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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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1972년 출생
- 1991년 데뷔
- 2013년 은퇴
- 군산시 출신 인물
- 전주고등학교 출신
- 포수
- 우투우타
- 쌍방울 레이더스/은퇴, 이적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은퇴, 이적
-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은퇴, 이적
- KBO MVP
- KBO 리그 영구 결번 선수
- KBO 홈런왕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역대 감독
- 감독 대행/야구
- KBO 리그의 20-20 클럽 가입 선수
- 대한민국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감독
-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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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LG 트윈스 배터리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70퍼센트의 몸 컨디션으로도 100퍼센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프로다."
은퇴식 인터뷰에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해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2013년까지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한 선수로, SK의 왕조시절을 이끈 야전사령관이며 공수겸장 완성형 포수의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인식된다.[11] 은퇴 시점 기준으로 KBO 리그 최장 시즌 1군 경기 출장 선수[12] 이며, 스탯티즈 통산 포수 WAR 1위이자 SSG 랜더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13] 따라서 SSG와 인천야구의 팬들에게는 상징적인 선수로 여겨진다.
은퇴 이후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에서 코치로 활약하면서 두 구단에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하는 등 코칭스태프로써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수상 내역[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포수 수비의 기본기인 블로킹, 포구 능력, 도루 저지를 위한 강견은 물론 장타력, 선구안까지 모두 정상의 기량을 뽐내던 KBO의 역대 최정상급 포수이다. 현대의 1998, 2000 시즌, 그리고 SK의 2007, 2008, 2010 시즌 우승 주역. 포지션 특성상 도루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포수 20-20[14] 을 달성한 적이 있을 정도로 주력 역시 있는 편이다. 140년 역사의 MLB에서도 포수 20-20은 오직 단 두 번밖에 기록되지 않았고 일본 NPB에선 단 한명도 없다.[15] 박경완의 01년 20-20은 이반 로드리게스에 이은 전세계 2번째 포수 20-20이며, 당연히 KBO 역사에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3.1. 타격[편집]
타격에서는 전형적인 OPS 히터로 한국 버전 애덤 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16][17] 정교함보다는 힘으로 쳐내는 타격을 주로 했던 편으로 단 한 번도 3할을 친 시즌이 없으나 2000년, 2004년 두 번이나 홈런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타율은 낮지만 KBO 통산 7위에 해당하는 13.3%의 BB%[18] 를 기록할 정도로 선구안이 아주 뛰어나서 통산 타율은 0.249인데 출루율은 무려 0.367로 절대로 공갈포 소리는 듣지 않으며,[19][20] 세이버메트릭스 이후로 수혜를 본 타자로 반드시 꼽힌다. 특히 2000년에는 40개의 홈런을 쏘아올려 포수로는 이만수 이후 처음으로 홈런왕과 시즌 MVP를 따내기도 했다.[21] 대신 삼진수도 엄청나게 많다. 통산 삼진이 1,605삼진으로 역대 타자 최다 삼진을 기록하고 있다.[22] 하지만 클러치 능력이 꽤나 빼어나서 타점도 적지 않고 적시타도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성기이던 쌍방울과 현대 시절 모두 자신보다 더 뛰어난 김기태, 박재홍 같은 타자들이 앞에 배치되는 바람에 박경완이 타점을 내고 싶어도 주자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스탯티즈 기준 포수 통산 타격 WAR 1위이다. 비율 스탯도 출루율, 장타율, OPS 역대 포수 3위[23] , wRC+ 4위[24] 포수 원톱 논쟁으로 인해 이만수와 비교되면서 다소 수비 쪽으로 평가가 집중되긴 했지만 타격 능력 역시 롱런하면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줘서 역대 포수 중 톱클래스이다. 물론 톱클래스라는 표현으로 함께 묶이기에는 이만수가 넘사벽으로, wRC+ 기준 이만수는 통산 159, 박경완은 122인만큼 차이가 크지만 사실 포수로 통산 wRC+ 122이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이다. KBO의 2010년대 포수 평균은 95를 넘긴 적이 없고, 통산 wrc+가 122면 포수가 아니라 1루수로도 레전드 소리 들을만한 수준이다. 비교대상인 이만수가 KBO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로 불릴 선수인 것일 뿐.[25]
3.2. 수비[편집]
이대호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 타석 볼넷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박경완의 포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수비에서 프레이밍은 공을 잡으면서 미트를 스트라이크 존으로 끌어당기기보다는 받을 때 미트를 움직이지 않고 대신 미트 일부를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고 미트 끝이나 손바닥으로 공을 받아낸다.[26] 애매하게 걸치는 공들에 대해서 심판들이 확실하게 볼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 판정을 얻어내는 스타일이다. 이런 스타일의 프레이밍은 현재 한화의 최재훈이 주로 하며 매우 어렵다.[27]
리드 스타일은 정통적인 스타일로 결정구를 바깥쪽 낮은 쪽으로 잡는 볼배합을 한다. 결정구의 구질로는 슬라이더나 커브 같은 변화구를 선호한다. 바깥쪽 낮은 쪽을 결정구로 선택하는 이유로는 제구가 잘되면 스트라이크, 안되면 볼인데 프레이밍이 좋은 박경완이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의 애매한 공을 잘 건져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28] 바깥쪽 결정구를 던지기 전 타자가 홈플레이트 가까이 붙지 못하게 몸쪽 높은 공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볼배합을 기본으로 결정구까지 가는 볼배합이 상대의 허를 찌른다. 연속해서 같은 코스의 같은 구질을 요구하거나, 생각지 못한 몸쪽 아리랑볼을 요구하거나, 연속해서 멀리 빠지는 볼만 요구해서 타격페이스가 좋아 적극적인 선수의 페이스를 끊는 등 즉흥적이며 변칙적인 볼배합을 한다. 대체로 연속 볼이 나와도 결국 2스트라이크까지 카운트를 만들어 낸다.
4. 은퇴 이후[편집]
4.1.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경완/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프런트 경력[편집]
김용희 육성총괄이 1군 감독으로 취임하자 공석이 된 육성총괄로 선임되어 SK 와이번스 프런트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박경완이 계속 2군 감독으로 현장감각을 키울것으로 예상했으나,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후 나온 기사에 따르면 현장업무 뿐 아니라 프런트로서 해야 하는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14년 11월 김강민과의 FA 협상에서는 본인이 직접 김강민을 10시간 동안이나 가둬둔 끝에 소속팀 잔류를 이끌어냈다. 네이버 스포츠의 인터넷 라디오 라디오볼에 따르면 김강민에게 김성근 前 감독이 아버지같은 존재라면 박 총괄은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붕마마(붕가옹+마마)라는 새 별명까지 획득했다.
육성총괄이라는 보직이 눈에 띄는 자리는 아니다보니 근황을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미국에서 한 달간 대체 외국인 선수를 알아보러 다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1군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5. 김원형과의 관계[편집]
박경완을 언급하든, 김원형을 언급하든 간에 둘은 꼭 서로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이 나오는 존재이다. 두 사람은 같은 전주 출신으로 시작해서 전주 중앙초등학교, 전주 동중학교, 전주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왔고,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에 같이 입단했다. 입단 당시 김원형 덕에 박경완이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 대학 진학을 모색하다가 무산되면서 졸지에 붕 떠버린 박경완이 쌍방울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최고 유망주의 친구라서 볼 받아주고, 말동무 해달라는 팀의 뜻이 컸다고 한다.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의 어려운 모기업 사정으로 인해 박경완은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잠시 헤어지게 되었는데, 박경완이 타석에 들어서자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났음에도 차마 빈볼을 던질 수 없어 위협구만 연거푸 던지다 퇴장당한 사건은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1998년 7월 26일 경기.
2003년 FA 자격을 얻은 박경완이 SK 와이번스와 3년 19억 계약을 체결하면서 두 사람이 5년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박경완: "원형아!"
김원형: "이게 마지막 공이다"
박경완: "그래, 고맙다"
김원형: "수고했다"
박경완: "어... 고맙다!"
박경완의 은퇴식에서 두 배터리가 주고받은 대화
두 사람은 박경완이 현대에 있었던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5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은 팀에서 함께 지내며 21년차 역대 최장수 배터리로 활약했었고, 김원형이 은퇴할 때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본인 김원형보다 오히려 박경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최고의 절친으로 유명하다. 박경완이 김원형의 은퇴를 함께한 이후 김원형 또한 박경완의 은퇴식에 나와서 마지막까지 함께 하였다.[30]
2023년에는 박경완이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 1군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게 되면서 202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두 친구가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됐다. 근래에는 경기 전 워밍업 타임 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5월 24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을 앞두고 이호준과 이종범, 박경완 등 현역 시절 레전드 급 성적을 기록했던 LG 트윈스의 코치들이 배팅 케이지에 들어서 타격 연습을 했고 김원형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박경완이 날카로운 타격을 뽐내자 "아직 살아있네, 살아있어"라고 유쾌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6. 기록[편집]
- 통산 2,043경기 1,480안타 314홈런 995타점 913득점 타율 0.249 출루율 0.367
- 2000년 KBO 리그 MVP
- 2000년, 2004년 KBO 리그 홈런왕
- 1996년, 1998년, 2000년, 2007년 KBO 리그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 1998년, 2000년, 2007년, 2008년, 2010년 KBO 한국시리즈 우승
- 2001년 포수 최초 20-20 클럽 달성[31]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만큼 수비도 뛰어나지만, A급 타자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도 홈런, 출장 경기, 타점 등 많은 부문에서 순위권에 들어 있다.
통산 타율은 불과 .249로 많이 낮은 편이지만, 타율 대비 1할 이상 높은 출루율과 뛰어난 장타력으로 이를 극복했던 스타일이었다. 삼진개수 역대 1위(1605개)인 탓에 공갈포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박경완이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는 잘 주목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현대 야구에 맞는 출루형 타자다. 볼넷을 상당히 많이 얻어내는 타입이라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거의 0.1 이상 높은 편이었고, 때문에 통산 OPS 또한 0.825로 상당히 준수하다. 미국의 어느 단장이 딱 좋아할 포수. 실제로 통산 성적도 타율은 .249에 그치지만 통산 출루율은 .367로 6시즌 째 지명타자를 병행해가며 타격 스탯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홍성흔보다도 높다. 데뷔 초 2할 초반의 타율에 머물때도 출루율은 항상 3할을 넘겼다. 그리고 애초에 포수가 그 정도 타율에 그렇게 홈런을 쏟아냈다면 포수치고는 분명히 짐이 되지 않는 타율이기도 하고.
그가 기록했던 통산 성적 중 눈여겨볼 만한 것들을 살펴보자면,
- 2043경기 출장으로 역대 10위를 기록. 이 부문 1위인 박용택(2237경기)과는 194경기 차이가 난다.
- 통산 314홈런으로 역대 8위를 기록. 박경완보다 홈런을 많이 친 타자는 총 7명으로, 450개의 최정, 351개의 양준혁, 340개의 장종훈, 330개의 이호준, 328개의 심정수, 329개의 이범호이다. 1위는 이승엽.
- 통산 995타점으로 역대 19위를 기록. 그보다 더 많은 타점을 올린 우타자는 997타점의 정성훈, 1069타점의 홍성흔, 1145타점의 장종훈, 1084+타점의 최정, 1097타점의 김동주, 1081타점의 박재홍, 1030타점의 송지만, 1029타점의 심정수, 1003타점의 마해영, 1265타점의 이호준, 1113타점의 이대호, 1233타점의 김태균, 1127타점의 이범호 뿐이며, 좌타자는 1389타점의 양준혁, 소속팀에서 영구 결번이 된 1498타점의 이승엽, 1027타점의 장성호, 1031+타점의 최형우, 1185타점의 박용택 단 다섯 사람뿐이다. 심정수와 마해영의 기록은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2009년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 이후 재활 후에도 고질적 발목 문제가 생겨 다음해 1년간 활약했음에도[32] , 2011년부터 주기적인 발목 통증 재발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1000타점도 채우지 못했다. 2009년의 부상이 두고두고 아쉬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경완의 통산 타점 기록이 대단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앞선 경쟁자들이 모두 소속팀의 중심타자 역할을 할 때, 박경완은 수비 부담 문제로 하위타선에 자주 배치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 의외로 안타는 불과 1,480개. 정확성보다 장타를 중시한 스타일대로의 결과. 단 흠이라면 23시즌이나 뛰어서 한 해 평균 안타 개수는 64.3개다.[33]
- 통산 974볼넷으로 역대 5위를 기록. 아쉽게도 1위는 양준혁이 1278개를 기록한 탓에 기록 경신이 쉽지 않았다.
- 몸에 맞는 공 166개로 역대 단독 4위. 역대 1위는 같은 팀 후배 최정으로, 5년 연속으로 20사구를 맞는 페이스로 풀타임 10년만에 무려 156개를 맞고 2위를 찍는 기염을 토한 뒤, 2016년 4월 23일, 타이를 이루고, 4월 28일, 결국 단독 1위로 등극한다. 2위는 196개의 박석민이고 3위는 167개의 이대호이다. 그 아래로 5위 161개의 박종호, 6위 148개의 김한수, 7위 147개의 김동주 그 아래로 8위 145개의 송지만은 은퇴했다.
- 통산 OPS 0.825로 포수 역대 3위.[34]
- 0.118로 3천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 기준 순출루율[35] 역대 1위.
- 약간 특이한 기록으로는 안타 중 장타의 비율이 40.6%로 역대 3위. 안타 10개 중 4개가 2루타 이상이었다는 뜻. 박경완보다 상위에 있는 선수는 44.5%의 이승엽과 41.3%의 조경환[36] 밖에 없다. 44.1%의 카림 가르시아, 42.3%의 펠릭스 호세, 41.2%의 타이론 우즈 등이 있으나 통산 성적 집계 기준인 3000타석을 채우지 못해 샘플이 모자라며, 조경환도 3006타석으로 아슬아슬하게 넘긴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의 기준처럼 3000타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승엽에 이은 2위다.[37]
- 크보에서 유일무이한 20-20클럽 포수 가입자이다. 심지어 이 시즌을 전후로는 한 번도 1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적도 없다. 2년 전 이반 로드리게스가 포수 최초로 20-20을 기록한 이후 얼마 안 돼서 나온 기록이라서 더 놀라운 기록이다.[38]
- 불명예 기록으로는 통산 삼진 2위가 있는데, 무려 1,605개다. 물론 통산 삼진 2위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경기에 출전해야하고, 또 많은 타석을 소화했다는 의미이므로 일면 불명예스러운 기록만은 아니다. 또한 박경완과 비슷한 유형의 장타자 대부분이 삼진 갯수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39] 이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는 셋. 포수후배 강민호와 SK 후배 최정, 역대 최연소로 1,000삼진을 달성한 오지환. 강민호와 최정은 워낙 어린 나이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스윙도 커서 삼진이 쌓인 케이스라면, 오지환은 홈런타자가 아님에도 한시즌 부상없이 뛰면 140개씩 적립하는 어마어마한 삼진 페이스로 추격중이었다. 2023년 6월 8일 최정이 박경완의 통산 삼진 기록을 경신하였다.
-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도 성적이 저조한 편이다. 출범 이래 2021년 까지 포스트시즌에서 1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들 기준으로 타율과 장타율, OPS가 전체 꼴찌이며, 출루율 또한 뒤에서 9위이다.[40] 세이버 스탯도 영 좋지 않다. wRC+는 44.6으로 이 역시 뒤에서 2위[41] , sWAR*은 정확히 0.00으로 뒤에서 9위이다.
- 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보내기 번트도 통산 178개로 홈런과 비슷한 순위인 역대 7위에 올라있다. 번트도 누적기록이기 때문에 상위에 랭크된 선수는 모두 많은 경기에 출장한 유명 선수들이지만, 10위권은 박한이를 제외하면 모두 박경완과 성적이 꽤 차이나는 선수들이다. 번트 169개로 박경완에 이어 8위인 박한이도 wOBA로 보면 0.361로 0.362인 박경완과 거의 같지만, 박경완보다 1400회나 많은 타석에 섰으니 타석 대비 번트 횟수는 박경완과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애초에 둘은 번트 대는 스타일이 달라서 직접적 비교는 어렵다 시즌 OPS가 1.0이 넘는 선수는 보통 해당시즌 번트를 거의 대지 않으나[42] 박경완은 1.0이 넘었던 00년, 04년에도 각각 6개의 번트를 댔고, OPS 1.0이상 시즌에 저보다 더 많은 번트를 댄 선수는 8개의 85년 장효조밖에 없다. 통산 번트가 저리 많은 것은 박경완이 특별히 번트를 잘 대서라기보다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번트를 선호하는 김성근, 김재박, 조범현과 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식 스몰볼 흉내가 아닌 통계를 제대로 활용하는 감독과 선수 생활을 했다면 저렇게 많은 번트를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7. 박경완에 대한 언사[편집]
박경완은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 2009년 OSEN과의 인터뷰 中
박경완 같은 베테랑 선수가 앉으면 투수들은 ‘저 선배만 믿고 던지면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박경완은 오랜 시간 포수를 하면서 많은 타자들을 상대했고 누구보다 각 선수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타 구단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효과적인 리드를 할 수 있다. 포수는 블로킹을 하면서 투수들의 볼에 자주 맞는데 박경완은 공에 맞아도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 아픈 티를 내면 투수들은 원바운드볼(유인구)를 못 던지고 그럼 타자와의 싸움에서 진다. 그런 의미에서 박경완은 정말 좋은 포수다.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 2010년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 中
박경완이 왜 최고였는지 아는가? 블로킹도, 도루저지도 중요하지만 박경완은 전력분석과는 반대로 나왔다. 전력분석을 역으로 찌르는 타자에게 다시 역으로 승부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타자를 완벽에 가깝게 분석했고, 실전에서 임기응변능력을 발휘했다. 아웃의 확률을 높였다. 이는 소위 말하는 볼 배합 혹은 투수리드. 박경완은 이 분야의 국내 1인자였다.
데뷔 초반에는 한국의 위대한 포수 박경완과, 경력이 쌓인 지금은 야디에르 몰리나와 호흡을 맞추다니 정말 행운이라 생각한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투수 김광현, 2020년 메이저리그 현지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 中
박경완의 기록 중에서 무엇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건 팀을 다섯 차례 우승으로 이끈 능력이다. 박경완은 포수로서의 리드, 타자 대처 능력, 포구 능력, 센스 등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다. 두 차례의 홈런왕에서 보여주듯이 타격에서도 빼어나 앞으로 공수 양면에서 그를 능가할 포수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 2021년 회고록 "한국 프로야구 40년, 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 中 (각 포지션 별 베스트 선수 선정에서)
(실점) 위기에서 투·포수가 같은 방향성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데, (박)경완이의 사인에 두 번 고개를 흔든 기억이 없었다. 그만큼 나를 잘 알았던 포수다.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 2023년 일간스포츠 포수의 신 박경완 편 中
제가 포수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일 어려웠던 포수가 한 명이 있어요. SK에 있던 박경완 선배인데 이 선배의 볼 배합을 모르겠는 거예요 박경완 선배는 제가 노리고 있는 거를 안 던져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가 딱 하나 느낀 게 있어요. 제가 노리고 있는 것을 볼로 던지더라고요. 그러고는 제 타이밍을 봐요. 내가 직구 타이밍에 딱 들어가는지. 변화구 타이밍을 잡는지. 바깥쪽 볼로 던지면서 그걸 딱 보더라고요. 그걸 제가 순간 캐치를 했어요. 이렇게 나를 판단하는구나
8. 여담[편집]
-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신고선수[43] 데뷔하였다. 장종훈과 마찬가지로 연습생으로 시작해서 프로 정상급의 선수가 된 케이스. 이후 1997년 9억 원이라는 당시 최고의 거금[44] 에 현대 유니콘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고, FA를 선언하여 2003년에 SK로 이적한 후 SK 와이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 SK 왕조 시절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가 이만수냐 박경완이냐에 대해 뜨거운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고의 포수로서 이만수를 고르는 쪽은 주로 압도적인 타격을 근거로 내세운 반면 박경완을 고르는 쪽은 포수 리드와 수비적인 면을 내세웠다. 하지만 포수 리드는 세이버매트릭스에서는 수치화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다루지 못 하는 영역이고(당장 2014년 팬그래프에서만 하더라도 포수에 대한 스탯 활용에 대한 접근은 최근(그 시점 기준 3년 정도)에 와서야 겨우 시작하는 수준이라고 하였다.[45] 반면 타격 지표로 넘어가면 wRC+에서 이만수가 159, 박경완이 122로 그 차이가 매우 커진다. 게다가 골든글러브 수상 횟수에서도 4회에 불과한 박경완은 5회의 이만수에게 밀리는데, 이만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원년에 데뷔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몇년 더 일찍 프로야구가 생겼다면 이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흔히 "물로켓", "가짜야구"등의 멸칭이 붙던 초창기 프로야구에서 세운 기록임을 감안해야 하고, 누적 성적은 박경완이 더 좋다. 누적의 박경완, 비율의 이만수라 할 수 있을 듯.[46]
-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증세가 있다고 한다.[47][48] 게다가 포수라는 포지션에서 비롯된 중압감이 심해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생긴 불면증이 십수년째 계속되었고, 운동선수에게 수면부족은 치명적이기에 치료란 치료를 다 받아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수면제를 복용해야 간신히 새벽 5시경에 잠들었는데, 그조차 숙면이 아닌 선잠이었다고. 김성근 감독은 이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박경완의 오전훈련 및 특타를 열외시켜주며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특히 연타석 홈런을 친 그날 불면증으로 잠을 설치고 비몽사몽간에 경기를 나섰는데도 대기록을 세웠다. 최악의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클래스를 보여줬다는 것은 참...현대 시절부터 탈모의 징후가 보인다.
- 200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을 시절, 현대 유니콘스에 남는 조건으로 당시로써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던 7년 총 42억을 요청한 바 있다.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리던 현대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고, 시장에 나온 후 SK 와이번스와 3년 총 19억에 계약, 본인이 원했던 계약액, 계약기간보다 훨씬 적은 금액에 계약했던 바 있다. 본래부터 현대를 떠나려고 했던건지 일부러 크게 부르고 계약하면 좋고 아니면 타팀으로 갈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현대 단장이던 김용휘와 선수 박경완 두 사람만 알고 있을 뿐이다.
- 포수용 헬멧과 일반 마스크를 분리해서 착용하는 다른 포수들과 달리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이후부터 줄곧 아이스하키 골리(골키퍼)들이 쓰는 마스크와 유사한 헬멧 일체형 마스크를 썼다. 자세한 사연은 야구 헬멧 항목 참조.
1. 로또 383회 당첨자 꿈
작은 시골마을 은행출장소 같은데, 출근을 할려고 택시를 타고 가서 요금을 낼려고 지갑을 보니
만원권 복사본 한 장만 있다. 기사를 보니 SK 와이번스 박경완과 부인이 택시를 하는 모양이다.
계좌번호를 적어주면 직장에 가서 입금시켜 주겠다고 하니 박경완이 전과조회를 한 후 입금해야 한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집에서 삶아온 닭고기를 먹는데, 꼭 소고기 맛이다.
2. 네이버 지식인 태몽 사례
수박 태몽 해석 부탁드려요...내공 드려요
와이프가 직접 꾼 꿈이라는데...
프로야구 SK 포수 박경완 선수가 초음파를 봐 줬는데,
아기가 딸이고, 아기 배 모양이 수박 모양이라 했답니다.
박경완 선수가 "배가 수박 모양이면 아기가 아주 튼튼한 거다"라고 했다네요.
해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게 태몽일 수도 있나요?
저희 부부도, 그리고 주변에도 어느 한사람 태몽 꾼 사람이 없어서요.
아! 와이프는 임신 4개월이고 저희는 결혼한 지 2년 안됐고 첫 아이입니다.
참!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모릅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 없이 다 좋고요...
혹시 아들인지 딸인지도 알 수 있나요?
- 자신이 선수 생활동안 겪은 제구 안 되는 투수로 세 명을 꼽았는데 그 중 한 명이 고효준, 나머지 한 명은 김영수였다고 한다.# 프로경력만 20년 이상 되는 포수 입장에서도 공을 받기 힘들었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 둘의 답없는 제구력은 유독 돋보였던 모양이다.[50] 여담으로 제구 안되는 좌완투수였던 김영수가 방출되자 한시름 놓았는데 그와 비슷한 타입인 고효준이 1군에 자리잡는 바람에 제구 안되는 투수 둘을 연이어서 상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현역시절 레전드 포수였던 것과는 별개로 팬 서비스는 좋지 못한 편이다. 원정 경기 숙소나 홈 경기 출근길에 싸인 요청을 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대다수. 팬 서비스가 좋은 구단 중 하나인 SK 와이번스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싸인 받기 어려운 인물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SNS에서도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봐도 박경완의 사인이나 박경완과 같이 찍은 사진은 찾기 어렵다. 현역에서 물러나 코치가 된 지금도 팬서비스는 정말로 최악이라고 한다.[51] 그런데 2018년 어린이날 한정으로 어린이 팬에게 싸인을 해주고 모자도 선물로 줬다는 얘기도 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몇 번 이름이 언급된 적 있는데, 쌍방울 시절 팀 후배였던 오상민이 술회하기를, 당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한다. 박경완, 오상민, 김원형, 최정환[52] 이렇게 당구시합을 하는데 꼴등을 하다가 항상 1등으로 게임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조용훈의 일화로, 과거 SK와의 경기에서 상대 타자였던 박경완에게 몸쪽 꽉 찬 속구를 던졌으나 홈런을 맞자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삭발하고 혼잣말을 하던 모습이 기자에게 알려지면서 조감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 시절 팀 후배였던 조용준이[53] 밝힌 바에 따르면, 과거 장민석이 투수였던 시절 대선배 포수였던 장광호가 낸 싸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싸인을 거절한 적 있었는데, 이를 죄다 보고 있던 박경완이 공수교대 후 덕아웃 한편으로 장민석을 데려가 불꽃 싸대기를 날렸다고 한다.
-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야구인들 중에서 당구 실력이 꽤나 뛰어난 편에 속한다. 평소에도 300점 정도 나올 정도로 당구를 꽤 잘 치는 편이며# 실제로도 SK 선수 시절에도 인천 시내에 위치한 당구장에서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과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이 막히고 쌍방울에 신고선수로 들어갈지 고민하던 때에도 야구를 그만두면 당구장을 차릴 생각을 했다고 한다.
- 가수 G.NA의 노래 Black & White에서 너와 나~ 블랙엔화이트~ 이 부분이 너와나~ 박경와이~로 들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야갤 등지에서 지나와 박경완을 합성한 짤방이 떠돌아다닌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