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 북분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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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皇南大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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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남대총 북분 금관1.jpg 파일:황남대총 북분 금관2.jpg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皇南大塚 北墳 金冠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수량/면적
일괄
지정연도
1978년 12월 7일
제작시기
신라시대

1. 개요
2. 내용
3. 관련 영상
4. 외부 링크
5. 국보 제191호


1. 개요[편집]


皇南大塚 北墳 金冠.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여성용 금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높이 27.5cm, 드리개(수하식) 길이 13-30.3cm.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으로, 제작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이라고 추정한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 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황남대총은 발굴 당시 남쪽에 있는 남분(南墳)이 의 능이고, 북쪽의 북분(北墳)은 그의 부인인 왕비의 능이었음이 밝혀졌는데, 특히 북분의 발굴 당시 발견된 은제 허리띠 꾸미개에 '부인대(夫人帶)'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여자가 쓰던 관임이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정작 북분에서 발견된 이 여성용 금관은 크고 화려한 금관인 반면, 남분에 안장된 남성용 금관은 상대적으로 덜 화려한 금동관이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여러 설[1]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귀한 관을 쓰고 있는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무덤 축조 시기의 경우 최초 한일학계에서는 황남대총과 같은 거대한 신라 능묘는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난 신라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파악하여 눌지 마립간(417년~458년 재위)의 왕릉이라는 설이 다수였으나, 이후 지속적인 신라시대 유물 발굴 및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기존 신라의 내적 수준을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시각을 비판하는 여론이 한중일 동아시아 삼개국 역사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이 왕릉의 축조시기도 내물 마립간(356년~402년 재위) 혹은 실성 마립간(402년~417년 재위) 시기로 보는 시각이 대세이다. 즉 이 금관의 주인도 남분에 묻힌 왕이 누구냐에 따라 그 시기의 왕비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2] 그러나 북분의 주인이 자비 마립간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이 설을 따르면 자비왕이 이 금관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금관 및 왕릉에서 함께 발견된 유물 7만여 점은 356년~417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제작되었다고 거의 확실시된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재질을 조사한 결과 순도 86.2%의 순금으로 확인되었다.

KBS 1TV의 교양 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 6회에서 대표 문화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3. 관련 영상[편집]






4. 외부 링크[편집]




5. 국보 제191호[편집]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이다.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는 13∼30.3㎝이다.

이마에 닿는 머리띠 앞쪽에는 山자형을 연속해서 3단으로 쌓아올린 장식을 3곳에 두었고, 뒤쪽 양끝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2곳에 세웠다. 푸른 빛을 내는 굽은 옥을 山자형에는 16개, 사슴뿔 모양에는 9개, 머리띠 부분에 11개를 달았다. 또한 원형의 금장식을 균형있게 배치시켜 금관의 화려함을 더하였다.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는 좌·우 각각 3개씩 대칭으로 굵은 고리에 매달아 길게 늘어뜨렸다. 바깥의 것이 가장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진다. 장식 끝부분 안쪽에는 머리띠 부분과 같은 푸른색 굽은 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발견 당시 금관과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금관은 신라 금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느 것보다도 굽은 옥을 많이 달아 한층 화려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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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인 설로는 남분에 묻힌 왕은 본래 부마였다가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북분에 묻힌 왕비가 훨씬 왕족으로서 권위가 높았기 때문에 북분에 금관이 묻혀졌다는 것이다. 다만 실질적인 증거가 아닌 추정이기 때문에 정설은 아니다.[2] 눌지 마립간이라면 왕후 차로부인, 실성 마립간이라면 왕후 아류부인, 내물 마립간이라면 왕후 보반부인이 이 금관의 주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