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토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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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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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부총리
모리스 토레즈
Maurice Thorez


파일:Maurice_Thorez-1932.jpg

출생
1900년 4월 28일
프랑스 공화국 파드칼레 누아엘고두
사망
1964년 7월 11일 (향년 64세)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흑해 유람선 내부
재임기간
부총리 1차
1946년 1월 26일 ~ 1946년 6월 12일
부총리 2차
1946년 6월 24일 ~ 1946년 11월 28일
부총리 3차
1947년 1월 22일 ~ 1947년 5월 4일
국적
프랑스
직업
정치인
정당
경력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1930~1964)
국무장관 (1945~1946, 1947)
부총리 (1946~1947)

1. 개요
2. 생애
2.1. 정계 입문
2.4. 제5공화국 시기와 사망
3. 비판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공산주의자. 1930년부터 1964년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서기장이었으며 1946년부터 1947년까지 프랑스의 부총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2. 생애[편집]


1900년 파드칼레에 있는 누아엘고두(Noyelles-Godault)에서 태어나 12살에 광부가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아동노동에 해당하는 노동력 착취지만,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는 아동노동이 꽤나 만연했고 프랑스에서는 1841년에야 공장 및 작업장에 고용된 아동 노동에 관한 법률(Du travail des enfants qu’emploient les ateliers, les usines et les manufactures)이 처음 제정되면서 비로소 8세 미만 노동이 법률로 금지되었고, 이 기준이 12세 미만으로 올라간게 1874년에 이르러서야라는 점을 고려하면 토레즈가 태어나서 자라던 당시에 이런 아동노동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1. 정계 입문[편집]


1919년, 사회당의 전신인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에 가입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후 코민테른의 영향으로 SFIO에서 소련 노선을 따르는 국제공산주의자 프랑스 지부(SFIC)가 분리되어 나오자 이쪽에 합류했으며 이후 SFIC는 프랑스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과거 여러차례 격한 노동운동에 가담해 투옥되며 명성을 높인 이력 덕에 1923년 당 서기를 거친데 이어 1930년 자리에 오르면서 당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를 비롯한 파시즘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온건 사회주의자 및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를 오히려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1] 보통의 이미지와 달리 토레즈 역시 프랑스 공산당을 이끌고 급진당, SFIO와 함께 인민 전선을 구성해 온건좌파 성향 정부를 지원했다.

인민 전선 참가를 통한 강성 이미지 완화와 더불어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토레즈가 이끄는 공산당은 1936년 총선에서는 무려 62석을 늘린 72석을 획득하며 성장했고, SFIO의 레옹 블룸을 지원해 블룸을 SFIO 역사상 최초의 총리로 만든다. SFIO가 중간에서 무게를 잡으면서 급진당의 도움을 받는 형태의 정부 구성 덕분에 정책도 벨 에포크 시기보다 상당히 진보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좌익 세력의 급성장에 놀란 급진당이 인민 전선을 와해시키고 우파와의 연정을 구성하면서 총리 자리가 블룸이 아니라 보수 성향 에두아르 달라디에에게 넘어가면서 주도권을 상실했고, 독일과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이후 토레스와 공산당은 갑자기 소련의 지시를 받아 반전 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2] 공공의 적으로 찍혀 불법화되고 만다.

이때 공산당 내에서도 반독 노선 포기에 대해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많은 의원들이 아예 의원직에서 사퇴하고, 일반 당원들도 다수 탈당하는 등 당 자체가 와해될뻔했고 토레즈 본인은 이때 출국을 시도하다 억류당한 뒤 여권을 취소당했고 프랑스군에 강제 징집까지 당했다. 이때 토레즈는 결국 탈영을 선택해 공산당을 자크 뒤클로에게 넘긴채 모스크바로 도망쳤고, 모국 프랑스에서는 궐석 재판으로 전시 탈영죄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1940년에는 아예 국적까지 박탈당했다.

2.2. 제2차 세계대전 시기[편집]


국적을 박탈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프랑스가 6주만에 나치 독일에 항복하는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만다. 한편 공산당은 이때 공식적으로는 토레즈가 1943년까지 프랑스에 남아 레지스탕스 활등을 독려했다고 주장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거짓말이 들통나자 어쩔수없이 실제로 이 시기 좌파 레지스탕스 활동을 주도한건 프랑스에 남아 당을 이끈 자크 뒤클로였고, 토레즈는 모스크바로 도망갔었다는 걸 시인했다.

이 시기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독소전쟁을 경험하게 되는데, 나치 독일의 공세가 모스크바까지 덮치자 우랄 산맥 넘어로 또 한번 도주했다.

결국 전쟁 시기에는 우랄 산맥으로 도피한 잠시를 제외하고는 쭉 모스크바에만 있었으니만큼 사실상 기여한바가 전혀 없지만[3] 좌파 진영 내에서는 워낙 거물이었기 때문에 자유 프랑스를 이끌던 샤를 드골1944년 파리를 해방하면서 프랑스를 되찾은 뒤 드골의 사면을 받아 겨우겨우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드골이 대인배라 토레즈를 너른 마음으로 용서한 것은 결코 아니고,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이오시프 스탈린과 협상한 결과[4] 드골이 토레즈의 개인 자격 귀국을 허용하는 대신 스탈린은 토레즈가 공산당 조직을 이용해 무장 폭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명령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귀국하게 된것이다.

웃긴건 이렇게 귀국하고나자마자 상기한 것처럼 실체가 밝혀질때까지 본인이 공산당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끈 것인마냥 철면피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물론 당의 주도권을 되찾고 반나치 활동을 위해 무장하고 있던 공산당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기도 했지만 모양새가 웃긴건 어쩔수 없게 되었다.

다만 실제로 스탈린은 토레즈를 프랑스로 복귀시키면서 드골과의 약속을 지켜 절대로 무장 폭동이 아닌 의회 제도를 이용해 비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2.3. 임시정부 ~ 제4공화국 시기[편집]


토레즈와 공산당에게는 전성기라 할만할 수 있는 시기인데, 원래 드골이 수반으로 취임한 임시정부에서는 공산당을 내각에 합류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전후 치러진 1945년 11월 총선에서 공산당이 26.1% 득표율로 148석을 획득해 원내 1당으로 올라서면서 드골로서도 공산당을 배제하고 가기 어렵게 되었다.

사실 공산당을 배제하겠다는 생각은 드골의 무리수에 가까웠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국내에서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치던 70%가 공산당이 조직한 빨치산 출신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프랑스 대중들이 이를 용납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공산당도 드골의 임시정부에 가담했고, 토레즈도 부총리로 입각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행정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 제정을 둘러싸고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를 꿈꾸던 드골과 유럽식 의원내각제를 꿈꾸던 공산당-SFIO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의회 내 중도파였던 대중공화운동(MRP)가 드골이 아니라 공산당-SFIO의 손을 들어주면서 드골은 1946년 1월 전격적으로 사임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만 프랑스 국민들이 그렇다고 내각제를 지지하던 것도 아니라, 공산당과 SFIO가 제출한 의원내각제 개헌안도 1946년 5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고 결국 드골의 대통령제와 의회의 의원내각제안이 절충된 형식으로 새롭게 개헌안이 채택, 같은해 10월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프랑스는 제3공화국을 마무리하고 제4공화국의 문을 새롭게 열어젖혔다.

이후 1946년 11월 열린 총선에서 공산당이 다시 1당에 오르면서 토레즈는 총리직을 달라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지지율이 6%로 추락하는 등 본인 인기가 너무 떨어진 데다가 공산당 1당 독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5] 대중공화운동에게 비토당하면서 총리직은 다시 SFIO의 레옹 블룸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1947년 1월 블룸은 뱅상 오리올 대통령이 선출될때까지만 과도 내각을 유지한 후 폴 라마디에에게 총리 자리를 넘겼다.

그렇게 오리올 대통령과 라마디에 총리 아래서 안정적일 것만 같았던 MRP, SFIO와의 연대는 전쟁 이전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했는데 1947년 냉전의 시작과 함께 5월부터 본격화된 프랑스 총파업이 토레즈의 운명을 다시 바꿔놓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놓고 라마디에 총리에게 마셜 플랜의 지원을 받고 싶으면 내각에서 공산당을 축출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었다. 하지만 전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저임금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라마디에 총리로서는 토레즈와 공산당을 강제로 축출하고 3당 연합을 와해시킬 경우 정국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쉽게 미국의 요구에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르노의 파업으로 시작된 파업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라마디에 내각과 공산당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다. 6개월 간 물가가 43%나 오르는 동안 임금이 겨우 11% 오른 수준이었기 때문에 파업 시위는 말그대로 전국을 강타했고, 공산당은 내각에 합류한 상태였음에도 파업을 지지하면서 정부를 비판했고, 라마디에는 안그래도 미국의 압박도 있던 차에 공산당을 내각에서 축출하는 방식으로 강력 대응했다.

그런데 오히려 야당으로 쫓겨난 토레즈와 공산당은 높은 지지를 유지하게 되었고, SFIO는 사회주의자들의 정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탱크까지 쓰면서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모습을 보인 탓에 대중의 신임을 잃고 입지가 축소되었다.

이렇게 야당이 된 이후에도 제4공화국 내에서는 나름대로 입지가 단단한 토레즈였지만,[6] 본인의 건강 문제와 샤를 드골의 정치적 재기가 결국 토레즈를 벼랑끝으로 몰아세우고 만다.

1950년 뇌졸중이 찾아오면서 모스크바로 떠나 수술을 받은 후 3년간 재활을 위해 머물렀는데, 그사이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의 노선 투쟁이 본격화되었고, 그 사이 스탈린이 죽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면서 시작된 스탈린 격하 운동이 그 투쟁을 더 가속화했다.

토레즈는 스탈린 격하에 반대하면서 기존의 반수정주의적 입장을 고수했고, 이로인해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공산당 내에서조차 입지가 전같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차이나, 알제리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하고 군부 쿠데타 위협을 맞이한 SFIO 내각에서 1958년 드골을 총리 자리에 올리면서 토레즈의 전국적 영향력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2.4. 제5공화국 시기와 사망[편집]



3. 비판[편집]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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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집권 이후로는 좌파 진영의 인사로 분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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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5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7회 세계대회에서 소위 '인민전선운동방침'을 밝히며 공식화했다.[2] 웃긴건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전에는 뮌헨 협정을 위한 논의 시작도 거부할 정도로 강력한 반독 강경파였다. 그만큼 이 인물이 얼마나 소련, 특히 이오시프 스탈린의 방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3] 물론 토레즈가 한 일이 없었을뿐이지 프랑스에 남은 뒤클로를 비롯한 공산당은 빨치산을 조직해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해 활약했다. 전후 찾아온 공산당의 전성기는 이때 피를 흘리는 투쟁을 바탕으로 한 것.[4] 어찌됐건 프랑스는 연합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은만큼 이들의 요구를 막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지위는 아니었다.[5] 토레즈는 프랑스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유럽공산주의를 꿈꾸며 독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전간기와 제2차 세계 대전기 토레즈의 행보를 알고 있었던 정치인들에겐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6] 이때 프랑스 공산당은 거의 소련마냥 토레즈 1인 숭배 정당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