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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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앙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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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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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릴리앙 튀랑
(2008)

티에리 앙리
(2008~2010)


파트리스 에브라
(2010)


아스날 FC 주장

파트리크 비에라
(2002~2005)

티에리 앙리
(2005~2007)


윌리엄 갈라스
(2007~2008)


티에리 앙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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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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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2006
파일:프리미어 리그 심볼.svg

2001-02 · 2003-04 · 2004-05 · 2005-06
파일:European_Golden_shoe_Trophy.png

2003-04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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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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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 · 2005-06
파일:FWAlogo.png

2002-03 · 2003-04 · 2005-06
파일:프리미어 리그 심볼.svg
[[틀:프리미어 리그 도움왕(2000년대)|

2002-03 PL 도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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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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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2002 · 2003 · 2004 · 2006
파일:PFA_UK_logo.png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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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역대 베스트 XI[1]




2003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티에리 앙리
3위
호나우두
2004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호나우지뉴
2위
티에리 앙리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3 Ballond'or
수상
파벨 네드베드
2위
티에리 앙리
3위
파올로 말디니
2006 Ballond'or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잔루이지 부폰
3위
티에리 앙리
2000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티에리 앙리
2004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디디에 드록바
티에리 앙리
호나우지뉴
2005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호나우지뉴
스티븐 제라드
티에리 앙리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2004
수상
호나우지뉴

2위
티에리 앙리

3위
안드리 셰브첸코
Player of the Year 2006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사무엘 에투

3위
티에리 앙리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티에리 앙리의 기타 정보












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이름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본명
티에리 다니엘 앙리[1]
Thierry Daniel Henry
출생
1977년 8월 17일 (46세)
일드프랑스 지방 에송 주 레쥘리스 군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틀:국기|

국가

행정구
파일:과들루프 기.svg
과들루프
]]
)
신체
188cm / 체중 83kg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해설가
소속
유스
CO 레줄리 (1983~1989)
US 팔레조 (1989~1990)
ES 비리 샤티용 (1990~1992)
클레르퐁텐 (1992)
AS 모나코 FC (1992~1994)
선수
AS 모나코 FC (1994~1999)
유벤투스 FC (1999)
아스날 FC (1999~2007)
FC 바르셀로나 (2007~2010)
뉴욕 레드불스 (2010~2014)
아스날 FC (2012 / 임대)
코치
벨기에 대표팀 (2016~2018 / 수석 코치)
벨기에 대표팀 (2021~2023 / 수석 코치)
감독
AS 모나코 FC (2018~2019)
앵팍트 드 몽레알 (2019~2021)
프랑스 U-22 대표팀 (2023~ )
국가대표
123경기 51골[2] (프랑스 / 1997~20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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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14번 (클럽)
12번 (국가대표)[1]
통산 득점
411골


1. 개요
2. 유년기
3. 선수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4.1.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
5. 은퇴 이후
6. 지도자 경력
7. 기록
7.1. 대회 기록
7.2. 개인 수상
7.3. 수훈
7.4. 통산 기록
8. 앙리에 대한 말 말 말
9. 여담
9.1. 헨리 드립



1. 개요[편집]


프랑스축구 선수 출신 감독, 방송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프랑스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2위[3]인 선수로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2003-04 시즌 PL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프랑스의 1998 월드컵 · 유로 2000 우승 및 바르셀로나의 2008-09 시즌 트레블에 공헌했다. 또한 PL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PL의 King'이었다. 2021년 앨런 시어러와 함께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초대 입성자가 되었다.


2. 유년기[편집]


1977년 8월 17일[4] 파리 근교 에손 주(L'Essonne)의 도시 레줄리(Les Uli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과들루프 출신에 어머니는 마르티니크 출신으로, 이민 2세다. 출생지가 빈민가 지역이라 성장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하며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악명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에리 앙리/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에리 앙리/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무지막지하게 빠른 스피드[5]와 파워를 겸비한 돌파와 공간침투, 그에 이은 골 결정력도 탁월해서 수 차례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어시스트 능력도 있어서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히 '앙리 존'이라고 불리는 골포스트 오른쪽 공간에서의 측면 오른발 감아차기는 당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품으로, 수많은 골을 만들어냈다. 부드럽고 정확한 슛으로 유명했으며 다비드 비야 못지 않은 침투력으로 1대1 상황을 만들고 골키퍼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구석에 꽂아버리는 킥이 일품이였다. 프리킥도 매우 잘 찼다. 그러나 몸으로 버텨주는 능력이나 공중전 능력은 좋지 못했다. 188cm에 80kg대 중후반의 체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인 부분이다.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174골을 기록했는데, 이 중 헤더 골은 고작 6골 뿐이다. 실제로 앙리는 중앙에서 버텨주기보다는 측면에서 스리슬쩍 서 있다가 엄청난 스피드를 이용해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패턴이 많았다.[6] 다만 헤더 골이 적은 부분은 그가 속해 있던 아스날이나 바르셀로나가 극단적으로 공중볼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실제로 국가대표에서는 꽤 많은 헤더 골을 넣었고 이 골들도 좋은 헤더 기술과 긴 체공시간을 보여주는 골들도 제법 있었다. 그렇다고 프랑스도 아스날 정도가 아닐 뿐이지 잉글랜드처럼 공중전 능력이 필요한 팀도 아니었고 설사 필요하다고 해도 트레제게라는 당시 최강 공중전 능력자를 파트너로 두고 있었다. 마이클 오언이 베컴, 피구, 제라드 등의 좋은 크로스를 둔 팀원들을 두고도 루니, 라울, 호나우두 등과 파트너를 맺으며 썩혔던 것에 비교하면 딱히 약점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국가대표에서는 클럽에서의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다.[7] 지단과 동선이 겹치는 측면이 있기도 했고, 전성기 마지막 월드컵인 독일 월드컵 까지 프랑스는 그가 아닌 지단 위주의 전술로 짜여졌기 때문.[8][9]

그리고 베르캄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래부터 테크닉이 대단해서 자연스럽게 된 것인지 몰라도 플레이메이킹에도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스날이 베르캄프 & 앙리 시절부터 ~ 페르시 & 아데바요르 시절까지 4-4-2를 구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의 존재가 컸는데 그 시발점이 된 선수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좌우 윙어들과 콤비네이션이다. 피레스나 융베리가 어그로를 끌면 그 공간에 앙리가 침투해서 득점을 한다거나, 그 역의 상황이 나오던가 하는 방식으로 득점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현재 4-3-3이건 4-2-3-1에서 주로 보여주는 2선 윙어의 원형이라고 봐도 될 플레이를 한게 바로 과거의 아스날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앙리와 베르캄프가 있었다.

참고로, 과거에는 이 롤을 베르캄프가 홀로 담당하였다. 이안 라이트나 아넬카도 EPL 탑클래스의 선수이지만, 앙리처럼 경기 자체를 조율한다기 보다는 적극적인 침투로 득점에 강한 선수들이였다. 실제로 베르캄프는 자신의 파트너로 앙리보다 아넬카가 더 직선적이어서 좋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앙리의 02/03시즌 20-20기록은 심지어 EPL 어시스트 룰이 개정된 이후로도[10] 그대로 20어시스트로 기록되어있는것으로, 전부 오픈 플레이에서 나온 어시스트라는 점에서 한층 더 대단한 기록이다. 측면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생겼으며, 득점을 할 때 보다 어시스트를 기록할 때가 더 짜릿하다고 할 정도. 다만 이 때문에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득점 찬스에서도 동료를 찾는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약점이라면 좋은 찬스를 소녀슛으로 날려먹는 빈도가 은근히 꽤 잦았다. 그는 '앙리 존' 위치에서 먼쪽 포스트로 정교하게 감아때리는 슛을 선호했는데 이러한 기술적인 슛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조금만 킥의 임팩트가 안좋아도 슛이 이상하게 나가기 쉽다. 때문에 멋있게 찬스를 만들어놓고 키퍼한테 데굴데굴 굴러가거나 정면에 가서 안기는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현존하는 스트라이커들 중에서는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공간침투를 오바메양이 닮았다고 한다면, 전체적인 플레이 스타일이나 다양한 지점에서 득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레반도프스키가 많이 닮고 있다.[11] 윙어 포지션에서는 손흥민이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12]


4.1.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편집]


앙리의 챔스 통산 기록은 13시즌 120경기 50골(토너먼트 12골)이다. 수치상으로는 훌륭하지만 위상에 비해 순도가 떨어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일단 토너먼트에서의 득점이 적고, 소위 클러치 상황이라 부를 때 결정적 기회를 여러번 날렸다. 결승전에서 득점이 없고[13] 4강에서도 1골밖에[14] 넣지 못했다. 지금부터 사례를 살펴보자.

  • 2001-02 시즌 2차 조별 리그[15] 유벤투스전에서 이기면 팀이 8강으로 가는 상황에서 52분에 PK를 날렸고 팀은 76분에 실점하며 그대로 탈락했다.

  • 2002-03 시즌 2차 조별 리그에서도 6경기를 풀타임 출전했지만 팀은 탈락했다. 이때 앙리는 AS 로마를 상대로 3골을 기록하며 이겼지만, 다른 5경기에서는 발렌시아에게 1골을 넣은 게 전부였고 그나마도 졌다.

  • 2003-04 시즌 16강에서 셀타비고에게 2골을 넣었지만, 첼시와의 8강에서[16] 170분이나 나왔지만 무득점에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 2005-06 시즌 조별 리그, 16강 레알 마드리드전, 8강 유벤투스전에서 골고루 득점하여 총 4골을 넣었지만 4강부터 다시 침묵했고 FC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도 2번의 결정적인 1대1 찬스를 날리며 1:2 역전패했다.

  • 2006-07 시즌 조별 리그 포르투전에서 1골을 득점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모두 무득점이었고 PSV와의 16강전[17]에서도 침묵하며 탈락했다.

  • 2007-08 시즌 조별 리그 레인저스전과 16강 셀틱전에서 1골씩 기록했을 뿐 맨유와의 4강전에서도 비록 교체출전했지만 잠수탔다.


5. 은퇴 이후[편집]


친정 팀 아스날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지도 아래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일단 영국 스카이스포츠에서 게리 네빌제이미 캐러거와 함께 축구 방송 중계를 한다고 밝혔다.

스카이스포츠와 코치직 겸직을 가능한 계약을 맺었기에 웨일즈 축구협회에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한 연수를 받기 시작했고, 2015년 2월 20일부로 아스날의 U-16 팀 코치에 부임했다.

월드컵 기간에 BBC에 분석가로 출연했지만, 스카이 스포츠가 워낙 거액을 베팅해서 스카이스포츠로 가게 되었다. 기존 스타 분석가인 게리 네빌이나 제이미 캐러거보다 두 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다.

해설가를 맡은 이후 문제가 될 만한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몇 번 있다. 치차리토가 극적인 골을 넣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세리머니를 하자 도움을 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챙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별 문제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우세했다.

첼시가 최근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 중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고 비꼬았다. 이건 첼시 팬들도 동의하는 바였다. 당시 첼시의 챔스 우승은 기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친정팀인 아스날의 스트라이커인 올리비에 지루에 대해서는 영입으로 대체가 필요하다고 해 구너들의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지루는 경기력이 좋을 때에도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한계가 명확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후반기에 들어서 거의 맞는 말로 판명이 되었다. 첫 사건인 치차리토와 호날두 사이는 여전히 그냥 상관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나 첼시가 진짜 몰락했고 지루도 탄식형 스트라이커로 돌아오면서 뒤의 두 사건은 어느 정도 맞는 말임이 증명됐다.

2017년 여름에는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리버풀 이적을 두고 리버풀이 뭣하러 저딴 무장점 선수한테 거액을 쓰냐고 깠는데, 이에 체임벌린은 시행착오 끝에 리버풀에서 부활한 후 앙리를 까기도 했다. 비난이라기보다는 대충 "형이랑 같이 뛴 동생한테 어쩜 그런 소리까지 할 수가 있냐"는 어투에 가깝다. 인터뷰를 보면 게리 네빌한테도 똑같이 까였지만 그에게는 별말 없었다.

대신 앙리는 나중에 리버풀에서 옥스의 활약은 훌륭하다며 극찬했고 "사람들이 내가 한 말을 오해하는데 나는 옥스가 아스날에서 그냥 맞지 않았던 선수라고 얘기했던 것 뿐이다. 리버풀에서는 그가 최고로 활약할 수 있는 롤을 알아냈고 그는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다."며 옥스를 비난했던게 아니라고 했다. #

2016년 3월에는 'UEFA A 라이선스'를 취득하였다. UEFA A 라이선스는 국가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최고 레벨의 축구 코치 라이선스 중에 하나이다. 최고 라이선스인 만큼 기존의 Level 1, 2, 3와는 달리 코스도 Part 1(12일), Part 2(8일)로 나누어져 있으며, 보통 2년 동안 진행된다. 앙리와 함께 교육을 수강했던 스완지 시티 레전드 윌 폴리가 현지 언론을 통해 "A급 자격증은 1년 동안 180시간의 강의를 수료해야 취득할 수 있다. TV 해설과 외부 활동으로 바빴던 앙리가 이렇게 빨리 자격증을 획득할 리 없다”라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폴리는 "앙리가 B급 라이선스를 취득하면서 동시에 A급에 필요한 자격을 충족시킨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며 “교육을 주관했던 웨일스축구협회(FAW)는 앙리가 유명인사라는 점을 고려해 특혜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해서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이후 아스날의 U-18 팀 코치 제의를 받았으나 방송 활동에 제한을 건다는 이유로 거절한 후, 2016년 8월 26일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링크

한편 스카이스포츠의 해설위원도 겸직하고 있는 앙리는, 9월 19일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 토트넘 홋스퍼 FC선덜랜드 AFC의 경기를 보고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활약할 만한 선수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해설가들과 달리 감독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축구팬들에게 게리 네빌이나 캐러거보다 아쉽다는 평을 들었었지만, 네빌의 발렌시아 감독 시절이후. 앙리처럼 감독의 분야는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18] 하지만 그 점때문에 해외팬들에게는 게리 네빌이나 캐러거급의 해설가로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마침내 감독직을 위하여 해설 위원직을 관두기로 결심했다.


6. 지도자 경력[편집]



6.1.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편집]


수석 코치로 처음으로 맞는 2016년 9월 2일 3시 45분(한국시간)에 보두앵 국왕 경기장(King Baudouin Stadium)에서 열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벨기에 대표팀은 다비드 실바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0:2로 패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의 4강 진출을 도왔다. 4강 맞대결 상대가 프랑스. 조국과의 경기에서 앙리가 카메라에 잡힐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벨기에는 프랑스에게 1:0으로 패했다.

그리고 이때 느낀 바가 있는지 몰라도, 겸직으로 있었던 방송국 해설자 자리를 벗게 되었다. 기존 국대 코치직만이라면 굳이 옷을 벗을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벗은 것으로 봐서는 본격적으로 감독직을 맡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현재 백수인 아르센 벵거와 함께 본격적으로 클럽에서 감독 연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때 FC 지롱댕 드 보르도 감독 부임이 유력시 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거절함으로서 무산되었다.


6.2. AS 모나코 FC 감독[편집]


2018년 10월 13일, AS 모나코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기사 계약기간은 2021년까지 3년간이다. 레오나르두 자르딤을 경질한 AS 모나코아스톤 빌라가 앙리에게 접근했으나, 앙리는 AV를 거절하고 모나코와 합의한 것이다. 기사

감독 데뷔전이었던 리그 1 10라운드 RC 스트라스부르전에서 1-2 패배를 거두었다.

이어진 디종 FCO와의 리그 경기와 클럽 브뤼헤 KV와의 챔스 조별 예선 3차전에서 각각 2-2와 1-1로 연달아 비겼다. 이후 스타드 드 랭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0-1로 패하더니 챔스 조별 예선 4차전에서는 조에서 최약체라고 평가받은 클럽 브뤼헤 KV에게 4골을 내주며 0-4로 대패했다. 감독 부임 이후 5경기에서 2무 3패 4득점 10실점을 기록하며 처참한 첫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더군다나 11월 A매치 휴식기 전에 갖는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파리 생제르맹 FC를 만나 0-4로 대패했다.

바로 다음 경기 캉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첫 승을 신고하였다. 이후 몽펠리에에게 1-2 패배 후 강등권에 턱걸이하고 있던 아미앵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격차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17라운드가 끝난 현재 모나코는 승점 13점으로 19위에 위치해 있으며, 17위 아미앵과는 3점차다.

모나코에 부임할 당시 모나코의 부상자 수는 무려 13명이나 되었다. 주전, 비주전 할 것 없이 스쿼드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기력이 너무 안 좋다. 더구나 18라운드에 주전을 여럿 가동한 스쿼드를 썼는데도 리그 최하위인 갱강한테 홈에서 0-2로 완패당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1월 24일, 부임 후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직무 정지되면서 사실상 경질되었다. 후임으로는 레오나르두 자르딤이 임명되었다.

앙리가 첫 감독직을 처참한 실패로 마무리 짓게된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의 선수 시절 역량과 현 선수단의 역량 차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동일시한 점이 가장 크다. 스타 출신 감독이 실패하는 이유로 위와 같은 이유가 많이 꼽히고 있는데 앙리도 이와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물러났다.

실제로 앙리는 선수들이 부족한 플레이를 펼칠 때 마다 공개석상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선수들을 비판했는데 이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감독이 됐을때 범하는 실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대외적으로 선수 플레이에 대한 비판을 일삼다 보니 선수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성적도 악화일로를 걸어 결국 초라하게 경질되며 AS 모나코 감독 생활을 끝내야만 했다.

다만, 당시 같은 선수 시절 동료이자 호흡을 맞췄던 지단은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성적을 내며 레알마드리드의 명장이 되었기에, 비교가 되며 까였다. 근데 레알은 그게 되는 선수들이 많..

더 자세한 것은 한준희와 장지현이 분석한 '104일 천하' 앙리 감독의 리더십의 문제는?을 보면 앙리 감독의 실패 이유를 분석했으니 참고.

여담으로 프랑스 풋볼에서 4월 1일 발표된 2018-19 시즌 축구 감독 연봉 순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前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을 약간 놀라게 했다.#


6.3. 앵팍트 드 몽레알 감독[편집]


모나코에서의 치명적인 실패로 당분간 감독직 복귀가 어려우리라 예상되었지만, 2019년 11월 14일(현지시각), MLS의 앵팍트 드 몽레알(몬트리올 임팩트)에서 앙리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임기는 2020년부터 2년동안이며 2022년에 계약 연장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2021년 2월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AFC 본머스에서 감독 제의를 받았다. 2021년 2월 26일, 앞으로는 런던에 사는 자녀들에게 충실하고 싶다며 사임 의사를 밝히고 앵팍트 드 몽레알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그래서 잉글랜드 내 리그 감독 복귀설이 더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


6.4.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2기[편집]


유로 2020을 앞두고 다시 벨기에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복귀했다.

1월달부터 그가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2022년 월드컵 종료 이후 수석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6.5. 프랑스 U-21 대표팀 감독[편집]


2023년 3월, 프랑스 축구 협회프랑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앙리가 거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6월에는 PSG와 연결되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의 사단에 수석 코치로 합류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 애초에 나이가 자기보다 많이 적은 나겔스만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를 할 것인가도 의문이고, 결국 나겔스만 감독이 PSG와 협상이 틀어지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23년 8월 21일, 프랑스 축구협회가 티에리 앙리를 U-21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2025년 여름까지. #

그러나, 오스트리아에게 평가전에서 0-2로 패한 다음에 가진 한국과의 홈경기 평가전에서 0-3으로 참패하며 평판이 날이 갈수록 추락 중이다.초보 감독에게 뭘 더 바래 '풋 메르카토'는 "앙리 감독이 이미 첫 번째 폭풍을 경험하고 있다. 앙리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 U-21 대표팀은 이번 A매치 기간 동안 2연패를 당했다. 오스트리아전 이후 앙리 감독은 이미 선수들의 태도에 놀란 상태였다. 한국을 상대로는 수많은 기회를 만들었지만, 결국 총 5골을 허용한 채 A매치 기간을 마무리하게 됐다"라고 했다. #

참고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클린스만호 초기인 2023년 시즌에도 이와 유사한 전적으로 말미암아 감독 자질에 대한 다소 비판적인 평가가 있었다.

7. 기록[편집]



7.1. 대회 기록[편집]








7.2. 개인 수상[편집]




7.3. 수훈[편집]




7.4. 통산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대륙대회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1994/95
AS 모나코
리그 1
8
3
1
0
0
0
0
0
0
8
3
1
1995/96
AS 모나코
리그 1
18
3
5
3
0
1
1
0
0
22
3
6
1996/97
AS 모나코
리그 1
36
9
8
3
0
1
9
1
4
48
10
13
1997/98
AS 모나코
리그 1
30
4
9
5
0
2
9
7
1
44
11
12
1998/99
AS 모나코
리그 1
13
1
3
1
0
0
5
0
2
19
1
5
합계
AS 모나코
리그 1
105
20
26
12
0
4
24
8
7
141
28
37
1998/99
유벤투스 FC
세리에 A
16
3
2
3
0
0
1
0
0
19
3
2
합계
유벤투스
세리에 A
16
3
2
3
0
0
1
0
0
19
3
2
1999/00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1
17
9
5
1
0
11
8
2
47
26
11
2000/01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5
17
3
4
1
0
14
4
0
53
22
3
2001/02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3
24
5
5
1
2
11
7
0
49
32
7
2002/03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7
24
20
6
1
1
12
7
2
55
32
23
2003/04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7
30
9
4
4
2
10
5
3
51
39
14
2004/05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2
25
15
2
0
1
8
5
1
42
30
17
2005/06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2
27
7
2
1
0
11
5
2
45
33
9
2006/07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17
10
6
3
1
1
7
1
0
27
12
7
합계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254
174
74
31
10
7
84
42
10
369
226
92
2007/08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0
12
9
7
4
0
10
3
2
47
19
11
2008/09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29
19
8
1
1
0
12
6
4
42
26
12
2009/10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21
4
3
3
0
0
8
0
1
32
4
3
통산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80
35
19
11
5
0
30
9
7
121
49
26
2010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11
2
3
1
0
0
0
0
0
12
2
3
2011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26
14
4
3
1
1
0
0
0
29
15
5
2012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25
15
12
2
0
0
0
0
0
27
15
12
2013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30
10
9
2
0
1
0
0
0
32
10
10
2014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30
10
11
5
0
0
0
0
0
21
7
11
합계
뉴욕 레드 불스
메이저리그 사커
122
51
39
13
1
2
0
0
0
135
52
41
2011/12
아스날 FC (임대)
프리미어 리그
4
1
0
2
1
0
1
0
0
7
2
0
합계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258
175
74
33
11
7
85
42
10
376
228
92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대륙대회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경기
득점
어시
94~14
-
-
581
284
160
72
17
13
139
59
24
792
360
197


8. 앙리에 대한 말 말 말[편집]


앙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티에리는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파워, 그리고 골센스. 그와는 통하는 게 있어서 어디에 패스를 넣으면 좋을지 100% 이해하고 있습니다.

- 데니스 베르캄프[20]


내가 가르쳤던 선수들 가운데 최고는… 아마도 티에리 앙리일 것이다.

아르센 벵거[21]


앙리가 처음 바르셀로나 라커룸에 들어왔을 때 감히 그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잉글랜드 무대를 정복하고 온 상태였고 난 앙리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팀에서 뛴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날렵하고 부드러운 터치로 볼을 받아 간단하게 골을 집어넣는 그의 플레이는 내게 인상적일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리오넬 메시


티에리는 프랑스가 낳았던 위대한 선수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1998 월드컵에서 그를 만난 이래로 그가 특별한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티에리 앙리는 위대한 커리어를 가졌고, 축구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네딘 지단


앙리는 가장 상대하기 두려운 선수였다. 그는 정말로 무서웠고 단연코 최고였다. 그는 스트라이커로서 정석적인 포지셔닝과 모든 무기를 가진 선수였다. 나는 항상 아스날의 앙리를 상대하기 전날이면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되겠군'이라고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커리어를 통틀어 이런 공포를 안긴 상대는 없었다. 오직 티에리 앙리뿐이었다.

존 테리


어떤 사람들은 앙리를 쥐스트 퐁텐과 비교하지만 그건 오히려 앙리에게 실례일 정도이다. 그는 내가 평생 갈망했던 타입의 선수였다. 우리가 영원히 그리워할 그의 모습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줬던 믿을 수 없는 시즌들이다. 나는 아스날 시절 앙리가 탄성이 나올 정도의 활약을 했던 시간들을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주제 무리뉴


티에리 앙리는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선수 중 최고의 성장속도와 골 감각을 가지고 있다. 앙리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골 감각을 갖춘 스트라이커다.

- 미셸 플라티니


티에리 앙리는 상대편 수비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다. 지능적이고, 팀이 원할 때 언제든 골을 터뜨려 주는 선수이다. 2002년 발롱도르는 앙리가 수상했어야 했다.

- 요한 크루이프


전세계 모든 선수들을 둘러봤지만 티에리 앙리야말로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선수다. 바르셀로나가 앙리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앙리가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함께 공격을 이끄는 것은 정말로 꿈만 같은 일이다. 앙리의 리듬과 스피드, 기술은 그를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만든다.

나는 그들의 열렬한 팬이며 플레이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인간적으로도 앙리를 존경한다.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 호나우지뉴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인 티에리 앙리와 함께 뛸 수 있는 아스날을 선택할 것

- 토마시 로시츠키[22]

, 아스날 이적설이 나돌때, 앙리와 함께 하고싶다며[23]


아스날 시절에 앙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바르셀로나 시절 함께 뛰어본 최고의 동료 중 하나였다.

야야 투레


저의 어린시절 우상이었어요. 그의 기술, 명성, 업적을 보세요. 그는 제 플레이에 영감을 주는 선수였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9. 여담[편집]


  • 축덕으로 유명한 샤이니의 민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다. 2008년 6월,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바르셀로나의 티에리 앙리라고 답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에도 여전히 민호 본인은 앙리 팬이라고 밝혔다.

  • 현재 PL에는 시즌 MVP가 4개 있다. 선수단이 뽑는 PFA 올해의 선수, 기자단이 뽑는 FWA 올해의 선수,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팬들이 뽑는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이 네 개의 상을 한 시즌 동안 독식한 것은 03-04 시즌 앙리와 06-07, 07-08 시즌 호날두 둘뿐이었으며, 13-14 시즌 수아레스가 MVP 4개를 석권하면서 겨우 3명으로 늘어났다.[24]

  • 00-01 시즌부터 05-06 시즌에 이르기까지 6시즌 연속으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팀에서 획득한 트로피 같은 것은 몰라도 순수하게 개인으로서 행사한 리그 지배력을 놓고 보면 PL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힐 수준.

  • 2003년영국모델인 니콜 메리와 결혼해서 딸을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2007년이혼했다. 자녀는 딸 1명이었는데 딸의 이름은 Téa이며 2005년생이다. 여담으로 앙리는 엄청난 딸바보라고 전해진다.

  • 2007년 바르셀로나 이적을 앞두고 무한도전에 출연해 한국 내에서 인지도를 확 올렸다. 무한도전 출연 당시 세계적 스타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과 예능감을 어필하면서 한국 내에서 호감형 선수로 주가가 올라갔다.[25] 게다가 2007년에 출연한 지 6년이 지난 2013년에는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을 매우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무한도전 멤버들과 했던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라고밝혔다. 여담으로 무도 출연 때 했던 물공헤더를 앙리측 에이전트에서 부상을 이유로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본인이 괜찮다며 쿨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물론 제작진측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공을 높이 안 띄우고 강도 조절을 했다고 한다.[26] 앙리가 출연했다는 유명세를 거르고 봐도 일반 시청자들까지 레전드 특집 중 하나로 평가할 정도로 방송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었고, 앙리의 적극적이고 친절한 태도 덕분에 해외 축구선수 내한 및 국내 예능 출연의 모범적인 예시로 남아 있다. 덤으로 박지성의 친구인 파트리스 에브라도 앙리의 출연분을 보고 박지성에게 자기도 이 방송에 나가고 싶다고 어필을 했다고 한다.[27]

  • 아스날 시절 페널티 킥 키커 1순위였으나 본인이 얻어낸 PK를 본인이 차지 않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PK를 얻어내면 2순위 키커였던 로렌이 차거나 3순위였던 로베르 피레스가 PK를 찼다. 만약 그런 징크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기록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을 것이다. 그 징크스 덕분에 많은 도움을 기록한 것도 있다.[28]


  • 축빠가 많은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최고의 축덕력을 자랑한다. 큰 경기는 물론 2~3부리그 경기까지 시청하는데, 심지어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가진 심층 인터뷰에서는 영국 2부리그 축구경기를 틀어놓고 인터뷰를 할 정도.[29][30]

  • 2016년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2차전을 앞두고 두 팀사이에 앙리를 둔 신경전이 펼쳐졌다. 서로 자신의 팀에 있을 때의 앙리의 활약상을 경쟁적으로 올린 것이다.

  •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발롱도르에서 2위, 3위를 잇달아 기록하며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또한 FIFA 올해의 선수도 2년 연속으로 2위를 차지하면서 수상하지 못했다. 20-20을 기록했던 2002/03 시즌은 2003년 컨페드컵 우승과 득점왕, 골든볼을 석권하며 수상이 유력해 보였지만 아스날의 챔피언스 리그 부진으로 인해 네드베드에 밀려 발롱도르 2위에 그쳤으며(피올에서도 지단에게 밀려 2위), 아스날의 무패 우승을 이끌며 유러피언 골든슈, 프리미어 리그 골든부츠를 독식한 2003/04 시즌에는 수상이 유력했지만 안드리 셰브첸코, 데쿠, 호나우지뉴에 밀려 발롱도르 4위에 머문다(피올에서는 지뉴에게 밀려 2위). 마지막으로 상을 탈 기회였던 2006년에는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을 이끌며 수상이 점쳐졌지만,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에 그치면서 다시금 실패한다. 발롱도르나 FIFA 올해의 선수상이 없다는 점이 아스날 역사상 최다득점자, 프랑스에서 월드컵, 유로컵,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국대 탑 스코어러로 등극한 앙리의 무시무시한 커리어에서의 유일한 흠이다.

  • 인종차별 반대로도 유명해서, 인종차별반대 홍보대사도 하고는 했다. 그런 앙리가 오히려 인종차별을 했다고 한국내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2005년 1월 설기현이 소속된 울버햄튼와의 FA컵 경기에서 날개짓 흉내를 낸 것이 인종차별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스처는 'poule mouillee'[31]로 당시 2부 리그 소속이던 울버햄튼이 10백, 속칭 버스축구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겁쟁이라고 가볍게 놀린 표현으로 밝혀졌다. 앙리가 유럽 축구의 인종차별반대 홍보대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반응이었고, 앙리 본인의 해명도 있어서 빨리 마감이 된 사건이었다.

  • 국내에서는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등 역대급 레전드보다는 밑에 위치한 선수이지 않느냐 하는데 최근에 UEFA 유로 2016을 앞두고, 선수들이나 유럽팬들이 뽑은 역대 유로 베스트에서 스트라이커 포지션뿐만 아니라, 전 포지션을 보더라도 가장 높은 빈도로 뽑히기도 하였다. 참고로, 주제 무리뉴도 그렇고 프랑스 몇몇 언론에서는 쥐스트 퐁텐보다 더 우위에 있는 선수라고 보는 경향이 존재한다. 사실, 국대를 제외하고 클럽만 보면 당연한 말이기는 하다. 허나 퐁텐의 국대에서의 활약은 지단 & 플라티니급이다.



  • 대표팀 선배이기도 한 에릭 칸토나처럼 셀러브레이션이 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창 전성기 시절이던 아스날 시절에는 골을 넣어놓고 마치 당연히 넣을 것을 넣은 것마냥 무심한 제스쳐를 자주 취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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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래어 표기법상의 표기법이며 실제 발음은 프랑스어의 발음 특성상 '티에리 앙리'보다 '띠에히 엉히'에 더 가깝게 들린다.[2]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4위, 득점 2위[3] 1위는 올리비에 지루.[4] 프랑스의 축구 선수 윌리엄 갈라스와 생일이 같다. 1992년에는 클레르퐁텐 유소년 구단에서 잠시 같이 있었고 나중에 아스날에서 재회한다.[5] 30m 기록이 3초 후반인 그 빠르다던 호베르투 카를루스와의 속도 경합에서 어렵지 않게 압도하는 장면이 많았으며 언론 따르면 98년도에 기록했던 최고 속도가 39.2km/h 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빠른거냐면 탈인간급의 선수 우사인 볼트의 최대속력이 44.7km/h이며 이는 2014년 월드컵에서 아르연 로번이 스페인을 털어버린 당시 기록한 32.2km/h의 스프린트를 꽤나 큰 차이로 뛰어넘는다.[6] 과거 아스날의 442는 말이 442이지, 사실상 4231에 가까운 컨셉이었다. 베르캄프가 플메와 센터 포워드를 오가는 벤제마롤을 맡았다.[7]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다는 것이지 부진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앙리는 유로 2000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 뿐만 아니라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아예 대회 득점왕과 골든볼을 차지하였다.[8] 지단도 왼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레알마드리드에서는 왼쪽미드필더로 자주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9] 물론 여기에는 지단 특유의 볼을 오래 소유하고자하는 특성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클럽팀 동료이자 같은 대표팀 멤버인 피레스와는 상당한 호궁합을 보여주었다. 피레스는 다이렉트하게 볼을 전개하는 스타일이기 때문.[10] 이전까지는 PK를 얻어서 다른 키커가 차서 넣거나, 키퍼나 골대에 맞고 튕겨나온 공을 다른 팀원이 차서 넣는 등 간접적인 경우에도 어시스트로 기록해주었다. 이를 13/14시즌에 바꾸면서 이전의 기록에도 소급 적용되었고, 호날두의 경우 06/07시즌 18어시로 도움왕이었으나 8개로 정정되기도 했다.[11] 실제로, 레반도프스키의 롤모델이 바로 티에리 앙리다.[12]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라인브레이킹과 공간침투,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 훌륭한 킥력을 통한 특정 존에서의 득점력, 준수한 골 결정력, 스크린플레이 및 헤더플레이 비선호 등 장점뿐 아니라 단점으로 볼 수 있는 플레이까지 비슷하다.[13] 앙리는 국대와 클럽에서 맞은 10번의 결승전에서 단 1골만 기록했다.[14] 9경기 1골. 모나코에서 뛴 1998년 4강 2차전.[15] 16강 팀을 4개조로 나눈 방식. 32강 조별 리그가 아님. 그리고 조별 리그는 알파벳으로 표기한다.[16] 1차전 풀타임, 2차전 80분.[17] 1차전 풀타임, 2차전 24분[18] 게다가 현실적으로 앙리가 감독 비판을 한다는건 아르센 벵거까지도 비판을 하게 된다는 점까지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감독 비판을 안 할수 밖에 없다.[19] 1907~2007, 1997~2007[20] 앙리를 논함에 있어 벵거와 함께 결코 빠져서는 안될 인물. 앙리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베르캄프의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는 그야말로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축구 역사에 남을 완벽한 투톱조합이었다.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였던 셈.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것인데 베르캄프와 앙리는 경기장 안에서만 그랬고, 경기장 밖에서는 지극히 사무적인 사이라고 한다.[21] 유벤투스에서 윙포지션으로 뛰던 유망주 앙리를 아스날로 영입해 스트라이커로 변신시켜 최고의 선수로 만든 앙리의 은사. 그로 인해 앙리와 베르캄프 투톱 조합이 완성됐다.[22] 로시츠키는 사실 앙리가 아스날에 오기 이전부터인 1997-1998시즌 더블을 할 당시에도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좋아했던 체코의 구너였다.[23] 로시츠키가 06-07시즌에 아스날로 오면서 앙리의 마지막 시즌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24] 그러나 수아레스는 둘과는 다르게 이 시즌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리그 우승을 못 했다.[25] 해당 방송에서 동갑인 정형돈이 앙리에게 “쥬뗌므, 베이비.”라고 인사하자 앙리는 “감사합니다, 베이비”라고 화답했다. 방송 내내 멤버들의 성향에 맞게 리액션을 구사하며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26] 강도 조절을 했다 해도 물공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무거워서 헤딩을 하면 상당히 아플 수 밖에 없는데 눈 하나 깜짝 않고 헤딩을 하는 인내심 또한 보여주었다.[27] 앙리의 무도 출연 당시에 앙리를 공항까지 마중나간 아스날 팬 중 한명이 이 사람이다.[28] 앙리가 뛰던 시절 프리미어리그에서는 PK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도움으로 인정됐다. 현재는 어시스트 규정이 바뀌어서 도움에 포함되지 않는다.[29] 그렇지만 이건 선수들 취향에 따른 문제로, 축구 별로 안 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앙리처럼 지독하게 보는 선수도 많다. 예를 들면 에투는 경기의 흐름을 관찰하기 위해 시간 나면 그냥 축구 나오는 아무 채널이나 틀어서 세계 어떤 리그나 시청한다고 한다.[30] 반면 직업으로 축구선수를 하지만 여가시간에는 축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선수도 있다. 베누아 아수에코토우치다 아쓰토 등이 그 예시이다.[31] 직역하자면 물에 젖은 닭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선수 2위, 공격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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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9월 26일 PL 6R 아스날 FC VS 토트넘 홋스퍼 FC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포착됐다.[32]

  •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함께 한식당에 갔을 때 젓가락질도 능숙하고 김치 등의 한국 음식도 잘 먹었다는 박주영의 증언이 있었는데,[33] 이를 보면 상기한 손흥민의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 아무리 못해도 앙리와 박주영이 함께 아스널에서 뛰던 시절 이전, 어쩌면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시절 전후로 보인다.

  • SSC 나폴리에서 우승에 크게 기여한 김민재를 크게 칭찬해준 사례도 있다. 김민재는 첼시로 떠난 쿨리발리의 공백을 잘 해결해 줬으며, 그의 완벽에 가까운 수비를 보자 매우 감탄했다.#

  • 선수 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대신 축구장에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 2023년 현재는 코모 1907의 지분 일부를 매입해서 축구단의 주주로도 활동하고 있다.

  •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티티'라는 귀여운 별명 혹은 애칭으로 자주 불리는 거 같다. 많이 귀여운? 어감 때문에 앙리 본인은 약간 그렇게 불리기 싫어하는 느낌도 있지만 어차피 애칭이기 때문에 친한 사이끼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9.1. 헨리 드립[편집]


사건의 발단이 된 성지글[34]

내용인 즉슨 앙리의 친구 헨리가 어렸을 적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앙리가 헨리의 몫까지 뛰기 위해 유니폼 마킹에 Henry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란 이야기다.

2006년 11월 19일, 네이버 지식iN에 티에리 앙리는 왜 헨리(Henry) 유니폼을 입고 뛰느냐는 내용의 질문에 문제의 답변이 달린 것이 그 시초였다. 상당수가 이에 낚이기도 했거니와 싸이월드와 여타 블로그에 뻘글감으로 올리기 좋았기에 퍼가는 사람 또한 많았다. 물론 현재는 Henry가 프랑스어 발음상 앙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35] 당시에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 표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발생한 하나의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36]

헨리 드립 설명 영상

이후 헨리 드립이 히트를 치며 한동안 다비드 비야는 데이비드 빌라[37], 뱅상 콩파니는 빈센트 컴패니, 솔샤르는 솔스크재어 등의 변형이 유행했다.

시간이 많이 지남에 따라 일찍 유명을 달리한 친구 드립은 유행이 지났지만 발음이 여러가지인 이름(단어)을 바꾸어 놀리는 드립은 살아남아 지금도 절찬리에 쓰이고 있다. 예시로 첼시에서 슈퍼 크렉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량과 득점력을 자랑했던 윙어 에덴 아자르가 이적팀에서 부진하자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실종되고[38] '이든 하자드'라는 사기꾼이 아자르 행세를 한다는 드립이 유명하고, 리오넬 메시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라이오넬 멧시'가 되기도 한다.[39] 영어권 국적 선수라고 예외는 없어서, 가령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은 삽질할 때마다 '하리 카네'로 개명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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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 날 득점을 올린 아스날의 주장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과거 앙리가 북런던 더비에서 했던 무릎 셀레브레이션을 따라하기도 했다. 오바메양뿐만 아니라 부카요 사카에밀 스미스 로우도 득점을 올린 후 무릎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였다.[33] 3분 16초 경.[34] 2023년 기준 조회수 18만 이상을 자랑한다.[35] 사실 프랑스 본토 발음은 정확히는 '띠에히 엉히'에 더 가깝지만, 국립국어원 인증 공식 표기는 앙리다.[36]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영어식 표기를 그냥 써 버렸는데, 가령 호날두토니 크로스도 유명해지기 전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에서도 호나우두, 토니 크루스 등으로 표기하다가 국립국어원의 정정으로 바뀐 바 있다.[37] 마찬가지로 다비드 실바는 데이비드 실바로 변형이 되기도 한다.[38] 비행기에서 실종된다는게 이 드립에서 흔히 쓰이는 래퍼토리이다. 예를 들자면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부진한 곤살로 이과인을 두고 '이과인은 비행기에서 실종되고 이구아인이라는 선수가 결승전에서 뛰었다'는 식이었다.[39] 이는 애비 파라무그손으로 대표되는 국적 변경 드립의 시초가 된다.