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레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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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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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1세(클라제티)
바그라트 1세(클라제티)
숨바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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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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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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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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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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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기오르기 4세(이메레티)
알렉산드레 4세
기오르기 5세(이메레티)
시몬(이메레티)
2차 이메레티 왕국
제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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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제20대
마미아 구리엘리
기오르기 6세(이메레티)
기오르기 7세(이메레티)
기오르기 8세(이메레티)
2차 이메레티 왕국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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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카
솔로몬 1세
2차 이메레티 왕국
제25대
제26대
제2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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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2세(이메레티)
솔로몬 2세
-
카헤티 왕국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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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기오르기 8세
알렉산드레 1세(카헤티)
기오르기 2세(카헤티)
레반(카헤티)
카헤티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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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1세(카헤티)
콘스탄틴 1세(카헤티)
테이무라즈 1세
카헤티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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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칠리(이메레티)
에레클레 1세
다비트 2세(카헤티)
콘스탄틴 2세(카헤티)
카헤티 왕국
제13대
제14대
-
-
테이무라즈 2세
타마르 2세
에레클레 2세
-
-
카르틀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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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세
카르틀리 왕국
제17대
제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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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탄그 6세
테이무라즈 2세
타마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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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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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클레 2세
기오르기 12세
-
-


2차 이메레티 왕국 14대 군주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 알렉산드레 4세

제호
한국어
알렉산드레 4세
조지아어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라틴어
Alexander IV
가족
바그라트 5세(아버지)
기오르기(남동생)
다레얀(누이)
마리암(누이)
티나틴(누이)
엘레나(첫째 아내)
타마르(둘째 아내)
시몬(장남)
기오르기 7세(차남)
생몰 년도
미상 ~ 1695년
재위 기간
1683년 ~ 1690년(1차 재위)
1691년 ~ 1695년(2차 재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2차 이메레티 왕국 14대 군주.

2. 생애[편집]


2차 이메레티 왕국 9대 군주 바그라트 5세가 가신 레흐후미안 코칠라의 아내와 간통하면서 낳은 사생아다. 남동생으로 기오르기, 누이로 다레얀, 마리암, 티나틴이 있었다. 1672년, 바그라트 5세는 쿠타이시 인근에서 투르크군과 맞서다 생포된 뒤 아슬란 파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고 왕위를 유지하는 대가로 그를 인질로 보냈다. 1674년, 아슬란 파샤는 바그라트 5세가 쿠타이시 인근의 요새를 반환하면 그를 돌려보내겠다고 제안했고, 바그라트 5세는 이를 받아들이고 알렉산드레 4세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1678년 카르틀리 왕자 아르칠리가 이메레티 왕국에 쳐들어가서 바그라트 5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고, 그는 붙잡힌 후 카르틀리 왕국으로 보내져 볼모 생활을 해야 했다.

1681년 아버지 바그라트 5세가 사망했다. 본래라면 그가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 카르틀리 왕국에서 인질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지 못했고 구리아 공작 기오르기 구리엘리가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카르틀리 왕 기오르기 11세는 자신의 형제 아르칠리가 이메레티 왕위에 복위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이때 아할치헤의 유수프 파샤가 선왕의 아들인 그를 왕위에 올리기로 마음먹고 기오르기 11세에게 그를 보내라고 요청했다. 기오르기 11세는 즉시 그를 아할치헤로 보냈고, 유수프 파샤는 1683년 그와 함께 이메레티로 진군했다. 이메레티 귀족들은 곧바로 그에게 귀순했고, 기오르기 구리엘리는 구리아로 도피했다. 그는 기오르기 구리엘리의 전처인 다레얀을 아바시제 공작 파아타 아바시제와 결혼시켜 자기 편으로 삼았다.

1684년 기오르기 구리엘리가 라차 공작 쇼시타, 레흐쿠미의 로드키파니제, 밍그렐리아의 가신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이메레티로 쳐들어가서 블라케르네의 테오도토스 성상을 약탈했다. 그는 파아타 아바시제와 미켈라제 공국의 지원을 받고 반격을 가했고, 양군은 로키티에서 맞붙었다. 그 결과 기오르기 구리엘리가 패배를 면치 못하고 전사했고, 자식들은 아할치헤로 달아났다. 그는 기오르기 구리엘리의 형제 말라키아를 새 구리아 공작으로 세웠다. 이후 기오르기 11세의 조카인 엘레나와 결혼했다.

그는 뒤이어 파푸네 에리스타비가 다스리는 라차 공국을 침공했다. 그의 군대는 많은 마을을 파괴하고 불태웠다. 이에 파푸네의 친척인 카르틀리 왕 기오르기 11세가 파푸네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고, 그는 전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파푸나에게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누이 다레얀과 결혼하고 강권해 성사시켰다. 이후 파아타 아바시제가 죽자, 뒤이어 아바시제의 공작이 된 기오르기 아바시제는 이메레티 왕국 내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여기에 1685년, 기오르기 구리엘리의 아들인 카이호스로 구리엘리가 아할치헤의 유수프 파샤로부터 투르크군을 받고 구리아로 돌아와 그가 임명했던 공작 말라키아를 추방하고 새 공작에 취임했다. 말라키아는 아할치헤로 도망쳤고, 유수프 파샤는 말라키아와 카이호스로를 화해시켰다. 카이호스로는 말라키아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라키아가 구리아로 돌아오자 곧바로 체포해 실명형에 처했다. 이에 분노한 유수프 파샤는 군대를 파견하여 구리아를 정벌했다.

1687년, 아르칠리 왕자가 러시아에서 라차로 이동한 뒤 크림 칸국오스만 제국에 사절을 보내 자신을 이메레티 왕으로 복위시켜달라고 청했다. 이후 파푸나, 기오르기 리파리티아니, 베잔 로르키파니제 등 여러 귀족들과 합세하여 쿠틸리시로 진군했다. 하지만 요르요스 아바시제와 시몬 쿠텔리의 지원을 받은 그가 대군을 일으켜 반란군을 대적했고, 아르칠리는 수적인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오디시로 도망쳤다.

1688년, 카르틀리 왕 기오르기 11세가 헤라클리오스 1세에게 폐위되어 파푸나가 다스리던 라차 공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헤라클리오스 1세와 동맹을 맺기로 하고 파푸나에게 기오르기 11세를 넘기라고 명령했다. 파푸나가 명령을 거부하자, 그는 군대를 일으켜 라차를 침공했다. 파푸나는 기오르기 11세와 함께 밍그렐리아로 망명했고, 이메레티군은 라차 공국 각지를 파괴했다. 그 후 아르칠리와 기오르기 11세는 크림 반도로 망명하기로 하고 압하지야로 이동했으나 바다를 건널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디시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의 통치자이자 밍그렐리아 공국의 가신인 기오르기 리파리티아니가 알렉산드레 4세와 화해하자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오디시를 떠나 기오르기 미켈라제의 땅인 사칠라오로 피신했다.

이후 두 사람이 카르틀리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아르칠리가 이메레티 왕위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소유물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르칠리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이메레티를 떠나 카르틀리로 돌아갔다. 1689년, 카이호스로 구리엘리는 투르크군의 초대를 받고 들어갔다가 피살되었고, 눈이 멀었던 말라키아가 구리아를 통치했다. 얼마 후, 유수프 파샤는 구리아인들로부터 카이호스로의 동생인 마미아 구리엘리를 말라키아와 함께 통치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했다. 마미아 구리엘리는 카이호스로의 신부였던 엘레나 아바시제와 결혼했다. 한편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는 아직 어린 레반 다디아니 공작을 대신하여 밍그렐리아를 통치하면서 그곳의 귀족들을 몰살하고 그들이 다스리던 영지 주민들을 투르크인에게 노예로 판매했다. 레반 다디아니는 이메레티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의 조언에 따라 알렉산드레 4세의 누이 티나틴과 결혼했다.

한편, 아르칠리의 사절을 접견한 오스만 술탄 쉴레이만 2세는 카푸치를 이메레티에 보내 알렉산드레 4세와 아르칠리 중 누가 적임자인지를 알아보게 했다. 알렉산드레 4세는 카푸치를 죽이려 했지만, 카푸치는 압하치헤로 도주한 뒤 그곳에서 기오르기 11세를 만났다. 기오르기 11세는 카푸치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오스만 제국의 충실한 봉신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카푸치로부터 아르칠리가 적임자라는 보고를 받은 쉴레이만 2세는 아르칠리를 이메레티 왕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로브와 세이버를 하사했다. 1690년, 에르주룸 파샤는 쉴레이만 2세로부터 아르칠리를 이메레티 왕에 세우라는 지시를 받고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아르칠리와 함께 쿠타이시로 진군했다. 알렉산드레 4세는 피신했고, 아르칠리는 쿠타이시에 입성했다. 그러나 아르칠리는 인근 요새에 주둔 중이던 투르크 군을 포위 공격한 일로 투르크인과 갈등을 벌였다.

한편, 알렉산드레 4세는 압하지야 파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이에 1691년 압하지야 파샤가 보낸 투르크군이 이메레티를 침공했고, 많은 귀족은 아르칠리에서 알렉산드레 4세 편으로 넘어갔다. 아르칠리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카르틀리로 도망친 뒤 드발레티를 거쳐 러시아에 망명했다. 그러나 체르케제티에서 체포될 뻔한 뒤 카르틀리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 후 알렉산드레 4세는 요르요스 아바시제의 딸 타미르와 결혼하여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려 했지만, 귀족들의 권한을 억제하는 시도를 잇따라 벌이면서 그들의 미움을 샀다. 이 시기, 기오르기 11세는 파푸나와 함께 라차 공국에 복귀한 뒤 레반 다디아니를 몰아내고 밍그렐리아 공작을 칭한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와 함께 알렉산드레 4세를 몰아낼 음모를 꾸몄다. 여기에 많은 이메레티 귀족들이 가담했고, 차기 왕으로 아르칠리 왕자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1695년, 파푸나 에리스타비가 이끄는 이메레티 귀족들은 스칸다에서 사냥 중이던 알렉산드레 4세를 습격해 체포한 후 스베르스키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이후 기오르기 11세에게 넘겨진 그는 루이시로 끌려가서 목이 졸려 죽었다. 뒤이어 아르칠리가 귀족들의 추대를 받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첫 아내 엘레나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시몬기오르기 7세를 낳았다. 두 아들은 후에 이메레티 왕이 되었다. 이후 1691년에 결혼한 타마르와의 사이에서는 두 딸을 낳았는데, 각각 베잔 체레텔리와 라차 공작 쇼시타 3세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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