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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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25왕조 제3대 파라오
샤바카
𓆷𓃞𓂓 | Shabaka


파일:샤바카 두상.jpg

이름
샤바카(Shabaka)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690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705년 ~ 기원전 690년
(약 15년)
전임자
셰비쿠
후임자
타하르카
부모
아버지 : 카슈타
어머니 : 페바트마
배우자
칼하타, 메스바트
무덤
엘-쿠루 15번 피라미드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쿠시 왕국 나파타 시대 5대 왕이자 고대 이집트 제25대 왕조 3대 파라오. 아시리아의 위협에 맞서는 유대 왕국을 지원했다.


2. 행적[편집]


카슈타와 페바트마(Pebatjma) 왕비의 차남으로, 형으로 피이, 누이로 켄사, 페크사테르, 아메니르디스가 있었다. 피이의 아들이며 그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된 타하르카 치세 시기에 새겨진 일부 비문에는 그가 타하르카의 형제로 암시되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실제로 피이의 아들이었다고 주장하지만, 학계는 쿠시 왕국의 왕실 묘지인 엘 쿠루 피라미드 유적에서 그가 피이의 형제로 명시되어 있고, 카르나크 신전아문 신의 아내로 활동하는 카슈타의 딸 아메니르디스 1세의 형제로 명시된 점을 근거로 피이의 형제인 게 사실에 근접하다고 보며, 타하르카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아시리아측 기록에 따르면, 그의 왕비는 타하르카의 자매인 칼하타였다고 한다. 그는 칼하타와의 사이에서 타누타멘을 낳았다. 여기에 피이의 또다른 딸인 타베케나문이 그의 아내였다는 설이 제기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타하르카가 그녀를 아내로 두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아들 타누타멘 외에도 딸 하레마케트, 피앙카티, 이세템헤브를 낳았다.

기원전 3세기 세라피스 제사장이자 <이집트 역사>의 저자 마네토에 따르면, 샤바카[1]가 이집트 정복을 달성하고 끝까지 저항한 바켄레네프를 불태워 죽인 뒤 8년간 집권했으며, 셰비쿠[2]가 뒤를 이어 14년간 통치했다고 한다. 학계는 오랫동한 마네토의 기록에 따라 피이 사후 샤바카-셰비쿠 순으로 집권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2016년과 2017년에 쿠시 왕국의 이집트 지배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 결과, 실제로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라드 브로크먼은 2017년 논문에서 샤바카의 카르낙 비문의 상단 가장자리가 셰비쿠의 비문 왼쪽 가장자리 부근에 조각된 점을 볼 때, 셰비쿠가 먼저 집권하여 비문을 세웠고 샤바카가 뒤이어 집권하여 비문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집트 학자 클라우스 주르만은 2016~2017년에 셰비쿠와 샤바카가 세운 카르낙 비문들을 재조사한 결과, 셰비쿠의 상형 문자 비문이 샤바카의 비문 이전에 조각된 것이 분명하다며 브로크먼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프레데릭 파라우도(Frederic Payraudeau)는 아비도스 아문 신전에서 "아문 신의 아내"로서 활동하던 여사제 셰페누페트 1세가 셰비쿠의 통치 기간 동안에 자신의 이름으로 오시리스-헤카제트 예베당의 문벽과 외부에 부조를 새겼고, 그녀와 함께 여사제를 맡았던 아메니르디스 1세는 샤바카의 재위 기간에야 단독 여사제로서 등장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엘 쿠루에 있는 쿠시 왕실 피라미드의 건축적 특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이와 세비쿠의 피라미드에는 코벨 지붕이 세워진 개방형 매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던 반면, 샤바카, 타하르카, 탄타마니의 피라미드와 이후의 모든 왕실 피라미드에서는 완전 터널식 매장실이 설치되었다. 이는 피이와 세비쿠의 시대에 일반적이었던 매장 양식이 샤바카 집권 후 변화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로 볼 때, 셰비쿠가 샤바카보다 먼저 등극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마네토가 서술한 이집트 정복자는 샤바카가 아니라 셰비쿠일 것이다.

1999년 이란의 탕이바르 유적지에서 사르곤 2세가 기원전 706년에 건립한 비문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르면, 아시도드(Ashdod)의 왕 이마니(Iamani)는 사르곤 2세의 위세를 두려워해 멜루하로 도망한 뒤 그곳에서 "도둑처럼 은밀하게 살다가" 멜루하의 왕 샤파타쿠(Shapataku = 셰비쿠)에게 체포되어 양손을 수갑을 찬 채 사르곤 2세 앞으로 끌려왔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셰비쿠는 기원전 706년 무렵에 아직 살아있었으며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기원전 706년 이후였을 것이다.

파일:샤바카의 기증비.jpg

샤바카는 전임 파라오 셰비쿠가 수도로 정했던 멤피스에서 테베로 천도한 뒤 대대적인 건축 공사를 실시했다. 카르나크 신전에 분홍색 화강암으로 제작된 자신의 조각상을 세웠으며, 여러 고대 왕국과의 교류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다양한 비문들을 세웠다. 또한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인근에 왕실 보물을 보관하기 위한 비밀 창고를 짓고 석문을 세웠다. 석문에는 진리의 여신 마아트를 주신인 아문 신에게 바치는 것을 묘사하는 화려한 부조가 새겨졌다. 여기에 멤피스 시의 주요 신 프타의 신전을 복원했다. 그는 여러 신전에 토지를 기부하기도 했고, 이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 위 사진의 비석에서는 그가 호루스와 나일강 삼각주 도시 부토의 여신인 와트제트(Wadjet)에게 밭을 제공하는 이미지가 실렸으며, 하단에는 이집트 상형문자초서체 형태로 바케나툼이라는 사람이 팔레스를 대신해 토지를 사원에 기증한 것이 기록되었다.

성경 열왕기하 17장 3~6절에는 다음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의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언급된 "애굽의 왕 소"는 사바카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시리아의 세력이 날로 강성하여 이집트와 인접한 시리아와 유대까지 미친 것에 위협을 느끼고 이스라엘 왕국 등 시리아인들에게 반란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아시리아의 단호한 토벌로 무산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샤바카 재위 15년에 세워진 비석 조각 이후에는 더 이상 비문이 발견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그가 파라오에 오른 후 15년까지 재위했다가 기원전 690년경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샤바카의 무덤은 쿠시 왕실 묘지인 엘 쿠루-15 피라미드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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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네토는 사바콘(Sabacôn)이라고 명기했다.[2] 마네토는 세비초스(Sebichôs)라고 명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