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레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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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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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클레 2세
기오르기 12세
-
-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3대 군주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 알렉산드레 1세
제호
한국어
알렉산드레 1세
조지아어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라틴어
Alexander I
가족
콘스탄틴 1세(아버지)
나티아 아미레지비(어머니)
기오르기(동생)
바그라트(동생)
두란두크트(첫째 아내)
타마르(둘째 아내)
바크탕 4세(장남)
디미트리오스(차남)
기오르기 8세(삼남)
다비트(사남)
자알(오남)
바그라티오니(딸)
생몰 년도
1386년 ~ 1445년 8월 26일에서 1446년 3월 7일 사이
재위 기간
1412년 ~ 1442년
서명
파일:알렉산드레 1세 서명.svg}}}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3대 군주.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져가던 나라를 성공적으로 재건해 대왕(დიდი)으로 일컬어졌으나 3국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2대 군주 콘스탄틴 1세와 조지아 공작 쿠츠나 이미레지비의 딸 나티아 아미레지비의 장남이다. 동생으로 기오르기, 바그라트가 있었다. 1412년 아버지가 카라 코윤루와의 전투에서 생포된 뒤 처형된 후 왕위에 올랐다. 그는 먼저 조지아에 깊숙히 침입한 카라 코윤루를 격파하여 조자아에서 몰아냈다. 이후 1412년에서 1415년 사이에 밍그렐리아의 다디아니, 삼츠케의 자켈리, 압하지야의 쉬르바시제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그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냈다.

그렇게 왕권을 드높이고 평화를 보장받은 뒤, 그는 외세의 오랜 침략으로 황폐화된 조지아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므츠헤타를 포함한 많은 도시, 수도원 및 대성당을 재건했으며, 이에 따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또한 조지아 정교회 조직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에 세워진 조지아 수도원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렇지만 내치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1431년 로우리 지역을 공략하고 1434년 스바네티의 종주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1435년 오르벨 왕조의 베슈켄 2세가 수니크에 자리를 잡고 있던 카라 코윤루 족을 토벌하도록 격려했고, 베슈켄 2세가 승리를 거두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로우리를 영지로 하사했다. 또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였으며, 티무르 제국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6만 조지아인을 받아들이는 등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411년경 오르벨 왕조의 군주 베슈켄 2세의 딸 두란두크트와 결혼하여 두 아들 바크탕 4세, 디미트리오스, 딸 바그라티오니[1]를 낳았다. 1415년경 기오르기 7세에 의해 남부 카르틀리의 솜히티로 유배된 뒤 15년간 그곳에 억류되었던 디미트리오스[2]를 풀어주고, 알렉산드레 1세(이메레티)의 딸 타마르를 두번째 아내로 삼았다. 그는 타마르와의 사이에서 기오르기 8세, 다비트, 자알을 낳았다.

그는 강력한 귀족들이 각지에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중앙 정부의 명령에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을 해결하고자 여러 귀족을 숙청했다. 이후 장남 바크탕 4세를 카헤티, 차남 디미트리오스를 이메레티, 그리고 3남 기오르기 8세를 카르틀리의 공동 통치자로 임명했다. 또한 장인인 디미트리오스를 이메레티의 에리스타비(조지아의 지역 최고 행정관)로 삼았지만 실권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이를 통해 바그라티온 왕조가 조지아 전역을 통제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1440년, 카라 코윤루의 자한 샤의 공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자한 샤는 그해 3월에 2만 병력을 이끌고 조지아를 공격해 삼쉬빌데 시를 파괴하고 수도 트빌리시를 약탈했다. 카라 코윤루족은 수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하고 조지아에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한 뒤 타브리즈로 귀환했다. 이 일로 그의 권위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그가 각지에 아들들을 공동 통치자로 배치한 조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그들은 무제한적인 왕권을 마음껏 사용하면서도 아버지의 지시를 그다지 따르지 않았고, 더 나아가 경쟁자를 제치고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상황이 이처럼 좋지 않게 흘러가자, 그는 자기가 살아있을 때 왕위 승계를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1442년 장남 바크탕 4세에게 양위한 뒤 아타나시오스라는 이름으로 수도원 서약을 하고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1445년 8월 26일에서 1446년 3월 7일 사이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시도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그의 아들들은 조지아의 패권을 놓고 내전을 벌였고, 조지아는 그 여파로 이메레티 왕국, 카헤티 왕국, 카르틀리 왕국으로 삼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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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훗날 트라페준타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4세의 아내가 되었다.[2] 1차 이메레티 왕국의 초대 군주 알렉산드레 1세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