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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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34년 4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서 아버지 정양섭(丁陽燮, 1883. 8. 8 ~ ?. 3. 5)과 어머니 경주 최씨(1896 ~ ?. 11. 27)[4] 사이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목포고등학교,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각각 수료했다.
전남대학교 졸업 후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었다. 1969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무안군수로 부임하였으며, 1970년부터 1971년까지 광주시장을 맡았다. 이 시절 농촌 근대화에 앞장섰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소방국장을 맡았으며,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전라남도 부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전라남도 부지사 재임 중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직후 임영득 대신 전라남도 진도군-해남군 지구당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진도군-해남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정사회당 김봉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뒤 예산결산위원장을 역임했다. 예산결산위원장 시절 도서개발촉진법을 통과시켰다.[5]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 이 때 중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었음에도 진도군, 해남군의 인구로 인하여 선거구가 분할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현역 의원 2명(무소속 임영득 후보, 평화민주당 김봉호 후보)과 맞붙었다. 그러나 김봉호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농림수산위원장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전라남도 진도군-해남군 선거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봉호 후보와 리턴 매치를 벌였으나 이번에도 낙선하였다. 같은 해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정계에서 은퇴한 뒤 초당대학교 총장을 맡았으며, 사회복지법인 에덴원 요양원을 설립하여 이사장직을 맡았다.
2023년 9월 6일 별세했다.#
3.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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