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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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시절
3.1.1. 2013 시즌
3.1.2. 2014 시즌
3.1.4. 2016 시즌
3.2.1. 2017 시즌
3.2.2. 군 복무
3.2.3. 2020 시즌
3.3. kt wiz 시절
3.3.1. 2020 시즌
3.3.2. 2021 시즌



1. 개요[편집]


이홍구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한국대학야구에서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평가받았다. 201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한 대회 3개 홈런, 연타석 홈런과 9회 말 끝내기 홈런 등을 기록하면서 타격 면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다만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주 수비 포지션인 포수보다도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우가 많았고, 4학년이 돼서야 주전 포수로 기용되는 등 실질적인 포수로서의 경력은 길지 않은 편. 실제로 프로 지명 전까지 포수를 본 경험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통틀어서 3년밖에 없었다고 한다.[1] 강견은 갖추고 있지만 아직 투수 리드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또 도루저지와 블로킹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블로킹에 문제가 있어서 기교파 투수 선발 시 라인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2]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지명(전체 14순위)을 받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1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손동욱과는 단국대학교에서 영혼의 배터리를 맡았다.

고교+대학 성적은 84경기 261타수 68안타 타율 .261 8홈런 47타점 1도루 27볼넷 65삼진. 아마추어 때부터 공갈포의 기운이...


3. 프로 시절[편집]



3.1.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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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포수진에서는 몇 안 되는 파워 툴을 장착한 선수였다. 이 부문에 있어서는 장충고 1년 선배인 백용환도 갖추긴 했지만, 백용환은 기본적인 포수 능력이 달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 이홍구가 더 중용되고 있다.


3.1.1. 20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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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기준 KIA 타이거즈의 포수진은 1군에서 활약한 적이 있는 자원이 김상훈, 차일목, 강귀태, 한성구, 송산, 이성우까지 6명이나 되기 때문에 주전 포수 자리를 위해서는 이들과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하는 상황. 아마 무대에서 공격력은 이미 검증받았기 때문에 미흡한 민첩성과 투수리드 부분을 개선시킨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받았다.

2013년 5월 31일 부상으로 일찌감치 2군으로 빠진 김상훈을 대신하여 1군으로 올라왔다. 김주찬도 같이 올라왔으며, 최훈락이 내려갔다.

2013년 6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교체 출장하여, 9회초 2사 2루와 3루 상황에서 삼성 투수 차우찬을 상대로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중전 안타를 치며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

이후 7월 2일 차일목이 1군으로 올라오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7월 18일 포항에서 열린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2013년 7월 29일 최희섭, 유동훈, 차일목이 1군에서 말소되면서 심동섭, 황정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8월 8일 선발 출장하여 4회초 주자 없는 상황에서 찰리 쉬렉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는데, 이 홈런은 2013년 KIA 포수들 중 처음으로 때린 홈런이었다. 특히 밀어쳐서 우측 담장을 넘긴 홈런이라는 점에서 파워툴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후반기 들어 팀의 성적이 떨어진 상황에서, KIA의 포수진도 막장이 되어버린 상태라 선감독이 어쩔 수 없이 포수 강제 리빌딩 차원에서 이홍구를 중용하긴 했지만, 도루저지 능력은 KIA의 포수진에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8월 8일에는 2루 도루를 시도한 김종호를 잡아내기도 했고 8월 11일에도 배영섭을 잡아 내었다. 신인이라서인지 투수 리드와 타격은 미숙했지만, 성장세가 빨라서인지 이 역시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간만에 제대로 된 포수 유망주가 나와서인지 많은 KIA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10월 3일 8번타자로 나와 니퍼트를 상대로 1회말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2호이자 당연히 커리어 첫 만루홈런.[3]


3.1.2. 2014 시즌[편집]


2013 시즌 후 FA 신분으로 한화 이글스로 간 이용규의 보상선수로 이홍구와 더불어 포수 최대어로 꼽혔던 한승택이 KIA로 오게 되었다. 덕분에 KIA는 먼저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치르는 한승택의 군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이홍구를 입대시켜 KIA의 포수진을 강화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김상훈의 은퇴와 차일목의 노쇠화가 겹치면서 헐거워진 포수진에 백용환, 한승택과 더불어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포수 인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백용환과 함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였다. 헌데 4월 9일 상무와의 2군 경기에서 손등이 정영일의 공에 맞고 골절되면서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좋은 회복력으로 7월 초에 복귀, 7월 20일 상무전에서 시즌 1호포를 터트렸다. 타격이 전체적으로 좋은 가운데 차일목만 부진하고 있는 기아의 타선으로서는 확장 엔트리 때 콜업되어 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2014 시즌에는 백용환이성우에게 밀려 1군에 콜업되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3.1.3. 2015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홍구(야구선수)/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4.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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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한정이지만 커리어 하이

4월 12일 SK전에 7번타자 지명타자로 나와 5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지만 타석에서 3번의 삼진쇼를 보여줬다..

5월 6일 넥센전에서 팝타임 1.89초, 1.86초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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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도루저지(그러나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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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도루저지(그러나 허용)

부침이 많기는 했지만 6월 들어서는 김호령과 함께 전년 대비 급격한 타격능력 향상을 보이면서 3할 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8일 광주 LG전에서는 대폭발 만루홈런+투런포를 합쳐 6타점을 터트렸다.

타격과 달리 수비는 정말로 부족한 모습. 오죽하면 나카무라 타케시 코치가 이홍구의 도루저지율인 7푼이 적힌 종이를 들게 하는 충격요법 훈련을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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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케시 배터리(왼쪽) 코치가 28일 LG와의 홈경기에 앞서 챔피언스필드에서 이홍구와 송구 훈련을 하고 있다.

6월 30일 LG전이나 7월 2일 넥센전에서도 이런 아쉬운 수비는 이어졌다. 7월 3일 넥센전에서도 경기를 망쳤다.[4] 이쯤되면 포수 때려치고 다른 포지션으로 바꾸는 게 팀이나 본인이나 더 나을 지경.

7월 6일 KT전에선 어이없는 타격으로 1사만루의 찬스를 말아 먹었다.

타격을 잘해도 조통구라고 까이고, 못하면 더 심하게 까인다. 현재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상태는 조통구 까면서 백용환을 찾는 사람들과 그 반대파가 갈린다. 즉, 타격만 되는 포수 vs 타격은 좀 모자라도 수비는 되는 포수.

하지만 타격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발전했다. 47안타 중 홈런도 6개지만 2루타가 무려 16개.. 안타중에 절반이 장타다.

포수 주전 경쟁을 펼치는 백용환이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2군에 가고 이성우가 올라옴에 따라, 이홍구가 중용받을 전망이다.

타격에선 3할을 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상술된 대로 포수로서의 모습은 아직까진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도루저지율이 너무 낮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8월 20일에는 6회초에 송구 실책을 저질렀는데 공교롭게도 그 뒤 양현종이 동점 투런을 맞아버렸고, 6회말 공격에서는 2사 2,3루 기회에서 공이 몸에 맞았음에도 출루하는 게 아니라 타석에 남았다가 폭풍삼진을 먹으면서 엄청나게 팬들에게 까였다.

타격이 좋다는 말도 8월에는 소용이 없는 게, 8월 20일 기준 8월 타율이 2할 1푼 2리를 기록하고 있다. 8월 21일 .206까지 타율이 내려갔다. 볼삼비마저 심각해 후라이도 못 굽는 게 현실.

8월 21일 4회초 1아웃 1,2루 유강남의 타석에서 최영필의 공을 눈감고 블로킹하다 뒤로 빠트렸다. 타석에서는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3할이 넘던 타율은 .287로 내려갔다. 김기태 감독의 신임을 갈수록 못받고 있으며 심지어 이닝 중에 이성우와 교체 되기도 했다.

9월 들어 기아의 선발포수로 나오고 있다. 백용환이 무릎 십자인대파열로 시즌아웃되어버린 상황에서 주전을 먹었고, 9월 19일 경기에서 결승 2타점을 날리면서 밥값을 했다,

결국 수비 불안때문으로 와일드카드전 엔트리에서 결국 제외 되었다.

시즌 후 자신과 같은 등번호를 쓰던 최형우가 KIA로 오면서 등번호를 양보했다. 새로운 등번호는 2016년 시즌 후 있었던 차영화 코치 돕기 일일호프에서 37번을 다는 것으로 확정되는 듯 했으나, 고민 끝에 27번을 달기로 했다.[5]


3.2.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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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 배터리코치(오른쪽)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2017년 4월 7일, 노수광 ↔ 김민식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KIA 팬들의 반응은 애증이 있는 선수여서 그런지 가서 잘하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점이라면 새 소속팀의 배터리 코치가 훈련 하나는 매우 지독하게 시키는 왕년의 공수를 겸비한 명포수 박경완이라는 점이다.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김민식박경완 코치의 지도를 받고 성장했던 만큼 이홍구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시각이 있다.


3.2.1.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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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NC와의 홈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 4:4로 맞선 3회 1사 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로 이적 후 첫 안타를 신고했고 팀이 승리하며 이 안타가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다.

4월 15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8회 초 이재원의 대타로 나와 홈런을 때려냈다. 정의윤에 이은 백투백 홈런으로 시즌 3호. 트레이드 이후 출전하는 경기마다 높은 확률로 장타를 생산하며 임팩트를 남기고 있다.

이후 4월 2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포수 마스크를 쓰고 선발 출장. 0:2로 뒤진 7회 말 2아웃에 이보근을 상대로 1점 따라가는 솔로 홈런을 쳐냈다. 출장 때마다 때려낸 홈런이 벌써 4경기 연속. 본인의 장점인 장타툴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4월 2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4회 말, 팀이 2:4로 뒤진 상황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동점 투런을 기록했다. 시즌 5호. 파워툴을 갖춘 당겨치기형의 타자가 비교적 타자 친화적인 문학 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 이적하니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된 것처럼 활약하고 있다.

4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이재원의 교체 포수로 출장, 9회 초에 김현우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6호.

5월 1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3점 뒤진 5회 말에 양현종을 상대로 한 점 따라가는 시즌 7호 홈런을 기록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점수를 뽑아준 타격도 좋지만, 정말 좋았던 부분은 수비였다. 아무리 요즘 타격이 주춤하다 해도 명색이 리그 1위를 유지하는 중인 KIA의 타선을 상대하면서 투수들과 안정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블로킹도 침착하게 해주며 9이닝까지 3실점으로 잘 막아내었다. 거기다 7회에 김호령의 도루를 저지하고, 8회에는 런 앤 히트 작전으로 3루를 향해 뛰는 신종길까지 잡아내면서 경기 주도권이 KIA 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수비를 해냈다. 특히 7회에 김호령의 도루를 넉넉하게 잡아내는 장면에 갸팬, 슼팬 할 거 없이 저거 진짜 이홍구 맞냐며 다같이 놀라고 있다.

5월 1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5회 초 안타를 치고 나간 김상수를 도루 저지로 잡아냈다. 역시 정확한 송구를 뿌려 자동 태그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슼팬들은 다시 한 번 놀라는 중. 여기 그치지 않고 7회 말에는 1:2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을 만드는 솔로 홈런까지 쳐냈다. 시즌 8호.

5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투런 홈런을 쳐내며 시즌 9호째 홈런을 달성했다.

6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8회 이재원의 대타 김동엽과 교체되어 대수비로 투입되었는데 본인에겐 안타깝지만, 팀에겐 재미있는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2:5에서 적시타가 나왔고 2루 주자 윌린 로사리오와의 홈 승부 과정에서 왼손 손목에 부상을 입은 것.[6] 포구가 불가능해져 교체가 필요했는데 야수 엔트리를 모두 소모한 탓에 내야수간 수비 포지션 교대가 필요해졌고 결국 유격수 나주환과 교체되면서 물러났다. 이날 유격수 빈 자리엔 2루수 김성현이, 2루수 빈 자리엔 1루수 제이미 로맥이 투입되었고, 1루수 빈 자리엔 투수 엔트리에 있던 전유수가 투입되었다.[7] 천만다행으로, 더 이상 점수가 나지 않으면서 SK가 이겼고 이 경기는 화제가 되었다. 부상 회복에 2주가 걸리기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갔고 대신 이성우가 올라왔다.

이후 1군에 다시 올라왔으나 타격감은 뚝 떨어졌고, 결국 다시 2군행 통보를 받았다.

그러다 9월 1일, 확장 엔트리 콜업으로 1군에 복귀했다.[8]

9월 2일, 대타로 출장해 10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올 시즌 SK 타자 중 9번째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10월 5일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9회 1사 1번 노수광의 대타로 나와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병역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시즌 후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으나 1차 합격자 명단에서는 탈락했다. 같이 나이가 꽉 찬 김태군이 합격한 것으로 보아[9] 김태군과 이홍구를 저울질하다가 이홍구를 탈락시킨 것으로 보였으나... 진짜 탈락 이유는 적성검사 자기소개서 부분에서 점수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10]

기사 11월 10일 네이버 라디오볼 방송에 따르면 정유라 사건의 여파로 성적은 물론 서류전형, 체력검사 등이 강화되었고, 구단별 안배도 더 이상 없다고 한다. 거기에 전년도 선발에서 이대은 특혜 논란으로 말이 많았던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차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다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11]

이후 김태우 기자의 트위터를 통해 이건욱, 김정빈, 봉민호, 최정용, 김찬호와 함께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했음이 알려졌다. # 그리고 2017년 11월 27일 발표한 서류전형 합격자에 들어갔다.상무, 김준완-이홍구 등 서류 합격자 29명 발표 아직 12월 27일 나올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상무 합격은 무난하게 보고 있다. 게다가 함께 서류전형에 합격했던 나원탁입대를 연기하면서 경쟁자도 1명 줄었다. 그러나 현실은 탈락. 적성검사에서 탈락했다고. 단 나이 기준인 만 27세의 경우 상무는 그 해의 12월 31을, 경찰은 원서 접수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2018년에도 같은 기준이 이어진다면 경찰 야구단에는 2018년에 한 번 더 응시할 수 있다.[12] # 즉 1990년 12월 11일 출생인 이홍구에게는 경찰 야구단 한정으로나마 추가 기회가 있는 셈이었지만, 경찰 야구단의 장기적인 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물론 경찰청 입대 외에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병역특례라는 더 좋은 시나리오도 있지만 대표팀에 선발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현역 입대 또한 후보에 있었다. 우선은 기아에서 함께 넘어온 이성우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에서 합류한 허도환과 함께 백업 포수진을 결성할 것으로 보였으나...


3.2.2. 군 복무[편집]


해가 바뀐 뒤 결국 현역으로 병역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 이미 영장까지 받아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1월 중으로 입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SK 팬들은 군경구단 입대가 전부 실패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는 대신 현실에 충실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이홍구의 태도를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1월 22일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자대는 30사단.[13] 전역 예정일은 2019년 10월 21일이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군복무 단축 공약에 따라 조금 일찍 전역할 수 있게 되어서 복무일이 28일 단축되었고, 2019년 9월 23일에 제대해 팀에 복귀했다.

전역 후 호주에서 열리는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다.

2019년 12월 결혼했다.


3.2.3. 2020 시즌[편집]


기존에 백업 포수 역할을 했던 허도환kt wiz로 트레이드됨에 따라 이현석과 함께 이재원의 백업으로 중용될 전망이다.

이홍구의 근성을 인정한 염경엽 감독의 결정에 의해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단 현역 복무에 따른 실전 감각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인지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주전 포수 이재원의 사구로 인한 골절로 1군에 올라왔고 5월 13일 이현석과 교체되어 2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5월 14일 LG전 선발출장해 4타수 무안타 1삼진 1병살로 타격에서는 부진하였다. 하지만 5회, 정주현의 3루 도루를 막아내는 등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20일 선발 출장했으나 도루 저지를 슬라이더로 하는 등(...) 수비 면에서 자신감을 잃은 모습으로 박종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5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흥련이 트레이드로 이적해 오면서 1군에는 남았지만 벤치로 밀렸다. 이흥련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백업 포수로 간간히 출전할 듯 하다.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이흥련이 선발로 나서지만 김태훈의 경기에서는 이홍구가 전담해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선발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김태훈이 불펜으로 돌아가고 백업이던 이현석의 성장세도 나타나면서 안 그래도 실전 감각이 부족했던 이홍구의 사용 가치는 떨어졌다. 그리고...


3.3. kt wiz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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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오태곤과 1:1 트레이드로 kt wiz로 가게 되었다.#

등번호는 오태곤이 쓰던 37번이 아닌 65번을 사용한다.


3.3.1. 2020 시즌[편집]


SK에서는 이현석, 이흥련, 이재원 등이 있어 1군에서 뛰기 어려웠지만 kt에서는 타격 펀치력이 있기에 포수로써 중용될 가능성이 크다.

8월 23일 마침내 kt 이적 후 첫 홈런을 뽑아냈다.

10월 20일 9회말 2사에서 6:7까지 추격하는 투런포를 쳤다. 그러나 팀은 다음 타자 배정대의 헛스윙 삼진으로 아쉽게 패했다.

적은 기회 속에서 3개의 홈런을 때렸지만 정작 장성우가 부상으로 빠진 기간에 공격이나 수비나 장성우에 한참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kt의 부족한 포수 뎁스를 채우기 위해 영입됐지만 다른 백업 포수인 강현우, 허도환보다 낫다고는 못할 상황.


3.3.2. 2021 시즌[편집]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의 전담 포수로 출전할 전망이다.

이강철 감독은 이홍구의 수비 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포수 이홍구, 지명타자 장성우로 라인업을 기용하면서 두 포수의 장점을 최대로 이끌어 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저조한 타율이 발목을 잡아 6월 28일 결국 1군에서 말소됐다.

후반기 1군에 등록되었지만 1안타를 기록한 이후 김준태의 콜업과 함께 다시 말소되었고, 시즌 중인 10월 13일 같은 포수인 안승한, 그리고 투수 이보근, 유원상 등 11명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방출된 후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김민식한승택을 제외하면 1군 경험이 풍부한 포수가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이홍구의 테스트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봐서는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14]
[1] 장충고등학교시절에는 백용환, 단국대학교 시절엔 김태우가 포수 마스크를 썼다. 공교롭게도 둘 다 1년 선배.[2] KIA 입단 후 해외토픽으로 유명해진 이범호의 포수 뒤 수비 시프트도 블로킹이 약한 이홍구를 보완하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였다.[3] 그리고 이 경기 이후로 KIA 타선에서 홈런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등야구장에서의 최후의 홈런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홍구 이전까지 팀 내에서 만루홈런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2013시즌 KIA의 유일한 만루홈런이기도 하다.[4] 2루 도루 저지를 위해서 피치아웃까지 했는데도 도루 저지를 못 했다.[5] 참고로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 등번호 27번은 거포의 상징과도 같은 번호다. 프로 원년 홈런왕인 김봉연이 처음 달았던 27번은 김봉연의 은퇴 후 이호성이 물려받아 썼고 2009년의 남자 김상현도 이 번호를 달았다.[6] 2년 전 한화전에서도 주현상을 태그하는 과정에서 스파이크에 얼굴을 맞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여러모로 악연.[7] 이 과정에서 일부 한화 팬들은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몰상식하게 최강한화 육성응원으로 일관해 많은 야구팬들의 빈축을 샀다. 당연히 솩갤에선 이를 가는 중.[8] 같이 1군에 올라온 선수는 박승욱, 김재현, 정진기, 윤희상이다.[9] 정확히는 김태군이 1살 형이다.[10] 다만 이홍구 뿐만이 아니라 경찰청에 지원한 다른 SK 선수들도 모조리 1차에서 탈락해서 팬들은 이쯤 되면 선수들 서류 제출에 관해 구단이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아니냐며 지적하고 있다.[11] 단, 이홍구는 상무와 경찰청의 나이 제한으로 인해 이번 상무 지원이 군경팀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상무 야구단에 탈락하게 될 경우 야구와 거리가 먼 현역이나 공익으로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같은 입장에 있는 오지환박해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도전을 위해 상무와 경찰청에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12] 멀리 갈 것도 없이 1989년 12월 30일 출생인 김태군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서 2017년 입대에 성공했다.[13] 여담으로 30사단에서는 SK, LG 외야수 출신 임훈과 KIA 내야수였던 최용규도 현역으로 복무했었던 적이 있다. 특히 임훈은 신교대 조교 출신.[14] 이후 장정석 단장이 방출 선수 영입은 SSG에서 방출당했던 외야수 고종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꺼냈으며, 베테랑 포수의 부재는 시즌 개막후 박동원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해결했다. 심지어 최강야구에서 입스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테스트에 떨어진 이유가 입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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