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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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漢陽大學校 서울캠퍼스
Hanyang Universit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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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학이념
사랑의 실천
愛之實踐


상징

동물
사자
교화
개나리
교색

HANYANG BLUE (#0E4A84)

슬로건
The Engine of Korea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분류
사립대학
개교
1939년 7월 동아공과학원[1]
1959년 종합대학 한양대학교로 승격
총장
제16대 이기정(교수)
법인
학교법인 한양학원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사근동 110),
15,800명(2021년)
7,781명(2021년)
교직원
3,803명(2021년)[2]
[[대학기본역량진단|{{{#fff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2021년)
웹사이트
파일:HYU_logo_singlecolor_png.png공식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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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 개요
3.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상징과 특징
3.1. 본관
3.2. 캠퍼스 내의 지하철역
3.3. 한양공법
3.4. 한양대의 지리적 장점
3.5. 편의시설
4. 개설 학과
5. 교통
6. 행사
6.1. 라치오스 (RACHIOS, 樂醉娛秀)
6.2. 애한제
7. 커뮤니티 사이트
7.2. 자유게시판
7.3. 휴비즈(HYUBIZ)
8. 동아리
8.1. 중앙동아리
8.2. 창업동아리
8.3. 취업동아리
9. 운동부
9.1. 축구부
9.2. 농구부
9.3. 배구부
11. 기타
11.1. 공대생들의 ENDLESS PAIN
11.1.1. 공업수학과 F학점
11.1.2. 미적분학과 F학점
11.2. 공업수학 경시대회
11.3. 풍수지리
11.4. 학생운동과 대학문화
11.5. 행당캠퍼스의 유래
11.6. 사랑의 실천
12. 사건사고
12.1. 단톡방 성희롱 사건



1. 개요[편집]


사랑의 실천(愛之實踐)

The Engine of Korea, Hanyang University





홍보영상
한양당도



2. 서울캠퍼스의 건물들[편집]



파일:한대역사관.jpg


파일:정몽구센터.jpg


파일:한대경영행원파크.jpg


파일:한대대운동장.jpg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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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상징과 특징[편집]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3.1. 본관[편집]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750호

751호

752호
윤희순 의병가사집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

파일:본관20210511.jpg

좌측 건물이 신본관, 우측 건물이 구본관(1954년 완공)이다. 한양대역 2번 출구인 '애지문'에서 나오면 바로 이 건물들이 맞이해줄 것이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들어가 볼 일이 그다지 없는 건물들이지만, 그래도 졸업사진을 찍을 때는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가을철 본관 앞 광장에서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졸업사진 찍는 사람들일 것이다. 참고로 우측의 구본관은 한양대의 역사와 왕십리의 발전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7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역사관으로 쓰이는 중이다. 구본관 옆에 자리한 신본관의 설계는 류춘수(건축 70년 졸)씨가 담당했다. 신본관과 구본관은 옆구리가 구름다리로 이어져있으며, 신본관 앞에 학교 설립자인 백남 김연준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09년경 까지는 구본관 사자상 주변에 조경이 꾸며져 있었다.[3]


3.2. 캠퍼스 내의 지하철역[편집]



파일:external/www.hanyang.ac.kr/cover_img07.jpg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내에는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2번 출구가 있다. 이 2번 출구의 이름은 '애지문(愛智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애지문'은 건학이념인 '愛之實踐'에서 사랑 '愛'와 지혜로운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의 지혜 '智'를 합성해 만든 명칭으로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으로 통하는 문이며 지혜로운 사랑의 실천자들이 더 큰 세계로 나가는 문'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정문 역할을 한다. 거기에 2009년경에 현 의대 건물 근처에 있던 학교 정문이 철거되면서 학교 외부와 학교를 잇는 정문은 이 애지문밖에 남지 않았다. 주요 공과대학 건물들과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대생들은 도착하고 5분만에 강의실에 들어갈 수 있다.

한양대역 외에도 4개 노선 환승역인 왕십리역이 웬만한 xx대입구 전철역보다 가까워서 왕십리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많은 편이다. 대학가 상권도 왕십리역 6번출구와 13번출구 일대에 몰려있다. 다만, 언덕으로 인해 도보로는 캠퍼스로 접근하기 좀 까다로운게 단점이다.[4] 따라서, 왕십리역에서 서울캠퍼스에 가고자 할 경우 왕십리역 6-1번출구 앞 마을버스 정류소에서 성동03-2번 마을버스 이용을 권장한다. 캠퍼스 동쪽(소위 3캠)이 주생활권인 학생들은 청계천 건너 용답역도 많이 이용한다. 논술 시험 등 한양대역이 붐빌때 왕십리역이나 용답역 이용을 고려해보자.

전해내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지하철 2호선 건설 당시에 시공사에 빽빽하게 들어선 한양대 공대 출신들이 왕십리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라 모르겠다, 모교를 위해 뻘짓 함 해보자는 마음으로 중간에 한양대역을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사실은 한양대 공대 출신들의 애교심이 아닌 공학적 문제 때문이었다고 추측된다. 자세한 내용은 한양대역 문서 참고.

처음 2호선이 개통될 당시에는 애지문 위치에 출구가 없었다. 서울시에서는 애지문 위치에 출구를 만들어줄테니 비용은 한양대학교 측이 부담하라고 했다고 하지만 학교가 거절했다고 전해지며, 추후에 따로 출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3.3. 한양공법[편집]


캠퍼스가 산 그 자체인 관계로 건물간 이동에 있어 적잖은 체력이 소모된다. 인문대, 자연대, 사범대는 언덕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밤에는 서울의 야경이 보이며,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꽤나 가깝게 느껴진다. 이처럼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점 때문에 생긴 한양공법이라고 불리는 건축 방식이 눈에 띈다, 1층이 아닌 3층에 정문과 로비가 건설되고, 지하 1층에 창문이 있는 기이한 모습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다만 단단한 화강암 돌산 지반에 건설되어서 그런지 지하로 깊게 판 건물이나 캠퍼스간 지하통로는 많이 없는 편이다.

모기업에서 만들어준 몇몇 건물[5]을 제외한 한양대의 웬만한 건물들은 한양재단에 속해있는 한양산업개발에서 공사를 맡았다. 당시 한양개발은 그렇다할 명성이나 실력이 있는 기업이 아닌 설립자 백남 김연준 박사의 자녀가 물려받은 기업체라고 한다. 하지만 한양대 내에 여러 공사를 맡으면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고 큰 토목공사도 진행하면서 꽤 큰 기업이 됐다. 실제로 캠퍼스 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문대 건물은 엄청나게 큰 화강암산 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기술로는 주춧돌을 평지가 아닌 경사진 돌산 위에 고정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뭐 지금은 컴퓨터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서 끼워넣을 수 있지만, 당시 기술로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대한민국 7대 불가사의 건물 중 하나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건물은 현재도 튼튼히 잘 버티고 있으며 그 덕에 인문대 옥상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6] 한가지 더 얘기해보자면 지금 경영관이 위치해 있는 곳은 쓰레기가 매립되어있는 부지였다. 그래서 매립지에 주춧돌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고심끝에 내린 결론이 매립지가 아닌 단단한 부지에 모든 무게 중심을 옮겨놓고 건물 몸통을 매립지에 살포시 내려앉게끔 만든 공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경영관은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여튼 당시 한양산업개발의 공사 방식은 너무나 창의적인 것이 많았다고 한다.

설립자인 백남 김연준 박사가 한시도 캠퍼스 내의 증개축을 멈추지 말라고 지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캠퍼스가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학교 정문이 없다는 것도 그 역사의 한 부분인데 예전에는 정문도 있어서 졸업식 때 분위기가 대단했다 한다. 지금은 광장으로 잘 꾸며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정문이라는 경계가 없다보니 도로와 이어져있는 광장에서 대학생들이 돗자리펴고 낭만을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한편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는 지형의 고저차가 심하여 한 건물의 각각의 출입구가 서로 다른 층에 위치해있는 경우가 많다. 지형의 고저차가 심한 학교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건물의 여러 층에 입구를 낸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학생이 지나다니는 사회대의 경우는 1, 3, 4층에 출입구가 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1층과 4층 사이를 많이 이동한다. 학생회관 건물은 지하 1층과 2, 3, 4층에 출구가 있고, 제1공학관은 1층과 3층에 출구가 있다. 법학관은 제1법학관 1층으로 들어가 조금만 걸으면 어느새 제2법학관, 그리고는 제3법학관 4층이 되어 있다. FTC도 모두 1층으로 알고 있는 층이 3층이다. 또한 IT/BT 건물의 로비 역시 3층이다. 학교의 경사가 가파르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학생들은 이런 출구들을 이용해서 건물들 사이를 이동하는데 이를 '포탈'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게다가 건물들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구름다리를 만들어 놓아서, 학교의 절반을 구름다리만 건너서도 이동할 수도 있다.[7] 심지어는 학교의 상징이 되는 구본관 건물과 신본관 건물도 옆구리를 서로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정말 엄청난 수준의 쇼미더머니를 보여주는 학교다. 심지어 SK그룹하고 LG그룹에서 지원을 해 줄 요망이 있었는데,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매년 건물을 엄청나게 새로 짓는다. 이는 학교 소유 캠퍼스 주변 부지가 크고, 한양학원재단 소유 한양산업개발, 한양증권, 프레지던트 호텔 등의 수익사업체가 있기때문에 자금 유동성 확보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학 여기저기에 학생 편의 시설이 리모델링 & 신축되고 있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나름 좋을 듯. 오늘도 학교 어딘가에서 새로운 건물이 리모델링 & 신축 되고 있다.

2015년 9월 경에는 의대 계단 강의동 바로 옆 자리에 기숙사가 신축되고 있고, 병원 동관 근처에서 의대 연구동이 하나 신축되었다. 2017년에 건축학부 건물이 신축되었으며 하계 방학동안 중앙도서관 로비를 리모델링했다.

2020년 5월 대운동장이 완공됐다. 총 2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고, 지하 주차장 약 900석, 동아리방 및 여러 휴게시설 49개, 샤워시설 등등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세련되고 멋있는 대운동장 및 편의시설이 만들어졌다. 운동장 지하를 이용해서 2공학관, 공업센터, 신소재공학관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편리하다.

현재 대운동장 설립으로 주차 공간이 확보가 되면서 원래 주차공간이었던 신소재공학관 앞 주차장을 정리하고 학생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기계관, 전자전기관, 메디컬 센터 등 원래 있던 건물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부지에 건물을 만드는 식으로 여러 건물의 증축을 계획 중에 있고, 조감도까지 나온 상태다.

3.4. 한양대의 지리적 장점[편집]


왕십리역은 2호선, 5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으로 환승이 가능한 교통의 요지이며, 2024년에는 상계역, 월계역, 미아사거리역, 고려대역, 제기동역 등을 경유하는 동북선이 추가로 완공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강남, 홍대 등 서울 주요 상권에 2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다.[8] 또한, 왕십리역에 경춘선 ITX-청춘이 운행하고 있어 춘천시, 가평군, 남양주시에서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고, MT 장소로 많이 가는 가평, 청평, 대성리 등지의 접근성 역시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압구정, 신사, 강남, 한남동, 이태원, 동대문 등 주요 지역으로 가는 버스편 역시 잘 되어있고, 심야버스 역시 N62N73 2 개 노선이 왕십리역과 한양대 앞을 경유한다. 2020년 12월부터는 성동03-2번 마을버스가 행당역왕십리역을 경유하여 캠퍼스 내부를 운행한다.

그렇다고 항상 학교를 마치고 왕십리를 벗어나서 노는 것은 아니다. 왕십리역 상권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공대로 유명한 학교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우중충한 분위기의 술집이 즐비했었지만, 왕십리역 민자역사의 완공으로 이마트 왕십리점, CGV 왕십리, 엔터식스 등이 들어서고, 서울숲 더샾의 입주 등으로 인해 일대 상권이 상당히 개발이 많이 되어 오늘날에는 대규모의 로데오 거리가 형성되어있다. 따라서, 왕십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실제로 신촌, 건대, 강남 등지로 나가면 왕십리에도 똑같은 가게가 있는데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가면서까지 와야하는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현타가 오고 서서히 왕십리에 눌러앉는다. 그만큼 왕십리에 있을 만한 것들은 웬만히 다 있다는 것. 특히 CGV 왕십리는 규모에서 국내 2위에 해당한다고 전해진다.

접근의 편리성 덕분에 변호사시험, 행정고시, 기술고시,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각종 국가고시, 전문자격시험의 고사장으로 인기가 높다. 이 시험들은 토익이나 한능검처럼 전국 방방곳곳에 고사장을 마련할 정도의 규모까지는 아니라 타지역에서 상경하는 수험생들의 편의성도 고려해서 고사장이 정해진다. 한양대 서울캠퍼스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서울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수서역에서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2010년대 말부터 서울숲,성수의 상권이 커지면서 그곳으로 이동해서 노는 경우가 꽤나 많아졌다.


3.5. 편의시설[편집]


편의점은 생활과학관 앞 건물에 있는 싸군[9], 인문관의 이마트24, 신소재공학관의 세븐일레븐 등이 있다. 역사관에는 한양대 로고 굿즈들을 파는 기념품점이 있다. 한양플라자라는 학생용 대형 복지관도 있는데 모닝글로리, 식당, 편의점, 안경점, 복사실 등 없는게 없다.

4. 개설 학과[편집]


이하의 개설 학과들은 공식 사이트에 나오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4.1. 학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학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HYU_logo_singlecolor_png.png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학부
공과대학
공과대학
소프트웨어대학
반도체공학과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정보시스템학과
미래자동차공학과
건축학부
건축공학부
건설환경공학과
도시공학과
자원환경공학과
융합전자공학부
전기·생체공학부
신소재공학부
화학공학과
생명공학과
유기나노공학과
에너지공학과
기계공학부
원자력공학과
산업공학과
의과대학
인문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정책과학대학
의예과
의학과
국어국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정치외교학과
사회학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관광학부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생명과학과
정책학과
행정학과
경제금융대학
경영대학
사범대학
생활과학대학
음악대학
경제금융학부
경영학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육학과
교육공학과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
수학교육과
응용미술교육과
의류학과
식품영양학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성악과
작곡과
피아노과
관현악과
국악과
예술·체육대학
국제학부
간호대학
산업융합학부
창의융합교육원
스포츠산업과학부
연극영화학과
무용학과
국제학부
간호학과
산업융합학부




4.2. 대학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양대학교/대학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캠퍼스
일반대학원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도시대학원
국제학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의생명공학전문대학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공학대학원
공공정책대학원
교육대학원
언론정보대학원
국제관광대학원
임상간호대학원
부동산융합대학원
보건대학원
상담심리대학원
인공지능융합대학원
ERICA캠퍼스
일반대학원
일반대학원
특수대학원
융합산업대학원




5. 교통[편집]


}}}}}}||

교내 인근
121 · 302 · 2012 · 2013 · 2014 · 2016 · 2222 · 4211 · N62 · N73
셔틀버스
한양대병원
셔틀버스
한양대역

파일:한양대학교의료원 심볼.svg 한양대학교병원
(의과대학)
왕십리역 · 성동노인복지관(마장역)
한양여대
셔틀버스
왕십리역

파일:한양여자대학교 엠블럼.svg 한양여자대학
한양대역 · 마장역
}}}}}} ||





6. 행사[편집]



6.1. 라치오스 (RACHIOS, 樂醉娛秀)[편집]






파일:external/www.newshyu.com/20952_33041_5146.jpg

한양대학교 봄 축제 '라치오스 (RACHIOS, 樂醉娛秀)'

라치오스 (RACHIOS, 樂醉娛秀)

포효하라 사자들아, 울려라 푸른 심장을

-라치오스 공식 슬로건-

라치오스(RACHIOS)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봄 축제 명칭으로, ‘즐거움에 취하고 그 즐거움은 빼어나다’ 라는 의미인 락취오수(즐거울 락樂 취할 취醉 즐거울 오娛 빼어날 수秀)를 어원으로 두고 있다는 설이 정설이다. 이외에도 술에 취하듯 취한다는 의미의'취醉' 자를 바꾸어 무엇인가를 가지다는 의미를 가진 '취取'를 쓴 락취오수(樂取娛秀)'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즐거움을 취하고(가지고) 그 즐거움이 빼어나다'라는 의미로 뜻이 살짝 바뀌게 된다. 하지만 가능하면 원 표기인 樂醉娛秀 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10]

또한, 상록수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티모르 섬의 감탄사 라치오스와 카리오스에서 유래된 "라치오스 꼬레! 카리오스 꼬레!"라는 구호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존재한다. 라치오스라는 명칭이 처음 축제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2009년 봄 축제부터인 것으로 확인되나, '라치오스'라는 구호가 교호에서도 버젓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아 라치오스라는 구호 자체는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전히 정형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봄 축제의 명칭은 '라치오스'를 주 제목으로 하고 뒤에 2~4글자 내외의 부제를 붙이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2014년 경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라치오스의 대가 잠깐 끊겼던 적이 었었으나, 한양대 학생들의 노력으로 2018년에 '라치오스'라는 명칭이 부활, 현재는 이기정 총장과 정현철 교학부총장의 '라치오스' 봄 축제 공식 명칭 선포 및 상표권 출원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연도
축제 명칭
비고
2009년
라치오스 피에스타

2010년
라치오스 페스티벌

2011년
라치오스 피에스타

2012년
라치오스 피에스타

2013년
라치오스 피에스타

2014년
X
세월호 참사 발생
2015년
대동제 : 대.방.출

2016년
대동제 : 자체발광

2017년
대동제 : 하이파이브(HY-Five)

2018년
라치오스 : 비상

2019년
인피니티 라치오스

2020년
X
코로나19로 인한 축제 무산
2021년
라치오스(취소됨)
코로나19로 인한 축제 취소
2022년
라치오스:도약
대면행사 재개
2023년
라치오스:파랑

라치오스는 과거부터 재미있는 대학축제로 유명했는데, 라치오스가 재미있는 대학축제로 여겨지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양대학교 자체가 지하철 접근성이 굉장히 좋은 학교여서 오가기가 쉽고[11] 그러다 보니 축제가 끝난 후 건대입구 등 주변 주요 상권으로 이동하기가 편리하다. 물론 왕십리 상권도 축제날에는 미어터지는 건 기본.

또한 라치오스의 주무대가 노천극장이여서, 연예인 공연시 시야 확보가 잘 되는 편이라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예전부터 남초학교로 유명했던 곳이다 보니 연예인 공연때의 열광적인 함성 또한 상당한 편. 특히 남초학교의 열광적인 함성은 여돌과의 궁합이 최상인지라, 라치오스에서는 반드시 그 시대를 풍미하는 메인 여돌은 어떻게든 사수해내는 편이다. 2011년 소녀시대가 왔을 때의 한양대첩은 아직도 후배들 사이에 그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한양대 윈터'와 같이 아예 대명사를 만들어버리는 등, 간간이 여돌계와 대학축제계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는 한다.

라치오스만의 재미를 더하는 또 다른 볼거리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응원문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워낙에 응원문화로 유명한 두 대학을 제외하고는, 응원문화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학교라고 볼 수 있겠다. 한양 블루에 맞춘 파란 드레스코드+ 노천극장을 꽉 채운 파란색 응원봉투가 만들어내는 푸른 노천극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응원가도 신나고 따라 부르기 좋은 곡들이 많다보니, 단체로 어깨동무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배에서부터 뽑아내는 응원가 떼창은 학교 전체에 메아리칠 정도다. 연예인 공연때보다 더 화력이 좋은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도 무료 입장에 응원가를 잘 모를 외부인들도 다 받은 상황에서 뽑아내는 함성이란 걸 생각하면 가히 일당백이라 볼 수 있겠다.


한양대 응원가 '한양을 위하여' 떼창 영상 (2022)


6.2. 애한제[편집]




애한제:한양으로 물들이다 소개영상(2022)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봄에 라치오스가 있다면, 가을에는 애한제가 있다. 애한제는 한양대학교의 FM구호인 '애국한양'을 줄여 애한제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고, 라치오스보다도 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애한제는 라치오스보다 부제 설정이 자유로워, 대부분 부제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9월 말~10월 초에 진행되는 애한제는 보통 라치오스보다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데, 그러다보니 애한제는 한양인끼리 소소하게 가을을 보내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응원제만큼은 예외인데, 라치오스에서의 응원제 선행학습효과와 노천극장의 높은 한양대 구성원 비중의 시너지로 마이너한 응원가까지 떼창소리가 라치오스때보다도 더 크게 나온다.

애한제에서는 한양대 구성원의 동아리 공연, 스포츠 행사가 축제 콘텐츠의 메인이 되며, 라치오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아기자기한 이벤트가 같이 진행된다.


7. 커뮤니티 사이트[편집]



7.1. 위한(WEEHAN)[편집]


해당 항목 참조

7.2. 자유게시판[편집]


한양대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자유게시판이 학내 커뮤니티로서 매우 활성화 되어있었다. 그러나 2011년 홈페이지 개편으로 인해 이전 게시글이 날라가버리고, 게시판에 플래시를 깔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접근이 어려워져 이용자 수가 급감했다. 현재는 속도나 접근성에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당시 이용자수가 급감한 이후로 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다. 2016년 9월 홈페이지 개편 이후에는 상단의 광장 탭에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7.3. 휴비즈(HYUBIZ)[편집]


경영대학 커뮤니티 사이트. 한양대학교 전체 여러학과 자체 커뮤니티들 중에서도 순위권의 사이트로 경영대학 소속 동아리 휴비즈에서 운용한다. 학번만 있을 경우 가입신청 후 약 24시간 안에 등록이 되고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타과학생들도 물론 이용이 가능하다. 원래 학교내 경영대학 홈피내 자유게시판이 있었는데 학사과의 불친절함을 불평하는글을 올린 사람한테 댓글로 XXX 학생 학사과가서 물건 찾아가세요 하는 직원의 친절한 댓글이 달리고 나서 직원들이 관리자아이디를 마음껏 이용해서 신상정보가 보호안된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경악했다. 가장 활발하던 경영자게가 거의 폐지크리 당하고 경영대학생이 사비로 서버를 두고 만들게 되어 휴비즈가 생겼다.

2022년 기준 기존 도메인 사이트는 한 광고대행사의 회사 홈페이지로 변경되었다.


8. 동아리[편집]



8.1. 중앙동아리[편집]


서울 중앙동아리는 6개 분과(교양, 공연예술, 전시창작, 종교, 체육, 학술분야), 68개의 중앙동아리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동아리의 자세한 소개는 한양대학교 비교과통합관리시스템(HYLU)[12]에서 확인 가능하다.HYLU 중앙동아리
  • 학술분과
    • HECC: 영어회화 (연합)
    • 에르디아: 독서토론 (연합)
    • HUSE-C: 스피치
    • SSC: 영어토론 (연합) 인스타그램
    • HACE: 문화답사
    • HUHS: 컴퓨터
    • HASRA: 천체관측 (연합)
    • 흰뫼경제연구회: 경제연구 (연합)
    • TIME: 학술영어 (연합)
    • 한토막: 토론
    • KUSA: 유네스코 학생회
    • HERA: 영어회화 (연합)
    • HAMA: 경영연구회 (연합)
    • HLUG: 리눅스 (연합)
    • 어프라임: 사회공헌기술(적정기술)중앙동아리
    • FORIF: Web & App 개발

  • 체육분과
    • 하이시클: 자전거 (연합)
    • 러너스하이: 육상
    • 하이민턴: 배드민턴 (연합)
    • 오렌지볼: 탁구
    • 갈무리: 민족무예 (연합)
    • IMS: 수영 (연합)
    • HYTC: 테니스 (연합)
    • : 택견 (연합)
    • KIWI: 행글라이더
    • 스킨스쿠버: 스킨스쿠버 (연합)
    • MUTE: 보드 (연합)
    • 검우회: 검도(연합) 동아리이다. 2022년 징계를 받아 중앙동아리 자격을 박탈당하고 강등되었다.
    • 한양기우회: 바둑 (연합)
    • 한양유도회: 유도 (연합)
    • 미식축구부 LIONS: 미식축구
    • 아마야구부: 야구 (연합)
    • 한양요트부 HYYC: 요트 (연합)
    • 15ERS: 농구 (연합)
    • 산악부: 등산 (연합)
    • HVZ: 배구 (연합)

  • 종교분과
    • 예수전도단: 기독교 (연합)
    • 네비게이토: 기독교 (연합)
    • 불교학생회: 불교 (연합)
    • 가톨릭학생회: 천주교
    • JOY선교회: 기독교
    • 한사랑선교회: 기독교 (연합)
    • CBA: 기독교
    • CCC: 기독교
    • IVF: 기독교
    • SFC: 기독교
    • ESF: 기독교

  • 전시창작분과
    • 그리아미: 순수미술
    • 그릴마당: 시사만화
    • 라미문학회: 문학
    • 영화연구회 터: 영화
    • 한양서예회: 서예
    • 하이제닉: 패션 매거진
    • HYPO: 사진

  • 교양분과
    • 한양캠피로타랙트: 국제/국내자원봉사,Rotaract(연합)
    • 휴머니스트: 환경봉사
    • 한양어린이학교: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암환우교육봉사
    • 고전음악회: 음악 감상 동아리

  • 공연예술분과
    • 소리개벽: 밴드 동아리
    • 한양 GLEE: 합창 동아리 (연합)
    • Scharmant: 클래식 기타 동아리[13]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 락 더 보헤미안: 록 음악 감상/밴드
    • HANAKLANG: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
    • 소리울림: 어쿠스틱 밴드 동아리
    • SHOWDOWN: 흑인음악 동아리[14][15][16][17]
    • 소리로크는나무: 음악 창작 / 밴드 동아리

8.2. 창업동아리[편집]


한양대학교는 창업 활동을 촉진 및 지원하기 위해서 창업동아리 제도를 만들었다. 교내에 있는 글로벌기업가 산하에 이를 편성하여 지원하고 있다.

  • 키다리은행: 대학생 자조금융협동조합 모델


8.3. 취업동아리[편집]


한양대학교는 재학생 및 졸업생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취업동아리 제도를 만들었다. 교내에 있는 커리어개발센터(HY-CDP)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다.

매 학기 취업동아리 인원을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으며, 2021년도부터 예비 취업 준비생들(3학년)을 위한 취업 첫 걸음 동아리 운영을 시작하였다.

9. 운동부[편집]




9.1. 축구부[편집]


한양대학교 축구부도 야구부 못지 않게 강팀이다. 한국 축구는 4-4-2가 다 해먹는다는 말에서 4-4-2가 연대, 고대, 한대[18]일 정도, 이회택 부터 시작해 박경훈, 박항서 를 비롯해, 신홍기, 이태형, 정재권, 이관우, 김남일 최근에는 주민규까지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많다.

9.2. 농구부[편집]


한양대 출신으로 유명한 농구인은 단연 추승균. 그 이후에도 양동근[19] - 조성민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가드진의 에이스를 배출했고, 10학번 이재도는 재학 시절 육상농구 돌풍을 이끌며 팀을 하드캐리했으나, 동기인 경희대학교 빅3(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프로 2년차만에 JD4[20]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활약했다. 그 때문에 믿고 쓰는 한양대 가드라는 드립도 나왔고,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양대 12학번이자 LG에 지명된 한상혁이 '믿고 쓰는 한양대 가드의 계보를 잇겠습니다'라는 지명소감을 밝혔을 정도였다. 2014년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된 최원혁은 201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상대편 외국인 선수 디온테 버튼을 락다운시키는 엄청난 수비를 선보이며 팀을 우승시켰고, 2020년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된 오재현은 2라운더 지명에도 해당 시즌 신인왕을 수상해 2005년 양동근 이후 16년만에 한양대 출신 선수가 신인왕을 수상, 한양대 가드 계보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9.3. 배구부[편집]


배구부는 성균관대학교와 라이벌 의식을 형성하며 1991년 대통령배 대회(백구의 대제전)에서 대학팀 중 유일하게 금빛 트로피를 들었다.[21] 이 시절 간판 선수가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장재원, 문양훈 등이었고 이후 김세진, 최태웅, 석진욱, 이경수, 윤봉우, 이선규, 한선수 등이 한양대 배구부를 빛냈다.


10. 총학생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총학생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기타[편집]



11.1. 공대생들의 ENDLESS PAIN[편집]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 사이에서 미적분학1,2와 공업수학1,2 중에서 F를 한번도 안맞고 한번에 통과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괴물 혹은 미친놈이라고 불린다. 한학기마다 수강인원의 30퍼센트가 의무적으로 F를 맞게 되므로 4학기 연속 F를 맞지 않고 한번에 통과하는 확률을 단순히 계산해 보면 0.7^4=0.2401=24%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다수인 76%는 한번이라도 F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통과한 24%에는 C학점을 맞는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미적분학1,2나 공업수학1,2를 한번도 재수강 없이 졸업하는 학생은 더더욱 적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원래 학점은 F받는 사람들은 고시 준비를 하거나, 공기업 준비를 하는 사람 같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실제로 저 비율만큼 높지는 않다.

공과대학에서는 F융단폭격 뿐만 아니라 전문 교수진, 공업수학 경시대회를 통해 미적분학과 공업수학에 대한 교육의 열의를 보인다. 실제로 미적분학과 공업수학을 가르치는 정식으로 임용된 교수님들이 계시며 정선영 교수님 강의노트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처럼 한양대학교 공대생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공업수학 바이블로 불린다. 책 내용을 한글자도 보지 않고 정선영 교수님 강의노트로만 열심히 공부하고도 A를 맞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다.

11.1.1. 공업수학과 F학점[편집]


거의 모든 공대생들이 2학년 때 들어야하는 필수 과목인 공업수학 1, 2도 당연히 미적분학 1, 2처럼 하위 30% 학생들에게 매 학기 무자비한 F를 부여한다. A와 B의 비율도 다른 상대평가 과목과 달리 A는 상위 20%까지, B는 상위 20% ~ 50%까지다. B만 맞아도 중간안에는 들어간 셈이다. 영어전용강의도 별도의 기준없이 국문강의와 동일한 평가쳬계로 성적을 준다.

반별 평가가 아닌 공대의 모든 학과가 같은 시간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본다. 당연히 성적은 반별 퍼센티지가 아닌 전체 수강생 기준 퍼센티지로 나간다. 다만 계절학기는 반별 자체시험 및 자체평가다. 시험유형은 증명 등의 유형은 거의 없고 문제를 열심히 풀면 된다. 6문제만 막힘없이 풀면 된다. 여기까지만 듣고 별거아니네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제한시간은 50분으로 6문제를 풀기에는 다소 빠듯한 시간이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적급간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많은 공대생에게 부담과 공포를 주는 시험이다.

11.1.2. 미적분학과 F학점[편집]


공과대학 1학년 때 수강하게 되는 필수 과목들 중 미적분학 과목[22]은 열심히 공부하는게 좋다. 타 공과대학 과목의 권장기준인 A + B=30 + 40% 상대평가를 과감히 씹어버리고 매우 무자비한 평점을 자랑하며 약 30%의 학생들이 F를 맞는 무시무시한 기초필수 수업이다.[23] 다시 말하지만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시험의 난이도는 매년 상당히 달라지며, 2010년 이전의 족보를 보는 것은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최근엔 매우 어렵게 출제된다. 2014학년도부터는 F학점도 성적기록에 남기 때문인지 미적분학1을 F를 받더라도 2를 이수할 수는 있다. 따라서 열심히 해서 잘 해두자. 정 수학에 자신이 없다면 정규학기에 듣기보다는 계절학기때 듣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정규학기보다 훨씬 학점을 따기가 수월하다.


11.2. 공업수학 경시대회[편집]


공과대학에서는 매년 공업수학 경시대회를 개최하며 우승자들에게 현금으로 수십만원씩 꽂아준다.[24] 혹시 학자금대출이 있어도 한국장학재단에서 안 뺏어간다. 간혹 수학과 대학원과정을 씹어먹는 무시무시한 난이도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백점을 맞고 상금을 쓸어가는 괴수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증명보다는 혹독한 계산을 요구하는 테크닉이 중요시되는데 인간계산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외부(연구원이나 기업)에서 한양대생들은 수학을 잘한다'는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며(물론 편차가 존재한다.) 혹독한 교육으로 갈고 닦은 공업수학 실력에 대한 졸업생들의 자부심이 상당하다.

또한 이 대회는 교내 공모전의 성격[25]과 유사하며 수상 실적은 전공과 연계가 매우 강력하여 취업 및 대학원 진학시 이력서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 실적이다.


11.3. 풍수지리[편집]


한양대학교는 서울 시내 대학들 중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입지에 위치해 있다. 왕십리가 조선의 도읍지가 되었다고 가정하면[26], 풍수지리로 볼 때 내산(뒷산)이 되는 행당산 위에 위치해 있는지라, 한양대에서 제일 높은 인문대 옥상[27]에서 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용마산), 관악산, 청계산, 남산 등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산들이 병풍처럼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청계천, 중랑천[28] 그리고 한강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위치로 인해, 무학대사궁궐을 현 한양대 부지에 지으려고 했다.[29]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위치한 만큼 주경, 야경 모두 정말 멋있다.

현재 백남학술정보관(속칭 중도)이 위치한 자리는 조선시대 마조단이 위치한 자리였으며 마조신은 조선시대에 전쟁의 신이자 군마의 신이었으며 종묘와 사직단 다음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이는 이 일대가 대규모 목장이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군마 등을 양성하는 곳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백남학술정보관 근처에 마조단이 있었다는 흔적과 작은 비석이 남아있다.

한양대학교 서울은 주변의 너른 평지 한 복판에 우뚝 서있는 돌 산위에 조성돼 있다보니 양기(陽氣)가 굉장히 강해 남학생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돌 산 가장 높은 곳에 시계탑이 딱 하니 박혀 있으니... 아시다시피 시계탑은 제주도의 돌하르방처럼 양기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그 양기를 억누르고자 사범대 앞에는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조형물을 배치해 기를 맞추려 했다는 이 있다.(사범대 H모 교수님 증언) 또 한나라 한(漢)자와 볕 양(陽)자도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보면 양기에 해당하는 글자이고, 성명학에서도 여성의 이름에는 거의 쓰지 않는 글자다.

11.4. 학생운동과 대학문화[편집]


과거 한양대는 전국조직에서 네임드[30]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5기 한총련 이적단체 판결 이후 한총련이 쇠락을 길을 걷기 전까지[31] 10명의 의장중 3명이 한양대 출신이다.[32] 구체적으로 전대협 3기의장 임종석(무기재료 86), 5기의장 김종식(사회 87), 한총련 1기의장 김재용(정외 88) 등,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학생운동의 파급력이 대단했던 8-90년대 사회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의장을 배출한 학교가 주목 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덕분에 8-90년대 학번 일반 학생들이 전의경에 들어가서 학교가 한양대라고 하면 그 이유만으로 엄청난 비난과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이는 이 학번대 한양대를 나온 자교 출신 교수들의 공통된 증언이다.[33]


특히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워낙 경찰에 안잡혀 별명이 임길동이었는데, 인문대 올라가는 계단에 비밀 공간을 파고 일주일간 숨어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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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평양 세계학생축전 남한측 집회 참가 행렬.[35])
뭐 당연한 이야기 겠지만, 네임드들이 많아서 전국적 행사 무슨 무슨 출범식, 무슨 무슨 대회가 계획대로 잘 안된다 싶으면 한양대를 배경으로이었다. 참고로 한양대 사수대 이름은 행당불패[36]였다. 학생운동 역사상 가장 유명한 tac도 한양대를 배경으로 시위 학생들을 가득실은 전철이 학생들이 한양대역에 내릴 것을 우려해서 정차하지 않고 바로 뚝섬역으로 직행하자 뚝섬역에서 학생들이 모두 내린다음 지하철 철로를 뛰어내려 한양대역으로, 그다음 한양대에서 미리 만들어둔 사다리를 내려주자 그걸 타고 한양대 입성했다. 당시 성동경찰서 정보과에서 오늘은 우리가 졌다. 고 총학생회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야기 때문에 당시 군대 자대에서 한양대 출신이라고 하면 중대장의 의심어린 눈초리와 함께 면담을 한번 더 해야했다는 웃지못할 선배들의 얘기도 전해진다.

대학문화의 쇠퇴와 더불어 지금은 FM이라고 불리는 각 단위 꾸밈말[37][38]을 통한 자기 소개는 봄만 되면 캠퍼스 곳곳과 왕십리 술집과 한양부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심지어 자기 이름 앞에다도 붙였다.

90년대에는 학생들이 주옥같은 한양대의 지리적 특징들을 이용해서 시위진압 중인 경찰들에게 어느새 고지점령전을 선물해주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게 되어 캠퍼스 자체가 한양요새라는 별칭으로 불렸다.[39][40]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예비역 복학생들이 길에 마음먹고 바리케이트를 쌓은 후 군대에서 배운 각종 전술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백골단도 쉽게 손대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96년도 연대사태 시절 한양대 고지[41]를 점령한 학생 시위대가 화단 등의 벽돌을 떼어내 투척하는 바람에 학교 내 벽돌들이 흉물스러운 몰골이 되었던 일도 있었다. 사족으로 예나 지금이나 한양대의 건축공학과토목공학과는 국내에서 톱의 위치를 달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학교 지도 한장 펴들고 전략요지에 바리케이트를 쌓았다면? 심지어 인문대 옥상에는 투석기가 있었다는 80년대 90년대 학번의 증언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며 사거리는 대략 한마당까지였던 걸로 기억되고 있다. 1997년도에는 한양대에서 개최된 한총련 행사에서 경찰 프락치 오인 사건이 발생했다. 구체적 내용은 이석 치사 사건 문서 참조.

과거 한양대는 운동권 이미지가 강했으나 2002년에 소리 없는 명예혁명(약칭 소명) 학생회가 등장하여 무려 5년간 이어간다. 그렇게 2002년~2006년 비운동권 학생회가 집권했으나, 이후 비운동권과 운동권이 번갈아 총학생회를 집권해오고 있다. 2008년에는 체인지 포유(Change4U) 총학생회 한총련 사건, 이정희 한양대 강연 취소 사건기사, 나꼼수의 김용민 한양대 강연은 파리를 날리기도 하는 등 기사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권의 색채를 많이 벗어내고 있다.[42] 하지만 19대 대선 때는 대선 후보 초청을 한양대 총학생회가 총대를 매는 등, 여전히 사회정치적 참여는 활발한 편이다.

11.5. 행당캠퍼스의 유래[편집]


예전에는 서울캠퍼스라는 명칭 외에 행당캠퍼스라는 명칭도 간혹 불려지곤 했는데, 이 명칭은 서울캠퍼스가 위치하는 동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즉 서울캠퍼스가 위치하는 행정구역이 바로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캠퍼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반드시 특정 행정구역과 연계를 지어야 할 필요가 없고, 자신들이 불러주길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줘야 하기 때문에 엄연히 잘못된 명칭이다. 학칙에서도 서울캠퍼스라고 명명하고 있다.


11.6. 사랑의 실천[편집]


2018년 이전에는 'HELP'라고 불렸다
Hanyang Entrepreneurial Leadership Plus[43]

교육공학과 송영수교수의 주도로 한양리더십센터에서 진행하는 필수 교양인 온라인 강의이다. 재학 중인 서울 한양인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과목이기도 하다. 05~08 교육과정부터 적용되었다. HELP1 ~ HELP4까지 4개의 강의를 매년 하나씩 들어야한다. 각 강좌들은 '휴먼리더십', '글로벌리더십', '비즈니스리더십', '셀프리더십'을 주제로 한학기동안 진행되며, 교과서에서 접하기 힘든 지식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정치편향적인 내용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매년 논란이 되는 수업이다.

2009년까지는 온라인으로 시험을 실시하였으나, 워낙에 많은 인원이 응시하는 시험인 탓에 서버가 버티지 못하여 시험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취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고, 결국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오프라인 기말고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오프라인 시험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학업부담을 가중시키는 과목이라는 비판이 많았고, 결국 2015년부터는 매주 온라인퀴즈와 기말과제로 대체되어 불만이 다소 줄어들었다.

2016년 1학기 9주차 강의에 사용된 자료에서 여성혐오 및 편견을 조장할 여지가 있는 사진이 사용되어 논란이 되었다. 해당 자료는 '마음을 훔쳐라! 욕망을 자극하라! 꿈을 팔아라!'라는 소주제 하에서 이루어진 수업에 사용되었는데,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에게 남성이 반지를 내밀자 여성이 다리를 벌리는 사진이 연달아 게재된 것. 총학생회에서는 "(해당 사진 자료가) 강의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데다가 내용 자체가 심각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수업자료에 포함된 사진의 삭제와 리더십센터의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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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재학생들의 HELP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6년 6월 9일에 사회대 앞에 붙은 대자보이다. 이후 2016년 10월에는 총학생회에서 HELP 필수수업 제외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HELP 3의 과제에서 시장경제적 측면을 옹호하는 내용을 정답으로 요구하는 과제를 낸 데에 반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결국 2016년 11월, 학교 측이 총학생회의 안건을 받아들여 다음 학기부터 HELP4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2017년 1학기, HELP1은 온라인 기말시험으로 되돌아왔다. 국문은 20분에 30문제, 영문은 20분에 25문제로 출제되었고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난이도로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2019학년도부터 HELP과목은 성적 평가방식이 P/F로 전환되었다.

12. 사건사고[편집]


  • 이태원 압사 사고로 학생 3명이 사망했다. 미국인 사망자 2명이 모두 한양대 유학생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나머지 1명은 한국인 학생이다. #

12.1. 단톡방 성희롱 사건[편집]


한양대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고발글로 인해 촉발된 논란이다. 한양대 남학생 4명이 미팅을 했던 여학생들을 상대로 “다 따먹자”, “장거리 왜 함”, “한입하기엔 좋긴 해”, “함(한번) 대주면 감”, “대줘도 안 감”, “○○는 그 누구의 취향도 아니지 않냐?” 등의 희롱성 발언을 했다. 또 여학생들의 사진으로 추정되는 게시물을 올렸다 지우며 자매의 외모를 언급하기도 했고, 음란물로 추정되는 링크를 공유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남학생들의 카톡방 내용을 미팅 당사자의 친언니인 A씨가 본인들의 입장과 함께 에브리타임에 게재했다.

수 시간 뒤, 남학생 측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위의 언급된 내용들 중 일부는 미팅 당사자들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단지 본인들끼리 나눈 이야기일 뿐이라는 해명과, 그것들을 제외한 일부 발언에 대한 논란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한편, 해당 카톡 내용 캡쳐본이 글쓴이 측에 어떻게 넘어가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은 서로 주장이 달라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다.

최초로 글을 올린 당사자인 A씨는 “저와 동생 그리고 함께 미팅에 나갔던 여학생들은 하루하루 단톡방 내용이 떠올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학교 축제가 두려워 즐기지도 못했다. 술자리에 가기도 꺼려질뿐더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 “이번 학교 축제에서 술을 마시고 즐기는 사진으로 바뀐 남학생들의 프로필을 보며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글을 쓴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23년 6월 11일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며, 교내 인권센터에도 신고한 상태라고 한다. #


13.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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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최초의 사립 공과대학[2] 교원 3,190명 + 직원 613명[3] 파일:external/www.hanyang.ac.kr/256a.jpg[4] 그래서 병원 장례식장 엘리베이터 → 병원 에스컬레이터 →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중앙도서관까지 올라가는 루트 등을 이용하기도 했었다.[5]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만들어준 정몽구 미래자동차 연구센터[6] 물론 지금 옥상은 폐쇄되었다.[7] 제2공학관에서 공업센터 본관을 거쳐 신소재공학관으로 가거나 혹은 공업센터 본관에서 공업센터 별관으로 이동한 다음 FTC로 이동할 수 있다.[8] 건대입구는 지하철로 5분, 홍대, 신촌은 20분, 강남역 20분, 이태원 20분, 혜화 15분 등이 있다.[9] 사자가 군것질 할 때. 세븐일레븐 편의점이며 재학생들은 다 싸군이라고 부른다.[10] 사실 醉의 오타로 取를 쓴 경우이겠으나, 이런 케이스가 너무 많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듯 싶다.[11] 학교 안에 지하철역이 있으며, 바로 옆 왕십리역은 무려 4개 노선 환승역이다. 미래에는 동북선이 개동하면 5개 노선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12] 비교과통합시스템 하이루(HYLU)는 2021년 학생가치창출팀이 제작한 사이트이다. 중앙동아리는 매 학기마다 진행하는 재등록 통과 여부에 따라 중앙동아리 자격을 유지/상실하기도 하며, 준동아리였다가 일정 조건을 통과하면 새롭게 중앙동아리로 승격되기도 하는 등 변동이 있다. 하이루에 올라온 중앙동아리 정보는 동아리연합회를 통해 각 회장단에게서 수합한 내용이기 때문에 가장 최신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아래 내용과 충돌하는 내용은 하이루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정확하다.[13] 동아리 출신 유명인물로는 유재하가 있다.[14] 자메즈, 진보(가수), 후디(가수)를 배출한 사실상 대학 힙합씬 최고의 동아리이다.[15] 2020년 8월 윤훼이의 샤라웃을 받았다.https://www.eyesmag.com/posts/131526/INTERVIEW-YUNHWAY-BIBI-MISO [16] 2019년 각 대학을 대표하는 힙합 동아리의 대학생 래퍼들이 경연을 펼치는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 내 전공은 힙합에 출연했다.[17] 2018년부터 서울대학교 내 흑인음악 동아리와 매년 교류하는 대학 힙합 정기전-'수도전'을 진행하고 있다.[18] 썰전에서 이철희소장님 말씀[19] 수상 경력만 놓고 보면 KBL톰 브래디라 할 정도다.[20] NBA의 스타인 크리스 폴의 별명이 CP3인데, 이재도도 KBL에서 그에 버금갈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의미.[21]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농구대잔치 시절로 치면,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의 대학세가 실업 무대를 장악한 것보다도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서비스, LG화재, 상무 등의 실업팀들의 실력이 견고한데다 대학부에서는 성균관대와 라이벌이었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올라간 셈이었다.[22] 미적분학 1과 미적분학 2라는 이름하에 2개 학기 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23] 2002년 월드컵 4강 광풍이 불어닥치던 당시에는 시험을 보러 들어가기만 해도 C를 받았다고 한다.[24] 2000년대에는 100만원이나 줬다.[25] 경쟁을 통해 우열을 가려 별도의 참가비 없이 학교 예산으로 상금을 수여함.[26] 무학대사가 왕십리에 도읍을 세우려다 10리를 더 갔다는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의 뜻을 생각해 보자.[27] 엄밀히 말해 백남학술정보관(중앙도서관)이 제일 높지만, 옥상에 갈 수 없다.[28] 이 일대가 청계천이 중랑천에 합류하는 곳이다.[29] 10리를 더 가지 않았더라면 경복궁은 이곳에 세워졌을 것이고, 북악산은 행당산이 되었을 것이며, 서울의 중심지는 지금의 종로구 일대가 아닌 성동구였을 것이다.[30] 전대협 한총련 의장[31] 한총련 4기 이전이다.[32] 고려대 3명 전남대 3명, 나머지는 서울대 한 명[33] 단, 이 서술은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의 이야기이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공대가 중심인 학교 답게 이른바 문과 중심인 타 대학에 비해 학생운동의 세가 약했다. 당시 학생운동가에서 말한 이른바 "메이저 캠"은 서연고서성 5개 대학이고 한양대는 80년대 후반이나 되어야 메이저 캠으로 대접받았다. 여담으로 한양대는 1992년 마지막 전대협 발대식을 자교 캠퍼스에서 개최했다. (이듬해 최초 한총련 발대식은 고려대학교)[34] 덤으로 워낙 수려한 외모로 당시 여고생 인기투표에서 연예인을 제치고 1위를 할 정도였다. 당시 잡혔을때 인터뷰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뉴스가 될 정도다.[35]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택이 있었던 이 집회는 불법 집회로 간주하여 원천봉쇄 했으나 위 사진과 아래 서술처럼 학생들은 들어왔다. 물론 이후 경찰이 학내로 진입, 대거 검거작전을 수행했으며 당시 임종석 전대협 의장은 인문대 배수로를 이용, 학교를 빠져나갔다.[36] 전남대는 오월대, 조선대는 녹두대[37] 90년대 선배들 왈 '사실 한양대에서는 FM이라는 국적 불명의 말 쓰지도 않았다. 고대애들이나 되도않게 FM 이라 불렀지, 우린 언제나 아지라 그랬다.' 참고로, 아지는 agitation의 준말[38] 아직 인문대는 다 아지라고 한다.[39] 고지대도 고지대지만 학교 건물들이 구름다리 등으로 곳곳이 연결되어 있는 것 등은 외부인들이 알긴 알아도 쉽게 익숙해 질 수 없다. 당연 배수로 같은 시설물은 말할 것도 없다.[40] 게다가 웃긴 것 중 하나가, 1989년 당시 학생회관 건물은 5층 건물로 불렸는데 이게 서점 있는 곳이 1층, 로비와 식당 두개 층이 모두 2층(그래서 2층 로비, 2층 식당으로 부름), 이후부터 3층 강당 4층 학생회 5층 식당이였다. 초행자는 헷갈릴 수 밖에 없다. 심지어 5층에서 잘 모르는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이 있는데 이곳에도 몇개 동아리방 가건물이 존재했다. 은닉하기에 최적일 수 밖에.[41] 사회교육원 앞 주차장. 한양대역 지붕과 그 옆의 왕십리로를 내려다보는 곳이라서 말 그대로 요새처럼 느껴진다.[42] 그러나 김용민 강연은 총학생회가 아니라 한대련 계열이었던 당시 공대 학생회에서, 이정희 강연은 같은 계열의 동아리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했던 일이다.[43] 전에는 E가 Essential이었으나, 2017-2학기 HELP2 한국어 강의자료에서 확인한 결과, Entrepreneurial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