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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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高麗末 和寧府 戶籍 關聯 古文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아생전 간직하고 다니던 8폭의 호적 문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고려 공양왕 2년인 1390년에 영흥에서 작성된 호적으로, 당시 화령부(和寧府)에서 이성계에게 등본을 떼준 문서이다.
고려시대 양반은 3년에 한 번씩 호적을 2부 작성하여 하나는 관청에 두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보관해야 했다. 이 호적에는 이성계 가문을 포함 함경남도 영흥의 양반가구 30여호의 호적이 기재되어 있으며, 평소 이성계가 직접 간직하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본향(本鄕) 영흥에 있을 때 발급받은 호적으로, 고려 말 양반 호적제도를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또한 650여년전 한국의 공문서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 외부 링크[편집]
4. 국보 제131호[편집]
이 호적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본향인 영흥에서 작성한 것이다. 원래 고려시대 양반은 3년에 한 번씩 호적을 작성하는데 이 때 2부를 작성한다. 1부는 관아에 보고하고 다른 1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성계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의 내용을 보면 이성계의 관직, 식봉이 명기되어 있으며, 태종 이방원의 이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 이성계를 중심으로 동거하는 자식, 형제, 사위와 노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문서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기록으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를 연구하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5.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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