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달라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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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필리프
장 카스텍스
제121대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제53대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Édouard Daladier
파일:346px-Daladier_1924.jpg
출생
1884년 6월 18일
프랑스 보클뤼즈 카르팡트라
사망
1970년 10월 10일 (향년 86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정당
급진당 (Parti radical)
재임기간
제53대 총리
1933년 1월 31일 ~ 1933년 10월 26일 1기
1934년 1월 30일 ~ 1934년 2월 9일 2기
1938년 4월 10일 ~ 1940년 3월 21일 3기
서명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 총리를 지낸 정치인.


2. 생애[편집]


에두아르 달라디에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총리로 1884년 프랑스 보클뤼즈 주, 카르팡트라에서 태어났다.[1] 리옹에서 에두아르 에리오[2]의 지도를 받고 역사학 교수가 되었고, 후에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중위까지 승진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리고 1919년에 달라디에는 급진당에 입당, 보클뤼즈 주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24년에 은사인 에두아르 에리오 내각이 수립된 이래, 식민지장관·육군장관·교육장관·공공사업장관 등을 지냈고, 1933년 1월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자신의 내각이 붕괴된 뒤에도 후임 내각의 육군장관으로 유임하였다.

1934년 1월, 스타비스키 사건[3]으로 인한 카미유 쇼탕 내각의 붕괴 이후, 두 번째로 총리가 되었으나, 역시 스타비스키 사건의 여파로 벌어진 극우파의 1934년 프랑스 폭동 이후 자당 의원들과 경찰, 법무부의 반발로 불과 11일 만에 퇴진하였다. 그 후로는 레옹 블룸과 함께 인민전선 결성에 힘썼고, 급진당과 공산당의 대립의 격화로 인해 1937년 인민전선 내각의 붕괴를 초래했는데 쇼탕, 블룸의 단기간 내각에 이어 달라디에는 1938년 4월 10일에 세 번째로 총리가 되었다.

평시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지도자였지만, 전시상황에서는 뮌헨 협정이라는 성대한 오판을 저질러 대전 초기의 프랑스의 붕괴를 불러온 지도자라는 평가가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대전쟁의 비극이 다시 발생하길 원하지 않았고, 나치 독일과 최대한 외교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였으며, 프랑스의 경우 대전쟁에서 징집 가능한 성인 인구의 20%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대공황으로 인하여 라인란트 재무장 사건부터 해서 체코 합병까지 용인하게 된 것이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은 마침내 폴란드침공했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선전포고 했지만 1차대전의 피해로 인해 독일을 치는 것은 주저하게 되어 달라디에는 프랑스군의 전면적인 개입은 자제했고, 이것은 가짜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후 핀란드의 겨울전쟁 패배를 지원하지 못한 책임으로 물러나게 되지만 폴 레노의 요청으로 국방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프랑스 침공 당시 모리스 가믈랭의 무기력한 지휘로 프랑스군이 혼란에 빠지자 달라디에는 국방장관에서 파면되었다. 그 후 비시정권이 수립되자 모로코로 도피하려 했으나 중도에 사로잡혔고,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 이터 성에 수감되어 종전을 맞았다. 이터성 전투 항목 참조.

프랑스가 해방된 뒤 필리프 페탱 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1940년 6월 시점에서는 독일과의 휴전을 받아들일 수 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는 증언을 해 페탱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단, 1942년 영미 연합군이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후 독일 국방군이 자유지역인 남부 프랑스를 점령하게 허용한 페탱의 책임에 대해선 '프랑스군에게 독일군의 침입에 저항하라고 지시했어야 마땅했다'라고 답변했다.

그 후 국회의원과 아비뇽의 시장을 역임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1970년 사망했고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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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신과 더불어 두꺼운 목과 넓은 어깨 때문에 달라디에는 보클뤼즈의 황소로 불렸다.[2] 프랑스 제62대 총리[3] 1933년 12월 러시아 출생의 유대인 스타비스키(Stavisky, 1886∼1934)가 프랑스 서남부의 소도시 바욘에서 거짓말과 속임수로 많은 정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고, 그것으로 불량 채권을 발행하도록 하여 거액의 돈을 갈취한 사건이다. 당시 급진당 내각의 알베르 다리미에 사법장관이 이 사건에 연루되고, 파리 경시총감 장 키아프가 스타비스키의 도피를 도와준 사실이 드러나 정계의 부패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다. 파시스트 세력은 이 사건을 공화주의적 의회제도를 반대하는 데 이용, 급진당 내각을 맹렬히 공격하고 시위운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