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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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 본관은 봉화(奉化)[1]#, 자는 무중(武仲), 호는 남훈(南薰)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영부인인 김옥숙, 김복동 전 의원의 여동생 김정숙(金貞淑, 1937. 10. 24 ~ )과 결혼하였기에, 노태우에게는 손아랫동서가 되며 김복동에게는 둘째 매제가 된다.
2. 생애[편집]
1932년 1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아버지 금교성(琴敎聲)과 어머니 하동 정씨 정옥채(鄭玉采)[2] 사이의 5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순흥국민학교와 영주농업학교(현 영주제일고등학교), 대륜중학교[3]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전두환 정권 때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분과위원장, 남덕우 국무총리비서실장, 상공부 차관, 상공부 장관, 소비자보호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노태우 정권 초기에 한국무역협회 고문, 퇴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친인척으로서 영부인 김옥숙, 사돈 김복동, 고종사촌 처남 박철언 등과 친인척 회의를 통해 국정을 주도한다는 의혹을 받았다.[4]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주시-영풍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선출되었으나 박철언, 김복동과 달리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노태우가 김영삼을 지원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만큼 본인이 YS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이 김영삼을 지지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김복동의 민자당 탈당을 막기 위해 김복동이 민자당 탈당 의사를 번복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작성을 보좌관에게 시켜 작성한 후 김복동 의원실의 여비서를 통해 각 언론사에 보내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노태우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원조와 함께 김영삼의 선거 자금을 담당했다.#
1994년 민주자유당 뉴라운드 대책위원장을 역임하였으나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검찰청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공천에도 탈락하였다.
이후 현재는 국제무역경영연구원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3. 선거 이력[편집]
4. 수상 경력[편집]
- 홍조근정훈장 (1972)
- 보국훈장 국선장 (1980)
- 벨지움 대십자훈장 (1984)
- 스웨덴로열포라스타 훈장 (1986)
- 청조근정훈장 (1986)
- APO 특별상 (1987)
- 제21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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