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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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야구부
(HANYANG UNIVERSITY)
창단
1961년
지역
서울권
소속
ERICA
감독
김기덕[1]
우승 기록[2]
36회




역대 전적
대회
우승
준우승
대통령기
7회(1965, 1971, 1975, 1979, 1992, 1997, 2014)
5회(1972, 1977, 1985, 2006, 2020)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6회(1946, 1976, 1978, 1985, 1999, 2001)
5회(1979, 1990, 1991, 1994, 1995)
협회장배/주말리그 왕중왕전
0회
0회
대학야구 춘계/하계/추계리그
18회 (1966, 1970, 1971, 1973, 1980, 1989, 1991, 1998(춘계),1972, 1974, 1976, 1979, 1989, 1991, 1994, 1996, 200, 2007(하계))
15회 (1969, 1974, 1975, 1976, 1977, 1990, 1995, 1996(춘계),1963, 1966, 1971, 1975, 1985, 1988, 1993(하계))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5회 (1983, 1984, 1985, 1989, 1993)
3회 (1976, 1988, 1996)

1. 개요
2. 역사
3. 여담
4. 역대 감독
5. 학번별 출신 선수


1. 개요[편집]


대학야구에서 연세대학교 야구부, 고려대학교 야구부와 3대 전통 강자인 학교다. 전국대회 우승과 준우승 횟수도 많고, 많은 한국프로야구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대학야구의 전통적인 명문이라 과거 및 현재 한국프로야구에 족적을 남긴 유명 야구선수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이름만 대도 대단한 선수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장효조, 김일권(중퇴), 김시진, 김용남, 이만수, 이상윤(중퇴), 류중일, 성준, 김동수, 정민태, 구대성, 유지현, 박찬호(2학년 중퇴), 이경필, 심수창까지 있었다. 참고로 이승엽도 한양대학교에서 스카우트해서 특기자 입학 결정까지 났었다.[3] 재미있게도, 2012년과 2013년 기준으로 야구 구단 감독 대부분이 고려대-OB 테크를 탄 사람들인데, 여기에 한 발자국이라도 안 담근 감독 셋은(김시진, 류중일, 이만수) 죄다 한양대-삼성 테크를 탔다.


2. 역사[편집]


1957년 한양대학교 야구부 창단 이후 해체되었다가 1961년도에 재창단되었다. 본래 서울캠퍼스 소속으로 서울 내 숙소와 연습장이 있었으나 ERICA 대운동장 리모델링 이후로 ERICA 소속이 되었다. 야구장은 서울에 있다가 경기도 구리시에 전용구장을 지어 사용했으나 현재는 ERICA 대운동장을 전용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4] 숙소는 2인 1실에 침대가 제공되는 최신식 시설이나 전용 야구장을 갖추지 못해 안산시에서 운영하는 흙구장을 임시로 사용했었다.


3. 여담[편집]


  • 유니폼은 두 종류다. 홈은 약간 누르스름한 백색에 주황색 줄 + 남색 배번호, 원정은 하늘색에 주황색 줄 + 남색 배번호 스타일이다. 벨트는 빨간색을 착용한다. 다른 학교들은 유니폼을 중간에 변경하기도 하지만 한양대는 전통의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 한양대 유니폼 스타일과 유사한 스타일을 입는 학교가 많다. 건국대, 동아대, 인하대가 그렇다.
  • 천보성 영입 당시 체육학과 정원의 초과되어 고교야구 선수들의 입학이 어려워질거 같자, 학교측에서는 머리를 굴려서 무용과로 인원을 배정해 입학시켰다고 한다. 대학들의 관행은 훗날 1980~1990년대에 법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신문방송학과 등 체육계통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공으로 선수들을 배정했다가 현재는 이와 같은 관행은 사라지고 이 현재는 체육계열에만 입학하고 있다.[5]
  • 천보성 감독이 재직 당시 입학 미끼 금품수수 사건이 터져 천감독 본인은 징역을 선고받았고, 부인은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 현재 선수 선발 권한은 코칭스태프에 없고 학교에서 선발한 다음 코칭스태프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거포타자가 필요한데 기동력 좋은 소총타자들이 입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 대구 지역 대학은 아니지만 삼성라이온즈 팬덤에서 영남대학교 야구부와 더불어 성골로 취급하는 야구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구 지역 프랜차이즈 선수인 이만수, 김시진, 류중일. 천보성, 정현발, 김한근과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성준, 박해민 등의 선수를 배출했기 때문. 또한 프로입단은 하지 않았지만 70년대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의 6관왕에 앞장서며 대구 지역 아마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에이스 남우식, 경북고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81년도 멤버인 권택재도 한양대학교 야구부에 몸담았었다. 또한, 이승엽이 진학을 염두에 뒀었다가 나중에 고의 낙제를 했던 학교가 한양대기도 하다. 거기다 한양대의 교수(校獸) 또한 사자이며 한양대의 상징색 또한 푸른색이다. 여러모로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깊은 셈. 현재 한양대 출신 삼성 소속 선수는 최채흥이 있다.
    • 이와 관련해서 심수창박해민이 위의 선수들을 언급하며 한양대 야구부는 전지훈련을 항상 대구로 갔다고 스톡킹에서 밝히기도 했다.
  • 이경필이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서 한양대 체육부의 전통인 사자승에 대해 설명했다. 한양대 체육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며 체조, 응원가 숙지, 그리고 얼차례까지 진행한다. 대선배인 김시진도 술회했다.#. 이경필이 신입생 시절 2학년인 박찬호가 제일 무서웠으며 훗날 이경필이 은퇴 후 박찬호를 인터뷰할 적에 본인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자세로 박찬호에게 질문했다고...
  • 한양대 야구부는 1,2학년이 훈련 전 김밥을 직접 만들어서 훈련장으로 가지고 갔다.[6] 야구부 02학번 이병규(작은 이병규)가 농구부 02학번 조성민과의 인터뷰에서 '김밥 마는 속도는 웬만한 김밥집 아주머니보다 빠를 것'이라고 술회할 정도다.# 김밥싸기는 스톡킹에 출연한 박해민의 언급에 따르면 자신이 신입생이었던 해부터 없어졌다고 한다. 박해민이 08학번이니 2007년까지 존속한 셈이다. 2007년까지 존속해 있었다면 07학번인 고종욱도 김밥을 말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구대성과 심수창의 회고에 의하면 타 종목 운동부와 제3 종목으로 시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예를들어 배구부와 야구부가 농구시합을 하거나 농구부와 야구부가 실내축구를 하는 식으로 대결하는 방식이다. 주요 운동부를 모두 운영하는 학교이고 같은 숙소 생활을 해서 가능했던 듯 하다.
  • 이종범이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를 다 제쳐두고 건국대로 진학한 이유를 스톡킹에서 설명하면서 한양대는 '매를 가장 많이 맞는 학교''숙소 생활이 힘든 학교'라고 특징을 설명한 바 있다.
  • ERICA 예체능대학 스포츠과학부 소속 한양대학교 야구부장 이현준이 2024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 8라운드 지명에 호명됐다.


4. 역대 감독[편집]


  • 김동엽 1978~1981
  • 배성서 1982~1985
  • 김보연 1985~2003
  • 이기호 2003
  • 천보성 2004~2012
  • 김한근 2013~2016
  • 김기덕 2017~현재


5. 학번별 출신 선수[편집]


학번
성명
72
남우식, 정현발, 천보성
75
김한근, 장효조, 차준섭
77
김시진, 김용남
78
이만수
79
이승희
80
김경표, 전용권, 한오종
81
김용국, 박흥식, 이상군, 이종두
82
권택재, 김건우, 김상국, 김수길, 성준, 이바오로, 이성근, 임경택
83
김종석, 류중일, 안성수, 장태수, 조용호
84
강영수
85
김보선, 나웅, 하용석
86
김기완, 김동수, 김성일, 임형석, 정윤원, 최현준
87
김기덕(SK), 김기덕(LG), 오희주, 이종택[7], 황일권
88
유태영, 정민태
89
구대성, 김갑중, 김현욱, 손차훈, 이민호, 정기창
90
김신, 안경환, 유지현
91
강인권, 도명진[8], 이원식, 조태상
92
강대진, 안명성, 오중석[9], 차명주
93
강혁, 권주현, 김창희 , 이경필, 이성만, 이영주, 장석희
94
김동건, 김수관, 이학균[10], 천재영, 홍민구
95
강의권[11], 김건덕, 라형진, 박상준, 이준철, 정성열[12], 정준현, 최동진, 허진석, 홍영석
96
경헌호, 김영준, 문진기, 이승현, 임성택, 전근표, 정일영, 최철영, 홍순광
97
강상권, 박영용, 이동철, 지승민, 한훈식
98
강승현, 강철민, 김민우, 문기석, 박우호, 박재완, 전용종, 정채윤
99
고영민, 김우룡, 신민기, 정종수, 최명환, 최재익, 편성준
00
김진욱, 서정호, 심수창, 양영재, 이영수, 이정호, 임재훈, 한상준
01
구제주, 구태완, 박명옥, 박성훈, 박정배, 오승택, 원정빈, 육현수, 이윤호, 황덕찬
02
이병규, 조순권, 조용원, 최길환, 최원영
03
곽동현, 김동민, 박민철, 조동현
04
김동현, 김영관, 명정주, 박대중, 박현, 오민철, 이명환, 이성민, 최상석
05
강동진, 김남식, 김수인, 김태범, 문대헌, 박윤석, 백상진, 유영욱, 윤찬수, 이용일
06
김범중, 송명섭[13], 이해창, 전성희, 최진규
07
고종욱, 김영은, 김응래, 명재철, 옥기윤, 장동우, 정재준, 채선관
08
박해민, 성의준, 오철호, 유지창, 전주원, 조용찬, 최지운, 홍성민
09
강성수, 김용지, 김제성, 김희빈, 박재민, 조덕길
10
김재현, 백승홍, 유영현, 유지훈, 이민재, 한규현, 한수빈
11
권정웅, 김대봉, 송재현, 여진석, 황인준
12
김재민, 김희준, 소재환, 심규민, 윤준식, 이재성, 최창용, 황현준
13
김세훈, 김태수, 이선재, 이재영, 정영선, 조기현, 조영빈, 조현준
14
김상엽, 김종인, 방종배, 오흥진, 유현기, 이창엽, 최채흥, 최현성
15
이승훈, 전효배, 조현수, 최성원
16
고명신, 고우송, 김도경, 김승규, 박성현, 오재호
17
고명수, 권순덕, 김태권, 박정현, 신철안, 최석호, 허승연
18
김민재, 신준혁, 양기범, 유준혁, 전인철
19
오현수, 이민영
20
김민준, 이준재, 이현준, 조재민, 홍의성
중퇴
김일권(77), 이상윤(79), 박찬호(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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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부터 김한근 감독이 퇴임하면서 감독직을 이어받았다.[2] 대통령배+전국대학야구선수권+협회장배/주말리그 왕중왕전+춘계리그+추계/하계리그+전국종합야구선수권[3] 수능점수 미달. 이승엽이 한양대에 스카우트된 후 환영회에 참가했는데,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수능날 1교시만 치고 시험을 포기했다고 힐링캠프에 나와 밝혔다.[4] 한양대학교 ERICA 대운동장이 한양대 동문의 후원을 받아 축구장과 야구장이 결합된 복합 운동장으로 리모델링되었다. 이에 따라 한양대학교 야구부가 ERICA로 최종 옮겨지게 되었다.[5] 운동부를 운영하는 모든 대학 공통으로 1999년도 입학생부터 적용되고 있다.[6] 대표적인 김밥 주방장으로는 심수창이 있으며, 강인권, 구대성, 정민태 모두 김밥을 말았다고 한다. 이 김밥 말이를 널리 알리게 된 건 당연 심수창의 회고.[7] 부산고 출신으로 대학야구 시절 강타자로 유명했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두터운 선수층을 뚫지 못하고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일찍 접었다. 딸 이수진은 골프선수로 활동중이다.#. 스톡킹에 출연한 이종범이 대학야구 시절을 회상하면서 한양대 멤버 중의 한 명으로 언급했다.[8] 현 장안고등학교 코치[9] 외야수로 박찬호의 공주고 동기이다. 2013년 공주고의 대통령배 우승 당시 감독이었으며 박찬호가 준결승전과 결승전에 찾아와 공주고와 오중석을 응원한 일화가 있다.[10] 1998년도 신인 드래프트 현대 2차 2순위 지명[11] 1994년 청소년대표 출신. 현 KBS N SPORTS PD.[12] 이승엽의 경북고 동기. 1999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했으나 1군 기록 없이 2002년 한화로 이적 후 은퇴.[13] 송민섭의 형이다.[14] 명예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