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남(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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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계원장 (1948~1963)


초대
명제세
제2대
함태영
제3대
노진설
제4대
최하영
제5대
김세완
제6대
이원엽


감찰위원장 (1961~1963)


초대
민영수
제2대
최재명
제3대
채명신



감사원장 (1963~현재)



초대
이원엽
제2대
한신
제3·4대
이주일
제5대
이석제
제6대
이석제


제7대
신두영
제8대
이한기
제9대
이한기
제10대
정희택
제11·12대
황영시

노태우 정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제13·14대
김영준
제15대
이회창
제16대
이시윤
제17대
한승헌
제18대
이종남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제19·20대
전윤철
제21대
김황식
제22대
양건
23대
황찬현
24대
최재형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제25대
최재해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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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9대 감사원장
이종남
李種南 | Lee Jong-nam


파일:이종남 감사원장.jpg

출생
1936년 9월 30일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2021년 5월 25일 (향년 84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자택
본관
덕수 이씨[1]
재임기간
제28대 법무부 차관
1985년 10월 19일 ~ 1987년 5월 26일
제21대 검찰총장
1987년 5월 27일 ~ 1988년 12월 5일
제39대 법무부 장관
1990년 3월 19일 ~ 1991년 5월 26일
제39대 감사원장
1999년 9월 29일 ~ 2003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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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백지선[1]
자녀
아들 이정열[2], 이순열[3]
딸 이경아[4]
학력
서울공립공업중학교 (중퇴)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 45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경력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12회)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검장
서울중앙지방첨찰청 검사장
제28대 법무부 차관
제21대 검찰총장
제39대 법무부 장관
제18대 감사원장
법무법인 세종 창설자

1. 개요
2. 생애
2.1. 초년시절
2.2. 검사시절
2.3. 검찰을 떠난 후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이자 법무법인 세종의 창설자.

변호사대한민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모두 가진 사람으로서, 검사 시절에는 대한민국 '경제사건 수사'의 간판으로 꼽혔다.


2. 생애[편집]



2.1. 초년시절[편집]


1936년 9월 30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12대손인 아버지 이태영(李泰永, 1903. 9. 24 ~ 1949. 12. 15)과 어머니 수원 김씨(水原 金氏) 김명순(金明順, 1901. 9. 21 ~ 1984. 12. 31)[2]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특차로 선발하던 6년제 서울공립공업중학교 입학, 2학년 재학 중 6.25 전쟁 발발로 한강인도교가 끊어지고, 대부분의 학교가 폐쇄되자 거주지 인근 잔류학생훈육소로 운영되던 덕수상업고등학교(45회)를 나와 1957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고, 1961년에 졸업하였다.

1960년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이때 함께 합격한 사람이 김기춘, 박찬종이다.


2.2. 검사시절[편집]


1964년부터 검사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사법시험만이 아니라 공인회계사시험에도 합격할 정도로 법학, 회계학을 아우르는 지식을 갖추어 특히 경제범죄의 수사에 베테랑으로 활약했다.

1974년 통영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통영 YTL 침몰 사건를 수습하였다. 사건이 자신의 조상을 참배한다고, 해난사고 일어날 수준의 풍량에 탑승인원을 배로 집어넣은 해군의 정신나간 짓거리로 일어난 것이라.... 그 외에도 검사 근무시절 대한민국 '탈세사건 수사'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유명했다.

이후 1982년 대검찰청에 초대 중앙수사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수사하였다. 그 후 박동명 (朴東明) 사건.여수 밀수사건.백화양조 탈세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1985년 법무부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파문에 따라 서동권 검찰총장이 경질되자 후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1988년까지 검찰총장으로 일하였다. 당시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이 한꺼번에 바뀌어 어수선했던 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직을 추스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2.3. 검찰을 떠난 후[편집]


검찰총장직을 그만 둔 후, 1989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 객원교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고 1995년부터 4년간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을 함께 지냈다. 1995년에는 신영무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 세종을 창설하고, 4년간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 때인 1999년 한승헌의 뒤를 이어 제18대 감사원장에 임명되었다. 공직을 떠난지 무려 8년만에 임명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화제를 모았다. 그 후 2003년까지 무려 4년 동안이나 감사원장으로 일하였다. 특히 공기업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여,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기여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감사원장을 마친 후에는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일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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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무공파 13대손, 시조 25세 종(種) 항렬#.[2] 김선오(金善五)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