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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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남 하동군 쌍계사
1.1. 개요
1.2. 상세
1.3. 문화재
1.4. 사건사고
2. 전남 진도군 쌍계사
2.1. 개요
2.2. 역사
2.3. 문화재
3. 충남 논산시 쌍계사
3.1. 개요
3.2. 역사
3.3. 문화재
4. 전남 영암군 쌍계사지 터
4.1. 개요
4.2. 역사


한자 : 雙磎寺 / 로마자 : Ssanggyesa
홈페이지


1. 경남 하동군 쌍계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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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쌍계사 대웅전 및 진감선사탑비 원경.jpg
쌍계사 대웅전 및 진감선사탑비 원경

1.1. 개요[편집]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운수리)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인근의 섬진강화개장터에서 이 쌍계사까지의 길에 피어있는 벚꽃들이 매우 유명하다. 그래서 벚꽃이 피는 봄철에는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1.2. 상세[편집]


724년(신라 성덕왕 23년) 의상의 제자인 대비(大悲),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당나라에서 유학중이던 삼법은 귀국 전 중국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의 정상(頂相, 머리)을 모시고 삼신산의 곡설리 갈화처(谷雪里 葛花處)[1]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귀국 후 이곳저곳을 다녀보았지만 그런 땅은 찾지 못했고 지리산까지 당도하였다. 그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고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2] 자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곳이 꿈에서 계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정상을 평장(平葬)한 후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설화로 전한다.

그후 840년(신라 문성왕 2년)에 당나라에서 선종의 법맥을 잇고 귀국한 진감선사(眞鑑禪師, 774~850)가 퇴락한 옥천사를 오늘날의 대가람으로 중창하여 선(禪)을 가르치고 범패를 보급하였다. 나중에 헌강왕 때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의 절이 두 개가 있어[3]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문전에 흐르는 쌍계라는 시냇물에 연유하여 쌍계라는 호를 내려 주고 하고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의 4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새겼다. 그 후 두 차례나 화재로 절이 불탔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4]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 의하여 복구, 중수되었다.

와도 인연이 깊은 절인데,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簾)이 828년에 차의 종자를 가지고 귀국한 후 지리산에 심었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배지(茶始培地)로서, 쌍계사 계곡 아래에 위치해있다. 그후 진감선사가 재배 면적을 늘리고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진감선사와 초의선사의 다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매년 법회를 열고 있다.


1.3. 문화재[편집]


오랜 역사에서 보이듯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많은 문화재가 경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만 국보 1점, 보물 12점이 있다.

보물 제500호 하동 쌍계사 대웅전
보물 제925호 하동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八相殿 靈山會相圖)
보물 제1364호 하동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탱(三世佛幀)
보물 제1365호 하동 쌍계사 팔상전 팔상탱(八相殿 八相幀)
보물 제1378호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
보물 제1695호 하동 쌍계사 괘불도(掛佛圖)
보물 제1696호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甘露王圖)
보물 제1701호 하동 쌍계사 동종(銅鍾)
보물 제2111호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목판
보물 제2112호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圓頓成佛論·看話決疑論 合刻) 목판
보물 제2113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儀經) 목판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하동 쌍계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하동 쌍계사 일주문[5]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 하동 쌍계사 팔상전(八相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하동 쌍계사 명부전(溟府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하동 쌍계사 나한전(羅漢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6]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하동 쌍계사 천왕문(天王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하동 쌍계사 금강문(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하동 쌍계사 불경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4호 하동 쌍계사 삼장보살탱(三藏菩薩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5호 하동 쌍계사 팔상전 신중탱(八相殿 神衆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6호 하동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후불탱(國師庵 阿彌陀後佛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3호 하동 쌍계사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하동 쌍계사 청학루(靑鶴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 하동 쌍계사 적묵당(寂默堂)[7]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하동 쌍계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座像)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 하동 쌍계사 팔영루(八詠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하동 쌍계사 설선당(說禪堂)

이와 같은 동산문화재 외에도 쌍계사 자체도 명승으로 지정 되었다. 쌍계사와 주변 일대는 본래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을 날려 오던 것이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고,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 받아 2022년 11월 11일에 근처의 불일폭포까지 함께 포함하여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됐다.

한편, 문화재처럼 생겼는데 아닌 것도 있다. 천왕문을 지나 올라오면 팔영루 앞에 월정사의 9층석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9층석탑이 하나 있는데 1990년에 만든 것이다. 이 탑에는 쌍계사 방장을 지낸 고산(杲山)이 인도, 스리랑카에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진신사리 3과(顆), 쌍계사의 암자 중 하나인 국사암에서 진신사리 2과, 그리고 불상 1위를 함께 봉안했다. 그리고 대웅전 뒤에는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2007년에 만든 것이다. 이 금강계단은 농심그룹 신춘호 일가가 시주하였다.


1.3.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사건사고[편집]


1936년 지리산 쌍계사 지진이라는 사건이 과거에 발생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이 발생한 쌍계사가 바로 여기다.


2. 전남 진도군 쌍계사[편집]



2.1. 개요[편집]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2.2. 역사[편집]


857년(신라 문성왕 1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양쪽으로 두 개의 계곡이 있다 하여 쌍계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후 부침을 거듭하다 조선 숙종23년에 중건되었다.[8]


2.3. 문화재[편집]


보물 제1998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이 있다. 절 뒷쪽으로는 천연기념물 107호인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이 있다.

2016년 1월에 대웅전을 해체 보수하던 중, 서양화 기법의 탱화 19점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3. 충남 논산시 쌍계사[편집]



3.1. 개요[편집]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3.2. 역사[편집]


언제, 누가 세운 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739년에 세운 중건비의 내용에 따르면 행촌(杏村) 이임의 발원으로 세워졌다고 되어 있으며 대략 고려시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에는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상당히 큰 절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언젠가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가 1716년에 중창되었으나 다시 화재로 모두 소실된 후 1739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3. 문화재[편집]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대웅전, 보물 제1851호인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다.


4. 전남 영암군 쌍계사지 터[편집]



4.1. 개요[편집]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던 절.


4.2. 역사[편집]


통일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되었으며, 의 도움으로 쉽게 절을 중창할 수 있었다고 하여 덕룡사(德龍寺)라고도 불렀다.

그러다 조선 세조 9년인 1463년에 다시 절을 크게 중창하는데 이때 다음과 같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세조가 잠을 자던 중 에 한 노인이 나타나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보여 주면서 "덕룡사가 있는 곳은 나라의 혈맥이니 이 책을 만들어 덕룡사에 비치한다면 책이 있는 동안은 국가의 사직과 백성들이 평안해질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세조가 잠에서 깨자마자 급히 신하들을 불러 법화경언해를 만들게 하고 전국에 책을 배포한 후, 절을 크게 중창하고 법화경언해 1권을 쌍계사에 직접 봉안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호연대사의 비 등 사찰의 많은 부분을 일본으로 반출하였고, 6.25 전쟁 직후 그나마 남아있던 삼층석탑 등도 모두 팔려 한조각씩 잘라 들고 갔다. 지금은 폐사지가 되었고 전남 민속문화재 제17호인 쌍계사지장승와 몇몇 지석만이 남아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쌍계사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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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쌓인 계곡에 칡꽃이 피어있는 곳[2] 현재의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이며 혜능의 정상은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3] 경상남도 고성에도 옥천사(玉泉寺)가 있는데 쌍계사보다 훨씬 전인 670년, 의상이 창건하였다. 지금은 쌍계사의 말사로 존속하고 있다.[4] 임진왜란 이후 쌍계사를 포함하여 완주 송광사, 법주사, 화엄사 등 전란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사찰의 중창 불사를 주도해 조선 후기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도 축성했다.[5] 지리산 쌍계사가 아닌, 삼신산 쌍계사로 되어있는데 상술한 창건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다.[6] 건물의 이름을 하나씩 풀어보면 육조(혜능), 정상(머리), 탑, 전이 된다. 쌍계사의 금당이며 내부에는 7층석탑이 하나 있는데 그 밑에 혜능의 정상(머리)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를 하지는 않았으며 최초에 삼법이 혜능의 정상을 가져왔을 때에는 감실(龕室)을 만들어 그 안에 봉안해 땅 밑에 묻었고 나중에 진감선사가 그 위에 보호각을 지었다. 그 후 1800년대에 인근의 다른 절에서 이 탑을 옮겨와 감실 위에 올려두었다.[7] 원래 보물 제458호였으나 1968년 2월 19일 화재로 전소되어 지정해제되었다. 그 후 복원하면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 지정되었다.[8] 대웅전의 상량문에 강희36년이라 적혀 있고, 이로 미루어보아 숙종 23년, 즉 1697년에 대웅전이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