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기계화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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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기계화보병사단
第三十機械化步兵師團
The 30th Mechanized Infantry Division
파일:제30기계화보병사단 부대마크.svg
결정적 공세부대! 대한민국 수도 방어 최후의 보루!
창설일
1955년 2월 20일(제30보병사단)
1991년 10월 1일(제30기계화보병사단)
해체일
2020년 11월 30일(군축 - 제30기갑여단)
상징명칭
필승(必勝)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1군단
규모
사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초대 사단장
예) 소장 000(육사 00기)
해체 전 사단장
소장 방성대(3사 24기)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1. 개요
2. 역사
3. 예하부대
3.1. 사단 직할대
3.2. 제90기계화보병여단 비호
3.3. 제91기계화보병여단 독수리
4. 과거부대
4.1. 제92기계화보병여단 쌍용
4.2. 제30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비격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단가
7. 사건사고
8. 기타



1. 개요[편집]


세계 최고로 강력한, 최고로 행복한 기계화부대

일명 필승부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있던 대한민국 육군의 기계화보병사단이었으나, 국방개혁 2.0에 의해 2020년 11월 말 해체 후 제30기갑여단으로 군축되었다.

사단본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예하부대는 고양, 파주, 양주 등지에 흩어져 있다.


2. 역사[편집]


1955년 2월 20일 경기도 포천군에서 창설되었다. 이후 안양시 등지로 부대를 이동하다가 현 위치인 고양시에 정착했다. 초창기에는 2군(현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제6군관구사령부 예하 지역예비사단[1]으로, 서울 강북 및 경기 일부지역을 담당하였다. 70~80년대에 서부전선을 전담하는 전방군단인 제1군단으로 예속전환되었으나 이후 제6군단의 기동군단 개편에 따라 제6군단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나, 이 계획이 무산되어 2000년에 환원되었다. 그 사이에 서울 강북지역에 대한 위수임무는 56사단, (구)57사단으로 넘어갔다.

1968년 1.21 사태 당시 예하 92연대 병력이 김신조를 체포하는 공을 세웠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이 서울 진입을 시도할 때 유일하게 수경사 관할이 아닌 30사단 관할인 행주대교[2]로 진입하려 했는데 보안사의 공작으로 수도 방어를 포기하고 길을 열어줬다.[3] 이후 예하 90연대를 고려대학교에 진주시켜 반란군의 예비부대로 동원했다.[4] 1991년 10월 1일 보병사단에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예하 포병여단은 전방에 배치되어 있다. 국군 최초로 자주대공포 '비호'가 배치된 방공대대가 사단 직할로 소속되어 있다.

지금도 간부들 사이에선 꿈의 부대. 기계화부대+사단급 부대라 진급 TO도 많이 나고 사령부 후문에는 경의중앙선 화전역이 있으며 일산화정이 코앞이라 교통 환경이 기가 막히다. 부대에 따라서는 행군로가 도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나 상가를 지날 때도 있다. 덕분에 제17보병사단이 꿈의 17사단이라면 30사단은 환상의 30사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예비사단이라 훈련량이 많아 정작 당사자들은 훈련 때문에 환장한다고 환장의 30사단이라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30사단은 북쪽에서 서울로 향하는 핵심 길목을 지키는 기계화보병사단 중 하나다. 만약 30기보사가 널널한 부대라면 서울 방어에는 치명적인 공백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쟁 초기 북한 전차 부대를 저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서울은 한국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함락당할 것이다.[5] 따라서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은 부대를, 단지 서울과의 접근성이 높다는 이유로 널널한 부대라고 생각하는 건 모순이다. 애초에 북한군 따위에게 밀릴 일도 없긴 하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서울특별시를 담당했던 지역예비사단이었다. 지금은 지역방위사단과 거리가 먼 기계화보병사단일 뿐... 1.21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와 함께 소탕작전에 나선 것도 이 때문. 그리고 1980년대 이전에는 저러한 부대특성 때문에 서울, 수도권 출신 병사에게는 선망의 부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30사단 출신이라 말하면 빽있냐고 물어보는 어르신이 이따금씩 있다. 참고. 사실 이 기계화보병사단이 서울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한때 서울지역 지역방위사단이었던 역사와 관련 있다.

지역예비사단(30보병사단) 시절이었던 5.16 군사정변 때 33사단(지금의 제17보병사단. 당시에는 33지역예비사단)과 함께 서울로 진입한 부대였는데, 쿠데타 성사 후 30사단과 33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씩 서울에 잔류하여 그것이 수방사 30단, 33단의 뿌리가 되었고, 1996년에 그 둘이 통합하여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이 되었다. 즉 17사단과 함께 수방사의 사실상 모체 중 하나다.

1991년 10월 1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제20기계화보병사단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기계화 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다. 지역방위보병사단[6] → 상비보병사단 → 기계화보병사단으로 3번 개편된 유일한 사단이다. 개편 당시 잠시 기동군단으로 전환되었던 6군단 예하로 있었다가 2000년 편제개편에 따라 제28보병사단과 자리를 맞바꿔 1군단으로 복귀했다. 국방개혁에 의해 제1군단에서 제7기동군단으로 예속 전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잔류되었다.

그러나 국방개혁에 따라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과 함께 해체되게 되었다. 하지만 11사단에 흡수되는 20사단, 8사단에 흡수되는 26사단과는 달리 단대호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제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제30기갑여단으로 감축되는 것.

제30기갑여단 본부는 舊 90여단 자리로 이전하며 현재 30사단 사령부 부지는 사단 해체 후 창릉신도시 개발지구에 편입되어 근린생활시설(공원)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되면 합참 본부에게 본청을 내주게 되는 국방시설본부가 구 사령부 부지로 이전할 계획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지역이 창릉신도시 개발 지역이라서 확정될지는 미지수이다.


3. 예하부대[편집]


2020.11.13. 기준.
기계화보병사단 예하의 여단은 보병의 연대급 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단장에는 대령이 보임된다.


3.1. 사단 직할대[편집]


  • 본부근무대 - 군악대가 본근대 소속이었으나 실제로는 신교대와 같이 있었다. 군악대는 제1군단 본부근무대로 예속전환이 이뤄졌다.
  • 기갑수색대대 - 사단 5분 대기조 역할도 수행.
  • 정보통신대대
  • 보급수송대대 - 거리가 먼 일부 부대[7]를 제외한 모든 부대의 물자 공급을 담당
  • 공병대대
  • 정비대대 - 사단본부에는 본부중대와 2중대가 근무. 각종 장비의 수리뿐만 아니라 부속품도 전부 여기서 보급한다. 탱크, 자주포, 장갑차 등으로 떡칠된 예하대대들인만큼 부속들의 수량도 많고 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각종 부속쇳덩이들을 2.5톤 트럭 위로 휙휙 던져 올리는 말라깽이 병장들을 덩치 좋은 이등병들이 넋놓고 보게되는 곳. 예하여단에는 기계화사단지원 1중대 및 3중대 인원들이 파견된다.
  • 방공대대 - 과거 3중대가 모 여단에 파견 운영되었으나 해체 과정에서 원대 복귀하였다.
  • 군사경찰대 - 관할 내의 행주대교 검문소에 소수 인원을 파견하였으나 2019년 초에 타 부대로 이관하였다.
  • 의무근무대[8]
  • 정찰대 - 본부대와 더부살이. 주로 소령이 부대장으로 부임하는 대(隊)급 부대이지만 대위가 정찰대장으로 부임하는 경우도 존재함. 대테러초동조치부대로 인근의 주요 시설 및 지하철역 등에서 발생할 테러에 대비해 5분대기조를 구성하여 운용하며, 대테러초동조치임무를 위해 시가전 등의 훈련도 진행. 사단의 유격훈련을 관장하기도하며, 훈련시 대항군임무도 수행하며 각 여단 본부털이(?)를 하기도함. 매일 아침 구보를 산악구보로 진행하며 약 180고지의 망월산을 아침부터 군가부르며 뛰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음.
  • 화생방지원대 - 원래 영외에 독립부대로 주둔했으나, 2018년 말~19년 초 경에 90여단 주둔지[9]로 이전하였다. 이후 30사단이 제30기갑여단으로 군축되자 화생방지원대 역시 중대급으로 축소되었다. 현재 신원동 구 화생방지원대 주둔지(일명 구지대)는 1군수지원여단에서 폐품 창고로 사용중이다.


3.2. 제90기계화보병여단 비호[편집]




본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있다. 부대 바로 옆에 원당종마공원의 목초지가 펼쳐져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위병소 바로 앞에 군인가족아파트가 있으며, 인접 지하철역으로는 원당역이 있으며, 외출 외박 시 화정과 더불어 장병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사단이 해체됨과 동시에 개편부대로 바뀔 예정으로 부대 내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10] 그리고 30기갑여단 예하 대대 상당수가 구 90기보여단의 것이 그대로 승계된 것이다.[11]

영내 종교시설로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있으나 천주교에 경우 사단으로 가는 일이 많다.[12]
  • 여단본부

  • 제115기계화보병대대 백비호
여단 본부와 같이 예하대대 중 유이하게 여단 주둔지 안에 속해있다. 116대대 해체 이후에는 주둔지 내에 오분대기조를 전담하고 있다. 막사는 2014년에 지어진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막사 내에는 체육시설 및 도서관, 싸지방, 이발실 등이 있다. [13]

  • 제116기계화보병대대 상승철갑
115기보대대와 같이 여단 주둔지 안에 있었다. 현재는 해체되었으며 영내에 교회, P.X, 테니스장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1개 중대[14]는 본막사 옆의 독립중대 건물을 이용하였으며 그곳에 싸지방과 의무소대가 위치했었다. 115대대와 같이 5분대기조를 번갈아 맡았으며 115대대보다 위병소가 가까워 면회나 출타 시 아주 쬐금 편했었다. 2014년 완공된 신막사가 115대대 구 주둔지에 위치해 이후엔 거기서 거기였지만. 2018년 10월 해체되었고 사단 해체 시점에서는 화생방지원대와 정비·의무중대가 116대대 주둔지를 사용 중이다. 사용하지 않는 3,4층을 격리시설로 사용하기도 했다.

  • 제119기계화보병대대 쌍용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 제92기계화보병여단 해체 후 90여단으로 예속전환되었고, 지금도 잘 있다.

  • 제51전차대대 번개
덕양구 관산동에 위치해 있다. 특이점이라면 제72보병사단 전차대대가 영내에 더부살이 하고 있다.

  • 제53전차대대 천마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 제92기계화보병여단 해체 후 90여단으로 예속전환


3.3. 제91기계화보병여단 독수리[편집]




본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위치해 있다. 사단본부 영내에 있지는 않지만 사단본부 후문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병소가 있다. 사단과 여단은 위병소를 두고 한 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에 인근의 덕양중학교를 끼고 있다. 사단과 연결되는 후문 위병소 바로 앞에 군인가족아파트가 있으며, 영내에도 시설은 별로 안 좋은 독신자 숙소가 있긴 하다. 여단 정문 쪽으로 나가는 길엔 사단회관인 필승회관이 있다.[15] 인접 지하철역으로는 화전역이 있으며, 위병소 통과 후 화전역까지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 나가는 길에 홍대입구역까지 30분이 채 안 걸리고 서울역까지는 1시간도 안 걸리는 지리적 이점이 용사들 사이에서 큰 만족감을 준다.

영내의 종교시설로는 기독교(개신교) 교회 건물이 있다. 천주교나 불교를 가려면 사단으로 가야하는데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위수지역에 인천은 물론 서울 이남의 경기도 지역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서울 내부에 독립대대로 주둔 중인 52전차대대를 제외하고[16] 외박 때는 홍대, 건대 쪽을 많이 간다.

걸그룹 시크릿이 유명해지기 전, 체험 삶의 현장 촬영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촬영장소는 118 대대에서 진행되었지만, 여단본부와 자매 대대인 117 대대에서 일부 인력을 차출해 촬영에 참가했었다.
  • 여단본부
본부중대, 의무중대(30사단 의무근무대 직접지원2중대), 통신대로 구성되어 있고, 신막사이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여단장 대령 이정욱(육사 52기), 본부중대장 대위 한병욱, 통신대장 대위 송상현이었다.

  • 제117기계화보병대대 포효
군인가족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연병장이 없다. 여단본부랑 같이 쓴다. 문제는 여단 연병장이 막사보다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연병장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 복도와 생활관이 사막을 연상시킬만큼 수북하게 쌓인다. 막사 바로 앞에 군인아파트가 있다. 이 부대 역시 해체되었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은 대대장 중령 추호영이었다.

  • 제118기계화보병대대 폭풍
여단 위병소 안에 있고, 구막사에 침상생활관이다. 전차대대가 아니기 때문에 장갑차밖에 없다. 중대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부조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병영복지시설(PX, 휴게실, 사이버지식정보방, 체력단련실, 노래방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유격, 혹한기 훈련 같이 큰 훈련은 다 하고 곧 해체될 부대라 전역병에 비해 신병이 매우 적게 들어온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대대장 중령 박정훈(해체 이후 30기갑여단 존속부대인 115기보대대 대대장 취임했다.)

  • 제52전차대대 팬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소재. 다른 여단 예하 대대와는 달리 혼자 서울특별시에 홀로 독립대대로 주둔 중이다. 이 때문에 52대대로 배정받은 장병들은 매우 좋아하지만 사실 서울에 있다는 것 외에 별로 딱히 장점이 없다. 근처에 제56보병사단 본부 및 수도방위사령부 방패교육대가 주둔 중이며 대대 위병소에서 연신내역까지 시내버스로 20분 이내에 주파 가능하다. 제30기갑여단으로 재편된 직후 확정 잔류하였고 91여단 예하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존속한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대대장 중령 김진동이었다.


4. 과거부대[편집]


2020.11.13. 기준.
  • 제120기계화보병대대 백호[17]


4.1. 제92기계화보병여단 쌍용[편집]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소재. 92여단 본부만 해체한 이후 예하부대 모두 타 부대로 예속 전환되었다. 사단 해체 후 옛 92여단 소속이었던 119기보대대와 30기갑여단 군수지원대대가 92여단 자리에 주둔하고 있다.

여단 주둔지였던 곳 맞은 편에는 72사단 모 연대가 있고, 72사단 자체도 인근에 있다. 해체 이전에는 사단 유격장을 관리했다. 지금은 제한적으로 개방된 우이령 산길을 등산하다보면 유격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는 바위가 인근에 유격장이 있음을 알려준다. 가끔 30사단 출신인 등산객들이 등산하다가 옛 유격의 추억을 회상한다고 한다. 북한산답게 산길이 매우 험준해 유격 입소 행군[18]의 피로도 가시기 전에 교장에 오르다보면 지옥을 맛볼 수 있다.

  • 제119기계화보병대대 땅벌 (쌍용대대로 대대명 변경 후 제90기계화보병여단으로 예속 전환. 이는 해체되는 92여단의 상징 명칭을 이어받는 셈이다.)
  • 제29전차대대 야생마 (제2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19]
  • 제53전차대대 천마 (제90기계화보병여단으로 예속전환)


4.2. 제30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비격[편집]




여단본부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위치해 있다.

읍내에 있어 음식점이나 생활은 편리 하지만 사단본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여단, 30사단중 최전방이기 때문에 문산역과 거리가 조금 있어 교통은 평범한 편이다. 예하 대대들에 비해 막사 시설은 오래된 편.

외출, 외박, 휴가를 나가게 된다면 문산에 있는 30사단 병사들은 전부 포병대대 병사들이다. 사단 해체 후 여단급 개편 때 311, 315포병대대는 30기갑여단에 잔류하였고, 606포병대대는 2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되었다.
  • 제311포병대대(하나)
파주시 파평면에 위치해 있다. 일명 쌍일 또는 하나하나로 불린다. 312포병대대(해체), 2기갑여단 933포병대대와 굉장히 가깝고 봄에는 대대앞 하천변에 벚꽃나무가 그렇게 이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311에서 생활하게 되면 벚꽃구경보다는 대대 근처 축산농가에서 올라오는 소똥냄새만 질리도록 맡게 된다.

  • 제312포병대대(용호)
2018년 11월 부대 해체 후 2019년 1사단 58포병대대가 입주.

  • 제315포병대대(웅비)
파주시 법원읍에 위치해 있다. 30사단중에 가장 전방대대
무건리훈련장 관리병(30사단 신교대소속 영구파견)[20]이 있는 30사단 전방중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다. 신교대에서 무건리훈련장 관리병 보직을 받게된다면 다른 훈련병과 다르게 특별한 예방접종을 한번더 맞는다.

  • 제606포병대대(번개)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해 있다. 여단중 유일한 K-9대대로 나머지는 전부 K-55A1. 포병여단 대대중 문산역에서 제일 가깝고 택시를 타지 않아도 부대앞에 내리는 버스가 5대나 있고 게다가 위병소 밖 바로 편의점 다만 좋은점은 그것뿐이다.


4.3. 신병교육대[편집]


(구)제306보충대대에서 30사단으로 배정받으면 좋아하기도 한다. 일단 (구)306보충대에서 갈 수 있는 예하 부대들 중에서는 그나마 서울이랑 근거리에 위치해있는 부대이기도 하며, 일부 부대의 경우 수색역 일대나 신촌, 홍대, 심지어 서울 전체까지 위수지역이 정해져 있다. 신병 배출 이후 자대배치 시 파주시에 위치한 사단 예하 1포병연대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파주에 있는 포병연대까지 포함하여 서울 전 지역을 위수지역으로 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인지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특집의 촬영 부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병교육대 시설은 별로 좋지 않다. 신병교육대와 분대장교육대[21]가 붙어있는데, 분대장교육대의 휘황찬란한 시설을 보고 좌절하게 된다. 실제로는 조금 깨끗한 막사에 두꺼운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침상이지만 신병교육대 시설이 워낙 막장이라 자대배치 후 전술훈련 중 신축 대학교 건물 뺨치는 최전방 신병교육대 막사를 보면 신병교육대 시설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기수가 많은 1~4월 입대자의 경우, 한 중대에 300명이 넘는 기행을 보이기도. 또한 서울과 가깝다 보니, 각개전투 교장 같은 높은 고도에 위치한 훈련장에 올라가면 서울 도심이 보이기도 한다. 여담으로, 식당이랑 막사를 올라갈때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에서 고양시 대부분이 보인다. 야간행군 막바지 무렵, 막사에 도착할 때 사단 군악대가 신병들을 맞이해주는 경우도 있다.

2015년 4월 중순부터 2015년 11월까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그전까지는 사단 내 공병대대 연병장의 컨테이너 막사를 사용했는데, 먼지도 많이 먹고 무엇보다 밥먹으러 갈 때마다 1.5km 조금 안되는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게 고역이다.

제30기갑여단인 여단급으로 축소 편제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자체적인 사단 신병교육대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 때문에 20-6기[22]를 마지막으로 받고 20-6기가 수료한 이후[23] 부대 정리 과정을 거친 후 2020년 6월 경 공식적으로 완전 해체된다. 이로서 모든 기계화보병사단[24]의 신병교육대가 완전 해체될 전망이다.

2020년 8월 31일부 잔존부대로 남아있던 제30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는 완전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남게 되었다.


5. 출신인물[편집]



5.1. 사단장[편집]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6대
이상국
예) 준장
육사 2기

[25]
00대
노재현
예) 대장
육사 3기
국방부장관,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26]
00대
박희모
예) 중장
갑종 9기

[27]
00대
최웅
예) 중장
육사 12기
육군특수전사령관

00대
김척
예) 중장
육사 21기
제1군단장
[28]
00대
이상희
예) 대장
육사 26기
국방부장관, 합동참모의장, 제3야전군사령관

00대
황의돈
예) 대장
육사 31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9]
38대
김학주
예) 중장
육사 35기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제6군단장

39대
양종수
예) 중장
육사 37기
육군사관학교장

40대
류성식
예) 소장
육사 39기
前 육군부사관학교장

41대
김병주
예) 대장
육사 40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42대
조한규
예) 소장
육사 42기
합동군사대학 총장
[30]
43대
김성도
예) 소장
육사 44기
육군종합군수학교

44대
방성대
소장
3사 24기
제5군단 부군단장
[31]


5.2. 장교/부사관[편집]


예하 부대 중대장을 역임.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사단 법무참모를 역임.
1981년 임관하여 초임지로 90연대 15중대 소대장을 거쳐 90연대 2대대 7중대장, 사단 작전장교를 역임.
기갑수색대대장 역임
사단 작전참모 역임
90여단 116기계화보병대대장 역임.
영관 시절, 예하 부대 대대장을 역임.
92기계화보병여단 00전차대대 출신


5.3. 병[편집]


52전차대대 수송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

  • 김현우 - 인디밴드 그룹 '딕펑스'의 메인건반 연주자 군악대에서 복무


  • 박지운(리오) - 배틀 멤버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

기계화보병여단 모 대대에서 복무.


자신의 복무경험을 바탕으로 2003년 2차 한국전쟁이라는 소설을 출판했다. 단대호가 바뀌어 있는 소설속 주인공은 현실상의 30사단 90여단 116대대 소속으로 추정된다.

조교로 복무.

90여단 115대대 박격포 병으로 복무

사단 신병교육대 내 분대장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

정찰대에서 복무.

공병대대에서 복무. 영선반 출신.


포병여단 모 대대에서 복무.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

기갑수색대대에서 복무.

무릎 연골 손상으로 의병제대했다.

기계화보병여단 모 대대에서 복무. 복무간 전투소대에 배치되어 부대 내 모든 훈련에 참가해 무사히 마쳤다고.



6. 기타[편집]


부대마크는 숫자 '30'을 옆으로 돌려 형상화한 것. 부대마크의 위쪽은 행주산성이 있는 산 두개를 형성화한 것이고, 아래쪽반은 산성을 형상화 한 것이다. 원래 사단가의 1절 가사에도 나온다. "행주산성 높은 기상, 뜻을 받들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모른 채 부대마크를 보면 배경색이 빨개서 하트로 오해되거나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라 스마일, 웃음벨 부대, 심지어 위 아래로 브라자빤쓰를 연상케 해 여군 속옷 부대나 의무지원부대인 줄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나마 전투복에 부착하는 부대마크가 검은색&국방색의 위장색으로 바뀌면서 특유의 빨간색이 국방색으로 바뀌어 그나마 전투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또 다른 애칭은 '탱크부대'. 전투복에 오버로크 치는 비표에 전차가 그려져 있어서 그렇다고.[32] 경기도 고양시 일대에 주둔한다.[33]

경례구호는 필승. 부대 별명부터가 필승부대이니 경례구호도 일관성 있게 필승으로 정한 것. 이외에 육군에서 필승으로 경례하는 육군 부대는 제15보병사단이 있다.[34]

2014년~2017년간 경례구호에 혼돈이 몰아친 적이 있다. 2014년 육군에서 사건이 연달아서 터지는 바람에 상층부에서 경례구호를 수정하였는데 무려 고운말을 씁시다!. 심지어 사랑합니다, 수고하십니다 식으로 매달마다 바꿀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후 사단의 상징을 I CAN DO!로 바꾸면서 경례구호도 똑같이 바뀌었다가, 예전 경례 구호와 합쳐져 필승! I CAN DO!로 고정되었다.[35] 바뀔 당시에 어감이 너무 웃기기도 하였고 영어 문법도 엉망이기 때문에 병사와 부사관들이 이게 뭐냐면서 혼란을 겪기도 하였지만, 2015년 들어서면서 '필승!' 을 쓰던 병사들이 하나둘 전역하며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고착화되었다. 어감이 약간 웃기는 느낌이 있는 지라 다 제쳐놓고 즐기는 병사도 제법 되는 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영내나 훈련 중 타 사단 고위 간부를 맞닥뜨렸을 때 경례 안 하기도 뭐한 상황이면 그냥 필승만 하고 어물쩡 넘어가기도 한다.

다만, 이 아이캔두를 고착시킨 사단장은 32연대에서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에도 충성 뒤에 아이캔두를 정착화시켰으니, 이 지휘관이 지휘하는 곳은 모두 아이캔두가 될 확률이 높다.

후임 사단장이 부임한 뒤에도 한동안은 경례구호를 유지했지만,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특집에서 이 경례구호가 전국으로 Yes I Can으로 고쳐져서 방영되며 웃음거리가 되면서 교체를 추진, 2017년 8월에 사단 내 간부 및 병사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5%가 경례 구호 변경에 동의하여[36] 결국 9월 1일부로 I CAN DO 구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원래 구호인 필승으로 돌아갔다.

사단 위병소에 들어서면 퇴역한 M48 전차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위병소 앞에서 귀환장병을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호는 전력화 시험부터 야전운용까지 전과정을 사단 방공대대에서 함께 거쳤고 프로토타입 2대가 양산형 없이 5년이 넘는 세월을 대대본부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 하면서 말못할 일화들을 남겼다.


2014년 7월 23일 국방뉴스 육군30사단 전차포 사격훈련


6.1. 근무환경[편집]


사령부와 영내 직할대, 91여단[37] 기준, 인근의 제60보병사단, 제56보병사단과 함께 서울시내에 위치한 부대를 제외하고는 서울에 가장 인접한 부대이다. 그덕에 야전부대 중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 접근성이 높기로 유명. 위수 지역은 18년도 기준, 서울과 고양시, 파주시, 양주시 및 근거리 도시인 김포시, 의정부시, 부천시, 심지어 인천까지도 허용해주는 편. 부대에 따라 안양, 수원까지도 허용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서울 인근 수도권은 전방에 비해 군기순찰이나 검문이 비교적 느슨하고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용이해서 점프가 일상이라는 소문이
외출 및 외박, 평일 외출같은 단기 출타 시에는 주로 택시 탑승 기준 10~20분 거리의 행신과 화정을 많이 간다. 행신과 화정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장병들은 30사단 출신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규모가 작은 행신보다는 놀거리와 먹거리가 넘치는 화정을 좀 더 애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화정 쪽은 고양시 내 非일산 지역 중 가장 번화가이다보니 퇴근 시간에는 차가 많이 밀린다는 것이 흠. 그 밖에도 택시 15분 거리의 DMC 쪽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사단 연고가 아니다보니 평일 외출 때는 원칙상 갈수는 없다.[38]

사단, 91여단 기준, 인근윽 화전역의 존재[39]로 경의중앙선 라인을 통해 타지역 진출하기도 편하다.[40] 출타 군인의 메카인 용산역, 서울역[41]까지 20~30분이면 도착해서 KTX 이용도 원활한 편이다. 용산역 보다 가까운 행신역에도 KTX가 지나지만 배차가 좋지 않고 TMO가 없다는 이유로 더 먼 용산역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포병부대는 파주에 있어 서울 접근이 좀 힘들다. 그래도 근처가 파주 역세권이고, 근거리에 경의중앙선 문산역이 있어 그나마 위안거리다. 애초에 파주는 거리가 문제지 전방 지역 중에도 인프라가 좋아 접근이 좋다.


6.2. 사단가[편집]



행주산성 높은 기상 뜻을 받들어
젊음을 불태워서 필승을 다짐하자
비바람 눈보라 속에 다져진 전기전술
대한 남아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리라!
북한산성 정기 받은 용호의 기백으로
겨레 위한 이 한 목숨 육탄이 되어서
용사여 달려가자 압록강 끝까지
조상들이 지켜준 땅 우리들이 빛내자!
한강 물결 굽이치는 역사의 터전 위에
전선을 주름잡는 폭풍의 철갑 부대!
선봉의 필승 투혼 펼치자 만주 벌판
배달 민족 맹렬 위용 세계에 떨치리라!
필승 용사 가는 곳엔
승리 뿐이다!

아아 그 이름도 찬란한
무적의 30사단!

파일:30기계화사단_필승부대.png

본래 3절은 없었다가 91년에 기보사단으로 개편되면서 그에 맞춰 새로 만들었다. 그 뒤로는 3절만 가르치고 부르는 편이다. 이것을 집중 정신전력 교육 주가 되면 본부대 군악병이 군가교육 차 전 부대 돌아다니며 소개한다. 이와 관련된 웃픈 일화가 있는데 19년 중반 즈음 국방부 군악대가 위문 공연을 와서 사단가 1절을 준비해 제창했는데 정작 줄곧 3절만 불러온 사단 장병들이 1절 가사를 몰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제30기갑여단으로 개편되면서 1,2절을 빼버리고 3절만 약간 수정하여 여단가로 만들었다.


7. 사건사고[편집]


  • 1.21 사태
  • 12.12 군사 반란
  •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42]

8. 기타[편집]


  • 서울 강북에서 가장 가까운 전투사단이다보니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 EBS 모 프로그램(아마도 군인의 일과를 소개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듯)에서도 이 부대가 등장했다.

  • 푸른거탑 제로, 푸른거탑 리턴즈 촬영지가 바로 이 부대이다. 주로 신교대 막사 및 본부대 연병장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43]

  • SNL 코리아 GTA 군대편에 나오는 부대마크가 이 부대 마크다. 아마 DMC와 가깝다보니 여기서 촬영했을 가능성이 크다.[44]

  • 국방TV "으랏차차 이등별!"에서 트랜디가 나온 부대가 이 부대이다.

  • 네이버 웹툰 하이브 1부에 등장하는 군인 대다수가 30사단 소속이다. 작중 초반, 서울이 벌레들에게 공격당하자 출동하여 수색일대와 용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궤멸당한다. 1부 초중반에 주인공 일행과 한 소대가 동행하게 된다. 그중 한 명은 3부까지 등장하며 주인공 아내와 동행하게 된다. 서울 시내에 파괴당하거나 방치된 전투차량 대부분이 이 부대 소속이다.

  • 하이브의 작가 김규삼은 30사단 52전차대대 수송부에서 군복무를 했다.

  •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특집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여길 섭외한 이유는 가까워서 그랬다고 한다.[45] 참고로 게스트로 함께 신병교육대에 입소하게 된 배정남이 공익근무요원 시절 기초군사훈련을 이곳에서 받았다고 한다.[46]

파일:원사.jpg
  • 인터넷에 흔히 행보관의 위엄이라는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의 주인공이 30기보사 출신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한○○ 원사고 옆에 장교는 조○○ 소위. 짤은 2012년에 촬영되었다. 해당 전차탄은 약 35kg에 육박한다.

  • 가혹행위가 심하다고 알려진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경에 가혹행위 예방 정훈영화 이하동문입니다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 하트를 반으로 가른 부대마크 때문에 ‘빤쓰 브라자 부대’로도 불린다(...) 콘돔부대라고 불리는 제22보병사단과 함께 부대마크로 놀림받는 유명한 케이스다.

[1] 구.향토예비사단[2] 헌병대에서 파견 인원을 보내 관할했다. 현재 행주 검문소는 30사단 해체 및 축소로 인해 철수하고 타 부대로 이관한 모양이다.[3] 12.12 군사반란 당시 사단장은 박희모 소장이었는데 국군보안사령부 측의 회유 공작에 넘어가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라는 최초의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식 명령을 무시해버렸다. 이 공로로 이후 박희모는 짤리지 않고 중장까지 진급해 85년 예편했다. 12.12 반란을 다룬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의 묘사를 따르면 본래 수경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박희모 사단장에게 연락을 취해 행주대교를 막고 노태우의 9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구파발 라인을 저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보안사의 허화평, 허화수 대령이 도청하여 박희모 소장을 회유한다. 하지만 사단장이 행주대교에 연락한다는 건 까먹은건지 박희도가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 병력이 행주대교를 건널 때 30사단 헌병대가 바리케이드를 순순히 열어주지 않다가 1여단 병력들에게 제압당한다.[4] 한국경제 1996.03.12[5] 수기사도 마찬가지다. 위치상으로 보면 30사단이 서울의 북서쪽, 수기사가 북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라도 방어에 실패하면 서울까지는 다이렉트로 뚫린다.[6] 구.향토방위사단[7] 포병여단 및 예하부대, 제29전차대대 등 파주 일대 부대들[8] 30사단 내의 모든 환자가 몰려가는 곳. 각 대대, 대급 의무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이곳 사단급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정형외과, 내과, 치과, 한방과, 정신과, 입원 병동 (12배드), 24시간 응급실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피부과나 안과, 이비인후과 등은 군의관 편제 등의 문제로 운영되지 않기에 대부분 각종 의약품 처방으로 치료하나, 각 부대의 군의관이 사단급 의무대에서도 진료할 수 없다 판단했거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 바로 병원급 부대로 후송 보낸다. 이 외 CT, MRI, 해당과 전문의 등을 통한 정밀 진료가 필요하거나 당장 후송 테크를 타지 않는 경우, 이곳에서 출발하는 '국군고양병원 or 국군수도병원'행 외진 버스를 탈 수 있다. 고양 병원은 월-금 매 1회, 수도 병원은 격주 화요일마다 출발하나 배차에 문제가 있으면 취소되기도 한다. 장비로는 X-Ray, 혈압계, BMI(신장 및 체중), 인바디(체지방 및 근육량), 물리 치료기(열, 전기), 뇨 및 혈액 검사기 등을 갖춰두었다. 근무 여건을 타 부대와 비교하면 당장 몸은 덜 힘들지 몰라도 일과 중의 환자는 물론 일과 후에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응급 환자를 위해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업무와 경계 근무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9] 구 116대대 막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1개 대대가 주둔하던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쓴다는 메리트와 부대 해체과정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떠난 각종 폐기물이나 재산등을 그대로 짬맞았다는 디메리트가 있었다.[10] 의무근무대, 방공대대 등이 여단 주둔지 내로 들어 올 예정이다.[11] 91기보여단에서는 1개 대대(52전차)만 넘어왔으며 포병여단에서는 3개 대대 중 2기갑여단으로 1개 대대가 넘어간 것을 빼면 나머지 2개 대대가 그대로 편입되었다.[12] 천주교 군종병은 사단 성당에 모이는 집체교육이 많아 그렇지, 평신도들은 면회장 바로 아래의 공소에서 미사를 참례한다.[13] 영내P.X는 여단 및 주둔지 내에 부대가 공용으로 사용하며, 위병소에 면회장과 함께 영외P.X가 있다.[14] 3중대[15] 엄연히 부대 내부 시설이나 어느 부대 회관들이 그렇듯, 외부와 가까워서 이따금 사단 소속 연예인들이 전역할 때 인사하는 접견 장소로도 많이 쓰였다. 예시. 김현중의 전역[16] 이쪽은 부대 위치와 주변 교통 여건으로 인해 연신내로 많이 간다.[17] 92여단 예하부대였으나 26사단 xx전차대대와 트레이드로 26사단 예속전환되었다. 26사단 해체 후 같이 해체되었다.[18] 게다가 행군코스도 가파른 산을 타기에 피로가 장난아니다. 아무리 입소 이후 쉴 시간을 줘도 고작 해봤자 3~5시간 남짓한 시간으로는 회복하기 힘든 시간이다.[19] 원래 2기갑 예하 부대였다.(위치가 파주인 걸 생각하면 꽤 먼 부대이다.) 친정 복귀를 한 셈이다.[20] 현재 무건리훈련장의 소속 직제는 30사단 해체작업에 따라 1군단으로 소속이 바뀌었다.[21] 사단 신교대가 아닌 타 지역에서 배출된 인원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사단 보충대도 겸한다.[22] 2020년 3월 30일 입영기수[23] 2020년 5월 13일 수료 후 5월 14일 배출.[24]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일찌감찌 2016년에 해체, 20, 26사단은 부대 해체 및 이들을 통합한 8(26사단과 통합), 11(20사단과 통합)사단은 각각 2018년과 2019년 말부터 신병교육대를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육군훈련소 및 다른 지역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인원을 충원.[25] 5.16 군사정변 때 사단장. 당시 준장 보직이었다. 30사단은 쿠데타에 참여했지만 이상국 준장은 반대했다. 그 결과 30사단의 출동을 반대한 죄, 시청 앞에 진압군을 출동시킨 죄를 물어 징역 10년에 선고되었으나 1년의 실형을 살았다. [26] 12.12 반란 때 국방부 장관. 장관이 사단장으로 지냈던 부대가 쿠데타에 일부 가담했다는 점이 특이하다.[27] 12.12 군사반란 때 사단장[28] 김훈 중위의 아버지. 이후 상급부대인 제1군단장을 맡기도 했다.[29] 사단을 맡은지 반년이 안 되어 자이툰부대장에 임명되었다.[30] 현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31] 30사단 해체 전 마지막 사단장[32] 수도기계화보병사단도 전투복에 오바로크 치는 비표에 전차가 그려져있다. 그리고 3사단은 비표가 사단의 상징인 백골이 그려져 있고, 8사단도 비표에 사단의 상징인 오뚜기가 그려져있다.[33] 위에 적혀있듯이 포병은 파주시에 배치된다! 참고로 사단 사령부 근처에 수방사 예하 동원사단인 60사단이 있다.[34] 원래 제6보병사단도 필승을 썼지만 2017년 4월 1일부터 청성으로 바뀌었다.[35] 심지어, 2014년 당시 부대원들 대다수가 이 구호를 빨리 읽어 '필싸캔두'로 경례구호를 붙이자, 사단 공식 공문으로 '필승'과 'I CAN DO' 사이는 한 박자 띄워서 경례할 것. 으로 생활지도가 하달된 적도 있었다.[36] 중위나 중사 등 일부 계급에서는 90%를 넘었다.[37] 독립대대인 5x전차 제외, 이쪽은 아예 서울 안에 있고 위치상 연신내, 구파발 쪽을 선호하는 편.[38] 이는 군 평일 외출의 취지가 지역 상권 활성화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30사단이 서울과 가깝다곤 하나, 어디까지나 위수 지역은 고양시이기 때문에 평일 외출은 고양시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사단 내에서도 고양시 내의 군 이용 혜택을 홍보했다.[39] 걸어서는 20~25분, 차량 이용시 5분이다. 하지만 버스는 배차가 안좋아 보통 택시를 이용한다. 다만 화전역과 가장 가까운 91여단은 막사에서 나와서 역까지 10분도 걸리지 않는다.[40] 다만 경의중앙선 특성상 배차간격이 매우 길어서 열차 기다리기 조금 지루하다. 게다가 평일 이용 시엔 출근 시간 대에 일산 등지에서 서울로 넘어오는 인파가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점도 고려사항이다.[41] 서울역 종점 경의선으로 환승없이 도달할 수 있으나 배차가 많지 않아 용산행을 선호하는 편이 낫다.[42] 실제로 이행되진 않았으나 20사단과 함께 서울 및 수도권 진압 부대로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기무사에 의한 것이지 30사단의 자의가 아니다.[43] 당시 사단장은 2017년에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된 김병주 장군이었다.[44] 역시 2017년에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된 김병주 장군이 사단장 때 촬영되었다.[45] 30사단과 상암동 MBC는 15~20분 거리밖에 안 되며, 예능 제작을 하는 일산 제작센터와도 20~30분 가량이다.[46] 이후 이 사단의 경례구호가 필승 I' Can do에서 필승으로 교체되게 만든 에피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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