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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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
Παλμύρα
𐡕𐡃𐡌𐡅𐡓

Tadmor
파일:external/cromwell-intl.com/300px-palmyrene-empire-map.png
노란색이 팔미라 제국.
존속기간
260년(왕국)/270년(제국) ~ 273년
위치
레반트, 이집트
수도
팔미라
국가원수
왕(260년)→왕중왕(263년)→황제(272년)
주요 군주
바발라투스(267(왕국)/270(제국)~272)
주요 섭정
제노비아
언어
팔미라어, 코이네 그리스어, 아람어
종교
팔미라 종교 (주신: 볼[1])
종족
팔미라인, 그리스인, 아람인
성립 이전
로마 제국
멸망 이후
로마 제국

언어별 명칭
팔미라어
𐡕𐡃𐡌𐡅𐡓 (Tadmor)
그리스어
Παλμύρα (Palmýra)
아람어
ܬܕܡܘܪܬܐ (Tedmurtā)
라틴어
Imperium Palmyrenum / Palmyra
아랍어
تُدْمُر (Tadmur)

1. 개요
2. 역사
2.1. 건국
2.2. 확장
2.3. 멸망
3. 역대 군주
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오늘날의 시리아 중부에 있었던 로마의 식민도시 팔미라를 중심으로, 왕국으로서는 260년 오다에나투스에 의해, 제국으로서는 270년[2] 제노비아에 의해 로마 제국에서 떨어져 나와 세워졌던 국가. 현 시리아인의 조상인 아람인들의 일파가 거주하였다. 한때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속주와 소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었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식간에 멸망하였다.


2. 역사[편집]


3세기 초부터 로마3세기의 위기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어 옥사하는 치욕을 겪었고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발레리아누스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의 아들 갈리에누스가 제위에 오르지만, 이에 맞서 자칭 황제들만 20명이나 등장하는 막장의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동서 양쪽에서 반란이 일어나 제국은 세 조각으로 갈리게 되는데 하나는 팔미라 제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갈리아 제국이었다.


2.1. 건국[편집]


팔미라 제국의 시작은 이렇다. 로마의 식민도시 팔미라에서 태어난 오데나투스(Odaenathus, 팔미라식 이름은 Oḏainaṯ)는 발레리아누스가 포로가 되었을 당시 용전하여, 갈리에누스는 오데나투스를 동방 지구 속주 전역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오데나투스는 사실상 제국 동방의 실권자로 자리잡았지만, 고트족과의 승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267년 조카 또는 사촌 마에오니우스(Maeonius)에게 암살당했다.


2.2. 확장[편집]


그가 죽은 후 부인인 제노비아가 동방의 권력을 이어받았다. 제노비아는 오데나투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바발라투스(Vaballathus)를 오데나투스의 후계자로 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실권을 잡았다. 제노비아는 사산조의 침략으로부터 제국 동부 속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브다스 장군에게 군대를 맡겨 시리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의 속주들을 침공하여 점령했다.[3] 팔미라는 마침내 바발라투스에게 황제라는 칭호가 주어져 사실상 독립된 제국이 되었다.


2.3. 멸망[편집]


세 조각으로 갈라진 제국의 혼란을 수습한 인물은 270년 제위에 오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우선 북방의 게르만족의 침입을 차단한 후 팔미라로 향하였다. 로마는 팔미라에 항복을 권고했으나 제노비아는 자신을 '아우구스타'로 자칭하고 아들 바발라투스에게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내려 대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로마군은 자브다스가 이끄는 팔미라군과의 두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바발라투스는 전사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 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포위당했고, 사산 왕조의 원조를 얻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려다 로마군에 붙잡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제노비아만을 포로로 잡고 팔미라에 일부 병력만 남긴 채 떠났다. 하지만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팔미라 시의 약탈을 허용했고 결국 팔미라 시는 개박살나면서 273년에 팔미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갈리아 제국도 다시금 로마 제국으로 통합되었다.(로마 재통합 전쟁)

금방 망하고 재통합되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생기고 나서의 족적은 별로 없지만, 로마 내에서의 할거, 왕위쟁탈전, 사두정치 등의 형태가 아니라, 로마와는 별도의 팔미라라는 이름을 달고 독립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3. 역대 군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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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다에나투스(260년~267년 재위)
    • 하이란 1세(263년~267년 재위)[4]
  • 마에오니우스(267년 재위)[5]
  • 바발라투스(267년~272년 재위)
    • 제노비아(272년 재위)[6]
  • 안티오쿠스(273년 재위)[7]


4. 대중 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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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알의 팔미라 버전[2] 황제국과 식민제국 둘 다 제국이기 때문에, 황제 칭호는 272년에 썼지만 식민제국이 된 270년부터 제국이다.[3] 하지만 정작 사산 왕조와는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으로 로마에 대항했다.[4] 단독 군림한 적 없음, 오다에나투스와 공동 군림.[5] 오다에나투스를 죽여 찬탈하나 곧장 제노비아에 의해 사망.[6] 단독 군림한 적 없음, 섭정으로 통치하다가 통치 막판에만 짧게 아우구스타로서 바발라투스와 공동 군림.[7] 부흥 운동에서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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