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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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틸다
(Matilda of England)
지위
신성 로마 제국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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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1110년 7월 25일
재위
1114년 1월 7일 - 1125년 5월 23일

잉글랜드 여군주(Domina Anglorum) 파일:800px-Arms_of_William_the_Conqueror_(1066-1087).svg.png (논란)
1141년 4월 7일 ~ 1148년[1]
출생
1102년 2월 7일 잉글랜드 왕국 윈체스터 또는 서튼 코트니
사망
1167년 9월 10일 (65세) 프랑스 왕국 루앙
배우자
파일:800px-Holy_Roman_Empire_Arms-double_head.svg.png 하인리히 5세
(1114년 결혼/1125년 사망)
파일:800px-Arms_of_Geoffrey_of_Anjou.svg.png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
(1128년 결혼/1151년 사망)
자녀
헨리 2세, 조프루아, 기욤
부왕
헨리 1세
모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Lionrampant.png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형제
윌리엄 애셀링

1. 개요
2. 생애
3. 재혼



1. 개요[편집]


영어: Matilda (마틸다)
프랑스어: Mathilde (마틸드)
독일어: Mathilde (마틸데)
라틴어: Mathildis (마틸디스)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이자 잉글랜드 왕국의 여성 군주. 왜 국왕이 아닌지에 대한 이유는 후술한다.


2. 생애[편집]


신성 로마 제국 잘리어 왕조의 마지막 황제 하인리히 5세의 황후이기도 했으며 모드 황후라고 불리기도 했다. 헨리 1세는 적통 왕위 계승자인 아들 윌리엄이 사고로 익사하자 과부였던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 플랜태저넷과 결혼시킨 뒤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성 계승을 두고 귀족들이 반발하여 헨리 1세 사후 왕위는 마틸다의 사촌 스티븐이 강탈하였다. 이 때문에 무정부시대라는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으나[2] 1140년대까지 이어진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스티븐과 평화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마틸다는 스티븐의 왕위를 인정하되 후계자는 그녀의 아들 헨리 2세가 잇도록 하였다.

그녀를 여왕으로 인정할지 말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정확히 말해 마틸다는 내전의 혼란 와중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기에 여왕을 자칭하지 않았다. 대신 잉글랜드의 국왕(Rex Anglorum)을 칭하는 스티븐에 대항하여 라틴어 Domina Anglorum을 칭했는데 이는 '잉글랜드의 여군주'(Lady of England)라는 뜻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왕 문서를 참조.

그녀의 어머니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는 모계로 웨식스 왕조의 피를 물려받았기에[3] 그녀도 앵글로색슨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이었다. 이 피는 마틸다의 장남 헨리 2세와 그 이후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들에게 계속 계승되었고, 프랑스 왕 성 루이 9세에게까지 이어졌다. 즉, 현재 영국 왕실에도 알프레드 대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


3. 재혼[편집]


마틸다가 연하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4]의 외모에 반하여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했다는 설이 퍼져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마틸다는 이 결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부왕 헨리 1세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략결혼한 것이었다. 마틸다와 조프루아 5세의 결혼 생활은 애정이 배제된 철저한 정치적 결합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랬으며 부부관계도 좋지 않아 다투며 별거하는게 예사였다. 마틸다에게 중요한 건 부친도 남편도 아닌, 오직 권력과 후손뿐이었다. 아들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현명한 어머니로서의 조언을 많이 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는 비록 콩가루 집안이었을 망정 능력은 좋았고, 아내 복도 있어서 프랑스내에 넓은 영지를 획득하고 슬하에 많은 아들을 낳았다. 물론 마틸다의 손자들 중에 후손을 남긴 건 존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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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잉글랜드에서 군림한 기간은 1141년 4월 7일 ~ 1141년 11월 1일.[2] 이 내전 동안 마틸다는 잉글랜드 본토의 여왕이라기보다는 잉글랜드 왕이 가진 프랑스 영지에서의 여왕에 가까웠다.[3] 에드거 애설링의 누이이자 방랑자 에드워드의 딸인 웨식스의 마거릿[4] 별명이 미남백작일 정도로 당대에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으며, 아내인 마틸다보다 무려 11살 연하였다. 그러나 마틸다는 자신이 잉글랜드 국왕의 추정상속인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백작에 불과한 어린 남편과의 결혼을 불만스러워했다. 이로 인해 조프루아와 마틸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부부는 종종 격렬한 다툼 끝에 오랫동안 별거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도 후계자 생산을 등한시하지 않고 헨리 2세를 포함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