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비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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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제6대 샤한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한 키루스 2세의 아들.
키루스 2세의 뒤를 이어 이집트를 정복하는 업적을 세웠으나, 잔혹하고 광포한 성격으로 인해 미치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그 자신도 오래 살지 못하고 재위 7년 만에 단명하였다. 캄비세스의 폭정으로 인해 그 사후에 제국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왕족 중 한 사람이었던 다리우스 1세가 이를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2. 일생[편집]
부왕 키루스 대제가 이집트[2] 원정을 준비한 것을 이어받아 즉위 4년에 대규모 원정군을 소집, 이집트 파라오 프삼티크 3세를 격파하고 이집트를 정복했다. 이로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샤한샤가 파라오를 겸하게 되었고 페르시아는 오리엔트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를 정복한 뒤 튀니지 지역, 나일 강 서역, 에티오피아[3] 지역으로 군대를 3갈래로 나눠 진군시키고 자신은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출병하나 3갈래 모두 패퇴한다.[4]
그리고 원정을 떠나기 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친동생 바르디야를 죽였는데[5] 캄비세스가 원정을 떠난 사이 ‘가우마타’라는 성직자가 자신을 진짜 ‘바르디야’라고 주장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키루스 2세의 사위이자 5촌 당조카 겸 6촌 친척인 다리우스 1세에게 진압되지만 이 과정에서 캄비세스 2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불분명하다.
헤로도투스 같은 고전 역사가들의 기록으로 캄비세스는 오랫동안 피정복민의 문화를 존중한 아버지와는 달리 정복한 이집트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이집트의 신전을 약탈하거나 신성한 아피스 황소를 가리켜 “멍청한 (이집트) 놈들, 칼로 찌르니 피를 흘리는 짐승이 신이란 말이냐?”라고 비웃으며 죽이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썼었다. 하지만 캄비세스 치세에 이집트 사료에 신전들이 약탈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오히려 사이스 신전의 종교의식에 참여하거나 아피스 황소의 장례도 치러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6][7]
그 밖에도 아버지가 이룩하지 못한 이집트 정복을 완수하여 파라오의 자리에도 오르는 등 대국 페르시아를 사실상 완성시킨 사람. 다만 부자의 급격한 팽창 정책에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고, 결국 찬탈당하여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우스 1세가 반란 세력을 진압한 뒤 왕좌를 되찾았다.
3. 여담[편집]
- 벨기에 브뤼헤 시청에 걸린 헤라르트 다비트(Gerard David)의 그림 <캄비세스(Cambyses)의 재판>속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져있다.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 따르면 그는 당시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던 시삼네스라는 재판관을 체포,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처형했고 그 아들 오이네스를 재판관으로 앉힌 뒤 시삼네스(Sisamnes)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서 업무를 보게 했다고 한다. 다만 헤로도토스가 이 이야기를 실은 것은 캄비네스 2세의 광기를 설명하는 맥락이었지 공정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후대, 특히 르네상스~근대시기에는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기득권층으로서 큰 불만을 사고 있던 재판관 집단에 대한 정의와 그들에 대한 국가권력의 지배를 원하던 여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 한편 이집트 정복 당시의 황당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집트는 동물, 특히 고양이를 신성하게 여겨 고양이를 함부로 대하는 자들에게 벌을 내릴 정도였는데, 캄비세스는 이런 점을 알고 병사들의 방패에 고양이를 묶어 적이 공격할 수 없게 만들거나, 성벽 너머로 고양이를 던졌다. 이는 효과적이라 이집트군은 저항할 수 없었고, 결국 순식간에 페르시아군에게 점령당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중 고양이 2권에서 쥐들의 우두머리로 ‘캄비세스’의 이름을 사용했다.
[1] 캄부지야로 발음되었다는 설도 있다.[2] 당시 이집트는 이미 전성기인 신왕국 시절이 다 지나가고 끝물인 말기 왕조 시대였다.[3] 이 에티오피아가 오늘날의 그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소말리아라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에티오피아라는 이름 자체가 정확히 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그저 이집트 남쪽 지역을 다 뭉뚱그려 가리키는 지명이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남쪽의 아프리카 지역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4] 이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원정군은 제대로된 보급도 갖추지 못한채 진군을 하여 에티오피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보급이 바닥나 원정군은 짐을 끌던 짐승을 잡아먹고, 땅바닥의 풀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다 결국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국경의 사막지대에 도착해선 풀조차 찾을 수 없게되어 병사 10명 단위로 1명씩 제비를 뽑아 당첨된 1명을 잡아먹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게 후지코 F. 후지오의 단편 만화 <캄비세스의 제비>.[5] 원정을 떠난 사이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죽였다고 추정하고 있다.[6] (From Cyrus to Alexander: A History of the Persian Empire, p.57), (Encyclopedia Iranica, Cambyses II) [7] 항목 윗단에 있는 부조도 아피스 황소에 절하는 캄비세스 2세를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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