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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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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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윤하영
제2대
이광
제3대
이명구
제4대
정현모
제5대
정낙훈
제6대
김학응
제7대
정인택
제8대
황종률
제9·10대
조대연
제11대
고광도
제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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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신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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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정해식
제16대
태종학
제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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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정종택
제19대
김종호
제20대
임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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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혁
제22대
노건일
제23대
민태구
제24대
주병덕
제25대
이동호
제26대
이원종
제27대
김덕영
제28대
허태열
제29대
주병덕

제30·31대
이원종
제32대
정우택

제33-35대
이시종
제36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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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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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svg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정책위원회 의장
제9대
정세균

제10대
김영환


제11대
장성원

파일: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고.svg 사무총장
초대
박선숙

2대
김영환


3대
유성엽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제18대 전반기
정장선

제18대 후반기
김영환


제19대 전반기
강창일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갑)
선거구 개편
장경우[1][2]

제15-16대
김영환


선거구 개편
장경수[3]
임종인[4]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제18대
홍장표
[5]

제18-19대
김영환


제20-21대
김철민





대한민국 제21대 과학기술부장관

제36대 충청북도지사
김영환
金榮煥 | Kim Young-hwan


파일:김영환2022지선.png

출생
1955년 5월 27일 (68세)
충청북도 청주시 성안동
(現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1]
거주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청주동남 우미린 에듀포레[2][3]
본관
선산 김씨 (善山 金氏)
현직
충청북도지사
충북도립대학교 이사장[4]
상생과 통일 포럼 고문
재임기간
제21대 과학기술부 장관
2001년 3월 26일 ~ 2002년 1월 28일
제36대 충청북도지사
2022년 7월 1일 ~ 현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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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전은주(1958년)[1]
자녀
아들 김한결(1986년)
장녀 김하늘(1989년)
차녀 김하늬(1992년)
학력
청천국민학교 (졸업)
청천중학교 (졸업)
청주고등학교 (졸업 / 46회)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 석사)[2]
병역
병역면제 (수형)
종교
개신교
신체
173cm, 70kg, AB형[3]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5, 16, 18, 19
약력
이해박는집 치과 대표원장
새정치회의 창당준비위원회 부대변인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발기인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제15대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갑 / 새정치국민회의)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홍보위원회 위원장
제16대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갑 / 새천년민주당)
제21대 과학기술부 장관 (국민의 정부)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새천년민주당 전자정당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제18대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 민주당)
제18대 국회 후반기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 민주통합당)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
국민의당 사무총장
국민의당 최고위원
바른미래당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지역위원장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국민의힘 경기 고양시 병 당협위원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
제36대 충청북도지사 (민선 8기 / 국민의힘)
충북도립대학교 이사장


1. 개요
2. 경력
3. 생애
3.1. 정치 활동
3.1.1. 민주당 시절
3.1.2. 국민의당 합류와 제3지대 활동
3.1.3. 보수정당으로
3.1.4.1. 직무 수행 및 지지율
3.1.4.1.1. 리얼미터
5. 선거 이력
6. 소속 정당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치과의사 출신 정치인. 현 충청북도지사. 4선 의원 출신으로, 과학기술부장관, 국민의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김대중 총재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한 후 20년간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변인, 과학기술부장관 등을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분당 후 정치 주류에서 밀려나, 2015년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고 이후 미래통합당에 합류하면서 보수 정치인이 되었다. 현재는 친윤으로 분류되며[6],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청북도지사당선되어 재직 중이다.


2. 경력[편집]




3. 생애[편집]


1955년,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중국집 주방장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5살까지 청주에 살다가 괴산군 청천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청천초등학교, 청천중학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73학번[8]으로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었다. 1988년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3.1. 정치 활동[편집]



3.1.1. 민주당 시절[편집]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지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정치인 중 하나였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9]에 출마하였으나 탄핵의 역풍을 본인도 맞으면서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같은 해 11월에 치과를 개업하여 본업이었던 치과의사로 돌아갔다. 이해박는집 홈페이지[10].

2006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당이 1%도 안 되는 득표로 참패하면서 위기의 상황을 맞았고, 당시 박상천 대표를 비롯한 세력들이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2008년 1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안산시 상록구 갑에 다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와 통합민주당 전해철[11] 후보 2명에 밀리며 3위로 낙선하였다. 당시 선거 유세를 할 때, 통합민주당 지지하면 비례는 민주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나를 뽑아달라, 한나라당 지지하시면, 비례는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나를 뽑아달라며 홍보했으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앞의 내용이 생략된 영상이 유포되어 피해를 봤다.

이후 다시 기회가 왔는데, 2008년 총선 안산시 상록구 을 당선자였던 홍장표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그 곳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5년 만에 국회에 돌아왔다. 2010년도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웠다.[12][13][14]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같은 해에 있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졌던 바 있다. '중부권 대통령론'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당 내 1차 경선에서 컷오프당하고 만다. 그러나 비를 맞으며 출마선언을 하는 영상은 당시로선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1.2. 국민의당 합류와 제3지대 활동[편집]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하여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총선 전 국민의당 지지율이 마구 떨어지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합류하자는 의견이 거셀 때 국회의원 중 거의 홀로 국민의당을 지키자는 주장을 펼쳤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이번에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3파전 속에서 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영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정작 당선자는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김철민[15] 전 안산시장으로, 당선인과 김영환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에 불과했다.

2016년 5월 11일, 국민의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인재영입위원장 시절 영입한 김수민의 리베이트 건이 터졌다.

2016년 11월 1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야 3당이 촛불 집회 참여를 밝히자 장외투쟁을 근절키로 한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사무총장 사의를 밝혔다.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융통성 없는 눈새스런 행동으로 보일 수 있으나, 창당 정신 운운은 표면상 이유고 실질적으론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사무총장을 원내 인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일종의 불만 표시였다.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서 3위를 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찬성하여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되었다. 당 내부에서 삼고초려에 가깝게 설득을 했다고 한다. TV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인 남경필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재명을 강하게 몰아붙히고 활약하며 화제가 되었으나, 4.8%라는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이재명 당선인과 남경필 지사에 이어 3위로 낙선하였다. 공약보다는 이재명을 어떻게든 까내리는 네거티브 위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경필의 지지율이 조금 더 올라가면서[16]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없어진 셈이다. 권은희, 이준석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전당대회에서마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낙선 후 당분간은 정치 대신 본업(치과의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이재명이 형 이재선을 권한 남용으로 강제입원시킨 데에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정신보건법 공동발의자로서 의사 입장에서 가족동의가 없는 공권력 동원이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에 경기도 사법경찰이 들이닥쳤으며[17] 병원 앞에서 이재명 지지자들이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 이에 대해 경기도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공무원들이 김영환 치과를 방문한 것은 의료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였으며 이재명 지지자들의 시위와 경기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반박문을 올렸다.


3.1.3. 보수정당으로[편집]


2020년 1월 29일,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 등 보수·중도단체가 모인 통합추진위원회에 합류하였고, 이후 정식으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었다. 이후 원 지역구인 안산을 떠나[18] 고양시 병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받았다.[19]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후보에게 크게 패해 또다시 낙선했다.[20] 당무감사 결과 2020년 12월 당협위원장 직에서 경질되었다. 그 자리는 다시 이동환 당협위원장이 찾아갔다. #[21]

2021년 4월 5일에는 아내와 함께 민주화유공자 자격을 반납하였다. #

2021년 7월 16일 야권 대선 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윤석열검찰총장의 대선 캠프에 직책 없이 합류했다. 김 전 의원은 "정권 교체의 문지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이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고, 그에게 독화살이 날아들고 있다"며 "지금은 윤 전 총장을 지키는 게 개혁이다. 오늘부터 이마빌딩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이후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고 이준석 당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이 때부터 사실상 친윤계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윤석열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었으나, 다시 입장을 바꿔 3월 29일 충청북도지사 출마를 진지하게 고심 중이라고 하였으며#,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충북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충북지사 선거 출마 선언 후 그동안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경기도를 떠나 고향인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낙향하였다.

2022년 4월 21일, 국민의힘 충북도지사 경선에서 46.64%를 득표해 박경국 전 부지사[22], 오제세 전 의원을 누르고 승리하여 국민의힘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그간 경기도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김영환 후보로서는 고향인 충청북도에서의 첫 선거 도전이다. 사실 김영환 후보에게 충북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는 점에서만 연고가 있을 뿐이고, 성인이 되고난 뒤에 상경하여 의사/정치 경력 모두 경기도 안산시에서 쌓은 출향 인사인지라 사실상 경기도 사람이나 다름없고, 지역 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결국 공천을 받았다. 전형적인 귀향(歸鄕) 출마자인 셈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여론조사/충청북도에서 공직선거법상 규정된 여론조사를 확인할 수 있고 선거기간 내내 대체로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와 같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상대로 16%차의 대승을 거두며 충청북도지사에 당선되었다.


3.1.4. 제36대 충청북도지사[편집]


당선과 동시에 관사 입주를 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하겠다고 밝혔고, 전임인 이시종 지사 시절에 매입한 아파트 관사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지사 관사 없이 괴산군 자택에서 매일 인수위로 출퇴근하다가, 도지사 취임 이후 도청 근처인 청주시 상당구에 사비로 자택을 구해 입주했다.


3.1.4.1. 직무 수행 및 지지율[편집]

2022년 7월 1일 취임하였으며, 민선8기 도정목표는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이다.

충북의 바다는 꿈의 바다입니다.

충북에는 바다가 없지만 호수가 있습니다.

항구는 없지만 백두대간이 있고,

배는 없지만 걸어서 세계로 난 만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민선8기 충북도정은 혁신과 창조의 가치로, 촘촘한 섬김과 봉사로, 구석구석 균형발전과 문화복지로 대한민국의 흑진주 충북을 새롭게 하고 충북도민을 신나게 만들겠습니다.

항상 ‘자기를 낮추라’라는 다산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낮은 자세로 도민을 섬기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환 충청북도지사 인사말


취임과 동시에 100만원씩 최대 60개월까지 지급하기로 했던 양육수당 공약을 철회하여 구설에 올랐다.

7월 22일, 도정의 첫 행정부지사로 이우종 행안부 지방세정책관을 임명하였다.

7월 25일, 무예마스터십 관련 예산 및 인력 지원을 중단할 것을 밝혔다. 이 때문에 예술계의 반발이 엄청났다.

7월 29일, 8월 8일부터 1주일간 '차없는 도청' 시범운영을 진행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도청의 주차난에 외부 주차장까지 임대해서 빌려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통근버스를 운영하여 비어있는 도청 주차장에서 문화사업을 하기로 당초 계획을 잡았었으나, 주차장은 용도 변경 이용시 불법소지가 있다. 해당 사업에 대해 반발이 컸고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8월 29일, 경제부지사직에 공모를 거쳐 김명규 기획재정부 과장(부이사관)을 임명하였다. 민선 도정 이후 충북 최초의 40대 부지사이다

12월 16일, 8월에 진행했던 "차 없는 도청"사업의 저조한 통근버스 이용률에 도의회가 칼을뽑아 내년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였다. 막상 사업을 진행시킨 김영환 도지사부터 통근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 사업의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고있다.#

1월 29일, 현 정부 하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


3.1.4.1.1. 리얼미터[편집]

7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11위, 지지율은 49.8%를 기록하였다.링크

8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네 단계 떨어진 순위의 15위, 지지율 역시 2.3%p 가량 떨어졌다.링크

9월 직무수행평가에서 45.5%를 기록하며 전달보다 2% 떨어지며, 도지사 중에서는 하위권을 기록하였다.

10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12위로 세 단계 오른 순위를 기록, 지지율은 3.1%p 올라 48.6%을 기록했다.링크

11월 직무수행평가에선 한 단계 떨어져 13위, 지지율은 46.8%을 기록했다.링크

이후 12월에는 1.1% 올라 47.9%를 기록했으며, 2023년 1월에는 5.6%가 더 올라 53.5%를 기록했다.링크 순위는 10위로 최민호 세종시장과 동률이다.

2023년 2월에는 2.3%가 오른 55.8%였으나 지지율을 보였으나 2023년 3월에는 상기한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라는 발언과 산불 술자리 논란의 악영향인지 7%가 급락한 48.8%로 떨어지게 되었다. #충북#충청인#뉴스1

5월부터는 리얼미터에서 10위 미만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지지율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지지율은 알 수 없으나, 지역 언론인 중부매일에서 15위 43.7%라며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김영환보다 순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태원 압사 사고 여파로 지지율이 급락한 서울특별시장 오세훈과 옛날부터 비호감 이미지가 강했고 전임 시장 지우기가 노골적인 대전광역시장 이장우 둘뿐이다.

4. 비판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영환(1955)/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산 갑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31,997 (34.44%)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48,206 (53.08%)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산 상록 갑
18,631 (26.09%)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
무소속
]]

14,355 (23.92%)
낙선 (3위)

2009
하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경기 안산 상록 을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14,176 (41.17%)
당선 (1위)
3선[23]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34,509 (59.58%)
4선[24]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당(2016년)|
파일: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고타입.svg
]]

23,837 (33.47%)
낙선 (2위)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바른미래당|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

287,504 (4.81%)
낙선 (3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병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65,981 (44.72%)
낙선 (2위)

20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395,517 (58.19%)
당선 (1위)
초선


  • 선거에서 단 한 번도 1번을 달고 출마한 적이 없다.[25]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2000
창당
정계 입문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5
합당[26]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5 - 2007
당명 변경

파일:중도통합민주당 남색 글씨.svg

2007
합당[27]

[[민주당(2007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08 - 2009
탈당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9 - 2011
복당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28]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29]

2015 - 2016
당명 변경

2016
탈당[30]

2016 - 2018
창당

2018 - 2019
합당[31]

2019 - 2020
탈당[32]

2020
창당

2020 - 현재
당명 변경


7. 여담[편집]


  • 1988년에 김해윤이란 필명으로 "따라오라 시여"(시인사)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적이 있다. 그중 한 편인 '단순 조립공의 하루'가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이 곡을 붙인 곡인 단순조립공으로 재탄생되었다.

  • 2008년 1월 민주당 탈당 당시 한나라당 입당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 입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2009년 민주당으로 복귀한다.[33] 결국 2020년 2월, 한나라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에 합류함으로써 12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현재는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그 김영환과는 단순한 동명이인인 것을 넘어서서 상당히 깊은 인연이 있다. 참조.

  • 제19대 국회의원 시절 골프 클럽하우스나 딸이 운영하는 한 쿠키점에서 간담회 명목으로 부당한 정치자금을 집행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불건전한 관행이 비단 김 전 의원 혼자만의 일은 아니나, 그럼에도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 #

  • '이해박는집'이라는 이름의 치과병원북촌한옥마을성북구, 자신의 지역구였던 안산시 상록구에 개업하여 장기간 운영해 왔으며, 선거 공보물의 경력란에도 이해박는집 대표원장 경력을 늘 표기해 왔을 정도로 애착이 깊다. 다만 21대 총선 당시에는 안산을 떠난 뒤였는데다 충청북도지사에 당선돼서 충북으로 거처와 정치적 기반을 옮긴 지금은 지방자치법 등의 법령에 의거하여 병원 운영은 물론 지분 보유 등 병원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영 참여가 일체 불가능해지므로 현재는 병원 운영에서는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34] 안산에 있던 병원은 이름도 연세리더스치과로 바뀌었다.

  • 1985년에 결혼한 것과 아들 포함 자녀들의 출생년도에서 봤듯이 결혼도 저 당시 기준으로 늦은 편이다. 또한 꽤나 늦게 자녀를 본 축에 속한다.

  • 민생당 전남도당 위원장인 박매호[35]와 현재는 당은 다르지만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

  • 도지사 취임 후 충주시청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거기 있던 충주시 홍보맨을 두 번이나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도지사는 홍보맨을 알아볼까? 후에 해당 영상에 댓글로 "이래야 이 동영상이 재미있잖아요?"라고 한 걸 보면 진짜로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한 듯하다.

  • 2023년 3월, 제천 산불이 21ha의 산림 면적을 태우는 동시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진 상황 속에서 술자리 사진을 업로드하였으며, 논란 이후 '산불 대응 메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라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

  •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옛날과 비교하면 순식간에 폭삭 늙었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나이 들면 늙는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만, 이쪽에 대해서는 너무 빨리 노화가 왔다는 의견이 대세다.


8. 둘러보기[편집]






















[1] 원래 괴산 출생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청주 성안길 철당간 밑에서 태어나 5살까지 살다가 괴산으로 이사를 가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2]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 이후 곧바로 경기도 자택을 정리하고 본인 내외와 자녀들 전부 본가인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으로 이사했다. 당선 후에는 도지사 관사에 입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며칠간 괴산군 자택에서 출퇴근하다가, # 이후 청주 동남지구에 자택을 사비로 구해 거주 중이다. #[3] 과거 국회의원 및 후보 시절에는 해당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선경아파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등에 거주했다.[4] 충북도립대학교 이사장은 충청북도지사가 당연직으로 맡는다.[5] 19대 국회의원 당시 사용하던 채널이다.[6] 최근 페이스북에 현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 부족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드러내며 '이대로는 안 된다' 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현 정권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을 반대 진영의 눈치를 보지 말고 더욱더 신속하게 추진하라는 주마가편의 의미이다.[7] 충청북도지사가 당연직 겸임.[8] 73학번인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1954년생일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기입학을 했을 수도 있다.[9] 원래 선거구명은 '안산시 갑'이었으나, 2002년에 안산시일반구상록구단원구가 생겼고, 많아진 인구로 인해 상록구와 단원구 모두 갑과 을 2개 씩의 선거구를 제작하였다.[10] 지역구인 상록구가 아닌 단원구에 있다.[11] 이후 전해철은 19대 총선에 이 곳에 재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20대 총선과 21대 총선도 모두 당선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12]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 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또 추가.[13]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 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 원, 2010년에 김영환 전 의원이 -8.2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전 의원이 1억 500만 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14]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기준으로 김영환 부부의 재산은 5억 4천만 원이었다. 다만 이것도 함정이 있는 게 부동산과 예금 등의 자산을 합쳐서 70억원이 나왔고 부채가 무려 65억 원에 달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선거비 보전도 못 받고 낙선한 것과 총선 출마를 위한 일산 아파트 구매 등이 부채 증식의 가장 큰 원인이다.[15] 여담으로 본인을 꺾고 당선된 김철민은 과거 새천년민주당 시절 본인 소속된 지역구인 안산 갑(상록구) 조직에 속해있었고 김철민이 지구당 부위원장을 역임했었다.(당시 지구당 위원장은 현역의원이었던 본인이 당연직으로 맡았다) 그 후 김철민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재선에 성공했다.[16] 남경필이 보수정치인임에도 제법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김영환과 정치적 스펙트럼이 겹치던 상황이었다.[17] 병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린 것이 의료법 위반이란 이유였다고 하며, 예고나 전화연락이 없었다고 하지만, 바이럴 마케팅 문제 때문에 모니터링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정도 사안으로 경기도 사법경찰이 치과에 들이닥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면 정치 보복으로 볼 여지도 있다.[18] 홍장표 전 의원이 이 동네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어 경선이 필요했는데 결국 김영환을 비롯한 바른미래-새보수계 정치인들이 원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대거 넘어가게 된다.[19] 황교안 체제의 막장 공천에 힘입어 2018년 이래로 지역구를 맡았던 이동환 당협위원장만 억울하게 출마를 못 하게 되었다. 이 동네 현역 국회의원이던 유은혜 부총리의 평판이 나빴고 이동환 당협위원장이 도시계획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 점을 공략했더라면 승산이 있었으니 잘못된 공천을 한 셈이다.[20] 여기에다 토론은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잘 이끌어 놓고서, 정작 일부 토론 내용에서 홍정민 후보를 상대로 나이가 어리다는 되도 않는 네거티브로 꼰대질을 해버린 모양새가 되어버리면서 토론회 이후의 평가가 좋지 못했다.[21] 이후 이동환은 고양시장으로 당선되었고 김영환은 고향으로 낙향해서 충북지사로 당선되었다. 결과적으로 둘다 윈윈한 셈이다.[22] 행정안전부 1차관을 지낸 인물로 2018년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충북지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인물이다.[23] 전임자 홍장표 의원직 상실.[24] 2016.1.8. 탈당, 국민의당 합류.[25] 18대 총선 때는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었으나 공천에서 탈락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26]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27]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28]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0] 당내 노선차이로 인한 탈당.[31]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32] 당내 노선차이로 인한 탈당.[33]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당시 "정당투표는 한나라당에 해달라"고 발언했다. 이 정도면 정말 진지하게 한나라당행을 고려한 듯 하다.[34]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현행법상 기업 및 법인에 대한 경영 참여 등이 가능하지만, 단체장은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이해 충돌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 및 법인에 대한 경영참여가 일체 불가능하며, 보유하고 있는 주식 및 채권 등도 백지신탁제도에 의거하여 전량 처분 혹은 소각해야 한다. 김세연 전 의원이 부산광역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10년 가까이 압도적인 1위를 달려왔음에도 본선은 커녕 예비후보 등록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당선 시 가족회사인 동일고무벨트의 지분을 전량 처분해야 되기 때문이었는데, 김영환 역시 임기 개시 전까지 병원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35]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