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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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미겔 디아스카넬
에스테반 라소 에르난데스


쿠바 대통령 · 쿠바 국가이사회 위원장 · 쿠바 국가주석





피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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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공화국 제7·8대 국가이사회 위원장 겸 내각 수상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쿠바 혁명무력 총사령관
라울 모데스토 카스트로 루스
Raúl Modesto Castro Ruz


이름
라울 모데스토 카스트로 루스
Raúl Modesto Castro Ruz
출생
1931년 6월 3일 (92세)
쿠바 올긴 주 비란
국적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직업
정치가, 군인
최종 당적

[[쿠바 공산당|
]]

직책
쿠바 혁명무력상(1959~2008)
국가이사회 부위원장(1976~2008)
쿠바 혁명무력 총사령관(2008~2018)
국가이사회 위원장(2008~2018)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비서(1965~2011)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2011~2021)
형제
피델 카스트로
배우자
빌마 에스핀(1959~2007, 사별)
종교
무종교(무신론)
신장
175㎝[1]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파일:210416133355-01-raul-castro-restricted.jpg

쿠바 전 국가이사회 위원장(Presidente del Consejo de Estado)이자 전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Primer secretario del Comité Central del Partido Comunista de Cuba).

피델 카스트로의 친동생으로 형과 같이 쿠바 혁명에 참가했다. 쿠바 혁명에서는 피델에 이어 둘째 가는 유공자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형 피델과 체 게바라가 더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왕조처럼 친족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것을 보고 피델-라울 카스트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라울은 그 스스로가 쿠바 혁명을 같이 주도했으므로[2] 그냥 형 유명세에 업혀가는 게 아니다. 형이 1인자라 그렇지, 라울 자신도 최상위급 혁명 원로였다. 북한의 경우보다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법무장관으로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기용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로버트 케네디 또한 30대 법무부 장관으로 족벌인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스스로 능력을 인정받아 역대 최고의 법무장관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고, 현재 미국 법무부 청사의 빌딩 이름부터가 로버트 케네디 빌딩으로 헌정되며 암살당하지만 않았어도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당선이 거의 확정적인 인물이었을 정도이다. 현재도 미국 정계를 주도하는 민주진보계열 인사들은 JFK보다도 RFK를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삼을 정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집무실에도 RFK의 흉상이 있을 정도이다.

1976년부터 국가이사회 부위원장과 혁명무력상을 역임하다가 형의 뒤를 이어 2008년 제7·8대 국가이사회 위원장에 오름으로써 권력을 승계하였다. 다만 국가이사회 위원장은 상징적 국가원수로 피델 카스트로는 실권직인 쿠바 공산당 제1비서직은 유지하여 계속해서 실권자로 남아있었다. 이후 2011년 형 피델 카스트로의 퇴임으로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에 올랐고 2021년에 본인도 제1비서직을 미겔 디아스카넬에게 승계하면서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2. 행적[편집]


취임하자마자 그동안의 쿠바 경제체제를 비판하면서 형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발 맞추는 모습을 보여왔다. 집권 한 달만에 농업개혁을 단행하고, 방만한 정부조직에 대한 구조조정, 자영업 허용, 정치범 석방 등을 단행하는 등 개혁개방의 길을 걷고 있다.

원래 라울 카스트로는 젊은 시절부터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형 피델에게 체 게바라를 소개시켜 주면서 민족주의자였던 피델을 급진적인 친소 공산주의 노선으로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자신보다 동생이 훨씬 급진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

그러던 라울이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를 보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한 고민들이 집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정책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영업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봉급 수준이 낮은데다가 예산 감축을 명분으로 배급 제도를 축소하는 추이에 있기에 불만이 있다는 듯하다.

2014년 12월 이러한 개혁개방 정책의 완결판으로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오래전부터 2018년 치러질 차기 국가평의회 의장 선거에 나서지 않고 임기를 마치면 바로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에, 남은 임기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와 경제 개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라울은 앞으로도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는 틀에서 시장경제를 과감하게 도입하는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의 행적에 감동받아 가톨릭으로 복귀하는 것을 생각 중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했다. 기사. 원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냉담자인듯.

2017년 9월에 2018년 2월 국가수반직인 국가이사회 위원장 임기를 마치면 새로운 지도자에게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쿠바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정권 교체를 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고 한다. 형 피델과 마찬가지로 라울도 독재자로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종신집권은 사양하고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오는 듯. 쿠바 카스트로 형제 59년 통치 저문다…내년 2월 정권 이양 공식적으로 4월 19일에 후임자인 미겔 디아스카넬에게 국가이사회 위원장직을 물려주었다.[3] 다만 정권을 물려준 것과는 별개로 공산당 제1서기직은 2021년까지 유지할 계획이기 때문에 태상왕격으로 남게 되어서 영향력 자체는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2021년 4월 16일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현재 92세를 넘기며 90세로 사망한 형보다 오래 살고 있다. 퇴임 이후에도 쿠바 건국의 아버지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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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였던 형에 비해 작긴 하지만 라울 역시 1931년생임을 감안하면 동 나이대 사람들 중에서는 장신이 맞다.[2] 오히려 공산당 경력만 보면 라울이 선배에 가깝다. 피델은 처음에 공산주의에 별 관심이 없었고 라울이 열성적인 공산주의자였다. 이후 형이 전면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묻혔을 뿐, 라울도 절대 혁명에서 지분이 작지 않았다.[3] 원래는 2018년 2월에 이양할 예정이었지만 허리케인 하비와 아마로 쿠바 상당수 지역이 큰 피해를 입은 탓에 대의원 선거가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이양과정도 늦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