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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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대 이집트의 5왕조의 2대 파라오이다. 5왕조의 황금기를 이끈 파라오로 불린다.
2. 통치[편집]
이집트 5왕조의 황금기를 이끈 파라오답게 업적도 많다. 누비아 지역에 섬록암 광산을. 시나이 반도에 터키옥과 구리광산을 열었다. 또한 이집트 해군을 창설하였고 그 해군을 삼나무와 노예를 조달하기 위해 해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피라미드를 아부시르(Abusir) 지역에 짓기도 했다.[4] 또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자원을 찾기 위해서 원정대를 보내기도 하고, 세케트-레(Sekhet-re)[5] 라는 태양 신전을 지었으나 현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6]
3. 사후[편집]
사후레는 죽은 후에도 후대에 의해 계속 숭배되었다. 하지만 중왕국시대에는 더이상 담당 사제가 없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지기 시작했지만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는 세크메트신과 동일시되기 시작했다.[7] 그리고 이러한 숭배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4. 사후레의 피라미드[편집]
사후레 왕의 피라미드는 1836년 영국의 군인이자 이집트 학자였던 하워드 바이스[8] 의 휘하에서 일하던 한 발굴단원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되었으며, 이후 1907년 독일의 이집트 학자인 "루트비히 보르카르트"가 피라미드 내부를 추가로 발굴하였다. 중심이 되는 피라미드는 거칠게 깍은 석회암을 진흙으로 이루어진 모르타르를 사용해 쌓아 올렸고 피라미드의 표면은 고대 이집트의 채석장이었던 "투라"에서 채석한 하얀색의 석회암을 둘러 마감했다. 또한 피라미드 단지 내의 건축물들은 화강암과 설화석고, 현무암과 같은 당시로서는 귀한 자재들을 사용해 지어졌으며 외부에는 정교한 부조가 조각되어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이집트와 독일의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발굴단이 3D 레이저 스캔 장비를 사용해 피라미드 내에서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8개의 공간을 발견했다고 한다. 용도는 저장실로 추정되며 천장과 바닥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피라미드가 지어졌을 당시 벽의 잔해와 바닥재 일부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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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록암과 화강암에서 변형되어 만들어지는 암석[2] Sahura라고 쓰기도 하며, 라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다.[3] 솁세스카레와 다른 인물일 수도 있다.[4] 그러나 해당 피라미드는 이집트 제5왕조 왕들의 건축 수준이 하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5] 라의 땅이라는 뜻이다.[6] 아부시르 지역에 있을 것으로 추측은 된다.[7]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8] Richard William Howard Howard Vyse (생몰년도: 1784년~18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