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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禹)임금_維基百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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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나라 초대 국왕 우왕(禹王)
로마 왕국 초대 국왕 로물루스

군왕은 백성이 함께하면 편안하고 백성이 도와주면 강성하며, 백성이 비난하면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등을 돌리면 멸망한다.

(百姓與之卽安 輔之則强 非之則危 背之則亡)

-

전한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


1. 개요
2. 왕국의 국가원수인 국왕
3. 나라의 군주가 작위로서 주는 제후왕
3.1. 동아시아
3.1.1. 중국 왕조
3.1.1.1. 설명
3.1.1.2. 왕작 목록
3.1.2. 한국 왕조
3.1.2.1. 고조선
3.1.2.2. 고구려
3.1.2.3. 백제
3.1.2.4. 신라
3.1.2.5. 발해
3.1.2.6. 고려
3.1.2.7. 대한제국
3.1.3. 일본 왕조
3.2. 중원왕조에서 바라보는 고려/조선 국왕
3.3. 유럽에서의 왕작
4. 곤충에서의 왕
6. 호칭
6.1. 언어별 명칭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주여, 당신의 권능을 왕에게 다시 그것을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들이 당신의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게 하소서

-

문명 5 신과 왕

()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 나라의 군주, 임금을 뜻하는 가장 대표적인 한자다. 갑골문에선 王은 아래 변이 넓고 위는 도끼 모양을 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선 도끼는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1] 도끼를 권력자의 상징으로 썼다. 이외에도 갑골문의 모양 해석에는 몇몇 이설이 있는데[2], 대표적으로 중국 한나라시대의 학자인 허신(許愼)은 갑골문을 보지 못했기에 전서(篆書) 등 이미 원형에서 많이 변형된 후세의 자체만 보고 하늘과 사람 사이(二)의 중간에 위치하여(一) 하늘과 백성을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하늘의 명으로 만민을 통치하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갑골문을 찾기 전까지는 이 허신의 해석이 널리 쓰였으나 갑골문이 나와 그 진짜 의미가 드러났다. 즉 "권력을 가진 높은 분"이라는 뜻.

추가로 원래 한자 문화권의 전통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등 다신교 세계관에서의 "~~의 "이란 개념은 '신'이 아니라 '왕'이라고 부른다. 우라노스의 이름을 딴 행성을 천성으로(해왕성, 명왕성 등도 같다.) 번역했다.

원래 한자 신(神)은 영어의 God보다는 Ghost에 가까운 개념이다. 명나라 때 중국에 입국한 가톨릭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의 절대자를 신으로 번역하지 않고, 천주로 번역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물론 신(神)이라는 글자에 God의 의미도 없지는 않았지만, 유일신 종교의 절대자 뉘앙스는 절대로 아니었고 애니미즘적인 정령, 산신 등에 쓰는 말이었다. 당장 민간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도 조상의 자리를 위라고 부른다. 한자에서 절대자의 뉘앙스를 가지는 말은 천(天)이나 황(皇), 또는 제(帝)이지 신(神)은 아니다.


2. 왕국의 국가원수인 국왕[편집]


일반적인 정의는 왕국의 군주.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왕이다.

보통 목차보면 알 수 있듯이 '국왕'이라고 칭한다. 훌륭한 업적을 세우면 대왕이라고 부른다. 유럽 역사에서 "대왕"은 위대한 왕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일 뿐이었지만, 한국사에선 위대한 왕을 부를 때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주의 칭호가 "대왕"인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려, 조선 왕조가 "대왕"을 자국 군주의 정식 칭호로 사용했고, 신라와 백제 역시 자국의 임금의 정식 칭호를 "대왕"이라고 했다.

황제의 개념이 여러 왕국들이 부대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일종의 대빵을 만든 것처럼, 왕의 개념 역시 일반적으로 여러 부족들이 통합해 여러 부족장들의 수장을 정하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왕의 권력은 초창기에는 그리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왕이 여타 부족장이나 귀족들과 대립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면서 차츰 권위 또한 강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왕국이 여럿 남았으며, 대표적인 예로 영연방 왕국, 스페인,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이다. 심지어 현대에도 전제군주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도 일부 있다. 브루나이사우디아라비아북한 같은 나라가 그 대표적인 예. 반대로 부탄같이 왕이 직접 국가체제를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국민들은 오히려 전제군주제를 원했는데 '국왕이 명하시니까' 여기에 따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의회가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뭔가 바뀌었는데..?

세상의 모든 왕이 사라지더라도 체스판의 왕과 트럼프의 왕 4명, 그리고 영국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장교단의 쿠데타로 쫓겨난 이집트 국왕 파루크 1세가 "20세기에는 각국의 왕실이 사라질 것이나 5명의 왕만은 건재할 것이니 트럼프의 왕 넷과 영국의 왕이다"라고 했다.[3]

자세한 것은 군주 문서를, 정복군주는 정복 문서를 참고.


3. 나라의 군주가 작위로서 주는 제후왕[편집]


王爵(Prince/King)

왕국의 통치자인 국왕은 King으로 번역하지만 작위로서의 왕작은 주로 Prince로 번역한다. 대표적으로 팔왕의 난의 팔왕을 영어로는 보통 Eight Princes라고 번역한다.

황제의 아래이면서 대공의 위.[4]

동양에선 명목상으로라도 "천자의 땅을 대여했기에 그에게 충성해야만 하는 제후"의 자리이며 서양에선 봉건제도의 영토 위주 국가 시스템에서 계약직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자리이다.

3.1. 동아시아[편집]



3.1.1. 중국 왕조[편집]



3.1.1.1. 설명[편집]

한나라 이래로 황제가 가장 높은 지배자의 명칭으로 굳어진 한자문화권에서 왕은 작위의 일종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이를 "왕작(王爵)"이라 한다.

유명한 공후백자남오등작도 춘추전국시대의 난리판을 거치며 유사한 과정을 통해 왕의 아랫칸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어찌 한 시스템에서 위아래로 배치된 계급 비슷하게 되었지만, 이 명칭들은 본래 서로 다른 집단에서 각자들 칭해 쓰던 군주의 다른 말이었다. 고조선만 해도 연나라의 칭왕에 맞서기 전까지는 대외적인 군주의 명칭이 "후(侯)"였다.[5]

그 이전까지는 왕 아래 제후(公)가 있는 봉건제 국가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칭왕하는 것은 중원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즉 이 시기의 왕은 진 이후의 황제와 같은 위치였다. 이후 황제가 등장하기까지 대왕, 태왕, 패왕 등 왕과 차별화하기 위한 명칭들도 나타났었다.

왕을 대신해 황제가 등장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대공 작위를 거의 준 적이 없으므로 작위로서의 왕은 유럽에서 말하는 대공을 대신해서, 위계상 황제공작의 사이에 위치했다. 보통 황제의 가까운 황족에게 "친왕(親王)" 왕작을 줬다. 황제와 혈통상으로는 다소 멀더라도 공적이 높거나 세력이 강성할 경우 경우 군왕(郡王)에 봉했다. 단 청나라 시절 친왕과 군왕은 황제의 친자라도 공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방계라도 공을 세우면 가능했다.[6]

물론 한나라 이후 통일왕조의 봉건제도는 유교 윤리상 주나라 제도를 흉내낸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 나라를 움직인 것은 진나라법가였기 때문에 중앙집권제를 시행해 분봉받은 왕이 직접 통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공작이나 백작들처럼 작위명에 불과했다.

다만 왕이 완전히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다른 작위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왕작은 일단 명목상 제나라, 위나라, 연나라, 순나라, 초나라, 오나라, 촉나라, 진나라 등등 중국의 지역을 구별하는 봉국들의 왕으로서 자체적으로 그 제후국의 조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중앙 권력이 강하다면 그냥 지방정부 취급이고 세금 받아먹어서 자기 살림에 보태는 수준에 그치겠지만[7] 중앙 권력이 취약한 상태라면 어쨌든 명목상 신하국이긴 해도 나라의 왕이니 군대도 기르고, 어느정도 중앙과 따로 놀 수 있다는 말이니 상당한 실력을 기를 수 있었다. 유방은 왕에 봉한 공신들 중 같은 유씨가 아닌 자들은 끊임없이 찍어내려 노력했고,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된다면 천하가 그 자를 공격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그리고 이 말은 이후 현실이 되는데 한나라의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져 난세가 펼쳐지자 헌제를 협박하여 위왕 작위를 받아낸 조조가 수도를 업으로 옮긴 뒤, 명목상의 한 조정에서 분리된 자체적인 조정을 세우고 찬탈/선양 준비를 하면서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한나라 조정을 쥐고 흔들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나라를 찬탈한 위나라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마씨 서진에 찬탈당한다. 물론 상술했듯이 자체적인 지방군을 조직할 권한을 얻은 대신 자기 봉국의 방어를 맡을 의무도 있으므로, 방어를 소홀히 해서 외적의 침략을 막는 데에 실패하면 책임을 물어 폐번당하기도 했다. 노관의 경우가 그 사례.

일반적으로 한족 왕조의 경우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들, 즉 후계에서 제외된 친자들은 장성하기 전에 각 지역으로 분봉했다. 예외적으로 만력제의 아들 복왕 주상순은 일찍 낙양으로 분봉 받았으나 거의 예외적으로 장성해서도 임지로 보내지 않고 북경에서 끼고 살았다. 만력제가 태창제를 제끼고 황태자로 삼고 싶어한 데서 비롯한다. 이런 예외 이외에는 황자를 분봉했는데 황태자의 저위(儲位)를 방해하지 않고 중앙정계에서 후계다툼을 미리 방지하려고 한것이다. 다만 위처럼 왕작을 받고 딴마음을 품은 사례처럼 영락제가 연나라의 왕으로 세력을 키우다가 황제 자리를 찬탈한 경우도 있으니 왕이라는 작위는 그야말로 허울뿐이 아님을 일 수 있다.[8]

반면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 시기에는 모든 황족은 북경성 안에서 살아야 했다.[9] 한편 한자문화권의 제국에서는 프린스의 의미와 어느 정도 일치하므로 보통 작위로서의 왕은 영어로 king 대신 prince로 번역한다.

작위인 경우의 '왕'에 경우 일단 다른 모든 신하들보다 작위는 높지만 예우상은 아니다. 분봉받은 왕의 경우 천자의 조정에서의 신하들과 직접적인 군신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사단 산하의 차상급 지휘관인 연대장과, 사단 사령부의 사단장 직속 부하들(참모장, 비서실장 등)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봉건시대 예법의 기준인 주나라 예법은 경대부(천자-제후-대부-사 중에서 천자를 모시는 대부) 중에 삼공의 지위는 가장 높은 작위인 공작과 동급 대우[10] 였고 이하의 벼슬도 직위에 따라 제후들과 매치 되었기 때문에 이후 왕조에서 황제가 분봉할 때 작위가 공작 등에서 왕으로 격상되었어도 이같은 예법은 그대로 이어진다.

황제의 친자식이면 신하들보다 끗발이 세겠지만 촌수가 먼 종친이나 변방의 왕이라면 별 듣보잡한테도 개무시 당할 수 있다. 또한 중앙 관제에 속한다고 지방직은 경대부는 아니고 당나라때 절도사나 명청 시대 순무총독들은 제후 취급을 받기도 했다. 순무는 1개 성(省)의 행정관이고 총독은 1~2개 성의 지방행정과 군권까지 주어진다.


3.1.1.2. 왕작 목록[편집]

  • 친왕(親王): 황제와 비교적 가까운 친족, 예를 들면 황자나 황제의 아우들에게 내렸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친왕은 보통 수식어가 한 글자로 정해졌으며 따라서 일자왕(一字王)이라고도 불렸다. 청대 이전에는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에서 따와 번국호+왕으로 불렸으나[11] 청대에는 화석친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화석친왕에 봉해진 자들은 추상적인 글자 한 자+친왕으로 불리게 되었다.[12]
  • 군왕(郡王): 군왕은 비교적 먼 황족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지방의 고장 이름에서 따온다. 이자왕(二字王)이라고도 불렸으며 청대 이전에는 대개 군이나 현의 명칭에서 따왔다.[13] 청대에는 다라군왕이라 불렸으며 역시 추상적인 글자 2자+군왕으로 불렸다.
    • 심양왕(瀋陽王): 원나라 때 존재했던 작위. 처음에는 이자왕이었으나 후에 심왕(瀋王)으로 승격.
  • 평왕(平王): 기원은 당(통일왕조) 시대다. 이전부터 북평, 남평, 동평, 서평의 4왕의 칭호가 있었지만, 당나라의 권위가 저하되자 사방을 지키는 유력한 절도사에게 북평왕, 남평왕, 동평왕, 서평왕 등의 왕작을 내리기 시작했다. 오대십국시대에는 평왕 직위의 절도사들은 왕위를 세습하게 되어, 중앙에 반항하여 국가를 건설하는 등 반독립국으로 바뀌게 된다. 북송 시대에 절도사의 왕작은 폐지되었지만, 서평왕은 서하의 군주에게 남평왕은 베트남리 왕조에게 주었다. 하지만 원나라 이후에는 단순히 황족에게 주는 칭호로 바뀌게 되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평왕의 의전서열은 일자왕과 이자왕 사이에 놓인다.

왕작의 종류는 시대별로 다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작위 문서 참고.


3.1.2. 한국 왕조[편집]






한국사의 여러 왕조들은 때로는 연호를 세우기도 하고 짐(朕) 등 중국 황제 제도의 용어를 쓰기도 했으며, 황제에 버금가는 고유의 군주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는데[14] 대부분의 시기는 그중에서도 대왕(大王)으로 통용되는 칭호를 사용했다.[15] 작위로서 왕을 봉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각 왕조마다 봉왕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16]

제후왕 봉작, 타국 왕 봉작, 타국 왕을 자국 제후왕 취급, 친왕 봉작의 네 가지 사례가 있다. 그중 제도적으로 눈에 띄는 사례는 백제의 봉왕 기사가 문헌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3.1.2.1. 고조선[편집]

고조선에선 비왕이라는 왕작이 있었다고 중국 사서엔 기록하고 있다. 이는 흉노의 비소왕 작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3.1.2.2. 고구려[편집]

고구려의 경우 주몽이 병합한 비류국송양을 다물국왕으로 책봉하고 또, 부여 임금 대소왕의 동생에게 왕작 제수를 한 기록이 있다. 또한 신라, 백제의 임금들을 매금, 잔주[17]라 부르면서 그들에게 의복을 주고 예우를 받으며 제후왕 취급을 하는 등 병합한 국가의 지배자에게 왕작을 책봉하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또한 고구려에 투항한 북연 황제 풍홍을 고구려 장수왕이 ‘용성왕’이라 부르며 제후왕 취급을 한 일도 있다.

이외에도 덕흥리 고분이나 고구려 유민들의 묘지명 등을 통해 제후왕을 작위로 내리는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신찬성씨록과 같은 기록에서는 일부나마 그 책봉된 명칭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군주가 군림하는 아래에 후왕, 왕, 국주, 매금 등이 존재하는 위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견해에 따라서는 북연의 천왕 역시 대종(태왕)과 소종(천왕)으로서 이 위계에 들어간다고 간주하기도 한다.


3.1.2.3. 백제[편집]

백제에선 여러 신하에게 매라왕, 벽중왕, 아착왕, 면중왕 등 왕작을 하사한 것이 중국 사서에 기록되어있다. 칠지도의 명문에는 일본국왕을 "후왕"이라고 칭하여 일본국왕을 제후왕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3.1.2.4. 신라[편집]

신라에선 신라에 귀부한 고구려 왕족에게 '고려국왕' 내지는 '보덕국왕'' 작위를 내렸다. 또한 진골 김주원에게 "명주군국 군왕" 작위를 주었고 국왕의 아버지에게는 "갈문왕" 작위를 주었다. 제주도의 탐라국이나 울릉도의 우산국도 독자적 왕이 존재하는 왕국이었지만 통일신라의 속국 지위에 있었고, 형식상이었지만 나중에 후삼국 시대의 고려, 후백제도 물리적 권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던 신라의 제후왕임을 자처하기도 했음을 보면, 당시의 신라는 쇠약해지긴 했어도 삼한일통의 계승자라는 짬(?)이 어디 안 갔는지 어떤 상징적인 우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듯하다. 묘하게 신성 로마 제국스럽다


3.1.2.5. 발해[편집]

발해에서는 오등작의 사용 흔적이 나타나며 또한 왕부를 따로이 설치한 것이 유물로써 확인되기 때문에 왕작을 수여하는 것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조영의 재위 기간 중 태자인 대무예는 계루군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 역시 발해에서 왕의 칭호를 가진 이들이 둘 이상 존재했음을 방증한다.


3.1.2.6. 고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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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왕
실직군왕
제후왕
필영대왕
김부
김위옹
미상
미상
문원대왕
정간왕
조선국왕
탐라국왕
왕정
왕기
왕도
역대 탐라 성주
영헌공
인숙공
인혜공
인효대공
왕영
왕분
왕유
왕균





고려는 오등작을 시행하긴 했지만 초창기 신라가 투항할 때 경순왕낙랑왕에 봉한 사례를 제외하면 생전에 왕작을 내린 예는 찾기 힘들다. 다만 죽은 왕자에게 "문원대왕", "필영대왕", "정간왕", "조선국왕" 등의 작위를 내리곤 하였다.


3.1.2.7. 대한제국[편집]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의 완전한 제후국이여서 사례가 없고 이후 황제국을 선포한 대한제국에 들어서 친왕 봉작을 했는데 흥선헌의대원왕, 영친왕, 의친왕, 완친왕[18] 등이 있다.


3.1.3. 일본 왕조[편집]


일본에서는 천황의 3세손(증손자)(1947년 이전에는 5세손) 이하의 남자 자손은 왕(王), 여자 자손은 여왕(女王)이라 하며, 중국의 군왕(郡王)과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1947년 신헌법 시행 이후로는 "왕"은 한 명도 태어나지 않고 있다.


3.2. 중원왕조에서 바라보는 고려/조선 국왕[편집]


이 문단은 우리 왕조 내부가 아닌 외부 즉, 중국 왕조의 시각에서 고려/조선을 어떤 위치로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고려시대 때 상당한 예우가 있었다. 고려 정종 5년(1039년) 기묘년 기록을 보면

옛 현도(玄菟: 고려국)의 땅을 그대에게 모두 주나니 영광은 옛날 일자왕(一字王)보다 높고, 조칙에 의해 부여받은 높은 직위는 삼공(三公)을 겸했다.

이 외에도 고려국 사신을 조공사가 아닌 손님 나라 사신이라는 뜻의 국신사라 하여 당시 송나라가 세폐를 바치고 있던 서하보다 위에 두고 사실상 요나라와 동격으로 취급한 것을 보면 송나라 때 매우 극진히 예우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원나라 시기 고려 국왕은 고려 국왕이라는 작제적 지위를 받았다. 원나라 당시에는 친왕, 번왕 이런 식으로 안 나누고 모두 왕으로 통일했는데 왕급 직위 중에서는 최고 직위이며, 관료적 지위로는 정동행성 승상과 겸하여 신하 중에서는 최상위 지위였다. 그만큼 고려를 제1번국으로서 우대했다는 것.

조선 국왕은 관료제적으로는 2품, 작제적 질서와 종법적 질서에서는 친왕급이었다. 조선 국왕은 중국의 군왕급이었다는 잘못된 지식이 있는데 예법상 이등체강(二等遞降) 원칙에 따라황제에서 이등(이품)급을 낮추면 황태자- 친왕 순이다. 이는 명나라가 조선의 관료의 위치를 일일이 정해주기보다는 조선 국왕의 위치를 정해 관료들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정해주는 방식을 펴서였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에는 친왕 대우였다. 이는 조선 국왕 뿐만 아니라 조선의 벼슬아치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의정부대신(삼정승)이나 좌우찬성은 조선에서 1품이지만 명나라 의전예우로는 3품 대우이다. 양녕대군이 조선의 세자로 명나라에 입조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영락제는 양녕대군을 정강왕(광서성 일대를 다스렸다고 한다.)의 예에 따라 대했다고 한다. 다만 초대 정강왕은 왕작을 군왕에서 시작해 친왕으로 올라갔다고 적었다.

또한 실록을 찾아보면 태종 2년 2월 기사에 명 건문제가 태종에게 면복을 주며 칙서에 이리 말한다.

조선왕은 군왕의 벼슬이니 오장(五章)이나 칠장복(七章服)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이제 특명으로 친왕(親王)의 구장복(九章服)을 내려 주며...

또한 태종 9년 4월 기사에 말하기를

사신을 중국에 보내어 고명(誥命)을 청하니, 영락(永樂) 원년 여름 4월에 황제가 도지휘사(都指揮使) 고득(高得) 등을 보내어, 조(詔)와 인(印)을 받들고 와서 우리 전하를 국왕(國王)으로 봉(封)하고, 이어서 한림 대조(翰林待詔) 왕연령(王延齡) 등을 보내어 와서 전하에게 곤면 구장(袞冕九章)을 하사하였으니, 품계(品階)가 친왕(親王)과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대우가 친왕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조선이 멀쩡할 때에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꽤 크게 여겼다. 지금도 대체로 인구 분포가 그렇지만 한반도나 베트남 같은 경우 땅이 제법 크고 인구도 많은 편이라 만주, 몽골, 티베트 등지의 여러 칸들보다는 직위는 왕이라도 실질적인 격은 위라 볼 수 있었다.[19] 더불어 수왕조를 쳐바르고 당나라를 고전시킨 고구려, 그 후신이자 요나라를 귀주에서 발라버린 고려, 다시 그 후신이자 요동을 이래저래 엿본 초기 조선 등 한반도 역대 왕조들은 중국 통일 왕조 입장에서도 가볍게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은 스스로 사대를 천명하고 알아서 숙였으니 중국 측에서도 어느 정도 꽤 대접은 해주었다 볼 수 있다.

때문에 명나라 시대에는 천자의 대리인으로 온 사신들도 조선 국왕을 만나면 칙서를 반포하기 전에는 공손하게 읍하며 예우를 했고 초기 환관을 보내던 데서 후기로 올수록 사신 지위도 높아졌다. 황제의 스승이자 공부상서를 지낸 사람이 올 정도였다. 이 사람은 정2품으로 조선 관직상 판서에 해당한다. 명나라는 재상을 없애고 1품 직위는 대학사, 즉 황제의 자문에 불과했기 때문에 관직상 오를 수 있는 최고직이다.

청나라의 홍타이지도 삼전도의 굴욕을 시전할 때 항복 절차가 끝나고 나서 "조선왕은 일국의 국왕이니 짐의 아우(친왕급)들 사이에 앉혀라" 했고, 조공국들 중에 조선이 그나마 나라꼴을 갖춰서 주요국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사신으로는 만주인 고관을 보냈다. 그쪽에서 봐도 비교적 큰 나라인 조선 국왕에게 수천~수만에 불과한 몽고 추장 7~80명과 같은 왕작위를 줬어도 대우는 현격히 달랐다.

반면 국세가 기울어 임진왜란시기 선조 시절에 나라가 털리고 나선 경략(해당 지역 책임자)으로 온 명나라 병부우시랑 송응창은 정 3품 조선 관직으론 병조참판 해당한다. 명나라 시절 남경 정부에 시랑하나 북경엔 좌우 시랑 청나라 시기엔 만한상서 2인 밑에 만인시랑 2명, 한인시랑 2명 등 총 4명이다. 또 듣보잡 연대장급 지휘관한테도 맞절하고 일국의 왕세자인 광해군은 아버지의 친구를 맞는 예로 인사할 지경이 되었다. 조선 막장테크인 고종 때는 청의 황제도 아닌 일개 북양대신 이홍장의 대리로 온 위안스카이에게 조선 국왕 고종도 개무시받던 안습의 역사도 있다.

이후 고종은 갑오개혁을 하면서 제후를 벗어난 자주국을 표방하기 위해 국왕이라는 칭호를 폐지하고 대군주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외국의 국왕들도 전부 대군주로 번역하게 했으며,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대한제국의 황제와 대청제국의 황제는 서로 대등한 관계로 한청통상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이후 일본제국이 의해 대한제국이 망하고, 청나라도 신해혁명으로 망하면서 두 제국 모두 없어지고 1991년에 공화국이 된 두 나라는 서로 대등한 현대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3.3. 유럽에서의 왕작[편집]


유럽의 황제는 동양처럼 힘이 있으면 그 어느 누구라도 황제를 칭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유럽 그 자체였던 로마 제국과의 증명된 연계를 통한 정통성이 있어야 했다. 즉 한 지역의 지배자가 아닌 유럽과 기독교 세계 전체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칭제 이전까지는 동로마 제국신성로마제국에만 황제가 존재했다.

사실 황제 뿐만 아니라 봉건제 전통이 뿌리깊었던 유럽에서는 군주라 할지라도 이란 칭호를 함부로 칭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당한 세력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얄짤없이 왕국이 아닌 대공국이나 공국에 머물러야 했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 공국은 18세기가 되어서야 간신히 왕을 칭할수 있었고 루스 차르국의 경우도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를 하기 전까지는 본인들은 차르라 칭했지만 서유럽에서는 모스크바 대공으로 취급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서 이란 휘하에 여러 공국, 후국, 백국의 소군주들을 봉건제후로 거느린 실질적인 최상위 대군주였고 황제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특별한 넘사벽의 칭호로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으로 인해 황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의 왕들은 굳이 황제 칭호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황제의 적남에게 모두 친왕 작위를 내리는 등 왕작을 남발한 동양과는 달리 나폴레옹 이전의 유럽에서는 제국이라 할지라도 휘하에 왕작이나 제후왕을 인정해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상술했듯이 유럽에서는 왕 칭호를 쓰게 허락해주는 것 자체가 황제의 영향력을 벗어나 사실상 완전히 독립국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그나마 예외적인 사례로 신성로마제국의 차기 황제로 선출된 사람이 즉위하는 로마왕과 신성 로마 황제 휘하의 제후왕인 보헤미아 왕이 있었다. 보헤미아 왕은 필리프(신성 로마 제국)가 황제 선거에서 자신에게 투표하는 대가로 당시 보헤미아 군주의 왕 칭호를 인정해주어서 황제 휘하의 신하이지만 왕이라는 칭호를 쓸수 있었다. 물론 합스부르크 왕조 이후로는 황제가 보헤미아 왕을 동군연합으로 겸하게 되어 그나마 하나 있던 제후왕도 사라지게 된다.[20]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여 유럽의 구체제에 깽판을 놓은 이후로는 유럽에서 다시 제후왕이 등장하게 된다. 일단 나폴레옹 본인부터 자신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로마왕에 봉했는데 상술했듯이 로마왕은 황제의 아들이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라 선제후들에 의해 차기 황제로 선출된 사람이 받는 칭호였으나 나폴레옹은 대놓고 동양의 친왕마냥 아예 자기 아들을 으로 봉한 것이다. 이후에 등장한 독일 제국 또한 제후국이 칭호를 쓰는 것에 상당히 관대했는데 작센 왕, 바이에른 왕, 뷔르템베르크 왕은 독일 황제(카이저) 휘하에 종속된 제후국이었지만 왕이라는 칭호를 쓰는 것을 인정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제후왕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여왕의 남편(국서)에게 주어지는 작위로 King consort가 있다. 여왕왕비를 구분할 때 왕비에게는 Queen 뒤에 consort를 붙이는 것과 똑같다. 여왕은 Queen regnant. 사실 군주인 왕도 엄밀히 따지면 King regnant인데 남성인 왕이 기본값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냥 짧게 King으로 사용될 뿐이다. 다만, King consort라는 작위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만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여왕의 남편의 호칭에 인색한 관계로 그냥 Prince consort의 작위를 주었다. 그마저도 영국은 아예 공동 왕으로 즉위한 펠리페 2세윌리엄 3세, 그리고 앨버트 공을 제외하면 여왕의 남편에게 Prince consort 작위를 주는 것마저 인색했다. 그 필립 공 역시 Prince consort 작위를 받지 못했을 정도. 여왕의 남편은 한국에서는 부군/국서(國壻)로 번역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부군은 여왕의 남편 뿐만 아니라 남의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서는 여왕의 남편/왕의 사위(부마)의 뜻으로 한정된다.

직접적인 명칭이 은 아니지만 유사한 경우로 흔히 왕자라고 번역하는 프린스(prince)라는 작위는 로마 황제의 칭호인 프린켑스(princeps)에서 유래한 칭호로 본래는 군주라는 뜻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제후나 왕자들에게 내리는 작위가 된 경우로 이 역시 동양의 친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어에서는 서양의 prince라는 작위를 일괄적으로 모두 친왕이라고 번역한다. 또 동로마 제국 같은 경우 바실레우스 아래에 데스포티스라고 황족에게 사용된 작위가 있었고, 데스포티스는 자신만의 번국을 가질 수 있었다. 모레아 전제군주국이 그 예이다. 동로마 제국의 계승은 동로마의 마지막 황녀와 결혼한 러시아의 차르가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서유럽에선 무관심이었다. 지역군주가 황제를 주장하는 꼴이기 때문. 특히 러시아의 경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크림 반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로마의 강역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이 당시는 러시아가 서구화를 외치며 유럽 세계에 편입되지 않았을 때였다.


4. 곤충에서의 왕[편집]


수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정액셔틀일 뿐인 개미와는 다르게 흰개미는 유시충(생식흰개미) 암수 한쌍이 평생 살면서 아이를 생산한다. 그래서 유시충 수컷을 왕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것은 흰개미 문서를 참고.


5. 창작물에서 왕인 캐릭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왕/캐릭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호칭[편집]


한국의 역사에선 왕을 뜻하는 고유의 일반명사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국가
호칭
고조선
단군
고구려
개차(皆次)
백제
건길지, 어라하
신라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매금(寐錦)[21]
가야
한기(旱岐)[22]
발해
가독부(可毒夫)

한반도의 국가들이 왕이라는 칭호 자체를 쓴것은 기원전 323년 경 고조선이 시초이지만 이후로도 상당기간 동안 자체적인 칭호와 같이 쓰였던듯한데 중국식 표현인 왕(王)이라는 칭호가 일반화 된 신라 중대(통일신라), 고려 시대부터는 왕 칭호만 쓰게 되었다.

6.1. 언어별 명칭[편집]


해외에서의 왕을 뜻하는 일반 명사는 다음과 같다.

언어별 명칭
한국어
임금,[23]
한자
(왕)
갈리아어
*rīx(rix, 릭스)[24]
고대 노르드어
konungr, kongr
고대 동슬라브어
король(korolĭ), цѣсарь(cěsarĭ)
고전 이집트어
𓀲 / 𓀵 , ⲡⲣ̅ⲣⲟ(파라오)
고트어
𐌸𐌹𐌿𐌳𐌰𐌽𐍃(þiudans)
교회 슬라브어
ⱌⱑⱄⰰⱃⱐ/цѣсарь(cěsarĭ)
구자라트어
રાજા(rājā, 라자)
그리스어
βασιλιάς(vasiliás, 바실리아스)
Βασιλεύς(basileús, 바실레프스),[25] ἄναξ(ánax)(고대 그리스어)
qa-si-re-u(미케네 그리스어)
그린란드어
kunngi
기아나 크레올어
rwè
rei(기아나-비사우 크레올어)
나바호어
naatʼáanii
나와틀어
tlahtoāni
네덜란드어, 아프리칸스어
koning(코닝)
wa(안틸레스 크레올어)
네팔어
राजा(rājā, 라자)
노르만어
rouai(저지식), roué(대륙식), rwe(사크 방언)
노르웨이어
konge
누비아어
ⲟⲩⲣⲟⲩ(고대 누비아어)
ūru(노비인어)
달마티아어
ra(라)
덴마크어
konge
konung(고대 덴마크어)
독일어
könig(쾨니히)
Kine(오스트로바이에른어)
Künning(중부 프랑켄 방언)
Keenich(펜실베이니아 독일어)
kuning, cuning(고대 고지 독일어)
둥간어
вон(von)
라오어
ລາຊາ(lā sā), ກະສັດ(ka sat), ຣາຊາ(rā sā)
라트갈레어
kieneņš, karaļs
라트비아어
karalis, ķēniņš
라틴어
rex/rēx(렉스)
러시아어
царь(car', 차르), коро́ль(korólʹ), князь(knjazʹ)
레즈긴어
король(korol’)
로망슈어
retg
로힝야어
raza
롬어
thagar, kraj, raj
král, krályo(블라흐 방언)
루마니아어
rege
vãsilje, bãsilãu(아루마니아어)
룩셈부르크어
Kinnek
뤼디아어
𐤡𐤠𐤯𐤯𐤬𐤳(battos), 𐤲𐤠𐤷𐤪𐤷𐤰𐤳(qaλmλus)
리투아니아어
karalius
마라티어
राजा(rājā, 라자)
마오리어
kingi
마인어
raja(라자), datu(다투), perabu, syah, malik, padsyah, narapati
마카사르어
karaeng
마케도니아어
крал(kral)
만주어
ᠸᠠᠩ(wang, 왕)
말라가시어
mpanjaka
말라얄람어
രാജാവ്(rājāvŭ), അരചൻ(aracaṉ)
몰타어
re
몽골어
ᠬᠠᠨ(хан, 항), хаан(khaan), ван(van)
몽어
huab tais(중앙 후이수이 방언)
미얀마어
ဘုရင်(bhu.rang), မင်း(mang:), ရာဇ(raja., 라자.)
민그렐어
მაფა(mapa)
바스크어
errege
바시키르어
батша(batša)
베네토어
re
베르베르어
agllid(실하어)
agellid(커바일어)
베트남어
vua, quốc vương()
벨라루스어
каро́ль(karólʹ), цар(car)
벱스어
kunigaz
벵골어
রাজা(raja, 라자), বাদশাহ(badśah)
보디어
kunikaz, kunikõz
볼라퓌크
hireg
부랴트어
хаан(xaan)
불가리아어
Цар(car, 차르), крал(kral)
브르타뉴어
roue
roe(고대 브르타뉴어)
빌라모비체어
kyng
사모아어
tupu(투푸)
사미어
gånågis(룰레 사미어)
gonagas(북부 사미어)
kunâgâs(이나리 사미어)
koonǥõs(스콜트 사미어)
산스크리트어
राजा(raja, 라자), केसरी(kesarī), भूपति(bhūpati)
산탈어
ᱨᱟᱡᱽ(rajᱽ)
세르보크로아트어
Цар(car, 차르)
세마이어
rajak
세부아노어
hari(하리)
소르브어
kral(고지 소르브어)
kral, kralik, krol(고어)(저지 소르브어)
소말리어
boqor
소토어
morena(모레나)
쇼나어
mambo(맘보)
수메르어, 히타이트어, 히타이트어
𒈗(lugal/rugal, 루갈)
스반어
ნეფე(nepe)
스와티어
응웬야마
스와힐리어
mfalme
nfalume(음와니어)
스웨덴어
kung, konung(고어), drott
kunungg(엘프달리아어)
스페인어
rey(레이)
ריי/rey(레이)(라디노어)
rei(레이)(아라곤어)
rei(레이), re(아스투리아스어)
rei(레이)(에스트레마두라어)
슬로바키아어
kráľ
슬로베니아어
kralj
슬로빈키아어
krȯ́u̯l, krȯl
순다어
raja
신디어
سُلطانُ(sultānu), بادشاھ
싱할라어
රජ(raja, 라자)
아람어
מַלְכָּא(malkā, 말카)(유대-바빌로니아 아람어)
ܡܠܟܐ(malkā)(시리아어)
아랍어
ملك(malik, 말리크), سلطان(sulṭān, 술탄)
ملك(malek)(이집트 아랍어)
مَلِك(malik)(히자즈 방언)
𐩣𐩡𐩫(mlk)(고대 남아랍어)
아르메니아어
թագավոր(tʿagavor), արքա(arkʿa)
թագաւոր(tʿagawor), արքայ(arkʿay)(고대 아르메니아어)
아바르어
паччахӏ(pač̄aḥ)
아삼어
ৰজা(roza)
ৰাজা(raja, 라자), ৰাই(rai)(초기 아삼어)
아이누어
aekotenishpa/アエコテニシパ
아이마라어
malku
아제르바이잔어
kra, məlik, şah, padşah
아통어
raja(라자)
아이티 크레올어
wa
아이슬란드어
konungur, kóngur
아일랜드어

ree(맨어)
rìgh(스코틀랜드 게일어)
brenin(웨일스어), brenhyn, brenhin, breenhin(중세 웨일스어)
mytern, my'tern, myghtern(콘월어)
아파치어
nantʼán(서부)
알바니아어
mbret, mret(게그 방언)
암하라어
ንጉስ(nəgus), ንጉሥ(nǝguś, 느구스)
ንጉሥ(nəguś)(그으즈어)
에르자어
инязор(injazor)
에스토니아어
kuningas, kunn(속어)
에스페란토
reĝo(레조)
rejulo(이도)
에웨어
fiaŋutsu
영어
king(킹)
keeng(스코트어)
cyning(고대 영어)
kyng, king(중세 영어)
오리야어
ରାଜା(raja, 라자)
오세트어
паддзах(padʒax)
오지브웨어
ogimaa, gichi- ogimaa
오크어
rei
왈롱어
rwè, roy(고어)
요루바어
oba
우가리트어
𐎎𐎍𐎋(mlk)
우즈베크어
qirol, shoh, korol, podshoh, xon
우크라이나어
коро́ль(korólʹ), цар(car, 차르)
원시 인도유럽어
rḗḱs(렉스)
월로프어
bûr
위구르어
پادىشاھ(padishah), شاھ(shah), خان(xan)
유픽어
uss'utali
이디시어
מלך(meylekh), קיניג(kinig)
이보어
eze
이집트 상형문자
nswt(/nijˈsiːwat/ → /niˈsiːwaʔ/ → /ʔənˈsiːʔəʔ/ → /ʔənˈsiːʔ/)(상이집트 왕), bjtj(/biˈjatVj/ → /biˈjatVj/ → /βəˈjat(ə)/)(하이집트 왕), ḥqꜣ m(/ħɛkɑ/, heqa)
이탈리아어
re(레)
rré(나폴리어)
re(레), rei(사르데냐어)
re(레)(프리울리어)
re(레), reghi(시칠리아어)
인테르링구아
rege
일로카노어
ari(아리)
일본어
((오), 国王(こくおう(kokuō), 王様(おうさま(ōsama, 오우사마)
자바어
prabu, raja(라자), ratu
haji, ratu(고대 자바어)
저지 독일어
König, Keunig
조지아어
მეფე(mepe, 메페), ხელმწიფე (xelmc̣ipe)
მეუფე(meupe)(고대 조지아어)
좡어
vuengz
줄루어
inkosi 5 or 6
중국어
(wáng, 国王(guówáng, 國王(guówáng(정자)
체로키어
ᎤᎬᏫᏳᎯ(ugvwiyuhi)
체와어
mfumu
체첸어
ӏела(ʿela), паччахь(paččaḥ)
체코어
král
추바시어
король(korolʹ), патша(patša)
카자흐어
хан(xan), король(korolʹ), патша(patşa)
카탈루냐어
rei(레이)
칸나다어
ರಾಜ(rāja, 라자)
캄베라어
maramba
캅카스 알바니아어
üwx
케추아어
qhapaq
코모로어
mfalume 1 or 2(은주아니 코모로어)
코사어
inkosi 5 or 6
콥트어
ⲃⲁⲥⲓⲗⲉⲩⲥ(basileus), ⲟⲩⲣⲟ(ouro)(보하이라 방언)
ⲃⲁⲥⲓⲗⲉⲩⲥ(basileus), ⲣⲣⲟ(rro)(사히디 방언)
쿠르드어
شاھ(şah), مەلیک(melîk)(소라니 방언)
paşa, qiral, melik, şah(쿠르만지 방언)
쿠순다어
moŋ
크메르어
ស្ដេច(sdac), ព្រះមហាក្សត្រ(prĕəh mĕəʼhaaksat), ហ្លួង(luəng), ជននាថ(cŭən niət), រាជ(riəc), រាជា(riəciə)
크난어
קרל(krl)
키르기스어
король(qorolʹ), падыша(padışa), кан(qan)
키쿠유어
mũthamaki 1
타밀어
மன்னன்(maṉṉaṉ), அரசன்(aracaṉ), ராஜா(rājā, 라자), கோ(kō)
타바사란어
паччагь(pač̄ah)
타오스어
taláyna
타타르어
король(qorol’), патша(patşa), падишаһ(padişah)
태국어
ราชา(raa-chaa), กษัตริย์(gà-sàt), ราช(râat)
터키어
Kral, Padişah
𐰴𐰍𐰣(qǧn¹ /qaɣan/)(고대 터키어)
شاه(şâh), قرال(qrāl), قرال(kral), ملك(melik)(오스만어)
텔루구어
రాజు(rāju)
토하라어
wäl(토하라어 A: 아그니 방언)
walo(토하라어 B: 쿠차 방언)
투르크멘어
şa, patyşa, korol
투바어
хаан(xaan)
티그리냐어
ንጉሥ(nəguś)
티베트어
རྒྱལ་པོ(rgyal po)
འབྲུག་རྒྱལ་པོ(드루크걀포)(종카어)
파슈토어
سلطان(sultan, 술탄), شاه(šāh), پادشا(pādšã)
팔리스크어
rex
팔리어
भूपालो(bhūpālo)
펀자브어
ਰਾਜਾ(rājā, 라자)
페니키아어
𐤀𐤃𐤍(ʾdn), 𐤌𐤋𐤊(mlk, 말리크)
페로어
kongur
페르시아어
شاه(šâh, shah(ʃɑː), 샤), پادشاه(pâdšâh, pâdešâh), کیا(kia), تاجور(tāǰvar)
шоҳ(šoh), подшоҳ(podšoh)(타지크어)
𐏋(XŠ /xšāyaθiya/)(고대 페르시아어)
𐭬𐭫𐭪𐭠(mlkʾ /šāh/)(중세 페르시아어)
포르투갈어
rei
rei(갈리시아어, 미란다어, 카보베르데 크레올어)
alê(앙골라 크레올어)
alé(안노본 크레올어)
re(크리스탕 크레올어)
arê(프린시페 크레올어)
프랑스어
Roi(후아, 루아)[26]
re(코르시카어)
roy(고대 프랑스어)
roi, rei(중세 프랑스어)
rwa(루이지애나 크레올어)
lerwa(세이셸 크레올어)
hué(카니푸라 크레올어)
폴란드어
król
프리지아어
kening(서프리지아어)
köning(북프리지아어)
Köönich(자터란트 프리지아어)
피지어
tui
핀란드어
kuningas
필리핀어
datu(다투)
하와이어
aliʻi, mōʻī
하우사어
sarki
헝가리어
király
훈스리크어
Keenich
히브리어
מסלם(mélekh)
힌디어
राजा(라자, rājā), बादशाह(bādśāh), पादशाह(pādśāh), सुलतान(sultān, 술탄), सुल्तान(sultān, 술탄), शाह(śāh), भूपति(bhūpti), केसरी(kesrī), मलिक(malik), पातशाह(pātśāh)

자세한 내용은 군주의 칭호 문서 참고.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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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고대 국가들이 비슷했다. 고대에서 도끼, 낫, 칼 등은 '언제든지 나의 목을 벨 수 있는자', 즉, 언제든 나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자라는 의미였다.[2] 사람이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이라는 설, 士 자의 분화자 설, 土 + 一/上 설 등. 사실 王 자의 음이 도끼의 상형문자인 戉(도끼 월) 자와 음이 멀어서 도끼의 상형자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3] 사실 영국왕은 그 전에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잠시 없었던 적이 있긴 하다.[4] 엄밀히 따지자면 동양에선 대공이라는 작위가 없기에 제후왕인 친왕이나 군왕은 서양의 대공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에도 보헤미아 국왕처럼 왕이 황제 아래의 제후인 경우가 드물지만 있기는 했기 때문에 대공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힘들다.[5] 《위략》에 나오는 내용으로 어디까지나 중국적 사고방식, 즉 자신들이 천하에 중심이고, 자신들의 통치자가 온 천하를 통치하는 天子라는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이 연의 칭왕을 따라서 칭왕을 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하게 존재하지만이는 전란에 유입된 중국적 문화나 인원들 흡수차원과 보다 강화된 통치자의 위상 반영, 그 이전에 스스로 侯라고 하였을 가능성은 거의없다.[6] 청나라 애신각라씨의 봉작 화석친왕-다라군왕-다라패륵-고산패자-기타 등등에서 황자는 대체로 기본이 다라패륵이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청나라의 봉작은 세습되면서 등급이 떨어졌다. 사실상 방계가 다라군왕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편이었다.처음 갈라진 조상이 친왕이거나 군왕이였고, 대를 이어서 공을 세웠다면 모르지만....[7] 주로 명나라가 그랬다. 명 말기에는 친왕은 28명에 불과했지만 군왕이 무려 600여명에 달하여 그 들에게 지급해야 할 녹봉도 주지 못할 정도로 제후왕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8] 다만 영락제는 명 건국초 여전히 국가의 주적으로 잔존하던 원나라 잔존 세력(북원)을 견제하던 북방 사령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특이적으로 군사력이 강대했다. 애시당초 황제들이 바보들도 아니고 다른 아들들에게 자기 후계자를 축출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일부러 남겨줄 리가 있을까.[9] 청조의 경우 황족포함 모든 만주족이 북경을 포함한 전국 주요 대도시에 소재한 팔기주방 내에서 거주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지배민족인 만주족이 한족을 사사로이 괴롭히는것을 막으려는 목적과 한족과 섞여살며 동화되지 않은 팔기의 군사조직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애당초 북경의 옛 '여(呂)'자 모양 성벽중 자금성이 있는 위쪽 작은 직사각형 지역이 만주족 전용 주거지역이었다.[10] 그런데 고려해봐야 할 것은 周代의 중앙 고위관료들은 제후들 중에서 임명되었다. 따라서 三公의 지위에 오른 제후가 제후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과 동등되게 취급되었다는 것이다.그래봤자 봉건제 안에서 제후들은 각 小國의 군주들로 일정한 稅만 납부하였다면 서양의 예와는 다르지만 거의 자율통치였으니...[11] 예를 들자면 한나라의 위왕 조조가 있다.[12] 예를 들자면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나 공친왕 혁흔이 있다.[13] 예를 들자면 해왕 등등이 있다.[14] 고구려, 신라: 태왕(太王)·대왕(大王)|발해: 가독부(可毒夫)|고려: 성황(聖皇) 등.[15] 다만 몽골 간섭기를 지나 조선이 건국되고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됨에 따라 대왕(大王)의 칭호는 독자적인 해동 세계의 천자라는 위상을 상실했으며 그저 중국 황제의 제후라는 수직적 관계가 견고해졌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소위 황제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16] 신라의 갈문왕(葛文王)[17] 백제의 멸칭인 '백잔' 의 주인이라는 뜻.[18] 사후 추증.[19] 따지고 보면 명나라나 청나라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 중 조선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지극히 드물었다. 러시아와 인도는 청대에 들어 겨우 접했고 그나마도 중국의 직접 통치력이 약하다 보이는 몽골, 티베트 방면에서 접했다.[20] 신성로마제국은 독일 왕국, 아를 왕국, 이탈리아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로마왕은 독일 왕국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사실상의 황태자였다. 보헤미아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독일 왕국의 제후국으로 같은 왕국이긴 했지만 보헤미아 국왕은 로마왕(독일왕)의 신하였다.[21] 중원고구려비와 봉평신라비에서 등장. 마립간의 다른 표기로 보기도 한다.[22] 사비회의 당시 참석자 기록을 봐선 가야 안에서 크고 강한 나라의 임금은 왕(王), 작은 나라의 임금을 한기(旱岐)로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23] 순우리말[24] 부족장도 뜻한다. 베르킨게토릭스, 둠노릭스 등 고대 갈리아의 부족장의 이름은 릭스(rix)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라틴어로 왕을 뜻하는 rex(렉스)와 마찬가지로 원시 인도유럽어로 왕을 뜻하는 rḗḱs가 어원이다.[25] 중세 그리스어에서는 황제도 뜻한다. 현대에서는 역사 용어로만 쓰인다.[26] 실제 발음은 후아에 가깝다.[27] NHL의 팀.[28] NBA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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