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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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3대 이념의 분파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1. 개요
2. 설명
3. 스펙트럼
4. 반자본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나은가?
4.1. 그렇다
4.2. 아니다
5. 자본주의는 왜 사라지지 않았는가?


1. 개요[편집]


Anti-capitalism

말 그대로 정치 철학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자본주의가 경제적/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고 주장한다.


2. 설명[편집]


이들은 여러 이유로 자본주의를 거부하는데, 자본주의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니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철폐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이들[1]국가의 역할은 인민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며(심지어 약탈 등의 행위까지도 옹호하며) 그러는 국가에 인민들은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2]

황금만능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흔한 비판이다.

반자본주의라고 해서 공산주의를 좋아할 것이라고 인식되기도 하나, 무조건 그렇지는 않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제3의 위치주의자나 일부 파시스트들은 전통주의를 내세워 근대의 산물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쪽 모두 반대한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은 미국식 자본주의와 자본가들, 그리고 소련과 공산주의자들까지 모두 죽어라 싫어했다.

3. 스펙트럼[편집]


반자본주의는 극좌나 강경좌파 계열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극좌와 강경좌파 계통이 많기는 하나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정당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중도좌파 계통의 반자본주의 정당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스위스 사회민주당도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으며,[3]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도 명목상은 표방하지만 후자는 실질적으로 반자본주의 정당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 당내 급진파가 반자본주의 성향을 띤다고 평가받는다.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우익, 극우계열 반자본주의도 존재한다. 보통 이쪽은 반세계화, 반유대주의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며 우파사회주의나 일부 전통주의, 범국가주의 및 파시즘 계열이 그러하다. 이들은 친자본주의적인 주류 극우들과 달리 미국, 영국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해 극좌 진영과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독재 내지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우익 계열 반자본주의의 극단적 예시는 독일의 나치당으로, 세계 경제가 유대인에 의해 잠식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 비유대인의 절멸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는 유대인 배후자본설을 내세우며 반자본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결합시킨 사상을 내세웠고, 이는 나치즘의 이론적 근간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외 유대인을 싫어하는 가톨릭, 이슬람 계열의 종교근본주의자들도 자본주의를 유대인들의 타락의 산물로 여겨 배척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4. 반자본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나은가?[편집]



4.1. 그렇다[편집]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득과 부를 가장 높은 가치로 보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보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윤을 추가하는 기업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업에 자기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업의 사고방식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돈을 잘 벌고 돈을 잘 쓰는 사람들이 존중된다. 예전의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조직의 부속품처럼 성실한 사람들이 환영되었지만, 21세기의 달라진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사람,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환영되는데, 이런 움직임에조차 기업의 논리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이 돈을 버는 데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부린다. 기업이 납품회사들을, 즉 본청은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욕을 자극한다. 사적 이익과 돈이 우선적 기준이다 보니 다른 방면의 가치[4]는 후순위로 밀린다.

4.2. 아니다[편집]


Money doesn't change men, it merely unmasks them.

(돈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헨리 포드


자본주의 밖의 다른 제도에서 부패와 비리가 발생하지 않아야 부패와 비리를 자본주의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인간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모든 제도에서 부패와 비리가 발생해왔다. 모든 종교에서도 부패와 비리는 발생해왔으며, 심지어 부패와 비리를 감시한다는 시민단체들조차 부패와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사회와 조직행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쌓인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비리를 억제할 방법들이 정착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몰아낸 북한은 과연 경쟁 없는 이타적인 세상이 되었는가? 오히려 '북한판 카스트'로 불리는 출신성분제 국가가 되었으며, 안타깝게도 '오징어 게임' 현실판이 되어 목숨을 건 경쟁이 펼쳐진다.

김정은은 2011년 말 27세의 어린 나이에 최고존엄 지위를 물려 받았고, 왕족에 비유되는 '백두혈통'을 필두로 하여 귀족이라 할 수 있는 핵심계층이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거주하며, 여행증으로 통제되기 때문에 비천한 신분의 인민들은 평양 땅을 한번 밟아보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해로운 새'라며 다 뒤엎고 베트남 공산당이 들어선 베트남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으나 결국은 부정부패지수와 자유지수가 북한보다는 좀 나은 수준으로 전락했다. '완벽한 사회주의'로 안 시작해서 흑화됐다? '완벽한 자본주의'로 시작한 국가 또한 한 곳도 없고 개선되며 발전했다. 북한 경제가 망했어도 다른 방면의 가치나마 우월했다거든야 그 나름 의미가 있었을 것이나, 인권지수, 환경, 부정부패 지수도 최악이다. 강제노동과 혹사도 끔찍할 수준인지라 2019 세계 최악 현대판 노예국가로 선정됐다(워크프리재단).

사람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하나, 인류 역사를 살펴봐도 원래 사람 목숨보다 이권을 더 중시했는데, 자본주의 이전에 노예나 노비는 어떤 취급을 받았던가. 전쟁으로 침략해서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는 것도 그렇고, 북한이나 중국에선 사람 목숨보다 체제가 우선이기에 체제 비판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슬람 국가 등에선 사람 목숨보다 종교가 우선이기에 여성이 히잡 안 썼다고 죽기도 한다. 유교의 조선 때도, 불교의 고려 때도 연줄끼리 뭉쳐 '카르텔'을 형성하며 부패했는데, 이들의 이권을 지킬 수 있었을 때는 살인 같은 것은 거리낌이 없이 저질렀다. 독립운동가들 역시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상충되면 기꺼이 죽이곤 했다.

한편으로 자식에 대하는 부모의 '무조건적 헌신'을 보라며 인간은 원래 이타적인 존재라는 주장이 있으나 그 무조건적 헌신이 부정부패의 씨앗인 것을 간과했다. <편애하는 인간> 저자인 미국 철학자 스티븐 아스마는 한 윤리학 토론회에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목을 졸라야 제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럴 겁니다."랬으며, 숙명여자고등학교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역시 교사가 제자들을 아무리 딸처럼 아꼈다고 한들, 자신의 딸을 '편애해서' 벌인 것이다. 입시비리가 범죄인 것을 모를 리 없는 교수가 자녀를 위해 기꺼이 '스펙 품앗이'를 하는 것도 출세만능주의 문제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규칙이나 종교, 체제 따위를 아득히 초월하는 부모의 아가페적 본성 및 혈연에 대하는 집착, 바로 그 '무조건적 헌신' 때문이고, 교회 세습, 지분만 충분하다면 일가족이 큰 기업을 대대로 물려받는 족벌기업들은 세계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특히나 한국 재벌들의 '족벌경영' 집착, 북한의 김씨왕조 탄생 및 신분세습제 '카스트' 국가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민족끼리'를 감성적으로 묘사하지만 결국은 혈연을 강조하는 말 아니던가. 너무 헌신하려다가 헬리콥터 부모 내지 막장 부모되기도 하며, 이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그런 이타심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고, 관련 표현으로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가 있다(관련 명언).

자본주의는 개인의 권리가 체제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이며 사람의 신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족보 있는 가문이든 없는 가문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개처럼 벌었든 왕처럼 벌었든 상관없이 '손님은 왕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돈으로 서열이 정해지기 때문에 돈이 곧 계급이긴 하다. 그런데 창업이나 유튜버, 비트코인이나 주식, 부동산 투자, 도박, 로또 등으로 한순간에 떡상하여 인생역전하거나 투자실패로 나락갈 수도 있는 특성상은 돈이 계급이래도 고정된 느낌이 덜하고 자주 물갈이되기 때문에 고인물이 방지되는 효과가 있으며, 권력과 재력이 분리되어 서로 견제한다. 중국 공산당이 괜히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을 찍어낸 것이 아니다. 또, 북한의 성분제도가 장마당 경제에서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이는 기존의 '기득권층'을 위협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장마당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등으로 '자본혁명'을 탄압하여 계급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가 사라지면 권력순으로 획일화된 서열이 정해지고, 일단 한번 정해진 권력서열은 어지간하면 잘 안 바뀌기에 신분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돈이 있어도 얻지 못했을 것들, 돈이 없었으면 더더욱 얻지 못하는 것 아니었던가."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가. 권력으로 돈을 해쳐먹는 것 또한 이 문제와 유관하며, 권력이 부까지 차지하니 사우디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처럼 천조원대 재산에 절대권력까지 지닌 최고존엄이 탄생할 수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사회주의는 정부가 경제뿐 아니라 개인의 생각과 자산, 생명까지 통제하는 체제라고 지적하며, 이같은 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자본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의미할 뿐 아니라 다른 기본적인 권리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니키 헤일리는 사회주의 중국의 14억 인구가 항상 감시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인류가 선택해야 할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자본주의에도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있다고 지적했는데,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역시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에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다만 북한의 빈부격차가 남한보다 더 심하다며, 말단(최하위층)에 있는 사람은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부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북한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퍼뜨리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이 지배하지만, 자본을 만만히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 얼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서적들도, 자본주의 까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다. 원래 사람에게는 한번 히잡을 쓴 여성이 계속 쓰려 하는 것과 같은 경로의존성이 있어 한번 '자유'의 맛을 보고 길들여진 시민들이라고 하면 정부의 통제에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를 깔 자유는 물론 그걸로도 자본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자본주의는 가장 자유를 많이 주는 체제이기에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시민들이라고 하면 미얀마처럼 쿠데타로 체제가 바뀌는 게 아닌 이상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기업들도 돈을 벌려고 노동자들을 혹사할 수 있기도 하고, 흔히 사기업은 돈에만 집착한다는데, 바로 그 돈을 벌려면 국민들의 선택이 필요하니 결과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만족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으므로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언론과 시민단체도 돈을 벌려고 사회의 부조리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에 점차 개선되긴 한다. 노동자의 사망으로 촉발된 2022년 SPC 상품 불매운동만 봐도 국민들이 노동자의 생명을 우선시하니 기업이 타격을 입고 회장이 사과했고, 또 국민들이 환경문제에 무관심했던 시절에는 환경오염이 심했으나 관심을 가지자 환경단체도 적극 활동해준 덕에 많이 개선되었으며, 민간건설사들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국민들에게 선택되려 경쟁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의 품질이 상향평준화되며 국민들에게 이익을 준다.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이 공짜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당근 같은 보상(리워드)이 있어야 적극 움직인다. 보상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우월의식' 문서에 적힌 것처럼 남들보다 우월해지려는 심리가 국가에 도움이 되게끔 만들어진 것이기도 한데, 다양한 아이디어로 각자가 창업한 자기 기업은 맥도날드모스버거의 초창기처럼 구멍가게 수준으로 시작했어도 자기가 이루어낸 노력이나 정을 생각해서나마 어떻게든 흑자 내서 키워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며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떡상할 수 있다. 효율적으로 생산해야 이익이므로 서로 경쟁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며 생산량을 증대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선진국에선 '기부 문화'가 많이 발달했다. 기부하면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고 그 자체가 돈이 되므로 진정한 이타심으로 볼 수는 없어도 결국 이타심을 약간이나마 자본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공아파트는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이 없고 자기 회사도 아니기에 책임감이 덜하다. 애초부터 국가 소유이다 보니 권력자들이 연줄로 낙하산 인사를 공기업에 꽂아넣는 사례가 많고, 전공과 무관한 낙하산 인사들은 대단한 실적보다는 그냥 잠시 머무는 동안은 사고나 치지 말고 떠나자는 목표가 강하다. 공기업이 보신주의화되는 이유는 괜히 모험을 시도해서 잘 돼야 '공로의 분배'로 이익이 적고, 실패하면 다 덮어쓰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업이 사기업보다 앞장서서 시장을 선도하는 사례는 보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주공아파트보다 민간아파트를 더 선호한다. 물론 주공아파트도 민간건설사를 의식해서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었으나 마지못해 베끼며 따라잡는 느낌이 강하다. 다음 기사를 참고해 보자. 공공배달앱 수수료 싸도 이용률 18%…배민 96%·요기요 60%. 공공배달앱은 수수료가 절반 가까이 싼 압도적인 메리트가 있어 적극 나서 대대로 홍보하면 떡상할 잠재력이 있음에도 공무원들이 귀찮은지 홍보가 적잖이 부족하다. 한류테마파크 등의 문화사업도 '공공'이 주도했다면 공공배달앱 꼴 났을 수도 있다.

경남 마산로봇랜드는 도립 테마파크로서 2019년 개장 후, 불과 1년 만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7000억 쏟아부은 경남 로봇랜드…1년 만에 버려졌다' KBS에서는 '로봇랜드...막장 행정의 최후, 행정 책임은 누가?'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이는 책임자가 없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또한 '눈 먼 돈'의 위험성도 보여줬는데,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로봇랜드 사업은 혈세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사업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버려져 있다. 사업계획부터 운영까지 총체적 부실 덩어리다."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북한에서는 이게 심해서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을 주도한 계획경제부장 박남기는 공개총살을 당했다. 섣불리 아이디어 내다가 살해되고 '만고역적 박남기 놈'이라며 까이는 모습을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어도 선뜻 입밖에 내기가 어려워지듯이 과감한 배팅을 벌이기보다는 몸을 사리는 게 나으니 북한의 사회주의는 한국의 공익근무요원과 비슷한 포지션으로서 사업성과보다는 꽌시 같은 인맥관리나 정치질에 집중하므로 경직되고 효율성이 떨어지기에 경제가 점점 기울어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다당제일당독재를 비교해 보자. 물론 다당제의 정당들도 내부에 파벌이 갈라지고 줄서기 등의 문제가 있긴 하나, 궁극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선거에서 참패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실제 선거 참패 후는 당이 공중분해되거나 대대적으로 물갈이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포퓰리즘이 문제가 될 정도로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연구한다. 그러나 '일당독재' 중국에선 공산당 하나뿐인지라 공기업처럼 망할 걱정이 없다 보니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처럼 민심과는 유리된 채로 그저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해진다. 실제 공산당원들의 파벌경쟁은 서로 권력자에게 선택되기 위하는 '충성경쟁'에 가깝다. 그래서 전인대 대표단의 표결 절차는 부결된 적이 없어 '자동거수기', '고무도장'으로 불린다. 시진핑은 연임제한을 없애는 셀프 개헌을 시도했는데, 찬성이 100%에 가깝게 통과됐다. 이게 14억 인구의 민심을 대변한다고 볼 순 없을 것인데, 이렇게 민심과 유리된 이유는 당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기업도 어차피 하나이니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이 없으므로 오히려 국민에게 갑질을 할 위험이 있는데, 자본주의에서도 독점기업은 고인물이 썩듯이 위험할 수 있다. 공산당도 '독점정당'이니 당 내부에서 소수자를 배척하며 인민들에게 갑질하는 것이다.

배급과 복지도 갑질 문제가 있든 없든 경제가 좋아야 할 수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으며, 경제가 어려워지면 복지시설에 후원금부터 줄어들며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경제난이 심각해진 북한에서는 상술됐듯이, 자본주의가 약자들을 내팽개친다며 비인간적이라고 선동하듯이 권력층민이 갑질해서이기도 하지만, 하류층부터 배급이 끊겨 하류층민은 노예처럼 일해서도(일 안 할 자유는 없다) 정말로 굶어죽을 수도 있다. 뭐 여유가 있을 때라면야 사람이 너그러워지기에 김정은도 통크게 하류층에 쇠고기를 쏠 수도 있고 사람들도 자기만족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지만, 제 코가 석 자일 때는 점차 이기적이 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류층부터 타격을 입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한 한국에서는 일 안 하는 노숙자도 무료급식소에서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굶어죽을 걱정은 안 하며, 노숙자가 원한다면 노숙자 쉼터에서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연결시켜주고 무료로 직업교육도 시켜주며 돈도 주고, 물론 노숙자 본인이 거부한다거든 강제하지도 않으며, '일 안 할 자유'를 주고도 밥도 준다. 또한, 삼성이나 SK 등 민간 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받쳐주고 있으니 공무원들이 안정적인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것인데, 모두 다 공기업으로 전환된다면 모두 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이 있지만, 오히려 경제발전을 기대하기가 힘들므로 북한처럼 서서히 배급이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은 끊겨서 공무원도 노숙자도 민간 기업인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

본래 인간들이 원수를 사랑하는 수준의 이타심을 갖추지 못했기에 "니 가족이 당했다면" 같은 말, 상술된 '무조건적 헌신' 문제도 있고 자본주의 한국에서 빈부격차 부작용이 생기고 사회주의 북한에서 한줌 지배계급이 인민을 착취하는 김씨왕조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란 말처럼 극한 상황에 몰리면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너도나도 마스크를 먼저 사겠다고 싸웠다.[5]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에서는 식량 때문에 죽이고 약탈하는 비정한 장면이 많이 나오며, 무서운 이야기 2에서는 절벽에 조난당한 두 친구가 초코바 한 개로 다투다 파국을 맞는다(곳간에서 살인난다). 평시였다면 초코바 한 통도 얼마든지 양보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중에 '고려장'을 다룬 단편만화의 주제는 이렇다. 먹을 게 부족하여 아들이 어머니를 산에 내다버리기로 결정하여 지게로 모시고 가 산에 버리고 왔는데, 집에 있던 손자가 그 지게를 나중에 아버지 버려야 하니 아껴야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아들이 급 정신차리고는 황급히 산에 가서 어머니를 데리고 와 다시 모시고 잘 살았단 얘기다. 즉, 자기도 당할 것 같으니까 정신차린 것인데, 애니에서는 이 아들이 정신 차리고 효자가 된 것처럼 미화했으나, 만약 손자가 "난 아버지를 평생 모시고 살 것"이랬으면, 굳이 버린 어머니를 안 데리고 왔을 수도 있으니 결국 근본적으로는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6][7] 굳이 꼭 '역지사지'를 해보는 습관을 기르란 것도, 원래 이타적인 존재가 아님을 반증한다. 따라서 본인이 노력한 만큼 이권을 보장해주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체제이고 생산량을 잘 끌어올리는 데네 효율적임을 입증했다. 반면, 본인이 과로하며 일해야 어차피 배급은 똑같아 노력한 만큼 손해가 되는 체제에서는 생산량이 늘기는커녕 점점 떨어져가다 못해 폭망하며 체제가 무너졌다.

2023년, 북한에서 식량난 심화로 자살자가 증가하자 김정은은 자살을 사회주의에 대하는 반역 행위로 규정하였으며 방지대책 강구를 긴급 지시했다고 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살자가 증가하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자본주의도 까는 등 국가의 책임도 묻고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자본주의나 제국주의가 비인간적으로 착취한다고 손가락질하면서 지도층의 이익을 위해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착취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미 종교 수준으로 신격화된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를 까며 책임을 묻는다고 하는 것은 불경한 신성모독 행위이기에 오롯이 자살자 본인에게 모든 책임과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한국처럼 자살자를 추모하며 국가를 비난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자살자는 이유불문 그 자체로 죄인이기에 추모할 때조차 눈치가 보인다.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국가의 자기반성은커녕 사회주의에 대하는 반역이라고 적반하장을 하며 이렇게 개인의 목숨까지도 통제하고, 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이 아닌 그저 김정은 일가의 일개미로서 죽을 자유조차 빼앗은 것이 바로 '북한식 사회주의'의 비참한 현실이다. 정상적인 종교에서는 전태일 자살 때처럼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도 하지만, 사이비 종교에서도 자살하면 헌금이 줄어드니까 자살을 죄악시하며 자살자를 비난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개인의 목숨도 그 개인 것이 아니니 맘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 북한이나 종교나 다를 바가 없다.

왕자의 난 등 권력을 얻을 수 있었을 때는 부모, 형제도 안중에 없었는데,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표방한 북한 역시 김정남 피살 사건을 벌여서까지 고모부도 형도 없었고, 부르주아 생활 양식의 침습으로 사회주의 생활 양식이 흔들린다며 '혁명의 원쑤'들에 대하는 증오심을 백 배로 하라고 주문했다. 그 '무조건적 헌신'도 가족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외부의 원수들을 사랑하는 경지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내부의 원수(정적)나마 사랑했다거든 1인 독재체제는 면했을 것이나, 조선중앙통신에서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사형 소식을 전하며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라며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라고 보도했다. 이익 되는 일만 말고 책임도 '평등하게' 나누며 서로 내탓이라고 나섰으면 멋졌으련만(승인하거나 동조하던 자들), 손해 보는 일에는 다들 냉정히 손절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북한도 똑같은데, 그나마 현대 자본주의에는 재벌가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져 밀려난다 한들 죽거나 패가망신까지 가는 일은 드물지만, 북한에는 도박이 성공해야 지도자의 치적으로 삼아질 테고,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다 떠안고 연좌제까지 당하는 일이 흔하다. 한줌의 패거리(파벌)들끼리는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상부상조하고 형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의리'를 보이지만, 조직의 이권에 부합하지 않으면 배신자, 이단 등으로 몰아내듯이 자비 없이 사회악으로 매장하는 '조폭 수준의 이타심, 곧 집단 이기심 내지 무조건적 헌신'으로 사회주의를 이루려 했으니 저런 끔찍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8] 그래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법칙이 생긴 것이며, 니키 헤일리 유엔 미국 대사는 상술됐듯이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로 국가에 통제하기 힘든 거대권력을 주는 점을 지적했다. 사회주의가 되면 국가가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9] 21세기에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국의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낸다. 인류의 역사가 곧 전쟁의 역사인데, 전쟁이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인간들이 이런 '예수 수준의 이타심'을 갖췄으면 전쟁 등이 안 생길 것이고 북한/베트남의 사회주의는 성공했을 것이지만, 그러면 자본주의에서도 다들 기부왕처럼 돈을 버는 족족 기부하며 행복을 느끼고 빈부격차는 자연히 없앨 테니 굳이 사회주의 혁명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딜레마가 생긴다. SNS에서도 비슷한데, 결국은 사람이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도 있다.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러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보다는 그 시장 구조, 질서와 유관한 문제이긴 한데, 아무래도 이타심을 키우며 이런 시장 구조, 질서를 바꾸려면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을 나누어 스트레스 등을 풀면서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만,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상술된 보상이 없으면 이런 게 될 뿐이다. 그런 보상을 지나치게 권리로 여기는 역효과도 있을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기부, 복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상황에서는 사회 규범, 도덕, 법률을 준수해도 돈을 못 버는 회사도 있으며, '승자독식', 황금만능주의의 원인이기도 하다(일자리, 행복 관련 글, "시장경제 구현은 올바른 용어 사용서 출발"…양극화→소득격차, 승자독식→소비자선택). '' 문서, '능력주의' 문서, '계획적 구식화' 문서, '게임 중독' 문서의 '게임 중독은 영구적인가?' 문단도 참고할 만하다.

4.3. 변증법적 유물론 관점[편집]


  • 그렇다: 부패와 비리를 인간본연의 탐욕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을 규정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이는 틀렸다. 부패와 비리를 견제하는 근대적 법치사회의 양식을 따르면서 자본주의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미약했으며, 논되는 체제이론과 사상들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고로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양태를 인간본성으로 일반화해, 나아가 자본주의가 인간본성과 합치하는 양 착시시키는 순환논법에 불과하다. 탐욕 문제는 견물생심과 유관하기도 하다.

  • 아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말 그대로 경제적 동기를 바탕으로 인류 사회는 계급 투쟁을 반복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마르크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이념만 통하지는 않고 자연스러운 경제적 동기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으로써 현실적 공산 사회를 세우리라는 논리적인 증거는 없으며, 또한 "자본주의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미약했으며,"라고 말한 부분 자체가 마르크스의 논지에 타격이 되는 전제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은 이념적 관점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실사구시적인 도덕성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논하는 것과 같게 볼 수 있는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비록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패와 비리가 인간본연의 탐욕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의 일반화일 수는 있으나, 이념이나 정치 체제와는 상관없이, 효율적인 사회의 성장과 확장에 필요한 계급사회에서 부패와 비리는 필연적으로 일어난 것은 부정하기 힘든 것이다.


5. 자본주의는 왜 사라지지 않았는가?[편집]


위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독점자본주의는 큰 폐해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일종의 자본주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에 따라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학자는 자본주의가 곧 막을 내릴 것이며 공산주의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자본주의 사회는 여전히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계급이 자본을 투자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비율인 이윤율이 줄어든다고 했는데, 이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인 측면의 기술혁신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계급은 줄어드는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해 인간의 생활세계를 자본으로 치환하는데, 교통, 교육, 의료 등 국가공공부분의 민영화가 일례이다. 생산계급의 이윤율이 자본계급에 비해 계속 저하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계급의 이윤추구가 극단적으로 흐르면 노동계급이 반기를 들어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란 게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결정적인 변수가 생긴 것이 바로 노조의 설립과 확장이다. 즉, 자본주의 내에서도 충분히 노동계급의 이권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굳이 피를 흘려야 하는 사회주의 혁명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한계이윤율저하 경향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경향에 그치고, 정말로 그런지는 마르크스 본인도 회의적인 입장을 지녔다. 또한, 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나중에 연구하길 한계이윤율저하 경향의 법칙과 노동가치설은 상호 간에 논리적 모순이 있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폐기처분을 받았다. 주류 경제학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이른바 이윤율(이자율)은 자본이 축적될수록 일정 수준에서 수렴한다.

또,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가 생긴 1920년대의 대공황은 국가의 재정지출 확대와 수정 자본주의 이론으로 극복했으며, 전후 인플레이션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서 억제했다. 이러한 처방 밖에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체제와 자유주의로 공산진영보다 놀라운 기술혁신이 이루어진 점도 자본주의 진영이 체제경쟁에서 이긴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망하지 않는 게 자본주의 자체에 결점이 없다는 말은 아예 아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사상들 역시 아직은 유의미하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사유재산의 인정과 개개인의 자유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재산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즉, 혈통으로 지위가 결정되던 전근대 신분제 사회 속에서, 재산은 개개인이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에 이를 전폭적으로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쉽사리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한 자본주의 전에도 시장경제의 틀은 시장고대에도 있었듯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미래에도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는 사라질지언정 시장경제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극한으로 발달하고 난 이후라고 말했기 때문에 아직은 그 시기가 오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문제는 마르크스의 시대였던 19세기가 지나고 20세기 중반쯤 지나자 드디어 공산주의를 할 시기가 도래했다며 전세계적으로 '공산혁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는 것이다. 당시 달에 착륙한 소련의 과학기술과 경제력은 21세기인 지금 봐도 경이로울 정도니 '드디어 때가 왔다'며 들고 일어났던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당시 소련의 경제력을 훨씬 뛰어 넘어야 가능하다면 딜레마가 생겨난다. '부자 몸조심'이란 관용어구처럼 사람이 가진 게 많아지면 모험을 피하게 되는 성향이 있다. 이미 현대 한국의 경제력으로도 '부자 몸조심'을 하는 경향이 생겨 급진적인 '혁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잦아든 판국에, 그야말로 '극한'까지 발전했다면 경로의존성도 있으므로 굳이 검증도 안 된 다른 체제로 급진적인 도박을 시도하기보다는 그냥 '극한의 자본주의' 그 상태로 눌러앉은 채로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을 택할 수도 있다. 사실 '자본주의가 극한으로 발달한다'는 전제 자체가 '현대과학(의학)이 극한으로 발달한 것'처럼 뜬구름 잡는 듯이 막연하고 기약이 없기에 어쩌면 그런 때가 도래하기도 전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10]

[1] 아나키즘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가 이런 쪽이며 마르크스주의 역시 이론적으로는 이를 주장한다.[2] 파시즘이 이쪽이며 좌파 파시즘 쪽으로 간다면 영웅적 노동자, 영웅적 병사라는 미래주의적 개념을 도입한다.[3] 출처: #, #. 다만 탈자본주의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반자본주의로 나와 있다.[4] 자연환경 보호, 여가, 평등, 자율성, 공유, 사회 안전망 확보, 인권, 옛 유물·문화 보전 등을 들 수 있겠다.[5]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티비에서 커플 고양이를 키우던 주인이 길냥이 수컷 한 마리를 데려와 합사시켰는데, 그 고양이가 열폭했는지 방구석 여포처럼 커플 고양이 중 수컷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래서 주인이 제보한 건데, 해결책으로 다른 암컷 고양이 한 마리 데려왔더니만 마법같이 변했다. 나아가 괴롭히던 고양이에게 사료를 양보해주는 모습까지 보였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은 동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6] 어차피 만화니까 효심지극한 손자의 모습에 뉘우쳐 개심하고 어머니를 모셨으면 훈훈한 결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 나도 버려짐을 깨닫고 나서야 어머니를 데려와 보살폈으니,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장면이 다소 가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상대에게 상대도 당한다고 해야 그나마도 먹힌다. 자기 어머니를 내다버린 패륜범이 단지 말 한마디에 갑자기 효자로 변신하면야 좋겠지만(그걸 잘 이용해야 인과응보 등을 깨닫게 하는 등으로 개과천선시키기에 좋다), 현실에서는 환경이 열악해서인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말도 있으며, 심지어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에서는 '호의를 은혜가 아닌 권리로 여겨' 전과자가 자신을 구명운동 해주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힘써준 교수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하다가 살인까지 했다.[7] 사실 상술된 2022년 SPC 상품 불매운동도 결국은 자기 자신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곧, 자신도 똑같이 당하기는 싫은 것. 비슷하게 자식의 의사는 따지지 않고 특정 직종을 강요하는 헬리콥터 부모가 막상 해당 직종에 문제가 생기자 미래 자식들은 먹고 살지 말라는 거냐는 시위를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식에게서 영광을 얻으려는 그 부모 자신 때문인 셈이고, 그 부모가 금수저이면 장애가 되는 경쟁자 등은 죄다 처단하는 제설기 부모가 되기도 한다.[8] 이건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고전할 때는 이유를 안 생각하고 욕부터 하는 것이 예이다. '감탄고토', '우월의식' 문서 참고.[9] 국가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 또한 사람이니 정확히는 국가 운영자가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화폐로, 국가 운영자는 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10] 미루기 극복 전문 강사인 리타 엠멋이 말하길, 미루기 선수들은 항상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미루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런 완벽한 조건을 갖춘 때는 어쩌면 영원히 안올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선에서 조건이 갖춰지면 일단 과감히 시작하고 하나둘씩 해결해나가라고 강조했다. 현대과학이든 의학이든 자본주의든 아주 완벽한 조건이 갖춰져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당장 기사만 검색해봐도 지구온난화니 한국인 자연소멸 심각이니 하는 기사 보면 100년 뒤도 장담할 수 없을 것처럼 묘사해놓기도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차 핵전쟁 운운하며 10년 뒤도 장담을 못할 것 같은 기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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