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나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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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집트 신왕국 제20왕조의 초대 파라오. 이집트 최전성기였던 제19왕조를 끝내고 신왕국의 쇠락기인 제20왕조를 시작한 파라오였다. 이집트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였던 람세스 3세의 친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세트나크테는 전임 왕조인 제19왕조의 일원이 아니었다. 세트나크테의 전임자인 투스레트와는 당연히 혈연적 관계가 없었고, 세트나크테가 제19왕조의 마지막 '합법' 파라오라고 인정해준 세티 2세와도 전혀 친족 관계가 없었다. 완전 다른 가문의 쌩판 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세트나크테가 아마 제19왕조의 머나먼 방계 왕족이거나 대귀족 출신의 찬탈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메르넵타의 딸이던 티이-메리네세와 결혼해 제19왕조로부터의 혈통적 정당성을 이어받으려 시도하긴 했다고 한다.
세트나크테는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 기껏해야 최소 2년 - 3년 정도 밖에 재위하지 못했다.[1] 일부 비석에는 4년[2] 까지도 집권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실이라 보기는 어렵고 유효한 통치 기간은 3년 정도[3] 가 정설이다.[4]
세트나크테의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그 아들 람세스 3세가 탄탄한 왕권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기반을 쌓아주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먼저 세티 2세부터 십타, 투스레트 시기까지 가나안에서 할가하면서 이집트 신왕국을 약탈했던 군벌 이르수를 토벌했고, 아문의 카르나크 신전을 복구하는 한편 왕조 교체기에 도굴당한 제19왕조 파라오들의 무덤을 다시 재봉인하는 등 여러 민심 안정 정책을 펼쳤기 때문. 세트나크테가 죽기 전 이러한 민심 안정 정책, 왕권 강화정책을 미리 펼쳐두고 간 덕에 후임 파라오 람세스 3세가 이집트 신왕국의 최후의 전성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는 평이 많다.
3. 무덤[편집]
세트나크테는 기원전 1186년에 사망했고, 원래 전임 파라오 투스레트가 쓰기 위해 마련되었던 KV 14번 무덤에 안장되었다. 일종의 도둑 매장이었던 셈. 하지만 KV14 무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굴당했고 그의 미라 역시 사라졌다.
그나마 아멘호테프 2세의 KV35 무덤에서 발굴된 미라가 세트나크테의 것이 아닌가 추정되지만[5] 이 역시 확실하진 않다. 결과적으로 세트나크테의 미라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4. 기타[편집]
- 토탈 워: 파라오가 메르넵타 사후 이집트의 혼란기다보니 세트나크테가 등장할 가능성은 높았으나 플레이어블 팩션 군주가 아닌 논플레이어블 팩션의 일반 군주로 등장한다. 대신 아들 람세스 3세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이르수를 처치한 행적을 반영했는지 람세스 3세는 가나안 인근에 배치되어 이르수와 대립한는 걸로 묘사된다.인게임 데이터로 세트나크테와 메르넵타 간 상호대사, 세트나크테 아트워크 일러스트가 확인되면서 DLC 추가군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태. 메르넵타와의 대사로 볼 때 고대 리비아 부족인 리부(Libu)와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 신화 속 양치기 노예가 되었다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선 파리스가 기술자들을 데리고 피람세스를 탈출함으로서 발생한 투스레트와 그녀의 반대파간의 내전을 틈타 어부지리로 손쉽게 파라오에 오른다. 파리스 덕에 손쉽게 파라오에 오르고 신관세력이 날아가 강력한 왕권을 쥘 수 있어서 파리스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여기에 파리스가 생산한 다량의 강철에 관심을 가져 에디오피아의 멤논을 활용하여 친교를 맺고자 한다.[6] 특히 파라오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아카이아인들이 피람세스를 약탈하러 오자 손수 나서서 자신의 몸에 태양신 아문-라를 현신시켜 아카이아 군을 쓸어버리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때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아킬레우스가 나서서야 간신히 아카이아 인들이 탈출할 수 있었고 이후 파리스발 대영웅시대가 끝나는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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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들인 람세스 3세가 즉위 당시 31세였던 점으로 보아, 즉위 당시 세트나크테는 최소 40대 후반 - 5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당시 수명을 생각하면 이미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2] 세트나크테 시기에 아문 대제사장인 바켄콘수의 비문의 기록. 2007년에 발견되었다.[3] 시나이 산에서 발견된 271비문을 근거로 함.[4] 엘레판티네 비문에서 세트나크테가 재위 2년에 모든 반역자들을 차단했다고 기록한 점을 근거로 4년 간 재위했다고 하더라도 투스레트나 다른 경쟁자들과 난립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5]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무덤이 한 번 도굴당하면 따로 미라만 챙겨서 다른 파라오의 무덤에 한꺼번에 다시 묻는 경우가 많았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은 그나마 마지막에 털렸기에 많은 파라오들의 미라가 함께 묻혀 있었다.[6] 이때 세트나크테가 선물한 수호의 반지 덕분에 파리스가 히타이트의 저주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