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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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언론인. 한국 초고속 인터넷의 아버지.
2. 생애[편집]
1940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오재성(吳在省)과 어머니 김해 김씨 김선호(金仙浩)의 딸[3] 사이의 2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에는 맏이인 누나가 있다. 경기고등학교에 이어 육군사관학교를 18기로 졸업하고 나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제3공화국 시절 장교로 복무하면서 육군사관학교 조교수, 부교수 등을 지냈으며,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었다. 제5공화국에서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비서관으로 있다가 체신부 차관,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1982년부터 TDX(전자식 전화교환기) 개발 사업을 추진해서 훗날 정보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조직위원장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다.[4] 이후 야구계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KBO 총재에 취임했으나 38일만에 교통부 장관으로 입각하였다. 이후 동아일보 사장, 회장, 건국대학교 총장, 아주대학교 총장, 과학기술부 장관, KAIST 이사장등 다양한 분야의 요직을 맡았다.
대부분의 생애를 과학기술계에서 활동한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의 전형이며, 한국 정보통신 인프라 설계의 주역으로 평가받으며 다수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전두환을 설득해 당시엔 최첨단 기술이었던 광케이블 백본망 매설 장기 계획을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서울올림픽을 위해 서울 각지와 대전-금산에까지 광케이블 매설을 실현하는 큰 업적을 남겨 오늘날 초고속 인터넷을 가능케 하는데 큰 이바지를 하였다.###
# 그러나 제5공화국, 특히 신군부의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직후에 세워진 국보위에서도 활동했다는 것은 오점이며, 진보 진영에서는 이 점을 들어 오명이 입각할 때마다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2005년 과학기술 부총리 시절에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발생하여 소관 부처의 수장으로서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2021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의 빈소에 방문했다.#
3. 기타[편집]
- 온누리교회 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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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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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복오씨 전자족보에는 2월 23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매암공파 28세 탁(鐸) 항렬. 족보명은 오명탁(吳明鐸).[3] 이전 리비전에서는 어머니가 김해 김씨 김선호(金仙浩)라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아버지 오재성(吳在省)의 족보에는 배우자가 김해 김씨이고, 아버지가 김선호라고 등재되어 있으므로 김해 김씨 김선호는 어머니가 아니라 외할아버지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4] 1993 대전 엑스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미국의 어깃장으로 까딱하면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반쪽짜리 대회가 될 뻔한 것을 겨우 수습했다.[5] 단, 이상득은 육사 재학 도중 부상을 당해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에 새로 입학했기 때문에 육사 동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