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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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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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
2011
2012
2014

파일:2014 인천 아시안게임 로고.svg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4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반지

2015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

201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4 KBO 리그 도루왕



김상수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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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손주인
(2008)

김상수
(2009~2010)


김동명
(2011~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박진만
(2005~2010)

김상수
(2011~2022)


이재현
(2023~)
kt wiz 등번호 7번
신본기
(2022)

김상수
(2023~)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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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kt김상수 다음스포츠.jpg

kt wiz No.7
김상수
金相竪 | Kim Sang-Su
[1]
출생
1990년 3월 23일 (33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구옥산초[2] - 경복중[3] - 경북고 - (대구사이버대)[4]
신체
172cm[5], 68kg, O형
포지션
유격수[6], 2루수[7]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9~2022)
kt wiz (2023~)
병역
예술체육요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계약
2023 - 2026 / 29억원[8]
연봉
5억원 (FA, 2023년)
등장곡
우디 - 《자작곡》 (2023~)[9]
[ 이전 등장곡 보기 ]
삼성 라이온즈 시절
우디[1] - 《Hit The Ball》 (2013~2022)[2]#

응원가
Timmy Trumpet - 《Freaks》 (2023~)[10][11][12][13]
[ 이전 응원가 보기 ]
삼성 시절: 노라조 - 《슈퍼맨[1] (2009~2017)
BOYS AND MEN 연구생 - 《ドドンコ Don't worry》 (2018~2022)[2][3]

소속사
팀 퓨처스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1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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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김영범[1], 어머니, 남동생 김상우[2]
본관
경주 김씨
종교
천주교 (세례명: 요셉)
MBTI
ESFP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3.2. 수비
3.3. 주루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t wiz 소속 내야수. 삼성 왕조 시절의 유격수로 대구 아이돌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나, 2023년 kt로 이적했다. 이적 후에도 유격수로서 준수한 활약을 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삼성 시절에는 타격은 조금 약한 편이었지만,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의 빠른 발과 매우 좋은 수비, 전 경기 출장할 정도로 강한 체력,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주전을 차지해서 젊은 나이의 메리트가 있는 등 강정호의 뒤를 잇는 리그 유격수 2인자 자리를 KIA 김선빈과 다투었다.[15] 그러나 강정호가 미국으로 떠나고 본인이 타격에서 지지부진한 사이 오지환, 김재호가 성장하고 제 2의 강정호라 불리는 김하성이 20 - 20에 100타점이라는 괴랄한 스탯을 찍으며 존재감이 옅어졌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간 3에 가까운 WAR를 올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경북고등학교 출신으로 성골 로컬 출신에, 1차 지명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기 시작한 2009년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풀타임을 뛰면서 데뷔 년도인 2009년의 두 배에 가까운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타율은 유지하면서 도루와 출루율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2011년에는 비율 스탯이 각각 3푼/2푼/5푼이나 증가한 데다 도루 개수는 전년과 별 차이 없는 29개를 기록, 또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으며 2012년에는 초반의 부진 탓에 득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16] 2013 시즌에 다시 회복하다 못해 안타 2개 차로 3할을 놓치는 좋은 성적을 보여 모든 팬들이 타격포텐이 만개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2014, 2015년 극심한 타고투저에도 불구하고 타율과 대부분의 타격 스탯이 하락했다. 공을 골라내기보다 쳐서 나가려는 성향이 강해 출루율이 높지 않고, 이런 스타일은 BABIP빨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 기복이 극심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17] 그러다 보니 차기 테이블세터감을 기대하며 지명한 선수가 주전 테이블세터의 부상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줄곧 하위타선-9번타자에 머물렀다. 도루 역시 2014년 김평호 코치 효과로 본인의 한 시즌 최다 도루를 경신하고 구단 역사 최초의 도루왕[18]을 거머쥔 걸 빼면 커리어 내내 20개 중반~30개 정도만 기록하며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백업 없는 유격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면 도루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웠을 것을 고려해야 한다.

3.1. 타격[편집]


타격에서는 타율 2할 중후반대를 기록할 수 있는 타자이다. 하지만 볼넷을 고르기 전에 치고 나가려는 스타일[19]이라 출루율이 높지 않고 펀치력도 좋지 않아 많은 홈런을 기대하긴 어려운 선수이다. 높지 않은 출루율과 낮은 장타율은 낮은 OPS로 연결되고 타격 효율을 의심하는 팬들이 늘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늘 변화를 시도했지만 2013년 뜬금 없이 홈런을 몰아치던 때 말고는 결과물이 좋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어느 정도 성장을 지속하는 모습에 기대를 많이 받았고 3할을 언젠가는 치겠다고 생각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2014년 엄청난 타고투저로 접어드는 시기에도 전년도의 성적에 머물며 상대적으로 쳐지는 모습. 이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6년 이후에는 2할 중후반에서 정체되어버렸다. 2018년에는 커리어 처음으로 10홈런을 기록하며 10-10을 달성했으나 당시 리그 전체가 극심한 타신투병이었던 탓에 좋은 평가는 듣지 못했다. 타율은 2할 6푼대로 낮은 편이었고 wrc+는 67.1에 불과했다.

2019년 이학주의 합류로 포지션을 유격수에서 2루수로 변경하여, 일부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오히려 안정감있는 송구와 타격이 좋아지면서 포지션 변경을 대성공적으로 마쳤다. 2루수로 변경하며 타격 매커니즘이 조금 바뀐 듯, 상세 기록을 보면 타석에서의 모습이 매우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최초로 wRC+ 100을 기록하였고 지난 삼성의 암흑기 몇년간의 안타까운 성적을 상회하는 성적을 냈다. 배트 적극성도 낮아져 예전처럼 침착하게 타격하게 되고, 자기 자신만의 존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2020년 드디어 각성하여 커리어 최초로 타율 3할을 찍었다. 삼성의 1/2번에 붙박이로 기용되면서 출루율 또한 커리어하이로, 4할에 가까운 0.397을 기록하며 수준급의 2루수로 발돋움하는 중. 바깥쪽 공은 아예 헛스윙률이 0에 육박할 만큼 자신만의 존이 확고한 선구안형 타자가 되어가고 있다. 헛스윙과 삼진률이 크게 줄어들어 커리어에서 현재까지 가장 높은 BB/K를 기록하였고, 나쁜 공은 다 걸러내고 치기 좋은 공을 밀어쳐서 우측 외야로 보내는 안타가 크게 증가하였다. 장타율도 예전에는 3할대에 머물렀으나 4할을 찍었고 출루율은 볼넷이 늘고 타격 매커니즘이 좋아지며 눈에 띄게 좋아졌다. 허구연은 2루수 포지션 변경 후 김상수가 야구에 눈을 뜬 게 아닌가라고 평하기도 했으며, 양준혁은 김상수의 한계치에 대해 다시 평가하게 됐다고 극찬받았다.

타격에서 아쉬운 점을 한가지 꼽자면 부족한 클러치 능력. 전체적으로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 매년 유의미하게 낮은 타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왕조 시절에는 괜찮았으나 20대 후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문제점으로 2019-2020년에 좋은 성적을 기록할 때에도 클러치 능력은 대표적인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WPA가 기록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WPA 양수를 찍은 시즌이 3번에 불과하다.

통산 포스트시즌 타격 war이 0.1에 불과하다. 삼성 왕조시절부터 새가슴기질을 보이며 가을에는 바보가된다.

3.2. 수비[편집]


몸이 날렵하고 순발력이 좋아서 유격수로서의 수비력은 리그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류중일 감독이 수비만 놓고 보면 강정호보다도 낫다고 평가한 적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김상수의 수비를 자주 칭찬한다.수비코치 9명 중 수비로는 최고 유격수로 뽑았을 정도. 땅볼, 플라이, 다이빙 캐치 모두 상급이며, 민첩성과 빠른 발[20] 그리고 야구센스에 기반한 수비를 하는데 능하다. 또한 포구 후 송구를 위해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인 트랜스퍼 역시 훌륭하다.[21]

다만 송구는 평범하다. 어깨가 약하지는 않지만 강하다고도 볼 수 없는데, 자신의 어깨를 과신하는 것인지 무리하게 송구하여 도리어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넓은 수비 범위와 유연한 자세 전환으로 부족한 송구를 커버하고 있으나 어이없는 송구 실책이 꽤 자주 보인다. 그 예가 2012년 한국시리즈 3차전, 희대의 덕아웃 송구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히며 경기를 내줬다. 풋워크도 좋고 어깨도 그리 약한 편도 아닌데 왜 자꾸 바운드 송구로 실책이 생기는지는 의문. 그로 인해 주전을 차지한 이후로 매해 두자릿수의 실책을 기록했다. 그리고 잔부상 등의 영향으로 15년 이후론 수비 세부 스탯이 많이 하락한 상태이다. 한때 금강불괴 속성도 보유하고 있었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유격수임에도 2011~2015년 출장 경기 전체 4위를 기록했지만 후유증으로 15년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더니 16년부터는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팬들이나 구단이 염려했던 부분은 박진만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이후 삼성에 제대로 된 유격수 백업이 없다는 것. 강정호처럼 리그를 씹어 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닌 이상 백업 겸 주전 경쟁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젊은 나이에 주전을 꿰차서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류중일 부임 이후 매년 유격수를 지명했으나, 할애한 지명권에 비해 소득은 매우 미흡했다. 2015 드래프트에서 삼성이 지명했던 유격수 최정용도 입단 후 유격수로 미흡하다는 평을 받다가 결국 2차 드래프트로 SK에 끌려갔다.

사실 유격수를 열심히 지명했지만 1군에서 통할 자원이 잘 안 나오다 보니 실질적으로 김상수가 풀타임을 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성장이 정체된 것이 내부 요인 외에도 몇 년 연속 풀타임 출전에 따른 체력 부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5년까지 이용한 홈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인조잔디여서 내야수들의 무릎에 악영향을 주었고. 류중일 前 감독도 이를 알기에 야마이코 나바로를 2루가 아닌 유격수로 보내보는 등 김상수의 집중도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유격수는 무조건 유격수가 백업해야 한다는 류중일 전 감독의 지론[22]과 팀 내 내야수 부족이 겹쳐 키스톤 백업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23]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결국 2015 시즌부터는 점점 부상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결국 팀이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국에서 리턴한 이학주를 지명하며 2루수 전향을 하게 되었고, 상술했듯 수비에서 부담이 적어짐과 동시에 공수 양면에서 살아난 모습을 보이며 부활에 성공했다. 22시즌 시작 전 이학주가 많은 실망만 안겨준채로 롯데로 트레이드되며 다시 유격수 출장을 시작했지만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대형 유격수 유망주인 이재현을 지명한 관계로 장기적인 유격수 자원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kt wiz로 이적하며 다시 붙박이 유격수가 되었다.

3.3. 주루[편집]


김상수의 주루능력은 팀 동료였던 박해민처럼 같은 리그를 대표하는 주자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바로 다음 급에는 여유롭게 들어갈 수준이었는데, 도루왕을 했던 2014년을 포함하여 늘 80프로 이상의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어 효율이 높다. 보통 대도들이 도루개수는 많아도 성공률 부분에서는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에서는 확실히 강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야 할듯. 또한 한 베이스를 더 가는 등의 주루 플레이에도 능해 팀에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능력이 빛을 보게 됐던 게 삼성 시절 9번타자로 활약했을 때인데, 1번에 배영섭이나 야마이코 나바로 같은 타격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들어가자 가짜 1번 타자 같은 역할로 비춰지게 되면서 떨어졌던 타격 능력에도 삼성 팬들은 김상수의 공격력으로 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4. 여담[편집]


  • 신인 시절 달았던 등번호 2번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데릭 지터의 등번호를 따온 것. 2010 시즌 후 박진만이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SK 와이번스로 가게 되자 그의 등번호 7번을 이어받았다. 김상수가 kt wiz로 이적한 후에는 이재현이 가져갔다. 김상수는 이적 후 7번을 달아야 할지 고민하던 이재현에게 이제는 당연히 너가 7번을 달아야 한다[24]고 말을 했다고.

  •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1996년, 구미시로 이사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광역시에 정착했다. 그래서 서울말에 경상도 억양이 살짝 섞인 말투를 갖고 있다. 혹여나 온전한 사투리 구사를 예상했다면 명확히 알아 두자. 김상수는 원래 서울특별시 출생이다. 비슷한 경우가 두산 베어스장원준. 반대 사례로는 전 두산 베어스김동주가 있다. 전 동료 우규민도 김상수와 반대인 경우다. 사실 전국권 방송 인터뷰에서만 서울말을 사용하고 TBC 경북 지역 방송 인터뷰나 다큐멘터리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보아 방송을 위해 일시적으로 순화한 것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서울 출생이나 경북 지역에서 훨씬 더 오래 살았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학교 및 일터가 경북 지역이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를 주로 쓸 수밖에 없다. 다만 표준어 억양과 경상도 억양이 섞인 점과 서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서울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지 분명 언어 베이스는 경상북도 사투리이다. 김상수의 억양은 경북 사투리 화자가 서울말을 배워서 다소 신경 써서 구사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특정 단어를 강조하거나 감정이 실린 말을 할 때 억양이 조금씩 서울말과 다른 위치에 찍혀 있다.

  • 막 데뷔했을 시절엔 타상수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같은 팀이었던 투수 김상수와 구분을 위해 붙은 것이다. 투상수가 넥센으로 이적한 후로는 별다른 별명이 없다가, 류중일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는다는 까닭으로 류상수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25] 또 2013 시즌 중 홈런 개수가 김태균보다 더 많았고 이승엽보다 페이스가 더 좋아서 "김거포"라는 별명도 새로 생겼다. 2011년 이대호가 3홈런을 몰아쳤으나 3:3 무승부로 끝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생활 평생 동안 칠 홈런 개수를 하루 만에 몰아친다"며 감탄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 수준. 그러나 15년부터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2016년에는 조동찬, 배영섭과 함께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하면서 '거격수'를 줄인 거유라는 별명을 획득한다.


  • 두 살 아래의 동생인 우디(본명: 김상우)는 2011년에 결성해서 2013년에 해체한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26] 소속 보이그룹이었던 엔트레인의 메인보컬로 활동했다. 지금은 인디안 레이블[27]로 옮겨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차트조작 의혹이 2019년 1월에 일어나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 김상수, 김상우 형제의 가족과 구자욱 형제의 가족은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28] 그래서 구자욱과 김상수가 붙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구자욱의 등장곡도 우디의 노래를 사용중이다. 또한 구자욱이 가장 감사한 선배로 김상수를 꼽기도 했다. 자신이 슬럼프에 빠져 멘탈이 흔들렸을 당시 야구를 하기 싫다는 푸념을 했고, 평소에는 다정하게 위로하던 김상수가 그 날만큼은 구자욱에게 실망했다며 따끔하게 충고를 했고, 늘 다정하던 선배의 쓴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연습한 결과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상수가 KT로 이적한 후 구자욱과 전화를 했었는데 전화를 하다가 구자욱은 눈시울이 붉게 변할 정도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2023 올스타전에서도 둘이 굉장히 반가워 했고 붙어 있었다.[29] 덕분에 오랜만에 라이온즈tv에 출연할 수 있었다.


  • 2012년 한국시리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대부진과 WBC 중 부적절한 SNS 사용 등으로 인해 신인 내야수 정현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정현은 지명 당시부터 프로에서 유격수로는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그 예상대로 프로 1년차 말부터 3루수로 전환했다. 그나마도 성장세가 더뎌 류중일 감독이 이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KT 특별 지명에 대한 보호 20인에서 제외되면서 정현은 KT의 전력보강선수 지명을 받아 이적했다.

  • 과거 유격수 백업이 부족한 삼성의 특성 상, 삼성 시절 엄청난 수비 이닝을 소화했다. 이 때문에 삼성은 류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유격수를 뽑았으나, 김상수의 경쟁 상대는커녕 백업 구실을 해내는 선수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데려온 정병곤이 2013년 백업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2014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5년부터 공익으로 복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백업은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부실한 백업으로 김상수는 DL을 갔던 시즌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많은 경기와 수비이닝을 소화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유격수이면서도 리그 수비이닝 소화 부문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나마 2017년에는 정병곤이 복귀하고 최형우 보상선수로 강한울을 지명하면서 백업을 갖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학주를 거쳐 김지찬을 기용하다가 유격수 불가 판정을 받고, 고졸신인 이재현이 자리를 잡으며 후계자가 되었다. 이재현이 주전 자리를 잡으면서 김상수는 세대교체가 필요한 삼성을 떠나게 되었다.

  • 반려동물로 말티즈를 키운다고 한다. 이름은 루이. 현재는 삭제됐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 2015년 구자욱과 채수빈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구자욱의 최측근이 이를 인정했고 이를 두고 네티즌들이 이 최측근이 누구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문제는 그 후보로 구자욱과 친하게 지내던 김상수가 지목당하면서, 졸지에 최측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나이는 전반적으로 어린 편이지만, 삼성의 팀컬러에 맞게 삼적화된 노안이다. 배영수처럼 이른 나이에 주전을 꿰차 경력이 제법 긴 편이고 유격수 백업이 없어 거의 풀타임을 뛰다보니 피로누적으로 얼굴이 폭삭 늙었다. 1981년생으로 김상수보다 9살 위인 윤성환보다도 나이가 들어 보일 정도.[30] 게다가 수염이 자주 나는 편인지 코밑이 수염자국으로 거뭇하다. 그러나 반대로 머리는 탈모의 징후까지 벌써 보일 정도. 김상수가 박해민, 박찬도, 정인욱과 또래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

  • SNS 사건, 경쟁자가 없으면 실력이 정체되는 점 등으로 멘탈 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지만, 그와 별개로 인성이 좋다는 증언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선수다. 게다가 수많은 클럽 썰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관련 구설수는 한번도 난 적이 없다.[31]


  • 중학생 시절에 6살 원태인한테 홈런치고 좋아하던 김상수의 영상이 원태인 다큐멘터리에 있었는데, 원태인이 삼성에서 첫 선발승을 따내고 얼마 안 가서 KBS Sports에 의해 재발굴되어 흥미를 끌었다.[32]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김상수에게 야구를 시키기 위해 아버지인 김영범씨가 구미에서 대구로 가족을 데리고 내려왔는데 집을 구하지 못해 몇 달 정도 친구이자 군대 선후임 사이인 원민구 감독의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김영범씨가 원민구 감독의 차남인 6살 원태인의 야구 재능을 발견하고 야구를 시키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파일:wonsplan.png
6살 원태인의 스케치북에도 나온다. 여기에서는 1루수로 나와있다. 원민구는 김영범의 부고 때 김영범이 휠체어를 타고 스카이박스에서 본인이랑 같이 야구를 관전했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회고한 바 있다.

  • 타격 면에서는 계속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물방망이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 정도까진 아니다.[33]

  • 도산초등학교 야구부 시절 야구부장(감독)에게 홈런 칠 때마다 만원씩 받았다고 한다.[34]

  • 이학주와 상당히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을 유격수 자리에서 밀어낸 경쟁자여서 한때 팬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걱정하기도 했지만[35] 방송에 잡히는 모습이나[36] LIONS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정말 친하게 지내는걸로 보인디. 이런 만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다만 이학주는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김상수도 삼성을 떠나게 되었다.

  •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천주교 신앙을 지켜온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평상시에는 훈련과 경기로 인해 주일 미사에 가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37] 경기 전에는 꼭 성호경을 긋고 주모경을 바치고 어머니가 해주신 묵주반지를 목걸이로 걸고[38] 경기에 출전하고 낮경기가 끝난 후에는 저녁미사라도 가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또 비시즌에는 되도록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선수촌에 파견된 천주교 서울대교구 임의준 신부에게 달려가 "신부님께서 같이 기도를 해주셔야 경기가 잘 풀릴 것 같아요"라고 직접 말할 정도. 2021년 3월 한 달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매주 발행하는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코너에 고정적으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39]


  • 오선진과도 외모가 비슷하며, 개그맨 김대범과도 닮았다. 인터넷 방송인 브베를 닮았다는 얘기도 있다.

  • 노래를 잘 부른다. 삼튜브 랜선 사인회에서 부른 적이 있고, 안지만 방송에서도 게스트로 나와서 부른 적이 있는데 노래 실력이 아주 좋았다.

  • 자신과 90년생 동갑내기들인 오지환, 박동원, 하재훈, 허경민, 정수빈, 안치홍, 이재학, 정인욱, 노수광, 구승민 등이 현재 모두 결혼을 하여 기혼자가 된 반면 이쪽은 현재까지도 미혼이며 본인도 아직은 연애에 대한 관심은 딱히 없는 편이다. 현재로써는 팀 선배이자 은퇴한 지 한참 지난 동시에 50대 나이에 늦장가를 간 양준혁이나 40대에 접어들어서 기혼자가 된 오승환처럼 현역 시절에는 미혼 타이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90년생 라인 중에서는 김상수 외에 박건우, 김동엽, 이학주 등은 아직 미혼이다.

  • 생각보다 금강불괴일 정도로 내구성도 괜찮은데 데뷔 시즌이었던 2009 시즌과 2017 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100경기 이상은 뛰었다. 다만 30대가 넘은 이후로는 잔부상 빈도가 좀 높아졌다.

  •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복면가왕 192차 경연에서 폭풍 질주하는 날카로운 가창력! 스케이트로 나와 1라운드에서 은반 위에서 갈고닦은 빛나는 노래! 아이스링크와 같이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른 뒤 탈락하자 크라잉 넛의 '명동콜링'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40]경연 이후에는 삼성 팬들에게는 그동안 감사했으며 KT 팬들에게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했다. 이후 본인과 겨룬 아이스링크는 자신의 동생으로 밝혀졌다. 형제들이 출연하도록 기획된 대결인 만큼 그는 모든 경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생과 같이 인터뷰했다.[41]

  • 어렸을때 야구를 하기전에는 축구선수를 꿈꾸었다고 한다아버지가 야구를 했던 경력이 있어 자연스럽게 야구를 하게 되었다고 하며, 어머니도 그가 축구보단 야구를 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축구선수를 꿈꿔왔을 정도로 축구를 잘한다고 한다.

  • 그가 삼성을 떠나는 과정이 현재 삼성의 감독인 박진만이 현역 시절 삼성을 떠났던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박진만이 삼성을 떠났을 때에는 김상수가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됨과 동시에 주전 자리를 빼앗기게 된 박진만은 경기를 자주 뛰고 싶은 마음이 커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김상수가 삼성을 떠날때 과정은 구단이 세대교체를 위해 유망주 이재현에게 주전 유격수를 맡길 계획이었기 때문에 김상수는 삼성을 떠나게 되었다. 김상수가 삼성을 떠났을때 마침 박진만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시기여서 팬들은 박진만이 12년전부터 계획하던 복수라는 드립을 칠 때가 있다.[42]

  • 2루수 전향 3년차인 2021시즌, 이학주가 부진하자 팀에서 유격수 땜빵을 요청하였으나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였다고 한다.[43] 이 때문에 삼성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애증의 선수임은 틀림없어서 2023 올스타전에서 구자욱과 함께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삼성시절의 김상수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 투수 중에 가장 어려운 상대는 기아에서 뛰었던 애런 브룩스와 LG 트윈스 사이드암 투수 정우영이라고 한다.

  • 삼성을 떠났음에도 아직까지 삼성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적 후에도 삼성팬이 삼성 유니폼에도 사인을 요청해도 잘해주고 있다.

4.1. 별명[편집]


  • : 좆상수 -> ㅈㅅㅅ -> 좄. 김상수가 못 할 때 불리는 별명.

  • : 킹상수 -> ㅋㅅㅅ -> 킸. 김상수가 잘 할 때 불리는 별명.

  • 킸장님, 좄장님: 킸 or 좄 + 주장님. 2017 시즌 주장을 역임하며 생긴 별명.

  • 빘장님: 마찬가지로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 맹활약하여 '빗장수비'를 했다는 기사가 떠서 생겼다.

  • 키무산수: 마찬가지로 2019년 프리미어 12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트위터에서 일본인들이 김상수를 칭찬했는데, 번역기를 돌리면 키무산수라고 출력이 된다.

  • 셉장님: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본인의 세례명 '요셉'에서 따온 별명.

  • 대구 아이돌: 왕조시절 삼적화가 오기 전 타자들 중 얼굴이 그나마 곱상한 편이어서 인기가 많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잘해서 붙은 별명.

  • 왕조 유격수: 2011 ~ 2014 삼성 왕조 시절의 주전 유격수.

  • 왕조의 유산: 삼성 왕조가 몰락하며 주전 야수들이 대부분 이탈하고 2022 시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왕조 출신의 야수라 붙은 별명. 이제는 김상수도 팀을 떠나 왕조 시절에 뛰던 야수는 김헌곤밖에 남지 않았다.

  • 타상수: 데뷔 시절 같은 팀에 있던 투수 김상수와 구분하기 위해 붙었던 별명

  • 김거포: 2013 시즌 초반 김태균, 이승엽보다 홈런 페이스가 좋았을 때 생겼던 별명.

  • 거유: 거포 유격수, 2018 시즌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생겼다.

  • 연쇄사인마: KBO 원탑급 팬 서비스를 가진 선수라서 붙은 별명.

  • 팔공산 댄스머신: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목격했다는 썰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데, 과음하고 추태를 부리거나 여자한테 집적대는 등의 구설수는 일절 없고 춤만 열심히 추다 간다고 생긴 별명.

  • 팔공산 섹스머신: 안지만이 예전에 '팔공산 섹스머신 삼성 김상수' 라고 화장실에 낙서하고 간 것에서 나온 별명. KT로 이적 후에는 동료 중에 원조 섹스머신(섹머) 황재균이 있어 이 둘의 케미가 기대된다.

  • 봉덕동 네이마르: 야구를 하기 전에 축구선수를 꿈꿨던 적이 있고 실제로 축구를 잘한다고 한다. 친한 구자욱은 범어동 크라우치라고 한다.

  • 최측근: 2015년, 구자욱이 채수빈과의 열애설이 퍼졌을때 구자욱의 최측근이 인정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 최측근이 구자욱과 친한 김상수로 추측될때 생긴 별명

  • 김짜증: 2012년 쯤 한 팬이 김상수가 클럽에 간 것을 발견해 김상수의 페이스북으로 팀 분위기를 생각해서[44] 클럽 가지말라는 내용으로 글을 쓰자 관심은 감사하지만 안그래도 야구가 잘 안되고 있어서 짜증이 나는데 이런 글은 메세지로 보내달라는 답장을 해 생긴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선 개인 SNS 게시물 등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단속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도 생겨서 23년 기준으로 보면 꽤 씁쓸한 일이다.

  • 김발렸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출전 당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데 어렸을때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이 지금은 졌지만 질 수도 있는거고 어렸을때 네덜란드 발랐으면 됐다라는 내용으로 댓글을 달자 어릴땐 발랐지만 지금은 발렸네라는 말을 해 생긴 별명이다. 이 사건으로 페이스북을 접게 되었다.[45] 이것 역시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 콱상수: 21, 22 시즌에 부진하자 일부 삼성팬들이 내야가 약한 KT로 보내버리라는 반응을 해 생긴 별명이다.그리고 실제로 갔다

4.2. 팬 서비스[편집]



  • KBO리그에서 가장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 중 하나 #
  • 전통적으로 팬 서비스가 거지 같은 걸로 유명한 삼성 야수조에서 정말 드물게 팬서비스가 투철한 선수이며 프로 데뷔 후 매년마다 모교에 야구용품과 지원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경기가 일찍 끝나거나 쉬는 날에는 부모님의 가게 일을 밤 늦게까지 돕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프로 야구선수로서 그의 팬서비스가 가히 흠잡을 데가 없다는 점은 삼팬 대다수가 인정한다. 오죽하면 야구선수로서 단 하나 야구만 잘하면 완벽하다라는 웃픈 농담이 있을 정도고, 삼갤에서도 김상수 인성은 문제삼는 사람이 없을 정도.

  • 이 팬 서비스와 관련된 별명 중 하나가 포켓몬 트레이너. # 포켓몬 게임에서 적 트레이너는 자기 시야에 포착되면 ! 표시를 띄우고 달려와서 대전을 신청하는데, 김상수는 종이와 펜을 들고 서 있으면 달려와서 사인해준다고 이런 별명이 붙었다. 목격담

  • 워낙 사인을 많이 해주다보니 팬들이 사인볼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사인을 거절하기까지 하는데, 심지어 김상수는 거절당하자 무척 섭섭해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다른 선수 사인볼을 택배로 받았는데 부탁한적도 없는 김상수 사인볼이 동봉되어 있었다, 김상수가 사인을 해주러 다가왔는데 종이가 없다고 거절하니까 갑자기 휴대전화 뭐 쓰는지 물어보더니 갤노트라고 대답하자 갤 노트의 노트 앱에다 사인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노트 앱을 켜서 노트에다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해주러 다가와서 펜도 종이도 없다고 하자 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같이 사진을 찍어줬다, 길 가다 김상수 같아보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는데 가던 길 가다 누가 불러서 돌아보니 정말로 김상수가 가던 길 되돌아와서는 "저 아시죠?"라고 하면서 싸인을 해주고 갔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김상수와 눈을 마주쳤는데 다가와서는 사인도 해주고 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해줬다 등등 거의 팬서비스를 강매당하는 수준으로 미담이 많다. 진짜 과장이 아니라 팬서비스를 팬이 부탁하는게 아니라 눈 마주치면 본인이 먼저 와서 해준다.

  • 이래서인지, 팬들이 거절해도 합법인 선수로 뽑히기도 한다.[46]

  • 2019년 피날레 이벤트 당시 일화로 1개조에 4명의 선수가 배정되어 있고, 개인물품 2개와 구단에서 준비한 싸인지 2장에 각각 1명씩 싸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김상수가 소속된 조의 경우에는 김상수에게 개인물품에 싸인을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팬들 입장에선 이미 개인물품에 김상수의 싸인을 받을 만큼 받아서 오히려 구단에서 준비한 싸인지에 받는 게 레어템이었던 셈. 참고로 해당 조의 구성원은 김상수, 최채흥, 이성규, 김대우로 나머지 3명도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물품 싸인이 이 3명한테 몰렸었다.???: 나 뭐 잘못했나

  • KT 이적 후에도 좋은 팬서비스를 유지하고 있고, KT팬들뿐만 아니라 전 소속팀 삼성팬들에게도 친절하게 해준다.

5. 관련 문서[편집]


[1] WBSC 공식 등록명.[2] 야구를 시작한 곳은 구미 도산초이며, 후술할 여담부분에 언급했던 것처럼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졸업 전 대구 옥산초로 전학갔다.[3] 협성중과 통합하여 현재는 협성경복중. 야구부는 그대로 있다. 중학교 야구부 당시 스승이 원태인의 아버지인 원민구 감독이다.[4] 입단 후에 대구 사이버대학교로 입학하였다.[5] KBO 공식 홈페이지에는 175cm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중계화면으로 보나 야구장 근처에서 팬들에게 찍힌 전신샷으로 보나 175cm 혹은 그 이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170~172cm 정도라는 게 학계 정설.[6] 대부분의 커리어 동안의 주 포지션.[7] 데뷔 초 잠시 병행했으며, 이학주가 영입된 이후인 2019년~2021년에는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었다.[8] 계약금 8억원 / 연봉 총액 15억원 / 옵션 6억원[9] 할 수 있어 믿어 넘어져도 일어나 Don't give up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를게 we can fly away~[10] 날려버려 김상수 야야야야야 (hey) 안타 안타 김상수 야야야야야 (hey) x2[11] 응원가 들어가기 전에 응원단장이 김상수 GO를 외친다, 녹음된 멜로디에는 hey가 있는데 그 hey 부분을 야로 해서 더 크게 외친다.[12] KIA 타이거즈 선수인 김규성 등장곡과 같다.[13] #[14] 비공개 계정이다. 공개 계정은 2022년에 비활성화 혹은 탈퇴를 해서 찾아볼 수 없다.[15] 또한 삼성 시절에는 최형우, 이승엽, 박석민, 채태인, 박한이, 야마이코 나바로 등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이 즐비한 삼성 타선이었기에 그다지 타격에 대한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16] 득점이 올라간 이유는 중간에 류중일이 김상수를 테이블 세터로 기용했고, 이게 제법 성과가 좋았던 덕분이다.[17] 2013년 .298의 커리어 하이를 찍을 때도 개막전 이후 22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타고투저였던 2014년에는 잠시 3할을 뚫었다가 다시 추락하였다.[18] 참고로 김상수는 고교야구 시절에도 도루왕을 받은 적이 있다.[19] 엄밀히 말하면 공 자체는 많이 보려고 하지만, 투수들이 김상수의 주력을 의식해 공을 적극적으로 존 안에 넣었다.[20] 많은 야수들이 좌우로만 움직이는데 반해 사선으로 움직여 발자국 수를 줄인다고 한다.[21] 같은 팀에 있던 나바로나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거포유격수 강정호 만큼의 힘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진 못하나 빠른 발과 좋은 어깨를 십분활용하여 깔끔하게 공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22] 이 지론은 국가대표 단기대회가 아니면 시행되기 어려운 지론이다. 포수 다음으로 키우기 어려운 게 유격수이기에 주전급 유격수를 두 명이나 보유한 팀은 거의 없다.[23] 원래 이 역할은 김태완조동찬이 맡았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나바로가 있던 시기에 둘 다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나바로와 김상수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정현, 최정용 같은 신인급 내야수들은 보호명단에 들지 못하면서 연이어 타 팀으로 이적했고, 정병곤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 후 공익으로 병역을 치르면서 3년간 자리를 비웠으며, 백상원은 16시즌 주전 2루수가 되었지만 처참한 운동능력으로 그 전까지 중용되지는 못했고 17시즌부터는 다시 2군으로 밀려났다.[24] 7번은 내로라하는 유격수들이 단 번호이고 삼성에서도 박진만-김상수-이재현으로 이어지는 주전 유격수의 상징이다.[25] 젊은 시절 류중일의 사진을 찾아보면 김상수와 꽤 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26] 김창환이 있는 곳이다.[27] 기획사 메이저9 산하의 레이블이며, 하은도 이 곳에 있다.[28] 구자욱과 우디는 경복중학교 동창이고 같은 반이기도 했었다. 구자욱의 친형과 김상수는 동갑이다.[29] 김상수의 소속팀 kt위즈와 구자욱의 소속팀 삼성라이온즈가 올스타전 한정으로 같은 팀인 드림올스타에 속하기 때문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30] 사실 이건 윤성환이 워낙 동안인 것도 있다. 2022년 현재 한국 나이로 무려 42세이다![31] 김상수 클럽썰의 특징은 대부분 '정말 춤만 추다 가더라' 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춤추고 노는 것을 좋아할 뿐 과음하고 추태 부리거나 여자들에게 집적거렸다는 썰은 단 하나도 없을 만큼 자기 관리에 투철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렇게 놀러가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에게 인사와 사인을 해준다는 목격담도 있다.[32] 그 장면보다 뒤에 나오는 어린 원태인이 떼를 쓰며 우는 장면과 이어붙여서 김상수가 6살짜리한테 홈런 쳐서 울리는 걸로 왜곡한 움짤도 돌아다닌다.[33] 사실 유격수는 포수 다음으로 수비부담이 높으므로 수비만 잘해도 된다. 그러나 크보는 타고투저 리그로 분류되는 데다가 삼성의 김상수 이전 전직 유격수는 박진만, 류중일이라는 공수 다 되는 명유격수들이었다. 거기에다가 김상수 플레이 스타일 역시 류중일 현역 시절과 약간 비슷하다. 빠른 발과 약한 장타력에 나름 안정된 수비력까지. 성에 안 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4] 참고로 초등학교 6학년때도 지금과 신장과 체중이 같았다고 한다.[35] 오히려 김상수는 유격수 자리를 이학주에게 내주고 2루수로 옮긴 뒤 더 잘하고 있다.[36] 대표적으로 2019년 올스타전 당시 이학주가 응원단장 가운을 입을때 김상수가 옆에서 도와줬다.[37] 보통 성당의 주일미사 시간은 새벽 6시, 아침 9시, 아침 11시, 저녁 7시 정도로 나뉜다. 새벽 미사는 토요일 야간 경기 후 휴식을 취하느라 못갈 경우가 많고 오전 미사나 교중 미사는 팀 스케줄과 겹칠 가능성이 크다. 저녁 미사는 야간 경기 스케줄과 겹칠 때가 있다. 더구나 자택 주변 성당이라면 몰라도 원정지에서도 숙소를 나와 성당에 가기는 다소 부담스럽다. 물론 주일 새벽 휴식을 마다않고 주일 예배를 보러 간 선수도 있다. 이만수가 그랬다.[38] 묵주반지가 갖고 싶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선물로 주셨는데 야구선수 특성상 송구나 수비 때 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반지를 끼고 경기에 임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목걸이에 펜던트처럼 걸고 다닌다고 한다.[39] 사회 각계 유명인사 중 천주교 신자를 매달 한 명씩 선정해서 한 달간 고정적으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게재하는 코너인데 천주교 신자 경영인으로 유명한 박용만두산그룹 회장도 이 코너에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40] 방청객에 대선배 양준혁이 보고 있었고, 양준혁이 굉장히 반가워했다.[41] 사실 김상수는 상대가 우디인데 우디한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우디는 김상수가 나간줄 눈치채고 있었고 일부러 형한테 상대가 배우 느낌이 난다고 거짓말을 했고 김상수는 제대로 속였다고 생각했으나 인터뷰 도중 동생의 눈차챘다는 발언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42] 당연히 농담이다. 박진만도 현역시절 삼성을 떠날때 구단 사정을 이해하고 직접 방출을 요구한 것이고 당연히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해서 박진만 본인도 생각하기에는 그때 본인이 당시 감독이었어도 김상수를 많이 썼을 것이고 김상수의 대한 악감정은 없다고 인터뷰했다. 만약 악감정이 있었으면 박진만이 감독대행으로 선임된 2022년 후반기에 김상수의 출전 기회가 없었을 것인데 오히려 허삼영이 감독으로 재임하던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기회를 많이 받았다.[43] 그리고 이 해에 본인도 2루에서 대차게 망했다.[44] 당시 삼성은 하위권으로 쳐져있었다.[45] 본인도 이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6년 뒤 프리미어 12출전했을때는 인스타로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게시물을 올려 극찬받았다.[46] 본래 불문율은, 선수가 먼저 서비스를 요청하면 거절하더라도 미안함을 표하며 거절하는 게 맞다. 근데 김상수는 하도 뿌리고 다녀서(....) 어느 정도 예외란 거지 그래도 미안함은 표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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