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군/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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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한국[편집]
2. 일본[편집]
- 원칙적으로는 천황만이 군주지만 가마쿠라 시대 이후 유명무실한 존재였기 때문에 일본 막부의 쇼군도 전제군주자로 치부한다.
3. 중국[편집]
4. 베트남[편집]
5. 류큐[편집]
6. 태국[편집]
7. 캄보디아[편집]
8. 참파[편집]
9. 몽골[편집]
10. 중앙아시아[편집]
11. 인도[편집]
12. 네팔[편집]
13. 부탄[편집]
14. 미얀마[34][편집]
- 버마족 왕조
- 소수민족 왕조
15. 말레이시아[편집]
16. 이란[편집]
17. 아프가니스탄[편집]
18. 요르단[편집]
19. 이라크[편집]
20. 이슬람 제국[편집]
21. 오만[편집]
22. 이스라엘[편집]
23. 튀르키예[편집]
24. 아르메니아[편집]
25. 조지아[편집]
26. 관련 문서[편집]
- 전성기/목록/국가: 그 나라의 전성기와 명군의 등장 시기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다만 명군이 나와서 전성기가 된 것도 있고, 전성기 타이밍에 왕이 되어 명군으로 포장된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1] 미얀마는 버마족 못지않게 소수민족의 비중과 세력이 상당하고 차별성을 지니기에 버마족 왕조와 소수민족 왕조를 따로 다루도록 한다.[2] 노비 출신(몰락 왕족).[3] 말이 필요없는 한국사 역사상 최대, 최고의 정복군주.[4] 비록 말기에 내전이 터져 위태로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진 국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에 명군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암군으로도 볼 수 있고.[5] 말년에는 암군으로 전락.[6] 신라와의 전쟁에서 전사.[7] 892년 또는 889년에 이미 칭왕하였으나 정식 후백제 건국은 900년에 이뤄졌다.[8] 한국의 유일한 사생아 출신의 왕[9] 한국사 최후의 명군이자 성군[10] 다만 일본 제국 시기 덴노라서 한국 등 피지배국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11] 주읍 군주 및 노 공작[12] 전씨의 찬탈 이후[13] 노예 출신[14] 암군들이 넘쳐나는 사마씨 왕조의 유일한 명군이니까 문제다. 결국 왕돈의 난을 다 진압한 뒤 병에 걸려 사망했다.[15] 폭군들이 넘쳐나는 유송의 유일한 명군이니까 문제다. 결국 아들에게 시해당했다.[16] 한족 최후의 명군이자 성군.[17] 다만 한족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명나라의 멸망 원인을 제공한 원흉으로 취급되며, 만주족 사이에서도 후손인 자신들이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부정적 재평가를 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18] 다만 말년에 암군으로 타락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19] 재위 중 특별한 업적은 없지만 베트남 식민통치시기인 당시에 몸소 프랑스에 항거해 3년이나 맞서 싸운 점으로 인해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20] 다만 전설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21] 다만 전설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22] 본래 신하였으며 쿠데타가 아닌 양위로 왕위에 올랐다.[23] 에이소 왕조를 번영시켰다. 다만 그의 죽음 이후 류큐는 3개로 쪼개진다.[24] 류큐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인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성립했다.[25] 류큐를 통일한 명군 중 명군. 다만 류큐 왕국의 1대 왕은 쇼하시가 옹립한 그의 아버지였기에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착각하기도 한다.[26] 류큐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힌다.[27] 고종(대한제국) 등 다른 망국의 마지막 군주와 다르게 이하 후유 등의 역사학자들에게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왕국 시절 쇼타이 왕의 신하였던 기샤바 조겐의 류큐견문록만 봐도 알 수 있다.[28] 다만 전설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29] '아유타야 왕조'라고 안 부르는 이유는 아유타야 왕국 문서 참고[30] 기원전 220년대 중 한 해로 추정된다.[31] 일례로 만교(萬敎) 서미트는 유명하다.[32] 단 재위 초반부 한정.[33] 1대 우겐 왕축에서부터 현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모두가 명군이자 성군이다. 사실상 유송과 북한의 백두혈통과는 완벽한 안티테제. 자세한 것은 왕축 왕조항목 참조[34] 미얀마는 버마족 못지않게 소수민족의 비중과 세력이 상당하고 차별성을 지니기에 버마족 왕조와 소수민족 왕조를 따로 다루도록 한다.[35] 소오 루라고 부르며 버간의 2대 황제이다.[36] 챤치타의 어릴 적 소꿉친구였다고 한다.[37] 짠싯타라고도 불렸으며 버간 왕조의 3대 황제였는데 초대 황제 아노야타의 친구였으며 아노야타의 아들[35] 이 반란군에 살해당하자 난을 진압하고 아노야타의 아내이자 태후였던 아가 마떼비[36] 를 황후로 맞아 재혼했다.[38] 바고 왕국이라고도 부르며 몬족이 세운 국가였다.[39] 인생이 파란만장한데 빈농에다가 소년소녀가장 출신이며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여러 경쟁자들과 싸우면서 위기도 여러차례 겪을 정도로 험난한 젊은시절을 보냈다. 이후 왕이 된 후에 버간 왕조의 버마족 중심 법체계를 벗어나 몬족 실정에 맞는 와레루 법전을 만들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체계적이고 시대를 앞선 법으로 평가받으며 영미법과 더불어 현재의 미얀마 헌법에 꽤나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40] 므락우 왕국이라고도 부르며 아라칸족이 세운 국가였다.[41] 위에서 말한 민 바지의 아들로 한 일화에서 싯따웅 사원을 지은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사원을 지었는데 그 사원이 꼬따웅 사원이며 이것때문에 하늘이 아버지를 이겨먹으려는 아들에 분노해서 천벌으로 번개를 내려 사원을 부쉈다는 말이 있는데 일설로는 2차 세계 대전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일본군의 전쟁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설도 있다.[42] 다만 전설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43] 업적과 별개로 폭군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기록이 부족한지라 폭군이라는 평가에도 논란이 많다.[44] 암군들이 넘쳐나는 카자르 왕조의 유일한 명군이니까 문제다.[45] 1509년 콘스탄티노플 지진 이전까지 한정이나 치세 막바지의 일이므로 명군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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