널 제도와 맨 섬의 군주(영주)이기도 하다. 채널 제도와 맨 섬은 영국령이 아니라 영국 왕실령으로써 영국이 군주제를 폐지해도 채널 제도 및 맨 섬의 영주로 존재할 수 있다.
왕위 계승 서열은 윈저 왕조 문서 참고.
2. 위상[편집]
섬나라라는 특성상 영국은 중세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유럽사의 변방에 위치했으며, 영국 왕실은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프랑스와의 교류를 통해 유럽에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만 윌리엄이 노르망디 대공이었던데다, 거듭된 결혼 정책을 통해 앙주, 누벨아키텐 등의 영지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백년전쟁 이전 봉건 시대의 절정기에는 프랑스의 절반에 가까운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4] 이 때가 '사자심왕'으로 불리는 리처드 1세 시기로,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살라딘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아크레를 점령하기도 했다.
영국 왕실은 헨리 8세 시기 수장령을 통해 전통적인 가톨릭 권력 구조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으며, 이후 대를 거듭하며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의 갈등, 의회와 국왕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번번이 충돌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와의 합병은 그레이트브리튼섬 내의 지정학적 판도를 안정시켰지만, 잉글랜드 내전 당시 공화정이 들어서는 바람에 국왕 찰스 1세는 처형되고 왕실은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의 폭정과 지나친 엄숙주의에 반발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뒤, 산업 혁명 이후부터는 영국의 국력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 발전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면서 덩달아 영국 국왕의 위상도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막대한 무역수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도 이러한 발전에 일조하였다.
영국 국왕은 19세기가 되면 초강대국인 대영제국의 군주로서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독일 황제, 러시아 황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와 함께 유럽의 군주들 중 가장 위상이 높았다.[5]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많은 현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대영제국 역시 대부분의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해체되었지만, 현재도 영국 국왕이 재위하고 있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총면적을 합치면 러시아보다도 크다.[6][7] 또한 이들 국가의 총인구는 1억 3,500만명으로, 천황이 국가원수로 있는 일본보다 많다.
현재도 'Royal Family'라고 하면 대부분 영국 왕실을 떠올리고 실제로 구글에 검색해도 영국 왕실이 가장 많이 나온다. 영국의 왕실인 윈저 가문은 왕실의 대명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전세계 국가의 모든 왕실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단적인 예로, 홈페이지와 SNS 공식 계정 이름도 'The British Royal Family'나 'The Buckingham Palace' 대신 단순히 왕실을 의미하는 'The Royal Family' 를 사용 중이다. 다른 국가의 왕실이 국가명이나 가문명을 공식 계정 이름에 넣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3. 권한[편집]
3.1. 국왕 대권[편집]
영국은 성문헌법이 없는 나라라 국왕이 소유하는 대권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다. 특권의 존재와 그 적용 범위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고려해야할 문제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법부가 특정 대권의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중재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몇몇의 대권은 널리 인정되고 시간이 지나서 행정부에서 수용되었지만, 다른 권한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국왕 대권은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제임스 1세의 재위기간 1610년의 선언 사례를 통해 영국 보통법원의 판사들은 왕실 특권의 한계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사법부가 분리되고 뚜렷한 권한이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이 무엇인지, 또는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임이 명백해졌고, 이는 사법권 개념의 결정적인 귀결이자 기초가 되었다. 이는 왕실이나 그 장관이 소유한 집행권과는 분리되는 특성이다.# 또한 정부에 대한 궁극적인 행정 권한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국왕 대권을 통해 존재하지만, 이러한 권한은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따라 그리고 실제로 관습과 전례의 제약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왕실 특권의 권력적 개념은 중세 왕이 왕국의 수장 역할을 하는 데서 유래하지만 결코 중세적인 관념은 아니다. 특권을 통해 국왕의 장관(내각)들은 군대를 배치하고 국제 조약을 체결하고 각종 명예를 수여할 수 있다. 현대에 정부 장관은 자신의 권리로 또는 국왕이 헌법상 따라야 하는 조언을 통해 대부분의 특권을 행사한다. 특권의 기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로 법령과 특권이 충돌하면 법령이 우선하고 특권을 사용하여 법령을 변경할 수 없다. 두번째로 특권의 사용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따른다. 즉 이론상 권한 자체는 막강하지만 남용할 수 없다.세번째로 특권은 법령에 의해 폐지되거나 폐지될 수 있지만, 결코 확대될 수 없다. 그러나 의회는 그 성질상 특권적 권한과 유사한 권한을 법령으로 만들 수 있다. 즉 국왕 대권은 이론적으로 영국 행정부의 권력의 원천이지만 그 제약 역시 분명하다.
이론상 영국 국왕은 영국의 사법과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왕대권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반하지 않는 이상[8] 어떠한 사법적 심사도 받지 않는 특권이다. 국왕의 조칙(추밀원 칙령)은 이론적으로 영연방 전체에서 그 나라 의회법에 따라 변경할 수는 있지만 권한에 있어 의존하지 않은채 독자적으로 법률로서 입법할 수 있다. 단 권리장전에 명시된 제한사항은 제외된다. 또 의회의 입법 중에 국왕이 칙령으로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것은 1610년 에드워드 코크의 선언 사례 판례의 의해 제한된다. 즉 국법상 중대한 범죄를 방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칙령에 의해 새로운 범죄를 창설할 수 없다.[9]
또한 의회가 입법한 법안을 재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불기소권(놀리 프로시콰이)과 사면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다. 모든 영국법은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되기에 영국 국왕은 재임 기간 동안 영국 법의 심판도 받지 않는다. 그 외 외교권과 훈장/작위 수여권, 영국 국교회 성직자 임명권 등이 있다. 국왕은 모든 영국의 '명예와 존엄의 원천(Fount of honour)'으로 취급되며 훈장과 작위를 수여할 원천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의 공직자들과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들은 국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한다. 이러한 맹세는 1868년 약속서약법에 명시되어 있다.#
국왕의 권한은 이론상 막강하며, 현대 영국 국왕은 대헌장과 권리장전으로 제한된 몇가지를 제외하면 절대군주적 권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내각에 맡겨놓았을 뿐이다. 국왕은 내부적으로 절대적인 권위, 또는 독자적인 특권으로 간주되며 영국 정부의 많은 행정권력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동의권(King's/Queen's Consent)[10] , 면세권, 군대 지휘권/해산권, 장교 임명권/해임권, 선전포고권, 군수품 판매권, 왕족의 자손에 대한 친권[11] , 의회 해산 권한[12] 등등도 가지고 있다. 템즈강 백조 소유권 같은 재밌는 것도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우니 기사를 참고해보자.관련 기사
국왕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사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18세기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 경이 저술한 영국법 주해에서 블랙스톤은 "That the King can do no wrong, is a necessary and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English constitution." (왕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은 영국 헌법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이다.) 라고 말한다. 즉 국왕은 살인을 포함한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완전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 국제 법률 실무자, 변호사 협회 및 법률 학회를 위한 최고의 조직인 IBA에 발표된 에섹스 대학의 공법 및 사회법학 모리스 선킨 교수는 글에서 "법치의 수호자로서 왕관의 역할을 보고 있으며, (중략)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왕관은 주권면제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법의 지배 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왕관 자체는 법령이나 관습법에 구속되지 않으며, 군주는 개인적으로 기소될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지만, 그의 장관과 공무원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군주가 맹세한 것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군주의 신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11년 조지 5세는 중혼으로 고발당했지만, 대법원장은 국왕에게 증거를 제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판결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23년 1월 영국 하원이 발행한 글의 46페이지에 따르면 왕관(군주)(Crown)은 관습법에 의한 법적 조치에 대해 면제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3]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지만 국왕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는 없다. 또한 영국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국왕 본인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 국왕이 여권을 소지한다는 것은 엄연히 신하인 외무대신에게 여행을 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왕만 해당되지 왕실 인원들은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198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여권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켄터키주 렉싱턴 공항에 착륙했을 때 세관과 이민 수속 담당 직원이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여왕의 입국을 통과시켜주지 않은 것이었다. 국무부에서 나온 의전 담당 직원이 국왕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해당 직원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버텼고 결국 워싱턴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나서야 입국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다만 영국 국왕은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남용하지 않으며 입헌군주제[14] 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국왕의 조칙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통 내각이 빠른 법안 처리를 위해 국왕의 이름을 빌려 제정된 초안을 국왕 앞에서 낭독하고 국왕은 '승인되었다'고 말하는 형식적인 재가를 하는 형태가 많다. 따라서 현대에는 이러한 국왕 대권의 권한은 스스로 또는 군주를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장관(내각)에게 위임되어 행사된다. 또한 이렇게 장관들(행정부)에 위임된 대권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는 행정부의 행동을 감시하는 통제의 주요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영연방 왕국들은 영국과는 별도의 헌법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각국의 헌법에 따라 국왕대권이 규정된다. 캐나다의 경우 영국처럼 국왕대권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이론적으로 영국 국왕이 영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국왕대권을 캐나다에서도 캐나다 국왕으로서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영연방 왕국에서는 국왕대권의 범위를 구체적이고 좁게 설정해 국왕대권을 크게 제한한다.
또한 영연방 국가 가운데 영국 국왕에 충성할 의무가 없는 나라에는 영국 국왕의 조칙은 당연히 강제적이지 않다. 1947년 자치령으로 독립한 인도는 영국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는 영연방 공화국이 되길 원했고, 따라서 1949년 영연방 국가에서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의 의무는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게 영국의 군주를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는 폐지되었고, 국왕은 영연방 원수(Head of the Commonwealth)라는 직함을 받았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에게 영국 국왕의 대권 행위가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한 뒤 일부 영연방 국가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 대한 적대행위는 아니며, 독립의 고리를 완성해 진정한 주권국가가 된다는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이는 영연방 국가들이 가진 그 나라 독자적인 헌법에 따른 특수성과 영국 군주제에서 벗어난다는 탈식민지적 주권국가로의 발돋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48년 제정된 영국의 반역 중죄법[15] 은 1879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이래 엄격한 시행 요건이 있지만,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법령에 존재한다. 이는 국왕에게 반역을 하거나, 찬탈을 시도하거나 또는 외국인과 협잡해 국왕과 영국을 침공 혹은 그러자고 선동하거나, 혹은 그런 의도로 음모를 꾸미거나 고안, 상상(imagine)하면 중범죄로 기소되어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16] 따라서 혁명 상황이 아닌 바에야 진지하게 군주제를 폐지하려고 하거나 국왕에게 적대하려고 시도하면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17]
유사한 법안으로 1842년 반역죄도 있는데 이 법은 국왕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에 대한 반역죄 처벌도 명시하고 있다.# 2021년 윈저성에 잠입해 석궁을 가지고 여왕을 해치려고 한 범인이 이 법으로 2022년 8월 2일 기소가 되어 처벌 받았다. 범인은 1981년 이후 40년만에 유죄판결을 받은 첫번째 사례이다.#
3.2. 영연방의 수장[편집]
영국 국왕은 영연방의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이다. 다만 상징일 뿐이고 실질적인 업무는 영연방 사무총장이 처리한다.
본래 영연방 회원국은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의무가 있었으나 1949년에 폐지된다. 1947년에 자치령이 되어 사실상 독립한 인도 자치령이 "우리는 국왕[18] (조지 6세) 자르고 공화국이 되고 싶다. 하지만 영연방에는 남고 싶으니 규정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인도와 으르렁대다가 별개의 나라로 분리된 파키스탄 자치령은 인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반대했으나 결국 다른 영연방 회원국들이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 영국 국왕을 해당국의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가 철폐되었고, 대신 조지 6세에게는 영연방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19] 이라는 어정쩡한 칭호가 부여되었다. 조지 6세가 사망한 뒤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2세도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할 당시만 해도 영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에 별 말 없이 승계했지만, 당시 찰스 3세는 즉위 후에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게 될 것인지 여부는 불명확한 상태였다. 그래서 여왕과 영국 정부가 영연방 정상회의(CHOGM)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여 찰스 3세가 사실상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일단 찰스 3세는 급한 불을 껐지만, 차기 국왕 즉위를 앞두고 또 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며, 그 때쯤 되면 그냥 영연방 수장직을 폐지하거나 선출직으로 바꾸자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3.3.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편집]
영연방 소속의 53개국 중에는 영국과 동군연합 상태인 영연방 왕국 15개국(영국 포함)이 있기 때문에 영국 국왕은 영국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등 14개 나라의 군주 자리를 겸임하게 된다.
그러나 영연방 왕국에 속한 나라들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엄연한 독립국이기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영국 이외의 영연방 왕국이 "영국 국왕을 군주로 모신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재위하고 있는 찰스 3세의 영국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영국 국왕(King of the United Kingdom)이지만 호주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호주 국왕(King of Australia)으로, 군주의 공식 칭호에 영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20]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찰스 3세의 공식 칭호가 뉴질랜드 국왕(King of New Zealand)이다.[21] 다만 영연방 왕국들 중에서 캐나다와 그레나다 둘만은 예외적으로 정부의 공식 칭호로는 각각 '영국과 캐나다의 국왕', '영국과 그레나다의 국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영국 이외의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연방 왕국은 평상시에 국왕이 현지에 주재하지 않으므로 국왕의 대리자인 총독을 현지에 둔다. 옛날엔 이 총독도 영국에서 파견했지만 현재 저 14개국 중에 그러는 나라는 한 개도 없다. 전부 각국의 의회나 내각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원로 정치인, 전직 고위 외교관 등)를 국왕에게 총독으로 추천하고, 국왕이 그에 따라 임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국왕은 '영국'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왕(예를 들어 호주 총독을 임명할 때는 호주 국왕)으로서 임명한다.
3.4. 영국군의 통수권자[편집]
영국 국왕은 영국군의 통수권자이기도 하고 또한 캐나다군의 통수권자와 뉴질랜드군의 명예수장(Head of the New Zealand Defence Force)도 겸임한다. 다만 명예수장과는 별개로 뉴질랜드군의 통수권은 총독이 갖는다. 호주도 영연방 왕국 소속이지만 호주군의 통수권자는 국왕이 아닌 호주 총독이다.
물론 이도 현대에 와서는 형식적인 권한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국왕은 조지 6세였지만 실질적으로 영국군을 통수한 사람은 총리인 윈스턴 처칠이었다.
3.5.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편집]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직을 겸한다. 이렇게 국왕이 교회의 최고직위를 겸하기 때문에 영국 국왕은 신앙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Fidei Defensor[22] )라는 칭호도 가진다.[23]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는 성공회로 분류되어 세계 성공회의 협력체인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지만, 이 교회의 수장인 영국 국왕이 곧 세계 성공회 전체의 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성공회의 상징적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고, 잉글랜드 국교회, 즉 국교회 아래에 캔터베리관구와 요크관구 등 2개 관구가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24]
3.6. 이외 권한[편집]
- 국왕은 매일 정부로부터 로열 레드 박스(Royal Red Box)라고 이름 붙여진 붉은색 상자를 배송받는다.[25] 이 상자 안에는 영국 총리의 국정 상황 브리핑과 함께 국왕이 승인하도록 제출되는 주요 공문서와 법률안, 군사 기밀 정보, 방첩 정보 등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제외하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국왕에게 배달되며, 심지어 국왕의 휴가지에도 이 상자가 배송된다고 한다.[26] 이외에도 매주 화요일에는 총리를 직접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해 토의하며,[27]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외교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받거나 주요 정보기관장들로부터 직접 기밀 정보에 대해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 물론 국왕이 국정 업무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절대로 공개되는 일이 없다.[28]
-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공공기관, 학술단체 등에 칙허장(Royal Charter)을 발행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칙허장을 수여받은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있다. 다만 칙허장의 실질적인 심의 업무는 추밀원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명목상 발급자만 국왕으로 되어있다.
- 국왕은 모든 미성년자 왕족들에 대한 절대 친권을 갖고 있다. 때문에, 국왕이 왕족 아이를 입양하고자 할 때는 해당 아이의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다. 왕실에서 양육권 소송이 진행될 경우 무조건 국왕이 승소한다. 이는 후계자 문제 때문이라고 하며 이론적으로 국왕이 아무 왕족 아이들이나 데려와서 양육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템스강에 있는 모든 백조는 국왕의 소유물이다.1300년대에 만들어진 백조 소유법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도망쳤거나 원래 주인이 없는 백조는 모두 국왕의 소유로 되어있다. 따라서 지금도 상징적으로 템스강에 사는 백조들은 국왕의 소유이며, 만약 백조를 해칠 경우 동물보호법이 아닌 절도죄로 처벌받게 된다. 국왕의 소유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왕이 소유한 백조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전통 행사도 열리고 있다.# 왕실 내부에는 국왕의 백조를 관리하는 백조 관리인 직책도 따로 존재한다.
- 1324년 에드워드 2세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영국 영해에 사는 모든 고래와 돌고래, 철갑상어는 국왕의 소유물이다. 특히 고래의 뼈는 왕비가 착용하는 코르셋의 재료로 사용되어야 하므로 왕비의 소유물로 간주된다.[29] 백조와 마찬가지로 고래를 함부로 죽이거나 포획한다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
- 국왕과 왕족들은 영국인의 권한인 정보 청구권에서 자유롭다. 영국인은 누구나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나 자료든 열람하거나 청구할수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국왕은 이에 대한 방어권을 갖는다. 따라서 왕실에 대한 정보나 자료는 국왕의 동의 없이 열람할 수 없다. 학자나 작가들이 왕실에 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거나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국왕의 동의를 형식적으로 얻어야 하며, 왕실의 회계 자료도 일반인이 청구해 열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법률안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과는 달리 현재도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권한이다.
- 국왕이 보는 앞에서는 체포 또는 형집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과 국왕이 머무르고 있는 건물에서도 사법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4. 종교[편집]
왕족 중 오직 성공회 신자 만이 영국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할 시 왕위 계승권이 박탈된다.
16세기 이래로 영국 국왕은 즉위식에서 스코틀랜드 국민교회를 유지하겠다고 서약하며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신자로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 때문에 새 국왕이 즉위하게 되면, 잉글랜드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스코틀랜드 장로회 의식으로 봉헌식을 따로 치른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부터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에서 거주할 때에는 밸모럴 성 인근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5. 재산[편집]
영국 국왕은 '랭커스터 공국'이라는 이름의 재산과, 크라운 에스테이트라 불리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랭커스터 공국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으로서 소유한 재산이며, 역사적인 이유로 영국 국왕이 랭커스터 공작을 겸하게 되면서 국왕에 속하게 된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산은 완전한 국왕의 사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는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1993년에 왕실의 비용 문제가 논란을 빚자 엘리자베스 2세는 자진해서 면세권의 일부를 포기하고 소득세를 내고 있다.
크라운 에스테이트(The Crown Estate)는 국왕이 법인(Corporation Sole)으로서[30] 보유하는 재산이며, 영국 정부의 국유재산도 아니고 국왕의 완전한 사유재산도 아니다. The Crown Estate는 동명의 재단법인 The Crown Estate에서 관리하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는 수익은 영국 국고(영국 재무부)에 귀속되는 대신 왕실이 Civil list라고 불리는, 부동산 수익의 15%를 받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2016년부터 버킹엄 궁전 리모델링으로 인해 10년간 한시적으로 25%를 받는다. 출처1 출처 2 본래 이 재산도 랭커스터 공국처럼 국왕이 보유하는 사유재산이었지만 조지 3세가 정부 운영에 돈을 내는 대신 정부에 수익을 넘겨주기로 합의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국왕이 완전히 개인으로서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따로 존재하는데, 밸모럴 성 영지와 샌드링엄 하우스 영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각종 보석과 예술품, 투자 자산, 승용차[31] , 경주마[32]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위가 계승되어도 국왕의 특권에 따라 상속세가 면제된다.[33] 사유재산의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적이 없으나, 포브스의 추정치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의 재위 기간동안 5억달러(약 6954억원)의 자산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상속된 재산을 포함해 18억 1500만파운드(약 2조 9649억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개인 재산을 제외한 왕실 자산은 크라운 에스테이트 195억달러(약 26조9000억원), 버킹엄 궁전 49억달러(약 6조7000억원), 콘월 공국 자산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 랭커스터 공국 자산 7억4800만달러(약 1조원), 켄싱턴 궁전 6억3000만달러(약 8700억원) 등 약 280억달러(약 39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이 자산들은 국왕의 의사에 따라 자의적으로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동산 자산과 미술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6. 왕위 계승[편집]
현재 영국의 왕위 계승의 법칙은 2013년 제정된 2013 왕위 계승 법칙에 따른다. 이 법의 시초는 1701년에 정해진 1701 화해법인데, 3세기 후인 2013년에 영연방 왕국끼리 퍼스 조약(Perth Agreement)을 제정함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본래는 영연방 왕국 국왕의 계승 법칙도 1701 화해법을 따랐으나, 영국 식민지였던 영연방 왕국이 독립하고 난 후로는 영국에서 제정한 2013 왕위 계승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각국에서 퍼스 조약에 따라 제정한 별도의 법률이 적용된다. 다만 그 내용은 영국의 2013 왕위 계승 법칙과 거의 다르지 않다.
현행법 상 왕위 계승권은 1701년 화해법에 따라 제임스 6세의 손녀이자 조지 1세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소피아(팔츠의 조피)의, 성공회 신자인 후손으로 제한된다. 또한 혼외자로 태어나면 서열에서 제외된다.
본래 1701년 화해법에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배우자가 신자라면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나, 혼인으로 인한 박탈은 2015년에 폐지하고 이로 인해 계승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도 다시 계승권이 회복되었다.[34] 계승권을 개인이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래 남성 우선이라 남동생이 태어나면 여성은 계승서열이 남동생에게 밀렸으나, 영연방 왕국 전역의 동의로 2015년부터 적용되는 퍼스 협약 및 그에 따른 왕위계승법 개정에 따라 뒤로 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성별과 무관하게 태어나는 순서대로 왕위 계승 순위가 지정되는 것. 즉, 여성이라도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이 자식을 낳지 않는 한 밀릴 일이 없다. 그 전에 태어난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는 남동생들인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왕자와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왕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순위가 밀렸지만, 이게 적용된 최초의 공주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는 태어난 이후 남동생 루이 아서 찰스 왕자가 태어났음에도 계승순위가 뒤로 밀리지 않는다.
왕위 계승의 법칙을 바꾸려면 퍼스 조약처럼 영연방 왕국 모든 영역의 만장일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승계 규칙은 법에서 규정된 사항이라 법에 의해서만 바꿀 수 있다.
재위 중이었던 국왕이 사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상속인이 왕좌에 오르며, 왕위에 오르기 위한 대관식같은 절차는 나중에 한다. 대관식은 준비와 선대 국왕에 대한 애도기간을 위해 몇달 정도 시간을 둔 후 한다.
2023년 현재 계승서열 1위의 확정 상속인은 윌리엄 왕세자이다. 1701년부터 확정 상속인(국왕의 장남)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 작위와 함께 체스터 백작 작위를 받는 관례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왕위 계승 서열 6위까지는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
윈저 왕조의 창립자인 조지 5세의 후손들의 계승순위는 윈저 왕조 문서를 참고.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면 공직자들도 충성 맹세(Oath of Allegiance)를 해야하는데 이에 관련한 조례는 Promissory Oath Act, 1968에 제정되었고, 충성 맹세는 다음과 같다.
단, 맹세를 하는 사람이 무종교인일 경우, All Mighty God과 So help me God를 생략한다.I, [name], do swear by Almighty God that I will be faithful and bear true allegiance to His(her) Majesty, The King(Queen), [name], his(her) heirs and successors according to law. So Help me God.
저 ○○은 왕위 계승법에 따라 XX 국왕폐하 및 폐하의 상속자들 및 후계자들에게 진실한 충성을 할 것을 굳게 다짐함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시옵소서.
7. 섭정[편집]
현재 지정된 섭정이 모두 직무 수행 능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다음 계승 순위인 유지니 공주와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가 섭정 자격을 갖게 된다. 또한, 왕위계승자 신분인 조지 왕세손은 2034년이 지나면 별도의 섭정법 재정 절차 없이 자동적으로 섭정 자격을 갖게 되며, 이렇게 된다면 베아트리스 공주의 섭정 자격은 자동적으로 박탈된다. 또 국왕의 부모 역시 국왕이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예외없이 섭정으로 임명되는데, 따라서 만약 조지 왕세손이 성인이 되기 전 왕위에 오르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캐서린 왕세자비가 섭정을 맡는다.[38] 한편, 1937년 섭정법 재정 이후 실제로 섭정이 장기간 통치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39] 지금까지 섭정 제도가 활용된 경우는 국왕의 해외 순방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었고, 이마저도 6개월을 넘긴 적은 없다.[40]
차기 왕위계승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섭정 자격을 갖는 왕족과는 함께 차량을 탑승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만약 국왕이 사망한다면 왕위계승자가 왕위를 이어야하는데, 왕위계승자와 섭정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왕위 계승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미성년자일 때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했으며,[41] 조지 왕세손 역시 12세 생일이 지나면 삼촌 해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8. 레갈리아[편집]
대관보기(戴冠宝器, Crown Jewels)라고도 한다. 영국 대관식에서 새로 즉위하는 국왕에게 헌상되어 영국의 왕권과 왕위의 정통성을 표시하는 국왕의 보물들.
8.1. 왕관[편집]
성 에드워드 왕관에는 홍예 아치가 달려 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오직 황제만이 홍예 장식이 붙은 왕관을 쓸 수 있었지만 섬나라인 영국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홍예 장식을 붙였다.
8.2. 보검[편집]
- 국가 어검(Sword of State) -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검.
- 헌납의 보검(Sword of Offering) - 국가 보검(Jewelled Sword of State)이라고도 한다. 위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검.
- 커타나 - 자비의 검(Sword of Mercy), 또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검(Edward the Confessor's sword)이라고도 한다.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검.
- 영적 정의의 검(Sword of Spiritual Justice)
- 세속 정의의 검(Sword of Temporal Justice)
8.3. 왕홀[편집]
- 십자가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Cross) - 세계에서 가장 컸던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컬리넌 I[42] 이 왕홀의 꼭대기 부분에 부착되어 있다.
- 비둘기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Dove) -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장식된 왕홀.
8.4. 옥좌[편집]
- 에드워드 왕의 옥좌(King Edward's Chair) - 성 에드워드의 옥좌(St Edward's Chair)라고도 한다. 이 옥좌는 본래 스코틀랜드 국왕들이 즉위식 때 그 위에 앉아 왕관을 수여받는 식으로 사용되어 스코틀랜드의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물인 운명의 돌에서 유래했다.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그 전리품으로서 운명의 돌을 잉글랜드로 가져와서 스코틀랜드를 정복하여 그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이전의 스코틀랜드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운명의 돌 위에서 대관식을 치르려고 옥좌 바닥 아래에 운명의 돌을 넣어서 앉을 수 있게 할 용도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1세가 동군연합으로 잉글랜드 왕위까지 획득하면서 두 왕위가 합쳐져서 현재의 영국 국왕의 왕위가 탄생했고 현재의 영국 왕실도 스코틀랜드 왕가인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어찌보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 셈이 되었다. 현재는 운명의 돌 자체는 스코틀랜드에 돌려주었으며 영국 국왕의 대관식 때만 돌을 일시적으로 가져와서 옥좌 바닥 아래 수납공간에 넣어서 대관식을 치른 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운명의 돌 참조.
9. 역대 영국 국왕 목록[편집]
9.1.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군연합[편집]
잉글랜드 왕국의 군주들에 대한 내용은 잉글랜드 국왕 문서
9.1.1. 잉글랜드 연방의 호국경[편집]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이 세워진 곳은 잉글랜드인데, 언약도 성립에 따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도 흡수해 모두 호국경을 국가지도자로 옹립하고 국호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이 되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왕이 아닌 호국경으로서 통치했으나 정보 전달을 위해 본 문서에 같이 기재한다.
9.2.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영국 국왕[편집]
10. 기타[편집]
- 영국 국왕은 실제 생일과 관계없이 6월 두번째 토요일에 공식 생일 행사와 열병식을 한다. 조지 2세부터 시작된 전통.
-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 신자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스코틀랜드 국민교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왕족이 밸모럴 성에 거주할 때는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역대 국왕을 외우는 문구가 있다.
Willie Willie Harry Stee
Harry Dick John Harry three;
One two three Neds, Richard two
Harrys four five six ... then who?
Edwards four five, Dick the bad,
Harrys (twain),VII VIII Ned six (the lad);Mary, Bessie, James you ken,
Then Charlie, Charlie, James again...Will and Mary, Anna Gloria,
Georges four,I II III IV Will four, Victoria;
Edward seven next, and then
Came George the fifth in nineteen ten;
Ned the eighth soon abdicated Then George six was coronated;
After which Elizabeth
And that's all folks until her death.
윌리 윌리 해리 스티
해리 딕 존 해리 3;
하나 둘 셋 네즈, 리차드 둘
해리 4 5 6 ... 그럼 누구?
에드워즈 넷다섯, 나쁜 딕,
해리(두번), VII VIII 네드 six(소년), 메리, 베시, 제임스 you ken,
그 다음에는 찰리, 찰리, 제임스...윌과 메리, 안나 글로리아,
조지스 넷,I II III IV 윌 4, 빅토리아;
Edward Seven 다음은
1910년에 5번째로 George가.
8세 네드가 곧 퇴위하고 조지 6세가 대관식.
그 후 엘리자베스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모두들 마찬가지.
(해석)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메리 2세, 앤 여왕
11. 장수한 군주들 순위[편집]
왕은 아니지만 올리버 크롬웰은 향년 59세, 리처드 크롬웰은 향년 85세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