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트베스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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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제국 초대 국왕
스벤 트베스케그
Sveinn Haraldsson tjúguskegg


파일:sweyn i.jpg

별명
갈고리수염 스벤
출생
963년 4월 17일
덴마크 왕국
사망
1014년 2월 3일 (향년 50세)
잉글랜드 링컨셔 게인즈버러
재위 기간
덴마크 국왕
986년 ~ 1014년 (약 28년)
노르웨이 국왕
999년 ~ 1014년 (약 15년)
잉글랜드 국왕
1013년 ~ 1014년 (약 1년)
전임자
하랄 1세 블로탄
후임자
하랄 2세 (덴마크 국왕)
해럴드 1세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 2세 (노르웨이 국왕)
부모
아버지 : 하랄 1세 블로탄
배우자
스토라다, 시그리드, 군힐트, 시비엥토스와바
자녀
크누트 대왕, 하랄 2세, 에스트리드 스벤스다테르

언어별 명칭
고대 노르드어
Sveinn tjúguskegg (스베인 튜구스케그)
고대 영어
Sƿegn (스웨인)
덴마크어
Svend Tveskæg (스벤 트베스케그)
노르웨이어
Svein Tjugeskjegg (스베인 튜게셰그)
영어
Sweyn Forkbeard (스웨인 포크비어드)

1. 개요
2. 일생
2.1. 963년, 출생
2.2. 980년대,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왕위에 오름
2.3. 995년 36세, 노르웨이의 반란
2.4. 1000년 41세, 노르웨이의 탈환
2.5. 1003년 ~ 1004년 44세 ~ 45세, 잉글랜드 원정
2.6. 1013년 54세, 잉글랜드 대원정
2.7. 1014년 55세, 사망
3. 자손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
4.2. 《바이킹스: 발할라》



1. 개요[편집]


덴마크 크누트 왕조의 3대 국왕, 노르웨이 크누트 왕조의 2대 국왕, 잉글랜드 크누트 왕조의 초대 국왕. 크누트 대왕의 아버지이며 갈고리수염(Tveskæg, forkbeard)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2. 일생[편집]



2.1. 963년, 출생[편집]


하랄 1세 블로탄의 둘째 아들로 963년에 출생했다.


2.2. 980년대,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왕위에 오름[편집]


부왕 하랄 1세는 자기 맏아들을 계승자로 낙점하고, 장남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차남인 스벤을 죽이려고 했다.[1] 위기에 놓인 스벤은 980년대에[2]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이 성공해서 부친 하랄 1세는 독일 지역으로 망명했으며, 승자가 된 스벤은 986년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다.[3]


2.3. 995년 36세, 노르웨이의 반란[편집]


스벤의 즉위 당시 노르웨이는 실질적으로 호콘 시구르손의 통치를 받았으며, 스벤은 명목상의 왕이었다. 하지만 995년 올라프 트뤼그바손이 노르웨이를 침공해 호콘 시구르손을 죽이고, '올라프 1세'로 왕위에 올랐고, 스벤은 이에 맞서 살해당한 호콘의 아들이었던 에어리크, 스웨덴 국왕 '올로프 솃코눙'[4] 등을 모아 동맹군을 결성했다.


2.4. 1000년 41세, 노르웨이의 탈환[편집]


스벤은 다시금 노르웨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서기 1000년 올라프 1세와 전쟁을 벌였고, 스볼데르 전투에서 올라프 1세를 무찌르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뒤 노르웨이 왕위를 회복했다. 스웨덴의 왕 올로프 솃코눙은 자신이 받은 영토를 사위였던 스웨인 호콘손[5]에게 양보해 에어리크, 스웨인, 스벤이 분할통치를 했지만 명목상 에어리크와 스웨인은 스벤에게 충성했다.


2.5. 1003년 ~ 1004년 44세 ~ 45세, 잉글랜드 원정[편집]


한편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군사 압력을 가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는데 1002년 봄에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 2세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002년 11월 13일 '성 브릭티우스' 축일에 데인인 정착민에 대한 학살[6]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1003년 ~ 1004년에 걸쳐 잉글랜드에 대해 대대적인 원정을 실시했다. 그 후 스벤은 잉글랜드와 10여 년간, 간헐적인 침략과 돈을 받고 일시적으로 하는 휴전을 거듭했다.


2.6. 1013년 54세, 잉글랜드 대원정[편집]


그러던 중 1013년에 아예 잉글랜드 왕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했는데 이 원정에서 잉글랜드군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잉글랜드 전체의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스벤에게 패배한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망명했다.


2.7. 1014년 55세, 사망[편집]


이 승리로 스벤은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에 걸친 대 제국의 초석을 닦게 되었지만 이듬해인 1014년 2월 잉글랜드 링컨셔의 게인즈버러에서 급사했다. 무덤은 로스킬레 대성당 또는 룬드 대성당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7]. 그의 사망 이후 올라프 2세에 의해 노르웨이에서 단독 통치가 행해지면서 제국에서 이탈하게 되었고, 노르망디로 도망가 있었던 애설레드 2세도 잉글랜드 왕위에 복귀하면서 일시적으로 제국은 축소되었지만 차남 크누트에 의해 재정복이 이루어졌고, 104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지되었다.

스벤은 부친 하랄 1세 블로탄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부친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다만 본인의 아픈 경험 때문인지 장자상속제를 고집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사후 덴마크는 장남 하랄 2세가, 잉글랜드와 노르웨이는 차남 크누트가 차지하게 되었다.[8]


3. 자손[편집]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편집]


성우: 스고 타카유키

잉글랜드 왕국이 돌연 바이킹 이주민들을 기습해 몰살하고 그 희생자들 중에는 자신의 여동생[9]이 끼어있자 이를 명분으로 수만 명의 원정군을 파병해 잉글랜드 정복 전쟁을 일으킨다. 약 10년 만에 잉글랜드 정복 완료를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두 아들로 인해 차기 후계 문제로 국론을 분열되자 이중 장남 해럴드가 더 후계자로 걸맞다고 판단, 차남 크누트를 죽이려 한다.[10]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현군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직접 손을 쓰기보단 자연스러운 사망[11]으로 보이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지만 그 와중에 크누트는 각성해 버렸고 이 때문에 조금은 서두르다가 크누트의 신하인 아셰라드의 역린을 건드려 살해당한다.[12][13]

이후 크누트에게 목 잘린 채로 환영으로 등장한다. 크누트가 왕으로서 외도적인 일을 벌일 때마다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과 닮아간다고 비웃는 건 덤.


4.2. 《바이킹스: 발할라》[편집]


바이킹스》의 후속작《바이킹스: 발할라》에서도 등장한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학살에 복수하기 위해 침략하는 것을 본인이 아닌 아들 크누트가 행하고,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지도 않는다.

대신 크누트가 덴마크에 침입한 벤트족을 무찌르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그동안 잉글랜드의 섭정을 맡는데, 이때 잉글랜드 귀족들에게 머시아를 두 번 정복했다던가 요크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왕을 놓쳤다던가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아 잉글랜드 원정 자체는 했었던 설정인듯.

아들과는 달리 공정하지도, 온화하지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다분히 폭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요크 전투에서 애설레드 2세를 구한 공로로 웨식스 영주가 세금을 면제받았다고 말하자, 후에 조용히 불러내 죽인 뒤 간신 고드윈을 새 웨식스 영주로 임명한다.[14]

이후 덴마크 왕비 앨프기푸가 잉글랜드 왕비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충성하는 함대로 스벤을 협박하자, 처음에는 그녀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 크누트의 새 아내 노르망디의 엠마를 추방한다.

하지만 이는 앨프기푸가 숨겨놓은 함대를 찾아내기 위해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었고, 엠마가 잉글랜드를 보는 사이 노르웨이의 반역자 왕 올라프[15]를 몰아내기 위해 노르웨이로 출정하면서 시즌 1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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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게르만족은 부왕이 사망할 경우, 자식들이 재산과 토지를 나누어 상속받았기 때문에 영지가 쪼개지고 계승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하랄 1세는 자신이 죽은 이후 혼란을 막기 위해 첫째 아들에게 모든 권력과 영지를 물려주려고 했으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차남인 스벤이 제거되어야 했다. 하랄 1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도 장자상속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스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2] 하랄 1세가 덴마크에 침입한 독일의 게르만족을 물리친 983년 이후로 추정된다.[3] 이 때 하랄 1세의 첫째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4] 일설에 따르면 스벤은 올로프의 어머니 시그리드 스토라다와 결혼했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5] 에어리크 호콘손의 형제[6] 만화《빈란드 사가》2권 초반에 묘사되었다.[7] 룬드는 현재 스웨덴 영토인데, 17세기까지는 덴마크 영토였다.[8] 다만 크누트 대왕 항목에 있듯이 하랄 2세가 먼저 사망하게 되면서 덴마크도 결국 크누트의 차지가 되었다.[9] 한마디로 덴마크 왕족이다.[10] 사실 크누트가 처한 상황은 스벤이 실존 역사에서 980년대,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상황과 아주 판박이다. 부친인 하랄 1세도 장자를 밀어주기 위해 스벤을 죽이려 했다.[11] 전장에서의 전사라든지...[12] 이전에 스벤 왕을 본 아셰라드의 평가로는 스벤은 지쳐있는 왕이라고 방심했었는데, 스벤이 정복 전쟁 후 논공행상을 한 후에 우연찮게 웨일스를 공략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말을 들은 노르드인웨일스인혼혈인 아셰라드는 크게 당황한다. 사실 스벤 왕은 웨일스에는 관심 없지만 "크누트를 죽여주면 웨일스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아셰라드에게 크누트냐 웨일스냐 딜을 넣다가 "웨일스의 특산물은 노예 뿐이라지? ㅋㅋ"라고 쓸데없는 말을 한 덕에...[13] 다만 아셰라드는 미친 척을 하고 스벤 왕을 죽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기 목숨으로 미친 척 스벤 왕을 죽이면 덴마크 왕국에 혼란이 생겨 웨일스를 공략할 상황이 아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4] 실제 역사에서 그를 웨식스 백작에 임명한 건 아들 크누트다.[15] 노르웨이의 반역자 왕 올라프 1세를 모티브로 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