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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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Frenchman

※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2가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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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살바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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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레옹 지트론
니콜라스 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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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위
6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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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위
시몬 베유
파트리크 푸아브르 다르보르
프랑시스 카브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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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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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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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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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위
74위
75위
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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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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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세로
미셸 드러커
라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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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보베
장 페라
리오넬 조스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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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티노 로시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세르지 레기아니
프랑수아즈 돌토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에밀 졸라
Émile Zola
파일:97c67260763a7da8422d233506000d3a.jpg}}}
본명
에밀 에두아르 샤를 앙투안 졸라
Émile Édouard Charles Antoine Zola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왕국
출생
1840년 4월 2일
프랑스 왕국 파리
사망
1902년 9월 29일 (향년 62세)
프랑스 파리
학력
Lycée Saint-Louis
직업
소설가, 극작가, 시인, 비평가, 저널리스트
사조
자연주의
부모
아버지 프랑수아 졸라 (1796~1847)
어머니 에밀리 오베르 (1819~1880)
배우자
알렉산드리나 졸라 (1870년 결혼)
자녀
드니즈 에밀 졸라 (1889~1942)
자크 에밀 졸라 (1891~1963)
서명
파일:에밀 졸라 서명.png}}}

1. 개요
2. 생애
3. 정치적 행보
4. 사망
5. 기타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J'Accuse…!
나는 고발한다...!


La vérité est en marche, et rien ne l'arrêtera.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전진하는 진실(La Vérité en marche)》 중에서


Un jour la France me remerciera d’avoir aidé à sauver son honneur.

언젠가 프랑스가 나라의 명예를 구해준 것에 대해 내게 감사할 날이 올 것이다.[1]

에밀 졸라는 프랑스자연주의, 자유사상 소설가, 극작가, 시인, 비평가, 저널리스트이다. 문학 외적으로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840년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토목기사인 프랑수아 졸라(François Zola)[2]프랑스인인 에밀리 오베르(Émilie Aubert) 부부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1842년에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시로 이주하였고 콜레주 재학 시절인 1852년에 폴 세잔과 처음 만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1847년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1858년에 파리로 다시 이주하였고 리세 생루이(Lycée Saint-Louis)에서 학업을 마쳤다. 1859년에 바칼로레아에서 낙방하면서 무직으로 지내게 되었고 이는 그가 문학에 몰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62년에 아셰트 출판사(Hachette Livre) 영업부에서 근무하면서 1864년에 출간한 첫 단편집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Contes à Ninon)》를 시작으로, 1871년부터 20권 분량의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를 출판하면서 <목로주점(L'Assommoir)>이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 덕분에 그는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해졌고 빅토르 위고보다 더 높은 원고료를 받았다고 한다.

에밀 졸라는 당시 유럽 학계에선 새롭게 부상하던 유전학을 토대로 루공마카르 시리즈를 집필했다. 실제 루공마카르 시리즈의 부제는 ‘제2제정 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라고 붙어 있으며, 가상의 가계도를 설정하고 가계도 내의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일생을 서술하는 듯한 방식을 취한다. 그 서술방식 때문에 19세기 후반의 사회사(社會史) 자료로 귀중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에밀 졸라의 주요 작품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여성의 강조인데,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이 팜 파탈로서의 여성이다. 앞서 소개된 목로주점의 주인공의 문제의 딸인 창녀 나나를 주인공으로 한 <나나>는 아주 고전적 팜 파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동자 혁명에 대해 다룬 <제르미날>까지 이 범주에서 해석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에밀 졸라의 성향은 분명하다.

사실 <나나>를 비롯한 3부작인 <나나>, <제르미날>, <인간짐승>[3]이 바로 목로주점의 후속편으로 목로주점의 여주인공의 세 자식들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운명과 함께 필연적으로 몰락하는 프랑스 제2제정을 투영시키고 있다[4]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직접 언급한 <테레즈 라캥>도 그렇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5]에서는 소비에 대해 갈망하는 여성의 욕구를 다루었는데, 이 정도 되면 이게 여성화된 남성이냐, 아니면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에 대한 표현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등등 말이 많을 정도이다.

의외로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장르 문학에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암울한 인간군상을 표현하다 보니 자연히 범죄를 소재로 자주 다루게 되었으며, <테레즈 라캥>은 범죄 소설과 호러 소설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3. 정치적 행보[편집]


드레퓌스 사건으로 한창 프랑스가 두 조각으로 쪼개져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도중, 사건의 부당성을 고발하기 위해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란 서한을 게시해[6] 드레퓌스 사건에 대대적으로 참전했고 이 때문에 매국노로 낙인 찍혔다. 당시 프랑스 내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기에 드레퓌스 사건이 조작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당시에 저명한 사회인사가 드레퓌스 편을 들었다고 민중들은 졸라의 인형을 불태우는 등 졸라는 엄청나게 비난을 받게 된다. 마침내 서한이 문제가 되어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이듬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4. 사망[편집]


<나는 고발한다> 이후 드레퓌스 구명을 위해 힘쓰다가 잠자던 중 사망하였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인은 난로를 열고 자는 바람에 불완전 연소된 석탄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지만, 나중에는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굴뚝 청소부가 굴뚝을 막아 가스 중독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밝혀졌다. 후에 드레퓌스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회복된 이후에는 문학적 성과만큼이나, 프랑스 지식인의 행동하는 지성과 양심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장례식 조사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졸라와 입장을 같이했던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년 4월 16일 ~ 1924년 10월 12일)가 했는데, 여기서 그는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방대한 저작과 위대한 참여를 통해 조국을 명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걸출한 삶과 뜨거운 가슴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운명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심의 순간이었습니다.(Envions-le : il a honoré sa patrie et le monde par une œuvre immense et par un grand acte. Envions-le, sa destinée et son cœur lui firent le sort le plus grand : il fut un moment de la conscience humaine.)"라는 말을 남겼다. 조사 전문.


5. 기타[편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는 주인공 미카엘 팽송의 수호천사로 출연한다. 드레퓌스 옹호 경력 때문인지 말빨이 쩔어서 미카엘이 천사가 된 것은 순전히 졸라의 공헌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비슷한 또래인 화가 폴 세잔과 같은 중학교 출신이며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화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세잔을 여러 번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한 것도 에밀이었다. 세잔이 그림을 그리다가 금세 질려서 안 그리고 딴짓할 때 세잔의 아내와 더불어 잔소리를 해가며 그림을 그리게 한 인물로 언급되기도 한다고. 다만 1886년에 에밀과 세잔은 절교했는데 그 원인은 분명치 않다. 일반적으로는 에밀 졸라의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로 그려진 주인공이 세잔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여겨져 세잔이 이에 빈정 상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별장에는 작가들이 자주 모이곤 했는데 기 드 모파상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그것이다. 에밀은 자기 별장에 모이던 젊은 작가 중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출판했는데 거기에는 모파상도 끼어 있었고 그가 단편집에 낸 <비곗덩어리>가 주목을 얻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37년에는 에밀 졸라의 전기 영화인 에밀 졸라의 생애가 개봉했다.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은 작품이나, 드레퓌스 사건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도 정작 핵심 문제였던 유대인은 언급도 되지 않는 것이 흠.

"프랑스에서 가장 불효자는?"이라는 넌센스 퀴즈의 답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될 만큼, 이름의 어감이 한국어 화자에게는 패륜이 연상되는 별난 이름에 속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진행한 마틸다 뮤지컬에서는 휴식시간 이후 진행되는 2부 초반에 "에밀 졸라? 애미의 목을 졸라!?" 라는 대사가 나왔었다.[7]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장교와 스파이'(원제J'Accuse 나는 고발한다)에서 에밀 졸라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드레퓌스 사건을 잘 묘사했다.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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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말은 에밀 졸라가 사후 팡테옹에 안치되면서 사실이 되었다. 프랑스 팡테옹의 입구에는 "국가가 위대한 인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글귀가 있다.[2] 본명은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주세페 마리아 촐라(Francesco Antonio Giuseppe Maria Zolla).[3]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철도 공무원인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그린 작품. 장 르누아르프리츠 랑이 영화화했다.[4] 나나의 마지막 장면이나 인간짐승의 마지막 장면 모두 보불전쟁에 환호하는 프랑스 군인들을 그리고 있다[5] 원제는 "Au Bonheur des Dames". 국내에서 번역된 제목만 3개이다. 일반적으로 '부인들의 천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고, 그 외에 (원제를 직역한) '숙녀들의 기쁨', '부인 백화점'이란 제목도 있다. 정식 발매명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6] 이때 로로르의 편집장이었던 인물이 바로 조르주 클레망소. 세계 1차 대전에서 프랑스의 총리였던 인물이다.[7] 해당 뮤지컬에서는 에밀 졸라 말고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9금, 톨스토이는 토쏠려라고 드립으로 써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