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반(카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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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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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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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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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2세(클라제티)
바그라트 2세(클라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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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
기오르기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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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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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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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조지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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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제8대
기오르기 5세
바흐탄그 3세
다비트 8세
기오르기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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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오르기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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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오르기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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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동부 조지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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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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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트 5세
기오르기 7세
-
-
2차 통합 조지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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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아 구리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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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오르기 8세(이메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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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헤티 왕국 4대 군주
ლევანი | 레반

파일:레반(카헤티).jpg

제호
한국어
레반
조지아어
ლევანი
라틴어
Levan
가족
기오르기 2세(아버지)
엘레네 이루바키제-촐로카슈빌리(어머니)
흐바람제(누이)
마리암(누이)
티나틴 구리엘리(첫째 아내)
카말 카라무셀의 딸(둘째 아내)
알렉산드레 2세(장남)
예세(차남)
기오르기(삼남)
니콜로즈(사남)
엘-미르자(오남)
콘스탄틴(육남)
바크탕(칠남)
에레클(팔남)
바그라트(구남)
다비트(십남)
테이무라즈(십일남)
카이호스로프(십이남)
엘레네(장녀)
네스탄-다레얀(차녀)
카타반(삼녀)
테킬(사녀)
생몰 년도
1504년 ~ 1578년
재위 기간
1518년 ~ 1574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카헤티 왕국 4대 군주.

2. 생애[편집]


카헤티 왕국 3대 군주 기오르기 2세와 엘레네 이루바키제-촐로카슈빌리의 아들이다. 누이로 흐바람제, 마리암이 있었다. 1513년 아버지가 카르틀리 왕국을 침략했다가 므츠헤타 인근에서 적군에게 체포된 후 얼마 안가 사망했을 때, 그는 겨우 9살이었다. 카르틀리 국왕 다비트 10세는 이 때를 틈타 침략을 감행해 카헤티 왕국을 병합했다. 그는 충성스러운 귀족들과 함께 산에 숨어서 몇년 간 은신했다.

1518년, 사파비 제국이스마일 1세가 카르틀리 왕국을 침공한 틈을 타 모습을 드러내 스스로 카헤티 왕을 칭했다. 다비트 10세는 이를 막고자 군대를 파견했지만, 그는 2년간 항전한 끝에 격파했다. 결국 1520년, 다비트 10세는 그와 평화 협약을 맺고 카헤티 왕위를 인정했다. 그 후 동부 조지아의 고지대 부족들을 복종시키고 타르쿠의 삼칼을 역임하고 있던 카말 카라무셀과 친선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사파비 제국이스마일 1세타흐마스프 1세에게 경의를 표하고 충실한 가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1551년과 1555년에 남부 코카서스 일대를 복종시키기 위한 사파비 제국의 원정에 보조병들을 이끌고 동행하기도 했다.

1555년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아마사 조약이 체결되었다. 카헤티 왕국은 이 조약에 따라 사파비 왕조의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그는 둘째 아들 예세를 사파비 왕조에 인질로 보냈다. 제시는 이사 칸으로 개명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해 샤카 총독을 맡았다. 1559년 카르틀리 왕국의 시몬 1세와 다우드 칸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시몬 1세는 그의 사위였고, 다우드 칸은 사파비 제국의 보호를 받았다. 양쪽 모두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어느 쪽도 돕지 않고 중립을 체택했다. 한편, 그는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외교 관계를 맺고자 했다. 1563년 이반 4세에게 사절을 보내 러시아 파견단을 카헤티 왕국에 주둔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사파비 제국이 압력을 가하자, 그는 1571년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러시아군을 자국에서 철수하게 했다.

당시 이메레티 왕국카르틀리 왕국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지만, 카헤티 왕국은 56년에 이르는 긴 통치를 구가하는 그의 치세 아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카헤티의 수도였던 그레미는 문화 및 예술의 집산지로서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수많은 페르시아 상인과 장인들이 이 나라에서 활약했다. 또한 그의 후원을 받은 교회들이 왕국 각지에 세워졌다.

그는 구리아 공국의 공작 마미아 1세 구리엘리의 딸 티나틴 구리엘리와 결혼하여 두 아들 알렉산드레 2세와 예세를 낳았다. 1529년 티나틴과 이혼한 뒤 타르쿠의 삼칼인 카말 카라무셀의 딸과 재혼하여 10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낳았다. 이중 1578년까지 살아남은 아들은 알렉산드레 2세, 제시, 니콜라오즈, 알-미르자, 그리고 카이호스로였다. 원칙대로라면 장남인 알렉산드레 2세가 후계자가 되어야 했지만, 그가 후처에게서 낳은 자식들을 더욱 우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들은 왕위 계승권을 놓고 암투를 벌였고, 좀처럼 죽지 않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1574년, 알렉산드레 2세는 아버지가 자신을 제치고 이복 형제 중 한 명을 왕으로 세울 거라 두려워한 끝에 아버지를 암살하고 왕위를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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