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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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FC 바르셀로나 감독 부임
2009년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및 6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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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부임
2016년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마지막 DFB-포칼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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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부임
2018년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리그 승점 100점을 채우고, 수많은 기록[1]을 갈아치우며 정상에 오르다

1. FC 바르셀로나
2. FC 바이에른 뮌헨
2.4. 임기 종료 후 평가
2.5. 바이에른 시절 비판
2.5.1.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와 스페인 클럽 상대로의 부진
2.5.2. 의료진과의 마찰
2.5.3. 약화된 측면 공격력
2.5.4. 아쉬운 플랜 B 전술
3. 맨체스터 시티 FC
3.8. 맨시티 임기 중 비판
3.8.1. 이적료 과다 지출과 수비 불안
3.8.2. UEFA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의 부진


1. FC 바르셀로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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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FC 바르셀로나 감독 중 하나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2]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인 2008-09 시즌에는 트레블을 달성하고 그 다음 시즌인 2009-10 시즌에 6관왕[3]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으며 그 후로도 매년 최소 1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부임 기간 내내 엄청난 실적을 남겼는데 사실 실적만 따진다면 과르디올라가 역대 최고의 바르셀로나 감독이어야겠지만, 현재 라 마시아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의 육성 시스템과 과르디올라가 이상적으로 구현해낸 토탈 풋볼티키타카라는 개념을 먼저 클럽의 색깔로 정착시킨 요한 크루이프의 존재 때문에 투탑으로 여겨지고 있다.[4]

선수 시절 주장을 하는 등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출신이었으므로 선수 은퇴 직후 2007년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과르디올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이를 눈여겨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의 주안 라포르타 회장은 당시 성적 부진으로 경질을 앞두고 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 다음으로 과르디올라가 지휘봉을 잡을 거라고 밝혔다. 처음에 과르디올라는 감독보다는 바르셀로나 구단 프런트가 되길 원했고, 감독 경력이 짧은 과르디올라가 팀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는 리빌딩 작업을 결정[5], 과감하게 호나우지뉴데쿠, 사무엘 에투[6] 같은 선수들을 팀에서 내보냈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부터 좋은 성적을 내더니 심지어 6관왕 달성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후 바르셀로나는 흔히 티키타카로 불리는 극강의 점유율 패스 축구를 완성[7]하면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호령한 세계 최고의 팀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주전 선수들을 상당수 기용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무적함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강팀이 되었다.[8] 다르게 보면 과르디올라가 스페인의 계속되는 최강 행보에도 간적적으로 기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리오넬 메시의 기량을 만개시킨 것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시는 전임 감독 레이카르트 시절부터 이미 떠오르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호나우지뉴가 막장화된 07/08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이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으므로 메시의 발견이나 활용법을 온전히 과르디올라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때 메시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약점은 '도자기 스타'로 불릴 정도로 유리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메시는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필적하는 금강불괴가 되었다. 또한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메시에게 측면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주문했으며 결국 제로톱의 중심에 메시를 놓으면서 메시의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했으며 메시는 뛰어난 경기력과 가공할만한 스탯을 동시에 거머쥐며 단숨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메시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과르디올라가 아니어도 언제, 어느 팀에서라도 빛을 보게 되었을 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메시가 유망주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야 할 중요한 시점에 과르디올라를 만나면서 감독과 선수간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 것을 보면 과르디올라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다.[9]

물론 알렉산드르 흘렙,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 같은 잘못도 있었지만,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돈을 날리는 일도 적은 편. 다만 선수를 영입할 때의 보는 눈은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 25M을 허공에 흩뿌린 영입과 같았던 드미트로 치그린스키[10]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워낙 튼튼한 이유도 있다. 또한 영입 자체도 위의 두개가 워낙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꽤 준수한 영입이었다. 특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영입은 처음에는 돈낭비라고 까였으나 그를 센터백으로 활용하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마스체라노가 없었다면 얇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으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막스웨우,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도 제 값 이상은 했다는 평. 다비드 비야세스크 파브레가스 같은 경우는 본인 의사만으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11]

애초부터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로 몰락해가는 팀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만큼[12] 일 중독자로 유명했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선수들 각각 움직일 수 있는 경로나 포지션 같은 걸 따로 연구하며, 온갖 컨디셔닝은 물론 선수단 식단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극도로 완벽주의적 매니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매일 밤 12시에 아무 선수에게나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다. 선수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클럽에서 노는 등 집 밖에 있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즉각 불이익이 돌아갔다. 젊은 선수은 잘 따랐지만 앙리나 아비달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고. 메시의 식습관을 통제하기 위해 구단 내 탄산음료 자판기를 몽땅 없애버리라고 명령한 적도 있으며 트레이닝 세션에서도 무엇을 먹는 지까지 다 통제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티에리 앙리가 증언한 바 있다. 심지어 헤라르드 피케와 같은 요주의 인물(?)들은 아예 사립탐정까지 붙여서 감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한 통제력과 철저한 매니지먼트를 추구하는 그의 성향은 라마시아 시절부터 그를 스승으로 모셔온 대다수의 선수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13] 자유분방한 성향과 극강의 에고를 지닌 즐라탄같은 선수는 이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펩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에 매달려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쉬고 싶은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머지 않아 그만두고, 휴식 후 다른 팀의 감독을 맡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진이 워낙 좋아서 선수빨이라는 비판도 듣는다.[14] 그래서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팀의 감독을 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바르셀로나 선수단과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과르디올라의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으로 그의 능력을 폄하하기엔 그 이전 바르셀로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밥상을 그가 직접 차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15] 또한 세르히오 부스케츠페드로 로드리게스, 제라르 피케 등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시킨 것에도 그의 공이 아주 크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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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첫 시즌인 2008-09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다.

부임 이후 3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 우승 타이틀은 바르셀로나가 차지했으며,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역시 각각 두 번씩 우승을 차지했다. 코파 델 레이도 한 번 우승했다. 어쨌든 과르디올라가 부임 이후 바르셀로나가 차지한 트로피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괜히 불과 4년에 불과한 1군 감독 경력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무리뉴와 함께 본좌급 감독으로 꼽히는게 아니다. 적어도 전술적인 역량에 있어서는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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웸블리에서 다시 한 번 빅이어를 들어올린 과르디올라

하지만 2011-12 시즌 바르셀로나가 무관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곳저곳으로부터 링크설이 뜨고 바르셀로나 사임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2011-12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표명했다. 과르디올라의 평전을 작성한 스카이 스포츠의 기옘 발라게에 의하면 펩은 승리를 거둘수록 높아져만 가는 기대치와 요구와 강행군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였으며 오래전부터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한 상태였다고 한다. 세 시간에 이르는 회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무제한 선수 영입을 보장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1년간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하였다.#리그-챔스 모두 놓쳤으나, 코파 델레이를 우승하며 유종의 미는 거뒀다.

1년의 휴식 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그런데 벌써 첼시, AC밀란, 인테르와 같은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링크가 나고있다. 2012-13시즌이 끝난후 여름에는 돌풍의 핵이 될 듯. 사실 이전부터 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았고, 감독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었으며, 계약 자체도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결국 4개 시즌 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르샤를 우주 최강팀으로 만든 과르디올라는 갑작스레 떠났다.

바이에른, 첼시, 맨유 등의 빅클럽과 꾸준히 링크가 나던 끝에 마침내 2013-14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이 확정되었다. 바이에른이 부인기사 낸지 불과 12시간도 안돼서 오피셜이 떴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라고 말이다.


2. FC 바이에른 뮌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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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13-14 시즌[편집]


결국 2012-13시즌 트레블 팀바이에른 뮌헨의 사령탑에 부임했다. 바이에른을 택한 이유는 수많은 레전드와 전통, 유스시스템 등 본인의 축구철학과 가장 잘 맞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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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은 부임 후 콤팩트한 패스축구를 바이에른에 재현하기 위해 적합한 선수들을 속속 영입해온다. 4월에 이적을 확정한 마리오 괴체 역시 펩이 원했고, 선수 본인도 과르디올라 밑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 그 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유력했던 옛 제자 티아고 알칸타라 역시 옛 스승을 찾아 바이에른으로 이적했고, 그 외에 기존 선수들 중에 부진하던 하피냐디에고 콘텐토를 재발견하는 한편, 성향상 방출이 예상된 아르연 로번의 활용과 필립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핵심 선수들의 이탈도 만만치않다. 독일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는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더 많은 출전기회를 위해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루이즈 구스타보 또한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많은 출전을 위해 VfL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펩은 부임당시 모든 선수들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을거라 밝혔고, 실제로 현재까지도 디에고 콘텐토, 클라우디오 피사로, 하피냐, 다니엘 반 바이텐 등 많은 서브자원들에게 프리시즌/정규시즌을 가리지 않고 출전기회를 부여해줬다.[17] 하지만 월드컵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보니 바쁜 주전경쟁속에 있는 구스타보와 고메즈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부임 후 울리회네스컵, 텔레콤컵, 리가토탈컵, 아우디컵 등 많은 프리시즌 대회들에서 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7월 2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부임 후 첫 데어 클라시커에서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해 티아고 알칸타라를 볼란치로 내리는 변형적인 포메이션으로 도박수를 던졌다가 2대4로 패하며 첫 공식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처럼 시원시원한 공격력이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점유율만 높지 득점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않고 리가, 컵, 챔스 가리지않고 무패행진을 달리고있으며,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행진 또한 이어가고있다.
UEFA 슈퍼컵에서 수많은 엘 클라시코에서 맞붙었던 적장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 FC를 만났다. 경기는 바이에른이 드라마틱한 PK승을 거두며[18] 펩은 바이에른 감독 취임 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개막전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대1로 시원하게 꺾으며 좋은 정규리그 스타트를 끊었다. 챔스에서도 PFC CSKA 모스크바맨체스터 시티, 빅토리아 플젠압도적으로 털었다. 게다가 맨시티전 3-1승리는 자그마치 맨시티 원정에서 승리한 것이다.[19] 현재 5승0패 15골 2실점으로 조1위를 확정한 상태다. 하지만 2013년 12월 11일 알리안츠에서 벌어진 對맨시티 전에서는 전반 10분 전후로 뮐러와 괴체가 각각 한 골씩 두 골을 넣으며 쉽게 승리를 챙기는 듯하였으나 실바의 골, 콜라로프의 pk와 보아텡의 삽질로 인한 제임스 밀너의 골로 3:2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토마스 뮐러와 21명의 바보들'이라는 짤이 등장하였다.

분데스리가 12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3대0 승리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다 무패기록인 36경기 무패를 경신했다.
2013-14 리가 우승의 패권을 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치른 데어 클라시커에서 마리오 괴체티아고 알칸타라를 연이어 투입시키는 후반 승부수를 통해 3대0으로 도르트문트를 원정에서 털었다. 무패행진은 38경기로 늘었으며 현재 11승2무 승점35점으로 리가 단독선두를 이어가는 중.

그리고 3일 뒤 CSKA 모스크바 원정에서 폭설 속에서도 클래스 차이를 보여주며 3대1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 시즌 8강 유벤투스전 승리 이후 챔스 10연승을 달성했고, 2002-03시즌 FC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뜨렸다.

이후 52경기 무패 행진, 리그 1경기당 2골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3월 26일, 유럽 5대 리그 사상 최단 기간 우승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14년 3월 우승확정 이후 선수들의 미칠 듯한 동기저하가 찾아왔고 최근 10경기에서 4승만을 거두었다. 또한 가장 최근 챔스에서 레알과의 준결승전에서 작년 챔스에서 바르샤를 찢던 포스는 사라지고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털려 1차전에서는 1:0 2차전에서는 4:0으로 통합스코어 5:0이라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볼 소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후 전 시즌 12월부터 급격한 바르셀로나화를 불만족스러하고 팀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며 펩과 티키타카를 디스했던 프란츠 베켄바워 명예회장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레알에게 참패를 당한 후 인터뷰에서 바이에른 선수들의 멘탈을 디스하면서 동시에 펩의 전술을 다시금 디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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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처럼 "팀을 생각 안하는 행동은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로 대변하듯 사무엘 에투, 야야 투레 그리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팀규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선수들은 스타플레이어일지라도 떠나 보낼 정도로 선수들의 기만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감독이었고 마리오 만주키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불화를 겪다가 떠나게 되었다. 시즌초반에 출장을 못 하면서 불화설이 돌다가 골을 자주 넣자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하고 불화설도 사그라들었으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영입으로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고, 포칼 컵 결승에서는 아예 선발에서 제외해버리고 "다음 클럽에서 행운을 빈다"라는 말까지 하여 만주키치를 제대로 빡치게 했다. 결국 만주키치는 라커룸에 짐 다 싸들고 대표팀으로 갔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리고 마리오 괴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로도 모자랐는지 마르코 로이스를 원한다는 루머가 생겼다.링크 그러나 그 루머를 반박하듯이 영입은 이번 여름엔 더이상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

전통적으로 바이에른은 월드컵 종료 후 바로 다음 시즌에 아주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았는데[20][21], 레전드들과 팀의 높으신 분들도 많은 우려를 하고 있으나 펩은 "이 난관은 이미 헤쳐봤다."라고 이 우려를 종식시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펩은 남아공월드컵을 우승하면서 7경기를 모조리 뛰고 돌아온 스페인 국대의 주전들을 이끌고도 바로 다음 시즌인 2010-11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바이에른에서도 그의 마법이 통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2.2. 2014-15 시즌[편집]


2014-15 시즌을 앞두고 브라질 월드컵 우승멤버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들이 휴가중이어서 리베리, 알라바, 레반도프스키를 빼고는 거의 2군들로 시즌을 준비 중인데도 텔레콤컵 등 프리시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22] 그리고 바이에른 팬들이 희망에 젖을 발언을 자서전 발간을 위한 밀착취재도중 직접 했는데, 드디어 자신이 완성시키고 성공가도를 이끈 티키타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새로운 전술을 모색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2013-14 DFB-포칼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썼던 변형3백을 이용한 빠른 템포의 공격을 사용할 수도 있고, 유프 하인케스의 피지컬과 페이스로 찍어누르는 깡패스러운 닥공축구가 재현되기를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다. 그리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 메흐디 베나티아등의 보강을 통해 유럽 최정상급의 스쿼드를 구성했기에 구단과 팬들의 요구수준역시 매우 높아졌다. 적어도 리가 우승,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 정도는 해야 불만이 없을 시즌이기에 펩이 어떻게 시즌을 지휘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이다.


2014년에 바이에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옥토버페스트에 바이에른 선수단과 함께 참여하였다.

2014-15 시즌이 시작, 그가 말한대로 월드컵 징크스따윈 눈씻고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으나 이건 월드컵과 휴가로 독일 국대의 주축들이 복귀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터라 조직력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리고 정규리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복수하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리그에서 무패행진을 기록 중인 데다 포칼도 가볍게 8강 진출, 12라운드까지 단 3실점만 허용했을 정도로 승승장구중이고, 챔스에서도 4연승으로 가장 먼저 조별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5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2대 3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른시간 메흐디 베나티아가 퇴장당해 무려 70분동안 10명이서 싸웠으나 머릿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팀의 클래스를 여실없이 보여주며 선전한 경기였다. 막판 수비들의 어이없는 연속된 실수가 화를 불러왔을 뿐 오히려 경기력은 칭찬해줘야하는 점이다. 유럽 최정상의 스쿼드 뎁스라는 평이 무색할 정도로 부상신이 강림하여 스쿼드가 반토막이 났지만 펩의 적절한 용병술로 계속해서 승리를 챙기고 있다.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은 무재배였으나 홈경기에서 7:0으로 압승하며 가볍게 8강에 진출.

바이에른에서의 2년차 시즌 절반쯤 지난 시점에서, 이번 시즌도 VfL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는 데다 아르연 로번 활용의 극대화,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핑을 겸비한 높은 라인배치로 점유율을 확보하고 수비까지 겸하며 유럽리그 최소실점을 이어가며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비드 알라바필립 람도 매우 잘 다루는데, 두 선수에게 중앙지향적인 임무를 부여해 점유율 확보와 공-수 양면에서 고루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단점도 적잖게 보이는데, 우선 토마스 뮐러의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게 아쉬운데 뮐러도 스탯을 평타 정도는 쌓고있지만 침투와 공간 확보에 강점이 있는 뮐러가 그냥 2선에서 물러나 볼만 돌리고 있는건 좋은 장면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큰 기대를 모았던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 조합도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만으로 평가하자면 실망스러움 그 자체인데, 플랫 3백이나 4-1-4-1을 즐겨쓰는 펩의 성향상 둘을 함께 기용하기엔 전술 자체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물론 알론소나 슈슈 중 한 명만 선발로 세울 경우에는 경기력이 확연히 좋아진다. 후반기 샬케전 무재배 이후 4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때려박으며 연승 행진 중인 것에서 증명된다.

그 후 리그에서는 무난하게 양학을 하면서 리그 우승을 빠르게 확정지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FC 포르투와의 원정 경기에서 3:1로 패하면서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이라는 감독이 로베리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가져온 플랜B로 한심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8강 2차전 홈경기에서는 다시 6:1이라는 깡패 스코어로 승리하면서 비판을 잠재웠다. 하지만 포칼컵 4강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경기도 패하고 부상 복귀한 아르연 로번이 다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레반도프스키까지 부상으로 나가면서 앞날이 캄캄해졌다.

거기다 다음 챔스 4강 상대는 MSN을 장착한 FC 바르셀로나. 여러모로 관심받는 매치가 성사됐다.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끈 펩과 바르셀로나의 대결, 티키타카로 바뀐 바이에른과 반대로 티키타카를 점점 버려가는 바르셀로나라는 점은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차 캄프누 원정에서 3:0으로 패했다. 전반전에 펩이 들고나온 전술은 무려 3백 대인마크. 그 MSN을 상대로 3백을 세웠으며 바르셀로나 선수단 전원에게 맨마킹을 걸었다. 부상신 강림으로 개박살난 팀으로 이런 전술을 들고 나온 것조차 대단하지만, 문제는 경기 시작 15분 만에 파훼되어 버렸다는 점. MSN이 3백을 상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닌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펩이 전술에 수정을 가한 이유는 바로 바르셀로나의 골기퍼 테어 슈테겐. 슈테겐의 장기인 정확한 롱패스가 메시의 백헤딩으로 수아레즈가 자리잡은 수비 뒷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실점 기회를 맞았다. 아마 테어 슈테켄이라는 선수를 분석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한방 먹고 나선 다시금 4백으로 회귀, 축구 역사상 손에 꼽을 명경기를 잘 이어나가다가 70분경 원정골을 위해 프레싱을 시도하자마자 메시에게 완벽하게 털렸다. 펩 입장에선 원정골이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었으니 라인을 높인 것이 이해가 가지만 본인이 메시를 완성했으면서 최악의 수까지 생각을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23] 국내 해축팬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폭풍까임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팬들의 입장에선 2년 전 7:0으로 바르셀로나를 두들겨 패던 팀이 3:0으로 지는 상황에서 화가 안날 수가 없는 듯하다. 거기다가 국내 몇몇 축구 사이트에서는 펩 광신도들의 쉴드까지 합쳐지면서 펩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24] 그 후 대망의 2차전에서는 베나티아의 선제골로 희망이 생기나 했으나 그 후 네이마르에게 원정 골로 두 골을 먹히면서 사실상 올라갈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 후반에 루이스 수아레스가 햄스트링으로 인해 교체되고, 바르사가 이후 리그 컵과 리그 경기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체력관리를 위해 느긋느긋 경기를 진행한 덕분에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추가 득점으로 홈경기는 3:2로 승리하면서 체면치레는 했다.

2014-15 시즌은 리그 우승, 포칼컵 4강,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마쳤다.

아무래도 2013-14 시즌은 부임 시즌이었고, 리그, 리그컵 더블에 챔스 4강은 나쁜 성과는 아닌지라 큰 비판도 없었고 2년차를 기대하는 시각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부임 시즌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되면서 독일내에서도 펩에 대한 시각이 많이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리그 우승은 빠르게 달성하였지만, 그 바이에른의 리그 연속 우승이 시작되기 전의 우승 팀이 어디인지, 그 팀 에이스들이 어디있는지를 보면 그다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할 순 없고, 차포 뗀 도르트문트에게 일격을 당한 포칼컵 4강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챔스 4강 바르셀로나 전의 패배는 펩이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 시즌이었다. 부임 첫 해 만에 트레블을 달성한 바르샤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으로 인해 여태까지의 호성적이 단순 선수빨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2.3. 2015-16 시즌[편집]


바이에른 구단에서도 유임이냐 모가지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일단 유임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15-16시즌에도 바이에른을 지휘하게 됐다. 2015-16시즌에는 과연 바이에른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라이벌레알 마드리드 시절과 같이 흑역사가 될지 판가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첫 경기부터 졌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8월 2일 오전 3시 30분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볼프스부르크와의 슈퍼컵 경기에서 1:1(PK 5:4)로 졌다. 덕분에 펩빡이 언제 잘리나며 폭풍같이 까이고 있지만 시즌 전반기가 지난 현재 바이에른 걱정은 쓸데없다는 걸 보여주듯 모든 대회에서 순항중이다.

2015-16 시즌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맨시티등과 계속해서 링크가 뜨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시즌 전반기가 끝난 뒤에 구단과 재계약에 대해 의논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타블로이드 발이 전부이긴 하지만 맨유와의 링크가 났다. 현재 감독인 판 할이 챔스에서도 떨어지고 본머스에게도 지는 등 똥을 싸지르고 있기 때문에 과르디올라에게 접근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정황상 맨시티는 바르샤 황금세대 당시 보드진[25]을 앞세워 펩과 이야기를 상당히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26] 더군다나 펩의 형 페레 과르디올라는 이미 2013년부터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본인의 에이전트 회사 오피스를 옮겼으며 소리아노 맨시티 회장 주도하에 시티측과 함께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에 있는 히로나 FC의 지분을 공동으로 사들이고 투자하며 뉴욕시티 마냥 위성구단을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27] 처음부터 펩의 맨시티행은 정해져 있던 셈이다.[28] 결국 맨유 보드진은 간보다가 포기하고 차기 감독으로는 무리뉴로 선회한 듯 하다.

독일의 '스포르트1'에서 안첼로티가 바이에른과 다음 시즌부터 3년간의 계약에 합의에 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빌트와 스카이스포트 등 공신력있다는 언론들도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을 떠날 것을 점치고, 안첼로티도 바이에른의 감독이 될 "가능성은 90%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펩이 이번시즌이 끝나고 바이에른을 떠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오피셜은 아니지만, 빌트와 키커에서 펩의 맨시티행을 보도하는 기사가 떴다! 사실상 오피셜만 없을 뿐 맨시티 행이 확실시 되었다.

2015-1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강호 유벤투스를 만나서 1차전 원정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골을 내리 실점하며 2:2 무승부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원정 2:2면 나쁘지 않은 결과고 2차전은 홈인지라 바이에른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판짜기에 말려들어가면서 홈에서 전반을 0:2로 밀린채 마치게 되었다. 감독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챔스 16강 광탈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으나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헤더골로 극적으로 경기를 2:2 원점으로 만들며 연장전에 돌입, 결국 교체투입한 티아고 알칸타라와 킹슬리 코망의 골로 4:2로 역전하며 구사일생으로 8강에 진출했다. 전반 판짜기에서는 패배했지만 후반전과 연장전에서의 적절한 교체카드 투입과 전술수정으로 만회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SL 벤피카에게 1차전 홈에서 1:0 승, 2차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둬 다시한번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감독으로서 참가한 챔피언스리그 7시즌에서 모두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4강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랑 만나게 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지휘하에 라리가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양강의 독주체제에서 기적적으로 이뤄낸 13/14 시즌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유럽 탑클래스급의 강호로 올라섰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공식전은 1974년 유로피언컵 결승전(재경기 포함) 2경기가 전부였기에 매우 흥미로운 매치업. 시메오네 감독과의 지략싸움이 기대된다.

하지만 비센테 칼데론에서 치뤄진 원정 1차전에서, 다소 의아한 선발 라인업을 보여주면서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올 시즌 팀내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는 뮐러를 벤치에 놓고 코망을 선발로 기용한 점이 중심적인 비판.[29] 이 외에도 부상으로 인해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했다는 리베리를 후반에 교체로 내보낸 것,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리면서 베르나트를 레프트로 기용한 것[30] 등에 대해서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비판이지만, 0:1의 패배를 맞이한 순간부터 펩 역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전반전 압도적인 경기력 끝에 사비 알론소의 프리킥 선제골로 기세를 올렸고, 페널티킥까지 얻어내어 2차전 스코어 2:0, 전체스코어를 2:1로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토마스 뮐러의 킥이 얀 오블락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후반전에 페르난도 토레스앙투안 그리즈만의 역습에 치명적인 원정골을 실점하고 말았다. 그래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희망을 살리는 골을 넣었으며 마누엘 노이어가 토레스의 페널티킥을 막는등 마지막까지 1골 싸움으로 몰고갔지만 결국 2:1로 경기 종료. 승리는 거뒀지만 합산 스코어 2:2,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에 의해 또다시 펩의 바이에른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펩 부임후 바이에른은 3번의 챔스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는 라리가 3강을 만났고 결국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 부분이 전임 감독 유프 하인케스의 경우, 라리가 클럽에 굉장히 강했고 특히 2011-12 시즌 4강, 2012-13 시즌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를 연속으로 꺾고 올라갔기에 여기에 대비되어 더더욱 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이후, 2015-16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의 4연패로 이끌었다.[31] 리그 내 우승 경쟁자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팀 역사상 최다 승점을 기록하였음에도 이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바이에른에게 리그 4연패를 안기고 맨체스터 시티 FC로 떠나게 되었다.

리그 최종전 후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결과를 내지 못해 팬들과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바이에른의 감독으로서 임했던 마지막 대회인 DFB 포칼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 뒤 눈물을 보였다.


2.4. 임기 종료 후 평가[편집]


펩이 바이에른을 떠나며 리그 3연패, 3연속 챔피언스 리그 4강, 포칼 2회 우승을 두고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 많은 기사 및 분석들이 쏟아졌다. 리그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팬들의 기대치를 크게 충족시키지 못함에 따라 전체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펩이 나간 이후 뮌헨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잠깐 소방수로 부임했던 때를 제외하면 카를로 안첼로티, 니코 코바치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펩이 있었을 때보다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더 나쁜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일부 펩보이들로부터 3년 연속 4강이라는 펩의 성적이 특별히 못한게 아니라는, 한술 더 떠 오히려 펩이 있었기에 그 정도 성과를 거둔 거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으나, 2019-20 시즌 종료 후에는 펩의 극성 팬들이 주장하던 성공 내지는 평타라는 의견마저 쏙 들어가버리고 비판만이 남았다. 특히 한지 플릭이 저 시절보다 더 얇고 선수 클래스도 좋다고 볼 수 없는 스쿼드로 바르셀로나를 묵사발을 내는 등 엄청난 화력으로 챔스 전승 우승과 트레블을 거머쥐었기 때문. 게다가 플릭 감독은 트레블 스쿼드를 그대로 물려받았던 펩과 달리 코바치 감독이 망쳐놓은 얇은 스쿼드를 물려받으면서 시즌 도중 감독 대행으로 시작했다. 여기에 펩은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 실패를 거듭 반복하며 평가가 떨어지고 있다.[32]

2.5. 바이에른 시절 비판[편집]


펩에 대한 바이에른 팬들의 시선은 매우 곱지 않다. 곱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펩 얘기만 나오면 욕부터 박는 팬들도 있다. 과르디올라는 전 구단인 바르셀로나에서 역대급 성적을 거두었으며 그 경기의 모습 하나하나도 매우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바이에른은 강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5년간 바르셀로나, 레알에 밀려 임팩트를 주지 못했지만, 하인케스가 은퇴하기 바로 직전 시즌에 트레블과 역대급 승률을 달성한 반면, 챔스 준결승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신 펩은 바이에른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트레블 스쿼드를 물려받았지만 챔스 스페인 원정에서 '3경기 3패 & 0득점 5실점'을 기록했다.

2.5.1.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와 스페인 클럽 상대로의 부진[편집]


과르디올라는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던 팀이자 트레블을 이룬 팀을 물려받아서 챔스 우승은 커녕 결승 진출조차 시키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3년 동안 라리가 3대장한테 돌림빵을 당했다. 또한 3년간 챔스 원정에서 4승 4무 8패로 바이에른이라는 클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를 기록한다. 팬들이 기대한 그림은 펩이 하인케스가 이룩한 역대급 팀을 이어받아 바이언을 또다른 유럽의 지배자로 만드는 것이었을 터. 헌데 결승은 커녕 되려 4강에서 라리가 팀들에게 돌림빵만 당하고 말았으니 펩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특히 펩은 2012-13 시즌에 바르셀로나의 점유율 축구를 7-0으로 깨부순 바이에른을 갖고 바르셀로나 시절처럼 점유율 축구를 하겠다며 막강하던 트레블 스쿼드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버렸는데 챔피언스 리그에서 결승에조차 가지 못했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들었다. 펩 다음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 안첼로티니코 코바치도 엄청난 비판을 듣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실패했으나 분데스리가 우승만큼은 달성하며 바이에른 감독으로서 리그 우승은 아무나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33]

바이에른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이유로 라리가 3대장이라는 대등한 상대와 붙었기 때문이라고 쉴드를 치려는 시선도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라리가 3대장을 만났다는 점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맨시티에서 바이에른 시절 그 이상으로 안좋은 행보를 보이니 그나마 재평가(?)되는 것일 뿐. 바이에른 뮌헨은 펩이 감독으로 부임하기 이전까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게 강세를 보여왔었던 팀이다.[34] 이와 더불어 직전 시즌 구단 역사상 최고점을 달성한 팀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마리오 괴체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아르투로 비달과 같은 수준급 선수들이 추가되었는데도 펩이 부임한 이후로 라리가 3대장에게 차례로 돌림빵을 당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지 않을수가 없다. 그나마 14-15 시즌의 MSN 라인이 버티고 있던 바르셀로나 상대[35]로는 해당 시즌의 부상병동도 고려하면 명백히 약세였던 것은 맞다.[36] 하지만 13-14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전에서의 치욕스러운 5-0 대패를 당한 것과 분명히 전력상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탈락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평이 중론이다. 특히 펩 시절 당한 대패를 시작으로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상대전적이 뒤집히게 되었고, 이는 바이에른 팬들이 펩을 싫어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펩이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으로도 여전히 챔피언스리그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던 2019-20시즌, 니코 코바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인해 경질되고 감독 대행으로 온 한지 플릭 감독이 중도 부임하고 6관왕을 차지하여 펩의 얼굴만 더 붉어지게 되었다.

2.5.2. 의료진과의 마찰[편집]



바이에른 팬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이에른 팀닥터인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와의 충돌이다. 볼파르트는 1977년부터 바이에른에서 일해왔다.[37] 바이에른 팀닥터는 바이에른 뿐만 아니라 독일 국대랑 개인 병원 업무도 보고 있는데 그 때문에 훈련 중에는 트레이닝 그라운드에 있지 않고 5마일 떨어진 자신의 진료실에서 있었다. 펩은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고 티아고 알칸타라가 부상을 당했을 때 둘의 관계가 극에 달했다. 그 당시 티아고의 에이전트이자 펩의 동생인 페레와 펩은 팀닥터랑 상의하지 않고 치료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보냈다. 이는 팀닥터에 대한 무시를 의미했고 티아고에게도 치명적이었다. 티아고는 몇 달 지나지 않아 같은 부위에 부상이 재발하였고 후에 펩이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받은 치료가 큰 실수였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레버쿠젠과의 포칼 경기에서 메흐디 베나티아가 부상을 당하자 볼파르트를 항해 박수를 치면서 조롱하는 일도 있었다. 2014-15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FC 포르투 원정에서 3:1로 털렸고[38] 루메니게가 펩한테 뭐라고 하자 펩은 타겟을 의료진으로 돌렸다. 그러자 열받은 볼파르트랑 메디컬 스탭들이 전부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유프 하인케스가 팀에 돌아왔을 때 다시 바이에른으로 복귀하였다.[39] 볼파르트와의 사건은 후에 펩의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성적을 넘어 자신의 좁은 속을 제대로 보여주는 흑역사가 되었다.

2.5.3. 약화된 측면 공격력[편집]


소위 레바뮌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고 봐도 무방한 2012-13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이 의미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비교대상인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역대급 득점력을 가진 크랙이 없는 상태에서 팀 자체가 엄청난 공격력으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윙어들이라고 볼 수 있는 로베리 라인[40]과 그 뒤를 받쳐주는 필립 람, 다비드 알라바 풀백 라인으로 대표되는 황금날개진이 한 몫했다. 이들은 빠른 스피드와 측면에서 상대를 썰어가며 수비진을 와해시키는 정교한 플레이를 통해 당시 게겐 프레싱 열풍이 불던 분데스리가의 중원을 붕괴시켰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선 제대로 된 압박조차 하지 못하는 타 리그 팀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체제의 바이에른은 이미 중원의 뎁스가 충분한 데도 필립 람과 알라바를 중원으로 올려 중원 장악력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는데, 그 선수들이야 월드클래스급이라 중원에서도 역대급 활약을 보여주었지만[41] 문제는 그 두 선수의 측면 대체자들이 클래스에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측면의 공격력은 아군 측면의 수비력까지 상승시키는 부가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속도[42]를 가지고 있는 윙어진 상대로 상대 수비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속도에서 털리지 않도록 측면 라인을 내리는 것뿐이다. 거기에 람과 알라바 같은 월드클래스 풀백의 지원까지 기대된다면 상대 풀백은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허나 람과 알라바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측면 공격력이 반토막나자 더 이상 풀백의 오버래핑이 위험부담이 크지 않게 되었고, 로베리마저 부상으로 이탈하자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들이 14/15 리가 볼프스부르크전 4:1 대패와 14/15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 원정 3:0 대패. 람과 알라바의 대체 풀백들은 수비력 조차 바이에른 기준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고 결국 충분한 기량의 윙어를 상대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측면 수비까지 무너지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애초에 바이에른이 라리가의 강팀들을 무너뜨릴 수 있던 원동력은 중원의 강력한 압박과 측면의 엄청난 기동력을 활용한 다양한 패턴의 공격이었는데, 람과 알라바를 중원으로 올린 것은 바이에른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없애버린 꼴이었다. 애초에 예나 지금이나 바이에른은 압박과 측면 공격력을 주무기로 삼는 팀이지, 점유율을 앞세워서 느릿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팀이 아니다. -

2.5.4. 아쉬운 플랜 B 전술[편집]


과르디올라는 전술적으로 경직되었다는 말을 듣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적어도 과르디올라가 시즌 내내 선보이는 시스템은 매우 다양한 편이다. 척 보면 매우 난해한 포메이션을 들고 오거나 선수의 위치를 갑자기 단발성으로 변경한다거나 등등. 문제는 전술의 전체적인 큰 틀은 항상 똑같은 점유율 축구이기 때문에 늘 똑같은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마다 조금씩 변화를 줄 지는 몰라도 결국 라인을 끌어올리고 점유율을 지배하는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역습에 취약하다.

압도적인 우승이 가능한 리그에서는 이에 대한 단점이 티가 나지 않았으나 역시 챔피언스리그가 문제였다. 2013-14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매우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음에도 역습으로 총합 5실점을 허용해버리고 2015-16 시즌에도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에게 같은 방식으로 밀린 게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 특히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기 직전 트레블을 이룩했던 바이에른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이를 갈아버린 과르디올라에게 더 큰 비판이 쏟아졌다.


3. 맨체스터 시티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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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일,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계약이 발표되었다.


3.1. 2016-17 시즌[편집]


나의 우상 알렉스 퍼거슨도 맨유를 우승시키는데 7년이 걸렸다.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는 간단하지 않다.

- 펩 과르디올라. 시즌 초반 부진에 대해.[43]

[44][45]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선수영입 오판이 주요한 실책이라고 평가된다. 바로 재앙적인 풀백의 보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수비의 불안정과 간헐적인 볼 배급으로 이어져 과르디올라의 패싱축구 주축이 무너저 내렸다. 결국 16 /17시즌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첼시에게 더블을 당했고[46] 우승권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챔스도 모나코와의 1차전에서 5:3으로 이기면서 리드를 가져갔지만 2차전 원정에선 1:3으로 패배하여 펩 커리어 처음으로 16강에서 탈락했다. 리그에서 에버튼에게 4:0으로 얻어터지는 굴욕도 당하기도 했고,[47] 과르디올라로서는 혹독한 첫 시즌을 치렀다. 그나마 가능성 있었던 잉글랜드 FA컵에서도 준결승전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전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연장전에 돌입한 끝에 알렉시스 산체스의 결승골로 사실상 무관의 시즌으로 마무리하게 될 운명에 처했다. 이는 최근 맨시티의 리그 성적 중 가장 부진한 기록이며 심지어 전임 감독의 마지막 시즌 성적과도(리그 4위, 리그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뛰어나지 않거나 떨어진다.

펩의 첫 번째 시즌에 대한 평가는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실망스럽다는 점에는 당연히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감독의 문제인지, 전임 감독의 실책인지, 이적을 담당하는 단장의 실책인지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세 가지 요인이 모두 있다고 볼 수 있다.

펩의 문제는 늦은 교체 타이밍, 전술 고집, 클라우디오 브라보로 요약되며 전임 감독과 단장의 문제는 리빌딩이 너무 늦었다는 것, 모두 30대였던 4명의 풀백(가엘 클리시,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바카리 사냐, 파블로 사발레타)으로 요약된다.

일카이 귄도안, 뱅상 콩파니, 가브리에우 제수스의 장기부상, 그리고 브라보도 물론 부진에 한몫했다. 펩의 1호 영입이었던 귄도안의 부상과 함께 시즌 초반의 맨시티의 기세가 꺾였고, 콩파니의 존재감은 콩파니가 돌아온 시즌 후반부의 수비안정화로 드러났으며, 또 다른 영입선수 제수스는 좋은 폼으로 시티를 캐리하고 있을 때 부상당했다. 브라보는 홀로 승점을 여러 번 까먹은 시즌 최악의 영입이었다.[48]

3.2. 2017-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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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초기부터 무패행진을 시작하며 7라운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공동 1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8라운드에 맨유가 리버풀과 비긴 뒤로, 승점 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챔피언스 리그 조별단계에서도 강적 나폴리를 홈과 원정에서 모두 이겼으며, 조 1위를 조기에 확정짓고 마지막 한경기 샤흐타르 원정에서는 비록 졌지만 유망주들을 대거 투입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다음 경기가 리그 맨체스터 더비였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17일 현재, 리그 2위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올드 트래포드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고 스완지 시티 원정 경기에서 4:0 완승을 거뒀고, 토트넘에게 4:1 대승을 거두고,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0:0으로 무승부하기 전까지 리그 18연승으로 EPL 역사상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웠다.[49], 2위 맨유에게 승점 15점차로 앞서가며 리그 1위를 독주하고 있으며, 성적만 좋을 뿐만이 아니라 경기력 상으로도 다른 빅 6 팀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호성적은 풀백진 전면교체와 새 골키퍼 에데르송의 영입으로 이제서야 펩이 원하는 전술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2년차가 되면서 핵심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펩이 추구하는 전술 자체는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라힘 스털링, 존 스톤스, 그리고 니콜라스 오타멘디는 눈에 띄게 개인 실력이 향상되었다. 포지션 변경 후 리그 상위급 왼쪽 풀백으로 변신한 파비앙 델프도 빠질 수 없다. 이러한 펩의 업적들에 힘입어 지난시즌 펩을 비판하기 바빴던 잉글랜드 미디어들이 대부분 펩의 능력에 대해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여러모로 운도 따라주고, 선수단이 경기 자체를 즐기면서도 우승컵에 대한 열망으로 뭉쳐있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이번 시즌은 뭔가 특별하다'라고 느끼고 있다고. 사람들은 전반기가 지난 지금 이미 시티의 리그 우승은 확정적이라고 볼 정도.

23R 안필드 원정에서 리버풀의 클롭이 쓴 맞불작전과 전방압박으로 인해 4:3으로 패해 리그 첫 패배를 기록했다. 맨시티의 안필드 징크스 + 펩의 전술적 천적인 클롭 감독이 겹쳐진 결과.[50]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을 착용해 잉글랜드 축구협회에 기소되었다.[51] 노란 리본의 의미에 대한 스카이스포츠 기옘 발라그 기자의 칼럼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바젤 원정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을 거의 확정지었고, 30라운드 기준 리그에서 26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승점 81점을 확보했고 2위 맨유와의 격차를 16점차로 유지하여 우승 가능성의 9부능선을 넘었다. 아쉽게도 FA컵에서 16강에서 0:1로 패배하며 탈락하고 위건 징크스는 넘지 못했지만, 아랫단계에서 승부차기를 2번이나 이기며 힘겹게 올라온 EFL 컵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3:0으로 완파하고 맨시티에서의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29R 첼시전 승리 후 익룡이 되었다. 삐야아아악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리버풀 FC에게 3:0으로 완파당하며 또 다시 챔피언스리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맨유와의 홈경기에선 전반까지 2-0으로 앞서다 후반 3골을 허용해 역전패했고 리버풀과의 8강 2차전에선 1-2로 역전패했다. 펩은 토너먼트에 강한 감독이 아니라는 주장이 지지받고 있으며 클롭 정도의 감독이 펼치는 게겐프레싱이 펩에겐 치명적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충격적인 3연패 후엔 토트넘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3-1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1승을 남겨놓았다. 같은 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패배하면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지만 리그 최하위팀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를 홈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질 확률이 거의 없어 보였는데, 맨유가 0-1로 충격패를 당하며 골프를 즐기는 사이에 우승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라리가,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를 모두 우승한 감독이 되었다.

우승이 확정된 35라운드 스완지시티와의 홈 경기부터 시작하여 4승 1무를 기록, 맨시티는 승점 100점을 달성했다. 특히 마지막 사우스햄튼 원정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까지 0-0 유지되다가 가브리엘 제수스의 환상적인 결승골이 터지며 극적인 1-0 승리로 승점 100점이 채워졌다. 잉글랜드 1부리그 시즌 최다 승수(32승), 최다 승점(100점), 최다 득점(106골), 최다 득실차(+79) 등등 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시즌 종료 후 맨시티 구단과 2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펩이 계약기간을 지킬경우 그는 총 5년간을 맨시티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바르셀로나 1군 (4년), 바이에른 뮌헨 (3년) 에서 있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다. 맨시티의 현 보드진이 펩의 바르사 시절 보드진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내 정치 갈등이 사실상 없고, 본인이 시티의 젊은 1군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으며, 만수르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게다가 그동안 과르디올라의 가족들에게 있어 잦은 이사가 자녀들에게 특히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3.3. 2018-1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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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조별라운드 1차전 리옹과의 홈 경기에서 펩 감독이 전 시즌 징계로 자리를 비우자마자 팀은 정줄을 놓은 채 대패하고 말았다. 뱅자맹 멘디페이비언 델프 두 유리몸으로 구성된 왼쪽 풀백, 그리고 점점 30대 중반에 진입하고 있는 페르난지뉴가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시티의 약점. 이 두가지 약점을 펩 감독이 극복할 수 있느냐가 이 시즌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위 두가지 약점과 핵심자원 케빈 더브라위너와 로테이션 자원 다닐루의 전반기 부상 결장이라는 불운 때문에 12월 중순부터 팀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멘디는 11월 초에 일치감치 3달짜리 큰 부상을 당하며 아웃되었고, 델프는 지난 시즌에 비해 폼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페르난지뉴는 12월 초 까지는 어떻게든 대체자원 없이 버텼으나, 결국 12월 말 가장 바쁜 박싱 위크를 앞두고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오랜 결장은 투 실바의 혹사로 이어졌고, 다비드 실바는 12월 중순에 부상, 베르나르두 실바도 폼 저하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닐루가 전반기 내내 부상과 복귀를 반복하며 3경기 출장에 그치자 워커의 혹사로 이어져 워커마저 폼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 프리미어 리그 첼시 전에서 2대0 패배를 당했고, 그 이후로 계속 팀이 꾸준히 흔들리며 16-17시즌 이후 처음으로 위기에 처했다. 에버튼 전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나 했지만 페르난지뉴가 부상으로 결정한 경기에서 2패를 당하며 리그에서는 토트넘에 밀린 3위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리버풀은 무패로 리그 전반기를 마무리하며 우승에 한걸음 더 다가간 상태.

리그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리버풀과의 에티하드 홈경기에서 리버풀을 2:1로 꺾으면서 승점차를 4점으로 좁히고 다시 리그 우승 경쟁에 합류했다. 멘디, 브라보를 제외한 부상 선수들이 전부 복귀하면서 팀 전체 컨디션도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뉴캐슬 전에서 또다시 1:2 패배를 당하면서 레스터 시티와 무승부를 기록한 리버풀과의 격차는 다시 5점차로 벌어졌다.

뉴캐슬전 뒤에 있었던 리그 경기들에서 아스날-에버튼-첼시를 연파하며 같은 기간 동안 1승 2무를 기록한 리버풀에게 1점차로 턱밑까지 추격했고, FA컵에서도 순조롭게 8강에 진출했으며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FC 샬케 04 원정에서 힘겹게 3:2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EFL컵 결승에서 첼시와 0:0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고, 에데르송 모라에스 골키퍼의 활약으로 승부차기 4:3 승리를 거두며 2회 연속 EFL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는 샬케에게 홈에서 7:0 압승을 거둬 8강에 진출했고, FA컵 8강과 4강에서는 스완지 시티와 브라이튼을 꺾어 맨시티의 6년만의 FA컵 결승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승리 행진을 멈추지 않아서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무승부를 거둔 리버풀을 제치고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우세가 점쳐지던 토트넘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1차전 원정 1:0 패배, 2차전 홈 4:3 승리, 도합 4-4로 밀리며 8강에서 탈락했다. 펩의 주요 비판거리 중 하나인 토너먼트에서의 약세와 원정 약세를 모두 극복하지 못한 아쉬운 경기였다. 특히 1차전에서 이번시즌 내내 폼이 극악이었던 델프를 인버티드 풀백으로 출전시키며 평소 신념과는 달리 실리적인 운영을 하다가 원정골을 넣지 못하고 패배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는 직전시즌 8강 리버풀 원정에서 중원을 강화한답시고 오른쪽 윙어 대신 귄도안을 출전시켰다가 밸런스가 무너져 폭망하고 만 것을 기억나게 했다. 델프는 게다가 1차전 손흥민의 득점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펩시티 3년간 챔피언스 리그 16강-8강-8강이란 성적은 시티의 스쿼드와 펩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다. 특히 상대가 '0입' 토트넘이라면 더더욱. 압도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도 토너먼트에 약한 감독이라는 지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2019년 5월 12일 최종전 브라이튼 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의외로 한동안 선발로 기용하지 않던 리야드 마레즈를 선발 출전시켰는데, 마레즈가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이게 적중했다. 그리고 펩은 2000년대 후반 퍼기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지막 전성기 이후로 오랜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2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퍼거슨, 무리뉴에 이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세번째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유럽 5대 리그 중 3대 리그에서 연속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18/19시즌 PL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FA컵에서도 결승전에 도달하여 왓포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의 리그, FA컵, 리그컵 우승이라는 도메스틱 트레블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실패는 계속해서 꼬리처럼 따라붙게 되었다.


3.4. 2019-20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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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레전드 주장이자 커맨더형 센터백인 뱅상 콩파니가 이적했으나 센터백을 영입하지 않은채 3명의 센터백으로 시작을 시작하면서 18-19와 마찬가지로 겉보기와는 달리 전력에 불안의 여지를 남겼다. 펩은 보드진에 해리 매과이어의 영입을 요청했지만, 맨유와의 매과이어 이적료 경쟁에서 패배한 후 플랜 B가 없었기 때문. 물론 그럼에도 객관적인 맨시티의 스쿼드 전력은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가 맞다.

그런데 리로이 자네에므리크 라포르트가 시즌 초반부터 장기 부상을 당하는 불운이 겹치면서 팀의 공수 밸런스가 붕괴된 채로 암울한 전반기를 보내게 되었다. 특히 핵심 수비수 라포르트의 부상이 치명적이었다. 그동안 팀의 수비적 약점인 레프트백의 뒷공간을 라포르트의 수비력으로 커버하고 있었는데, 라포르트가 부상으로 빠지자마자 수비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페르난지뉴가 주전 센터백으로 뛰고 있으나 니콜라스 오타멘디의 심각한 폼 하락 때문에 오타멘디 쪽에서 계속 실점이 나오며 존 스톤스도 오타멘디보다 조금 더 나을 정도이지, 믿음직한 모습은 보이지 못하였다. 자네의 부상도 마찬가지로 왼쪽 측면 공격전술이 단조로워지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유일한 왼쪽 측면 자원인 스털링은 혹사를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초에는 무너진 수비 밸런스를 보조하겠다고 일카이 귄도안을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4231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는데, 문제는 일카이 귄도안이 하프 스페이스를 전혀 공략하지 못하면서 팀의 오른쪽 공격이 죽어버렸다. 케빈 더브라위너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극상의 폼을 보여주던 리야드 마레즈가 더브라위너가 경미한 부상으로 빠지고 귄도안이 선발로 나오자마자 오른쪽 측면에서 고립된채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중. 귄도안이 왼쪽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할 경우도 마찬가지로 다비드 실바가 출전한 경기에 비해서 왼쪽 측면 공격이 죽어버리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11월 말 기준 귄도안이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을 경우의 승률은 37.5%로 맨시티의 다른 선수들의 출전경기 승률에 비해 처참하게 낮다.

리버풀과의 리그 맞대결에서 3:1로 더브라위너를 세컨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위치에 놓으며 승부수를 띄웠으나 1-3으로 대패했고 다음 경기 첼시전에서 이기긴 했으나 신인 감독 램파드에게 53.3%의 점유율을 내줬다.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기준 선두 리버풀과의 승점차가 11점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12월 7일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철저하게 전술이 파훼되어 홈에서 1:2로 패배하고 말았다. 맨더비의 경우, 그동안 패배의 아이콘이었던 귄도안이 선발 출전하지도 않았던 경기였다. 결국 라포르트와 자네의 장기 부상 이후 전술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9-20 시즌 전반기를 요약하면 자네와 라포르트의 부상이 감독의 경기 플랜에 치명타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감독의 대처 능력도 절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센터백 둘이 이적하며 3명의 센터백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레프트백은 모두 지나치게 공격적이기만 한 자원들이고, 이미 워커가 자리잡은 라이트백에 칸셀루를 사오고 양 풀백 땜빵이 가능한 다닐루를 내보내는 엄청난 실책을 저질렀으며, 덕분에 저번 시즌 더블 스쿼드가 가능했던 팀은 공격과 미드필더진의 뎁스만 비정상적으로 두껍고 수비진은 리버풀보다 훨씬 얇은 기이한 스쿼드가 된데다가, 주전 센터백인 라포르트와 스톤스의 부상 및 오타멘디의 폼 저하로 이는 재앙이 되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전반전을 4-4-2로 틀어막은 후 후반전 선제골을 내주자 스털링을 투입하여 4-3-3으로 복귀해 원정골을 위한 공격적인 포메이션으로 바꾸면서 2:1 귀중한 원정 승리를 가져왔다.

EFL컵 아스톤빌라와의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하며 EFL컵 3연패를 이룩했고 과르디올라 개인 통산 29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리그 31R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면서 리그 8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경기의 패배로, 2위 맨시티와 무려 승점 23점 차로 벌리며 압도적 선두를 달리던 클롭의 리버풀이 결국 2019-2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빠르게 조기 확정짓게 되었다.

이번 시즌 리그 우승을 허무하게 리버풀에 넘겨준 것과 별개로, 솔샤르의 3백 카운터 어택에만 3번을 당하며 새로운 상성을 만나고 있다. 선수들의 어이없는 실수가 더해진 경우도 있지만 경기의 다수가 맨유의 역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실점을 허용하거나 점유율만 높고 비효율적인 전개만 반복되는 등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후 38R 최종전까지 진행된 결과 리그에서 26승 3무 9패, 결국 펩 감독 커리어 사상 리그 최다패를 기록한 시즌이 되고 말았다. 펩 감독 커리어 12년 동안 리그 우승을 못했던 경우는 2011-12 시즌 라 리가와 2016-17 시즌 프리미어 리그 뿐이었는데, 결국 이번 2019-20 시즌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에게도 리그 우승의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특히 우승을 놓쳤던 시즌들 중 가장 큰 승점 격차인 18점 차이로 밀렸다는 게 더욱 뼈 아프게 다가온다.

FFP 문제를 매듭지었고 리그 일정은 끝났지만, 아직 챔스에서 레알과의 16강 2차전이 남아 그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FA컵에선 아스날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며 4강에서 탈락하였고,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라파엘 바란의 호러쇼와 함께 의외로 전술 싸움에서 승리하며 1,2차전 합계 스코어 4:2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는 상대 전적으론 밀렸지만(1무 1패), 맨시티의 전력으로는 가볍게 이길 수 있는 팀이자 2019-20 시즌 리그 1 7위를 기록한 올랭피크 리옹을 만났다. 그러나 시티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쓸데없는 변칙 전술로 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반응이 돌았는데, 역시나 그동안 쓰지도 않던 3-4-1-2 포메이션을 쓰는 등 또 황당한 전술을 꺼내들었고 결국 졸전 끝에 1:3으로 패배하여 8강에서 탈락하였다. 난데없이 공격이 아닌 수비에 중점을 둔 쓰리백으로 50분 내내 고전했음에도 전술에 변경을 가하지 않은 펩의 선택과 전술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더욱 비판 받는 건 훌륭한 전력을 지니고도 4년 내내 명장병과 함께 똑같은 시나리오로 탈락하며 본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본인만 여전히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매우 실망스러웠던 2019-20 시즌, 그리고 2020-21 시즌 초반의 부진 때문에 펩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까지 나왔었다.[52] 그러나 다행이도 2019-20 시즌의 실패는 2020-21 시즌 극적인 반등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펩이 실수를 인정하고 변했기 때문이다.

3.5. 2020-21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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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는 지난 시즌 챔스 일정으로 인해 타 클럽들 보다 1주 늦게 2R부터 리그 첫 경기를 가졌다. 팀 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와 부상자가 속출해서 시즌 초반 몇경기에는 맨시티 답지 않게 벤치에 유스들이 앉아있었다. 비록 개막 시점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11월이 다가오는 지금 시즌 출발이 매우 저조한 편이다. 공격과 수비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총체적 난국. 공격적으로는 다비드 실바의 이적으로 인해 더 브라위너 의존 현상이 더더욱 심화되었으며, 스털링과 마레즈의 처참한 경기력으로 인해 심각한 골 결정력 문제를 보이고 있다. 수비적으로는 디아스를 영입하기 전까지 호러쇼를 보이고 있었으나, 다행이도 디아스가 이적하자마자 준수한 활약을 보이면서 급한 불은 껐다.

2020년 11월까지 펩 체제의 맨시티는 이전 시즌보다도 더 참담한 스타트[53]를 보이고 있는데, 첫번째 이유로는 외관 상 제일 큰 문제점으로 보이는 수비진의 부진함이다. 우선 펩이 제일 기대를 많이 걸고 영입한 그 똘끼형 풀백이 아직도 부상과 폼 저하에 허덕이고 있고,[54] 센터백 역시 네이선 아케후벵 디아스를 영입했지만, 둘 중 하나라도 부상이나 징계 등으로 나가리 된다면 와장창 무너지는게 현실이다.

두번째로는 다비드 실바의 역할이었던 왼쪽 메짤라 자리가 사실상 무주공산 상태라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비록 마지막 시즌인 2019-20 시즌은 노쇠화로 그 위력이 줄었다곤 해도 펩시티에서의 다비드 실바는 팀을 완강히 굳혀둔 접착제와 같았다. 전반적인 미드필드진의 지휘와 더불어, 팀의 템포 조절 그리고 다들 어딘가 좀 이상한 풀백들의 플레이와 오버래핑, 연계까지 커버해주었기 때문. 물론 다비드 실바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비슷한 수준까지도 대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 유력한 후보였던 베르나르두 실바는 여전히 주 포지션이 아니면 그의 장점이 하나라도 발휘되지 못해 공기가 되고, 필 포든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며, 일카이 귄도안은 그 자리에서 잘한 경기보다 도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경기를 찾는게 더 쉬운 정도이다. 이 때문에 펩은 계획에도 없던 투볼란치를 사용하고,[55] 안그래도 중원에서 굉장한 비중을 차지하는 케빈 더브라위너의 부담감이 막중해지는 결과로 초래된다.

마지막으로, 공격진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주포인 아궤로와 세컨 옵션 가브리에우 제주스가 번갈아 부상으로 빠지게 되어 원톱 자원이 삭제되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이때문에 가뜩이나 득점 부담을 안게되면 부진하는 라힘 스털링이 강제로 원톱으로 출전하여 똥을 듬뿍 싸는 활약을 펼치게 된다. 베르나르두 실바는 여전히 오른쪽 윙포워드 자리에서 차라리 없는게 나을 정도의 존재감을 뽐내고, 베실바의 부진으로 그나마 믿을맨 이었던 리야드 마레즈도 갑자기 나사 몇개 빠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영건들인 페란 토레스필 포든이 번갈아가며 종종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 게 그나마 고무적이지만, 이들에게 무작정 믿고 기대할 만큼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2017-18 시즌, 2018-19시즌에도 간간히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점들이 하나도 개선이 되지 않았고, 모든 게 종합 선물 세트처럼 터져버린 게 이번 시즌의 초반이라고 볼 수 있다.

11월 19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까지. 이번시즌 초반 성적이 썩 좋지 않음에도 바로 재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아 보드진이 리오넬 메시 영입 추진 의지를 다시 공표했다는 시각이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메시의 맨시티 이적 조건은 자신의 친구인 세르히오 아궤로와 은사 펩 과르디올라의 맨시티 잔류이기 때문이다.

재계약 소식 직후에도 리그는 좀처럼 반등을 못하고 있었다. 훨씬 유리했던 11R 맨체스터 더비에서[56] 소극적인 경기 운영과 단 1장의 교체카드 활용으로 무기력한 0-0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12R 강등권인 wba와의 홈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좀처럼 9위권에서 반등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리그 승률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보다도 낮다(...). 현지에서는 #pepout의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12라운드 무승부 이후, 팀 내부적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회의들이 있었고 이것이 극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어서 크게 망할뻔한 시즌이 성공적인 시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57]

이후 아스날 상대로 4:1 대승, 코로나로 선수단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첼시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유럽 대항전 티켓 및 우승 경쟁에 합류했다. 그리고 카라바오컵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특히 카라바오컵 맨유와의 준결승전에서는 자신이 왜 명장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전술운영으로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를 성대로 4:0 대승, 리그 2위로 도약하며 리그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현재 리그 10승 5무 2패 승점 35점으로 리버풀보다 승점 1점이 더 높다. 이로써 프리미어리그 우승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2:0 승리하는데 성공하면서 리그 2위를 지켜내었다. 두 경기 덜 치르고도 맨유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그리하여 초반의 부진을 딛고 펩의 맨시티는 완전히 정상궤도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2월 7일 시점에서 모든 대회 포함 무려 14연승 중으로, 1승만 더하면 잉글랜드 최장 연승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후 찰튼햄과의 FA컵 32강전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 최장 연승 기록인 15연승을 달성했다. 3월 2일 시점에서 무려 21연승 중이다. 3월 3일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와의 승차가 5경기로 벌어지면서 리그 11경기를 남기고 사실상 우승에 가까워졌다.

2020-21 시즌 반등에 성공한 이유는 위 단락에 기술되어있던 시즌 초반의 세가지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후벵 디아스, 존 스톤스의 강력한 파트너쉽이 수비 불안을 해소했다. 원래부터 믿을맨이었던 카일 워커뿐 아니라, 좌측 우측 가리지 않고 축신이 된 주앙 칸셀루, 지난 시즌의 부상과 부진을 딛고 부활한 존 비브라늄[58], 니콜라스 오타멘디의 노쇠화로 인해 이를 대체한 부상 없는 콩파니, 부족했던 선방 능력이 발전한 에데르송 모라에스, 그리고 페르난지뉴의 대체자로 각성한 로드리까지 2020-21 시즌 맨시티의 수비진은 그 어느 시즌보다 단단해지며 리그 최저실점, 리그 최다 클린시트를 기록하고 있고, 이전 시즌에 비해 약해진 공격력을 수비력으로 보완하고 있다.[59] 그리고 감독 본인도 팀의 공수 밸런스를 다시 맞추고, 2019-20 시즌 도중 부임한 수석코치 리요[60]와 함께 현 스쿼드에 맞는 새 세부 전술을 완성시킨 모습이다.

두번째와 세번째 문제로 지적되었던, 레전드 다비드 실바의 공백 그리고 공격수들의 부진은 전술 조정과 일카이 귄도안의 역할 변화로 메꿨다. 우선 공격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거의 경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제로톱(펄스 나인) 전술을 꺼내들었다. 애제자 귄도안에게 더 공격적인 처진 공격수 역할을 부여했고, 귄도안은 시즌 중반 대단한 득점행진을 보였다. 원래 귄도안이 담당하던 빌드업은 주앙 칸셀루로드리가 분담했다. 칸셀루가 인버티드 윙백으로 나와서 시즌 중반 놀라운 영향력을 보였고, 로드리의 전진 패스 능력이 지난 시즌에 비해 매우 발전했기 때문에 귄도안이 더 자주 페널티 박스로 침투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또한 필 포든, 리야드 마레즈가 좋은 기량을 보이며 득점이 분산되었고, 결정적인 순간들에 수비수들의 세트피스 득점도 터지면서 상승세를 탔다. 원래 2017-18 시즌까지 함께했던 도미니크 토렌트 수석코치의 이적 이후 세트피스 상황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맨시티였는데, 리요 수석코치의 부임과 함께 세트피스 기회를 다시 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빈 더브라위너의 맹활약과 함께 펄스나인 전술이 메인 전술로 정착되며 3월 2일 시점에서는 '약해진 공격력' 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프리미어리그 최다득점 팀으로 올라섰다. 그동안 항상 간판 스트라이커 아구에로의 득점력에 크게 의존했던 시티를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이다.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와 컵대회 결정전에서도 이전 시즌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도르트문트를 1, 2차전 합계 4:2로 꺾고 부임 이후로는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항상 8강에서 변칙 전술을 남발하다가 득점은 못한 채 어이없게 실점하며 탈락하더니 이번에는 주전 베스트 일레븐을 출전시키고 제로톱 전술로 무난하게 올라갔다. 준결승 상대는 2년 전 자신을 8강에서 떨어트렸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끄는 PSG가 되었다.

챔스 여파로 FA컵 준결승에서는 8명을 로테이션으로 돌렸고 잘 쓰던 포메이션까지 바꿔버리는 바람에 1:0으로 패하여 쿼드러플은 일단 실패하게 되었다.

토트넘과의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챔스를 대비해 로테이션을 돌린데다 제로톱을 사용해 좀처럼 토트넘 수비를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득점에 성공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최소 2관왕은 매우 유력해졌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카라바오컵 우승으로 러시아의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감독을 제치고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든 감독 3위로 올라섰다.[61]

PSG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서는 우측 미드필더인 실바를 올려서 더미 플레이를 시켰다. 좌측 풀백인 칸셀루를 중앙에 더 가까운 위치로 부른 뒤 더브라위너 , 로드리 , 귄도안에게도 중앙에 신경쓰게 해서 경기장 좌측과 중원을 잡고 우측 빈 공간에 있는 실바나 마레즈의 득점을 노렸다. 그러나 칸셀루와 로드리가 부진했고 , 팀이 이른 시간 선제 실점을 한데다 PSG의 압박에 고전하자 , 후반에는 칸셀루를 본래대로 벌려 뛰게 했고 여의치 않자 진첸코로 교체했다. 또 좌측 윙인 포든을 중앙에 신경쓰게하고 , 더브라위너에게 프리롤을 주었다. 그러자 후반 18분 파이널 서드 시작 지점에서 더브라위너의 중거리 골이 터졌고 , 좌측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며 돌파하던 포든이 좋은 프리킥 기회를 마련했다. 맨시티는 이때 키큰 선수들로 상대 수비벽에 붙어서 상체를 숙여 골키퍼의 시야를 잠시 방해하면서 수비타이밍을 뺏는 전략을 사용했고 후반 26분 마레즈의 프리킥 골이 나오면서 2:1로 승리했다.

PSG와의 챔스 4강 2차전에서는 실바와 더브라위너를 동시에 위로 올려 프리롤 역할을 2명에게 부여했고 진첸코 그리고 이날 생일이었던 페르난지뉴를 선발로 투입시켜 수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 결과 골이 필요한 PSG를 상대로 유효슈팅 0개로 묶으면서 2차전을 무실점으로 승리하고 맨시티의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펩 본인에겐 10년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 또한 리오넬 메시스페인의 세 레전드 미드필더들 없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처음이다.

35R 첼시전에서는 대거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최근 폼은 좋지 않지만 득점력은 보장되는 스털링, 아궤로, 제주스를 선발 출전시켰으나 2:1로 패하여 우승 확정에 실패했다. 그러나 5월 1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레스터 시티에게 패배하면서 맨시티의 2020-21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확정되었다. 펩의 맨시티 부임 5시즌 동안 세번째 리그 트로피로써 프리미어리그에서 3회 우승을 달성한 주제 무리뉴, 아르센 벵거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챔피언스리그 첼시 FC와의 결승전에서 또 다시 시그니처 명장병이 도지면서 언더독으로 평가 받던 첼시에게 패배하고 우승에 실패했다. 최악의 폼을 선보이는 라힘 스털링을 선발로 내세우고,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인 로드리, 페르난지뉴는 모두 벤치에 내버려둔 채 일카이 귄도안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맡기며 환장하는 공수 밸런스를 보여주었다. 이 라인업은 챔스 조별리그에서 딱 한번 세웠던 전술인데 선수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전술을 결승에 내놓고야 말았다. 결승까지 오면서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전술과 라인업을 들고 나왔음에도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모든 걸 깨뜨려 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는 평이 많다.[62][63] 결국 그나마 분전하던 케빈 더브라위너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뒤에야 페르난지뉴가브리엘 제주스, 세르히오 아궤로를 투입하는 등 선수진을 익숙한 구성으로 바꾸었으나, 첼시의 선제골을 뒤집지 못하고 그대로 1대 0으로 패배하며 챔스 준우승에 그쳤다. FC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에 겪은 두 번의 결승전에서는 압도적인 스쿼드로 올라온 맨유를 꺾어 빅이어를 들었지만 그 뒤로는 챔스에서의 실패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64][65]

3.6. 2021-2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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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레스터 시티 FC에 1-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EPL 개막전 상대인 토트넘 홋스퍼에게 1-0으로 패배를 당했는데, 2년동안 토트넘의 역습 전술에 털렸음에도 불구하고 개막전에서 또 다시 당했다. 이쯤되면 토트넘전을 앞두고는 뇌리셋이 된다는 얘기가 사실인 듯. 또한 이 패배로 지난 시즌 UCL 결승 패배를 시작으로 공식전 3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후 선수들을 호되게 교육시키더니 리그 경기에서 노리치 시티 FC아스날 FC를 5-0으로 격파했다.

리그 4R 레스터시티 FC전은 답답한 경기였지만 베르나르두 실바의 골이 나오며 승리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라이프치히전에서는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경기내내 드러났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단점을 덮어서 6-3 승리를 거두었다.

카라바오컵 32강 위컴 원더러스전에서는 로테이션을 돌렸고 6-1 대승을 거두었다.

5R 사우스햄튼전에서도 4R 같은 졸전이 나오면서 무득점 무승부로 연승행진이 끝났다.

6R 첼시 원정에서 드디어 지긋지긋한 첼시 공포증을 이겨내며 1:0 승리를 거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라힘 스털링을 벤치로 내린 것.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PSG와의 경기에서 라힘 스털링, 리야드 마레즈를 선발로 내세워 최악의 경기력을 펼쳤다. 그리고 필 포든, 가브리엘 제주스와 같은 주전자원을 70분이 넘어간 뒤 사용하며 환장하는 경기를 선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마르코 베라티에게 사랑에 빠졌다.", "리오넬 메시를 90분동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환상적이다." 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불타고 있는 맨시티 팬들 속에 부채질까지 하며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7R 리버풀전 원정에서는 맨시티가 골결정력 부족에 시달렸으나 홈깡패 리버풀에게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8R 번리전 홈경기에서는 베르나르두 실바가 개인능력과 행운으로 전반 12분 골을 터트린 뒤 경기를 주도하게 되었고 KDB의 추가골이 나오면서 2-0 으로 승리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3차전 클뤼프 브뤼헤전에서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며 6-1 대승을 거두었다.

9R 브라이튼전에서는 KDB를 휴식시켰지만 포든이 2골 1도움을 올리는 등 활약하여 4-1로 승리했다.

카라바오컵 16강에서는 2군 전력으로 맨유 2군을 이기고 올라온 웨스트햄을 만났고 맨시티는 이 경기에서 25슈팅 7유효슈팅을 기록했으나 알퐁스 아레올라 골키퍼를 뚫지 못했다. 승부차기에도 스테픈이 아레올라에게 밀리면서 16강에서 탈락했다.

어느날 스카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맨시티는 이번 여름, 공격수 영입에 애를 썼는데, 최근 보면 필 포든같은 선수들로 전술적 역량을 발휘하던데,[66] 공격수가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라는 말을 하자, "만약 우리가 진다면 공격수를 언제 영입할것이냐는 질문을 할것입니다. 내기해도 좋아요. 이런 질문에는 답변드릴수가 없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탈 펠리스와의 경기에서 로드리를 원 볼란치로 두는 전술을 꺼내들었으나, 라포르테의 퇴장과 베실바에 도움이 없는 로드리는 이날 경기는 눈이 썩어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결과는 2대 0 패배.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차전 라이프치히 원정에서 조 1위 16강행이 확정된 상태로 로테이션을 가동했으나 아쉬운 경기력으로 1-2로 패배했다.

12월 중순부터 덕배의 복귀와 칸셀루의 엄청난 폼 덕분에 화력쇼를 제대로 하고 있다. 19라운드 기준 리그 9연승을 질주 중이다.

현재 코로나19에 확진되었고 FA컵 64강인 스윈던 타운전 결장했다.

최근 21명이 코로나에 확진되는 등 맨시티 또한 코로나로 인한 선수들의 대거 이탈을 막을 수 없었지만 두터운 선수 뎁스에 힙입어 아스날과 첼시 등 강팀들을 연이어 잡아내며 22라운드 기준 22연승을 내달렸다.

하지만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2:3로 역전패하며 올 시즌 토트넘에게 더블을 당했고 리그 15경기 무패 행진이 마감되었다.

이후 3월부터는 다시 무패 행진을 달리긴 했으나 크리스탈팰리스 원정에서 무득점으로 비기면서 리버풀의 1점차 승점 추격을 허용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1, 2차전 아틀레티코전에서 1차전에 터진 데브라위너의 득점으로 아틀레티코의 단단한 두 줄 수비를 뚫어내고 합계 1:0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감독으로서 역대 가장 많은 9번째 4강을 밟게 되었다.

홈에서 치뤄진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는 4:3으로 진땀승을 거뒀으나, 2차전 원정에서는 마레즈가 선제골을 뽑았음에도 호드리구에게 2골을 얻어맞아 연장까지 끌려간 것도 모자라 벤제마의 PK로 실점해 역사에 남을 역전패로 팬들과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67]

프리미어 리그 최종전에서는 교체전술을 연달아 적중시키며 기적적으로 리그 우승컵을 다시 들었다. 역시 리그 패왕 최근 5년 동안 4번이나 리그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 되었다.

리그를 2년 연속으로 우승하며 최근 5년사이에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되었다. 다만 팀의 숙원인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챔스 DNA'를 가진 레알 마드리드에게 집중력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감독의 전술적 실책도 아니였기에 더더욱 뼈아픈 탈락이 되었다. 그리고 항상 1개씩은 우승해오던 국내 컵도 하나도 들어올리지 못하였다.

사실 이번 시즌은 분명한 전력상 약점을 가지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는 케인의 영입 실패로 인해 제로톱 전술을 계속 운용할 수 밖에 없었고 레프트백 멘디의 성범죄 기소로 인한 퇴출 때문에 풀백 뎁스에 구멍이 뚫린채로 시즌을 치루었다. 스트라이커가 없는 제로톱 전술을 운용함에도 리그에서는 최다 득점팀이 되었으나, 가장 중요한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공격수 부재로 인해 찬스를 낭비하는 면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1차전이 대표적인 경기. 표면적으로는 4대 3으로 승리한 경기지만 만약 시티에 벤제마와 같은 공격수가 있었다면 6대 3으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경기 내용이었다.

어찌되었든 리그 연속 우승을 차지한것은 분명한 성과이며 이 팀을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부당하다. 돈을 아무리 많이써도 꾸준히 리그를 우승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다만 다음 시즌에는 새로운 영입들과 함께 팀의 재정비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이번 시즌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특히 여름에 합류할 슈퍼스타 엘링 홀란이 시티의 2년간 제로톱 강점기를 끝내고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지가 관건. 이제는 정말 빅 이어가 필요한 시기이다.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변명거리도 사라진다.

3.7. 2022-23 시즌[편집]


1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엘링 홀란드를 기용하면서 2-0 승리를 거뒀다.

2R AFC 본머스전 4-0 대승을 했다.

3R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 3-3 무승부를 거뒀다.

4R 크리스탈 팰리스 FC전 홀란드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2로 승리했다.

챔스 2R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그릴리쉬, 마레즈라는 두명을 선발카드로 꺼냈으나 둘 다 최악의 폼을 보였다. 양쪽 측면을 책임져야할 그릴리쉬와 마레즈가 못하니 수비수들이 끌려나오지를 않았고, 도르트문트는 단단하게 중앙수비를 구축하며 전반전 45분 아무것도 못했다. 후반전에도 그대로 경기를 계속이어가다 결국 선제골을 허용했고, 교체를 시도하며 전술 변화를 감행한다. 남은 30분동안 교체로 들어온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며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 날 심판이였던 오르사토는 계속해서 좋지 못한 판정을 보였고, 결국 그 판정에 불만이 쌓여있던 펩은 경기종료후 오르사토에게 항의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11R 리버풀 FC 원정에서 뜬금 케빈 데브라위너를 측면으로 빼고 왼쪽에서 잘하던 주앙 칸셀루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전술 실험을 하다 1:0으로 패했다.

15R 풀럼 FC전에서는 전반전 주앙 칸셀루의 퇴장으로 매우 힘겨운 경기를 펼쳤고 후반 추가 시간 케빈 데 브라위너가 극적으로 얻어낸 PK를 엘링 홀란이 성공시키자 너무 기쁜 나머지 카메라 세리머니를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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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2일 2025년까지 재계약했다고 맨시티는 공식발표했다

EFL컵 역시 32강과 16강 모두 첼시 FC, 리버풀 FC 였음에도 불구하고 다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리그에서는 16R 브렌트포드 FC전 2-1 패배, 17R 리즈 유나이티드 FC전 3-1로 승리, 18R 에버튼 FC전 1-1로 무승부를 거뒀다.

FA컵 64강 첼시전에서는 홀란드와 더브라위너에게 모두 휴식을 주고 로테이션을 돌렸음에도 4:0으로 첼시를 대파하며 두터운 스쿼드를 자랑했다.

하지만 로테이션을 돌린 카라바오컵 8강 사우스햄튼 FC전은 유효슈팅 0을 찍으면서 0-2로 처참히 패배하며 탈락했다. 이어 19R 맨유전에서는 텐하흐의 전술에 말려들면서 1-2 역전패를 당하며 2연패를 당했다. 전반전은 슈팅숫자 1을 찍을 정도로 최악이었고 후반전에 전술변화로 그릴리쉬의 선제골로 이기나 했으나, 텐하흐의 가르나초 투입으로 후반 막판에 2골을 먹혀서 역전당하였다. 오프사이드 오심 논란이 있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경기력부터 제대로 말려든 경기였다.

이번시즌 엘링 홀란드라는 빅 사이닝을 내세우면서 챔피언스 리그 대권을 도전하는 펩이지만, 어째 팀 전체적인 성적과 경기력은 옛날보다 떨어진 상황이다. 매 경기마다 패스미스가 많으며 공격패턴은 오히려 홀란드 쪽으로 단순화되었고, 작정하고 상대방이 홀란드에게 가는 패스길을 차단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점들이 터진게 16R 브렌드포드와 19R 맨유전이다. 또 패스미스가 많으니 수비적으로 불안해지면서 이길 경기들에서 승점드랍을 하는 모습도 나오는데, 전반기 뉴캐슬전이 대표적이다. 케빈 데브라이너가 부진하고 영입생들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 장악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때문에 맨시티는 시즌 초 기대와 달리 우승권은 커녕 뉴캐슬, 맨유와 2-4위 경쟁을 할 정도로 승점쌓기가 잘 안되고 있다. 특히 저번시즌만 해도 개노답이던 맨유랑 승점차이가 얼마 안난다는 건 진지하게 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펩이 원하던 맨시티의 모습은 1위를 독주하는 제자 아르테타의 아스날에서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어림도 없을 것이다.

3.8. 맨시티 임기 중 비판[편집]



3.8.1. 이적료 과다 지출과 수비 불안[편집]


펩이 시티에 부임하고 2020-21시즌 개막시점까지 '수비수'에만 무려 5,145억 원을 투입하며 존 스톤스, 에므리크 라포르트, 네이선 아케, 올렉산드르 진첸코, 뱅자맹 멘디, 카일 워커, 주앙 칸셀루, 다닐루, 앙헬리뇨를 새로 영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들인 돈 이상으로 대성공했다 할 만한 영입은 카일 워커, 주앙 칸셀루 두 명. 라포르트는 2018-19시즌 부상 이후로 폼이 확 죽었지만 이후에는 서서히 폼이 되살아나면서 영입 당시 팀의 수비진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돈값은 했다 볼 수 있으나.. 멘디는 그야말로 대실패했고 다닐루와 앙헬리뇨도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68][69] 라이벌 위르겐 클롭은 반다이크에 1,000억을 쓰고 나머지 자리는 매우 값싸게 데려오거나 유스 선수를 육성해서 결국 세계 최고의 포백라인을 구축했단걸 감안하면, 애초에 클롭 감독이 적게 투자하고도 엄청난 선수단을 키워내는 데 이름난 감독임을 감안해도 상대적으로 헛돈을 써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시티에서 펩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앙헬리뇨는 쓰리백 전술을 쓰는 라이프치히로 이적 후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분데스리가 베스트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몇 가지 반론할 만한 부분은 진첸코는 원래 수비 자원으로 영입하지 않았으며[70] 다닐루는 몇 차례 닐-멘 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성적에 어느 정도는 기여했으며 결정적으로 현금+트레이드로 칸셀루 영입에 기여했기 때문. 더럽게 돈 많이 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저 수치는 단순 덧셈이기에 구태여 따져보면 실질적으론 저것보단 좀 덜 썼다정도다.

이러한 수비 불안은 뱅상 콩파니의 후계자 후벵 디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71][72] 디아스의 영입 이후로 수비가 마침내 안정화 되긴 했지만, 세계 어떤 축구 클럽을 찾아봐도 맨시티만큼 수비진에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은 팀은 없다. 결국 현재 구단의 숙원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한다면 들인 돈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계속해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 감독 본인은 이적료를 아끼지 않고 좋은 선수를 사오는 것에 대하여 본인이 선수빨 감독이라고 쿨하게 여러번 인정한 바 있다. 좋은 선수가 있어야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했다.

감안해야 할 부분은 펩이 맨시티에 부임한 시기에 팀의 수비진은 확실히 대대적인 리빌딩이 필요했다는 것. 15/16시즌 맨시티의 풀백은 나이가 꽤 찼던 선수들의 폼도 폼이지만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사냐 말고는 수 년간 영입 자체가 없었다. 센터백 또한 콤파니가 수시로 부상아웃되는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15/16시즌 핵심 자원이던 오타멘디 외에 망갈라, 데미갓중 하나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돈을 잘 썼는가는 감독의 역량 문제지만, 팀의 성적을 위해 어느 시점에서든 돈을 미친듯이 써야 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 16/17시즌에는 풀백은 기존 자원으로 틀어막고 센터백부터 보강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73] 큰맘 먹고 영입한 스톤스는 똥쟁이가 되어버리고, 그 다음 17/18시즌에 훨씬 거하게 질러버리고, 그 영입 중 하나가 축구 역사에 남을 먹튀가 되어버리며 돈낭비 이미지가 더욱 거세졌다.

일부 펩보이들이 펩의 부진은 전적으로 공격수들의 결정력 문제라며 옹호하는데, 사실 그것도 거슬러 올라가자면 결국 수비수 사는데 돈을 이렇게 부어대니 아무리 맨시티라도 제대로 된 결정력 좋은 공격수를 사오긴 힘들다라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펩이 공격수 사오는데 돈을 안 쓴것도 아니기에 더욱 설득력이 없다. 사실 펩은 맨시티에 부임한 2016-17 시즌 이후로 세계에서 이적료를 가장 많이 쓴 축구 감독이다. 게다가 2위와 차이가 꽤 크다. (925m 유로 #)

2020-21 시즌 중반부 들어서는 후벵 디아스버질 반 다이크를 연상시키는[74] 인상적인 활약상을 펼치면서 수비 불안과 이적료 지출에 대한 비난여론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감독 본인도 수비 불안을 인지하고 전술을 조정하면서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타협하는 것처럼 보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예의 불치병이 도졌고 빅이어를 알아서 걷어차버렸다.

근데 또 본인이 원하는 선수가 아니면 죽어도 못 쓴다는 마인드이다. 최전방 공격수 보강이 너무나도 시급해 해리 케인 영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조르제 멘데스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시했지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 이것보다는 기존 자원들을 (유스 포함) 안 내키면 병적으로 안 쓰고 영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 두드러진다. 또한 매번 2선 자원을 하나씩 데려오느라 최전방 공격수에 쓸 돈이 없다. 일부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는 왜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급한 포지션도 아닌 그릴리시를 1,600억이나 주고 영입했냐는 비판이 많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스톤스와 라포르트는 번갈아가며 잘 할땐 꽤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다닐루는 활약상은 별로였으나 어찌어찌 칸셀루 영입 카드로 잘 써먹었으며, 앙헬리뇨는 그나마 이적료가 덜 들었다는 위안거리가 있지만, 디아스 영입 이후에야 비로소 수비진이 꾸준한 리그 탑급 수준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도 레프트백은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는 점은 분명히 비판받을 요소다. 꾸준하게 여러 선수들을 영입하고도 그 선수 하나하나가 온전히 돈값을 하는 팀이 어디 있겠냐만, 멘디처럼 들인 돈과 그 이후 보여준 임팩트가 안 좋은 방향으로 너무나 큰 선수도 있으며 스톤스와 라포르트도 돈값을 제대로 했다기엔 아쉬운 순간들이 있기에 여전히 재조명되는 주제. 시티라는 팀과 감독 둘 다 워낙 모조리 돈으로 해결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뿌리깊게 박혀있는지라, 이적료 과다 지출에 대한 얘기는 꾸준히 나올 수밖에 없으며 사실 성과를 내는 것 말고는 딱히 해결책도 없다. 누가 감독이든 시티는 돈을 써야 할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들인 돈에 비해 결과물이 아쉬웠기에 감독에게 비판이 돌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이렇게 들인 천문학적인 비용이 시행착오였는지, 그저 돈낭비였는지는 후술되듯, 펩이 임기 내에 클럽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룰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렸다.

3.8.2. UEFA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의 부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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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남아 있는 사실상 자신의 제일 큰 단점이자 아킬레스건이다.[75]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만 되면 알 수 없는 변칙 전술을 사용하는 '명장병'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적료를 쓰고도 2016년 부임 이후부터 네 시즌동안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고사하고 8강을 통과한 적조차 없었다.[76] 다섯번째 시즌인 2020-21 시즌에 와서는 드디어 이 불명예가 깨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또 다시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을 보여주며 객관적 전력에서 우위를 점했던 첼시를 상대로 우승에 실패했고, 과르디올라 본인도 개인 통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첫 패배이자 감독 커리어 2번째 결승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2016-17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성적을 보면 하나같이 전부 맨시티의 전력이 우세한 상태에서 상대팀에게 패배한 것이라 더욱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77] 2016-17 시즌에는 AS 모나코 돌풍의 희생양이 되었고 2017-18 시즌 리버풀에게는 귄도안을 뜬금없이 새 포지션으로 시프트했다가 중원이 털렸으며, 2018-19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포기할 수 없다고 1차전에 케빈 더 브라위너를 쉬게 하다가 패배하더니 2차전에선 수비불안을 제대로 노출해 토트넘에게 탈락했다. 화룡점정은 2019-20 시즌으로, 상대팀인 리옹을 꺾는다는 전제 하에 바이에른을 의식한 수비적인 전술을 실전에서 테스트하다가 탈탈 털렸다.

또한 임시 감독으로 2019-20 시즌 도중 부임한 한지 플릭이 펩 자신이 맡던 시절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없는 스쿼드를 가진 FC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아예 챔스에서 전승 우승[78]을 이룩하자 저것보다 더 좋은 스쿼드를 거느린 바이에른으로 챔스 결승 한 번을 못 갔다며 비난하는 여론이 더욱 커졌다. 바이에른 팬들은 드디어 타팀팬들이 자신들의 심정을 알아준다며 기뻐했다.

이 때문에 펩이 2023년까지 재계약을 채결했을때 맨시티 팬들의 반응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다. 펩이 맨시티 임기 내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실패한다면 축구 팬들, 특히 맨시티의 팬들이 내리는 펩에 대한 평가는 더 싸늘해질 것이다. 사실 2019-20 시즌 리옹전의 어이없는 패배 이후로 펩의 챔스 성적에 대해서 자조하는 팬들이 많이 늘어났었다.

2020-21 시즌에는 드디어 지난 4년간의 '명장병'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나 했으나 결승전에서 또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지 않는 변칙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첼시에게 중원이 털리면서 패배했다. 또다시 명장병이 도졌는지 3-3-1-3 포메이션을 가동하며 로드리페르난지뉴를 벤치에 앉히고 일카이 귄도안을 수비적으로 기용하며 경기를 시작했다. 갑작스레 바뀐 역할 때문인지 귄도안을 포함한 맨체스터 시티의 선발 미드필더들은 중원 싸움에서 좀처럼 힘을 못 쓰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첼시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케빈 더브라위너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가브리에우 제주스와 페르난지뉴를 투입하고 중원을 공격적으로 끌어올리는 등 때늦은 대처를 했지만 이미 첼시의 수비망을 뚫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한 골 차를 뒤집지 못하고 첼시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주었다. 앞으로도 명장병 관련 비판은 쉽사리 없어지기 힘들 듯 하다.[79]

참고로 2020-21 시즌에는 FA컵 4강-리그 홈경기-챔스 결승에서 첼시와 3번 붙어 모두 패했다. 실리적인 전술가 토마스 투헬은 펩보다 자금력이 약한 클럽을 맡아오며 패를 꽤 쌓은 클롭 이상의 펩 언더테이커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이런 여파로 남은 계약기간 2년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지 못하면 재계약은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1-22 시즌에는 명장병 없이 이견이 별로 없는 선발 라인업으로 4강에 진출해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2차전 정규시간 후반까지 총합 4:3으로 앞서가고 있었고 이후 수비에 집중하기 위해 케빈 더브라위너, 리야드 마레즈를 빼고 일카이 귄도안페르난지뉴를 투입했다. 명장병이라고 지적될만한 선택은 아니었고 오히려 귄도안을 투입한 직후 72분에 마레즈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종합 스코어 5:3으로 앞서 2년 연속 결승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선제골 이후 거세진 레알의 반격에 정작 선수들의 막판 집중력이 흔들리며 90분과 후반 추가 시간에 호드리구 고이스에게 연달아 골을 내줘 동점을 허용한 뒤 연장전에서 카림 벤제마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역전을 내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쯤되면 억까도 억까지만 업보스택. 결국 기적의 희생양이 되며 본인의 커리어에 매우 큰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펩이 현 시점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하나라는 사실은 자명하며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펩이 부임하기 전 간혹 리그 타이틀을 가져오긴 했어도 그냥 epl 내에서 경쟁력 있는 팀 정도에 불과했던 맨시티를 현재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극강팀으로 성장시킨 감독은 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시티가 가장 염원하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은 약 1조 5천억원이라는 거금의 이적료를 들이고 6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고도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맨시티가 아닌 다른 클럽이었다면 펩에게 이 정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줄 수 있었을까? 펩이 맨시티에서 이룬 업적은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투자한 돈의 금액과 펩 과르디올라라는 감독이 가진 위상과 명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정도의 성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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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잉글랜드 1부리그 시즌 최다 승수, 승점, 득점, 득실차 등[2] 사람에 따라 요한 크루이프를 뽑기도 한다.[3]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FIFA 클럽 월드컵 6개 대회를 전부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달성 당시에는 유일무이한 6관왕 기록이었으나 2019-20 시즌에 한지 플릭FC 바이에른 뮌헨도 이 기록을 달성했다.[4] 흔히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누구냐고 할 땐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실력을 겸비했으며 현대 바르셀로나의 상징과 같은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넘사벽, 그 다음으로는 메시 이전 시대의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 수비진에는 최고의 리더쉽과 수비 실력까지 갖춘 카를레스 푸욜과 그 시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였던 다니 알베스와 샌터백인 제라르 피케 미드필더로서 최강자였던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이 따라붙고 감독으로서는 유스 시스템을 정비하고 토탈풋볼과 티키타카를 정착시켜 클럽의 기틀을 다진 요한 크루이프와 그 토탈풋볼이란 개념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완성시킨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 그리고 과르디올라가 떠난 2010년대 중후반에 바르샤 공격에 핵심인 루이스 수아레스네이마르 주니오르를 언급하기도 한다.[5]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약 12년동안이나 활약한 레전드라는 자격이 있어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비슷한 예로 반대편지네딘 지단이 있다.[6] 데쿠와 호나우지뉴는 곧바로 팀에서 방출된 반면, 에투는 과르디올라 부임 첫 시즌만 같이 보내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어 나갔다. 에투는 남아서 경쟁 해보겠다고 하면서 과르디올라와 면담을 진행했고 한 시즌 더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했다. 본래 펩은 호나우지뉴가 잔류하기를 원했으나 호나우지뉴가 더 이상 남아있다가는 팀과 감독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 같음을 알고 펩에게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통보를 했다. 이에 펩은 호나우지뉴가 AC밀란으로 이적할수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펩이 호나우지뉴의 잔류를 원했던 이유는 자신이 꾸며나갈 전술에 어울릴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7]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때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오늘날의 펩.[8]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 시기의 두 팀은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축구 팀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해도 무방하다.[9]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마라도나는 리오넬 메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10] 치그린스키의 수비 기량 자체는 좋았으나, 바르셀로나의 팀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11] 파브레가스는 유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바르셀로나라는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였다. 그를 오랜만에 본 코치가 볼터치가 왜 이리 나빠졌냐며 놀라기도 했다.[12] 이 시기 바르셀로나는 애초에 사생활까지 강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펩 다음의 유력 후보는 보드진에게 강하게 감독직을 원한다고 어필하던 주제 무리뉴였다고 한다.[13] 즐라탄이 자서전에서 디스한 바에 따르면 나머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이런 시스템과 펩의 성향을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팀 전체가 학교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라마시아 출신들의 경우 유스 시절부터 펩과 그의 수석 코치 빌라노바의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특히 리오넬 메시는 청소년기부터 잠자는 시간에 식단까지 다 짜주고 구단에서 키우는 로봇같았다고 할 정도로 빡센 관리를 받으며 자라왔으니 익숙했을 만도 하다. 다만 바르셀로나 측에서 제작한 다큐에 출연한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펩의 집권기 말년에는 이들조차도 힘들어서 나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14] 다만 선수빨이라고는 바르셀로나도 펩 이후 감독들 중에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건 엔리케 뿐이다.[15] 사실 과르디올라는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잘하는 것은 항상 'xx빨'이라며 까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메시가 잘하는 것은 샤비, 이니에스타빨이며 샤비가 잘하는 것은 메시 혹은 티키타카빨, 과르디올라는 선수빨이라는 식. 그런데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당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조직력이 탄탄했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16] 지금은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급 미드필더로 거론되는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사실 과르디올라 부임 이전까지는 확실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지 못했다. 실제로 차비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에 개최된 유로 2008,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여 트레블을 달성했던 2008-09 시즌을 기점으로 해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게 되었다.[17] 단, 구스타보는 단 한경기도 쓰지 않았는데 이미 구스타보가 스콜라리 감독의 조언에 따라 팀을 떠날 마음을 굳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18] 전반 7분만에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먹혔다가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시작하자마자 에당 아자르에게 실점했으나 경기 종료 10초전연장후반121분하비 마르티네즈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원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마누엘 노이어가 첼시의 마지막 키커 로멜루 루카쿠의 슛을 선방하며 바이에른이 우승했다.[19] 참고로 맨시티는 2013-14시즌 11월까지 바이에른전을 빼면 단 한 경기도 홈에서 지지 않았다.[20]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직후 바이에른은 다음 시즌에서 챔스는 우승했지만 리그는 10위까지 쳐지는 등 유례없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여타 월드컵 직후 시즌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직후에도 06/07시즌은 펠릭스 마가트가 그야말로 팀을 말아먹으며 리그 11위까지 곤두박질 치게 만들고 경질되어 UEFA컵에 나가게 됐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바로 다음 10/11시즌도 월드컵때문에 부상당한 아르연 로번이 전반기를 통째로 쉬어야했고, 루이 판 할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유망주 기용과 토탈 풋볼을 고집하다가 챔스티켓도 잃을뻔하고 결국 무관에 그치고 반할도 경질됐다. 그나마 02/03시즌은 월드컵 직후시즌임에도 더블을 했는데, 당시 독일 베스트11에 바이에른선수라고는 올리버 칸카르스텐 얀커 정도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2001-02 레버쿠젠의 콩트레블 멤버거나 유망주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어스텐 프링스 등으로 채워졌다.[21]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이 자국 국대로 뛰는 데다, 특히 독일은 메이저대회만 나가면 기본 8강은 찍으니 체력소모도 많고 부상위험도 크다.[22] 대표적인 포지션 변환으로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풀백 기용, 알라바의 중앙미드필더 기용 등으로 포지션 변화를 주고 있다.[23] 이 경기에서 메시의 2번째 골 장면에서 제롬 보아텡은 페이크 모션에 속아 자빠지면서 해외에서 합성요소가 되었다.[24] 특히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에 대해서 운이 없다고 쉴드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부상으로 인한 전력 누수는 펩의 로테이션을 안돌리는 강행군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특히 바르사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가 리그에서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력 선수들을 꾸준히 로테이션으로 관리하면서 챔스 결승까지 베스트 11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한 것에 비교하면 매년 후반기에 부상병동으로 전력이 약화 되는 펩의 바이에른은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25] 바르샤 전 부회장이자 현재 맨시티 CEO인 페란 소리아노, 바르샤 전 기술이사이자 현재 맨시티 기술이사인 티키 베기리스타인, 바르샤 전 수석 스카우트이자 현재 맨시티 수석 스카우트인 보얀 크르키치 시니어. 티키는 특히 펩을 바르샤 1군 감독으로 키워준 당사자라 펩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 만수르 구단주는 애시당초 펩을 위해 이 보드진들을 임명했다.[26] 맨시티는 무려 지난 3년간 펩 한 명 모시기 위해 유스 스텝들을 포함해서 스카우트 등 전부 바르샤 출신에 펩과 친분있는 인물들로 구성한 데다 링크도 이미 펩 재계약 논의가 시작된 여름부터 나기 시작했다.[27]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특급 유망주, 파블로 마페오가 이 구단으로 현재 임대 가있다. 맨시티의 실력있는 유망주들은 거의 이 구단으로 보낼 플랜.[28] 맨시티 자체 팬덤이 국내에선 비교적 작은 편이다보니 이런 자세한 소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29] 올 시즌 뮐러는 키커 평점 기준으로 분데스 전체에서도 2.66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2012-13 시즌의 리베리나 2014-15 시즌 전반기의 로번이 보여준 2점 초반대의 리그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할 것이나, 중추적인 선수로 볼 것임은 당연하다.[30] 물론 알라바는 보아텡, 하비 마르티네스, 바트슈투버 등의 부상으로 센터백 라인이 붕괴된 상황에서 키미히와 함께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면서 위기를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베나티아가 센터백으로 기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리그에서 별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베르나트를 선발로 기용하면서까지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나 베르나트는 이번 경기 키커지 기준 평점 5점으로 최악의 활약을 보여준 상황이다.[31] 하인케스의 리그 우승 1회를 포함[32] 맨시티에서 펩은 5년 연속으로 명백한 언더독 팀들에게 패배하였고 이 과정에서 뮌헨 시절부터 보여왔으나 잘 부각되지 않았던 명장병이라고 비꼼당하는 본인의 전술적 실책까지 연달아 보여줬기에 되려 바이언 팬 뿐만 아니라 오히려 펩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내던 맨시티 팬들까지도 나서서 비판하는 경우마저 발생하였다.[33] 다만 코바치는 리그우승은 압도적이었던 전 감독들에 비해 전반기엔 7위까지 추락한적도 있었고 후반기에는 도르트문트가 DTD를 시전하지 않았더라면 리그 우승은 도르트문트에게 내줄뻔 했다.[34] 당장 펩이 부임하기 이전에 감독이었던 유프 하인케스가 각각 2011-12시즌과 2012-13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갔을 때 준결승전 상대가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자.[35] 4강 1차전에서는 또 명장병이 도졌는지 쓰리백을 사용하였다가 바르셀로나에게 가패당하자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포백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체 떡실신 당하고 말았다.[36] 이마저도 아래에 언급할 볼파르트와의 갈등 문제가 언급되면서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듣는다.[37] 펩 부임 당시 보드진이었던 울리 회네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무려 현역선수로 뛰고 있을때도 바이에른의 팀닥터로 일하고 있었다. 40년간 바이에른 팀닥터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38] 다행히 홈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 6:1 대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하긴 했다.[39] 참고로 개인병원 축구계 방문자들의 명단으로는 클리스만, 훔멜스, 호나우두, 제라드, 키엘리니, 오언, 호날두, 메시, 메르테사커, 발락, 퍼디난드, 모드리치 등이 있다. 축구 외적으로 방문자들은 코비 브라이언트, 우사인 볼트, 보노 이런 사람들도 따로 찾아갈 정도로 스포츠의학계 최고의 명의라고 할 수 있다.[40] 그런데 정작 로번은 후반기 말에 들어서면서 부터 각성했지 그 이전엔 로테이션 자원에 불과했다. 펩 이전 바이에른이 그만큼이나 스쿼드가 두텁고, 어느 한 명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공격루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41] 일부 펩보이들은 이 둘의 컨버전을 펩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풀백과 중원 포지션 간의 컨버전은 매우 흔하다. 바이에른의 레전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부터 시작해서 요주아 키미히, 벤자민 헨리치, 라스 벤더, 요나스 헥토르, 세르지 로베르토, 제바스티안 루디, 심지어는 박주호까지 매우 흔하다. 게다가 알라바는 애초에 데뷔를 중원으로 했던 선수다. 애초에 활동량이 많아야 하고 기동력이 중요한 풀백의 특성은 중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며, 반대의 경우에도 중앙 미드필더에게 요구하는 활동량과 패스, 드리블 능력이 풀백에게도 핵심 능력이기 때문이다.[42] 순간 속도로는 상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선수를 압도한다는 의미. 실제로 로번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시속 37km라는 안드로메다급 순속을 보여준 바 있다.[43] 펩 본인의 말로는 EPL의 축구가 복잡한 것은 롱볼 축구이기 때문이라고. 공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타리그에 비해 길고 그 공이 어디로 가버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경기의 진행을 예측하고 이기는데 어려움을 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컨드볼의 중요성과 랜덤요소가 타리그에 비해 높다는 소리.[44] 그런데 퍼거슨과 비슷한 상황에서 EPL 감독직을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퍼거슨 부임 당시 맨유는 파산 직전에 무려 26년째 리그 우승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반면에 펩이 부임할 당시의 맨시티는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2010년대 EPL에서 가장 많이 우승을 거머쥐었고, 직전 해에는 페예그리니 감독의 지도 하에 챔스 4강까지 진출해서 레알 마드리드와 호각지세를 이룬 강팀이었다.[45] 어쩌면 지금시점에서 봤을때 저 7년이란 기간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필요한 기간을 말한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초에 맺은 재계약 기간까지 합치면 딱 7년을 보낸것이 되기 때문이다.[46] 콘테는 과르디올라에게 처음으로 더블패를 안겨준 첫 감독이 되었다.[47] 바이에른시절 레알 마드리드에게 4:0, 총합 5:0으로 패한 적이 있었지만 이때는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이었다.[48] 다만 이건 펩의 선구안, 선호하는 선수 스타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브라보의 알 수 없는 기량 하락이 큰 이유이다. 2015-16 시즌에 브라보는 바르샤, 칠레 국가 대표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시티 이적 후에 수많은 시티팬들이 기대를 했으나, 팬들의 예상을 뒤집고 예능인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굳이 발기술이 뛰어난 키퍼를 데려와야 하냐는 논란이 돌았지만, 다음 시즌 영입된 에데르송 모라에스를 보면, 왜 그렇게 발기술에 집착했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49] 참고로 펩 과르디올라는 11/12 시즌 FC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리그 최다연승 타이기록(16연승), 13/14 시즌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최다연승(19연승) 기록까지 가지고 있다. 이로써 4대리그 중 3개의 리그에서 최다연승을 한 감독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50] 위르겐 클롭의 게겐프레싱은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후방 빌드업을 철저히 방해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게 펩의 전술의 핵심인 후방 빌드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게겐프레싱의 경우는 라인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약점이 생기고 압박이 약해질 경우 이 약점이 크게 부각되며 실점이 늘기 때문에 난타전이 되기 쉽다.[51] 다만 이 노란 리본의 의미는 비민주적인 절차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카탈루냐 독립운동 핵심 인사들의 석방을 촉구 하는 것이지, 카탈루냐 독립 지지 그 자체와는 상관이 없다.[52] 이전에 쓰여져 있었던 단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제 무리뉴의 몰락이 워낙 급격했고, 바이에른과 맨시티라는 리그 최고 선수들을 다 쓸어 담을 수 있는 팀에서 감독 생활을 해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크루이프즘을 기반으로 하는 펩의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는 확실히 지났고 슬슬 내리막길을 우려해야 할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펩보다 5년 정도 먼저 떠올라 10년 가량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했던 무리뉴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펩 또한 무리뉴처럼 시대와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정도로 현대 축구의 감독 세대 교체와 전술 흐름 변화는 빠르다.[53] 2R 울버햄튼과의 원정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으나, 3R 레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제이미 바디에게 헤트트릭을 당하고 누가봐도 명백한 PK만 3개를 헌납하는 등 무려 2:5의 스코어로 대패하면서 각종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을 작성했다. 이는 펩 감독 커리어 사상 첫 5실점 패배이며, 맨시티의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개장 이래 처음으로 5실점을 범하는 충격적인 참패였다. 4R 리즈전에서도 펩이 무려 점유율과 유효슈팅 개수에서 밀리며 1:1로 비겼다. 그리고 9R 무리뉴가 이끄는 토트넘전에서 손흥민로 셀소에게 득점을 허용해 저번 시즌과 똑같은 스코어인 2-0으로 패배하며 11위로 추락했다. 아무리 9R까지밖에 안 왔다고 해도 심각한 순위.[54] 이게 꽤 심각한 문제인게, 펩 체제의 양쪽 풀백은 한 풀백이 수비적으로 내려오고, 한 풀백은 마치 윙백처럼 전진하여 크로싱과 오버래핑으로 공격의 옵션을 늘려주는 변형 3백 형태인데, 왼쪽 풀백 옵션인 진첸코, 칸셀루 모두 멘디의 역할을 대신하기에는 너무 부진하다. 되려 센터백으로 영입한 아케가 레프트백으로 더 잘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55] 이건 로드리가 원볼란치로는 한계점을 보이는 이유도 있긴 하다.[56] 시티는 RB 라이프치히와 혈전을 벌이다 탈락한 맨유와는 달리 하루 더 쉬고 16강을 진출한 상태고, 코로나로 인한 무관중 원정 경기라 맨유의 홈버프도 없는 수준이라 훨씬 유리했다.[57] 2020-21시즌 후반부에 감독과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WBA전 이후에 주장 페르난지뉴가 소집한 선수단 미팅이 있었고 별개로 감독/코치진과 수뇌부 미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58] 부동의 주전 수비수였던 라포르트까지 벤치로 밀어냈다![59] 이는 공격력이 약해졌으나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2019-20 시즌의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해 보인다.[60] 펩의 선수 시절 스승 중 한명이었다[61] 2위는 루마니아의 미르체아 루체스쿠, 1위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다.[62] 결승전을 해설한 장지현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지었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라인업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을 것"이라며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속담을 인용해 이를 비판했다.[63] 지난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을 이끈 한지 플릭과 비교되는 행보인데, 당시 한지 플릭은 토마스 투헬이 이끄는 파리 생제르맹 FC과의 결승전에서 전술의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자신들이 그동안 해왔던 모습 그대로 경기를 치러서 파리를 꺾고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이번 결승에서도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전술을 들고 나와서 투헬의 첼시에 패배했다.[64] 2008-09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그래도 맨유도 만만치 않은 스쿼드를 지녔다고 평가받았지만, 2010-11시즌 맨유는 박지성이 챔스 결승에 선발로 나오는 팀이었다. 대놓고 감독이 구린 스쿼드로 세이브-로드 신공 쓴다는 소리 듣던 시절. 반대로 바르샤는 메시는 물론 08년 유로-10년 월드컵-12 유로를 석권한 세 얼간이의 최전성기 구간이었다.[65] 그 두번의 결승전도 바르샤가 잘하기도 했지만 맨유가 바르샤보다 약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2008-09 시즌 결승전에서는 리오넬 메시의 깜짝 제로톱 기용과 준결승전에서 대런 플레처의 퇴장 징계에 맨유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2010-11 시즌에는 세얼간이 라인을 상대로 백전노장 라이언 긱스가 선발로 나와야하는 상황이었다.[66] 일부에서는 이 부분이 필 포든을 무시하는 발언이라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문 스트라이커 없이도 포든이나 그릴리쉬 등의 미드필더, 윙어들로 득점을 잘 해낸것에 대한 말로 볼수있다.[67] 레알이 1차전 원정에서 3골을 득점한 상황이라 원정 다득점 원칙이 유지되었다면 연장전도 못 가고 짐을 쌌을 것이다. 그만큼 펩 입장에서는 더더욱 비참한 패배가 되었다.[68] 사실 다닐루는 주전이라기 보다는 서브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라이트백 뿐만 아니라 레프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까지 커버가 가능했고, 앙헬리뇨는 바이백 조항으로 싼 값에 데려왔기라도 했지만 멘디는...[69] 저 돈이면 판데이크가 무려 5명 하고도 145억이 남는다.[70] 다만 이를 펩을 옹호하는 논지로 쓸 수는 없다. 애초에 미드필더 유망주로 싸게 사온 선수를 포지션을 바꾸어서 풀백으로 써먹기 시작한 건데... 달리 말하면 큰 돈 들여 사온 수비진이 제대로 된 레프트백 하나 확보 못해 타 포지션에서 뛰던 어린 선수를 굴리는 상황이기 때문.[71] 콩파니가 맡았던 수비진 리더와 커맨더 역할을 후벵 디아스가 이어받았다. 콩파니의 이적이 확정된 후로도 201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체 선수의 영입을 노리지 않았고, 아마 에릭 가르시아나 시즌 초 폼은 괜찮았던 오타멘디를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용하려고 했겠으나 2019-20시즌은 여러 악재가 겹치고 수비도 박살나며 망해버렸다.[72] 다만 디아스의 영입은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야 급하게 영입한 패닉바이는 아니였다. 원래 존 스톤스는 2020년 여름 이적 가능 명단에 올라간 상황이었고, 네이선 아케와 다른 한명의 주전급 센터백이 맨시티의 2020년 여름 영입 목표였다. 칼리두 쿨리발리가 퍼스트 타겟이긴 했으나, 디아스는 분명히 시티의 스카우팅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벤피카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단계 탈락이라는 행운 덕분에 디아스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73] 전술했듯 센터백 위치가 디아스 영입 전까지 계속해서 불안했기에, 그래도 선수 둘씩이 대기하고 있는 풀백보다 먼저 보강하는 판단 자체는 옳았다 볼 수 있다. 근데 선수 영입을 잘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74] 후벵 디아스의 파이팅과 커맨딩 덕에 수비진 전체적으로 폼이 급상승했다[75] 바이에른과 맨시티에서의 챔스 부진으로 인하여 바르셀로나 시절의 업적도 최근 들어서 폄하받기 시작하는 수준에 이르었는데,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역대급 미드필더진이 전성기 기량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감독으로 앉든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거라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은 어불성설인 것이, 메시를 신계로 끌어올리고 세얼간이가 역대급 미드필더진으로 이끈 것은 펩의 공로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바꿔 말하면 이런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평가가 하락했다는 뜻.[76] 특히 2018-19시즌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결승까지 진출했던 토트넘 홋스퍼 FC는 단 한 푼의 이적료도 쓰지 않았기에 더 크게 까였다.[77] 그나마 맨시티에게 제일 위협적이라 여겨졌던 상대는 2017-18 시즌 리버풀이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맨시티의 스쿼드가 훨씬 우월한 상태였다. 오히려 리버풀은 이 매치업에서 맨시티를 꺾으면서부터 확실한 강팀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78] 결국 바이에른 뮌헨은 그 다음 시즌에 지연 개최된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며 6관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축구 역사상 단 두 팀만 달성했다. 다른 한 팀은 펩이 이끌던 2008-09 시즌의 바르셀로나.[79] 다만 경기 후 진지하게 펩을 경질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시티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펩 본인의 커리어에 비춰 보면 계속해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클럽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됐던 팀을 리빌딩하고, 챔스 외 트로피는 기간에 비해 워낙 많이 따냈으며,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챔스 결승에 진출한 감독이기 때문. 업적이 많으니 무작정 감독을 쉴드치려는 게 아니라, 깔 건 까더라도 일단 팀에 해준 건 많은 감독이기에 당장 경질해야 한다고 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것이다. 사실상 시티팬이 완전한 펩까가 되는 걸 막아주는 최종 억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