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25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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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기원전 744년부터 기원전 664년 또는 기원전 656년까지 지속된 고대 이집트의 왕조이자 쿠시 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집트 제3중간기에 해당한다.
2. 특징[편집]
제3중간기의 마지막 왕조로, 이집트 역사상 전무후무한 흑인이 이집트를 다스린 시대였다. 이들의 정체는 이집트 남쪽의 나일 강 유역에서 살던 누비아인으로, 이집트 신왕국의 통치를 받으며 이집트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집트가 제3중간기를 맞이하자 누비아의 국력이 강해졌고, 결국 이집트가 분열된 틈을 타 이집트 전역을 정복하며 수십 년 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이집트 제3중간기 중에서도 가장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기였다.
3. 역사[편집]
3.1. 제25왕조 수립 이전[편집]
누비아는 고대부터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서 성장했던 지역으로, 이집트 신왕국의 지배가 끝나자 쿠시 왕국이 건국되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8세기 즈음에 알라라가 쿠시의 수도를 케르마에서 나파타로 옮겼다.
알라라 다음의 국왕인 카슈타는 본격적으로 이집트를 침공했다. 먼저 테베를 점령하고 딸인 아메니르디스를 신관으로 앉혔다. 기원전 746년 사망했다.
3.2. 왕조 성립 이후[편집]
쿠시의 다음 국왕은 피이가 되었다. 그는 기원전 744년 스스로를 파라오로 선포하며 제25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732년 나일강 삼각주 서쪽의 사이스에서 테프나크트가 이집트 제24왕조를 세우고 헤라클레오폴리스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헤라클레오폴리스 군주가 피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기원전 726년 피이는 헤라클레오폴리스로 출병해 테프나크트의 군대를 격파하고 하이집트까지 진격해 테프나크트를 쫓아냈다. 하지만 여기서 진격을 멈추고 다시 나일강 상류로 돌아갔다.
피이의 뒤를 이어 셰비쿠가 기원전 714년에 즉위했다. 그는 테프나크트의 뒤를 이은 바켄레네프의 잔당을 완전히 쳐부수고 이집트를 완전히 통합했다. 기원전 705년에는 카슈타의 다른 아들 샤바카가 파라오로 즉위해 15년 간 다스렸다.
기원전 690년에는 피이의 다른 아들인 타하르카가 즉위했다. 그가 이집트를 다스리던 시절에는 나일 강이 적당한 수위로 범람한 덕분에 풍년을 맞이했고, 이집트는 다시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7세기에 중동 지역을 장악한 국가는 아시리아였고, 시리아를 공격하면서 이집트 근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기원전 673년 아시리아의 에사르하돈이 1차 원정을 떠났으나 실패했고, 기원전 671년 2차 원정에는 성공해서 하이집트를 아시리아에게 빼앗겼다. 기원전 667년에는 아슈르바니팔이 이집트를 재침공해 상이집트까지 빼앗겨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타하르카는 누비아로 돌아가 이집트 수복을 시도했으나 기원전 664년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이 시점에 이집트 제3중간기가 끝나고 이집트 말기 왕조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본다.
3.3. 타누타멘의 이집트 회복 운동[편집]
샤바카의 아들 타누타멘이 파라오로 즉위해 이집트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보였다. 테베와 멤피스를 연이어 정복하고 이집트 땅에 세워진 아시리아의 괴뢰 정권 제26왕조와 네코 1세를 잠시나마 몰아냈다. 하지만 네코 1세의 후계자였던 프삼티크 1세가 아슈르바니팔과 함께 이집트를 재침입했고, 기원전 656년 이집트를 다시 아시리아에게 빼앗기면서 이집트 회복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이집트는 이집트 제26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타누타멘은 쿠시 왕국을 3년 더 지배하다가 기원전 653년 사망하고, 아틀라네사가 뒤를 이어 쿠시를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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