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교전국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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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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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공군 일류신 Il-76 격추 사건 ·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 민스크 협정) · 2015~2020년 ·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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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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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요
원인 · 반응 · 전선 · 교전국 상황 · 변수 · 논란
경과
경과 요약 · 침공 이전(쿠데타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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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우크라이나
2.1.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2.2. 구심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정치력
2.3. 미국의 개입
2.3.1. 정보 제공
2.3.2. CIA의 우크라이나 활동
2.4. 외부 지원
2.5. 러시아의 일부 점령
2.5.1. 반론
3. 러시아
3.1. 고전하는 러시아군
3.2. 러시아의 문제
3.2.1. 대비하지 못한 장기전
3.2.2. 러시아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
3.2.3.1. 반론
3.2.4. 구조적 문제
3.2.5. 부족한 보급
3.2.6. 병력 부족
3.2.7. 지휘 체계 혼란
3.2.8. 부족한 명분
3.2.9. 출신 차별과 억지 동원으로 떨어진 병사들의 사기
3.2.10. 러시아 자국내에서의 반발
3.2.11. 러시아의 우방국
3.2.12. 민사작전의 실패
3.2.13. 전쟁 범죄
3.2.14. 러시아의 기만전술의 실패
3.2.15. 점점 적어지는 선택지
3.2.16. 러시아(푸틴)의 고집불통
3.3. 외부 지원
3.4. 무너지지 않은 러시아 경제
3.4.1. 반론
3.5. 러시아의 역제재 (자원 무기화)
3.6. 동부 전선 상황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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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언론의 예상 공세 축선






실시간 전황 지도[실시간]
{{{-2 우크라이나 영토
러시아에게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
현재 전선
침공 초기 전선
러시아군 및 분리주의 반군의 진군
💥 폭격 및 포격}}}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상황에 대해서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우크라이나[편집]



2.1.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편집]


2014년부터 8년간 돈바스 전쟁을 꾸준하게 겪은 우크라이나군의 실전 경험은 우크라이나군에게는 희망적인 점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오거나 의용군으로 위장해 참전하던 러시아군과 맞붙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돈바스 전쟁 때와는 달리 러시아군은 본토의 기계화 군단과 압도적인 항공전력을 동반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맹렬하게 저항하며 침공한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서방 국가들이 직접적으로는 파병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전쟁 물자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 대전차 미사일들도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지원 물자들이 우크라이나로 들어오고 있다.#

또한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Tu-22M 폭격기나 Tu-95 등의 중폭격기를 투입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인지라 진격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3월들어 제공권은 러시아군이 장악한 것으로 보이며, 그 이유는 3월 4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NATO는 확전을 우려해서이 요구를 거절했다.

남오세티야 전쟁 때 단 4일 만에 러시아에게 항복한 조지아하고는 달리 개전 2주째인 3월 9일에도 전황이 마무리되려는 조짐이 없어지면서 남오세티야 전쟁보다는 장기전이 될 것이 확정됐다. 이 때문에 반년 전 탈레반 공세 시기 전투다운 전투 하나 못해보고 허망하게 무너진 아프가니스탄군과 비교하며 응원하는 반응이 많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제59 기계화여단이 미콜라이우를 방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59 기계화여단은 전쟁 전에 크림 반도의 국경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올레쉬키 마을 외곽에서 훈련 중이었는데,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제대로 된 병력이 소집되지 못했다. 절반 가량의 병력들이 키이우의 방어를 위해 떠나있었고, 나머지 절반도 간신히 모였기 때문. 3~4일 전부터 이러한 징후가 있었다면 참호선을 파서 대항하였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59 기계화여단 소속 스테첸코 대령은 초기의 전투에서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언급했다.[1] 러시아 공군의 공습으로 적지 않은 기갑전력을 상실한 데다가 크림 반도에서 쏟아져나온 러시아군이 해당 방면을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의 5배에 달하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이 때만 해도 59여단은 거의 전멸할 상황일 수 밖에 없었다. 항공지원도, 방공자산도 키이우로 가서 없었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공습에 의해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키이우의 참모본부와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는데, 59 여단은 앉아서 두들겨 맞기보다는 즉석에서 살아남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제59 기계화여단을 포위한 것은 VDV들이었는데 여단장은 잔존 기갑부대와 포병전력으로 후방에서 접근하던 러시아군을 돌파하였다. 이 기동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드니프로 강의 다리를 기적적으로 건널 수 있었고, 45마일 떨어진 헤르손을 거쳐 미콜라이우까지 철수해서 재편성을 마칠 수가 있었다. 스테첸코 대령은 공습에도 불구하고 전열을 굳게 지킨 전차부대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철수 과정에서 후위를 지키던 부대가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헤르손에서도 59 여단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3월 2일까지 버틸 수 있었으나 러시아군이 측면을 차단하려고 시도를 하였고,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를 버려야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기습으로 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열을 유지한 부대와 상부와의 교신이 끊기자 알아서 싸우기 시작한 지휘관, 그리고 포위망을 돌파해 수 일 동안 도시를 방어하고 이제는 노획 병기로 더 전력을 확충한 제59기계화여단은 미콜라이우 방어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확실히 돈바스 전쟁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지휘부나 일선 부대나 붕괴하지 않았고 스스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임무형 지휘체계가 굴러간다는 것을 보면 돈바스 전쟁 경험과 NATO의 교육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할 듯 하다.이하 뉴욕 타임즈 기사와 그 번역 출처

3월 24일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면서 몇몇 지역을 탈환하였다.# 당장 키이우만 해도 마카리우와 이르핀을 탈환하였고 동쪽으론 35~70km씩 몰아내었다. 키이우가 러시아군에게 제일 중요한 목표인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소식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5월 이후에는 기어이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을 주공으로 삼아 포격으로 전방을 초토화시키면서 천천히 전진하는 작계로 변경하였다. 우크라이나군은 여전히 러시아군보다 체급이 작기 때문에 포화를 직접 뚫고 진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에서 도하중이던 러시아군을 격퇴한 후 역으로 도하하거나 헤르손 방면에서 시가지로 점점 접근하는 등 체급 차이를 감안했을 때 여전히 선전하고 있다.

사실 그 외에도 전쟁 전 병력이 총 30만명이었는데, 오히려 전쟁 후에는 100만명까지 늘어나 키이우는 징병모집을 중단할 정도이다.#


2.2. 구심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정치력[편집]


대통령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2022년 2월 24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될 무렵에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공 시작과 동시에 도망가고, 행정부 수반이 사라진 우크라이나 정부는 순식간에 붕괴하여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심지어 자국인 우크라이나에서조차 러시아군의 침공 초기에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데니스 시미할 총리와 발레리 잘루즈니 육군 대장 등 그 외 우크라이나군 고위 장성 등과 함께 수도 키이우에 끝까지 남아서 러시아에게 저항하는 선택지를 골랐고, 이 선택지가 진짜 정답이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에 저항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러번의 암살 시도까지 받는 등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키이우에서 버텼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는 효과가 나오고 있다.

전시에는 지도자의 정치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비아냥[2]을 비웃듯 보란듯이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하여 우크라이나 국민들한테 용기를 주고 있다. 오히려 정치인이 아닌, 코미디언 시절에 찍었던 영상이나 개그 공연중 보였던 우스꽝스런 모습까지 좋은 의미로 다시 회자되고 있다.

2.3. 미국의 개입[편집]



2.3.1. 정보 제공[편집]


(조선일보)러시아 장성 10명 이상 전사… “미국이 우크라에 좌표 찍어줬다”
(한겨레)NYT “러시아 장군들 전사에 미국이 제공한 정보가 역할”
(중앙일보)美서 역풍 부른 입방정 논란…"美 정보 제공 자랑해 위험 초래"
(뉴시스)확전 막으려고…美, 러 표적 정보 제공 금지 지침 마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군 동향과 관련한 실시간 군사정보를 은밀하게 제공했다. 특히 러시아군 야전 사령부의 위치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데 주력했으며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공한 정보와 자국군이 도감청 등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러시아 장성을 표적으로 한 특수전에서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유리함에 크게 기여했지만 결국 그로 인해서 이번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 대 서방의 대리전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 측 정보 제공 덕분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하고, 고위 장성을 10여명 넘게 사살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역풍을 초래했는데 이러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 정보를 활용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러시아가 "미국이 사실상 러시아를 상대로 직접 군사 행동에 참여한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국 내에서는 "군사 정보 제공은 미국이 이번 전쟁에 말려들어갈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해당 보도 이후 국가정보국 국장, 중앙정보국(CIA) 국장, 국방장관 등에게 전화해 "이런 식의 무모한 정보 유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전달했다.

이후 미국에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에 대해 러시아군 수뇌부 살해·공격 도움되는 정보 금지, 우크라 국경 밖 러시아 목표물 공격 정보 금지를 하면서 두 가지 광범위한 금지령을 내렸다.[3]


2.3.2. CIA의 우크라이나 활동[편집]


정보수집부터 부패대응까지…CIA, 우크라서 '열일' 중

현재 미국 CIA는 정부수집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부패 색출, 지원 물자의 물류까지도 개입하며 활동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도 미국 CIA가 우크라이나에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고 미국 또한 러시아가 CIA의 활동을 감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서로 암묵적으로 서로간의 레드라인을 건드리지 않게 피하고 있는 중.[4]


2.4. 외부 지원[편집]


  • NATOUN 등은 직접적으로 군사적인 개입은 하지 못하고 있다.[5] 군대를 우크라이나 주변국에 배치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로 보내고 있진 않다. 우크라이나는 NATO 소속이 아닌 데다[6] NATO의 개입이 어려우며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UN 상임이사국이므로 UN군의 파병도 거부할 것이 명백하다. 예상대로 UN에서 발의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 아울러 중국 역시 반서방 진영의 일원으로서 러시아에 유리하게 행동할 것이다. 6.25 전쟁 당시엔 소련이 기권,[7] 당시 상임이사국에는 중국이 아니라 대만의 국민당 정부가 앉아있었기에 일사천리로 파병이 결정됐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거기다 미국이 우려하듯 UN이나 나토가 직접 개입할 경우 러시아를 격퇴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최악인 제3차 세계 대전이나 핵전쟁 가능성이 있어서 섣불리 개입하기가 힘들다. 외부에서 이렇게 직접적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고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도 유명무실화되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함락 될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미국 병력을 우크라이나 안에서 싸우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언, 파병에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미국 여론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부정적 기류가 매우 강한 탓에## 미국 정부가 개입하고 싶어도 못하며 이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비 지원을 통한 간접적인 지원 이상의 추가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8]

  •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예상외의 선전으로 러시아군을 물먹이자 이에 감명받은 미국과 유럽등 서방국가[9]들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에 군수물자와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일본, 대만 등 다른 서방권 아시아 국가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상황에다가 중립국의 대명사인 스위스마저 가세하였다. 그러면 우크라이나가 이들의 지원으로 저항하면서 러시아군에게 타격을 주며 장기전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NATO의 공식적인 군사지원은 없기 때문에 비공인 대리전이 되어가고 있다.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침공에 맞서서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 수호를 위한 국제 연대'를 결성하면서 외국 의용군들도 속속 입국하여 군사 훈련 및 참전을 하고 있으며 도합 3만 명 가량의 국제 의용군이 꾸려진 상황이다. 영국과 덴마크, 라트비아, 폴란드, 크로아티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의용군 지원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다만 말콤 찰머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부소장은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늘리는 것은 좋지만, 이 같은 조치가 러시아가 ‘나토의 위장 개입’이라고 주장할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이는 나토와 러시아 간의 대규모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4월 7일에 1945년 9월 2일 종료 이후 77년 만에 무기대여법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이후 현지시간 4월 27일 미국 하원을 거쳐 5월 9일 대통령의 인가까지 받았으며, 이제 미국은 원하는 만큼 전차, 전투기 등의 공세 병기를 합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10]


2.5. 러시아의 일부 점령[편집]


총평하자면 북부, 북동쪽 방면은 우크라이나군 방어 성공 및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 하였고. 남부에서는 러시아의 일부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

북부 지역은 수도 키이우 방면을 완강하게 방어하여서 러시아군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체르노빌을 점령하고 남하하여 키이우를 서쪽으로부터 포위, 지원을 차단하려는 러시아군의 진격은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며 진전이 없는 상황. 키이우 북쪽의 체르니히우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의 주력 전차부대중 하나인 제1기갑여단이 완강히 저항하며 체르니히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해내는데 성공한다.

반면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서는 러시아가 전략적 목적을 일부 달성하였다. 헤르손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헤르손이 함락되면서 드니프로 강 하구를 장악했으며 최대원전 자포리자 원전이 있는 곳이자 요충지이기도 한 자포리자 인근도 장악하였다. 그로인해 돈바스, 아조프 연안쪽으로 우크라이나의 지원이 차단되었으며 우크라이나측에겐 마지막으로 남은 건 마리우폴 하나뿐이었지만, 마리우폴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사실상 승리함으로써 결국 크림 반도에서 시작, 돈바스러시아 본토까지 이어지는 육로 회랑이 연결되었다.[11]

때문에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북부와 키이우는 갑자기 들어간 목표물이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서방 전문가들도 남부 및 동남부 해안지대를 장악해 이미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거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한 크림 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연결하는 것 역시 이번 침공의 중요한 목표라고 지적했다.(출처) 러시아로서는 양대목표중 하나(북부)는 달성이 지지부진하지만, 나머지(남부) 하나는 의도대로 간 셈.

실제로 남부의 러시아군과 북부의 러시아군의 작전 전개 속도와 진행이 다른나라 군대를 보는거 같을 정도로 크게 다르기 때문. 우크라이나군에 자주 패배하며 병참 부족까지 발생하며 심각할 정도로 졸속으로 치러지는 북부와 달리 남부의 러시아군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수월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남부는 북부 전선과 같은 병참의 어려움조차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동남부 전선의 도네치크/루한시크 반군은 패하면 우크라이나군에게 반역죄로 잡혀 죽는 상황이라 더 좋은 전과를 올리고 있기는 하다.

1차 2차 3차 협상과 4차 협상들은 주요 논의가 크게 다르다. 1,2,3차는 제대로 된 협상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 별다른 소득이 없던 1차 협상# 민간인 대피·통로 주변의 ‘휴전’이였던 2차 협상# 인도주의 통로 개설의 외엔 3시간만에 종료된 3차 협상#에 비해 14일부터 열린 4차 협상부터 본격적으로 현재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매우 중대한 사안들이 오간다. 때문에 여기서부터 중립국화, 영토 협정 등의 심각한 사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오데사가 남부 전선의 핵심축이지만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남부 장악 사안에서 다뤄지는 곳이지 러시아의 크림반도와 돈바스 연결이라는 전략 목표를 다룰 때는 상관없는 곳이다 오데사는 크림 반도와 돈바스의 육로 중간에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12]


2.5.1. 반론[편집]


이미 러시아가 기습적으로 키이우를 점령 후 승전보를 퍼뜨릴 계획이었다는 게 다 알려지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결사항전 선언으로 이게 틀어졌다는 건 기본 상식이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키이우 쪽이 오히려 조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냥 주공인 키이우가 우크라이나군의 결사항전과 병력 집중으로 망했다고 봐야지 개전 초기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력이 약했던 남부 전선이 잘 풀렸다고 그쪽을 주공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당장 푸틴이 내세운 목표가 우크라이나 친나치 정권 교체를 통한 러시아계 주민 보호와 돈바스 해방이었다. 반러 정권의 홈그라운드인 키이우 점령은 명백히 친나치 정권교체라는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위한 필수 과제이다. 애시당초 러시아가 친러 지역을 러시아에 넘기라고 발광하는 것도 결국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성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러시아군의 약진으로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밀려나 마리우폴이 포위되고 돈바스와 크림 반도가 연결된 것은 사실이나 서쪽에선 미콜라이우, 동쪽에선 하르키우와 돈바스쪽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버티면서 이쪽 전선도 고착화된 상태다. 만약에 러시아군이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견디지 못하고 철군하면 이 지역 반군 입장에서 남는건 배반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남부 우크라이나군의 진격밖에 없다.[13] 그리고 미콜라이우를 무시한 상태에서 오데사 쪽으로 무리하게 진격하고 해군까지 어떻게든 동원해서 오데사에 상륙하려는걸 보면 남부 전선의 핵심 축은 오히려 오데사 쪽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를 먹었다고 우크라이나와 협상한다고 하는 것도 사실 호도인데 나무위키 경과 문서에도 나오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은 1차 협상부터가 러시아군의 키이우 장악 실패 이후 시작된 것이고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그때부터 러시아군의 완전철수와 영토의 포기는 못한다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점령지의 민심은 완전히 반러이기 때문에 완전히 점령했다고 보기엔 어폐가 있다.#[14] 점령지의 시민들은 여전히 러시아군에 맞서 저항 및 시위중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강제로 괴뢰국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시민들의 저항으로 난항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인데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완전히 점령하는게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점령하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로썬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최우선 목표는 무조건 수도를 점령하고 해당 국가의 지도자를 잡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례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목표는 수도 한양과 지도자 선조였고, 수나라가 노렸던 것도 수도 평양을 치고 영양왕을 잡는 것이었다. 귀주 대첩의 거란군도 요격을 나온 고려군을 무시하고 바로 개경으로 내달려 현종부터 잡으려고 했다. 이런 현상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아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주공은 수도 바그다드를 치고 후세인을 잡는 것이었다. 근현대 한국의 사례로 6.25 전쟁 당시에도 북한이 가장 먼저 병력을 쏟아부은 곳은 다름아닌 서울이었으며, 현재도 북한은 틈만 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니, 장사정포나 미사일 사거리 안에 서울이 들어가니 하며 도발하고 있다. 이런 일이 왜 반복되는가 하면 개전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종전은 양쪽이 다 합의해야 끝나기 때문이다. 즉 수도점령과 지도자 신병 확보가 전쟁의 출구전략이라는 말이다.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회랑을 만드는 남부공세가 주공이고 키이우는 성동격서를 위한 조공이었다면, 3월 중순 경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제외한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제 목표를 달성했으니 출구전략을 써야 하는데 우크라이나에게 "우리가 먹으려던 너네 땅은 다 먹었으니 이제 전쟁 그만하자"라고 한다고 우크라이나가 "그래"하고 순순히 멈춰주지 않는다.

이래서 모든 전쟁이 수도와 지도자를 최우선으로 노리는 것이다. 전쟁을 끝내려면 적의 전의를 꺾어야 원하는 것을 내놓고 종전에 서 합의하게 되는데, 그 전의를 꺾는 가장 좋은 방법이 수도 점령과 지도자를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15] 일단 수도를 점령하고 지도자를 잡으면 종전 협상을 열고 전쟁으로 협박하면서 원하는 것을 최대한 가져가면 된다. 러시아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하고 젤렌스키를 잡는데 성공했다면, 젤렌스키를 종전 협상 테이블에 앉혀놓고 러시아가 점령한 남부 지역과 마리우폴을 내놓지 않으면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종전 협정에 서명하게 만들면 된다. 만약 남부 지역을 하나도 점령하지 못했더라도 크림 반도와 돈바스 지역 사이의 영토를 러시아에 이양하라고 협박해서 서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도 점령과 지도자 신병 확보를 못하면 출구전략을 마음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지쳐서 나가 떨어질 때까지 주야장천 싸워야 된다.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하지도 젤렌스키를 잡지도 못하자 우크라이나는 사기가 급속도로 올라갔고 모든 영토를 수복하기 전에는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우크라이나가 기진맥진해서 손을 들거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쫓겨날 때까지 서로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개전은 러시아가 마음대로 시작했고, 일각에서 주공이라 주장하는 남부 점령은 3월 중순에 거의 다 달성해서 전쟁을 끝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1991년 독립할 때의 모든 영토를 수복하기 전까지는 항전을 멈추지 않는다고 천명함으로써 종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23년 8월 29일 현재까지 싸우고 있다.

이렇다보니 러시아가 이번 침공에서 가장 먼저 우선시 한 일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젤렌스키가 4월 28일 타임지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개전과 동시에 러시아 공수부대가 키이우에 침투해 대통령궁 수비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고, 우크라이나측은 젤렌스키를 지키기 위해 경찰 바리케이드를 치고 집무실 문에 합판을 덧대며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도가 실패하자 바그너 그룹 용병을 보내 젤렌스키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3. 러시아[편집]



3.1. 고전하는 러시아군[편집]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각국 정부와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압승을 예상했다. 러시아군미군 다음가는 세계 2위의 강군으로 평가받았기에 상대적으로 약체인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버리는 건 손쉬운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침공과 함께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진군하자 미 국방부를 비롯한 서방 정보당국은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며칠 안에 키이우가 함락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키이우는 한달이 지나도 함락되기는커녕, 우크라이나는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드니프로, 르비우, 체르니히우 등을 사수하였으며 러시아는 마리우폴헤르손을 제외한 대도시들을 한번에 무너뜨리지 못해 진격이 지체되고 있다.

징집된 후 전쟁에 억지로 끌려온 데다 무려 4개월간 혹한기에 가까운 훈련으로 지친 러시아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 역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바로 옆나라인 데다 같은 동슬라브계 민족으로 똑같이 키릴문자를 쓰고, 자신의 조상이나 친인척이 우크라이나 출신인 러시아 징집병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러시아인이 많이 사는 것뿐만 아니라 민족 상으로 우크라이나인이어도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일부 러시아군 포로 심문 영상을 보면 왜 우크라이나로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는 포로들도 있을 정도. 징집병이란 이유 때문에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도 러시아군이 불쌍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이다.[16] 또한 징집병을 강제로 투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군도 이를 이용해서 포로로 잡은 러시아 병사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병사와 가족들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14년 크림 위기 당시에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군을 자발적으로 환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전쟁에서는 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도시이자 비교적 친러 성향이 강한 하르키우에서조차 러시아군을 환영하기는커녕 격렬하게 저항하거나 대놓고 푸틴을 조롱하는 동영상을 찍어올리는# 상황이다. 이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의 푸틴의 인기나 입지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크림 위기가 벌어지던 2010년대 초 당시에는 러시아 내 푸틴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면 2020년대 초반 시점에 와서는 러시아인들 역시 푸틴의 장기독재 및 유가폭락으로 인한 경제 침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침공 개시 후 일주일이 넘어가자, 러시아가 현재 고전하는 전세를 빠르게 타개하고 공포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민간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전략 목표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광작전이나 벨라루스 초토화작전처럼 비슷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군사작전들이 효과를 보기는커녕 더욱 거센 민중 저항을 초래했음을 생각하면 러시아가 기대한 효과를 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22년 6월 말부터 우크라이나에 HIMARS와 MLRS가 도착하면서 타격을 받자 일시적으로 작전이 중단되었고, 우크라이나가 다시 재공세를 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2022년 9월은 우크라이나의 가을 공세에 하르키우 주를 내주었으며, 현재는 우크라이나군이 재정비 및 뒤처리 절차에 나섰기에 소강되었지만 결국 패배했다.


3.2. 러시아의 문제[편집]



3.2.1. 대비하지 못한 장기전[편집]


자신의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적을 깔보는 군대는 반드시 전멸당하고 만다. -한서(漢書)


옛말로 이르길 승리를 예견할 수는 있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손자병법 군형(軍形)편


당초 서방의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가 개전 48~72시간 이내로 수도인 키이우가 함락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부의 기반시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점령하려는 실책을 범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버티고 있다.[17] 이에 따라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자신들이 원했던 압도적인 승리는 커녕 우크라이나에게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한 군사 전문가는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전쟁에서 초반 일주일만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상 SWIFT 퇴출을 비롯한 전세계의 수많은 경제 제재 역시 러시아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전쟁 5일차인 2월 28일에 루블화의 가치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18] 러시아 중앙은행은 민간의 뱅크런과 루블화의 폭락을 막고자 기준금리를 9.5%에서 하루만에 20%로 두 배 이상 인상시켰으며, 러시아 주식시장은 아예 개장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걸 뜻한다. 상세한 것은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 참조.

이 때문인지 개전 닷새 만인 2월 28일, 러시아 국방부는 핵전력 강화태세에 돌입하였다. 게다가 3월에는 극동군구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시키면서 총력전 태세에 돌입했다. 그만큼 전황을 빠르게 타개하겠다는 러시아의 절박함이 묻어나고 있다. 동시에 위성국의 군대인 벨라루스군까지 끌어들였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개입했다는 기사와 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연달아 나오는 등 아직 진위 여부는 불확실하다.

결국 1주일이 지났음에도 러시아군은 키이우는 커녕 하르키우도 함락 못 시킨 채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벌써 라스푸티차에 의해 완벽하게 고립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기갑 부대들이 수두룩하게 발견될 정도로 상황은 더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개전 초기 푸틴의 의도와 정반대로 좋든 싫든 장기전이 반쯤 확정된 상황이며, 이 경우 러시아가 입는 손해가 극심할 예정이기에 설령 우크라이나 점령을 성공하더라도 푸틴 정권의 존립 여부는 알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지속적으로 진군 및 포위중인 상황이며 아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할 전망이 보이고 있어서 쉽지 않아 보인다. 대놓고 협상 아니면 전쟁이라고 푸틴이 언급까지 하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개전 일주일 후인 3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시간이 가면 분명히 그렇다."고 답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그만큼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제네바 협약을 대놓고 밥 먹듯 위반하는 악질 군대인 러시아군 상대로 어느 지역 시민은 점령군 치하에서 고통받을 수 있고 어느 지역 시민은 연이은 포격으로 재산과 집을 잃고 난민이 될 지 모른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최종적 승리는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할 우크라이나인들의 희생 위에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꽤나 느린 속도지만 확실히 진격을 거듭하고 있는 데다 본래 점령이 어려운 도시지역을 제외하면 착실히 점령지를 넓히며 키이우를 죄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서서히 장기전을 준비하듯이 병력을 재편 및 추가투입하는 정황까지 포착되고 있기에 사실상 이번 키이우 방면 대공세를 우크라이나가 막느냐 아니냐가 상당히 중요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한 달씩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키이우쪽과 남부쪽은 우크라이나군에게 밀리고 있을 정도로 장기전 대비를 전혀 못한 상태다.

결국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북부 전선에서 후퇴하였으며. 그나마 러시아군 입장에서 다행인 건 우크라이나 측이 전차와 장갑차 등 공세 무기의 부족으로 인해 키이우 포켓에 갇히기 전인 러시아군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했고, 병력이 모두 없어지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바람에 살아남은 병력이 많다는 점이 위안일 뿐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처한 헤르손의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작정하고 다리를 타격해 끊어버리면서 약 1~2만명에 달하는 러시아군 병사들이 고립되었고, 우크라이나군은 고립된 러시아군 병력에 포격을 가해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3.2.2. 러시아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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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рупция! Коррупция! Коррупция!!"

"부패다! 부패다! 부패다!!"

- 2018년 블라디미르 푸틴 주최 국민과의 대화 방송에서 한 러시아 국민이 푸틴한테 날린 분노 가득한 SMS 문자메세지. 출처


러시아는 부패인식지수에서 보듯 사회 전반이 부패가 심한 나라다.[20] 당연히 러시아군도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군인한테는 유통기한2002년까지인 전투식량보급하고 있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전쟁 와중에도 푸틴의 측근인 실로비키들이나 러시아의 재벌(올리가르히)들은 미국이나 유럽, 중동 등으로 도망쳐 호화 생활을 유지하는 등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피지에서는 러시아 재벌이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화 요트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푸틴의 차명계좌 및 차명재산에 대한 수색도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권력자나 중앙조직의 힘이 지나치게 강했던 건 소련 시절도 마찬가지였으나, 최소한 주기적으로 서기장 등 상층부가 어느 정도 물갈이가 되고 이념적인 당위가 어느 정도 현실에도 영향력을 줬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발생했던 전면전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비교해봐도 이 차이는 두드러진다. 그 당시에도 부패는 있었고, 내부적인 문제가 많은 삐걱이는 군대였으나 적어도 그 당시는 대조국전쟁의 영향으로 군의 위상이 높았던 소련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정치장교 시스템 등을 갖추어 당 상층부가 군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에 나름 공을 많이 들인 만큼, 소비에트 군대는 위상이나 전력 면에서 지금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 계기는 소련 붕괴였다.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민영화와 정글 자본주의 시스템을 무지성으로 이식하면서 생긴 부작용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탓인데 소련 해체로 인해 한순간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군용 무기들이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영화 로드 오브 워의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라는 빅토르 부트는 이 때 우크라이나 지역의 소련제 무기들을 빼돌려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의 군벌들과 독재자들에게 무기를 팔아먹었는데, 그 돈이 한국 돈으로는 단위이고 달러로 환산해도 60억 달러에 상당하는 돈을 벌어들였다고 할 정도니, 그 당시부터 시작된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정도다. 참고로 레드 마피아의 수입원 중에서는 여전히 무기 밀매가 당당히 올라와 있는데, 미국에서 FBI의 10대 현상수배자로 낙인 찍힌 거물 마피아 사업가인 셰몬 모길레비치의 90년대 주 수입원에는 동구권 국가와 구소련제 무기 밀매가 올라와 있다. 이는 적어도 그 때부터 러시아군 물자로 안 해먹는 놈이 이상하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내부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번 이런 식으로 내부 비리가 자리잡게 되면 이를 뿌리뽑기란 결코 쉽지 않고, 결국 그것이 현재까지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번 전쟁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3.2.3. 경제 제재[편집]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동시다발적으로 경제제재를 십자포화처럼 쏟아부은 결과, 러시아 경제는 큰 피해를 입었다. 대러시아 제재의 강도가 2014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21]이라 이대로 전쟁을 지속하면 강대국 지위를 완전히 잃을 정도로 몰락할 가능성까지 있다. 전쟁은 돈이 없으면 함부로 벌이기 힘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금줄이 계속해서 끊길 경우 사회 전반적으로 대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라스푸티차가 본격화되는 계절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어 오히려 진격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내에서 고립될 위험까지 있으며 추가 파병도 더 어려워진다.

루블화의 대폭락으로 러시아 내부는 그야말로 경제적 대혼란이 벌어졌고 날이 갈수록 화폐가치가 떨어져나가자 루블화는 이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자조하며 러시아 대형 쇼핑몰에서 어떤 이가 이 루블화를 막 뿌리는 데도 그 어느 누구도 줍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대로 떨어지면 가능한 일로 과거 20세기 중반 헝가리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결국 3월 16일에 # 러시아가 첫 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심각해질 예정이다.[22] 데드 라인은 아무리 길어봤자 6월이 최대이다.

국제금융협회가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에 비해 15% 역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3월 17일에 러시아가 국채를 달러로 지불하였다.#

5월 27일이 최대 고비이며 그 이상은 러시아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장은 1분기는 어찌어찌 버텨냈으나 2, 3분기에 진짜 위기가 찾아오고 여름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경제제재를 버티려면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새로운 경제협력 파트너도 찾아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3.2.3.1. 반론[편집]

하지만 초반의 잠깐 혼란 이후에는 오히려 중국과 인도 등이 천연가스를 대거 수입하며 오히려 루블화의 가치가 올라가고 무역 흑자가 나오며 서방의 예상을 빗나갔다. 3.4 문단 참조. 이 때문에 제재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서방이 피해를 본다는 의견도 있다. 6월 27일에는 결국 러시아가 디폴트 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타격은 없었다.


3.2.4. 구조적 문제[편집]


이번 침공에서 러시아군이 편성한 대대전술단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대대전술단은 크림 반도나 돈바스 전쟁처럼 소규모 국지전 혹은 남오세티야 전쟁처럼 군사력 격차가 큰 국가를 상대로는 뛰어난 전과를 기록했으나, 이번 전쟁에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대대전술단은 타국에선 여단~사단 단위로 뭉치는 '부대'를 대대 단위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보병, 기갑, 포병 등의 여러 중대들이 집결해 하나의 대대를 이루는 방식이다. 대대전술단의 경우, 빠른 기동을 통한 공세에 적합하나 공새가 막히게 되면 상당히 취약해지는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한 탓에 혹여 우크라이나군이 기동전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경우를 상정하지 않아서 돌파에 실패한 부대는 피해를 보았다.


3.2.5. 부족한 보급[편집]


러시아군의 보급 부족으로 큰 차질을 빚고 있는데, 전쟁 전 우크라이나쪽으로 부교를 설치하고 해체하고를 반복했으며, 병사들은 장기 주둔으로 인해 목욕도 못할 처지에, 전쟁후 식량 문제가 대두되었을 정도니, 장기 주둔으로 인해 기존의 보급품은 상당분 소모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결국 이런 문제를 가진 상태로 며칠 안에 전쟁을 끝낼 것을 가정하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함에 따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곳곳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력한 기갑부대라도 연료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당장 연료가 떨어져서 작전이 차질을 빚고 있는데 보급 문제는 전쟁 수행시 중요한 부분으로 하필 라스푸티차 시기가 오고 있다는 문제도 있는데 이러면 보급이 훨씬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포장도로로만 이동하면 재블린 대전차미사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민병대에 의해 피해가 일어난다.

이런 보급 문제는 무려 소련 시절부터 지속되어 왔기에 지금 당장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64km에 달하는 기갑부대 행렬이 거의 1주일씩이나 제대로 전진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더더욱 악재가 되었다.[23] 심지어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일부 러시아 군인들에겐 유효기간이 2002년인 전투식량이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집권 시절 외무장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코지레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크렘린은 지난 20년간 러시아군을 현대화한다고 돈을 썼지만 예산중 일부가 중간에서 빠져나가 호화요트를 사는 데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보급문제는 서구 군사 전문가들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었다. 이런 시각을 잘 보여주는 인사가 토마스 블록 얀스 수석분석가이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전쟁 발발 5~10일 동안 보급선을 목표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전략이 잘 작동했다"고 말했는데 "전쟁이 발발한 첫 이틀 동안 러시아군은 목표를 신속히 확보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들이 가는 대로 일관된 최전방 방어선으로서 전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첨단 기계화 부대에 밀려 후방의 안전한 도로를 이동하는 병참부대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거기에 블록은 "러시아가 빠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장기전을 위해 병력을 재배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개전 한 달이 다 되도록 러시아군의 보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후 보급 편제 자체가 대규모 전면전에 불리하게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었다.이 문제는 소련군 시절부터 고질병이었고,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랜드리스를 받고서야 겨우 해결했던 보급 문제가 2020년대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쟁 전에 러시아군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사람들은 군사전문가가 아니었다.## 병기와 교리에만 집중한 군사 전문가들과 달리 사회, 문화적 요소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통찰.


3.2.6. 병력 부족[편집]


우크라이나군은 70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준군사조직까지 포함하면 100만에 육박하지만# 반면 러시아가 병력이 부족한 나머지 예비군은 물론 외국 군대와 심지어 수감자까지 동원한다는 소식이 있을 정도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후 2022년-2023년 우크라이나 역공세에서 대패하고 나서야 병력 부족을 깨닫고 다급하게 동원령을 내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시간에 우크라이나 전토를 장악하겠다는 욕심에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3개나 되는 전선에 분산시켜서 투입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도 목표[24]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그나마 장악한 지역들도 병력 부족으로 인해 관리를 못 하는 판이다. 공세에서는 병력의 수보다는 기갑 전력과 제병 협동 전술 여부가 더 중요하지만 우크라이나 점령과 관리가 목적이었다면 이를 수행할 보병 및 민사작전 병력이 필요한데 점령전을 하기엔 우크라이나 국가 규모에 비해 투입되는 병력이 지나치게 적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돈바스에 집중하겠다고 밝히며 하르키우나 키이우에서는 발을 빼고 있는 추세다. 사실상 3개의 전선 유지가 무리수임을 인정한 셈. 키이우 전선에 투입된 병력은 돈바스로 재배치되고 있지만 이들은 사상자가 매우 많고 장비도 대부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재편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만약 재편성없이 곧바로 밀어넣는다면 가능성은 2가지다. 러시아군 상층부가 어떻게든 5월에 전쟁을 끝내려고 영끌하며 무리수를 두거나, 부차 등지의 학살 주범으로 지목된 키이우측 부대를 일부러 사지에 몰아넣어서 싹 전사시킴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거나.

결국 현재 러시아군은 말이 공세, 혹은 역공세지 실제로는 동부지역과 크림반도 점령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는게 실제 목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스크바로부터 무언가 획기적인 구원병력이 오지 않는다면 저정도 목적이 현재의 러시아군이 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깝다.

심지어 응급처치수단 및 의무병이 없어서 부상병을 현장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병력 부족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부상병들 상당수가 제 때에 호송되어 치료받고 다시 전선에 투입되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제는 계약병과 징집병을 속성 훈련시켜 기갑장비 운용을 시키려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해지고 있다. 당연하지만 비용 대비 효율은 바닥을 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병사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해 기초적인 실수[25]로 헛되이 죽는 건 물론, 적군의 대규모 공격에 겁에 질려 그냥 도망쳐버리는 상황을 불렀다.

9월에 진행된 우크라이나의 동부 대 반격으로 러시아의 병력 부족은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특별군사작전'이라는 포장과 명분에 금이 갈 수 있는 부분 동원령까지 선포했다. 이후 9월 부분 동원령으로 모집한 병력도 모자랐는지 11월달에 러시아 내에서도 추가 동원령으로 병력을 더 확보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측은 현재 러시아가 동원병력의 절반을 최전선에 내몰아 시간벌이성 방어전에 투입하고 나머지를 러시아 본토에서 3개월간 훈련 뒤 내년초 다시 공세를 시도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러시아에서는 병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자발적 입대를 장려하는 영상을 방송하고있다.

3.2.7. 지휘 체계 혼란[편집]


일반 병력들만 피해가 큰 것이 아니라 영관급, 장성급 장교들도 큰 피해를 받고 있다. 이미 장군들만 해도 열한명이 전사하였고 영관급 장교들도 100명 넘게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은 탓에 지휘 체계에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혼란에 빠졌고 아예 분노한 병사가 전차로 지휘관을 향해 돌진한 사례도 있다.#[26]

단순히 고급 장교들이 많이 전사한 것 이외에도 작전에 투입된 부대를 총괄하는 지휘부가 무리하게 작전을 펼치고 상황을 무능하게 대처하고 있어서 러시아 병사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도청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이로 인해 명령 불복종 및 탈영까지 생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력해도 지휘 체계가 붕괴되면 전투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고위 간부들이 죄다 갈려나가면 병사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입수한 러시아의 작계를 보면 현장 지휘관들은 그렇게까지 무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후방의 상급부대들이 현장 및 일선 전투부대의 상황을 잘 모르고 무리한 작전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을 총괄 지휘할 통합사령관을 세우지 않아 각 부대간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북부전선에서 피해누적으로 철수한 4월 초가 되어서야 겨우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대장을 통합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래도 드보르니코프가 러시아군의 강점인 포격전으로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었으나 크렘린이 진격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구실로 해임하고 야전에 무능한 정치군인들로 빈 자리를 채워넣었다. 당연히 성과가 안 나와서 바꿨고, 그 바뀐 지휘관조차 며칠만에 9월 공세로 밀리니 또 해임당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3.2.8. 부족한 명분[편집]


전쟁에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도 치명적인데, 이 때문에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등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일제히 러시아를 일방적인 침략자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를 열렬하게 지지해 러시아는 순식간에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또한 러시아 자국민들도 반전시위를 하고 있는 등 러시아군 병사들은 징집병, 계약병을 막론하고 전쟁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어 사기가 매우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양국이 문화, 민족적으로 가깝고 통혼도 잦았다는 점을 들어 우크라이나를 소(小)러시아로 보는 러시아 중심 역사관으로도 같은 민족인 친척과 이웃들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는 꼴이라 옹호가 불가능한 상황. 라이벌인 미국도 베트남 전쟁에서 명분을 잃는 바람에 피만 잔뜩 봤고, 러시아의 역사를 봐도 명분 없는 전쟁을 제국 시절에 크림에서 한 번, 소련 시절에 핀란드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 했다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

게다가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라도 있으면 모를까, 크림 반도를 수 년 전에 이미 '돌려받은' 상황이라 더욱 내세울 명분이 없는 상황이고, 나치 청산이라는 애매한 명분을 가지고 우기고 있으니 자국민들도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4월 시점, 러시아의 국영매체 RIA가 우크라이나의 "나치"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기고했다. # 여전히 '우크라이나 = 나치' 주장을 열심히 외치고 있다.

여담으로 나치 논란이 있는 아조프 연대는 네오나치와 분리된 이후 나치가 아니라는 주장을 현재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깃발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어서 아조프 연대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미지수지만(논란 때문에 바꾸기는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치마냥 점령지의 시민들에 대해 압정을 펴고 있는 건 러시아 측이다. 또 따지고 보면 러시아군도 명백한 친나치 성향 사병인 바그너 그룹을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 거기다가 나치처럼 잔혹하니 러시아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인은 러시아군을 더 나치와 비슷하게 볼 수 밖에 없다.

침공 선포 전 푸틴이 한 연설에서도 명분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엄연히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에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한다든지, 탈나치화하겠다는 말을 하는 등 전혀 납득되지 않는 발언으로 말 그대로 전쟁을 위해 자기합리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로도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라크 전쟁 마냥 "우크라이나가 더티 밤을 만들던 정황이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함께 작당해 생물학 병기를 시험하고 있었다." 등 계속해서 침공 정당화를 주장하나 너무 속 보이는 주장인지라 중립국들에게조차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소련 시절에는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 동맹 형성 내지는, 자본주의 압제로부터 노동자와 피지배 민족을 구하겠다며 각 국가의 기층민을 유혹할만한 나름의 이념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는 내부적으로든, 표면적으로든, 과거의 소련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는 자본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푸틴을 비롯한 정치 실세들에 의해 우파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국가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푸틴의 독재정치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민주주의를 효율적으로 억제하며,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논리구조로 핵심지지층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러시아라는 국가의 바깥으로 나갈 경우에는 너무나 손쉽게 힘을 잃는다는 점이다.[27]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타국에 무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을 때, 부족할 명분을 채워줄 파트너쉽을 구했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내전에서는 정부군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크림 공화국을 형성할 때는 친러 세력 및 민중, 정치인들의 정치적/군사적 후원자의 형태로 개입했으며, 실질과는 별개로 대외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그 파트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는 위와 같은 선례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크림 공화국이 분리된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러시아군의 정치적 명분을 더해주거나 대신해줄 정치적 주체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전쟁을 거치면서 사실상 붕괴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전근대 사회마냥 우크라이나 제국 같은 것이 새로이 발흥하여 영토를 넓히는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반러 정서도 어디까지나 '외부(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한다' 선에서 그쳤다.

크림 공화국을 수복하겠다거나, 대러시아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세가 미묘할 뿐더러,[28] 경제/지리/문화적 상황으로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빨리 가입할 수 없었던 것은 서방국가들의 태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위협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골치 아픈 상황도 한몫했다. 즉, 우크라이나가 설령 나토에 가입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방어적 전략을 수행할지언정 선공을 취할 수 없었고,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도 전쟁의 최선두에 서는 자살행위를 국민들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 스스로가 전쟁에 나서서 선공할 의지도 생각도 없다는 것이 너무 명확하기에 국토방어 내지는 외부의 위협론을 강조하며 군사 개입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촉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군사력 내지는 국가규모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데다, 이미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토수호를 위한 선제적 타격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의 허들이 매우매우 높아져서, 사실상 이런 식의 강대국의 선빵을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 현재 국제정세이기도 하다. 양자 세계대전을 통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먼저 공격한다! 식의 프로파간다의 발흥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히 높아졌고, 국제교류 내지는 경제교류가 증대되면서 과거에 비해 경제적 이득을 위한 전쟁의 필요성이 낮아졌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의식 등이 발단하고, 전쟁의 위험성이 강조되면서 이를 일으키는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심리도 깊어졌다.

그 결과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모스크바와 핵심지역을 보호할만한 완충지를 확보한다는 지정학적인 목표, 친서방에 포섭될 수 있는 다른 국가들을 군사력으로 압박한다는 국제외교에서의 우위 같은 '현실적인' 목표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군사적 개입의 명분을 전혀 얻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것들이 크렘린에 짱박혀 있는 실로비키나 푸틴에게는 그럴싸한 명분 내지는 군사작전의 이유가 되었을지언정,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자국민들에게조차 설득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푸틴을 지지하는 러시아인들은 자국의 위대함에 다른 나라들이 알아서 허리를 굽혀주는 것을 바라지, 바로 그 위대함을 위해서 본인들이 전쟁에 말려들기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리아나 돈바스 내전 때 국민이 동요되지 않았던 것은 참전병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손쉽게 주변부의 상황을 통해서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단시간 내에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전의 타국의 내전과 달리 국가 대 국가의 전면전으로 개시되었으며, 그 규모도 러시아 성립 이후 이래 거의 최대로, 그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과 물자를 장기간에 걸쳐 잡아먹는 모양새로 진행되고 있으니, 그나마 억지로 꾸며댄 정치적 명분이 너무 쉽게 힘을 잃는 것은 대단히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외부적으로도 왜 하는지 모르겠고, 자국민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9월 우크라이나 공세 이후 주민들의 언급에 따르면 시골 소수민족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와 혈연이 없는 병사들과 달리, 진심으로 나치에게서 친척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우크라이나로 온 러시아인 병사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주민들은 그 나치가 어디에 있다는 거냐고 화냈고, 병사들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현실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냐는 혼란에 빠졌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공격을 퍼붓자 그대로 러시아로 도망쳐버렸고, 주민들은 그들이 모스크바로 돌아가 자신이 본 것들을 말하며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계산을 요구할 것이라 추측했다. 결국 전쟁 초기에 우려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셈이다.

현재 러시아는 러시아인들에게 나치를 운운하면서 세뇌하고 있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군에게 당한 피해를 러시아인 친척에게 호소해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병사들처럼 진상을 깨닫고 러시아로 돌아가 그를 알리면 점차 진상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전선에서 물러난 병사들을 다시 전선에 밀어넣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당연히 가족들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정부에게 따지고 있다.


3.2.9. 출신 차별과 억지 동원으로 떨어진 병사들의 사기[편집]


푸틴은 당초 징집병들을 분쟁지역에 보내지 않겠다 공언했으나, 이번 전쟁에선 계약병은 물론이고 징집병들까지 사전 정보도 없이 전장에 투입되었다.[29] 이들 계약병들도 대부분이 자의적으로 계약한 것이 아닌, 징집병을 추운 날 연병장 한복판에 세워놓고 간부들이 빨리 들어가고 싶으면 1년 추가 계약병 문서에 서명하라고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강제로 계약병 신분을 만든 것이다. 러시아 헌법상 징집병은 국토방위에 한정해서 운영해야 한다. 위헌 없이 해외 파병을 하려면 충분한 계약병이 필요한데, 위에서 계약병 할당량이 떨어지니 일선 부대에서는 답이 없어 강제로 차출해버린 것이다.

러시아군은 기본적으로는 징병제 국가이지만, 대학교/대학원에 재학하는 동안에는 병역이 면제되고, 이를 통해 학업을 마치고 국영기업, 국가기관에 취직하는 등의 경로를 통하면 실직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로 면제이다. 징집 상한연령인 27세까지만 버티면 그 뒤에는 자유인 것이다. 이는 각 대학교에서도 "병역 면제"를 홍보에 사용할 정도로 암암리에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당연하게도 학자금이 없거나 교육을 애초에 제대로 받지 못한 극빈층 청년들만이 징집되는 현상이 발생하며, 장교 및 지휘관으로 기용할 수 있는 지식층, 엘리트층의 청년들은 군대 물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 장교보다는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자리잡아 나아가서 군 전체의 능력이 하향평준화된다. 이렇게 너도나도 어떻게든 징집을 피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하다 보니 필요한 숫자만큼의 징집/계약을 채우지 못하는 지휘관들은 징집병들을 속이거나 협박해서라도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배치된 강제 계약병들은 심지어 장장 4개월 간 혹한기 훈련이란 핑계로 야전에서 대기하다가 투입된 것이라 현재 우크라이나 내와 그 접경지역의 러시아군은 신분을 불문하고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가 몰린 상태이다. 군필자라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러시아 내부에서 해외로 공개되는 통계들에 따르면 부랴티야, 다게스탄, 투바 등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에서 차출된 병사들의 사상자 비율이 눈에 띄게 높은 반면, 대표적인 러시아 대도시라고 할 만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등 출신의 사상률은 현저히 낮다. 이는 병사들을 출신지로 차별하여, 소수민족, 빈곤층 출신들은 우크라이나에 밀어넣는 반면, 사망자가 늘어날 경우 잡음이 발생하기 쉬운 대도시 출신들은 가려내어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30] 이 사상자들은 북오세티야나 다게스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베리아 남부의 약소 공화국들이라 지역이 가까워서 동원했다고는 설명할 수 없다.

8월부터는 푸틴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같은 대도시에서 징병을 하기 시작했는데 전쟁 초기부터 경제제재와 나토 확장으로 불만이 컸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본격적으로 푸틴의 탄핵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9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 같은 러시아의 여러 지방도시들은 사상자를 추모하기 위해 축제를 취소했지만, 모스크바는 많은 폭죽을 써가면서 축제나 벌이고 있었다.

강제로 동원된 데다가 복지, 물자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러시아군은 전투 의지가 공격자의 입장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극도로 떨어져있는 상태이다. 멀쩡한 기갑 차량과 기밀급 장비를 파괴하지 않고 퇴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초기에는 항복한 뒤 오히려 우크라이나 민간인에게 포로 대접을 받으며 우는 장면이 촬영되어 초창기의 여론전이 우크라이나 쪽의 우세로 기우는 큰 원인이 되었다. 전쟁 기간이 길어지자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공격하는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인원들까지 나타나 안 그래도 러시아 측에 불리한 여론이 더 악화되고 있으며, 원치 않는 전쟁을 치르는 무고한 러시아군 병사들까지 비난을 받고 있다.

결국 일부 러시아군의 전투 불복종 및 전역을 시도하는 일이 잦아지자 러시아 하원은 탈영병에 대한 형량을 2배로 늘리는 법안 등 군기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전투를 거부하거나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 병사, 자발적으로 항복한 병사는 최대 10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

허나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한 병사들이 알까보냐는 태도로 탈영하거나 항복하는 일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러시아 징집병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우크라이나에게 항복하고 포로가 되는게 정말로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31]


3.2.10. 러시아 자국내에서의 반발[편집]


더군다나 벌써부터 시위대를 잡아 가두는 수용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는 지경에 달했기에 우크라이나 전선은 고사하고 내부 상황부터 신경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응하여 야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사를 죄다 통폐합시켰고, 서방 국가들의 취재진 추방 및 서방 세계의 SNS까지 전면 차단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처럼 국내 반전여론이 커지자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고,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본토에서 탈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전체적인 여론에서는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이 약 59%로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 고령층의 지지율이 제일 높다. 그래도 체첸 전쟁-크림 병합 때보다는 지지율이 낮은 데다 이 지지율도 언제 내려갈지 모른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독재국가인걸 감안하면 이 조사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월 24일 기준으로 크렘린 궁화염병날아드는 사건이 발생한 걸 보면 내부 불만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푸틴의 최측근들도 사임을 표명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러시아 내부에서의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내부적인 전쟁에 대한 회의나 반감으로 인한 민심이반은 제 아무리 푸틴이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애초에 러시아 이전 소련의 성립을 가능케한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혁명기에 멘셰비키를 비롯한 개혁/온건주의자들의 지지 기반을 한 방에 날려먹고 볼셰비키가 혁명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게 한 것이 러시아 군대의 회군을 반대하고 전쟁을 지속하자고 한 멘셰비키 핵심들의 결정이었다. 또한 가까운 역사를 보자면 소련 체제의 붕괴에 큰 영향을 준 것 중 하나가 장기화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상흔인데, 심대한 경제적 타격과 더불어 체제에 대한 신뢰 상실, 참전군인들이 발생시키는 사회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전황이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이 크렘린에 있어 치명타다. 경제 재재야 악으로 깡으로 허리띠 졸라매자하며 식자재 공급망 안정에 주력하고, 여론은 조작질로 어떻게든 핵심 지지층은 붙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전황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비교적으로 약한 지지를 표명하는 러시아인들의 심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푸틴의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구난방으로 날뛰던 올리가르히들을 교통정리하면서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를 어느 정도 안정궤도까지 돌려놓았다는 점과, 산으로 가던 체첸 전쟁을 결국 승리로 이끌고, 그 뒤를 이어진 주변 국가들과의 무력 분쟁에서 상대를 꺾으면서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줬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전쟁 정치의 문제점은 결국 전쟁에서 한번이라도 박살나거나 못이기게 되면 그 열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지지율이 빠르게 추락하는 위기상황으로 직면한다는데 있다.

실제로 기세 당당하고 교활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깜빵으로 인도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지만, 후세인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손실, 걸프전의 패배였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다가, 측근들에게 암살당하거나, 나라에서 쫓겨나거나, 몰락한 독재자들은 상당히 많다. 이기면 지지율 결집과 군부를 통해 권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지거나 말아먹으면 지지기반 날려먹기 좋은 것이 전쟁을 통한 여론 결집이다. 4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여전히 접전중이고, 들려오는 소식들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들만 연거푸 터지고 있는 만큼, 전쟁으로 인한 민심이반은 최소한 빠른 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안되더라도 전쟁을 지속한 동력을 상실케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월 이전까지는 도심지 바깥의 시골 지역에서 징집함으로써 핵심계층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 주민을 징집하는 일을 피하고 러시아군이 선전하고 있다 속이며 여론을 호도할 수 있었지만, 가용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추세가 계속되면 푸틴은 결국 병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려야 하고, 이는 결국 지지의 기반이 되는 서부 도심지에서도 징집을 함으로써 푸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입영 사무소가 설치됨으로서 대도시 징집이 시작되었지만 총동원령은 아직껏 내리지 못하고 있다.

5월 5일에 이번 전쟁이 국가두마, 정부 관료 등과의 상의 없이 푸틴 한 사람의 독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덕분에 내부에서도 크게 불만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9월 공세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정도의 대패를 당하자 표면화되어 시의원들이 사임하라며 푸틴에게 압박을 가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9월 21일에 푸틴은 부분 동원령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징집 대상자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하는 만큼 러시아인도 동원령에 대한 공포로 러시아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동원령에 반발하는 시위를 하는 등 본격적으로 푸틴에 대한 내부 저항이 나오기 시작했다.


3.2.11. 러시아의 우방국[편집]


  • 중앙아시아의 우방국들은 모두 지지는 하지만 파병이나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애초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긴 어렵다. 그나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표적인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우방국들이 파병을 한다고 해도 규모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러시아 군인들도 명분 없는 전쟁에 사기가 바닥을 치는 형국에 제3국의 군인들은 더 심하게 동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카자흐스탄은 처음에는 대러시아 제재에 맞서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3월이 되어서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번복했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지원 물품을 보냈다. 추가적으로 카자흐스탄은 제2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했다.

  • 우즈베키스탄도 처음에는 러시아 측에 공감했다고 밝혔으나 입장을 번복하여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타지키스탄은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키르기스스탄 정도가 확실히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데 키르기스스탄도 입장만 표명했을 뿐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다.

  • NATO 국가들을 견제하고자 러시아와 일단 손을 잡았던 중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그래도 중국은 친러적인 행보를 꾸준히 보이고 있으며 러시아도 지원하고 있다.

  • 북한은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에게 정치,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데, 문제는 이 경우 남한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물자 지원 혹은 판매의 명분이 생기며 러시아가 대가로 북한에 기술 지원을 할 경우 빼도박도 못할 명분이 되어버린다. 러시아가 괜히 한국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으라며 협박하는게 아닌 것.#
    • 실제로 서방 국가들의 정보 공백을 틈타 두 차례 추가적인 미사일 도발[32]을 가했고, 한국의 대선 하루 전인 3월 8일에는 서해 NLL 수역에서 도발로 추정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비상출격한 참수리 승조원들에게 격퇴당하는 등[33] 그 영향력은 딱 국지도발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러시아가 북한에게 탄약을 살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NYT에서 나왔다.# 진짜라면 이게 양적인 면에서 얼마나 되는지, 질적인 면에서 쓸만하기는 한지, 관리는 제대로 했던건지 등은 의문.


  • 그나마 같이 전쟁을 수행하는 벨라루스루카셴코가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병할 수 있다고 선언한 벨라루스군의 참전이 확인되지 않는 등 손발이 맞지 않고 있으며, 괴뢰국인 도네츠크루간스크도 어째선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데다 두 괴뢰국의 병사들은 사기가 바닥나 우크라이나에 항복하는 등 사실상 러시아 혼자서 전쟁을 하고 있다.[34]
    • 3월 6일 소식에 따르면, 벨라루스는 군대조차 전쟁 하기 싫다며 파병을 거부하고 있으며 루카셴코 정부도 군대를 억지로 보냈다가 되려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말을 못 꺼내고 있다고 한다. 아예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해서 같이 싸우는 경우도 있다. 남은 이들도 단체로 병가를 내버리거나 아예 전역해버리는 식으로 반항하고 있다고 한다.
    • 3월 19일, 대사관 철수 등 참전의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상술했듯이 군대에서조차 싸우기 싫다며 뻗대는 데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아쉬운 예비대의 상당수를 국경지대에 배치하여 대비하고 있는 판국이니 함부로 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군이 침공할 시에 항복을 제안하거나 격멸시키겠다는 엄포를 놓는 것으로 봐서 벨라루스의 참전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 남오세티야는 러시아를 돕기 위해 직접 1,200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적 입지가 미승인국에 불과하고, 병력 수도 미비하여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에리트레아, 짐바브웨 등의 아프리카 일부 강성 친러 국가들도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러시아가 먹여살려야 할 국가지, 러시아를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이 나라들에서 해준 것이라고는 바그너 그룹이 왔을 때 국민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호하는 정도 뿐.

  • 그나마 시리아에서 3~4만명을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전이 간신히 끝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서 저 정도의 병력을 보냈다가 뭔 사단이 날지도 모르고, 애초에 보낼 능력이 있기나 한지도 의문. 당장에 러시아가 그냥 빠지는 걸로도 모자라 시리아의 병력들까지 수만 명을 우크라이나로 보내게 되면 시리아 북서부에서 반군을 후원 중인 튀르키예나 헤즈볼라 참수 작전을 명분으로 시리아를 공습할 각만 재고 있는 이스라엘이 곧바로 움직일 것이 자명하다.


  • 헝가리는 오르반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헝가리는 EU 소속이지만 오르반의 내각이 여러 차례 러시아를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으며, 당연하겠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적국이나 할법한 외교적 수사도 없는 발언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 때문에 자유진영 네티즌들은 전후에 헝가리를 EU/NATO에서 추방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 세르비아는 국민들이 친러 시위를 벌이는 등 러시아를 지지하며 심지어 러시아 측 용병으로 직접 참전하여 우크라이나 측 국제군단원들과 교전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막상 국가의 수장인 부치치 대통령은 비록 코소보 문제에서는 강경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사안에서는 탄약을 공급하면서 EU와의 협력을 계속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3.2.12. 민사작전의 실패[편집]


러시아군이 대대적으로 침공 중인 남부와 동부 지역의 대부분은 돈바스 전쟁이 개시된 2014년만 해도 친러 지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돈바스 통치는 통제받지 않는 군벌 갱단의 지배 하에 강도·살해·고문이 벌어지는 지옥도였고, 돈바스 주민들은 군벌에게 집, 사업체, 자동차를 빼앗기면서도 생계를 위해 그 군벌에게 종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

8년 동안 돈바스의 실태를 목도한 친러 우크라이나인들은 반러로 돌아섰으며, 러시아군이 침공해오자 자신들의 땅에서 돈바스와 똑같은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걸 막기 위해 격렬히 저항했다. 실제 반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도 시위가 일어날 정도로 현재 점령지 내부의 여론은 최악인 상황이다.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겠답시고 러시아군은 점령지에서 징집을 시도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는 건 둘째 치고 징집된 병사들이 부사관들을 프래깅해버리고 투항해버리지 않기나 기도해야 할 상황이다.[35]

이제는 돈바스 반군조차 러시아군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듯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툭하면 철수할 동안 돈바스 반군들을 고기방패로 쓰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혈맹이라 여겼던 그들에게 받은 참담한 대우에 분통이 터진 듯 일부 병력은 러시아군과 내분을 벌이기도 하였고 일부 포로는 중요 정보를 순순히 제공하기도 하였다.


3.2.13. 전쟁 범죄[편집]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무차별 폭격은 물론 군 시설도 아닌 민간 지역까지 공격한 탓에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죽거나 다쳤다. 더 나아가 원전에서 불이 났을 때 투입된 소방관에게까지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이런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는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폭로되고 있는데, 러시아군은 말로만 민간인들은 공격하지 않았다면서 정작 대놓고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

이제 러시아군은 언론인에게까지 발포를 한다.# 여론전, 정보전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기에 입막음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되려 역효과만 내고 있다. 당연하지만 러시아군이 자행하는 전쟁 범죄들은 제네바 협약을 이미 위반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물론이고 이번 사태를 더더욱 악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격렬하게 싸울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군 내에서도 이 전쟁과 민간인 폭격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일부 장병은 민간인 살해 명령에 저항하고 민간인을 지키려다 사살당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한술 더 떠, 4월 1일 이후로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이 밝혀지자 전세계가 매우 경악하게 되었다. 병사 개개인이 범죄를 일으킨것이 아니라 군대 차원에서 대놓고 부차 학살이 일어났으며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무차별 학살, 강간, 고문,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 탈환된 점령지에서 발견되었기에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막장 행위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경과/4월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그냥 사살한것도 아닌 매우 야만적인 방법으로 처형했다는 증거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 엄청난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와중에 러시아는 국가차원에서 사실이 아니라면서 강하게 반박하는 모습과 부차 학살을 허위정보로 규정하는 등 말그대로 정신나간 행위들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전세계가 전쟁초기보다 훨씬 더 분노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이미 민간인 피해만 해도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는데 이젠 대놓고 학살한 모습이 공개되었기에 반러 감정이 더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의료 시설과 노동자, 구급차에 대해 확인된 공격만 29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북한 못지 않은 21세기의 새로운 전범 국가는 물론 막장 국가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해 보였고, 2022년 4월 시점에서는 러시아는 사실상 나치 독일과 동일시될 정도로 이미지는 악화됬으며 심지어 러시아인들도 러시아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쟁범죄는 현재 러시아군이 당면한 여러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통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수준의 동시다발적이고 거대한 수준의 전쟁범죄는 크게 2가지 이유로 발생된다. 하나는 처음부터 의도적이고, 통제된 형태로 이뤄지는 체계적인 학살 및 파괴다. 이는 보통 이념/종교적 믿음/민족주의 등에 기반한 형태의 전쟁범죄로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사실상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것으로, 자국 내의 민심과 군 내부의 사기를 극한으로 결집시키고 전쟁의 정당성, 명분 등을 강화하기 위해 이뤄진다. 물론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이상 타국으로부터의 맹비난과 점령지의 대규모 혼란이 필연적으로 따르겠지만, 보통 이 정도로 막나갈 경우에는 대대적 선전과 더불어 사실상 말살 수준의 대규모 학살로 점령지 인구가 씨가 마를 정도의 타격을 입히므로, 이미 대외적 이미지 따윈 개나 줘버리고 철저히 자국민 내지는 같은 이념 및 종교 등을 공유하는 우방국들을 위한 대규모 정치적 이벤트가 되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정신나간 짓거리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 아예 전쟁범죄가 홍보되는 경우도 흔하며, 여러 기록물들이 대거 뿌려지게 된다. 이는 이념과 종교 문제가 얽힌 여러 분쟁국가 내부에서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중동 국가들의 잇따른 내전,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 아프리카내의 민족주의 학살, 동유럽의 내전 등이 있다.

반면 러시아군이 저지르는 전쟁범죄는 제대로 된 명령체계나 상부의 지시 및 치밀한 정당화 과정 따윈 전무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고, 난잡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이는 현재 지속적인 보도와 폭로에도 불구하고 크렘린을 위시한 지도부, 국영 미디어의 소극적인 대처와 정당화 및 광범위한 형태의 침묵으로 보아 결코 러시아가 바랐던 것이 아닌 현상으로 봐야 한다. 즉 적극적으로 지시한 것이 아니라 이를 딱히 막을 방법도 의지도 없이 그냥 용인되는 형태라고 보는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런 비슷한 일이 발생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병사들이 전장에서 제대로 된 급료를 받지 못한 경우였고, 이것은 현재 러시아군의 상황에도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평시에도 제대로 된 대우 따윈 일절 받지 못한채 목숨마저 왔다갔다하는 똥군기에 상시로 시달리는 러시아군인데,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가 있듯이 이들은 이를 상쇄해줄 만큼 제대로 된 사회적인 대우나 경제적 지원도 없이 낮은 급료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이런 문제는 전시에, 그리고 계급 체계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내부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상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향해 찌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방치가 되면? 볼 것도 없다. 대부분 군단 및 사단급 지휘체계에서 모반을 해서 칼끝을 본국으로 돌리거나, 아예 항복을 권유하는 적에게 통째로 군대를 가져다 바치게 된다. 역사상 최악의 전쟁 범죄로 언급되는 1527년 사코 디 로마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전장에서 용병단을 통솔할 제대로 된 리더쉽의 붕괴와 낮은 급료였다. 결국 이들의 전쟁범죄 및 약탈이 급료를 대신하게 되는 막장 상황에 치달은 것이다.

또한 현재 러시아군의 전반적인 사기가 바닥을 기는 것 또한 문제다. 일단 패전이 누적되면 일선 장교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들의 분노와 증오는 당연히 점령지 민간인들과 포로에게 향하기 마련이며, 이를 막아놓을 엄격한 통제가 없으면 당연히 전쟁범죄가 폭증한다. 잘 훈련되고 통제된 군대조차도 군율로 목을 치는 엄격한 징벌이 뒤따름에도 이를 완전히 막기 어려운데, 막장 상황인 현 러시아군이 이를 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어설프게 이를 막으려 했다간 프래깅[36]이나 대규모 군란이 발생할 가능성마저 있으니, 지휘관들도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 즉 최소한의 지휘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당장 지휘관들 목숨 때문에라도 이런 전쟁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전쟁범죄의 악순환은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용인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다-> 안하면 이상하다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의 수순을 밟게 된다. 즉 전쟁범죄가 전 부대로 확산되는 것이다.

크렘린이 이를 용인하는 것도 현재의 이런 상황과도 맞물린다. 푸틴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던간에 러시아의 핵심권력층 입장에서는 이미 어떤 식으로 발을 빼야 할지에 대한 최소한의 출구 전략은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지난 우크라이나 - 러시아의 전쟁외교를 통해 드러났다. 단지 푸틴을 위시한 최상위 레벨의 지도자들과 현실 판단 안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드높을 뿐. 그렇다면 크렘린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당연히 현재 사실상 러시아군의 전력을 쏟아붓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장의 핵심 지휘관들의 연합 및 단결을 통한 대규모 군사 쿠데타일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조치도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

즉, 전장에 파견된 러시아 군대의 모든 적의를 자신을 이곳에 꼴아박은 상층부가 아닌, 적대국 우크라이나에 온전히 쏟아붓게 만들뿐더러, 현재 지휘관들이 우크라이나 및 다른 우방국과 접촉할 가능성 자체를 광범위한 전쟁범죄의 용인으로 틀어막는다는 정치적 속셈이 있을 것이 꽤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전장에 파견된 군대가 등을 돌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부적으로 병사들과 장교단을 장악할 필요성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상대하는 적성국에게 뒤를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성국가 군대와의 물밑 협상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의 막장짓으로 인해 사실상 이런 루트 자체가 틀어막혀 버렸고, 러시아 군대는 이제 적진에서 죽이든가 죽든가, 그 둘 중 하나만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일선 병사들이 사실상 약탈 및 범죄행위를 알아서 저지르는 통에, 이들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가 동조하는 상황 또한 막고, 전쟁 이후의 정상적인 삶에 대한 희망 또한 이들의 범죄로 완전히 날려버렸으니, 결국 전쟁 자체에 몰두하게 되게끔 궁지로 모는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군이 점령지의 전쟁범죄에 대한 통제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는데. 인류 역사상 뛰어난 전략가들이 마음씨 착한 선인이라서 전쟁범죄를 매우 민감하게 다뤘던 것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의 군사적 목적은 우크라이나인을 몰살하거나, 자기들이 악마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토 흡수 내지는 실효적인 지배를 염두에 둔 점령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전쟁범죄는 점령지에 최악의 여론을 형성하고, 극렬한 저항을 이끌어내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실제로 전쟁범죄가 낱낱이 밝혀지면서 안그래도 강경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러시아 정서 및 저항의지는 극도로 불타오르고 있고, 친러 인사들은 죽든가 도망치든가, 전향하는 수밖에 안남게 되면서 전장에서의 러시아군의 군사작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점령지 민간인을 입막음하기 위해서 학살까지 저지르고 있는데, 무의미한 학살은 역사상 뛰어난 군재들마저 전쟁에 패하게 만드는 극악의 대처다.[37]

일단, 부차 학살이 알려진 이후부터 점령된 우크라이나 지역의 민심이 러시아에 대한 저항으로 결집되기에 충분한 공분은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었을뿐더러, 극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지휘층에서 항복을 고려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항복하면 약탈당하고, 살해당하고, 강간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주 명확해진 마당에서, 아무리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혹독하다 한들 항복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항전하는 쪽에서는 항복해서 저런 꼴이 될 바에야 한놈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악에 받친 심정이 되며, 점령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반란 및 소요가 발생한다. 결국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더 혹독한 대처가 따르게 되고, 그러면 결국 한쪽이 다 죽을 때까지의 극한대립으로 나아가게 되기 마련이다. 즉 점령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또한 어떤 형태가 되었던 간에 러시아의 희박한 전쟁명분은 전쟁범죄에 의해 완전히 공중분해되었으며, 오히려 NATO를 위시한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훌륭한 정치적 명분이 되어주고 있다. 원래는 은밀한 동조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중국이 섣불리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없게 된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막장스러운 전쟁범죄다. 가뜩이나 큰 경제적, 정치적 실효도 기대할 수 없는 현 러시아의 상황에서 괜히 뭐라도 해줬다가는, 중국마저 국제외교에서 미국을 위시한 반중국가들에게 매우 훌륭한 명분을 제공한 셈이 되는 까닭에 위태로운 러시아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며, 러시아의 우방국들도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전황과 명분을 상실한 채 폭주하는 러시아의 행보에 질겁하면서 슬금슬금 관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38]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 전쟁범죄의 여파는 지속될 것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러시아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회복하기란 매우 힘들 것은 아주 자명하다. 또한 결국 이기든 지든 전쟁은 끝날텐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입되었던 현 러시아군 장병들이 자국으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돌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전과에 그래도 기본적인 명분 정도는 갖추고 있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병들[39]과 체첸 전쟁 참전병들도 돌아온 이후 처참한 PTSD와 사회적 대우 및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져 갔는데, 아예 변명조차 불가능한, 심지어는 참혹한 전과를 치르고, 멸시 끝에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높은 현 러시아군의 분노와 증오가 어떤 형태로 러시아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3.2.14. 러시아의 기만전술의 실패[편집]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기만적인 행위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 말로만 공격하지 않겠다면서 포격을 더욱더 강하게 하거나 협상 이후에도 공격하는 등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령 시민들은 공격하지 않았다면서 정작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사실상 휴전 회담은 시간 끌기용, 군사활동 축소는 군 재정비 및 확충, 전쟁을 일컫는 명칭은 특별 군사작전[40], 기타 등등 미국이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41] 결국 러시아의 거짓말과 기만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물론 전세계가 러시아를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평화 및 휴전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이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종전 이후에도 러시아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 뻔하다.

정작 이런 전쟁범죄 지적들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매체들은 전부 우크라이나의 음모이자 기만이라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근거도 우크라이나군이 연출한 거다, 우크라이나의 극우세력이 저지른 것이다 등 그 수준이 높지도 않다.

사실 거짓말과 기만은 러시아군의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예 기만 자체가 자국과 서방의 민중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심리전이나 다를바 없었다. 2차대전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가까운 시리아 전쟁을 예시로 들어도 미군의 샤이라트 비행장 공습이나 이스라엘의 방공망 공습을 대부분 요격했다고 우기거나 시리아 정부가 사용한 사린가스를 반군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거나, 화이트 헬멧을 지하디스트의 위장단체라고 주장하는등 수많은 기만을 펼친 선례가 있고 실제로도 상당수의 기만전술이 서방권 대중에게 먹혔다. 하지만 이 거짓말들이 먹힌 것은 지엽적인 거짓말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시리아의 상황이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갔기에 가능했던 것이지,[42] 사망자 수를 주작하고 학살 책임을 우크라이나에게 떠넘기기 위해 조작한 증거를 만들어내는 등 중증 친러가 아닌 이상 누구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기만전술로 내세우고 있으니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람의 목숨을 땅바닥에 내던지는 짓인 데다, 패권 다툼과 국제외교란 것이 원래 교묘한 수사로 온갖 역겨운 짓거리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과 기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그 자유와 정의의 나라라는 미국조차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비밀공작을 벌이거나, 전쟁범죄를 조장하기도 하는 판국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기만전술이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기만적인 정치적/외교적 수사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국가들이 섣불리 거짓을 빌미로 역공을 가할 수 없게 만드는 강대한 군사력이나 경제력, 자기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든든한 외교적 우방국과의 정치적 동맹, 효율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는 유능하고 탁월한 정보조직을 통해 펼치는 정보전과 여론전, 그리고 이러한 힘들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예측불허한 자국 및 타국의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소프트파워 같은 것이다. 전쟁 전에는 그래도 푸틴을 비롯한 과거 소련 내지는 러시아의 후광효과를 통해 약간의 소프트파워를 유지했고,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국가들을 항시 긴장시키던 군사력을 기반으로 그럭저럭 기만전술을 국제적으로 펼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가 군대를 앞세워 전쟁 정치를 펼치며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이전까지는 타이밍마저 환상적이었다. 특히 초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을 쑤면서 러시아 서부와 동유럽 지역에 대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펼치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유럽의 서방 국가들 또한 복잡한 중동정세와 내부적 갈등 및 경제나 자원 문제로 러시아와 대치하기는 힘들었다. 사분오열되어 내일을 짐작할 수 없는 중동은 물론이고, 미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는 밀월관계인 중국, 치고 올라올 여력은 있지만 현재로서는 현상유지만 하는 인도 및 동남아와 자기네 문제로도 시끄러운 일본이나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온갖 욕이란 욕은 다처먹으면서도 일단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까지 발을 빼면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고, 결정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하고 있는 까닭에 병력투입이 아닌 물자공급만으로도 승세를 얻어내고 있다. 반면 러시아군의 민낯이 까발려지면서 우방국들은 물론이고 그전까지 러시아에 대해서 난감해하던 서방국가들도 어? 하면서 이 참에 자기 맘대로 세력을 부풀리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를 밟아줄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특히 정보전과 국제 여론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군사적 분쟁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이 현재 국제사회의 관심사에서 밀려난 반면,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과장 좀 보태서 마을천장 무너진 것 하나까지 세세하게 보도되며 러시아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그들의 실상을 까발리고 있다. 물론 거대한 국제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차단하기 위해서 어디까지나 우회적인 형태로 러시아와 각을 세우고 있지만, 현재 친서방은 대중의 정서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손대면서 힘을 키우던 러시아가 최소한 타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예 서방과 각을 세우지도 못할 정도로 망하기를 바라는 심사다.

현재 러시아가 이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심화시켜 자신에게 돌아오는 주의를 돌리는 것뿐이다. 4월 말 들어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나는 이렇게 어려운데도 이 만큼 해줬는데, 너희는 뭐 했냐?" 식으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떠오르고 있으며, 서방 입장에서는 이런 분쟁의 씨앗을 러시아가 가꾸지 못하게 해결하거나 숨기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조악하지만 이런 이간질은 실제로 실행되고 있으며, 달이 5월로 넘어가며 전승기념일이 다가오자 내부단합 및 대외적인 이간질을 위해 "스웨덴은 전통적인 나치 신봉 국가이며 히틀러는 유대계이다!" 등의 내용을 담은 뉴스나 포스터가 나돌고 있다.[43] 대부분이 현재 정세와 맞지 않는 오래된 역사이거나 완전히 날조된 허구이므로, 이런 내용의 선전은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44]


3.2.15. 점점 적어지는 선택지[편집]


러시아에게 제일 이상적인 시점은 스스로 자부한대로 타국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개전 직후 72시간 내로 호스토멜 공항 등 우크라이나 침공의 주요 교두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그대로 참수작전으로 수도 키이우를 점거하여 젤렌스키 정부를 굴복시키거나 이들을 축출하고 새로운 괴뢰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45][46]

그러나 실제로는 참수작전이 실패하여서, 초기 전격전만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나가버렸고 장기전이 확정된 전면전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이로서 타국이 러우전쟁에 간섭하게 될 시간을 제공해주고 말았고, 우크라이나의 물자&경제 지원과 러시아 경제제재, 우크라이나의 분전등으로 생각이상으로 장기전의 형국이 빠른 시점에서 갖춰졌다. 경제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다양한 곳에서 용병들을 고용하자 러시아도 이에 자극을 받아 시리아 용병을 200달러에 고용하겠다 나섰으나 상술한 제재로 인한 루블화 폭락으로 이조차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빠른 시일내의 우크라이나 점거 실패,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루블화 가치 붕괴, 이로 인한 푸틴 정권에 대한 반전 여론 폭증등 여러 악재가 겹치는 탓에 푸틴 정권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빼서 후일을 도모해야 하는데도 빼지 못하는 딜레마에 걸렸다.[47]

결국 러시아로서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 협상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미 내외부 모두 반전 여론이 극심한 상태에다가 라스푸티차도 올 시기라서 진격은 더더욱 어려워질 테고 협상마저 제대로 된 성과가 없을 경우 경제를 수십년 후퇴시킨 푸틴 정권이 그대로 끝장날 가능성이 생긴다. 이미 비공식 환율이 1달러 당 135루블일 정도로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이라 이를 언제 복구할 지도 미지수이다. 또한 이번 전쟁으로 서방세계 전체에 푸틴 정권 하의 러시아의 야욕을 선전한 꼴인지라 푸틴 혹은 친 푸틴계 인사가 정권을 잡는 동안엔 서방세계에서 러시아를 고깝게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상술한대로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키이우를 점거하든, 젠렌스키 대통령을 피살하든지 했으면 오히려 이를 교두보로 우크라이나를 흡수하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그대로 드러난게 현재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수로 비난 여론이 들끓는 푸틴과 달리 젤렌스키는 국내외 할것없이 지지도가 솟구치고 있으며, 심지어 국내 지지도가 140%보단 낮은94%라는 역사적으로 봐도 전무후무한 수준의 지지도를 얻고 있다.[48] 거기다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적이던 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마저 이 건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뜻을 함께할 것을 결의하며 전면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는 데다가, 본인이 직접 순찰까지 하며 우크라이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크라이나 내부의 반러 여론은 더이상 젤렌스키 한명을 죽인다고 수습할 지경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도부 혼란이라는 이익이라도 노렸는지 체첸군을 통해 3차례나 암살을 시도했으나 소소한 이득도 누리지 못하고 체첸과의 갈등까지 빚었다.


3.2.16. 러시아(푸틴)의 고집불통[편집]


3월 18일 기준으로 러시아가 전쟁의 종료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무장해제친서방 지도부 축출이며 해당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절대로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확인된 상황이다.# 한마디로 러시아에 굴복하라는 얘기이며 기어코 위 문제들을 모조리 무시할 정도로 심각한 억지와 고집을 부리고 있다. 한국사에 비유하면 을사늑약정미 7조약을 합친, 우크라이나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49]

특히나 전쟁 명분도 없이 침략한 러시아는 온갖 제재와 내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자국 병사들은 물론이고 친러 국가들의 용병들까지 무수히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50] 주목적 만큼은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취지로 밀어붙이고 있기에 전쟁이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고전하고 있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

심지어 외교부와 크렘린 궁이 서로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 모습도 나왔는데 러시아 협상단은 우크라이나 협상단과의 교섭에서 상당히 건설적인 성과[51]를 올린 바 있지만 크렘린 궁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전부 백지로 돌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심지어 협상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등에게 독극물 테러를 저질러 러시아의 협상파 실무진들이 큰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푸틴의 고집이 점점 심해지고 푸틴이 전쟁의 상황 및 어려워진 경제 상황 등을 제대로 보고받지 않는 것[52]이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전쟁이 점점 장기화되고 있게 만들고 있다. 이로써 현재까지는 협상을 통해 종전하는 방법 또한 매우 어려워졌다.

심지어 푸틴이 다른 장관들도 배제하고 혼자서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2022년 12월 겨울이 오고 전선이 고착화되고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시도 해방하면서 서방에서 평화협상 타결 시도에 관해 드디어 크렘린궁 대변인이 반응을 내비췄는데 러시아측의 요구는 "최근에 합병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 서방측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해야 협상의 준비가 되어있다."라며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측도 용납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푸틴이 사실상 전쟁을 끝낼 마음이 없음을 드러냈다. 12월에 펼쳐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공항 기지를 타격하는 일이 발생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먼저 크림대교를 비롯해 계속 러시아를 공격했다."는 명분으로 기존에 벌이던 미사일 공습을 강화하며 타협은 없다고 나선 반면 크렘린궁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용단만 내리면 바로 종전이 가능하다며 언급하고 있다.

2023년 신년을 기념하며 열린 크렘린궁 연회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전쟁의 대의와 정의는 러시아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푸틴이 전쟁을 포기할 맘이 없음을 증명했다.

2023년 3월에 열린 국제회의에서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번 전쟁은 서방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이용해 러시아를 침공하려 했다."는 주장에 대다수 국가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망신[53]을 샀는데 전쟁을 서방과 우크라이나 탓을 하는 것을 보면 장기전으로 갈 모양이다.

3.2.17. 바그너 그룹 반란[편집]


PMC 바그너 그룹과 정규군 간 갈등이 심화되며 파벌 싸움이 격화되다가 끝내는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켰다. 해당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시피 이는 상당히 싱겁게 끝났으나 여러 이유로 이와 같은 내부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3. 외부 지원[편집]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54] 러시아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게 약속했던 군수물자 지원 등을 철회 및 거부하는 방향이나, 친러 국가들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러시아를 지원하는 케이스가 많다. 다만 이란이 유일하게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 벨라루스가 러시아 편에 서서 벨라루스군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벨라루스군이 투입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NATO측의 지원로를 담당하는 대도시인 리비우의 방어를 위해 군을 쪼개야하는데, 이미 동부 쪽은 반 포위 상태라 군을 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지라 벨라루스군이 행동을 개시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키이우나 하르키우 중 하나를 상실할 확률이 크게 증가한다.[55] 그리고 3월 1일부로 벨라루스가 참전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예상과 다르게 서부 국경이 아닌 체르니히우 쪽으로 군대를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벨라루스군의 개입을 부인하는 기사가 또 나왔다.# 현재 벨라루스는 이미 자국 국경을 열어주는 등 노골적인 친러행보를 보여주고 있어 미국측의 제재가 시작되었지만, 만약 강력한 제재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벨라루스가 앙심을 품고 아예 본격적으로 참전한다면 우크라이나에겐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56]
    • 그런데, 벨라루스군 내에서 내부 항명으로 참전을 거부한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미 개전 초에 참전했어야 할 벨라루스군 참모총장이 이미 3월 4일에 대대전투단을 만들라는 명령에 항명하여 스스로 사임하고, 벨라루스군 수뇌부가 병사들과 몇몇 장교들이 명분없는 전쟁에 대한 항명으로 내부 반란과 프래깅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참전을 망설인다는 소식들이 이리저리서 들려오고 있다. 현재는 국가수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러시아의 패배를 점쳤는지 은근슬쩍 참전을 피하고 있다. 애초에 자국 철도청이 대놓고 정부와 러시아군에 반하는 사보타주를 벌이고 일부 자국민들은 아예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하러 가는데도 태평하게 아이스하키치러 가고 하는 등등, 러시아가 직접 참전하라고 압박했는데도 거부할 정도면 말 다 한 셈.

  •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조금씩 물밑작업을 하고 있다. 단, 중국은 서방에게 경제가 종속되어 있어서 제재가 두려운 데다, 미국에게 호되게 당하는 중인 만큼 노골적인 지원보단 북한을 지원하는 것마냥 은밀히 도와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국 하나의 국력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력을 합친 것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중국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눈치를 안볼 수가 없는데,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해주고 싶으나 미국이 쳐놓은 제재망이 너무 촘촘해서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정보력과 국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합병은 오히려 중국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57]이라 반대하고 있다.

  • 북한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를 인정하고 러시아를 대놓고 지지했지만 실제로는 불신이 가득했고[58] 한국, 일본, 미국이 위협하지 않더라도 지리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언제 내정간섭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핵을 포기 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그런가 하면, 러시아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린 국가도 있다.# 시리아, 세르비아, 그리스[59], 북마케도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브라질, 몬테네그로, 레바논, 북한이 있다.

  • 익명의 미국 정보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수백만개의 로켓과 포탄을 구입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란으로부터 이란산 드론과 인력, 관련 장비를 구입한 것도 확인되었다. #

  • 이란은 우크라이나의 가을 공세 시기부터 러시아에게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란 시위로 내부가 혼란해지고 정권의 위기가 오자 이를 해결하려는 겸[60]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게서 노획한 서방 무기들을 구해오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란이 제공한 샤헤드-136과 탄도미사일들은 결코 무시할 수 있을만한 물량이 아니며[61] 이란은 서방의 제재도 우회하면서 저렴한 자폭드론들을 가지고 지속적인 군사지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골칫거리가 되었다.[62]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방공체계가 서방의 지원으로 크게 강화되면서 효과가 떨어졌고, 혹한기가 다가오면서 자폭드론의 내구성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한편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은 그간 우크라이나의 군사지원에 소극적이던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러시아를 때릴 순 없지만 이미 사이가 나빴던 이란의 군수공장들을 공격하는 식의 간접적인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2023년 이란-아프가니스탄 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생기면서, 최악의 경우에는 이란이 탈레반 정권과 싸우느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가 더더욱 힘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3.4. 무너지지 않은 러시아 경제[편집]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 유럽 등의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전례없는 경제제재를 가하였다. 그 건수만 북한, 이란을 아득히 뛰어넘는 5,600건이었다. 러시아의 주 수출품인 천연가스도 막히고 스위프트 결제망에서도 배제하는 등 할 수 있는 제재는 거의 모두 가하며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일찍 디폴트하여 망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빗나갔다.

오히려 루블화의 가치가 올라가고 무역흑자가 나오며 러시아 경제는 제재에 어느정도 내성이 생겼다.

이러한 와중에 서방은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한 경제 불황에 지쳐가고 있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일부 유럽 국가들은 휴전을 바라기도 한다. 미국, 영국 등은 아직까지 강경한 입장이나 최근 미국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생겼고, 영국은 반푸틴 입장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에 가장 강경하던 존슨 총리의 사퇴를 두려워하는 등 변수가 생길 우려가 있다.


3.4.1. 반론[편집]


미국은 러시아가 모든 것들이 괜찮고 러시아 경제는 계속 튼튼하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 자료만을 선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자국의 경제 침체 우려를 시인한 러시아의 내부문서가 공개되었다.#

또한 서방측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는 서방측보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경기침체로 고통받고 있다. 실제로 2월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플레이션율은 유로존이나 미국보다 높은 상황이고 전쟁 이후 2022년 2분기 러시아의 실질성장률은 -4%를 기록하며 동기 미국이나 EU국가들에 비해 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무역 경상수지는 서방권의 제제 때문에 오히려 오르는게 정상이다. 자신들의 자원들은 수출하지만 정작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제품은 '0'이 되니 마이너스가 없는 것. 흑자가 난다면 어떻게든 좋은게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명심해야 될 것은 러시아는 단독 내수 경제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경공업은 예전부터 약했고 중공업도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에 밀려 이렇다할 흑자를 보지 못해 무역흑자는 자원 수출로부터만 온다. 무엇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국가마다 산업특징이 다각화되고 분산된 2022년은 내수시장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 러시아는 장기적으로는 해외의 고급 가공부품, 차량, 전쟁물자 등등 모든 것들에 대한 물자부족을 경험하며 산업 전반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특히 어떤 국가라도 수출만으로 원활히 경제를 돌리기는 힘들다는 사례는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의 사례로 설명된다. 오일 쇼크와 대지진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나자 지출을 아예 없애고 수출만 중점적으로 하였는데 실제로 부채는 오히려 기한보다 빠르게 다 갚았지만 국가 상태는 악화되어 결국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된다.

3.5. 러시아의 역제재 (자원 무기화)[편집]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역제재를 감행하고 있다. 소위 잠가라 밸브의 효과가 이번 전쟁 때문에 훨씬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제재 초기에는 강경한 대응을 계속해서 고수했지만 러시아의 대규모 가스 제재로 천연가스가 부족해진 유럽은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원인은 탈원전, 탈석탄도 한 몫한다. 에너지 부족으로 유럽은 석탄까지 다시 쓰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파[63]와 온건파[64]로 나뉘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에 굴욕감을 줘선 안된다고 발언하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이를 비판하는 등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의견이 갈려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 점을 이용하여 전쟁을 겨울까지 끌고가는 것이 목적이며, 만약 전쟁이 겨울까지 해결되지 않을시 유럽은 끔찍한 에너지 대란에 시달리게 될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에너지 제재는 유럽 뿐이 아니며 일본이 G7 회담 후 러시아 가스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검토하자 러시아는 일본과 공동으로 하던 가스사업인 사할린2에서 일본은 아무런 천연가스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러시아의 제재는 에너지에 그치지 않고 식량마저도 무기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큰 비판을 사고 있다. 주요 밀 수출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에 방화를 저지르는가 하면, 곡식을 약탈하여 중동으로 밀수출하기도 하고 흑해에 기뢰를 깔아서해상로를 봉쇄하여 수출입을 막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은 끔찍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다만 재미있게도 항상 인류의 골칫거리로 불리우는 지구온난화가 의외의 하드캐리를 했는데 더워지는 기후덕분에 유럽의 겨울이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았고 따라서 푸틴의 역제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조커카드 역할을 했다.

3.6. 동부 전선 상황[편집]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지만, 6월부터는 동부지역에서 우세를 보이기도 한다.

초반에 우크라이나군의 선방으로 고전을 거듭하던 러시아군은 기존의 전략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포격과 폭격을 가하는 전략으로 바꿨다. 이러한 전략은 체첸 전쟁 등에서 사용하던 러시아군의 전통적인 화력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6월부터는 우크라이나군이 하루에 5천~6천 발을 쏘면 러시아군은 5만~6만 발을 쏘며 10배에 가까운 격차가 났으며 우크라이나군은 하루에 2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오는 등 큰 피해를 입고있다. 우크라이나군은 탄약 부족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절실히 요구하는 중이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을 함락시킨 것에 이어 세베로도네츠크리시찬스크를 차례로 함락시키며 7월 초에는 루한스크 주 전체를 손에 넣었다. 루한스크 함락 이후에는 도네츠크 주에도 지속적으로 공세를 가하는 중이고 제2도시인 하르키우에도 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미국에게서 HIMARS를 지원받은 이후부터 러시아군의 주요 시설을 폭파시키자 이를 만회하려는 러시아군이 병력을 동부에 집중하며 남부에서 병력을 빼게되자, 그 틈을 노린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일부를 탈환했으며 오데사 앞에 있는 섬인 즈미이니 섬도 탈환했다. 우크라이나에선 현재 남부 수복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군은 루한스크를 함락한 이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두 지역보다 훨씬 중요한 하르키우와 헤르손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다른 도네츠크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역으로 진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눈치챈 러시아군은 뒤늦게 헤르손 병력을 강화하며 남부 지역에서 격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9월 초부터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빠른 속도로 주요 거점들을 탈환[65]하면서 러시아군의 동부 우세도 이젠 옛말이 되었으며 이런 전황을 타개하려고 동원령, 지원요청, 핵위협 등을 시작하였다.

12월부터 4월 경까지 바흐무트에서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으며 러시아군이 소폭 전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듬해 6-7월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반격 작전을 개시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반격 작전 할거라고 최소 3개월 이상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러시아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놀고 있을리가 없고, 지뢰밭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두꺼운 방어선을 깔아놓아 진격 속도가 2022년 9월의 하르키우 반격에 비해서 매우 느리다.

[실시간]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입니다. 업데이트는 자동으로 반영됩니다. 🔎 지도 확대하기[1] 예비역 대령으로서 1980년대 극동에서 소련군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었고, 돈바스 전쟁에서도 참전했었다. 잠시 전역했다가 2020년 56세의 나이로 재입대를 결정 59기계화여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2] 실제 같은 코미디언 출신의 과테말라 전 대통령 지미 모랄레스의 경우도 있었다.[3] 물론 이게 지켜질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러시아군 장성 죽이라고 좌표 줬을 때 대놓고 공개적으로 알려줬었나? 어차피 몰래 정보를 넘겨줬고, 러시아군에게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라고 발표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런 금지령 이후에도 장성 여럿이 포격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4] 공식적 대화루트가 거의 단절되었어도 서로의 비공식적 대화루트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5] 이건 불가피하게도 당연한 것이, 러시아는 핵무기 최다 보유국이기 때문에 개입하면 그냥 3차 세계대전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세계 전체를 불태워버릴 순 없지 않은가.[6] 사실 이는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거부한 미국과 NATO에도 책임이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했다면 지금보다 러시아의 반발이 더 커졌을 것이 자명했기에 불가피했다고 볼 공산이 있다.[7] 정확히는 소련 대표가 투표에 불참했다.[8] 이는 미국 내에서 전쟁에 대해 그다지 의욕적이지 않은 점과 함께 3차 대전에 대한 우려 그리고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동맹관계가 아니라는 점 등 다양하게 작용한 것. 즉, 미국의 입장에서는 전쟁에 의욕도 없는데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라의 일에 왜 굳이 끼어들어서 자신들의 피를 흘려야 하냐는 셈.[9]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포함[10] 추가적으로 이 무기대여법이 끝나는 기한을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전의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라고 명시했다.[11] 이것 때문에 지금 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휴전이 되어도 러시아로서도 최소한 달성한 전략적 목표가 존재하는 것이며 때문에 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와 휴전 협상에 응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은 4차까지 진행된 상태.[12] 이것 때문에 오데사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통제 하에 있는데도 러시아의 크림 반도 - 돈바스 육로 연결이 이루어졌다고 보도들이 나온 것이다.[13] 루한시크, 도네치크 저 두 도시 같은 경우 2014년 돈바스 전쟁이 시작하면서 친러 민병대가 반군이 되어 들고 일어났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재정비하고 공세적으로 나가서 거의 말살에 가깝게 때려잡힐뻔 한 걸 러시아가 군대를 의용군이라는 거짓말로 투입하여 지원함으로써 간신히 살려놓은 것이다. 러시아군이 투입되지 않았으면 반군 세력은 그대로 몰살당했을 것이다.[14] 이마저도 해당 지역들은 원래 친러 지역들이었다.[15] 수도는 각 나라에서 가장 기능이 많고 방어가 두터운 도시이면서 지도자가 주둔한 지역이다. 이 지역과 지도자를 뺏긴다는 것은 패색이 짙다는 뜻이기 때문에 전의를 유지하기 어렵다. 수도방위사령부 같은 게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16] 징집되어 억지로 전선에 투입된 것도 모자라 분노한 우크라이나군에게 개죽음을 당하거나, 살아남아 돌아가도 나치같은 침략자의 앞잡이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련 시절 아프간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참전 군인들이 제대 이후에도 괄시받다가 한 많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전례가 한둘이 아니었다.[17] 키이우는 커녕 하루면 함락될 것이라 봤던 하르키우조차 러시아군이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18] 장중 한때 달러당 118루블까지 근접했다.[19] 단, 일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를 점거하는 데 성공하면 우크라이나의 평야지대와 공업지대를 장악할 수 있게 되므로 크림 반도와 모스크바의 향후 안정성이 크게 증가한다.[20] 2021년 기준 러시아 부패인식지수는 180개국 중 136위를 기록할 정도로 부패수준이 심각하다.[21] 조 바이든이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일 때 행해진 제재가 너무 빈약한 타격이어서 크림 반도 위기를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 했다며 비난 받았던 교훈을 통해 이번에는 강력하게 제재를 준 것으로 보인다.[22] 3월 16일이 국채 만기일이다.[23] 단, 최근 소식들에 따르면 이 기갑부대 행렬은 진작 재편되어 호스토멜 공항 인근 등으로 분산배치됐다는 소식이 나왔다.#[24] 키이우 점령을 통한 우크라이나 정권 소멸, 하르키우를 통한 우크라이나 동부 장악, 오데사 점령을 통한 우크라이나 남부 장악[25] 예를 들어 RPG 같은 대전차무기를 쓸 때 후폭풍을 고려하지 못해 등 뒤의 아군을 후폭풍으로 죽이거나 자신을 죽이는 사례가 속출했다.[26] 해당 지휘관은 돌진한 전차에 의해 두 다리가 깔리는 중상을 입고 벨라루스의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3월 26일 사망하였다.[27] 오늘날의 중국이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를 못 받는 이유도 이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중화사상과 공산주의로 무장해 단결하게 만들었지만 이것이 해외로 나가면 공감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나마 러시아는 범세계적으로 이러지는 않는데 중국은 범세계적으로 사고를 쳐서 그 미움을 받는 정도가 러시아와는 한참 다르다.[28] 흐루쇼프 시절에 크림 반도와 돈바스를 포함한 러시아의 일부 지역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는데 이 지역에 살던 사람은 러시아계인지라 우크라이나 내부에는 아직도 러시아계가 병존하고 있고 그 비율이 17%에 달한다.[29] 푸틴 자신은 분명 그렇게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랫사람들이 징집병을 보내 놓고 푸틴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정황도 드러난 적이 몇 번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진위를 알 길이 없다.[30] 극우 성향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 군부, 그리고 이들 약소지역들의 높은 출산율을 감안했을 때 이것이 백인이 우세인 인구 구조를 다시금 확립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의혹도 러시아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또한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므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31] 러시아보다 국제사회의 눈치를 훨씬 더 보는 우크라이나의 포로 취급이 훨씬 더 나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32] 그나마 정찰위성용 ICBM 발사를 하고 나서야 조금 관심이 생긴 정도.[33] 심지어 이로 인해서 승조원 7명이 잠시 포로로 잡혔다가 그 다음날 북송되었다. 이들은 굉장히 심한 문책을 받을 것이 눈에 선한 상황이다.[34] 이 괴뢰국들도 우크라이나의 중앙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독립한 것이지, 러시아가 침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같은 민족과 동포를 공격하게 되었고, 침공한 러시아군들 일부와 마찬가지로 사기가 크게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35] 현재 러시아군에서 독전대를 배치한 것이 확인되었는데 상황에 따라선 이 강제징집된 병사들과 독전대가 내분을 일으키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36] 참고로 러시아는 제국 시절 전설적인 프래깅 사건인 포템킨 반란이 발생했을 정도로 군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던 나라다.[37] 공포전술을 편답시고 이런 류의 학살과 전쟁범죄를 묵인한 여러 군대는 결국 극렬한 저항과 증오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심지어 가장 효율적으로 말살했다고 전해지는 칭기즈 칸과 몽골에 대한 중동지역의 증오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한족을 억제하기 위해서 학살을 했던 도모했던 청나라는 비록 어느 정도 문화적 흡수를 거뒀음에도 핵심 계층인 만주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계는 결국 중원의 패권에서 멀어지고 한족에 의해 분열되는 결말을 맞이했다.나치 독일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38] 이게 이해가 안된다면 미군이 테러리스트를 참수하여 자국 방송에 당당하게 공개한다고 보면 된다.[39] 이들 중에는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국적이 된 경우도 적지 않으며, 우크라이나 국적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병 집안들 또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40] спецоперация. 사실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도 이를 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특별군사작전으로 정의했다. 전쟁으로 정의할 경우 참전용사들 및 상의군인들에게 의료혜택, 면세, 연금 제공 등 적법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 돈이 아깝다 보니 하나의 작전에 불과한 일로 퉁쳐버리고 군인들이 다치든 죽든 전역하든 대우를 거의 해 주지 않고 훈장이나 하나 쥐어주고 토사구팽한 것이다.[41] 대부분의 정보가 맞을 정도로 미국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42] 한때 시리아 전체를 석권할 것처럼 보였던 반군은 민주주의파와 지하드파로 나뉘어 분열되었고, ISIS는 전세계적인 어그로를 끌다가 결국 미국에 의해 처단되었다. 또한 중동에서 이스라엘 다음 가는 강군임을 자랑하던 튀르키예조차도 쿠데타 대숙청의 여파로 알 바브 시를 돌파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땅이 타이거 부대에게 넘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43] 그 외에도 러시아의 사주를 받았거나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은 보급도 못 받고 무능한 장군의 명령에 희생되고 있어서 전투를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항복한 러시아 군인들을 학살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얼굴마담이고 실세는 미국 CIA의 지령을 받고 있는 극우 우크라이나 군인이다!" 같은 우크라이나의 이미지를 흐리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러시아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신뢰성이 밑바닥이다.[44] 역사를 충실하게 배웠던 사람들이 보기엔 워낙 허무맹랑해서 "무슨 개그하냐?"라는 반응이 절대다수지만, 반대로 역사를 잘 배우지 않은 층들은 이런 글들을 보자마자 가치없는 글로 취급하고 무시하지는 않고 저게 맞나? 싶어서 정보를 뒤져봐야 하는 상황들이 조금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성향에 맞다 싶으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맞장구치는 사례까지도 있고. 러시아의 얼핏 말도 안되는 선전은 이런 정보약자층을 노리고 하는 것이다.[45] 러시아의 본래 초기 전쟁계획과 그나마 흡사한 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은 벨라루스의 코앞에 있던 키이우와 달리 사실상 이라크의 중심에 있었던 바그다드 함락까지 2주 걸렸는데, 전방의 이라크 후방에서 쿠르드족을 봉기시키는 등, 충분한 준비를 거쳐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러시아가 호스토멜을 장악한 뒤, 키이우 공방전 한달끝에 도피한 것과 달리 미군이 실제로 바그다드에 진입한 시점에서 함락까지는 5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참수작전에 성공하더라도 점령군에게 들고 일어날 반군들이 대거 등장할 미래를 감안하자면 그 뒤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까지도 닮았다.[46]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개전 초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 공수군이 참수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키이우 시내에도 공수강습을 벌였다고 한다. 문제는 공수부대의 전투력과 조직력이 가장 흐트러지는 시점이 낙하한 직후로 방어병력도 있고 장애물이 많은 시가지에 그대로 공수부대를 꼬라박는건 자살행위나 다를바가 없다는 점이다. 차라리 사전에 키이우에 스페츠나츠들을 잠복시켜두었다가 침공과 함께 정부청사를 타격하는 편이 참수작전의 기본에 더 걸맞았을 것이다.[47] 애초에 여기서 뺀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는거나 다름없는데, 현재 러시아내 여론만 보더라도 이 상황에서 회군해버리면 푸틴 정권의 지지도는 폭락한다. 양쪽 다 이를 알기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점차 당당한 요구를 해나가며 휴전&종전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푸틴 정권은 어떻게든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무리스러운 제안으로 휴전&종전을 내려는 것이다.[48] 심지어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국력만으로 러시아를 막을 수 없다는걸 알기에 서방에게 원조를 요하는 한편 인력은 필요없다, 무기만 달라라고 요구함으로서 전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간섭할 여지도 최소화했다. 실제로 이 말이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듯 신식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실제로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러시아를 상대로 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49] 이 말도 안되는 종료 조건은 헤르손이 해방되기 직전까지도 측근의 입을 통해 변경되지 않았음을 확언한 상황이다.[50] 침공 개시 불과 20일 만에, 지난 20여 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보다 더 많은 전사자가 러시아군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51] 기존까지 우크라이나 측에서 주장하던 크림 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영역까지 왔었다.[52] 푸틴의 측근들이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푸틴한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고 있으며 푸틴(크렘린)과 정부 수뇌부, 실무진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등 러시아 수뇌부의 대응이 매우 삐걱거리고 있다. 푸틴은 도청이라도 걱정하는 건지 지금까지도 스마트폰이 없다.[53] 게다가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이 초기에는 네오나치 박멸을 통한 위협제거에서 나날히 명분이 줏대없이 바뀌고 있다. 러시아측도 명분이 부족한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54] 직접적인 지원을 하기엔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눈치가 보이기 행동이기에 힘들 것이다.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미국이 엄포를 놓자, 직접적으로 지원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55] 우크라이나 남부쪽은 헤르손 공세의 여파로 사실상 러시아 및 반군의 손아귀에 놓여있어서 자연스레 군이 이동할 위치는 키이우 쪽으로 한정되는데, 저 키이우도 반 포위 상태이기 때문. 따라서 현재 하르키우를 비롯한 동부를 지키는 병력들이 신속하게 키이우로 이동해 키이우 동부의 러시아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 키이우로 입성하고, 키이우에서 지원군을 차출해 리비우로 보내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벨라루스군이 리비우를 점령하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리비우가 함락되면 NATO의 지원로가 막혀 우크라이나 정부가 고사당하는 결말 밖에 없기 때문.[56] 물론 벨라루스는 그럴 능력은 없다. 애초에 러시아조차 한참 밀리는 와중에 벨라루스가 참전하는건 말그대로 자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벨라루스인들이 오랫동안 독재중인 정부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57] 타이완 독립운동 세력에게 '우리도 돈바스 주민처럼 명목상 투표라도 하면 독립할 수 있다. 그 독립한 나라를 이 지원하고 있다.'는 강력한 명분을 쥐어주게 된다. 즉, 자승자박이 되는 것.[58] 종파 사건 이후로 자국에 있는 중국과 소련 군대를 철수시킨 것도 내정간섭 때문이었다.[59] 참고로 그리스는 우크라이나에 식량, 의류등의 지원물자를 보냈다.[60] 이란은 시위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말고도 주변 중동 국가들에게까지 시비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61] 샤헤드-136만 해도 1,000대 넘게 제공되었다.[62] 서방의 제재가 당장에 큰 효과를 미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63] 발트3국, 폴란드 등[64] 프랑스, 독일 등[65] 러시아군이 6개월간 야금야금 잠식해왔던 점령지를 우크라이나군은 공세 시작 후 약 6일만에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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