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오르기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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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클라제티 공작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쇼트 1세
바그라트 1세(타오-클라제티)
아다르나세 2세
과람
타오 공작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다비트 1세
구르겐 1세(타오)
아다르나세 3세
아쇼트 2세
타오 공작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구르겐 2세
바그라트 1세
아쇼트 3세
아다르나세 4세
타오 공작
제9대
제10대
제11대
-
바그라트 2세(타오)
다비트 3세
바그라트 3세
-
클라제티 공작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숨바트 1세(클라제티)
다비트 1세(클라제티)
바그라트 1세(클라제티)
숨바트 2세
클라제티 공작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다비트 2세(클라제티)
바그라트 2세(클라제티)
숨바트 3세
바그라트 3세(클라제티)
이베리아 국왕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다르나세
다비트 2세
숨바트 1세
바그라트 2세
이베리아 국왕
제5대
-
-
-
구르겐 1세
-
-
-
조지아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바그라트 3세
기오르기 1세
바그라트 4세
기오르기 2세
조지아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다비트 4세
데메트리우스 1세
다비트 5세
데메트리우스 1세
조지아 왕국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기오르기 3세
타마르
기오르기 4세
루수단
조지아 왕국
제13대
제14대
-
-
다비트 6세
다비트 6세
다비트 7세
-
-
서부 조지아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다비트 6세
콘스탄틴 1세(서부 조지아)
미켈(서부 조지아)
바그라트 1세(서부 조지아)
동부 조지아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다비트 7세
데메트리우스 2세
바흐탄그 2세
다비트 8세
동부 조지아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기오르기 5세
바흐탄그 3세
다비트 8세
기오르기 6세
동부 조지아 왕국
제9대
-
-
-
기오르기 5세
-
-
-
1차 통합 조지아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
기오르기 5세
다비트 9세
바그라트 5세
-
1차 이메레티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
알렉산드레 1세(이메레티)
기오르기 1세(이메레티)
콘스탄틴 2세(이메레티)
-
2차 동부 조지아 왕국
초대
2대
-
-
바그라트 5세
기오르기 7세
-
-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기오르기 7세
콘스탄틴 1세
알렉산드레 1세
바흐탄그 4세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기오르기 8세
바그라트 6세
알렉산드레 2세
콘스탄틴 2세
2차 이메레티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알렉산드레 2세
바그라트 3세(이메레티)
기오르기 2세(이메레티)
레반(이메레티)
2차 이메레티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로스톰(이메레티)
바그라트 4세(이메레티)
기오르기 3세(이메레티)
알렉산드레 3세
2차 이메레티 왕국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바그라트 5세(이메레티)
바흐탄그 츠추나슈빌리
아르칠리(이메레티)
디미트리오스 구리엘리
2차 이메레티 왕국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기오르기 4세(이메레티)
알렉산드레 4세
기오르기 5세(이메레티)
시몬(이메레티)
2차 이메레티 왕국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마미아 구리엘리
기오르기 6세(이메레티)
기오르기 7세(이메레티)
기오르기 8세(이메레티)
2차 이메레티 왕국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알렉산드레 5세
기오르기 9세(이메레티)
마무카
솔로몬 1세
2차 이메레티 왕국
제25대
제26대
제27대
-
테이무라즈(이메레티)
다비트 2세(이메레티)
솔로몬 2세
-
카헤티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기오르기 8세
알렉산드레 1세(카헤티)
기오르기 2세(카헤티)
레반(카헤티)
카헤티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알렉산드레 2세(카헤티)
다비트 1세(카헤티)
콘스탄틴 1세(카헤티)
테이무라즈 1세
카헤티 왕국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아르칠리(이메레티)
에레클레 1세
다비트 2세(카헤티)
콘스탄틴 2세(카헤티)
카헤티 왕국
제13대
제14대
-
-
테이무라즈 2세
타마르 2세
에레클레 2세
-
-
카르틀리 왕국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콘스탄틴 2세
다비트 10세
기오르기 9세
루아르사브 1세
카르틀리 왕국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시몬 1세
다비트 11세
기오르기 10세
루아르사브 2세
카르틀리 왕국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바그라트 7세
시몬 2세
로스톰
바흐탄그 5세
카르틀리 왕국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기오르기 11세
에레클레 1세
카이호스로(카르틀리)
예세
카르틀리 왕국
제17대
제18대
-
-
바흐탄그 6세
테이무라즈 2세
타마르 2세
-
-
카헤티와 카르틀리 연합 왕국
초대
제2대
-
-
에레클레 2세
기오르기 12세
-
-


카헤티-카르틀리 연합 왕국 2대 군주
გიორგი | 기오르기 12세

파일:기오르기 12세.jpg

제호
한국어
기오르기 12세
조지아어
გიორგი XII
라틴어
George XII
가족
헤라클리오스 2세(아버지)
안나 이바시제(어머니)
타마르(누이)
케테반 안드로니카슈빌리(첫째 아내)
미리암 치치슈빌리(둘째 아내)
다비트(장남)
이오안(차남)
루아르사브(삼남)
바그라트(사남)
솔로몬(오남)
테이무라즈(육남)
미하일(칠남)
지브라엘(팔남)
이오세브(구남)
스피리돈(십남)
오크로피르(십일남)
스비메온(십이남)
이라클리(십삼남)
바르바라(장녀)
소피오(차녀)
니노(삼녀)
살로메(사녀)
가야나(오녀)
타마르(육녀)
아나(칠녀)
일리아(팔녀)
아나(구녀)
생몰 년도
1746년 11월 10일 ~ 1800년 12월 28일
재위 기간
1798년 ~ 1800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카헤티-카르틀리 연합 왕국 2대이자 마지막 군주.

2. 생애[편집]


카헤티-카르틀리 연합 왕국 초대 군주 헤라클리오스 2세와 안나 아바시제의 장남이다. 여동생으로 타마르가 있었으며, 아버지가 다른 아내 케테반 음하이트제, 다레얀 다디아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형제 9남 10녀가 있었다. 그는 1760년대부터 공직에 참여해 아버지를 보좌했다. 1795년 카자르 왕조아가 모하마드 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트빌리시를 재건하는 사업에 도맡았다. 그는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궁전을 복원하기 위해 세금을 도입했다. 하지만 헤라클리오스 2세는 모인 돈을 교회 복구에 썼다.

다레얀 다디아니 왕비는 그가 후계자로 지명된 것에 반감을 품고 헤라클리오스 2세에게 자기 아들들 중에서 후계자를 세우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헤라클리오스 2세는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1798년 1월 11일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다레얀 다디아니 왕비와 이울론, 알렉산드레 왕자는 그의 즉위에 반발했다. 그들은 보르찰로, 카라바흐, 샴샤딜 등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을 점거하고 새 왕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이에 대응하여 아버지가 창설했던 "의무군"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한편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정교회를 전파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그는 아버지의 친 러시아 정책을 이어갔다. 러시아에 러시아군을 조지아에 진주시켜달라고 요청했으며, 조지아인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발부해달라고 청했다.

1799년 4월, 파벨 1세는 카헤티-카르틀리 연합 왕국과 후원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가을에 러시아군을 파견했다. 1799년 11월 26일 러시아군이 트빌리시에 진주하여 그의 영접을 받았다. 1800년 6월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조지아 사절단은 시민권에 관한 문서 초안을 러시아 외교부에 넘겼다. 그는 이 문서에서 자신의 후손, 성직자, 귀족 및 그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 제국의 시민권을 받아들이고 러시아인이 하는 모든 것을 신성하게 수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장남 다비트가 왕위를 이어받도록 해주기를 희망했다.

1800년 9월 23일, 또다른 러시아군 연대가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그해 11월 7일, 라자레프 장군이 이끄는 2개의 러시아 연대가 이오리 강 유역의 카카베티 마을 인근에서 조지아군과 함께 알렉산드레 왕자와 연합한 아바르 칸의 아제르바이잔군을 격멸했다. 이후 중병에 걸린 그는 라자레프 장군과 러시아 정부에서 파견한 관료들이 조지아의 권력을 장악하는 걸 용인했다. 1800년 11월 14일, 파벨 1세는 조지아 사절들에게 조지아인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발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의 아들 다비트를 왕으로 인정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800년 12월 28일 그가 사망한 후, 파벨 1세는 조지아를 러시아에 병합하고 다비트를 러시아에 소속된 조지아 속주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1801년 1월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파벨 1세의 카헤티-카르틀리 왕국 합병에 관한 선언문이 공포되었고, 그해 2월 중순 트빌리시에서도 발표되었다.

1801년 3월 12일 파벨 1세가 암살된 뒤 새 차르에 오른 알렉산드르 1세는 조지아를 러시아에 합류시키는 문제를 재고려했다. 그들은 조지아가 중동에서 러시아의 진출에 중요한 교두보임을 고려하여 카르틀리와 카헤티의 자치 행정을 폐지하고 러시아 행정기구를 도입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정에 따라 기오르기 12세의 장남 다비트는 축출되었고, 라자레프 장군이 조지아 주지사로 임명되었다. 러시아의 결정에 분노한 다레얀 다디아니 왕비와 자식들은 조지아의 러시아 병합과 기오르기 12세의 장남 다비트 12세의 권력 승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다. 이중 알렉산드레 왕자는 이란과 오스만 제국을 오가며 30여 년간 러시아를 상대로 항전했으나 끝내 진압당했다.

기오르기 12세는 1766년경 케테반 안드로니카슈빌리와 결혼하여 다비트, 이오안, 루아르사브, 바그라트, 솔로몬, 테이무라즈 등 6명의 아들과 바르바라, 소피오, 니노, 살로메, 가야나 등 5명의 딸을 낳았다. 1783년 미리암 치치슈빌리와 재혼하여 미하일, 지브라엘, 이오세브, 스피리돈, 오크로피르, 스비메온, 이라클리 등 7명의 아들과 타마르, 아나, 일리아, 아나 등 4명의 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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