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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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집트 데숙.jpg
나일 강과 도시
파일:데수키 이집트.jpg
매년 백만명에 가까운 순례객들을 불러모으는 시디 이브라힘 엘데수키 모스크 (مسجد سيدي إبراهيم الدسوقي)
파일:데숙 이집트 8.jpg
노벨상 수상자 아흐메드 하산 제왈리의 동상. 그는 다만후르에서 태어났지만 데숙에서 성장하였다

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중세
2.2.1. 이브라힘 엘 데수키
2.3. 근현대


아랍어: دسوق
영어: Desouk

1. 개요[편집]


이집트 북부 카프르엘셰이크 주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동쪽으로 60km, 다만후르에서 동북쪽으로 15km, 카프르엘셰이크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진 나일 강 동안에 위치한다. 나일 강 하구와는 40km 떨어져 있고, 인구는 15만명이다. 나일 강 하류에서 카이로 다음으로 큰 도시로, 별명은 나일의 신부 (عروس النيل)이다. 육상 / 수상 교통 모두가 발달한 교통의 요지로, 다만후르 ~ 카프르엘셰이크 및 알렉산드리아 방면 철도가 지난다. 마할라엘쿠브라와 함께 하이집트의 주요 산업 도시들 중 하나로, 곡물 정제 / 식품 가공 / 전자제품 및 벽돌 제조업 등이 발달하였다. 21세기 들어서는 동쪽 평원에서 이집트 최대의 천연가스 지대가 발견되어 2013년부터 채굴이 이루어진다. 그외에 상업도 활발하여 경제적 전망이 밝다.

시내에는 알 아즈하르 대학의 분캠과 그에게서 이단으로 규정된 사이디 이브라힘 엘데수키 모스크 등이 있고, 강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한편 동북쪽 10km 지점에는 고대 이집트 통일 이전에 하이집트 최초의 수도였던 부토 (بوتو)가 있었다. 부토는 호루스의 초기 버젼인 와제트 숭배의 중심지였다. 현재 지명인 데숙은 아랍어로 물웅덩이란 뜻인데, 나일 강의 범람으로 시내에 물웅덩이가 여럿 남았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세에는 수피 데수키 종단의 창시자인 이브라힘 엘 데수키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동남쪽으로 40km 떨어져 있는 탄타와 함께 이집트의 양대 수피 성지 중 하나이다. 유명 출신 인물로 이맘 이브라힘 엘 데수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아흐메드 하산 제왈리, 이스마일리아 주교 안바 아가톤 등이 있다.

2. 역사[편집]


파일:부토 이집트 유적.jpg
부토 (بوتو) 유적지 전경. 현지 이름은 파라오들의 언덕이란 의미인 텔 엘 파라인 (تل الفراعين)이다.

2.1. 고대[편집]


파일:람세스 와제트 이집트 부토.jpg
파일:부토 유적지 이집트.jpg
부토 유적지의 람세스 2세 & 와제트 조각상
람세스 2세 독신상

먼 옛날 일대에는 페와 뎁이란 두 도시가 있었는데, 이들이 합쳐져 '와제트의 집이란 의미인 페르-와제트가 되었다. 지명처럼 도시는 하이집트의 수호신이자 코브라 여신인 와제트 숭배의 중심지였고, 영험한 신탁을 내리는 신전으로 유명했다. 매년 와제트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고, 그외에 호루스바스테트이시스 역시 숭배되었다. 이는 이시스가 남편 오시리스의 주검을 찾아나서며 어린 호루스를 와제트에게 맡겨 이곳에서 기르게 했기 때문이다. 통일 후 하이집트의 주신인 와제트는 상이집트의 주신 네크베트와 함께 '두 여인'으로 묶여 이집트 전체의 수호신이 되었고, 파라오의 왕관 위에는 전자의 상징인 코브라가 위치하게 되었다. 한편 페르-와제트는 선왕조 시절 하이집트의 수도였고, 그 왕들은 상하 이집트의 이중 왕관을 쓰는 등 통일을 염두에 두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통일은 상이집트의 왕 나르메르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후 하이집트 제6 노메의 주도가 되었다.

통일 이집트 하에서 파라오들은 정통성을 얻기 위해선 페르-와제트의 신전에 와서 와제트에게 봉헌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다만 중왕국 이후 힉소스 인들의 침공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비록 신왕국 시기에 재건되었지만 람세스 3세 시기 바다 민족과의 전쟁으로 재차 파괴되었다. 또다시 재건된 도시는 26왕조의 창건자 프삼티크 1세를 도왔고, 26왕조 내내 사이스에 이은 두번째 수도로 번영하였다. 29왕조와 30왕조 때에도 부바스티스와 함께 번영했으나 아케메네스 제국의 침공 후 페르시아 지배기를 거치며 쇠퇴하였다. 한편 지명 역시 페르-와제트의 다른 이름인 비딥을 그리스 식으로 발음한 부토 (Βουτώ) 혹은 부투스 (Βοῦτος)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1] 헤로도토스는 일대의 쇠퇴를 묘사하며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들어 부토는 알렉산드리아, 아트리비스와 함께 하이집트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화폐 주조소가 위치하였다.

2.2. 중세[편집]


로마 시대 들어 물길의 변화로 기존의 부토는 쇠락하였고, 이슬람 정복 후 수운에 유리한 서쪽 나일 강변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졌다. 아랍인들은 새 도시를 데숙이라 불렀는데, 이는 아랍어로 물웅덩이를 의미하는 명사 데삭의 복수형이다. 우기 때마다 나일 강이 범람하면 시가지가 침수되고, 이후 물이 빠지면 곳곳에 물웅덩이가 남았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다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소도시로 남았던 데숙은 13세기 들어 수피즘의 77대 성인들 중 하나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2-13세기의 혼란기 이후 근동 일대에는 수피 이슬람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그러던 1255년 데숙의 사이드 가문에서는후세인 빈 알리의 19대손인 이브라힘 빈 압둘마지드 아불 마그드가 탄생하였다. 상당한 명문가인 부계와 더불어 그의 모친인 파티마 역시 수피 성인 아흐마드 알 리파이의 제자이자 이집트에 샤딜리 수피 조직을 설립했던 아불 파스 알 와타시의 딸이었다.

2.2.1. 이브라힘 엘 데수키[편집]


파일:이집트 데숙 1878.jpg
시디 이브라힘 엘데수키 모스크, 19세기 오스트리아인 여행가 레오폴트 뮐러의 삽화

평생 고향에 살았기에 호칭인 '엘 데수키'로 더욱 알려진 그는 어린 시절[2]부터 외가와 연관된 샤딜리 수피 종단에 심취하였고, 남쪽 탄타에서 활동하던 수피 성인 아흐마드 알 바다위와 줄곧 교류하였다. 은둔하며 학문과 수행에 치중했음에도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 공식 활동에 나서자 많은 추종자들이 몰렸다. 이러한 명성을 접한 술탄 바이바르스는 1276년 알 바다위가 사망하자 불과 21세의 엘 데수키에게 파트와를 내릴 수 있는 수석 율법학자의 지위인 셰이크 울 이슬람에 제수하였다.[3] 또한 그가 설법할 수 있는 자위야 (수피 수도원)을 지어주었는데, 바로 후일 수피 성지가 되는 엘데수키 (이브라히미) 모스크의 전신이다. 바이바르스의 사후 셰이크 울 이슬람에서 물러나 후학 양성에 치중하던 엘 데수키는 1290년, 십자군 토벌을 위해 과도한 세금을 매기던 술탄 알 아슈라프 칼릴에게 서신을 보내어 비판하였다.

이에 분노한 술탄은 온갖 위협을 가하였으나 엘 데수키는 요술로 이겨내었다. 마침내 승복한 술탄은 친히 데숙으로 와서 그에게 돈이나 재물을 원하는대로 주겠다고 제안하였는데, 이에 엘 데수키는 빈자들에게 인근 라흐마니야 섬의 절반을 줄 것을 청하였다. 술탄이 동의하자 엘 데수키는 임박한 아크레 원정의 성공을 기원하며 화답하였다.[4] 엘 데수키는 일대에 많은 전설을 남겼다. 데숙의 한 아이를 악어가 물어가자 되찾아온다거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부당히 재판을 받은 제자를 위해 써준 편지에서 화살이 나와 탐관오리의 가슴에 꽂힌다거나, 다만후르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금기 많은 우물에 침을 뱉었더니 단물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과 상대방의 모국어로 소토했으며, 나일 강의 물고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한편 수피즘에 있어 엘 데수키는 그 본질이 의복에 있는 것이 아닌 영혼의 정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신에게 다가가는 것에 있다고 보고, 수피의 상징인 수프 (양모)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설법하였다. 또한 무함마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즉 본질의 일부로 보아 아담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성스러운 빛이 무함마드를 거쳐 '한 시대의 셰이크'인 쿠트브에게 전래되었고, 자신은 그 마지막 쿠트브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남긴 그는 1296년, 예배 도중 향년 41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그는 자위야의 한 구석에 매장되었고, 동생 샤라프 앗 딘 무사가 법통을 이어받아 설법하였다. 비록 당시 기준으로도 요절하긴 했지만 이브라힘 엘 데수키의 가르침은 계속되어 데수키야 혹은 그의 별명 부르한에서 유래된 부르하니야라 불리는 수피 종단으로 이어졌다.[5] 비록 알 아즈하르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비판받기도 하지만, 하르툼 등 수단과 유럽 일대에 퍼져있다.

그리고 1300년경, 엘 데수키의 제자들 중 데숙의 총독에 오른 이스마일 빈 이와드는 스승이 묻힌 자위야가 낡은 것을 보고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15세기 말의 술탄 카이트베이는 모스크를 증축하고 정식으로 영묘를 세웠다. 19세기 말엽 이집트의 테우픽 파샤는 재차 모스크와 영묘를 3000m2 면적으로 증축하였고, 마지막으로 1969 ~ 1976년간 75만 파운드를 들여 6400m2 규모로 확장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1976년 완공식 때에는 당시 대통령 사다트가 참석하였다. 동시에 2만 5천명이 예배 드릴 수 있는 이브라히미 모스크는 이집트 최대의 사원 중 하나이자 세계 20대 모스크 중 하나라고 한다. 매년 10월 엘 데수키의 탄신제 때에는 세계 각지에서 최대 백만이 넘는 순례객이 몰린다.

2.3. 근현대[편집]


파일:사다트 이집트 데숙 1.png
파일:사다트 이집트 데숙.png
데숙을 방문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기에 데숙은 가르비야 주에 속하였고, 1799년부터 1801년간의 프랑스 점령기에는 라쉬드 주에 편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1841년 메흐메트 알리 파샤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가르비야 주의 엘만두라 군에 편성되었고, 1870년경 데숙 군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영국령 이집트 하에서 철도가 놓여 1897년에 역이 개설되었고, 1925 ~ 1927년간 나일 강을 지나는 첫 철교가 놓였다. 그후 인근 부토 유적에 대한 발굴이 시작되었고, 1960년대에 2왕조 시기의 궁전과 와제트 신전 유적 및 신왕국 시기의 조각상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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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편 델타 동북부에도 부토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제19 노메의 주도였고 현재는 텔 네베셰라 불린다[2] 전설에 의하면 엘데수키는 라마단 기간에 태어났는데, 금식의 시작을 알리는 아잔이 울린 후에는 모유를 그만 먹었다고 한다. 또한 2살 때부터 쿠란을 가르쳤고 9세부터는 천문을 읽었으며 12세에는 한 제자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걸 진짜로 믿는다 이후로는 신통력이 더해져 세상을 손가락의 반지처럼 돌리고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3] 그는 받은 녹봉을 빈자에게 기부했다고 한다[4] 이후 칼릴은 엘 데수키에게 편지를 쓸 때에 '맘루크 칼릴'이라고 겸양하였다[5] 남쪽 탄타를 중심으로 한 바다위야와 함께 이집트의 양대 수피 종파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